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Kim Ju-hea 金宙慧) 저, 403쪽, 8.99파운드, 윈월드 출판사: 런던(2022)
운명의 씨실과 날실로 엮이다
김주혜의 첫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은 한국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시기를 관통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했던 엄마는 딸 옥희를 평양에 있는 기생집 은실에게 집안일을 거두며 품삯을 받는 식모로 팔았다. 이후 옥희는 은실의 사촌이자 기녀 단이가 있는 경성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기녀로 자란다. 한편, 시골 출신인 고아 남정호는 비밀스러운 가보 두 개만 몸에 지닌 채 돈을 벌기 위해 평양에서 경성으로 왔지만, 길거리 패거리와 어울리게 된다. 옥희와 정호는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이들의 삶이 아주 다른 궤도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실은 세월이 흐르는 내내 계속해서 둘을 엮는다. 이 실들은 마치 태피스트리(다채로운 염색사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의 생생한 가닥처럼 이야기 전체에 짜여 있다. 한국에서 실은 사람이나 사물들이 엮여 생기는 관계인 ‘인연’을 상징한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책 속의 인물들이 인연이라는 그물망 속에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사랑과 배려는 인연이 운명론으로 빠지지 않게 하고 오히려 따스한 위로의 빛, 즉 결국 모든 것이 옳을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소설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든 한국인의 조상인 단군신화든 정호 아버지에 대한 개인적인 신화이든 작품 속에서 신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실의 딸이자 옥희의 동료인 기녀 월향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자 단군 신화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대신, 신화에는 아이를 갖고자 하는 절박한 여성의 욕망에 대해서만 나오고 왜 아이를 원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서는 침묵하는지를 의아해한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신화를 문제시하는 그녀의 의문은 신화가 갖는 사회적 통제의 기능을 조명한다. 한편, 정호는 호랑이를 발견했지만,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던 말에 사냥을 포기한 그의 아버지와 호랑이에 대한 신화가 어느 정도는 상상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나중에 자신의 의심을 넘어서는 더 많은 진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장대한 역사적 서사와 많은 인물을 담은 소설은 감상주의로 빠질 수 있지만, 『작은 땅의 야수들』은 균형을 유지한다. 모든 인물은 진실하고 생생하게 묘사된다. 소설의 악인 중 가장 경멸을 받을 만한 인물조차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 역시 자신을 타인과 묶는 인연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다.
소설 앞부분에 기억할 만한 장면이 있는데, 옥희가 기녀 은실의 집에 남아 기녀 견습생이 되고 나서이다. 옥희는 아마도 가장 뛰어난 노래꾼은 아니지만 - 그녀의 친구 연화만큼 재능이 있지 않음은 확실하다 - 오리가 물을 좋아하듯 옥희는 시를 좋아한다. 그녀는 기녀가 되기 위해 아름다운 시 구절을 읽고 암송하던 훈련 중에 동료 견습생들이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고 무덤덤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시가라는 경이로운 세계에 입문하고 본능적으로 이에 영향을 받는다. “옥희는 특정한 단어들을 특정한 순서로 나열하면 자기 내면의 모습도 마치 가구를 옮기듯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한 마리 춤추는 나비처럼 언어 속을 누볐다”라고 작가는 썼다. 여기서 옥희를 통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작은 땅의 야수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질은 특정한 단어들을 특정한 순서로 배열하기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단어를 독자가 내면에서 재배열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음악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
『거의 모든 기쁨』
이소연(Lee So-youn 李昭延) 저, 채선이(Sunnie Chae 蔡仙伊) 번역, 89쪽, 9,500원, 아시아 출판사: 파주(2022)
시인이 경험한 세상
스무 편의 시를 모은 이소연의 시집에서 우리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초대된다. 이 세계에서는 지구와 모든 생명체, 그리고 모든 것에 깃든 생명의 잠재력과 연결되고픈 열망을 느끼게 한다. 이소연은 정원을 가꾸지는 않지만 여전히 씨앗을 믿는 시인으로, 씨앗처럼 땅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 시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여성들이 차별받는 세상에서 상처를 입은 그녀는 분노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랑과 희망으로 포용하기로 선택한 것은 흥미로운 접근이다.
작가는 책의 뒤쪽 노트에 “작가들마다 힘겹게 자기 세계를 견디고 있다.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라고 적었다. 이소연의 세계는 모든 것,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가 되는 세계이다. 그녀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 “시는 목적이 아니라 동력”일 뿐이다. 즉 시는 시인이 경험한 세상에서 생겨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시인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이 시집은 새로운 독자에게 그녀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그녀의 세계가 확장됨에 따라 우리의 세계도 확장된다.
‘스튜디오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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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 있는 한옥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선율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가 적절하게 이름 붙인 ‘스튜디오 기와’는 국내외의 음악인들을 초대해 서울의 남산골 한옥 마을에 있는 민 씨 가옥과 같은 한옥에서 연주하도록 한다. ‘기와’는 한옥의 지붕을 장식하는 검은색 타일이고 이 지붕 아래에서 스튜디오 기와는 현대와 고전의 음악인들을 포함해 다양한 예술가들을 집합시킨다. 피아니스트가 공연장에서 연주하거나 인디밴드가 떠들썩한 관객 앞 안개가 자욱한 무대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신기하게도 한옥의 단순한 우아함이 둘 모두에게 완벽한 무대가 된다. 오래된 나무 바닥과 서까래의 온기일까, 아니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의 잔잔한 아름다움 때문일까? 무슨 이유에서든 스튜디오 기와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독특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