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대전광역시는 중심에 있다. 위에서 내려오거나 아래에서 올라가도 그렇다. 게다가 주요 고속도로와 철도 노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부터 지금까지 대전은 한반도 교통의 길목이자, 중심에 있다.
ⓒ 대전관광공사
편리한 교통 입지는 이곳에 한국 최대의 과학연구단지가 자리잡는 계기로 작용했다. 인재를 모으는 데 유리하고, 여러 지역의 공업단지와 연계하기 좋으며, 근처 금강(錦江)에서 용수를 끌어다 쓰기에도 좋은 입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선 것이 1970년대 초반 첫 삽을 뜬 대덕(大德)연구단지, 지금의 대덕연구개발특구(INNOPOLIS DAEDEOK)다.
한국 최대 과학의 도시
1984년에 설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한국 과학 발전의 초석 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한 1993년에 개최된 대전엑스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대전하면 과학’을 떠올리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대전엑스포에는 세계 108개국, 33개 국제기구, 국내 200여 개 기업이 참가해 88서울올림픽만큼이나 성대하게 치뤄졌다. 당시 학생이었다면 학교단체여행으로 대전엑스포를 방문한 덕에 대전엑스포 ‘꿈돌이’는 한때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대전 도심을 가로지르는 갑천 위의 엑스포다리는 당시의 추억을 여전히 전하고 있으며,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엑스포 과학공원은 대전시민들의 쉼터로, 엑스포 한빛탑은 야경 명소로 인기다.
대전엑스포93 기념관과 엑스포과학공원의 상징인 한빛탑, 물빛광장 음악분수 등이 있는 엑스포과학공원은 대전 시민의 휴식처이자 야경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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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말 기준, 현재 대덕에 위치한 연구기관 및 기업은 2,397개에 이르며, 국내외 특허 출원 건수만 119,683건에 달한다. 대덕연구개발특구는 한국 과학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구심점이자 이러한 과학 발전은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에서 과학을 어렵지 않게 경험하고 싶다면 대덕연구개발특구 한복판에 자리한 국립중앙과학관을 방문하면 된다.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를 실물 크기로 전시한 모형이 방문객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고, 로봇으로 재탄생한 대전 과학 엑스포의 마스코트였던 꿈돌이를 만나볼 수 있는 등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과학이 즐거운 놀이가 되는 국립중앙과학관. 이곳에는 자연사, 인류, 천체, 과학기술,미래기술 등 과학을 흥미롭게 풀어낸 공간이 많다.
밀가루가 낳은 새로운 음식문화
대전의 음식문화는 밀가루와 함께 탄생하고 발전해왔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한국 기후의 한계 탓에 메밀가루나 칡전분만이 이 땅에서 면을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이(唯二)한 재료였다. 그런데 밀가루라는 새로운 식재료가 출현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전 국토가 파괴되어 주식인 쌀이 매우 부족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미국이 원조한 밀이나 옥수수 등으로 만든 식량을 섞는 혼분식(混粉食)을 장려했다. 애초 쌀로 만드는 음식일지라도 무조건 밀가루로 만든 재료를 섞도록 했다. 한국내 어느 식당에서든 설렁탕이나 돼지국밥 등을 주문하면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함께 말아져 나오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흔적이다.
대전이 예부터 밀가루와 관련된 음식이 발전한 것은 부산항이나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미국산 밀을 제분해 전국으로 배송할 때 중간보관소 및 분기점 역할을 했던 교통 요지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1960~1970년대 대전 서쪽의 서해안 간척사업 당시에는 노임을 미국이 원조한 밀가루로 지급했다. 그 밀가루를 현금으로 바꿔주던 교환장이 대전에 들어선 것도 한몫했다.
이처럼 풍성한 밀가루 공급으로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꽃피웠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칼국수다. 칼국수는 익반죽해 썬 밀가루 면을 숙성 과정 없이 해산물, 또는 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채소와 함께 끓여 먹는 음식이다. 특히 육수와 고명, 면 굵기 등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칼국수가 최초로 탄생한 곳이 바로 대전이었다. 누가 최초로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1960년대 들어 각종 미디어에 전국 최초로‘대전 칼국수’라는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 명성을 뽐내듯 2023년 말 기준 대전에는 칼국수 전문점이 무려 727개에 달한다. 이는 인구 1만 명당 5개 꼴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다. 이와 같은 대전의 칼국수 자부심은 2017년 이래 매년 10월마다 열리는 대전칼국수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칼국수가 최초로 탄생한 대전에는 다양한 칼국수 전문점이 있다. 사진은 사골과 멸치육수를 베이스로 한 칼국수이다.
대전을 대표하는 베이커리
대전을 대표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2023년 연매출만 1,243억에 순이익 315억 원으로, 단일 베이커리로는 세계 최상급 실적을 쌓아가고 있는 성심당(聖心堂)이다.
성심당이 문을 연 것 역시 미국으로부터 밀 원조가 들어오기 시작한 1956년이었다. 앞서 1950년 벌어진 한국전쟁 당시 극적으로 월남한 이들 중에는 지금의 성심당을 창업한 부부도 있었다. 부부는 훗날 대전에 정착했는데, 당시 가톨릭 신부로부터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아 찐빵을 만들어 판 것이 성심당의 출발이 되었다.
전쟁의 포연을 헤치고 창업한 빵집 답게 이들 눈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남달리 보였다 한다. 팔고 남은 빵을 빈곤에 허덕이던 이들에게 매일 같이 베풀기 시작했다. 창업 이래 7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남는 빵을 복지관에 기부하며, 기부할 빵이 부족하면 새로 만들기까지 할 정도다. 제품 개발에도 열심이다. 단팥빵의 달콤함과 소보로의 고소한 맛, 그리고 도너츠의 바삭한 느낌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튀김소보로 등 이전에 없던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이 튀김소보로는 성심당을 대표하는 빵 중 하나로, 현재까지 무려 8천만 개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만약 대전 시내를 걷다가 수십 미터, 때로 수백 미터의 줄을 발견한다면 십중팔구 성심당 매장일 확률이 크다. 성심당 매장은 대전에만 있어 빵과 케이크를 맛보기 위해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무조건 대전으로 가야만 한다. 이 때문에 빵을 좋아하는 이른바 빵순이들의 퀵턴여행(바로 돌아오는 여행, 즉 짧은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 최대의 칼국수 식당 수와 성심당 밖의 기나긴 대기 행렬은 절박했던 한국인들을 구제해낸 그 옛날의 밀가루가 이제는 ‘노맛 도시’ 대전을 ‘꿀맛 도시’로 재탄생시켰음을 증명하는 풍경이다. 오는 9월 28일부터 이틀 간 열릴 예정인 대전빵축제에서 대전 사람들의 이른바 ‘빵부심’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의 명물인 성심당. 제철 과일이 산처럼 쌓인 시루케이크, 시그너처 빵 등을 구입하려 매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이렇다 할 대표 관광지가 없어 그 동안 ‘노잼 도시’로 알려졌던 대전은 최근‘유잼 도시’로 변신하고 있다. 예컨대 20세기 초반부터 철도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살았던 소제동 관사촌은 맛과 멋이 즐비한 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본래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은 아니었다. 전쟁과 신도시 개발로 소외된 이래 빈집만 2천 채가 넘는 곳이었다. 변화의 움직임은 2010년 한 예술가가 옛 철도원 관사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시작되었다. 대전에서 유일하게 근대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 지역의 가치에 주목한 것이다.
연극제와 노래자랑 등 예술 활동을 진행하면서 과거에 머물러 있던 관사들이 하나둘 갤러리나 카페, 레스토랑 등으로 바뀌어갔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겉모습은 언뜻 낡고 허술해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울창한 대숲을 대문으로 삼은 카페부터, 온천탕을 옮겨온 것 같은 정원이 인상적인 레스토랑까지, 독특한 아이디어와 현대적인 디자인이 더해져 다른 지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경관이 펼쳐진다.
이와 비슷한 공간인 테미오래도 있다. 1930년대 대전 원도심에 만들어진 근대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옛 충남도지사 공간을 비롯한 9개 관사를 활용해 대전의 근대 역사와 문화, 예술 전시를 볼 수 있는 복합문화 예술공간이다.
소제동에 있는 옛 관사촌의 원형을 살려 만든 카페거리. 외관을 비롯해 지붕, 천장, 기둥 등 핵심 구조물은 그대로지만 각 스폿마다 색다른 개성과 취향으로 꾸며져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문화와 어우러진 대전
대전이 단순히 교통 요지이자 맛있는 먹거리만 많은 곳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문화적 향취와 자연의 깊이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곳이 대전이다.
먼저 대전 도심에 자리한 전국 최대의 도심 속 수목원인 한밭수목원을 빼놓을 수 없다. 방문객들은 울창한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거나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수목원은 이응노(李應魯; LEE, Eung-no; 1904-1989) 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과도 접해있다. 그 중에서도 이응노 미술관은 『문자추상(文字抽象)』과 『군상(群像)』 연작 등 한국화를 기반으로 서양의 추상화를 동양 서예로 녹여내며 독특한 미술세계를 만들어간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응노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유독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그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던 당시의 나이가 50대 중반이었다는 점이다. 명성과 부에 안주하며 살 수 있었음에도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스스로 나아갔다.
더욱이 1960년대 후반 한국내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고초를 겪었음에도 그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대전교도소 등에 수감돼 있는 중에도 밥풀 등을 이용해 3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오히려 국경과 민족을 뛰어넘는 예술의 가치와 위대함을 찾아 더욱 열정적으로 그렸다.
그 중에서도 1970년대 후반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군상(群像)』 연작은 당시 한국은 물론 전세계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서로 다른 수많은 자유분방한 개인들이 모여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그림에서 한국인들은 오늘의 민주화된 한국을 만들어낸 에너지를 읽어냈다.
시민을 위한 지역 대표 미술관이자 이응노(Lee Ungno) 화백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이응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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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인 개입과 노력 속에서 노맛에서 꿀맛, 노잼에서 유잼으로 이미지 자체가 바꾸어가고 있는 대전은 언뜻 보면 밋밋할 것 같지만 과학, 문화, 근현대, 예술, 자연 등 여행의 목적에 따라 스팟들이 즐비한 곳. 그렇기에 대전은 하루이틀만에 둘러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대전의 옛 지명이 크고 너른 평야를 뜻하는 ‘한밭’인 것처럼 대전을 여행한다면 그날의 여행 주제를 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전을 여행할 수 있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메타세쿼이아 숲이 울창하게 형성되어 있어 이국적인 경관 더불어 산림욕을 즐기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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