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 붉은 모자에 붉은 재킷을 입은 배우가 광장 한가운데서 공연을 벌인다. 마술사일까? 그의 주변으로 구경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거리의 축제. 이 거리에서는 매일 매 순간이 축제다. 그러나 이 축제의 겉모습을 한 꺼풀 벗기면 대한민국 근대사의 압축된 단면이 드러난다.
서울의 구시가 북동쪽. 아르코예술극장을 비롯하여 무수한 소극장들이 몰려 있는 거리. 지하철 4호선 혜화역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1.5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학로 주변은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지구’다. 이 지역은 낙산을 등지고 인근에 창경궁, 종묘, 창덕궁 등의 중요한 사적들이 위치한 유서 깊은 곳이다.
‘대학로’라는 거리 이름은 1946년 이곳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이 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대학인 서울대학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나는 1961년 이 대학교 문리과 대학 불문과에 입학했다. 사진의 저 뒤쪽으로 보이는 붉은 건물 아르코극장 자리에는 고풍스런 베이지색 벽돌 건물 안에 중앙도서관과 수많은 교수 연구실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그 앞은 느티나무 숲. 라일락 향기 그윽한 잔디밭 사이 소로를 따라나오면 대학교의 정문. 우리들끼리 머나먼 파리를 상상하며 ‘센 강’이라고 불렀던 개천 위로 난 다리를 건너면 오늘의 대학로이다. 그리고 그 길 건너편에는 지금도 서울대학교 부속병원과 의과대학이 남아 있다.
1974년 가을, 내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최초 최후로 모교 학생들에게 강의를 했던 강의실도 여기였다. 1975년 서울대학교는 서울 남쪽 외곽의 넓은 새 캠퍼스로 옮아가고 이 지역은 젊음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변했다.
그뿐이 아니다. 서울대학교가 생기기 전 이 곳에는 일제가 1924년에 세운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가 있었다. 사진의 뒤쪽 숲을 이루는 두 그루의 거대한 나무는 1927년 경성제대 일본인 미학교수 우에노 나호테루가 프랑스에서 가져와 심은 마로니에다. 이 공원의 이름은 바로 거기서 온 것이다. 빨간 모자를 쓴 저 배우는 이 광장이 숨기고 있는 시간과 역사의 고고학적 마술을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