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국에는 취미로 뭉치는 소모임 활동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이 ‘살롱 문화’는 2020년,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 활동으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간편하게 배울 수 있는 자수 강좌는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하비풀’의 인기 클래스다. 쉽게 배울 수 있고 집안 장식에도 도움이 되는 온라인 취미 클래스들이 늘고 있다. © HOBBYFUL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와인을 좋아한다. 그는 와인의 향기와 맛을 음미하며 마음 맞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
홈베이킹도 온라인 취미 교실의 인기 종목이다. 그 밖에도 자수, 뜨개질, 언어, 음악, 요리 등 온라인 클래스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는 추세다. © CLASS 101
2020년 9월 20일 군산월명체육관에서 열린 '2020 MG새마을금고 KBL 컵대회' 울산현대모비스와 창원LG의 경기에서 코로나 19로 경기장을 찾지 못한 '랜선 응원단'이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취미를 나누는 소모임
2019년 이씨는 와인을 더 깊이 알고자 한 작은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30대 남녀 10여 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매주 금요일 저녁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장소에서 모임을 가졌다. 서로 안부를 묻고 가벼운 대화로 시작해 매주 다른 와인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 뒤, 함께 맛보는 순서로 이어졌다.
한때 스위스에 가서 좋은 와인에 맛있는 치즈를 먹는 꿈을 꾸었던 이씨는 이 모임을 통해 작은 소망을 이루어 가는 기쁨을 느꼈다. 비록 알프스행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또래의 남녀가 비슷한 성비로 만나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서 한 주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고, 궁금증과 설렘으로 한 주를 보내곤 했다. 회사 밖에서 만날 수 있는 또래들과의 새로운 세상이었다.
“언제 다시 모임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어요. 지금의 생활이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기를 바랄 뿐이에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이 모임은 이제 마치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요즘 그의 낙이라고는 늦은 밤 거실에 앉아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며, 혼자 와인을 홀짝거리는 게 전부다. 퇴근 후 그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는 날도 있다. 비슷한 나날이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당장은 서로의 대화 온도나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재밌다”거나 “유익하다”는 참여자들의 리뷰를 보면 온라인 활동에 큰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만날 수 없다면 화상으로
“화상 채팅 프로그램 줌(Zoom)으로 모임을 진행합니다.”
전체 회원 수 67명인 서울의 한 독서 모임은 최근 ‘소모임(Somoim)’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온라인으로 활동을 계속한다고 공지했다. 지난 해 말 정부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두 번째 가장 높은 2.5단계로 연장한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방역조치에 따라 서로가 읽은 책의 감상을 온라인 대화로 나누고 소통하자는 제안이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회원들이 같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떠오르는 영감을 공유했을 ‘글쓰기 모임’도 상황은 비슷하다. 전체 회원 234명인 서울의 한 글쓰기 모임은 비대면 화상회의를 제공하는 ‘구글 미트(Google Meet)’로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글쓰기 모임을 한다는 것이 낯설었던 회원들도 이내 서로의 글을 독서하듯 채팅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갈증을 풀게 되었다.
그 밖에도 ‘문토(Munto)’, ‘문래당(Moonraedang)’, ‘트레바리(Trevari)’, ‘프립(Frip)’ 등 국내에는 ‘소셜 살롱’을 표방하며 다양한 취미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플랫폼들이 있다.
이들 중 ‘트레바리’는 독서에 특화한 플랫폼이다. 2015년 시작된 이 커뮤니티에서는 현재 400여 개의 독서 모임을 통해 6천 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한 달에 한 권 정도의 책을 읽으며, 매달 1회씩 총 4회 모임을 갖는다. 물론, 트레바리도 정부의 방역조치에 따라 현재는 오프라인 모임을 취소한 상태다. 원하는 회원들에게는 참가비의 일부를 돌려주고, 온라인 화상채팅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은 서로의 대화 온도나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재밌다”거나 “유익하다”는 참여자들의 리뷰를 보면 온라인 활동에 큰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여가 활동 플랫폼 프립에서 살펴본 한 요리 모임은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제 비치, 발열 체크 등 철저히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이뤄지고 있다. 개인 별 조리도구, 장소와 재료 등이 필요해 대면활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참가 인원 다섯 명을 넘지 않는 선에서 등산이나 트래킹 등을 하는 운동모임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요리나 운동을 온라인 활동으로 병행하는 모임도 있다. 밀키트를 배송 받아 회원들이 각자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등산’ ‘수영’ 등의 해시태그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겨 수행 정도를 서로 공유하는 등 저마다 대책을 찾고 있다.
코로나 19로 휘트니스 센터에 갈 수 없어 스마트폰을 이용한 홈 트레이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이나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에는 실시간 새로운 홈 트레이닝 콘텐츠가 업로드된다. © LG유플러스
살롱 문화
2019년 4월,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Embrain Trend Monitor)가 전국의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활동 중인 모임’을 조사했다. 이 중 정기적으로 모임활동을 한다는 906명에게 모임의 성격을 묻자, ‘취미와 관심사에 따른 불특정 다수와의 모임’이라는 응답자가 26.2% 였다. 학교와 회사 등 기존 인간관계에서 파생된 형태라는 답변(67.6%)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지만 새로운 경향임에는 틀림없다.
평소 모임이나 동호회 활동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응답자(749명) 중 38.9%가 ‘취미, 또는 관심사’에 집중하는 모임 참석이 필요하다고 한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어쩌면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구를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대답에는 30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는데, 이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소규모 취미활동 커뮤니티, 즉 ‘살롱 문화’의 주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73.5%에 이르는 735명이 향후 여행 동호회에 참석하고 싶다고 했으며, 운동•스포츠(18.1%), 외국어•언어(15.9%), 봉사활동(15%), 영화(14.3%), 책•글쓰기(14.1%) 등의 모임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인식은 개인화된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나’를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내 취향과 관심사가 누군가를 만나는데 중요한 조건이 된 것이다. 와인, 독서, 여행, 음악, 요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살롱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작은 개인적 경험
오프라인 모임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온라인의 형태로 변화하는중에 필자도 온라인 강좌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감도 있었다. 프립에서 ‘티매트(tea mat)’ 뜨개질 키트를 주문했다. 호스트의 안내 페이지에서 본 것처럼 뚝딱 작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뜨개용품을 만지면서 자신감은 이내 자괴감으로 변했다.
호스트가 보낸 URL에서 영상을 봤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호스트의 손과 달리 내 손은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아, 직접 앞에서 수업을 들었다면 더 쉽고 자세하게 요령을 알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상만 보고 처음으로 뜨개질을 하려니 대면 수업의 필요성을 절절하게 느꼈다. 몇 차례 털실뭉치와 바늘을 가지고 씨름하다가 ‘티매트는 사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손으로 짠 예쁜 매트로 찻잔을 받쳐 우아하게 커피 한 잔 하겠다던 계획도 뒤로 미뤘다.
무슨 취미 활동이나 초보들은 나처럼 온라인 클래스의 벽을 느낄 수 있을 터이다. 반면 작은 경험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문턱이 그리 높지 않을 것도 같다. 내 뭉쳐진 털실뭉치는 곧 서랍장으로 들어갔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직접 수업을 들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