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2021 SPRING

마음을 다려 드립니다

새하얗게 피어 오르는 김 사이를 요령 있게 움직이는 투박한 손. 김이 걷히면 구깃하던 옷은 어느새 반듯해져 있다. 온기를 머금은 깨끗한 옷을 손님에게 건네는 오기녕(吳基寧) 씨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진다. 서울의 동네 한켠을 20년 간 지켜 온 작은 세탁소는 오늘도 따뜻한 김이 가득하다.

서울시 마포구 신수로 골목의 작은 세탁소 ‘현대 크리닝’을 운영하는 오기녕 씨는 8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 열 네 시간을 일한다. 집집마다 봄옷을 꺼내고 겨울옷을 정리는 봄철이 그에게 일 년 중 가장 바쁜 계절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쌓여 있을 때,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村上春樹)가 말했다. 나라마다 이런 상태를 표현하는 말들이 있다. 덴마크에서는 ‘휘게(hygge)’, 스웨덴에서는 ‘라곰(lagom)’, 프랑스에서는 ‘오캄(au calme)’, 요즘 한국에서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인‘소확행(小確幸)’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널리 쓰인다.

동네 골목에서 일 년 내내 하얀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세탁소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따뜻함을 주는 장소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서울시 마포구 신수로의 골목 세탁소‘현대크리닝’을 운영하는 오기녕 씨의 하루는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출근하면 우선 세탁물을 정리해서 분류하고 종류별로 세탁합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수선 들어온 옷을 모아서 수선해요. 그 후에 다림질이 시작되죠. 밤 9시에는 배달을 나가야 해요. 근처 아파트 다섯 단지 정도 돌고 오면 밤 10시쯤 됩니다.”

일 년 중 가장 바쁜 계절은 봄이다. 집집마다 봄옷을 꺼내고 겨울옷을 정리하면서 세탁물이 쏟아진다. 그래서 봄철에는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없다. 새벽 한두 시까지 일하다 쓰러져 자고 다시 일어나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한다.

요즘은 일감도 많이 줄었다. 많을 때는 하루 40집에 배달을 했는데 지금은 많아봤자 10집 정도다. 그렇다 해도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주일에 6일을 줄곧 서서 일 해야 한다. 한쪽 팔로 다림질을 하다보니 팔꿈치가 변형되기도 했다. 꾸준히 운동을 해도 완치 없는 직업병이다.

자리를 잡기까지

오기녕 씨는 모든 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세탁물을 손질한다. 대부분 오래된 단골들이 찾는 그의 세탁소는 20년 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이십 대 초반에 옷과 인연을 맺었다. 옷 만드는 공장에서 빗질을 하고 실밥을 뜯으며 일을 배웠다. 그곳에서 재단사 업무까지 배운 뒤, 서른 살 무렵 공장을 차렸다. 5년 정도 운영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만났다.

“주문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일주일에 이틀, 사흘밖에 일을 못하니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었어요. 할 수 없이 공장을 접었습니다. 막내동생이 용인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어서 가봤다가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를 먹어도 체력이 닿는 데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니 먹고살 수 있겠구나 싶었죠.”

마침 아내의 친구가 세탁소를 운영했다. 아내와 함께 그곳에서 일을 해주며 필요한 기술을 배웠다. 3개월 간 보수 없이 종일 기계 다루는 법, 일하는 방식 등을 배웠다. 세탁 방법은 원단에 따라 달랐다. 공장에서 옷을 만들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마침내 세탁소를 차렸지만 안정된 운영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첫 번째 장소는 구로동이었다. 처음이라 기술이 부족해서 힘은 들고 돈도 많이 벌지 못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며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다. 몇 달 못 버티고 자리를 옮겼다. 새로 지은 아파트 상가였다. 당시 대부분 아파트 단지 상가에는 세탁소 하나가 들어서면 다른 세탁소는 못 들어간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1,300세대의 세탁물이 그의 세탁소로 몰려왔다. 이번에는 일이 너무 많아 반 년 만에 손을 들었다. 욕심 부리지 말자 생각하고 다시 터를 잡은 곳이 지금의 마포구 신수로다.

“제 고향이 마포예요. 처음 세탁소 차리려고 했을 때에는 이 곳에 아파트가 없었어요. 두 번 째 가게 팔고 와보니 주변에 아파트도 많이 생겼고 마침 빈 가게가 있어서 들어왔습니다. 이 곳에 터를 잡은지 20년쯤 되었네요.”

노동의 양은 줄었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함께하던 아내가 건강악화로 쉬게 되면서 혼자 가게를 떠맡았다. 세탁물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각종 기계와 미싱 등이 빼곡하게 들어찬 가게는 8평 남짓. 잠시 짬이 나도 몸 눕힐 공간이 부족해 의자를 붙여두고 쉰다.

다양한 세탁 프랜차이즈와 첨단 어플리케이션이 쏟아지고 있지만, 오기녕 씨는 전통 방식 그대로를 고수한다. 매일 손수 세탁물에 붙일 태그를 정리하고 체크한다.

변화하는 환경

시대가 바뀌며 세탁업도 예전 같지 않아졌다. 젊은 세대들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세탁앱을 사용하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프랜차이즈에 옷을 맡긴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줄고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세탁물의 양도 더욱 줄었다. 힘들고 고된 일이라 배우겠다는 사람도 갈수록 찾기 힘들다. 동네 세탁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주인이 나이가 들어 더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그대로 문을 닫는 것이다.

하지만 오기녕 씨는 손님 한명한명에게 최선을 다하는 장인(匠人)이다. 그의 가게를 찾는 고객의 대부분은 40대, 50대의 주부들이고 오래된 단골들이다. 새 옷처럼 깨끗해진 옷을 받아들고 솔직하게 기뻐하고, 어떤 이들은 빵이나 과일을 건네며 감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꺼려지는 손님도 있다. 없었던 얼룩을 묻혔다며 누명을 씌우는 사람도 있고, 다짜고짜 하대를 하는 사람도 있다.

“깔보듯이, 천대하듯이 말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일을 하니까 험하게 말 해도 된다는 식이죠. 그런 사람이 제일 힘들어요. 마음에 안 드시면 안 오셔도 괜찮다고 분명하게 얘기해야 해요. 안 그러면 내가 스트레스 받거든요.”

오래 일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손님도 많다. 한 번은 40대 남자 손님이 망태기에 속옷부터 셔츠, 바지, 수건까지 모두 쑤셔 넣어 주기적으로 가져왔다. 젖은 수건까지 넣으니 당연히 악취도 심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게가 잠깐 쉴 때 다른 세탁소로 가져갔더니 너무 비싸게 받더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제 알았습니까?”그가 한 대답이었다. 그는 이제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배워 알고 있다. 나쁜 일은 마음에 두고 계속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나쁜 손님은 안 받으면 되고, 좋은 손님은 늘 주위에 있으니 괜찮다. 좋은 손님에게는 더 잘해주지 못하는 게 항상 미안함으로 남는다.

어려운 상황이 끝나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하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손님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는 뜨겁고 무거운 다리미를 다시 들었다.

노력하는 장인

하루 종일 옷과 씨름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유행에도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새로 산 옷을 수선하러 들고 오는 손님이 많으면‘요즘은 이런 스타일이 유행이구나’하고 느낀다. 소재에 따라 세탁법도 변해야 하니 그에 따른 공부도 필수다. 주말에 시간이 날 때에는 아울렛을 돌아보며 옷을 구경한다. 옷의 상태나 가격을 직접 보고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옷들을 많이 입었는데, 요즘엔 스포츠웨어 같은 기능성 옷이 많다. 옷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단시간 안에, 중성세제만으로 세탁해야 한다. 요령을 모르면 옷이 망가진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근무인데 일요일에 옷을 보러 간다니. 다른 취미는 없을까? 오 씨는 활짝 웃으며 작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자전거도로를 따라 국토종주를 하고 있어요. 코스마다 부스가 있어서, 통과하면 수첩에 스탬프를 찍어줘요. 한동안 일요일마다 갔어요. 새벽에 가서 자전거로 달리고, 버스 타고 돌아오고. 긴 코스를 조금씩 끊어서 달리는 거죠. 이제 딱 한 군데 남았어요. 쉬는 날 운동도 하고 힐링도 할 수 있고, 그게 제 낙입니다.”

어려운 상황이 끝나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하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손님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는 뜨겁고 무거운 다리미를 다시 들었다.

황경신(Hwang Kyung-shin 黃景信)작가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