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많이 줄긴 했으나,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에 등록된 당구장은 15,845개이다. 9,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년에 한 번 이상 당구를 치는 남성은 12.5%로, 1,125명(복수 응답)에 달한다. 주로 남성들이 취미나 운동 또는 친목을 목적으로 찾는 당구장. 이곳에서 당구가 아닌 서비스를 판다는 김만연(金萬演 Kim Man-youn) 씨는 오늘도 고객을 향해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30년 동안 회사에 다니다 퇴직 후 당구장 주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만연 씨. 그는 고객에게 마음을 다하는 서비스가 늘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인정전(仁政殿) 동행각(東行閣)에 옥돌대 2대가 놓여 있어 때때로 대신들과 큐대를 잡았다.’
인정전은 창덕궁(昌德宮)의 정전(正殿)이고 옥돌대는 당구대이다. ‘대신들과 큐대를 잡은’ 인물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으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을 ‘옥돌(당구)의 날’로 정할 정도로 당구를 즐겼다고 한다.
위의 기록은 순종의 장례식을 담은 사진첩 『순종 국장록(純宗國葬錄)』에 실려 있는데, 순종이 서거한 해는 1926년이다. 1884년 미국 선교사가 제물포에 당구대를 처음 설치했으며 당구가 왕실에 들어온 것은 1909년이고, 순종이 궁에서 당구를 즐길 당시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당구장들도 성업 중이었다. 한국인이 개업한 최초의 당구장 무궁헌은 1924년에 문을 열었는데 상류층 사람들의 유흥장이자 사교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마음을 전하는 인사
서울특별시 구로구 디지털단지 골목으로 접어들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당구장 간판들을 볼 수 있다. 금요일 오후 4시, ‘다빈치 당구장’의 문을 열자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즐거운 탄성이 터져 나온다.
막 출근한 당구장 주인 김만연 씨는 테이블을 돌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중이다.
“이 지역은 건물마다 당구장이 하나씩 있어요. 손님들을 우리 당구장으로 오게 하려면 뭔가 달라야죠. 가장 반응이 좋은 게 인사예요. 한 바퀴 돌면서 ‘오셨습니까’, ‘뭐 필요한 거 없습니까’라고 인사도 건네고 농담도 주고받고요. 당구장이 뭘 파는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난데없이 질문이 기자에게 날아온다. “서비스인가요?”라는 대답이 몹시 반가운 눈치다. “맞아요. 서비스업종이에요. 당구를 파는 건 당구 선수들이죠. 서비스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니까 사장이나 매니저가 늘 자리를 지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손님들이 뭔가를 요구하기 전에 미리 드려야죠.”
김 씨는 오후 4시에 출근하여 저녁 10시에 야간 근무자가 오면 퇴근한다. 이때도 역시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악수, 하이 파이브 등 스킨십도 하고 눈도장도 찍는다. “직원이 새로 오면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게 인사하는 법이에요. 상대에게 존중의 마음을 실어 예를 표하는 게 인사잖아요. 그게 서비스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당구장을 차리기 전, 그는 3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했다. 대기업 기획조정실에서 고객 만족 업무를 주로 했기 때문에 ‘서비스’에 예민하다.
퇴직 후 찾은 제2의 직업
“한 직장에서 30년을 근무하고 2012년에 퇴직했어요. 두 달쯤 쉬었는데 평생 일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쉬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뭐라도 해볼까, 뭘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들한테 물었는데 둘째 딸이 ‘아빠는 뭘 잘해?’라고 묻더라고요. 클래식 기타, 골프, 볼링, 바둑, 당구 다 잘한다고 했더니 그중 당구가 제일 좋을 것 같대요. 놀면서 그냥 하라고. 당구 칠 줄은 알지만 운영은 모르니까 서점 가서 책을 한 권 샀어요.”
『당구장이나 해볼까』라는 책 속에 한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책 속에 ‘200은 흥하고 1,000은 망한다’는 말이 있었어요. 당구 200점을 치면 손님한테 서비스를 열심히 하지만 1,000점을 치면 손님을 가르치려 하기 때문에 망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김 씨는 1,000점(4구 당구 기준)을 친다. 웬만한 프로선수의 실력이다. ‘가르치려 들면 안 되는구나!’라고 다짐하고 당구장을 인수했다. 이것저것 배워가며 슬슬 재미를 붙일 무렵, 옆 당구장이 시설과 서비스가 더 좋다고 꼬셔서 단골 고객을 빼앗아 가는 사기꾼에게 호되게 당했다. 찾는 이가 줄자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임대료도 못 내는 지경에 이른 김 씨는 ‘손님을 가르쳐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 유명 당구 동호회에 『당구란 수학과 물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식을 배우고 대학에 들어가면 공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우죠. 기존 당구 입문서에는 공식만 나와 있어요. 그걸 그대로 외우면 금방 잊어버려요. 원리를 이해하면 창의력이 생기죠. 저는 거기에 중점을 두었어요. 꼬박 일 년을 써서 한 장 한 장 프린트해서 손님들에게 나눠줬어요.”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적자는 여전했다. 그만 가게를 닫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잘 알고 지내던 국가대표 프로 당구선수가 서울시 구로구에 있는 디지털단지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구로공단 자리에 새로 조성된 디지털단지는 IT기업들이 즐비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사회 초년생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유동 인구가 많아 하루 24시간 북적거린다.“저녁 여섯 시쯤 와보니 사람들이 지하철역까지 줄을 서서 행렬하듯 퇴근을 하는 거예요. 두 번째 와서 계약했어요.”
첫 번째 당구장을 2년 만에 정리하고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게 8년 전이다. 363㎡ 크기에 16대의 당구대가 있다. 한 달 임대료가 1,000만 원이고 첫날 매상은 30만 원이었는데 보름도 안 되어 100만 원을 넘어섰다. 한 해 동안 번 돈의 10%는 재투자해 당구대와 설비 등을 바꾸어나갔다. 아침 열 시부터 다음 날 새벽 두 시까지 영업하는데 손님이 있으면 새벽 다섯 시에 문을 닫기도 한다. 낮에는 은퇴 후 여가생활을 즐기는 60대들이 주를 이루고 퇴근 시간이 지나면 30~50대 회사원들로 북적인다. 새벽 시간에는 10~20대들이 자리를 채운다.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손님들이 그의 당구장을 찾는다.
김만연 씨에게 당구는 오락문화를 넘어 과학이다. 그는 직접 쓴 책을 통해 ‘당구는 뉴턴의 운동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물리학이며, 움직이는 각도는 수학’이라고 말한다.
낮에는 여가생활을 즐기는 60대가, 퇴근 시간 이후에는 회사원들이, 새벽에는 젊은이들로 당구장은 매일 북적인다.
손님을 부르는 남다른 서비스
김 씨가 당구를 처음 배운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학원에 다닐 때였다. 처음부터 잘 쳤냐고 묻자 ‘왕도는 없어요, 연구와 노력의 대가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1974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때만 해도 오락문화가 별로 없었어요. 바둑 아니면 당구 정도였죠. 10년 전쯤 당구 중계를 해주는 채널이 생기면서 당구를 즐기는 사람이 많이 늘었어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당구가 스포츠로 인정되었고 유흥장이었던 당구장이 스포츠시설이 되었죠.”
당구를 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여 당구장도 엄청난 기세로 늘어났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창업하는 ‘시니어 창업’이 급증한 것도 한몫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60세 이상의 시니어 창업자 6명 중 5명은 폐업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앉아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으면 좋지요. 그런데 우리 당구장은 당구대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쾌적하진 않아요. 그 대신 좋은 시설을 갖추려고 애를 많이 쓰죠. 당구대마다 VAR(Video Assistant Referees)을 설치해서 게임을 하다가 시비가 붙으면 비디오로 확인할 수 있어요. 오후 여섯 시까지는 11,000원을 내면 무제한 당구를 칠 수 있고요. 한 시간에 한 번 음료수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면서 ‘뭘 좀 도와드릴까요?’ 물어요. 벽에는 시계도 걸지 않았어요. 뭔가 붙어 있으면 보게 되고 글씨가 있으면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주의가 흩어지니까요. 콜벨도 없어요. 부르기 전에 먼저 가서 서비스를 하겠다는 거죠.”
‘나이 들어 은퇴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 가장 가성비가 좋은 것이 당구’라고 김 씨는 말한다. 비용이 적게 들고 두뇌를 쓰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도 좋다. 김 씨가 쓴 당구 칼럼은 책으로 엮여 나와 당구인들 사이에서 제법 소문이 났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개인 레슨도 하고 있다.
‘당구는 뉴턴의 운동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물리학이며, 움직이는 각도는 수학입니다.’ 표지에 쓰인 문구다. 책장을 넘기자 그림과 함께 루트가 나오고 피타고라스 방정식이 나온다. 공식을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한 사람들의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이 만만치 않다.
당구는 물론이고 골프, 클래식 기타, 포커, 바둑까지 단순한 아마추어 이상의 실력을 갖추었는데 그걸로도 모자라 요즘 김 씨는 산악자전거에 빠져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출근하고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 자전거로 산을 탄다.
“늦둥이 막내아들이 결혼식을 올릴 때, 클래식 기타로 축하 연주를 해주는 게 제 꿈입니다. 은퇴 후의 삶이니 가급적 즐겁게 살아야죠.”
30년의 직장생활 끝에 ‘당구장이나 해볼까’ 하고 시작한 일이 삶의 새로운 에너지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이 여전히 잔뜩 남아 있는 제2의 인생이다.
그의 당구장엔 여유롭게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은 적지만, 세심하게 관리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시설이 있고, 손님이 부르기 전에 먼저 찾아가는 서비스가 있다.
황경신(Hwang Kyung-shin 黃景信)작가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