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각자(刻字)는 목판 인쇄와 현판 제작의 핵심 기술로 서체의 특성과 글 내용을 온전히 이해한 뒤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각자장의 기량은 각질의 흔적, 글자체의 균형도 등으로 평가된다. 김각한(Kim Gak-han, 金珏漢) 장인은 오랜 기간 작품 활동과 전승 활동을 펼친 노고를 인정받아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가 되었다.
각자장 김각한(Kim Gak-han, 金珏漢) 씨가 각자 작업 중인 모습. 그는 책판용으로 조직이 치밀하면서 적당히 단단한 산벚나무를 애용한다.
각자는 목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일을 말한다. 목판 인쇄물은 물론이고 건축물에 내거는 현판(懸板)도 각자를 통해 제작됐으니 역사가 오랜 기술이다. 각자의 기능을 가진 장인을 각자장이라고 한다. 2013년 각자장 보유자로 인정된 김각한은 방화로 소실됐던 숭례문(崇禮門) 현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의 목판본, 한국전쟁 때 불타 버린 『훈민정음 언해본(諺解本)』 등 굵직한 우리 문화재의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목공에서 각자로
단단한 목판에 글씨를 정교하게 새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 그가 사용하는 도구는 망치, 칼, 끌 등 30여 가지에 이른다.
장인의 출발은 목공예였다. 그는 1957년 경상북도 김천(金泉)에서 농사짓는 부모의 5남 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겨우 마쳤다. 6학년 때 부친이 사망하면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김천 시내 목공소에 다니며 소목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촌구석에 널린 게 나무였으니까요. 덕분에 일찌감치 나무를 다룰 줄 알았죠.”
학업에 대한 미련이 많았던 그는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면서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군 제대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종로 탑골공원 근처 목공예학원에 다녔다. 그러던 중 1983년 동덕(同德)미술관에서 열린 오옥진(吳玉鎭)의 전시회는 그의 인생을 단번에 바꿔 놓았다.
“그때 전통 각자를 처음 봤어요. 옛 서울의 지도 < 수선전도(首善全圖) > 를 복원한 것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죠. 곧바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선생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습니다.”그의 스승은 1996년 각자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첫 번째 보유자가 된 인물이었다. 김각한은 2005년 전승교육사가 되었고, 이후 문화재 복원과 전승 활동을 인정받아 8년 후 스승의 뒤를 이어 2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스승과의 만남이 목공에 머물 뻔했던 장인을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면, 서예가 박충식(朴忠植)은 그를 진정한 장인의 길로 이끌었다.
“각자를 배운 지 2년쯤 되니까 한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걸 절감하게 되더군요. 문자를 다루는 공예인 만큼 글과 글자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죠.”
그는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우기로 하고 아예 선생의 서실이 있던 방배동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 마련한 작은 공간이 지금의 공방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배움에 대한 갈증은 1992년 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 입학으로 이어졌다. 늦게 빠진 공부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었다. 일하며 공부하느라 6년 만에 졸업했지만 글공부는 지금도 놓지 않고 있다.
치목에서 인출까지
각자의 핵심은 새기는 일이지만, 그 시작과 끝은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적합한 나무를 구해 오랜 시간 건조시키며 삭이는 치목(治木) 과정이 중요하다.
“현판은 용도에 따라 돌배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씁니다. 하지만 책판용으로는 조직이 치밀하면서 적당히 단단한 산벚나무가 가장 적합하죠. 『팔만대장경』 목판의 수종을 분석해 보니 70% 이상이 산벚나무였습니다. 그러나 나무의 종류보다는 나무를 충분히 숙성시키는 작업이 더 중요합니다. 7~8년 이상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뭇결이 잘 삭아야 변형되지 않고 오래 보전할 수 있거든요.”
각자할 원고나 도안이 준비되면 나무를 적합한 크기로 잘라 대패질해서 다듬은 다음 풀칠을 하고 원고나 도안 종이를 붙인다. 인쇄를 목적으로 하는 목판은 좌우를 바꿔서 붙인다. 그런 다음 종이 두께의 절반가량을 손으로 비벼서 벗겨 내고 사포로 문질러 도안을 목판에 밀착시킨다. 그러고 나서 기름칠을 해 도안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데, 이를 배자(排字)라고 한다.
“배자에 사용하는 기름은 어떤 종류든 상관없지만 볶지 않고 생으로 착즙한 것을 써야 합니다. 볶은 기름은 굳어 버려서 글자를 새길 수가 없거든요.”
각자는 글자나 문양의 특징을 고려해 작업에 적합한 칼과 끌, 망치 등을 사용한다. 목판본처럼 좌우를 바꿔서 새기는 것을 반서각(反書刻), 공공건물이나 사찰 등의 현판과 같이 보이는 그대로 새기는 것을 정서각(正書刻)이라고 한다.
각자 작업이 끝나면 목판본의 경우 양옆에 손잡이와 통풍 기능을 겸하는 마구리를 만들어 끼운다. 그리고 각자한 나무판에 알맞은 농도의 먹물을 고르게 칠한 다음 인출할 종이를 덮고 밀대로 문질러 찍어 낸다. 현판의 경우 각자 후 채색해 완성한다.
서체에 대한 이해
김 장인이 책판을 인출(印出)한 뒤 각자가 잘되었는지 점검하고 있다. 각자장은 대량 인출이 필요한 서적을 만들기 위해 책판에 글자와 그림을 새기는 기술을 지닌 장인이다.
각자의 기법은 크게 음각(陰刻)과 양각(陽刻)으로 구분한다. 음각은 글자 자체를 파내는 기법으로 문자를 바탕면보다 깊게 파낸다. 양각은 글자 주변을 깎아내 입체적으로 돌출시키는 기법이다.
“각자의 기본은 음각인데 사실 그게 가장 어렵습니다. 그저 획을 따라서 새기면 무슨 글자인지 읽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서체를 보면 어떤 부분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어디는 힘을 뺐는데, 그런 디테일을 각자로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획에 힘이 들어간 곳은 더 깊고 넓게 파야 글자가 살죠. 완성했을 때 누구의 서체인지 알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한마디로 서체의 특징을 잘 알고 글의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많은 작품들에 둘러싸인 그에게도 전승에 대한 고민은 적지 않다.
“이 일만으로 생활이 어렵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배우려고 하질 않아요. 대부분 취미로 배우는 은퇴자들이죠.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마음을 비우게 됩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작품만 생각하려고요.”
아직 대표작이 나오지 않았다며 겸손해하는 장인은 우리 각자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낙관했다.
이기숙(Lee Gi-sook, 李基淑)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