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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UMMER

CULTURE & ART

인터뷰 이준익 감독: 영화를 통해 역사를 파고드는 열정

이준익 감독은 기록을 깨뜨린 히트작 <왕의 남자>(2005)에서 시작해 근작 <사도>(2015)까지 누리게 된 흥행 성공의 몫을 틀림없이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상업적 수익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 분명하다. 그간의 활동을 보면 이 감독은 자신이 들려주길 원하는 이야기에 대해 오랫동안 고심해왔고 이것이 한국 사회의 문화 담론에 일정한 기여를 해왔다.

2016년 초,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색다른 성공을 거뒀다. 단지 5억 원의 비용을 들인 독립영화 형태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인 윤동주(1917-1945)를 이야기한 이 영화는 비평가와 대중 모두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얻었다. 흑백으로 찍은 이 영화는 가장 어두운 한국사의 한 시기에 성년이 되어가는 윤동주의 모습을 파헤친다. 영화는 식민지 말기 사상범으로 일본에서 체포된 윤동주의 비극적 죽음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그가 남기고 간 슬프지만 아름다운 시들을 영화 곳곳에 배치하여 그를 기린다.
입소문이 크게 나면서 <동주>는 저예산 독립영화로서는 예외적으로 오랫동안 영화관에서 상영되었고 11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영화는 특정 관객을 겨냥해 올봄에 미국에서 개봉되었고 뉴욕의 아시아영화제에 상영되면서 국제적으로도 소개되었다. 시인의 팬이 꽤 많은 일본에서는 올 가을에 극적인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과거 오랫동안 한국영화산업의 중심지였던 충무로에 있는 이감독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역사적 픽션과 할리우드의 기술
달시 파켓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역사에 관심이 꽤 많으신 것 같은데요. 과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준익 저는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고전극을 많이 보면서 자랐어요. 사람들은 유럽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유럽의 역사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근데 영화 수입 관련 일을 하면서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에 대해서는, 또 두 나라의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요. 하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을 촉발할 만한 어떤 문화 상품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틈새를 메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파고 들고 싶었지요.
그래서 2003년에 <황산벌>을 만들게 되었고요. 사람들은 유럽의 십자군전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데,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 간에 벌어진 7세기의 이 전쟁도 비슷한 스케일이었어요. 30년의 전쟁 기간 동안 13만 대군이 중국에서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배를 타고 한반도에 오기도 했지요. 지금 영화를 다시 만든다면 아마도 훨씬 더 큰 스케일로 찍을 거예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약간 코믹하게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했고 그런대로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유머나 내용은 아주 지역적이었습니다. 사투리를 포함해서 여러 측면에서요. 그래서 이후에 좀 더 보편적인 것을 찾아보려 했고 그것이 <왕의 남자>로 귀결되었지요. 기본적인 바탕이 된 각본이 있긴 했지만 저는 광대라는 개념을 조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이탈리아 전통극인 코메디아 델아르테(Commedia dell'Arte)에도 피에로가 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에도 광대가 나옵니다. 저는 유럽의 광대와 조선 왕조 시대의 광대 간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결국 조선시대 광대는 단순히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나 도구를 넘어서서 대중을 대표하는 어떤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관점을 강하게 주장하고 왕과 같은 권력자와 좀 더 긴장된 관계를 갖고 있었죠. 이런 개념적 이해를 갖고 영화를 찍었는데 한국에서 성공했을 뿐 아니라 해외 관객에게도 어필했던 것 같습니다.
달시 파켓 한국 문화가 일본이나 중국과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이런 고유성이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준익 역사적으로 한국은 이웃 국가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았어요. 19세기 초반까지는 중국이 큰 영향을 끼쳤고 1900년을 전후로 해서는 일본의 영향이 컸죠. 일본 식민지배에서 해방되고 한국 전쟁을 겪고 나서는 미국이 지배적인 영향을 주었고요. 이 세 제국의 문화적 영향이 함께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술적 창조자들은 보통 강력한 감정으로부터 대부분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한 역사적 과거 때문에 한국인들은 내면에 고난과 고통, 화가 늘 샘처럼 고여 있습니다.
영화 제작과 관련해서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중국은 종종 문학과 소설에서 소재를 끌어냈지만 한국 문화에는 그처럼 차용할 만한 역사 픽션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감독들은 직접 오리지널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종종 힘들었던 과거에 내재한 감정을 할리우드 영화 제작 기술과 조합하는데, 그렇게 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도 하지요.

저예산 흑백 영화
달시 파켓 <동주>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준익 사실 1990년대 말에 <아나키스트>라는 영화를 제작했어요. 일제강점기 상하이를 무대로 한 영화이지요. 대본은 박찬욱 감독이 썼고, 함께 조사를 하면서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저는 이 시기를 어떻게 커다란 스크린에 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결론적으로 영화는 성공을 못했고 저는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갔어요.
그러다가 2011년에 교토의 사극 영화제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저는 <평양성>과 <구르물 버서난 달처럼>을 출품했죠. 그곳에 있는 동안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다닌 도시샤 대학을 방문하기로 계획했죠. 그를 위해 세워진 시비를 보기 위해 갔고 정지용의 시 ‘압천’에 나오는 다리를 걷기도 했어요.
2년 후에 제천에서 열린 감독조합 워크숍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차에서 우연히 신연식 감독 옆자리에 앉게 되었어요. 그는 저예산 독립영화 전문가였고 저는 상업 영화만 만들어왔죠. 저는 그에게 윤동주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지만 상업적 영화로 만들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죠. 시대적 배경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 테고 투자자들은 수익이 없다면 재정 지원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그에게 저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각본을 쓸 수 있는지 물었어요. 그는 제 아이디어에 열광했고, 저는 약 2억5천만 원 정도의 예산을 목표로 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를 제안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거죠.
달시 파켓 시인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윤동주를 어떻게 소개하시겠습니까?
이준익 사실 그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출간되었지만 국제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아서 그의 시를 접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해외에 잘 알려진 한국 시인은 많지 않습니다. 고은 시인을 빼면 말이죠. 윤동주의 시는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하지만 그의 삶과 죽음도 기억해야 할 만큼 중요합니다.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다는 사실은 아시아 바깥 세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생을 마친 윤동주의 죽음은 단순히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체실험을 주도한 이시이 시로라는 군의(軍醫) 중장이 있었고 그는 관동군 731부대를 만들어 만주에서 20만여 명에게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와 송몽규를 포함해 1800명의 재소자에게 실행한 생체실험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나치의 생체실험 책임자에게 했듯이 이시이 시로가 전쟁 범죄자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안한 삶을 살고 90세에 죽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시인에 대한 영화가 아니고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양심에 관한 것입니다
달시 파켓 이 영화의 두 실제 인물인 주인공 윤동주와 송몽규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또 어떻게 서로 달랐나요?
이준익 두 사람은 같은 곳에서 태어났고 같은 곳에서 생을 마감했어요. 둘은 사촌지간이었고 친한 친구이자 경쟁자이기도 했고요. 윤동주의 시들은 단순히 방 안에 앉아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또 그의 표현을 통해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들의 영향이 어떠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살았던 역사적 시기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난 후 삶의 여정에서 그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송몽규입니다.
시인은 특정한 시대의 고통을 표현합니다. 이 고통은 그들의 우정에도 반영되었고요. 열등감이나 대립적 감정을 통해서, 또 각자 상대에게 거울이 되는 때에도 그러했지요.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다는 사실은 아시아 바깥 세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생을 마친 윤동주의 죽음은 단순히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대를 되돌아보며
달시 파켓 요즘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꽤 여러 편 나와 있습니다. 과거에는 감독들이 의식적으로 그 시기를 피했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도 매우 드물었지요. 당신 생각에 무엇이 변한 것 같나요?
이준익 맞습니다. 과거에는 감독들이 대체로 일제 강점기를 무시했어요. 이유는 절망의 시대였기 때문이죠. 관객들이 돈을 내고 극장에 가면 일종의 승리감을 체험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경우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습니다.
한국이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강퍅한 삶을 살던 시기에 파탄에 대한 이야기는 환영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한국은 그동안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했고 이제는 우리 과거 역사 속 파탄의 시기에 대해 좀 더 자신감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예가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지요. 이 영화는 우리 역사의 어두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지현이 분한 인물이 자신의 미션에 성공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적인 승리를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점이 영화를 성공하게 했고, 어떤 면에서 한국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일제시대 이야기의 영화화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시 파켓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시나요? 새 영화를 만들고 계시는 중인가요?
이준익 각본 두세 개를 작업 중인데 다루기 힘든 주제를 선택해서 현재 작업이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가장 만들고 싶은 것은 한국의 근대라는 주제를 탐색하는 영화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근대의 시작은 상당히 간단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통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면서 근대를 가져왔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근대의 시작은 조선말기 가톨릭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서구의 사상과 과학을 한국 사회에 소개하는 서학(西學) 운동이 촉발되었죠. 결국 그것은 이에 맞선 동학(東學)에 의해 균형을 얻게 되었고요. 여러 면에서 이 두 운동 간의 충돌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불러왔다고 봅니다.
한국의 자주권 상실을 가져온 서학과 동학의 성장을 탐색하는 영화를 통해 한국 근대화의 본질에 대해 흥미로운 시각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한 편의 영화에서 얘기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작업이라 제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달시 파켓 영화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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