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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WINTER

생활

식재료 이야기 섬마을 아기의 자장가로 익숙한 굴

서양에서는 ‘바다의 우유’, 한국에서는 ‘바다의 인삼’이라 부르는 굴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젓갈로 담가 두면 오랫동안 밑반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고, 그 외에도 굴전과 굴국, 굴밥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즐겨 먹는다. 영양소가 풍부하고 바닷물의 오염도 막으니 이래저래 쓸모가 많다.

「섬 집 아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숙한 자장가이다. 아기가 굴 따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혼자 스르르 잠이 들어 버리는 모습이 어른이 된 다음에도 오래 가슴에 남는 아름다운 노래다. 그런가 하면 해안가에 살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까먹고 버린 굴 껍데기가 쌓여서 무덤처럼 된 조개무지도 있으니, 자장가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굴과 만난다. 나 또한 조개나 고둥, 달팽이 무리들을 다루는 연체동물학이 전공이라 굴과 무척 가까운 사이라 하겠다.
바닷가에서 연구 재료 채집을 할라치면 굴 따는 아낙들을 자주 만나게 되고, 자연스레 반갑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런데 심심풀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들은 잠시도 손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손으로 쉴 새 없이 바위에 붙은 굴을 따고 있는 섬마을 아낙네들을 가만히 있노라면 그 잰 손놀림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보통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될 일이다. 고부라진 쇠갈고리로 두 껍데기가 맞닿는 인대를 탁 친 후 위쪽 껍데기를 홱 들춰내어 뽀얀 속살을 콕콕 찍어 그릇에 담는다. 그런 동작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일사천리로 척척 해내니 달인이 따로 없다.
두 장의 조개껍데기 중 한쪽은 바위에 납작하게 찰싹 붙었으니 그것은 왼쪽 껍데기(左殼)이고, 위쪽 것은 오른쪽 껍데기(右殼)로 다소 볼록하다. 굴을 또 다른 말로는 굴조개, 석굴, 석화(石花) 등으로 부른다. 이들 이름 중에서 무척 의아하게 들리는 것이 석화이다. 갯바위에 웬 ‘돌꽃’이 핀단 말인가. 하지만 멀리서 보면 짝을 잃은 뽀얀 왼쪽 껍데기들이 거무스레한 너럭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 그것이 마치 돌에 핀 꽃처럼 보인다.

호흡과 섭식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굴
바닷가 돌이나 바위에 붙어사는 자연산 굴을 ‘어리굴’이라 하고, 그것으로 담근 젓갈이 어리굴젓이다. 밥도둑인 어리굴젓은 말만 들어도 군침이 한입 돈다. 여기서 ‘어리’란 말은 ‘어리다’, ‘작다’라는 뜻이다. 어리연꽃(Nymphoides indica), 어리여치(Prosopogryllacris japonica), 어리호박벌(Xylocopa appendiculata circumvolans) 같은 생물 이름도 유사한 작명 방식이다.
한반도 연안에 서식하는 굴은 3속(屬) 10종(種)으로 분류되고, 이것들은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곳이나 밀썰물이 갈마드는 조간대(潮間帶)에서부터 바다 밑 20m 언저리까지 산다. 굴 껍데기는 다른 조개들처럼 매끈하지 못하며, 날카롭고 꺼칠꺼칠한 결이 선 비늘 모양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굴은 껍데기가 두 개인 이매패(二枚貝 bivalvia)다. 이매패란 이른바 껍데기(valve)가 두 장(bi)인 조개란 뜻이고, 발이 도끼를 닮아 부족류(斧足類 Pelecypoda)라 부르기도 한다. 밀물 때에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에는 공기에 드러나는 해안선인 조간대에서 나오는 굴은 날물엔 오른쪽 껍데기를 꽉 닫고 들물 때엔 스르르 연다.
굴은 아가미로 호흡과 섭식을 한다. 아가미로 가스 교환, 즉 숨쉬기는 물론이고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걸러 먹는 여과 섭식(filter feeding)을 한다. 한 마리의 굴이 1시간에 무려 5ℓ의 바닷물을 걸러내기에 질소 성분을 포함한 유기물질, 인산, 플랑크톤, 세균들을 여과하여 바닷물이 오염되는 부영양화(富營養化)를 막는다. 그러니까 굴은 존재 자체가 친환경적인 생물이다.

성인병을 예방하는 으뜸 식품
전통 한식에서 어리굴젓을 비롯해 다양한 음식이 되는 굴은 향미가 일품이지만 영양소도 고루 듬뿍 들어 있다. 예부터 서양에서는 굴을 ‘바다의 우유’라 하여 정력제로 여겨 왔으니, 우리 식으로 말하면 ‘바다의 인삼’인 셈이다. 모양새도 그렇지만 실제로 굴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합성에 필요한 아연이 한가득 들었다. 그리고 무기염류인 셀레늄, 철분, 칼슘 말고도 비타민 A와 B12, D가 듬뿍 들었다.
게다가 굴은 고혈압, 뇌졸중, 동맥경화, 간장병, 암 같은 여러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는 으뜸 식품이다. 굴은 회로 먹기도 하지만 굴 소스, 무침, 밥, 부침개, 국, 찜 등 여러 가지로 요리해 먹는다. 김치에도 굴을 넣는다. ‘언청이 굴회 마시듯 한다’는 한국 속담은 무슨 일을 서슴지 않고 쉽게 한다는 뜻이다. 굴은 속살이 물렁물렁하여 치아가 나쁜 노인들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조리법으로 누구나 편히 먹을 수 있는 굴이지만 1년 내내 날로 먹을 수는 없다. 서양에서는 달력에 January, February, September와 같이 이름에 ‘R’자가 든 달에는 생굴을 먹어도 안전하다고 여겨 왔다. 반면에 ‘R’자가 들어 있지 않은 5~8월에는 독성이 있는 산란기일뿐더러 바닷물에 여러 종류의 비브리오균, 살모넬라균, 대장균들이 번성하여 익히지 않고 먹으면 탈이 난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산 굴이 수요를 못다 채우게 되자 최근에는 양식 굴을 많이 먹게 되었다. 새끼 굴인 종패(spat)는 1년 만에 길이 약 7cm, 무게 60g쯤 자라고, 2년이면 10cm, 140g 남짓 크나 그 다음에는 성장이 아주 느려진다. 굴은 보통 5~8월경에 수정, 산란하고 유생 시기를 바다에 둥둥 떠다니며 지낸 다음 어린 종패가 되어서 바위나 돌, 다른 굴 껍데기들에 붙어 성장한다.

한 마리의 굴이 1시간에 무려 5ℓ의 바닷물을 걸러내기에 질소 성분을 포함한 유기물질, 인산, 플랑크톤, 세균들을 여과하여 바닷물이 오염되는 부영양화(富營養化)를 막는다. 그러니까 굴은 존재 자체가 친환경적인 생물이다.

향미가 좋고 영양소도 풍부한 굴은 흔히 생굴을 양념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굴밥, 굴국, 굴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기도 한다. 굴밥은 굴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재료를 함께 넣어 양념장과 함께 비벼 먹는다.

진주는 고작 탄산칼슘일 뿐이다
굴 양식은 거의 굵은 줄에 죽은 굴 껍데기를 올망졸망 꿰매어 물밑에 드리워 놓아 키우는 수하식(垂下式)이다. 통영을 중심으로 하는 남해안은 겨울에 따뜻하고, 밀썰물의 차가 적으며, 섬이 많아 파도가 잔잔하기에 수하식 굴 농사에 안성맞춤이다. 갯벌이 넓은 서해안에서는 넓적한 돌을 사이사이 뿌려 놓는 투석식(投石式)과 그물보자기에 종패를 넣고 펀펀한 곳에 올려 놓는 수평망식(水平網式)으로도 기른다.
투석식과 수평망식으로 키우는 굴은 자연산 굴처럼 여름엔 노상 찌는 땡볕에 노출되고, 겨울엔 칼 추위에 찬바람을 맞는다. 이렇게 가혹한 환경에 놓인 생물들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몸에 다양한 특수 영양소를 한껏 쌓아 놓는다. 그래서 늘 물속에 잠겨 있는 남해안의 수하식보다는 서해안의 조간대 개펄에서 나는 투석식과 수평망식 굴이 더 맛이 좋다. 식물도 야생종은 환경의 악조건을 견뎌 내려고 특별한 식물화학물질을 넉넉히 만들기에 잘 돌보아 가꾼 재배종보다 건강에 이롭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젊은 시절 어렵게 살아 성공한 사람이 대개 인간미가 넘치고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했던가.
굴과 진주조개는 매우 가까운 관계로 굴에서도 진주가 생긴다. 어쩌다가 기생충이나 이물이 진주조개나 굴에 빨려 들어가 조개껍데기(貝殼)와 외투막(外套膜, 껍데기에 붙어서 조갯살을 싸는 막) 사이에 끼어드는 수가 더러 있다. 그럴 때면 외투막에서 그것들을 무독화(無毒化)하려고 진주 성분을 분비하여 켜켜이 에워싼다. 여러 해에 걸쳐 진주 물질을 덧싸면 자연산 진주가 된다.
이것을 본떠 두꺼운 민물조개 껍데기를 잘게 자른 후 둥글게 갈아 만든 작은 알맹이를 바다진주조개나 민물조개의 껍데기와 외투막 사이에 삽입하여 진주를 만드니, 그것이 인공 진주다. 하지만 진주가 제아무리 귀하다 해 봤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고작 탄산칼슘 덩이에 불과하다. 다이아몬드가 단단한 탄소 덩이이듯 말이다.

갯벌이 넓은 서해안에서 키우는 굴은 반복적으로 햇빛과 바람에 노출되어 항상 물 속에 잠겨서 자라는 남해안의 굴보다 맛과 식감이 더 좋다.

권오길(Kwon Oh-kil 權伍吉)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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