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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 more

2022 SUMMER

Books & More

『저주 토끼(Cursed Bunny) 』

정보라 작, 안톤 허 번역, 256쪽, 10.99 파운드, 스톡포트: 혼포드 스타(2021)

귀신이 출몰하는 이야기 모음집

『저주 토끼』는 영어로 번역 출간된 정보라 작가의 첫 단편집이다.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이 작품집에는 열 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으며 호러, 판타지, 그리고 공상 과학 등 장르의 경계를 유쾌하게 넘나든다. 영문으로 번역된 책은 “머리”와 “몸하다”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이야기 배경이 매우 익숙한 세계처럼 보이지만 여자 주인공들이 자신의 몸에서 시작된 호러 경험에 대응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세상이 뭔가 잘못되었음이 드러난다. 인물들의 걱정은 충분히 공감되지만 세상은 이들의 반응을 무관심과 경멸로 대한다.

“즐거운 나의 집”과 “재회”는 비슷하게 마술적 리얼리즘을 배경으로 세상은 죽은 자들의 영혼으로 가득하다는 전제가 있다. 영혼들은 비극적인 과거를 상기시키고 주인공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차가운 손가락” 또한 유령 이야기이지만 주인공을 둘러싼 어둠은 실제로 독자들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마지막까지 알 수 없게 한다.

표제작 역시 만만치 않다. 탐욕과 복수의 이야기인 “저주 토끼”에서 무서운 저주를 가져오는 집착은 이에 넋을 잃은 모든 이들을 삼켜버린다. “덫”은 전래 동화의 틀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를 현재의 시간에서 멀어지도록 하는데, 덫에 걸린 동물이 자신을 살려준 대가로 사례를 하는 고전 이야기를 살짝 비튼다. 욕심 때문에 참새에게 상처를 입히는 잔인한 놀부나 탐욕스러운 구미호 같은 한국의 전통 설화를 떠올리게 한다.

단편집에서 가장 긴 작품인 “흉터” 역시 전설과 우화로부터 시작된 듯하다. 독자에게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도록 초대하는 이 이야기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이 왜 고통과 공포에 시달려왔는지를 알게 만든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는 신화적인 성격을 갖는데, 인물들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분투한다. 이야기는 ‘고통을 겪는 처녀’라는 주제의 반전을 보여준다. 용감한 공주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싸움에 나서는 것이다. “안녕, 내 사랑”은 앞서 말한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데 왜냐하면 이 작품집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사이언스 픽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포스트휴먼의 미래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천착하게 한다. 아시모프가 상기되는 부분들이 있고, 감정으로 격앙된 서사가 만들어내는 가슴 아픈 이야기는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도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책에 실린 단편들의 장르와 주제가 다양하고 폭넓은 것 같지만 모든 단편엔 공통된 요소가 있다. 인간의 몸은 종종 부담되는 것으로 묘사되면서 속세의 번뇌를 담고 사회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그릇이라는 점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탐욕과 그에 따른 결과 역시 또 다른 공통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단순히 도덕적이지는 않다. 유령은 몇몇 이야기에 등장하지만 흥미롭게도 그 자체가 두려움과 공포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차가운 손가락”은 예외다). 대신에 “저주 토끼”에서처럼 유령은 우리가 세상과 연결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고, 이 연결점은 너무나 강렬해서 그 본질은 신체를 벗어난 후에도 남아 있다. 공포는 괴이하고 초자연적인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아주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것, 즉 잘못된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 안에 내재한다. 정보라의 글은 이 자연적인 것에 거울을 갖다 대고 인간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간성의 가장 불안한 면모를 직면하게 만든다. 책을 다 읽고 전등을 끄고 나서도 소설을 통해 일견한 인간성의 면모가 어둠 속에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차가운 사탕들(Cold Candies)』

이영주 작, 김재 번역, 86쪽, 16달러, 보스턴: 블랙 오션(2021)

삶의 조각들을 맞추다

『차가운 사탕들』은 이영주 시인이 20년간 쓴 작품들 중 선정된 시들로 처음 영어권에 소개됐다. 책에 실린 시는 서사와 서정의 경계에 걸쳐 있으면서 짧은 이야기나 이야기의 단편을 암시적인 언어로 요약한다. 책을 읽다 보면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느낌인데, 쪼개진 생각과 기억, 그리고 감정이 빛이 통과하면 어슴푸레 빛나는 조각들이 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페인트를 가지고 그랬듯이 작가는 단어를 가지고 놀면서 답이 있는 해석에 대한 분명한 선 긋기를 거부한다. 단어들이 우리 머릿속을 흠뻑 적시면 그제야 이미지가 분명해진다. 하지만 역설적인 장면들에서도 분명히 눈에 보이는 주제가 있다. 죽음은 도처에 있고 자연스러운 결과인 부패와 함께한다. 그렇지만 부패의 달콤하고 퀴퀴한 냄새는 생명의 순환으로 이해된다.

액체들이 강처럼 시를 통과해 흐른다. 여러 형태를 띤 물, 눈물, 피, 오줌 같은 육체의 액체들. 몸은 그 자체가 고통의 원천이지만 무언가가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토지이기도 하다. 한 소녀의 등에서 솟아나 초승달이 되는 뼈처럼, 또는 부패되어 신비롭고 서로 연결된 생명으로 꽃을 피우는 버섯들처럼. 시집의 끝에 다다르면 마지막 시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변용한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생각한 것의 결과이다. 『차가운 사탕들』은 실제로 ‘무엇 되기’로 갈 수 있는 많은 길을 보여주고 있다.

『공성계(World without Sound, 空聲界)』

임희윤(Lim Hee-yun 林熙潤)/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삐리뿌(BBIRIBBOO), EP 앨범, 멜론‧애플뮤직‧유튜브 등에서 무료 스트리밍, 서울: 카이오스(CAIOS) [2022]

소리를 비운 세계

앨범 제목 ‘공성계’는 소리를 비운 세계라는 뜻으로 국악 퓨전 그룹 삐리뿌가 만든 단어이다. 이들이 올해 초 낸 첫 번째 앨범은 가상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린다. 네 개의 연주곡이 기승전결로 펼쳐지는 음악적 소설이다. 이 그룹은 권솔지(Kwon Sol-ji), 손새하(Son Sae-ha) 두 명의 피리 연주자와 베이시스트 겸 프로듀서인 히븐(Heven)으로 구성됐다. 여느 피리 연주자들처럼 이들도 곡에 따라 태평소나 생황을 연주한다.

첫 곡 는 앨범 전체의 백미이자 음악계에 삐리뿌의 등장을 알리는 출정가다. 조선 시대 군악대의 행진곡인 <대취타>를 태평소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재해석했다. 시작은 다크 앰비언트(Dark Ambient) 장르를 연상케 하는 어둡고 축축한 전자음이 광막한 행성 간 공간을 먹붓처럼 까맣게 그려 낸다. 이어 로켓처럼 분출하는 두 대의 태평소 소리가 들린다. 긴박감 있는 하이햇과 베이스 비트가 채찍처럼 날뛴다. 태평소는 유니슨(unison)과 하모니를 오가며 UFO처럼 분화한다. 뒷부분에 등장하는 육성은 우주적 울림으로 변형돼 원곡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은는이(Eunneuny)>는 힐링 음악으로 재조명받는 앰비언트 음악의 자장 안에 있다. 장조의 영롱한 선율과 화성이 만들어 낸 고요한 심해의 물결 사이로 두 대의 피리 소리가 신비한 해파리처럼 유영한다. 는 조선 시대 궁중과 상류층에서 즐기던 모음곡 <천년만세(Celebrating Eternity [Cheonnyeon Manse])> 중 <양청도드리(Yangcheong Dodeuri)>의 선율을 변주했다. 펑키한 베이스 라인과 비트가 어우러진 유일한 댄스곡이다. 전통 국악기 중 유일한 화성 악기인 생황이 중반에 등장해 음색의 매력을 뽐낸다. 마지막 곡 는 종묘제례악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대취타를 앞세워 호기롭게 출발한 긴 항해가 마침내 이상향의 평화로운 정경에 도달한다.

이 데뷔 앨범은 이들의 음악 여정에서 인상적인 서곡(序曲)이 될 것이다. 단, 앞으로 갈 길은 험난해 보인다. 이미 한국 전통 악기를 록과 헤비메탈에 접목한 잠비나이(Jambinai, 战必爱), 파리와 생황으로 우주적 사운드를 연주한 박지하(Park Ji-ha, 朴智夏), 종묘제례악과 가곡을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풀이한 얼리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 水母) 등의 뮤지션이 앞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대담하고 도전적인 시도가 필요한 이유다.



찰스 라 슈어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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