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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UTUMN

문화 예술

아트리뷰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도전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번안한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의 흥행 성공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과감한 투자, 뛰어난 배우들과 실력 있는 제작진들의 조화가 돋보이는 이 작품이 바야흐로 한국이 해외 뮤지컬의 소비 시장에서 벗어나 생산 기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EMK 뮤지컬 컴퍼니가 5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올해 7월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무대에 올린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빅토르 위고의 동명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의 음악에 로버트 요한슨(Robert Johanson)이 연출을 맡았다. 1928년, 2012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소설은 2016년 영국에서 이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제작되기도 했다.

뮤지컬은 소위‘원 소스 멀티 유즈’에 꽤나 적합한 장르적 특성이 있다. 무대의 역동적인 현장성과 노래로 구성된 극 전개가 어울려 관객들로 하여금 유명 원작에 즐겁게 다가서게 한다. 그래서 뮤지컬은 종종 왕년의 인기 대중음악이나 흘러간 영화, 소설과 시집 같은 문학 작품들을 소재로 활용한다. 아바의 음악으로 엮은 <맘마미아!>가 그렇고, 동명의 영화를 각색해 뮤지컬 코미디 붐을 일으킨 <프로듀서스>, 가스통 르루의 소설과 T. S. 엘리엇의 시를 각기 소재로 삼았던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 등이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커다란 부가가치를 낳은 사례들이다.

또 다른 명작의 부활
지난 7월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막을 올린 <웃는 남자>도 이런 환경이 낳은 흥행작이다. 영화광이라면 아마도 이 뮤지컬을 보고 2012년 장 피에르 아메리스 감독이 만들고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주연했던 프랑스 영화 <웃는 남자>(L’homme qui rit)를 떠올릴 것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의 탄생’이라는 홍보 문구로 이목을 끌었다. 일부러 얼굴을 칼로 찢어 항상 웃는 표정을 만든 극중 캐릭터의 탄생을 강조하기 위해 조커를 차용한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시절, 17세기 영국에서는 귀족들이 노예들의 얼굴을 흉하게 만들어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이 작품은 항상 웃을 수밖에 없는 얼굴로 비틀린 사회를 조롱하는 민중들의 페이소스를 담고 있다. 주제의 의미가 그만큼 크기도 했지만 빅토르 위고는 이 소설에 대해 “이 이상의 위대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고 스스로 평했다.

제1막에서 배우들이 <일단 와(Step Right up)>를 부르고 있는 장면이다. 이 뮤지컬은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 눈이 안 보이는 순수한 여인 데아 등 각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의 우수한 역량이 어울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한국에서 뮤지컬로 환생한 <웃는 남자>는 한마디로 말해 우리 뮤지컬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말해 준다. <햄릿>,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 대작을 제작해 온 EMK 뮤지컬 컴퍼니가 175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하며 5년여 동안 공들인 끝에 선보인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로 체코나 오스트리아 혹은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한 유럽 배경의 역사 뮤지컬들을 수입해 번안 무대를 꾸며 왔던 제작사가 이 같은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고무적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창작 뮤지컬이 수입 뮤지컬에 비해 더 유리한 수익 구조를 보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창의적 노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콘텐츠를 제작함으로써 한국이 더 이상 소비 시장이 아닌 창작 기지로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 작품은 이미 대본과 음악이 스몰 라이선스 형태로 일본에 수출됨으로써 향후 세계 시장의 반응에 대해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홍보 포스터 이미지. 어릴 적 얼굴이 기괴하게 손상된 주인공 그윈플랜 역은 가수 박효신, 그룹 EXO의 수호, 뮤지컬 배우 박강현이 돌아가며 맡았다.

세계적 규모의 무대
산업적 측면에서의 이런 긍정적 평가에 앞서 <웃는 남자>는 무엇보다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무대 전환이 매우 인상적인데, 마치 스펙터클한 영화를 보고 있는 듯 세련된 시각적 효과가 돋보인다. 샹들리에가 떨어지고, 헬리콥터가 내려오는 마법 같은 무대 효과들을 이제 국내 창작 뮤지컬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대 디자이너의 실력과 노고가 느껴진다. 전작인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를 통해 다양한 무대적 상상력을 실현해 냈던 그가 이번에는 한층 더 발전한 상상력을 구체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인공 그윈플랜의 아픔을 상징하는 붉은 웃음은 단지 배우의 얼굴뿐 아니라 무대의 막들과 여러 장치에도 효과적으로 표현되어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상징적 문구가 노래로, 이미지로, 또 무대 장치로 등장할 때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시대의 비극이라는 극적 아이러니가 명징하게 부각된다. 이 메시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배우들의 면면도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이다. 주인공 그윈플랜으로 등장하는 가수 박효신(Park Hyo-shin 朴孝信)과 그룹 EXO의 수호(SUHO), 뮤지컬 배우 박강현(朴强玄)은 그 존재만으로도 최고의 흥행 요소이다. 박효신은 가수로 인기를 누리다 뮤지컬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혔는데, 현재는 한국 뮤지컬의 블루칩 중 하나다. 뛰어난 가창력과 호소력 짙은 연기로 전작 <팬텀>에서 전회 매진을 이끌었던 그가 이번에는 오리지널 작품에서 자신이 창조한 극중 캐릭터를 처음 선보이는 실험에 도전했다. 그가 출연하는 공연에서 막이 내리고 커튼콜이 시작되면, 기립 박수와 함께 마치 돌고래 울음소리 같은 관객들의 환호가 터져 나온다. 국내외 어느 뮤지컬 공연장에서도 보기 힘든 진기한 풍경이다.
또 다른 주인공 수호는 인기 그룹 EXO의 리더로 K-Pop의 아이돌 스타답게 무대 위에서 저력을 발휘한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바 있다. 박강현은 인기 TV 오디션 쇼 <팬텀싱어>에서 놀라운 가창력을 선보인 뮤지컬 전문 배우로 극적 완성도에서 세 배우 중 가장 앞서고 있다. 여기에 우르수스, 데아를 비롯해 다른 등장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조화가 감동을 더해 준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상징적 문구가 노래로, 이미지로, 또 무대 장치로 등장할 때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시대의 비극이라는 극적 아이러니가 명징하게 부각된다.

그윈플랜과 데아가 <나무 위의 천사들(Angels in the Tree)>을 부르고 있다. 의상 디자인을 맡은 그레고리 포플릭(Gregory A. Poplyk)은 고증을 토대로 하되 현대적 감각을 입혀 각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출연진과 제작진의 조화
제작진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킬 앤 하이드>, <몬테 크리스토>, <스칼렛 핌퍼넬>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 <모차르트!>, <레베카>의 작사가 잭 머피(Jack Murphy), 그리고 수많은 번안 뮤지컬로 명성을 쌓고 있는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Robert Johanson)이 팀을 이뤘다. 이들은 한국에서 오랜 동안 여러 작품으로 협업을 경험한 팀답게 원숙한 작업을 해냈고, 국내 제작진들과의 협업도 상당히 조화로워 보인다. 김문정(Kim Moon-jung 金文正) 음악감독을 비롯해 조명 디자이너, 음향 디자이너, 앞서 언급한 무대 디자이너 등 한국 뮤지컬 장인들의 세세한 손길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준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가운데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과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가 이미 뮤지컬로 재탄생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국내에서는 이런 작품들을 ‘노블컬’이라 부른다. 소설과 뮤지컬의 결합은 사실 오래 전부터 뮤지컬의 흥행 공식이 되어 왔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두 도시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롤>이 그랬고, <지킬 앤 하이드>, <거미여인의 키스>, <마틸다>,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모두 이 부류의 작품들이다. 한국에서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난 후 원작 소설을 다시 찾아 읽는 경우도 많이 있다.
<웃는 남자>는 무엇보다 빠르게 성장해 온 한국 뮤지컬의 세계 시장을 향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이 작품이 앞으로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지 기대된다.

원종원(Won Jong-won 元鍾源) 뮤지컬 평론가;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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