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s & Culture
2025 SUMMER
컵에 담긴 청춘의 생존기
급격한 물가 상승 때문에 점심값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2010년대 초반, 서울 노량진에 포진한 포장마차들에서는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빠르게, 싸게,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이른바 ‘컵밥’이 탄생한 것이다. 컵밥은 이제 단순한 끼니를 넘어 시대의 필요가 만들어 낸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고시촌의 생존 음식에서 K-푸드로 확장된 컵밥에는 청춘의 고단한 시간과 한국인의 밥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로벌 푸드엔터테인먼트 브랜드 ‘컵밥’은 송정훈 대표가 2013년 미국 유타주에서 푸드트럭으로 시작해 현재는 미국 전역으로 매장을 확장했다. 현지인의 문화와 입맛을 반영한 레시피 덕분이다. ⓒ 컵밥
“점심값 1만 원 시대.”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11년이었다. 당시 언론은 콩국수 한 그릇 9,500원, 칼국수 8,000원, 설렁탕 1만 원 등을 예시하며 물가 상승을 대서특필했다. 직장인들은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관공서나 학교, 회사 구내식당을 찾기 시작했고, 편의점 도시락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는 단순한 식비 절약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생존형 소비에 진입했다는 신호였다.
2011년은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유난히 팍팍했던 시기였다. 제조업과 대기업의 생산성이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경제 성장률은 세계 평균에도 못 미쳤다. 생산자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6.7%, 소비자 물가지수는 4%나 올랐다. 이 시기는 우리 경제가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궤도를 바꾼 변곡점이었다. 모든 것이 조금씩 비싸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조차 점심값을 고민하던 시절, 취업준비생, 특히 고시생들의 현실은 더욱 암담했다. 부모의 지원에 의존하며 온종일 공부에 매진해야 했던 이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사치에 가까웠다. 고시생의 하루는 공부를 중심으로 철저히 계획되어 있었고, 식사조차 효율성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했다.
노량진 컵밥의 탄생
서울 노량진은 학원가로 유명한 지역이다. 1980~90년대에는 대학 입시 학원들이 밀집해 호황을 누렸다. 이후 입시 학원들이 강남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에는 공무원 시험을 위한 전문 학원들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노량진은 전국에서 고시생들이 모여드는 대표적인 고시촌이다.
이곳엔 ‘고시 식당’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밥과 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식 식당이다. 지금도 고시 식당의 가격은 7,000원 안팎으로 저렴하지만 2011년 당시엔 3,000원 선이었다. 점심값이 1만 원을 넘는 시대에 이 가격은 분명 저렴했지만, 고시생들에게는 그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물가가 오르면서 고시 식당의 가격도 조금씩 인상되고 있던 터라 고시생들의 걱정이 커져갔다.
노량진역 앞, 긴 행렬을 이룬 포장마차도 이 지역만의 독특한 풍경이었다. 떡볶이, 핫도그, 햄버거 같은 분식을 주로 팔았지만, 주먹밥이나 간단한 덮밥 형태의 메뉴도 일부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 본격적으로 밥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등장했다.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혹은 넓적한 종이 용기에 볶음밥을 담아 팔거나 맨밥 위에 여러 가지 토핑을 얹은 덮밥을 팔았다. 가격은 한 그릇에 2,000원 정도였다.
뷔페식으로 구성한 고시 식당이 1인당 3,000원가량 했으니, 포장마차에서 파는 2,000원짜리 컵밥이 그다지 매력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시생에게 차액1,000원은 무시 못 할 금액이었다. 또 고시 식당은 여러 반찬을 내놓다 보니 개별 품질이 떨어졌으며, 음식을 고르고 받아야 하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고시생들도 많았다. 반면 컵밥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양이 푸짐했으며, 달고 짠 맛으로 젊은 입맛을 사로잡았다. 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서서 5분 만에 한 끼를 해결하고 바로 학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컵밥은 가격, 맛, 시간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다.
노량진 컵밥 거리 모습. 컵밥은 노량진 포장마차에서 개발된 거리 음식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수험생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 서울관광재단
컵밥 거리의 퇴색
‘컵라면’에서 파생된 신조어 ‘컵밥’은 언론이 좋아할 만한 소재였다. 고시생들이 만든 신개념 식문화라는 스토리는 충분히 화제성이 있었다. 점심값 1만 원 시대에 한 끼에 2,000원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컵밥은 빠르게 주목받았다. 단순히 값싼 끼니가 아니라, 청년 세대가 고안해 낸 생존 방식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컵밥 열풍이 커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주변 식당들이 포장마차의 컵밥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며 민원을 제기했고, 구청은 단속에 나섰다. 결국 포장마차 사장님들은 라면, 핫바 등으로 품목을 바꾸거나 컵이 아닌 알루미늄 포일 용기를 사용하는 식으로 우회해야 했다.
식당과 포장마차 간 컵밥 전쟁으로 컵밥 원조들이 노량진에서 사라져갈 때 아이러니하게도 컵밥은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건강을 강조한 ‘비건 컵밥’, ‘키토 컵밥’ 같은 차별화된 메뉴도 등장했다. 2012년엔 한 편의점 브랜드가 발 빠르게 컵밥 제품을 출시했다. 이 무렵 노량진 포장마차들은 단속으로 인해 이미 컵밥을 팔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대기업은 되고, 서민은 안 되냐”라는 포장마차 사장님들의 항변은 컵밥 열풍 이면의 사회적 불균형을 보여줬다.
노량진의 컵밥 포장마차들은 3년 후 구청의 중재로 기존 학원가에서 150미터 떨어진 사육신역사공원 앞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컵밥 거리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청년 세대가 공무원을 더 이상 안정적인 직업으로 여기지 않기 시작하면서 고시생 인구가 줄었고, 이에 따라 고시촌의 분위기 역시 예전 같지 않게 됐다. 노량진 컵밥도 그만큼 활기를 잃었다. 그러나 컵밥 거리는 흥미로운 탄생 과정으로 인해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고, 한번쯤은 가봐야 하는 명소로 떠올랐다. 이제는 고시생보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나 젊은 연인들이 이곳을 더 많이 찾는다. 노량진 컵밥이 생존형 식문화에서 관광 콘텐츠로 확장되며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출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포장마차에서 분식 대신 밥을 팔자 대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처럼 젊은 고시생들도 떡볶이나 국수 대신 밥을 먹어야 든든하다고 여겼다. 알곡 상태의 밀을 곱게 빻은 밀가루는 일종의 가공식품이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섭취 후 혈당을 급격히 올리고, 이내 급격한 허기를 유발한다. 반면 쌀은 천천히 흡수되어 포만감이 오래간다. 이는 수천 년 동안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식습관에서 비롯되어 몸에 자연스럽게 새겨진 감각이다.
시대적 트렌드
오늘날 컵밥은 더욱 진화하고 있다. 고급화된 메뉴, 브랜드화된 제품, 해외에서의 K-푸드 아이콘으로 거듭나며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화로 남아 있다. 우선 컵밥은 컵라면처럼 빠르게 대중화에 성공했다. 냉동식품이나 레토르트 형태로 가공되며 편의점과 마트에서 ‘전자레인지 2분’이면 완성되는 간편식으로 자리 잡았다. ‘집에서도 간단한 한 끼’라는 메시지는 시대 흐름과 맞아떨어졌고, 컵밥의 대중성을 더욱 굳혔다.
이제 컵밥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유타주에서 시작된 컵밥(Cupbop) 프랜차이즈다. 비보이 출신이었던 송정훈 대표가 유학을 왔다가 시작한 이 브랜드는 컵밥을 미국식 패스트푸드 스타일로 재해석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밥, 고기, 소스, 토핑을 조합해 하나의 볼로 제공하는 방식은 미국의 푸드 트렌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한국적 맛을 유지하면서도 서구적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주효했다. 어느덧 창업 20년이 넘은 이 브랜드는 현재 미국 전역으로 매장을 넓혀가고 있으며, K-푸드 열풍과 맞물려 더욱 성장 중이다. 이 외에도 컵밥은 일본, 동남아, 유럽 일부 지역에서 한식 간편식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BTS, 김치, 불고기와 함께 컵밥은 ‘일상 속의 한류’를 구성하는 아이템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컵밥의 가치는 단순히 간편하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한국 사회의 변화, 특히 청년 세대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음식이라서다. 고된 공부와 취업 준비, 아르바이트 사이에서 허겁지겁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수많은 청춘들의 진심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컵밥은 시대의 필요가 만들어낸 음식 문화였다. 길거리에서 시작된 작은 컵 하나가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컵밥은 그 자체로 한국인의 생활과 감성을 담아낸 살아 있는 음식 문화의 사례다. 한 손에 쥔 이 작고 따뜻한 한 끼가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기대가 된다.
노량진 컵밥은 간편식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간편식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다양한 종류의 컵밥이 편의점과 마트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 뉴스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