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한마리는 서울에서 생겨난 요리다. 1960년대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투박한 양푼 냄비 안의 닭한마리는 맛과 재미로도 훌륭한 음식인 동시에 대도시 서울의 성장기에 시민들이 거친 노동을 견뎌야 했던 용광로 같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닭한마리는 이름 그대로 닭 한 마리를 다른 재료들과 함께 냄비에 넣고 끓인 뒤 양념을 찍어 먹는 서울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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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소고기 잡채, 떡볶이처럼 한국의 요리는 대개 재료+조리법(또는 특별한 양념 이름)의 순서로 명명된다. 그런데 닭한마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처음 수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 수를 세던 방식에 머물러 있다. 그냥 ‘닭 한 마리’이다. 당신이 세 마리를 먹고 싶어 가게 직원에게 “닭 세 마리요!”라고 하면 식당 직원은 아마 당황할 것이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닭한마리 세 개요!”.
닭한마리가 갖는 의미
이렇게 단순하고 직선적인 이름이 붙은 과정이나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음식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단, 닭한마리라는 요리가 생겨날 당시 닭은 귀중한 음식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당시에는 더 비쌌다. 비싼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다니! 그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놀라운 축복이었다. 마치 미국인들이 칠면조 한 마리를 놓고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것이 깊은 의미를 담고 있듯이 말이다.
“닭을 통째로 먹는다고?’” 그 이름만으로도 손님들은 흥분했다. 이 요리가 퍼져 나갈 무렵, 한국의 양계산업은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식용을 위한 닭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닭을 한 마리나! 제공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한국인은 어떤 음식을 통째로 놓고 먹거나 제사상에 올려야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그런 전통이 닭한마리의 성공 요인에 투영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인은 프라이드치킨을 ‘통닭’이라고 부르는 문화가 있다. 만약에 그 닭이 조각조각 나뉘어 튀겨졌다고 해도 말이다. ‘통’은 원만하고 많은 것, 완벽한 것, 100퍼센트라는 의미가 있다. 더 좋은 대접, 만족감을 의미한다. 닭한마리라는 명명도 그런 의미를 같이 담고 있다. 닭 한 마리는 닭 반 마리의 두 배가 아니라 완전체를 상징한다.
서울의 역사가 담긴 맛
의류 상가가 즐비한 서울 동대문 뒷골목에는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된 닭한마리 골목이 있다. 이 골목에 간다면, 골목의 역사에 대해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본래 이 골목은 시장의 일부다. 서울은 조선시대에 수도가 되었는데, 광화문 앞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장이 있었다. 또한 지금의 닭한마리 골목 주변은 서울의 서민적인 동네로 번성했고, 시장이 생겨났는데 한국전쟁 이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큰 시장으로 확장되었다.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평화시장 등 서울의 주요한 시장이 자리 잡았다. 이 시장이 닭한마리의 인기에 큰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은 시민들이 장을 보는 곳인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의류 제조 종사자들은 저렴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거나 일 끝난 후 소주 한잔을 나눌 수 있는 술집을 찾게 되었다. 저렴한 가격, 충분한 양, 맛있는 음식, 여기에 ‘고기’가 들어간다면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음식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닭백숙을 팔던 집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칼국수와 떡, 야채 등의 사리를 제공하면서 닭 한 마리를 ‘풀 서비스로’ 즐길 수 있게 완성되었다는 설, 다른 하나는 닭칼국수를 팔던 집에서 저녁 술안주로 닭백숙을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특별한 양념을 내어놓은 것이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동대문 뒷골목 닭한마리 골목. 과거 시장 닭한마리를 먹기 위해 상인들과 직장인들이 모여들던 골목에는 최근 외국인도 모여들며 한국의 맛과 문화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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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부터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서울에는 시장의 상인들, 노동자들 외에 이른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도 늘어났다. 그들은 낮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면서 피로를 풀었다. 서울의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서 다니는 것은 당시의 새로운 문화였다. 그들은 저렴하면서 맛있는 술집을 넘어서는 어떤 재미를 갈구했는데, 닭한마리는 그런 니즈에 완벽한 메뉴나 다름없었다.
백숙이나 삼계탕처럼 닭을 삶아서 다른 그릇에 내는 게 아니라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찌그러진 양푼 냄비에 닭이 통째로 들어가고, 각자 입맛에 맞게 만든 양념에 닭고기를 찍어 먹으며 소주 한 잔 기울이는 행위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점차 닭한마리 골목엔 직장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드는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눈치 빠른 상인들은 서울의 다른 지역에도 닭한마리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사실 이 음식을 잘 모르는 한국인도 상당히 많다. 집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활동을 해보지 않은 어린이나 학생들, 혹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세월을 보낸 여자 노인들은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닭한마리 자체가 집밥의 카테고리에 속한 적이 없으며, 음식이 담겨 나오는 그릇도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육수나 양념장이 그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대체로 잘하는 가게에서 먹어야 맛있다는 인식이 강했으며, 드럼통 식탁에 빙 둘러앉아 팔팔 끓여가며 먹는 특유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사회생활을 하는 임금 노동자들이 먹기 시작한 요리라는 점도 한몫했다.
필자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가족을 부양하고 80세가 넘었는데, 이 요리의 이름조차 모른다. 이 원고를 쓰면서 혹시 이름을 들어보았냐 물었더니 엉뚱한 대답만 돌아왔다.
“왜 닭 한 마리를 굳이 돈 주고 가서 먹는다는 것이야? 그리고 두 마리를 먹으면 안돼?”
냄비에 담긴 즐거움
각종 채소와 집마다 비밀 레시피를 넣어 끓인 육수를 양푼 냄비에 담은 다음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는다. 닭은 어느 정도 익어 나오지만 떡, 대파, 감자, 버섯 등의 사리가 익을 때까지 펄펄 끓여야 한다. 닭에 알맞은 간이 배고 사리가 익을 때까지 사람들은 각자 입맛에 맞는 양념을 만든다.
양념은 간장, 식초, 겨자, 매운 다지기(여러 가지 재료를 다져서 만든 양념)를 섞어 만든다. 같은 재료인데도 맛은 천차만별이다. 닭이 익으면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뻑뻑했던 양념장은 국물과 고기의 수분이 섞여 점차 묽게 변한다. 다 먹어갈 때쯤이면 칼국수 사리를 넣어 익힌 후 묽어진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냄비에 양념과 김치를 넣어 얼큰 칼칼하게 끓여 먹어도 좋다.
닭고기를 먼저 건져 먹은 다음 남은 국물에 취향에 맞게 다지기와 칼국수 사리를 넣어 칼칼하게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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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냄비가 올려진 테이블에 둘러앉아 먹는 방식은 구성원들의 유대감을 높이고, 식당 직원들은 가능한 요리에 적게 개입하여 불필요한 인건비용을 줄이는 이중 효과가 발생한다. 한국 속담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러니까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소리다. 그래서 닭한마리는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요리는 조금은 거칠면서도 다정한 장소에서 먹어야 맛있다는 신념이 있어서다. 그리고 아마도 미쉐린 투스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닭한마리에 깃들어 있는 철학이자, 우리가 이 음식을 대하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오늘 중요한 거래처 접대가 있으니 닭한마리에 가자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닭한마리는 외국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맵지 않아서, 한국식 노포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도 이유겠지만, 서울이 어떻게 성장했고, 서울시민이 거친 노동에 견디며 성장하던 시기의 용광로 같던 시대의 산물을 체험해 보는 상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닭한마리는 서울의 다양한 사람들, 연인들,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복잡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서울의 사회적 문화재와 유산이 되었다. 어떤 음식이든 그 내부에는 역사적 나이테가 있게 마련이다. 아픈 기억과 즐거움이 공존한다. 그런 역사성을 우리가 알고 음식을 먹는다면 더 풍부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음식이란 결코 칼로리와 화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맛의 분자들, 물리적 촉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닭한마리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적절한 음식이다. 혼자서 이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친구들과 나누는 커다란 냄비 요리의 맛과 즐거움이 이 요리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