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관련 콘텐츠가 시사 교양 영역으로 취급되던 과거와 달리 지금 우리는 건축을 탐구하거나 의뢰인의 의도에 맞는 집을 찾아 중개하는 예능 방송을 즐기며, 애플리케이션으로 남의 집을 구경하면서 동시에 인테리어 쇼핑을 즐긴다. 건축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건축을 대하는 대중의 인식이 달라졌으며 건축 관련 콘텐츠를 일상의 문화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관람객이 오픈하우스서울 2020에 참여한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있는 수곡리 땅집을 둘러보고 있다. 한국의 유명 건축가 조병수가 설계한 이 집은 땅 속에 박혀 있는 모습으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尹東柱 1917~1945)의 하늘과 땅과 별을 기리는 집이다.
ⓒ 오픈하우스서울
건축은 딱딱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음악이나 문학처럼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도 없고, 한 끼 좋은 식사를 하는 것처럼 조금 욕심을 낸다고 내 것이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부족한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획일적인 주택을 대량 공급했던 한국의 시대적인 배경 탓에, 건축을 문화예술의 관점에서 어떻게 살펴보고 감상해야 하는 지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과 이해 자체가 부재했다.
건축, 내 것처럼 즐기기
‘오픈하우스서울’은 도시를 둘러싼 환경, 건축, 장소와 예술을 담은 공간을 개방하고 발견하는 도시건축축제이다. 사진 속 공간은 ‘오픈하우스서울 2019’에 참여한 소설호텔로, 객실마다 개성을 부여해 여행자가 다양한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 이강석(오픈하우스서울 제공)
건축물은 해당 장소를 직접 방문해야만 볼 수 있고, 사유지는 입장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지난 2017년 tvN에서 방영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2 > 은 이러한 건축의 한계를 깼다. 국내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문학, 미식,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건축, 도시 등의 이야기를 엮어 내고 독특한 시각에서 건축을 재해석해 젊은 세대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이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유현준 건축가는 유튜브 채널 개설 1년 만에 구독자 74만 명을 넘기며 건축도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EBS< 건축탐구-집 > 이나 MBC< 구해줘! 홈즈 >역시 높은 시청률을 바탕으로 시즌을 거듭하면서 하나의 방송 장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와 함께 평소 방문이 어려운 건축물을 한시적으로 개방해 건축의 문턱을 낮춘< 오픈하우스서울 >역시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한 사례다. 서양에서 일반인에게 건축물을 개방하는 축제에서 영감을 받은 임진영 건축 저널리스트가 2014년 서울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매해 온라인 예약 오픈과 동시에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프로그램에서는 주택, 사옥, 문화 공간, 종교 공간, 문화재, 공장 등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건축 유형을 다루며, 해당 건축에 참여한 건축가와 시민의 만남을 주선해 건축과 도시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현시점에서 건축의 직접 경험이 음악, 패션, 미술보다 시대적인 대세라 할 수 있는 이유는 시각 정보 전달 중심인 SNS를 통해 유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특정 공간을 누가 설계했는지까지(특정 공간의 건축가까지) 파악하려는 태도이다. 건축가의 이름이 대중이 선택하는 브랜드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증 문화는 한 때의 유행처럼 경쟁적으로 장소를 소비하려는 가벼운 행태로 건축에 접근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실제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있는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프로젝트 의뢰가 이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포토제닉을 넘어서 이제는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이미지를 의도해 설계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이라는 신조어가 캠브리지 영어사전에 등록될 정도로 무시 못 할 현상으로 자리 잡은 탓이다.
동네의 재발견
‘서교근생’은 상가 또는 가게라 불리는 한국의 근린생활시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어닝을 장식과 상징 요소로 사용해 건물에 캐릭터를 부여했다.
ⓒ 진효숙
최근 30~40대 젊은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지역성, 한국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K-00’로 대표되는 수식이 해외 미디어가 아니라 건축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미디어의 발달과 해외 건축 답사를 통해 일찍이 서양 건축을 배우고, 이를 자신들의 디자인에 참고 대상으로 삼았던 세대이다. 그러다 본인의 사무소를 열고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건물을 짓는 풍토가 서양과는 다르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기후, 재료, 사업비, 취향, 문화적 배경, 법 조항 등 많은 것이 달랐다. 이들은 ‘지금’,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그 결과 이전에는 고등 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이 부정하고 무시했던 1970~8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다세대-다가구 건축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과 갈색 새시, 은색 대문으로 대표되는 건축 유형은 문화유산이나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고급 건축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이 사는 곳이다. 하나의 설계 도면으로 도장 찍듯 복제했다는 비판이 과거의 시각이라면, 이제는 어찌 됐든 이것 또한 우리의 자산이며 아파트 재개발로 동네가 사라지는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공동의 기억이라는 입장이다. 비록 예술적 기교 없이 마구 지어진 건축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건물을 짓는 인부들이 자발적으로 시도한 즉흥적인 디자인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구현된 현장의 즉흥적인 창작에서 건축가들은 매력을 느끼고 이를 응용하고 있다.
권태훈 건축가의 『파사드 서울』, 『빌라 샷시』와 같이 무명의 건축을 정교한 드로잉으로 기록한 책이 대표적이다. 또 일반 점포의 천막 차양(awning)을 콘크리트로 재해석한 서재원 건축가의 임대 근생 건축물인 ‘서교 근생’이나 현대식 건축에 기와지붕을 얹은 김효영 건축가의 ‘점촌 기와올린집(Gi-Wa House, Jeomchon)’, 담대한 아치가 돋보이는 김현대+텍토닉스 랩의 ‘청운동 주택’ 역시 한국 근현대사와 한국적 건축 특징을 적용한 대표 사례이다. 이들뿐 아니라 요즘 지어진 수많은 건축물이 벽돌로 마감했다는 점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실용을 중시하는 세대
둥그런 원을 절반씩 잘라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아치형의 파사드를 이용한 ‘청운동 주택’ 역시 한국 근현대사와 한국적 건축 특징을 적용한 사례로 장엄하지만 포근한 느낌을 준다.
ⓒ 텍토닉스랩
집을 사는 것(buy)으로 생각했던 과거에 개인 주택에서 자랑할만한 요소는 큰 창과 수입 자재로 마감한 세련된 인테리어, 돋보이는 형태처럼 주로 시각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이 비싼 상품이라면 돈을 지불하는 만큼 높은 품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용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이들은 친환경 공법, 빠른 시공, 에너지 효율, 공기 질과 같이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기꺼이 비용을 들인다.
한국의 주거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기후 특성상 수시로 창문을 열기 어렵다. 또한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게 단열에 신경 쓰는 만큼 실내 공기를 가둔 상태에서 쾌적함을 유지해야 한다. 기밀성, 에너지, 공기 질과 같이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를 근거로 원하는 성능의 집을 구매하는 소비자 역시 늘고 있다.
코로나와 같은 대규모 질병, 극심한 기후 변화, 장기 불황으로 인해 불투명한 미래, 전기차의 등장, 4차 산업혁명 등 우리가 이미 겪고 있는 다양한 현실의 문제들은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곧 건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또한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