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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WINTER

길한 음식, 떡국

떡국은 대표적인 세시 음식으로, 고깃국물에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어 넣어 끓인다. 지역에 따라 재료나 조리 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음식이라는 점은 어디나 매한가지다. 요즘은 명절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적으로도 즐겨 먹는 별미가 되었다.

맑은 국물에 가래떡을 가늘게 썰어 넣고 끓이는 떡국은 설날에 먹는 절기 음식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평소에도 일품요리 형태의 한 끼 음식으로 널리 상용된다.
ⓒ 한국관광공사

겨울이 오면 본능적으로 뜨끈한 국물 요리를 찾게 된다. 그중에서도 떡국은 특별하다.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과 계절 감각을 함께 불러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설날 아침에만 맛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명절의 경계를 넘어섰다. 마트 진열대에는 간편식 떡국 상품이 늘어서 있고, 일반 식당이나 분식집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가 되었다. 그럼에도 설에 떡국을 먹지 않으면 마치 새해의 복 한 조각을 놓친 듯 허전하다. 그것은 아마도 떡국 한 그릇에 담긴 길하고 복된 기운을 우리 모두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를 세는 단위

떡국은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음식이다. 근대기에 활동했던 문인이자 언론인인 최남선(1890~1957)은 1946년 한국의 풍속과 전통, 지리, 종교 등을 망라한 『조선상식문답』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은 매우 오래됐으며, 이는 상고 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됐다”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음복이란 ‘복을 먹고 마신다’라는 뜻으로, 조상께 올린 제사 음식을 나눠 먹으며 복을 기원하는 전통을 말한다. 그가 언급한 상고 시대가 정확히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쌀밥을 짓는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쌀을 찧어 가루로 만든 뒤 떡으로 쪄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는 학자들의 의견이 모인다. 떡은 시간이 지나면 굳기 때문에 국물에 넣어 다시 데워 먹는 방식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을 것이다.

조선 시대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서는 떡국을 ‘백탕’ 혹은 ‘병탕’이라 부르고 있다. 백탕은 국물이 희다는 뜻인데, 이는 단순한 색깔 묘사가 아니라 상징성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흰빛에서 청결과 순수를 떠올렸고, 한 해의 시작을 더럽힘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열고자 했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행위는 그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정화 의례에 가까웠다. 그래서 떡국을 조리할 때는 소고기든 닭고기든, 혹은 멸치 등의 해산물로 우려냈든, 색이 짙지 않게 맑고 흰빛을 유지하려 애썼다. 또한 병탕(餠湯)은 떡 ‘병(餠)’과 끓일 ‘탕(湯)’을 합친 용어로, 말 그대로 ‘떡을 끓여 만든 국’이라는 뜻이다.

한국인들은 생일과 무관하게 해가 바뀌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걸로 셈한다. 따라서 새해 첫날 먹는 떡국은 나이를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내가 너보다 떡국을 더 먹었어”라고 말한다면, 이는 곧 “내가 너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뜻이며, 삶의 경험과 식견이 더 풍부하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 『동국세시기』에도 옛사람들이 “병탕을 몇 사발이나 먹었느냐”라는 표현으로 나이를 물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떡국은 세시풍속의 음식이면서 동시에 생물학적 나이와 삶의 연륜을 재는 도구이기도 하다.

떡국의 주된 재료인 가래떡은 그 자체로 담백하고 쫄깃해 주전부리로 즐겨 먹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살짝 굳은 가래떡을 석쇠에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해져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에 구운 가래떡은 주로 조청이나 꿀을 발라 먹는다.
ⓒ 한국관광공사

복을 비는 마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1748~1807)은 풍속지 『경도잡지』에서 떡국을 “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처럼 얇게 썰어 꿩고기와 함께 끓이는 음식”으로 묘사했다. 그의 기록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떡국의 원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옛사람들은 생명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무병장수의 기원을 담아 가래떡을 길게 뽑았다. 그리고 그 떡을 엽전처럼 동그랗게 썰면서 재물과 풍요, 번영을 희구했다. 그렇기에 떡국은 단순한 겨울 음식을 넘어, 길한 음식으로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떡국은 한겨울에 꼭 필요한 실용적 음식이기도 하다. 소화가 더디고 체온을 유지하기 힘든 추운 계절에 가루 내어 익힌 떡은 부드러워 소화가 잘되었고, 흡수율이 높아 금세 에너지로 바뀌었다. 뜨끈한 국물과 함께 먹으면 몸이 데워져 새해 첫날 활기를 북돋기에 제격이었다.

국물 재료 선택에도 이유가 있었다. 농경 사회에서 소고기는 귀해 자주 쓰기 어려웠고, 대신 꿩이나 닭은 비교적 구하기 쉬운 단백질원이었다. 더불어 꿩·닭을 삶으면 국물이 맑고 기름기가 적어 백탕의 이미지와 잘 맞았다. 또 소화에 유리해 겨울철 보양 음식으로 적합했다. 특히 꿩은 예부터 “양기를 북돋아 몸을 덥힌다”는 인식이 있었고,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서 새해 시작과도 연결됐다. 하지만 야생 꿩은 구하기가 어려워, 일상적으로는 닭이 대체재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각 지역의 떡국

떡국은 지역색이 드러나는 음식이기도 하다. 지역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개성은 조랭이떡국으로 유명한데, 양 끝을 비틀어 리본 모양으로 만든 조랭이떡은 특이한 모양새와 말캉하고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다. 맑은 소고기 육수에 달걀지단과 김 가루를 고명으로 얹어 깔끔하고 절제된 풍미를 완성하며, 곁들이는 반찬으로는 담백한 동치미나 무김치가 어울린다. 함경도와 평안도 같은 북방 지역은 쌀이 귀해 떡 대신 만두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떡만둣국이 흔했고, 국물은 멸치·다시마·건어물로 내어 구수하면서도 진한 맛을 냈다. 마늘·두부·대파가 고명으로 올라가고, 김치·젓갈 같은 저장 음식이 반찬으로 곁들여져 긴 겨울을 버티는 데 필요한 열량과 온기를 보충했다.

강원도의 떡국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품은 지리적 특성이 드러난다. 산간 지방에서는 황태나 북어를 푹 끓여 국물 맛을 내고, 바닷가에서는 오징어나 생선을 활용하기도 했다. 메밀 피로 빚은 만두가 들어간 떡만둣국이 흔했다. 충청도에서는 멥쌀가루를 익반죽해 작은 덩어리로 만든 반죽을 두툼하게 썰거나 손으로 뜯어 넣어 끓였다. ‘날떡국’ 또는 ‘생떡국’이라 불리는 이 독특한 떡국은 두께가 일정하지 않아 씹는 재미가 있다. 국물은 소고기·닭·멸치를 담백하게 끓여내는 경우가 많았다. 고명은 단출했지만, 무생채나 동치미 같은 곁들임 반찬이 어우러져 충청도 특유의 소박한 정서가 배어난다.

서울과 경기도는 여러 지역의 영향을 아우르며 표준형 떡국을 만들어냈다. 소고기 양지나 사골을 고아 낸 맑은 국물에 어슷하게 썬 가래떡을 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방식이다. 달걀지단, 파, 김, 소고기를 채 썬 고명이 기본으로 올라가며, 깍두기나 동치미 같은 반찬이 곁들여진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떠올리는 전형적인 떡국의 형태이다.

전라도는 국물이 깊고 진하다. 그중 닭장떡국이라는 향토 음식이 유명하다. 원래는 꿩을 넣어 끓이는 것이 상례였지만, 꿩을 쉽게 구하기 어려워지자 그 맛을 대신하기 위해 닭을 활용했다. 토막 낸 닭에 파, 마늘, 생강 같은 향신채와 조선간장을 넣고 짭짤하게 조린 후에 이것을 물에 풀어 국물을 내고 떡을 넣어 끓인다. 짭조름한 국물이 떡에 스며들면서 국물 맛이 한층 진해지고, 담백한 닭고기와 어우러져 든든한 별미가 되었다.

경상도에서는 ‘꾸미(국이나 찌개에 넣는 고기)’라 불리는 고명이 떡국 맛을 좌우했다. 국물은 멸치·다시마 육수나 소고기 국물을 쓰지만, 짭조름한 꾸미로 맛을 보강했다. 간장에 졸인 고기, 두부, 달걀, 김 가루가 고명으로 올라가고, 바닷가 지역에서는 굴이나 해산물이 더해졌다. 울산에서는 독특하게도 구운 떡을 넣어 고소함을 더한 ‘굽은떡국’이 전해진다.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익반죽한 반죽을 기름 두른 팬에 전병처럼 넓게 구운 뒤, 이를 한입 크기로 잘라 멸치 장국에 넣어 끓이는 방식이다. 기름에 구운 떡 특유의 고소한 향과 쫄깃한 식감이 국물과 어우러져 별미를 이룬다. ‘굽은’은 구웠다는 뜻의 지역 사투리이다.

오늘날 식재료가 풍족해지고 세시풍속을 따르는 사람들이 줄면서 많은 명절 음식이 빛을 잃었다. 떡국 역시 가정간편식으로 사시사철 맛볼 수 있는 일상적 음식이 되었지만, 길하게 여기는 마음은 한결같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설날 아침 가족이 한데 모여 떡국을 나눠 먹으며 새해의 안녕을 함께 빌고 덕담을 나눈다.

조랭이떡국은 개성 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떡국은 긴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어서 끓이지만, 조랭이떡국은 리본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끓이는 게 특징이다. 국물을 내거나 고명을 얹는 방식은 다른 떡국과 비슷하다.
ⓒ 경향신문

이주연 미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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