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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UTUMN

생활

연예토픽 대중문화 속 며느리, 더 이상 종속된 객체가 아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불화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이 오래된 소재가 아직도 유효한 것은 고부 갈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중문화 속 며느리들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 역시 바뀌고 있다.

올해 초 개봉됐던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는 2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모았다. 정치나 시사 문제가 아닌 일상사를 풍자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 흥행이었다. 이런 조짐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춘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이 작품에 찬사가 쏟아졌을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 영화가 다룬 고부 갈등은 한국 대중문화에서 오랫동안 흔하게 다뤄져 온 소재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이제 TV 드라마에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가 등장하면 “아직도 저런 식상한 소재를 다루는가” 하고 지적하거나 “요즘 세상에 저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냐”고 투덜거린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영화의 무엇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던 것일까.
「B급 며느리」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어느 가정에나 여전히 존재하고, 고부 갈등으로 인한 며느리들의 고통 또한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주인공 진영이 시집살이를 통해 ‘B급 며느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진영이 처음부터 B급 며느리였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 경숙의 “이제 한 식구가 됐으니 집안 대소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와 부딪치기 시작하면서 진영은 결국 착한 며느리가 되기를 포기한다. 며느리는 시댁에 안 가서 “완벽한 추석을 보냈다”며 웃고,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명절인데도 집에 안 온다”며 눈물을 훔친다.

「B급 며느리」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이 영화의 감독이자 진영의 남편인 호빈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는 어떤 해결책도 보여주지 않지만, 대신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어째서 며느리들이 시집 식구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착한 A급 며느리’가 되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달라진 시대의 대안적 며느리상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관객은 이 영화에 공감했다.

관찰자의 시선
올해 4월 MBC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했던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결혼한 여성의 일상을 관찰하는 내용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6월부터 정규 방송으로 편성됐다. 이 프로그램이 주목받은 것은 최근 새로운 방송 트렌드로 자리하게 된 관찰 카메라 형식을 도입해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반적 한국 가정의 ‘이상한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며느리들은 시집에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부담감을 느끼고, 도착하면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 정신없이 요리와 설거지를 한다. 반면에 남편들은 TV 앞에 앉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마치 남자들의 공간과 여자들의 공간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는 사실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집 안 곳곳에 배치된 카메라를 통해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면 며느리의 역할로 당연시해 왔던 것들이 사실은 비정상임이 드러난다.
‘시댁이라는 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건 ‘식구’라는 말이 가진 구속으로부터 비롯된다. 한국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에게 “결혼했으니 이제 우리 식구가 됐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여기에는 가족이 됐다는 환영의 의미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며느리로서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임무를 떠안고 시집살이를 해야 한다는 강요의 뜻도 들어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한 남성 출연자는 “사위를 ‘백 년 손님’이라고 부르는데, 며느리도 그런 손님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의 말 속에는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집이 그토록 이상하게 느껴진 이유가 들어 있다. 그건 며느리를 손님처럼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남의 집 귀한 딸’인 며느리를 억지로 ‘식구’로 만들지 말고, ‘손님’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여 준다.

변화하는 며느리의 모습
가부장적 풍습이 지금보다 훨씬 혹독했던 1972년에 방영된 드라마 「여로」는 전형적 고부 갈등을 다뤄 시청자들을 눈물 바다에 빠뜨렸다. 바보 아들을 극진히 돌보는 천사 같은 며느리를 구박하고, 심지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모함하는 시어머니가 등장해 전국의 며느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TV에 나오는 며느리들은 매우 다른 모습이다. 2006년 방영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며느리에게 구박받는 시어머니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2007년 방영된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를 보여 줬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웠던 것은 아직도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며느리이자 동시에 시어머니이기도 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고부 간의 화해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최근 드라마 속 며느리는 일방적으로 핍박받는 존재가 아닌 자신의 입지를 갖는 주체적 캐릭터로 바뀌고 있다.
남편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2012년에 방영된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등장하는 귀남은 고부 관계 속에서 아내를 지지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재미있는 것은 ‘귀한 남자’라는 뜻을 지닌 그의 이름이 1992년 작 「아들과 딸」의 아들 이름과 같다는 점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작가는 동명의 남자 주인공을 등장시켜 20년 세월 동안 달라진 한국 남성의 가정 내 위상과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 줬다. 「아들과 딸」에서 귀남은 어머니에게 ‘귀한 남자’이며 남아 선호 사상을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귀남은 아내에게 ‘귀한 남자’이다.

드라마 속 며느리들이 보여주듯 시대는 확실히 변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며느리들은 결혼과 함께 시집 식구의 일원이 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립적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한다. 이런 변화는 가족주의 시대가 저물고, 대신 저마다의 행복이 더 중요해진 개인주의 시대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대중문화에 나타난 며느리들이 이전과 다르다고 해서 현실이 그와 꼭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달라진 시각이 가리키는 변화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는 분명하다. 이제 종속된‘객체’가 아니라 동등하고 당당한 ‘주체’로서 며느리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덕현(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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