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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SPRING

기획특집

사진에 빠진 한국인들: 영상 언어의 자유를 즐기다 기획특집 4 호모 포토쿠스와 디지털 사진의 양면성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사진은 이전과 크게 다른 맥락을 갖게 되었다. 사진은 이제 특별한 사건이 아닌 일상을 기록하는 수단이며,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소통의 접점이다. ‘인증샷’을 찍고 SNS 를 하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일상의 특징이 되었다.

「Flâneur in Museum, Louvre」, 김홍식(Kim Hong-shik 金洪式), 2016년, Embossed work, Urethane, Ink and silkscreen on stainless steel,
120 ㎝ × 150 ㎝(액자 포함한 전체 크기)ⓒKim Hong-shik

21세기 신생 인류는 한 손에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지구 곳곳에서 저마다 인증샷을 남기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인증샷이란 말은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SNS가 합작해서 만든 신조어이자, 이 신생 인류의 특징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임에 틀림없다.
요즘에는 누구나 어디서나 사진을 찍는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열심히 사진을 찍어 대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 대상이 존재하는 시간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사진은 ‘소유’와 관계된다. 추억이나 기억도 넓은 의미에서는 일종의 소유이지 않은가. 할머니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다 늙은 사람 사진은 찍어서 뭐하게?” 이 말 속에는 사진은 아름다운 것을 찍는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왜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긴 업무의 증빙 자료나 특별한 콘셉트의 작품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흉물스러운 대상이나 볼품 없는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댈 이유는 없을 것이다. 굳이 그런 것들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서울 종로구 창경궁에서 젊은 여성들이 화려한 한복을 차려 입고 셀카 촬영을 즐기고 있다. 많은 경우에 전통문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보다는 특별한 인증샷을 찍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조선일보사

한 장의 ‘인생샷’을 얻기 위해
디지털 카메라가 나온 이후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유사한 풍경을 판화처럼 똑같이 찍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그건 또 무엇 때문일까? 언젠가 벼랑 끝에 매달리듯 서 있는 오래된 절집을 찾아간 나도 그날따라 하필 안개로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는 풍경을 맞닥뜨리고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아, 지금 딱 여기서 저 절집을 이런 각도로 찍어야 하는데! 내 마음속에는 여행 책자에서 본 사진이 어른거렸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그때 나를 안내해 준 가이드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은 방법이 있어요. 집에 돌아가서 구글링을 해 보세요!”
카메라를 든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비슷한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은 그것이 남들에게 내 경험을, 혹은 내가 받았던 감동을 내놓아 보여 줄 수 있는 일종의 증빙 자료이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온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서까지 같은 자리에 서서 비슷한 사진을 찍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내 눈으로 본 아름다운 풍경을, 내 카메라를 통해, 내가 직접 촬영함으로써, 그 풍경을 내가 소유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요, 또한 내가 그것을 소유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다.

음식점에서 고객들이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식사를 하기 전에 먼저 셀카 촬영을 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서는 일상의 행위를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 GettyimagesBank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일컬어 ‘인증샷’이라고 부른다. 30년쯤 후 사진 사학자들은 인증샷을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포트레이트 사진처럼 하나의 장르로 분류하게 될지도 모른다. 도구를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와 손을 쓰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놀이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거쳐, 201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호모 포토쿠스(Homo photocus)라 불릴 만한 신생 인류가 탄생한 것이다.
호모 포토쿠스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최신 기계 앞에서 머뭇거리는 노인들조차 카메라 앞에서는 자연스럽다. DSLR은 몰라도 스마트폰 카메라쯤은 모든 이가 다 사용할 수 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폰만으로도 거의 모든 종류의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자신의 팔 길이보다 긴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얹어 원하는 각도로 직접 사진을 찍을 수도 있으니, 모르는 이에게 촬영을 부탁할 필요도 없다. 21세기 신생 인류는 한 손에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지구 곳곳에서 저마다 인증샷을 남기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인증샷이란 말은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SNS가 합작해서 만든 신조어이자, 이 신생 인류의 특징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임에 틀림없다.

최근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경복궁이나 서울의 옛 모습을 간직한 북촌 한옥마을, 고풍스런 도시 전주 한옥마을 등에서는 불과 몇 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이 목격되고 있다. 관광 명소로 알려진 이런 곳에서 10대나 20대의 청춘남녀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인증샷을 찍는다. 대부분 혼례 같은 특별한 날에만 입고 일상에서는 거의 잊히다시피 한 한복이 거리로 불려나온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유행이 전통이나 역사의 복원과 관계된 것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사진 때문’이라는 점이다.
젊은이들은 현대 의상과는 확연히 다른 아름다운 전통 의상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한복을 입는다. 인증샷은 곧장 SNS에 올려진다. 이들은 현실 속 진짜 친구들과 온라인상의 가상 친구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인증샷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인생샷’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한 장의 인생샷을 얻기 위해 화려한 전통의상을 빌려 입고 분위기 좋은 거리로, 고궁으로, 카페로, 관광 명소로 분주히 돌아다니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놓인 사진
사진은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사진 없이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인터넷 게시물은 웬만해서는 눈길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블로그 같은 1인 미디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진을 올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한다. 음식이나 패션처럼 이미지가 중요한 블로그는 말할 것도 없다. 최고급 사양의 디지털 카메라를 동원해 사진 작가 뺨치는 솜씨를 발휘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이전에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거나 책상 위에 올려두곤 했다. 그리고 틈틈이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을 음미했다. 요즘 사진은 찍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찍고, 고르고, 삭제할 것은 바로 삭제한 뒤 포토샵으로 수정하거나 사진 앱으로 간단히 보정한다. 그리고 SNS에 올린다. 이 일련의 행위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찍히는 순간에 사진이 되는 것이 아니라, SNS에 올려진 순간에 비로소 사진이 되는 셈이다.
SNS에 올린 사진 밑에는 많은 댓글이 달린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간 뒤 이러저러한 평가가 남겨진다. 사진을 인격체로 가정한다면, 아날로그 시대에 사진은 자신이 필름에서 인화지로 옮겨져 액자에 담기고 어느 집 거실 벽면에 걸리는 것을 최고의 운명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반면에 디지털 시대엔 사진이 인화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가상 세계의 이미지로서 만천하에 공개되어 널리 퍼진다. 디지털 사진의 운명은 얼마나 잘 보정되어 SNS에서 더 많은 ‘좋아요’를 받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SNS에서 가장 많은 반응을 얻는 게시물은 정치적 사안에 대한 공방도 아니고, 사회적 이슈도 아니며, 경험이나 고민을 토로하는 글도 아니다.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셀카와 인증샷이다. 이런 사진들은 훨씬 더 많은 이들을 움직여서 평소 과묵하던 이들의 입마저 열게 한다. 사람들은 글보다 사진 앞에서 훨씬 더 잘 웃고 더 감성적이 된다. 사진은 글보다 강한 자기장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끌어당겨서, 서로 안부를 묻게 하고 인사를 나누게 하고 말을 주고받게 한다. 즉,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고 친밀하게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동기 부여다. SNS라는 날개에 올라탄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가장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해변은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이는 연인과 신혼 부부들로 항상 붐비고 있다. 인생의 귀한 순간들을 사진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고, 또한 SNS를 통해 널리 알리고 공유하고 싶은 열망이 이들을 숨어 있는 관광 명소로 불러 모은다.   © jejuguree

사실의 인증이 아닌 욕망의 인증
2010년대에 들어 인류가 찍은 사진이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그 이전까지 약 180년간 찍은 사진들의 합보다 많을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이 같은 현상을 가능하게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 이면을 살펴보면 사진에는 디지털 시대 우리들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Kim Ran-do 金蘭都)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에서 지난 2015년의 트렌드 중 하나로 ‘증거 증독’과 ‘일상의 자랑’을 손꼽았다. 증거를 보여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의심의 시대, 이제는 눈으로 보여 주고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이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는 얘기다. 그는 SNS의 리트윗과 ‘좋아요’가 자기 존재의 근거가 되는 세상에서 자랑은 일상이 되고 일상은 자랑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자기 증명’의 시대에 그 역할을 도맡은 것이 바로 인증샷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증명이란 말 그대로 사실과 다름없이 명명백백해야 한다. 사실과 불일치되는 것은 증명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인증샷은 그 자체로 사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셀카의 경우 현실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더 멋지고 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정해서 현실에서 ‘떼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수많은 앱들은 얼굴을 좀 더 근사하게 미화해 준다. 주름살이 사라지고 안색이 부드러워지며 눈매가 또렷해진다. 현실의 한 부분만을 잘라 내어 더 보기 좋게 보정한 사진으로 자기 증명을 한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면허증이나 이력서의 증명 사진만 보고서는 그 사람을 구별해 내기조차 힘들 정도다. 요즘은 아무도 있는 그대로 찍은 사진을 쓰지 않는다. 미화된 증명 사진으로서의 셀카나 인증샷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기 증명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증명하는 자료다. ‘나는 이와 같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되기를 소망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 대한 증명. 결국 스마트폰을 들어 인증샷을 찍는 행위는 타인에게 끊임없이 자기 욕망을 증명하려는 노력인 셈이다. 타인을 믿거나 소통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타인들에게 자신을 인증 받으려는 모순의 시대.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오늘 우리의 양면성이기도 하다.

최현주(Choi Hyun-ju 崔炫珠)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사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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