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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 Culture

한국의 특별한 여름 별미, 물회

Arts & Culture 2024 SUMMER

한국의 특별한 여름 별미, 물회 물회는 과거 불을 피울 수 없던 목선에서 어부들이 간편하게 만든 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였다. 하지만 그 탄생 배경은 그리 가볍지 않다. 밥이 주식으로 하는 오랜 전통, 갓 잡은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독특한 활어회 문화, 그리고 고추를 발효시켜 만든 고추장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절묘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물회는 세계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음식이다. 싱싱한 회와 각종 해산물, 아삭한 식감을 더해줄 야채와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시원한 육수가 어우러진 물회는 한국인들이 여름철 즐겨 찾는 보양식이자 별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간하는 세계수산양식현황(SOFIA)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해산물 소비량은 매년 세계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국토의 삼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라는 환경 탓도 있겠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국의 많은 해산물 소비량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보다 더 넓은 바다를 가진 나라도 많기 때문이다. 해산물 소비가 많은 한국 한국인의 해산물 소비량이 매년 세계 순위권에 드는 이유에는 한국인의 독특한 식문화도 한몫한다. 우선 한국인은 김, 미역, 다시마 등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해조류를 먹는다. 심지어 수출도 많이 한다. 해조류는 바다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바다에 해조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생물이 사는 건강한 바다라는 증거다. 한반도의 바다는 육지와 가깝고 수심도 너무 깊지 않아 해조류 자생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햇볕이 닿지 않는 너무 깊은 바다나 육지와 멀리 떨어져 무기물이 충분하지 못한 바다에는 해조류가 자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한국인은 예로부터 바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조류를 활용해 다양한 요리를 만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바다의 잡초로 인식되었던 해조류가 한국인에게는 요긴한 식재료였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한국인의 건강한 밥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생선을 익히지 않고 먹는 식문화를 들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방식이 일반화된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가 유일하다. 서구의 경우 남미(특히 페루)에서 시작된 세비체(ceviche)라는 음식을 통해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문화가 일부 남아있다. 그런데 세비체는 엄밀히 따지면 생선을 전혀 익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비체는 라임이나 레몬에 해산물을 재웠다가 먹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열 대신 산(acid)에 의해 생선의 표면이 익는다. 날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날것이 아닌 셈이다. 이에 반해 한국과 일본은 생선을 비롯한 다양한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는 방식을 오래전부터 이어오고 있으며, 이는 한일 양국 식문화에서 중요한 장르로 굳어졌다. 이렇게 생선을 날것 그대로 먹는 방식을 한국에서는 ‘생선회’, 일본에서는 ‘사시미’라고 부른다. 복합적인 맛을 즐기다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방식에서 있어 한국과 일본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일본은 날생선을 손질한 후 충분한 숙성을 거친 후에야 맛볼 수 있는 부드러운 질감과 풍부함 감칠맛을 즐겼다. 숙성을 거쳐 부드러워진 사시미는 밥과 잘 어울렸다. 밥에 식초를 섞어 부패를 방지한 다음 사시미를 얹어 만든 음식이 스시다. 한국은 생선회를 먹는 포인트가 일본과 달랐다. 숙성된 생선회보다는 사후경직이 진행 중인 생선, 즉 단단한 질감을 선호했다. 대신 다양한 양념과 채소를 곁들였다. 일본이 간장과 고추냉이(와사비) 등 최소한의 소스를 사용해 생선이 가진 본래의 맛을 끌어내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 한국은 간장, 된장, 고추장, 참기름, 마늘, 고추 등 다양한 부재료를 곁들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상추나 깻잎 등에 싸서 함께 먹었다. 얼핏 일본보다 덜 섬세해 보일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인간의 미각은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의도된 방향으로 발달한다. 생선과 소스 그리고 채소의 조화를 추구했던 한국인의 미각은 복합적인 맛을 즐기는 쪽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사시미를 먹는 일본인의 테이블은 단조로운 반면, 생선회를 먹는 한국인의 테이블은 매우 복잡하고 푸짐하다. 한국 어부의 패스트푸드, 물회 조선시대(1392~1910년)까지 한국의 어업은 나무로 만든 목선과 노를 젓거나 바람을 이용하는 무동력선에 의지했다. 근대 이후 엔진에 의해 움직이는 동력선이 도입되었으나, 선박의 재질이 나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동력선이 도입되자 이전보다 훨씬 먼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먼 바다로 나갈수록 조업 시간은 길어졌다. 배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매콤하면서 새콤달콤한 육수는 무더위에 지친 입맛을 달래기에 제격이다. 각종 회와 해산물, 그리고 야채를 덜어 먹은 후 남은 육수에 취향에 따라 밥 또는 면을 말아먹어도 좋다. 한국인의 주식은 전통적으로 쌀이나 보리 등을 익힌 밥이었다. 밥은 곡물의 껍질만 벗겨 낱알 그대로를 익힌 음식이다. 밀이나 메밀을 분쇄해 가공한 분식(粉食)에 비해 조리가 간편하고 영양 손실도 적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쌀과 보리에 함유된 탄수화물은 아주 단단한 구조로 결합 되어 있다. 여기에 열과 수분을 가하면 단단 구조가 깨지면서 부드럽게 변한다. 이를 겔화(gelation)라고 한다. 즉 쌀의 겔화가 진행되면 밥이 된다. 그런데 밥을 상온에 두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다시 딱딱해진다. 과거 한국 어부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자. 이른 아침 먼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나면서 밥 한 덩어리를 챙겼을 것이다. 고된 바닷일을 하다 보면 금방 허기를 느끼게 된다. 집에서 가져온 밥은 이미 차갑게 식었고 그냥 먹기에는 딱딱하다. 불을 피워 물을 끓이면 딱딱한 밥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지만, 나무로 만든 목선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위험한 행위다. 게다가 배 위에서는 여러 가지 반찬을 늘어놓고 여유 있게 식사할 상황이 아니었다. 차가운 물에 밥을 말았고 반찬으로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을 듬성듬성 썰어 넣었다. 여기에 고추장 한 숟가락을 곁들여 밍밍한 맛을 보완했다. 조업 중 잠깐 짬을 내어 밥과 생선회를 물에 말아 그릇째 들고 후루룩 마시듯 먹던 물회는 어부들이 배 위에서 쉽고 빠르게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고안한 패스트푸드였던 것이다. 뚜렷한 지역별 특색 시원한 육수에 싱싱한 횟감의 조화가 일품인 물회는 어부의 음식에서 발전해 오늘날 바다 주변 관광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시원한 육수에 취향별로 고른 횟감과 아삭한 채소, 밥 또는 면을 선택해 후루룩 말아먹는 물회는 무더운 여름을 달래줄 별미가 되었다. 최근에는 몇몇 바닷가 주변에서 관광지 음식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소박한 음식으로 출발한 물회는 점점 화려하고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계절에 따른 생선이나 해산물, 채소 또는 과일을 사용하는 것엔 크게 다를 것 없지만, 한국에서 물회는 ‘물회’라는 하나의 형식만 존재할 뿐 지역마다, 음식점마다 개성이 다른 음식으로 분화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육지와 달리 된장을 넣어 만든 육수로 물회를 만든다. 자리돔을 뼈 채 썰어 꼬들꼬들하고 담백한 회와 구수한 된장의 조화가 일품이다. ⓒ 비짓제주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시작된 일명 강원도 물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의 물회다. 냉수나 차가운 육수에 초고추장과 식초, 설탕 등을 넣어 만든 양념이 더해져 매콤 새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가장 대중적인 맛이다. 횟감으로는 주로 담백한 물가자미 등을 사용하며 강릉에서는 길게 채 썬 오징어를 넣은 오징어 물회도 유명하다. 또 속초에서 시작해 전국 체인을 두고 있는 청초수 물회에서는 활전복, 해삼, 멍게, 문어, 날치알과 계절에 따른 여러 가지 횟감, 사골육수 등이 어우러진 ‘해전물회’ 메뉴가 인기다. 사람들은 이 물회를 맛보기 위해 사시사철 긴 대기시간도 기꺼이 감수한다. 고추장을 베이스로 하는 또 다른 물회에는 포항식 물회도 있다. 이 물회의 가장 큰 특징은 언 육수를 갈아서 슬러시 형태로 그릇에 담는 것이다. 각종 횟감과 야채 위에 팥빙수처럼 수북하게 쌓인 고추장 베이스의 매콤달콤한 육수를 함께 버무려 먹는 방식이다. 동해식 물회가 식초의 맛을 살린 육수라면 포항식 물회의 육수는 고추장의 맛을 살린 진득함이 두드러진다. 얼핏 보이엔 물회보단 비빔회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슬러시 육수 덕분에 식사를 마칠 때까지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다른 지역의 물회가 대부분 고추장을 기본으로 하는 육수를 쓰는 반면, 제주도에서는 된장을 사용한 육수를 썼다. 지리적인 특성으로 고추가 귀했기 때문이다. 물회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고추장보다는 된장으로 맛을 내는 음식이 많다. 주로 자리돔을 넣은 자리물회가 유명하다. 된장으로 양념한 물회에 제피나무 잎을 약간 넣어 특유의 향을 살리고 생선 비린내를 없앴다. 또 톡 쏘는 빙초산 한 방울을 넣은 뒤 보리밥을 말아서 먹었다. 뼈째 썰어 투박하지만, 담백한 회와 구수한 된장의 조화가 돋보이는 제주 물회는 육지와는 전혀 다른 특징과 매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계절과 지역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생선을 사용하고, 고추장에 설탕, 참기름, 식초, 콩가루 등을 더해 특별한 소스를 만들기도 하고 물 대신 전용 육수를 만들어 사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저마다 ‘물회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물회는 그 어느 곳도 원조가 아니면서, 그 모든 곳이 원조가 될 수도 있는 미스터리한 음식이다. 이것은 한국 음식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단조로워 보이는데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섬세하다. 아무튼 한국의 여름은 물회가 있어 행복하다.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신세계

Arts & Culture 2024 SUMMER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신세계 버추얼 아이돌 신드롬이 불고 있다. 이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아이돌 그룹으로 여느 아이돌처럼 앨범을 내고 SNS로 일상을 공유하며, 팬들과 소통한다. 팬들은 버추얼 아이돌의 실체를 궁금해하기보다 이들의 음악과 춤에 집중한다. 지금 버추얼 아이돌은 현실 세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며 새로운 생태계로 주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 VLAST 2024년 2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백화점 더현대 서울이 온통 가상의 존재로 뒤덮였다. 오픈 이래 최대 규모라는 미디어 아트도 대단했지만, 백화점 지상과 지하를 모두 점령한 버추얼 아이돌의 기세가 놀라웠다. 이 날 참여한 버추얼 아이돌은 6인조 걸그룹 이세계아이돌(ISEGYE IDOL)과 5인조 보이그룹 플레이브(PLAVE), 그리고 6인조 걸그룹인 스텔라이브(StelLive)까지 무려 세 팀의 버추얼 아이돌이 동시에 대형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가로 33m, 세로 5m 규모의 LED를 통해 30분간 송출된 이들의 공연은 팬은 물론 그날 현장을 찾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무료로 진행되었다. 또 지난 3월 9일에는 플레이브가 인기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 가수 비비(BIBI) 등을 제치고 MBC 음악방송 < 쇼! 음악중심 >에서 1위를 차지했다. 버추얼 아이돌이 국내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3월 9일 플레이브는 버츄얼 아이돌 최초로 국내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다. 플레이브는 팬들을 위해 1위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 VLAST 버추얼 아이돌 신드롬 버추얼(Virtual), 즉 ‘가상’이라는 점 때문에 이들이 현실에서 얻는 인기까지 가짜라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이들의 인기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일부 마니아 문화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좋아하는 팬들의 팬심은 결코 버추얼이 아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023년 9월,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는 국내 최초 메타버스 연계 오프라인 뮤직 페스티벌인 ‘이세계 페스티벌’이 열렸다. 버추얼 걸그룹인 이세계아이돌과 버추얼 유튜버, 버추얼 아티스트를 비롯해 현실 아티스트 등 총 16팀의 아티스트가 음악으로 가상세계와 현실을 연결했다. 메타버스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메타버스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 페스티벌을 찾은 현장 방문객은 20,000여 명에 달했으며, 극장 동시 상영 객석률은 95.7%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또 2023년 12월 28일, 국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는 이세계아이돌 관련 웹툰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 단행본 펀딩이 진행됐다. 목표 금액은 2천만 원이었다. 펀딩이 시작된 지 24시간 만에 25억 원이 모였고, 한 달 뒤 최종 모금액 41억 9,889만 원을 달성했다. 텀블벅에서 진행한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상 최고 모금액이었다. 이제 데뷔 갓 1년을 넘긴 버추얼 보이 그룹 플레이브의 사례도 놀랍다. 2024년 2월 발표한 이들의 두 번째 미니 앨범 < ASTERUM : 134-1 >은 발매 첫 주에만 56만 9,289장이 팔렸다. 이는 버추얼 보이 그룹이 거둔 최초이자 최고 기록이었고, 그 비교 대상을 일반 보이 그룹으로 넓혀도 그룹별 최고 기록 17위에 달하는 상당한 수치였다. 2023년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한 엔데믹 분위기 속 오프라인이 다시 강조되며 케이팝 아이돌 그룹 초동(발매 첫 주 판매량)이 전반적으로 하락세에 들어선 가운데 거둔 성과이기도 했다. 이들이 케이팝계에서 주목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3년 발표한 데뷔 앨범 < ASTERUM : The Shape of Things to Come >은 초동 판매량 20만 장을 넘기며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24년 현재, 한국의 버추얼 아이돌을 둘러싼 거의 모든 지표가 이들이 자신만의 생태계를 확실히 다져가고 있다는 증거를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현실과 가상세계가 음악을 통해 연결된다는 컨셉으로 열린 이세계페스티벌(ISEGYE FESTIVAL)은 국내 최초 메타버스 연계 오프라인 뮤직페스티벌이다. 해당 무대에서 공연하는 이세계아이돌(ISEGYE IDOL)의 모습. ⓒ 패러블 엔터테인먼트 버추얼 아이돌의 시작 버추얼 아이돌이 문화산업계에 이토록 빠르게 자리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팬데믹의 영향이 컸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에 걸친 팬데믹은 문화예술계 대부분의 영역을 초토화했지만, AI(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한 흐름에 있어서만은 21세기의 지난 모든 시간을 합해도 부족할 만한 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인간과 인간이 직접 만나서는 안 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가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종류의 비극이 진행되는 동안 기술은 개척할 수 있을 만한 모든 업계의 빈틈을 호시탐탐 노렸다. 마침 세상은 IP(지적재산권) 소유자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술과 IP를 결합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며, 대부분의 도전이 그렇듯 살아남은 일부를 제외한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버추얼 아이돌은 그렇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가운데 하나였다.   특색 있는 버추얼 아이돌 사실 버추얼 아이돌, 나아가 버추얼 휴먼에 대한 산업과 대중의 욕구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아마 버추얼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사이버 가수 아담(Adam)을 떠올릴 것이다. 1998년 1월 데뷔한 그는 당시 대세를 이루던 세기말 감성과 호응하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20년 등장한 걸 그룹 에스파(aespa)는 데뷔 초 현실 멤버 4명에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그들의 아바타 4명을 합한 8인조 그룹이라며 자신들을 홍보했고, 2021년에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없이 사람을 닮은 비주얼을 자랑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Rozy)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만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버추얼 아이돌은 과거의 버추얼 휴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버추얼 휴먼의 경우 크게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형과 3D로 구현된 실사형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선 사례들이 사람에 가까운 실사형이었다면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버추얼 아이돌 그룹 대부분은 캐릭터 형이다. 더현대 서울 팝업에 참여한 세 그룹 역시 멤버 모두 캐릭터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사형의 경우 그래픽 기술 구현을 하기 까지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소요된다. 팬과 빠르고 가깝게 교류할수록 호감을 얻는 아이돌 산업의 기본 규칙을 생각하면 꽤 치명적인 단점이다. 또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지나치게 닮은 경우 느끼는 불쾌한 감정을 뜻하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도 무시할 수 없다. 실사형과 캐릭터형으로 이들의 외양을 나누고 나면, 이제는 속성을 따져볼 차례다. 최근 버추얼 아이돌계 가장 큰 성공 사례로 주목받는 이세계아이돌과 플레이브를 보자. 흔히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쉽게 말해 이세계 아이돌은 ‘버추얼’에 플레이브는 ‘아이돌’에 방점을 찍으며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나가고 있다. 버추얼과 유튜버의 합성어인 ‘버튜버(VTuber)’ 멤버를 앞세운 이세계아이돌은 그룹 결성 및 운영, 활동 방식까지 자신들이 속한 버튜버 세계의 공식을 기본으로 한다. 서바이벌을 통해 아이돌 그룹으로 탄생시킨 팀 서사부터가 버추얼과 아이돌 사이의 새로운 연결 고리 그 자체다. 이 연결 고리는 비단 아이돌 뿐만이 아닌 앞서 언급한 ‘이세계 페스티벌’ 같이 음악계 전반을 아우르는 페스티벌 영역까지 확장되는 중이다. 한편 플레이브는 단지 외양만 캐릭터일 뿐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보이 그룹과 전혀 다르지 않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플레이브는 여느 아이돌 그룹처럼 앨범을 내고 음악 방송 무대에 서며 라디오에 출연한다. 영상통화로 진행되는 팬 이벤트도 열고 팬들과 소통하는 실시간 라이브 방송도 주기적으로 제작한다. 플레이브의 이 같은 특징은 이들의 소속사가 버추얼 캐릭터 전문 회사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원천 기술은 버추얼 캐릭터와 인간 사이의 감도 높은 결합이다. 인간의 매력과 버추얼 캐릭터의 매력이 지금까지 존재한 적 없는 새로운 시너지로 승화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의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하는 등 활발히 참여하며 실력파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지금껏 없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버추얼 아이돌의 미래 아이돌, 캐릭터, 유튜버, 음악이 혼재하는 세상. 그곳에 버추얼 아이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현시점에서 이들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실제로 버추얼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조차 자신들이 사랑하는 세계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아직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 그것 하나만은 명쾌한 사실이다. 팬들은 버추얼 아이돌이 어떤 세계에서 왔고 어떤 외양을 가졌는지 중요하지 않다. 또 멤버 뒤에 있는 실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며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버추얼 아이돌의 모습 그대로와 그들의 음악, 춤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은 실존하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일반 팬심이나 덕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앞으로 버추얼 아이돌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기 위해선 결국 그를 좋아하는 팬들의 마음을 편견 없이 똑바로 바라보는 게 가장 쉬운 지름길일 것이다.

조화로운 도시 전주

Arts & Culture 2024 SUMMER

조화로운 도시 전주 한국인에게 가장 전통이 잘 보존된 도시가 어디냐 물어본다면 전북 전주(全州)라 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특유의 목조건물인 한옥(韓屋)이 유독 많은 도시가 전주다. 하지만 전주는 과거 전통에만 안주하는 도시가 아니다. 잘 보존한 과거 위에 다양한 문화와 혁신을 고루 섞어 비빔밥처럼 잘 비벼진 조화로운 도시다. ⓒ 셔터스톡 전주한옥마을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곳 중 하난 오목대(梧木臺)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평평한 대지 위에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을 한눈에 조망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아니 유일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약 30만 제곱미터에 무려 700채가 넘는 한옥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전주가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한옥마을로 손꼽히는 까닭이다. 촘촘히 박혀 있는 기와지붕들은 마치 검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조선왕조의 시작 오목대가 전망대 구실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자 안에 들어가면 현판들이 걸려 있는데, 그 중 < 대풍가(大風歌) >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大風起兮雲飛揚 큰바람 일자 구름이 흩날리네. 威加海內兮歸故鄉 온 천하에 위풍을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노라. 安得猛士兮守四方 어떻게 용사를 구해 천하를 지키랴! 오목대 < 대풍가 >의 주인공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재위 1392∼1398)다. 고려(高麗) 말 장수였던 그가 왜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상경하는 길에 전주에 들러 불렀다는 것이다. 훗날 사람들이 이성계가 전주 오목대에 이르러 옛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새로 세울 조짐을 드러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즉 조선왕조의 시작점이 전주였다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서울 북촌한옥마을과 함께 대표적인 한옥보존지구이다. 오목대에서 한옥마을을내려다보면 빼곡한 기와지붕이 마치 검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모습이다. 조선왕조와 전주의 연결고리는 오목대만이 아니다. 한옥마을 남쪽 끝에는 경기전(慶基殿)이 있다. 이때 경기는 경사스러운(慶) 터전(基)이라는 뜻으로, ‘조선왕조가 시작된 곳’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조선 개국 직후 이성계의 아들인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 재위 1400∼1418)이 전주이씨(全州李氏) 가문의 본향(本鄕)인 전주를 비롯해 평양(平壤)과 개성(開城), 경주(慶州), 영흥(永興) 등 주요 도시에 아버지의 어진(御眞)을 모시는 건물을 지었다. 그중 전주에 세운 것이 경기전이다. 한복을 입고 경기전(慶基殿)을 산책 관람 중인 시민들. 경기전은 경기는 경사스러운(慶) 터전(基)이라는 뜻으로, 조선 왕조의 뿌리를 재확인하는 기념 장소 역할을 했다. 공간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正殿)은 태조의 어진을 모셨던 곳으로, 경기전의 중심 영역이다. 현재 정전에 있는 어진은 모사본(模寫本)이고, 원본(原本)은 정전 뒤 어진박물관에 수장돼 있다. 정전 북쪽에 있는 조경묘(肇慶廟)는 태조의 22대조이자 가문의 시조인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하려고 지은 건물이다. 그리고 그사이에 사고(史庫)가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라는, 조선 건국 이래 자그마치 472년 동안의 역사를 매일 같이 수록한 책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한 왕조의 역사적 기록 중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에 걸쳐 작성된 기록물로서, 왕조 시절의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세계 유일 사례다. 대한민국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언뜻 비장해 보이는 공간이지만, ‘하마비(下馬碑)’와 ‘드므(순우리말. ‘頭毛’라 음차하기도 한다)’에서는 옛사람들의 위트가 엿보인다. 하마비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기서부터는 하마, 즉 모두 말에서 내려 지나가라’라는 뜻에서 세운 비다. 경기전 정문 앞에 놓여 있는데, 비를 받치고 있는 두 마리의 사자(獅子) 또는 해치(獬豸) 모습에서 엄숙함보다 조선 석물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묻어난다. 정전 뜰에 놓여있는 6개의 드므는 방화수를 담아뒀던 수조들이다. 행여 화마(火魔)가 건물 가까이 오더라도 물 표면에 반사된 자신의 흉측함에 놀라 도망가길 원하는 바람이 녹아 있다.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는 하마비 (下馬碑). 뿐만 아니라 500년에 가까운 조선왕조 내내 지금의 전북과 전남, 그리고 제주도 일대를 총괄하던 행정 관청이었던 전라감영(全羅監營), 전주부성(全州府城) 시설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풍남문(豐南門) 등은 오목대와 경기전, 그리고 한옥마을과 함께 전주의 역사와 전통, 나아가 위상을 상징하는 문화유산들이다. 전통 속에 녹아있는 교류의 자취 전주에 오로지 수백 년 전의 옛것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포용력을 바탕으로 하는 변화의 증거들도 적지 않다. 경기전 바로 맞은편에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건물이 우뚝 서있다. 전동성당(殿洞聖堂)이다. 한반도 최초의 순교(殉敎) 현장에 들어선 성당으로, 지난 1914년 완공되었다. 그런데 이 건물을 지은 주요 인부들은 조선인 혹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전동성당 100년사』에 따르면, 성당 건축을 위해 중국인 목수 5명과 석공 100여 명이 가마를 설치해 65만 장의 벽돌을 찍어냈다고 한다. 그들을 이끈 인물은 강의관(姜義寬)이라는 이였는데, 쌍흥호(雙興號)라는 건축회사를 운영하며 다양한 천주교 관련 건물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라고 하면 으레 조선왕조와 전통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곤 하지만, 알고 보면 오랜 교류의 자취도 숨어있다. 1914년 준공된 전주 전동성당(全州 殿洞聖堂)/ 로마네스크 양식이 돋보이는 건물로, 초기 천주교 성당중에서 그 규모가 크고 외관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전주 하면 중국과의 교류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인들이 전주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의 일이다. 1899년 전주에서 약 5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군산(群山)이 개항(開港)되며 ‘쿨리(苦力)’라 불렀던 인부를 비롯해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눈에 군산보다 상업과 문화, 행정 등 여러 방면에서 상위 도시였던 전주가 들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점차 정착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은 지금의 다가동(多佳洞) 차이나 거리를 중심으로 화교(華僑) 공동체를 일구어 나갔다. 당시 화교들 중에는 해운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60%에 달하는 이들은 요식업과 주단포목(紬緞布木)을 거래하는 상업에 종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전통의 도시에 화교의 유입에 따른 문화적 접변(接變)은 특히 요식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화요리(中華料理)’라는 전에 없던 음식들이 한반도에 전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화요리는 새 정착지의 식재료를 이용해 현지화되고, 이내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대중화의 길을 걷는 특성이 있다. 소스인 춘장(春醬)만 중국에서 왔을 뿐 지금은 한국식 중화요리의 대표주자가 된 ‘짜장면’이 대표적인 경우다. 전주 화교는 그 짜장면에 또 한 번 혁신을 가했다. ‘물짜장’이라는 새로운 음식으로 변주해 낸 것이다. 물짜장에는 춘장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기름기 많은 짜장면을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손님을 위해 춘장 대신 간장을 주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간장 베이스에 전분을 넣어 걸쭉한 소스를 만든 뒤, 삶은 해물과 밀가루 면 위에 얹은 것이다. 원래의 짜장면과는 전혀 다르게 해물잡탕면에 가까운, 또 하나의 한국식 중화요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대히트를 친 물짜장은 멈춰 있지 않았다. 또다시 ‘순한맛’과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으로 분화되어 갔다. 그러고는 이내 군산시(群山市)와 익산시(益山市), 완주군(完州郡) 등 인근 도시로도 번져나갔다. 전주에서는 전주화교소학교(全州華僑小學校) 교장이기도 한 화교 류영백(劉永伯) 씨가 운영하는 진미반점(真味飯店), 역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보장(大寶莊) 등이 물짜장 명맥을 잇고 있는 식당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실 화교의 유입은 전주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식문화를 진일보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불고기나 갈비탕, 잡채, 심지어 순대에까지 들어가는 당면(唐麵) 등 다양한 식재료들이 화교들을 통해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에 한국의 식재료와 요리법이 접목되면서 음식문화의 폭발적인 융성을 가져왔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화교와 전주, 화교와 한국을 굳이 구분해 생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문화에는 위아래도, 내 것 네 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문명이든 다른 문명을 다각적으로 받아들여 융합하는 과정에서 그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며 발전을 도모해 왔을 뿐이다. 전주는 그와 같은 교류를 품어주는 품 너른 고장이었으며, 그런 교류의 결과가 곧 전주다. 혁신 끝에 탄생한 전주비빔밥 태초부터 당연한 것도 없었다. 비빔밥 역시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고급스러운 색과 맛, 그리고 고소한 풍미가 일품인 전주비빔밥을 궁중음식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전주비빔밥이 이토록 인기를 얻게 된 데에도 지치지 않는 혁신의 노력이 있었다. 전주 향토 음식인 전주비빔밥은 전주는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전주 비빔밥의 종류는 30여 가지로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현재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전주비빔밥 식당은 1951년 문을 연 ‘한국집’이다. 다만 당시에는 비빔밥이 아니라 ‘한국떡집’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떡과 정과(正果)를 판매했다고 한다. 그 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식사 메뉴로 떡국을 팔기 시작했다. 문제는 당시에는 떡국이 주로 겨울에만 먹는 음식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그때 떠올린 것이 사철 장사가 가능한 ‘뱅뱅돌이’였다. 뱅뱅돌이는 전주지역에서 비빔밥을 일컬었던 말로, 주걱이나 숟가락으로 뱅뱅 돌려가며 밥을 비비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이름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대형 그릇에 온갖 나물을 넣어 한꺼번에 비빈 뒤, 손님 주문에 따라 1인분씩 덜어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전주 역사에 조예가 깊은 한학자 고(故) 조병희(趙炳喜 1910~2003) 씨는 1988년에 전주문화원이 발간한 『전주풍물기 (全州風物記)』라는 책에 실은 ‘1920년대 남밖장’이라는 글에서 뱅뱅돌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음식점에 들르게 되면 건장한 일꾼이 커다란 양푼을 손에 받쳐 들고 옥 쥔 숟가락 두어 개로 비빔밥을 비벼 대는데, 흥이 나면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빙빙 돌리던 양푼이 허공에 빙빙 돌다가 다시 손으로 받쳐 들고 비벼대는 솜씨는 남밖장만이 가지고 있는 정경이랄까?” 남밖장은 전주부성의 남문, 즉 풍남문 밖에 있는 시장을 가리키는 말로, 지금은 전주남문시장이라 불린다. 낮 시간대 시장도 인상적이지만 매일 밤 열리는 야시장 때문에라도 여행자들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아무튼 남밖장의 이런 뱅뱅돌이를 콩나물과 고사리, 애호박, 표고버섯 같은 채소에 쑥부쟁이와 꽃버섯 등의 계철 채소, 그리고 쇠고기 육회를 얹는 식으로 고급스럽게 재해석해 낸 것이 바로 한국집이었다. 현재 전주에 비빔밥 식당으로 한국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은행과 밤, 대추 등 영양식 재료를 넣은 비빔밥을 돌솥에 담아내는 하숙영 가마솥비빔밥(전 중앙회관), 밥을 미리 초벌 볶음을 해서 내는 성미당 등도 사랑을 받고 있다. 1950년대초 한국집이 비빔밥을 고급화한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비빔밥 식당이 자신만의 변주와 혁신을 이어가며 1960~1970년대부터 이미 ‘비빔밥 골목’을 형성하기 시작한 곳이 전주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전주 시민은 물론 전주를 찾는 거의 모든 여행자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심지어 2007년 이래 매년 가을이면 전주비빔밥축제도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영화의 거리를 비롯해 전주 곳곳에서 진행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10일간 총 43개국 232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당연한 풍경 너머의 새로운 발견 전주에 가면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5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모순을 극복하며 지탱해 온 조선왕조의 기반에서부터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더욱 풍성한 문화를 살찌워온 역사, 그리고 전통에 기반을 두되 한순간도 안주하지 않고 변주에 변주,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발전해 온 한국 사회의 저변을 만날 수 있다. 2010년 인구 50만 이상의 대도시 가운데 세계 최초로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된 연유, 2012년 세계에서 4번째로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된 비밀도 바로 거기에 숨어 있다. 다시 말하건대 전주는 역사와 전통을 단순히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성을 바탕으로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주는 여행지이다.

단청으로 재해석된 세상

Arts & Culture 2024 SUMMER

단청으로 재해석된 세상 건축 미술의 일종인 단청(丹靑)은 목조 건축물의 보존을 위해 오래전부터 활용되었으며, 불교의 수용과 함께 더욱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근덕(Park Geun-deok, 朴根德)은 20년째 문화재 복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단청 전문가이다. 동시에 전통 단청에서 얻은 모티프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보여 주는 창작 단청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 Goldgarden Ⅱ >. 2018. 비단에 채색, 금박, 금분. 25 × 38 ㎝. 박근덕 제공 한국의 궁궐과 사찰에서는 꽃 피는 계절이 아니어도 화려함을 느낄 수 있다. 다채로운 문양과 빛깔로 건물을 아름답게 꾸민 단청 덕분이다. 본래 단청은 기후 변화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을 더위와 추위, 습기 등으로부터 보호해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나아가 문양의 사용과 채색 방식을 통해 왕실의 권위나 종교적 신성함을 나타내는 역할도 한다. “단청은 건물이 입고 있는 옷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왕과 신하의 의복이 구별되는 것처럼 단청도 건물의 용도와 중요성에 따라 문양과 색을 달리합니다.” 박근덕 씨의 설명이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단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불교 문화권인 몽골, 일본, 중국, 티베트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양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은 붉은색 위주의 채색이 특징이고, 중국은 청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한다. 그에 비해 한국 단청은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 청(靑), 적(赤), 백(白), 흑(黑), 황(黃)의 오방색(五方色,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색)을 보색 대비로 채색하되 난색과 한색을 교차해 밝고 어두운 명도 차이를 줌으로써 화려함을 극대화한다. 박근덕 씨는 전통 단청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으로 2022년 첫 개인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으며, 이후 꾸준히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녀는 전통 단청에 흔히 쓰이는 문양 외에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을 즐겨 그린다. 문양과 색의 조합 단청 작업은 채색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 아교(阿膠, 전통 접착제)를 바르는 데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먼저 단청할 부재(部材)의 틈새나 구멍을 메우고 사포질로 정리한 다음 아교를 2회 이상 바른다. 그다음에는 뇌록(磊綠)이나 석간주(石間硃) 같은 천연 안료로 밑칠을 한다.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고 문양의 외곽선을 따라 촛바늘(草針)로 일정 간격으로 구멍을 낸 다음, 단청할 부재 면에 도안을 대고 조갯가루를 담은 분 주머니로 선을 따라 두드려 문양이 나타나도록 한다. 단청할 색을 만들어 도안대로 채색한 다음 조갯가루를 털어내고 들기름칠을 해서 마무리한다. 단청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아무런 문양을 넣지 않고, 색도 한 가지만 칠하는 방식이 있다. 이는 가장 낮은 등급의 단청 양식으로, 위계가 낮은 건축물이나 일반 주택에 사용한다. 그러나 조선(1392~1910)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종묘처럼 최고 품계의 전각에도 이러한 방법이 시공되는 경우가 있다. 공간의 엄숙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로 바탕색을 칠한 다음 그 위에 선을 긋는 방식이 있다. 주로 사당 같은 부속 건물에 적용하는데, 선을 넣는 것만으로도 격식이 갖춰지는 효과가 있다. 초록색 천연 안료는 단청 작업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재료이다. 모든 안료는 색을 칠하기 전 막자사발에서 간 후 체에 걸러 사용한다. 입자가 고울수록 채도가 낮아진다. 또한 보나 도리 같은 부재의 양쪽 끝에만 문양을 그리고, 중심부는 채색만 하는 경우도 있다. 사찰의 부속 건물을 비롯해 궁궐 전각이나 서원, 정자 등 일반적인 건축 단청에 두루 사용되는 형식이다. 이렇게 부재의 끝부분에만 넣는 무늬를 ‘머리초(草)’라고 하는데, 건물 품계에 따라 머리초가 화려해지기도 하고 간소해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부재의 모든 부분에 빼곡하게 문양을 넣어 화려함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있다. 대웅전 같은 사찰 주요 건축물에 활용하는 최고 등급의 양식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유생들이 ‘사가(私家)에서 단청을 못 하게 해달라’고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그만큼 단청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궁궐에서조차 최고 등급의 단청은 하지 않았죠. 유교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단청 원료가 비싼 원석들인 탓도 있죠.” 단청 문양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은 연화(蓮花)머리초다. 연꽃, 석류, 녹화(綠花, 녹색으로 그린 꽃무늬) 등의 조합으로 이뤄진 연화머리초는 사찰과 궁궐뿐 아니라 향교, 서원 같은 유교 건축물의 단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저도 연화머리초를 많이 응용해서 그립니다. 기본에 충실하게 그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심에 위치하는 연꽃 대신 민들레, 고마리 같은 토종 들꽃을 문양으로 만들어서 그리기도 해요.” 박 작가는 모시, 비단, 삼베를 직접 천연 염색하여 사용한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직물의 특성상 색이 잘 표현되기 어려우므로,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색을 입히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새로운 시도 박근덕 씨는 2022년 갤러리 이즈(Galley IS)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 < Goldgarden > 이후 매년 전시회를 통해 전통 단청을 새롭게 형상화한 창작 단청으로 호평받고 있다. 지난해 갤러리 한옥(Gallery HANOK)이 주관한 불화∙민화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이어서 무우수갤러리(MOOWOOSOO GALLERY, 無憂樹) 초대전 에서는 동식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이 전시에서는 연꽃과 민들레로 머리 장식을 한 코끼리를 비롯해 선사 시대 유물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Petroglyphs of Bangudae Terrace in Daegok-ri, Ulju)에 그려진 고래가 단청으로 소환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불꽃 대신 물결무늬 날개를 단 봉황, 멸종위기종인 자생 식물 문양을 입은 물고기, 비단 위에 단아한 자태로 누운 제주 토종 무와 당근 등이 단청을 입고 색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통 단청에는 연꽃, 모란과 같이 상징성이 있는 꽃들이 문양으로 많이 쓰이는데, 제 개인 작업을 할 때는 좋아하는 꽃이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풀을 문양으로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전통 단청에서는 각종 문양들이 서로 엮여 있는데, 저는 이 문양들을 하나씩 풀어낸 뒤 제가 표현하고 싶은 형태로 다시 엮어 봅니다. 이런 시도가 재미있어요.” 그녀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문화재 복원 작업에서 오는 갑갑함을 자신만의 세계를 담은 작품을 통해 해소한다고 말한다. “문화재가 위치한 장소들은 대개 주변 풍광이 좋아요. 작업 현장에서 벗어나 주변 자연 속을 거닐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눈길이 가고 작은 꽃잎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죠. 한참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세계가 눈에 들어와요. 그 순간의 이미지를 문양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게 됐죠. < Goldgarden ― 황(凰) >. 2018. 캔버스에 아크릴. 40 × 26 ㎝.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상상의 동물로 봉은 수컷이고, 황은 암컷이다. 작가는 봉황의 날개를 파도와 물결 모양으로 표현했다. 박근덕 제공 창작의 원천 문화재수리기술자인 그녀는 대부분 남성들로 구성된 작업 현장을 진두지휘한다. 문화재수리기술자의 역할이 문화재수리기능자들의 작업을 지도하고 감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덕 씨는 1999년 동국대학교 미술학부에 입학해 불교 미술을 전공했다. 졸업과 동시에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틈틈이 공부해 자격증을 따고 2022년부터 단청 감리를 해오고 있다. “드센 공사판에서 바닥부터 일을 배웠지만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대학원에 다니며 단청기술자 자격증을 땄어요. 대부분 도제식으로 일을 익힌 작업자들은 대학 전공자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요. 첫 대면에 ‘누구 밑에 있었냐’, ‘스승이 누구냐’부터 물으니까요. 어느 스승의 초(草), 즉 밑그림을 받아서 수련했는지에 따라 유파가 갈리거든요. 그래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네트워크가 발달해 여러 현장을 다니면서 다양한 기술과 기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문화재 복원은 주로 관급 공사다 보니 철저히 설계도 안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간혹 작업 중에 설계 단계에서 놓친 하자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때 보수부터 재설계 여부까지 발주처와 현장 사이를 조율하는 것도 그녀의 주요 역할이다. “안료와 접착제를 섞는 비율만 해도 회화나 금박 작업에는 교과서와 같은 매뉴얼이 있어요. 하지만 단청은 건축물의 위치나 기후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폭넓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 Goldgarden Ⅶ ― 20190421. > 2022. 면에 천연 염색 후 채색, 금박, 금분. 116.8 × 72.8 ㎝. 궁궐이나 사찰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청 문양으로 코끼리의 귀와 코를 장식했다. 작가가 스리랑카 여행 중 보게 된 코끼리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박근덕 제공 단청은 회화는 물론 서예, 드로잉, 공예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기량이 필요하다. 그가 특별히 단청에 끌린 이유다. “단청기술자는 탱화도 보수해야 합니다. 불교 미술에는 탱화도 있지만 산수화도 있어요. 산스크리트어가 들어간 그림도 있고, 호랑이가 등장하는 산신도도 있죠. 그래서 단청기술자는 글씨와 탱화, 화조도, 수묵화 모두 공부해야 합니다.” 그녀는 오래된 건축물에 남겨진 옛사람들의 붓 터치를 보면 전율이 온다고 말한다.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다. 그 행복감이 바로 창작의 원천이다.

K-패션의 새로운 지형도

Arts & Culture 2024 SUMMER

K-패션의 새로운 지형도 탄탄한 중견 브랜드들의 컬렉션이 해외에서 스포라이트를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활약이 K-패션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이들은 신선한 시도와 온라인을 활용한 감각적인 스토리텔링 등 전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성장 중이다. 롯데월드타워에 자리한 마르디 메크르디 매장. 프렌치 감성을 표방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이며, 감각적이면서도 친숙하고 편안한 디자인으로 20~30대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언라벨 제공, 사진 한성훈(Sunghoon Han, 韓成鑂) 지난 2월, 영화 를 홍보하기 위해 할리우드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서울을 방문했다. 체류 기간은 짧았지만, 그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특히 공식 행사에서 입었던 의상과 개인적인 쇼핑 목록은 연일 화제였다. 콘래드 서울(Conrad Seoul) 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준지(JUUN.J)와 포르쉐가 협업한 미래적인 점프 슈트를 입은 데 그치지 않고, 서울 강남에 위치한 준지 플래그십 스토어를 직접 찾아가 제품을 구입했다. 우영미(禹英美) 디자이너의 편집숍 맨메이드 도산(Manmade Dosan)에서 쇼핑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준지를 이끄는 정욱준(鄭旭峻)은 글로벌 패션 교육 기관 에스모드 서울을 졸업한 뒤 유명 패션 기업들에서 일하다가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정도를 밟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2007년 파리 패션위크를 통해 글로벌 디자이너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준지는 현재 삼성물산 패션 부문(Samsung C&T Fashion Group)에 속해 있다. 한편 준지가 해외에서 각광받기 이전 K-패션의 물꼬를 튼 디자이너가 바로 우영미였다.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를 졸업한 우영미는 1980년대 말 부티크를 열어 성공시키며 우리나라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초 파리에 진출한 이후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국내 디자이너로 평가된다. 준지(JUUN.J)가 2023년 6월,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선보인 2024 SS 컬렉션 중 일부. ‘스킨(Skin)’을 테마로, 실루엣의 대비를 극대화했다. ⓒ 준지 K-패션의 계보 K-패션은 현재 국적을 넘어 동시대성을 지닌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젊은 디자이너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며, 해외에서도 이들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K-패션의 계보를 간략하게 훑어보자. K-패션의 출발점은 199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들의 모임인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 Seoul Fashion Artists Association)의 주도로 1990년 가을부터 시즌마다 정기적인 패션쇼가 열렸다. 이 단체는 국내에 컬렉션 개념을 도입해 디자이너들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이후 서울패션위크(Seoul Fashion Week)를 비롯해 다양한 컬렉션들이 개최되는 바탕을 마련했다. 또한 국내 디자이너들이 해외 컬렉션에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당시 국내 유명 디자이너였던 이신우(李信雨), 이영희(李英姫)가 1993년 3월 함께 파리 패션계에 진출했다. 이신우는 전위적인 디자인으로 관록을 보여 줬으며, 이영희는 한복의 선과 색감을 응용한 양장으로 호평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에는 ‘패션계 대모’라 불리는 진태옥(陳泰玉)이 한국적 정서를 담은 간결한 디자인을 내세우며 이신우, 이영희와 함께 파리 무대에 섰다. 이들은 한국 패션사에서 컬렉션 시대를 연 1세대에 해당하며, 이들의 노력을 통해 K-패션의 토대가 구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 한섬(Handsome), 형지(Hyungji) 같은 패션 회사에서 만든 로컬 브랜드가 백화점이라는 공급망을 통해 붐을 일으켰다. 한섬의 시스템(SYSTEM), 타임(TIME) 등과 형지의 크로커다일 레이디(Crocodile Ladies)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로컬 브랜드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외국 패션 브랜드들이 수입되는 한편 동대문 공장에서 생산된 로드숍 제품,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 차례차례 밀리면서 한동안 정체기를 겪게 된다. 민주킴이 바리공주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2022년 한 해 동안 지속한 ‘BARI’ 컬렉션 중 일부. 민주킴은 동화적 요소를 현실감 있게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된다. ⓒ 민주킴 그러나 최근 우영미, 준지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가 해외에서 공고히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2014년 뉴욕 패션위크 무대를 통해 출발한 혜인서(HYEIN SEO), 2015년 브랜드 출시 후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민주킴(MINJUKIM)처럼 해외에서 먼저 인지도를 높인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역수입되면서 K-패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온라인의 영향력 과거 K-패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정규 교육을 밟은 후 도제식으로 일을 배워 브랜드를 만들었다. 반면에 최근에는 정형화되지 않은 방법을 통해 브랜드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존에 브랜드를 홍보하는 일반적 방식인 카탈로그와 잡지 광고, 패션쇼를 대신해 인플루언서나 셀럽의 언급을 통해 하루아침에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또한 시즌별로 공들여 만들던 패션 필름은 이제 숏폼 형태로 하루에도 몇 개씩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온라인을 통해 글로벌 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얘기다. 물론 의상 디자인을 위해 기본기를 다지고 해외로 나가 더 넓은 경험을 하는 방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만큼 파리 패션위크의 위상 또한 여전하다. 김인태(Kiminte Kimhekim)가 이끄는 브랜드 김해김(KIMHĒKIM)은 파리 무대에 컬렉션을 올리는 방법을 고수한다. 그는 파리에서 10년 동안 생활하며 발렌시아가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2014년 자신의 성씨인 ‘김해(金海) 김’을 브랜드 이름으로 삼아 론칭했다. 2019년에는 프랑스 패션협회(FHCM, Fédération de la Haute Couture et de la Mode)에 이름을 올렸는데 우영미, 정욱준에 이어 세 번째 한국인 멤버이다. 파리 패션위크를 주관하고 있는 이 협회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어야 하며, 패션계 전문가들의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김해김이 ‘블랙 앤 화이트(Noir et Blanc)’라는 타이틀로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2024 SS 컬렉션. 김해김은 시적이면서 심플하고, 여성적이면서도 내면의 강인함이 엿보이는 디자인을 구현하는 브랜드이다. ⓒ 김해김 김해김은 우영미처럼 파리에 숍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준지처럼 대기업을 배경으로 두고 있지도 않다. 대신 이 브랜드는 SNS를 통해 유명해졌다. 2019년 파리 컬렉션에서 김인태는 ‘관종’을 주제로 무대를 구성했다. 모델들이 링거 폴대를 끌며 워킹하거나 셀카봉을 들고 무대 위에 섰다. 그의 표현 방식은 큰 화제가 되었고,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섬세한 테일러링을 통해 완성된 과감한 의상은 쿠튀르로서 가치도 높고, 보는 재미도 크다. 김해김의 약진은 인터넷상의 ‘좋아요’ 수와 판매량이 비례하지 않더라도 SNS가 글로벌 디자이너에게 어떤 수단이 되는지 보여 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독자적 방식 신진 디자이너들은 때로 색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마뗑킴(Matin Kim)은 일반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마뗑킴은 심플하고 자유분방한 디자인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젊은 층에게도 사랑받고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다. 이 브랜드는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네이버(NAVER)의 블로그 마켓에서 출발했다. 시작이 블로그였던 만큼 구독자, 구매자들과 끈끈하게 소통했고 견고한 팬층을 얻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지난해 도쿄를 시작으로 올해 일본 곳곳에서 연이어 진행한 팝업 스토어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올해 하반기에는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중화권 지역에 오프라인 매장을 새롭게 오픈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할 수 있도록 현지 비즈니스와 브랜딩 강화에 나설 계획이다. 온라인으로 출발했지만, 오프라인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은 마뗑킴은 지난해 매출 1,000억 원을 기록했고, 현재 14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는 진정성 있는 소통이 빛을 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ON THE PATH’를 주제로 한 마뗑킴의 2024 봄 컬렉션. 봄 햇살의 따뜻함에서부터 도시의 현대적인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다양한 관점으로 자유롭게 표현했다. ⓒ 마뗑킴 2018년 권지율, 조영민 두 사람이 합심해 만든 브랜드 떠그클럽(THUG CLUB) 또한 비상한 관심 속에서 성장했다. 이들은 직접 모델로 활동하고 SNS에 사진을 올리는 등 틀에 박힌 방식을 지양하고, 브랜드에 자유분방한 감성을 담는다. 2021년에는 도발적인 문구가 적힌 언더웨어가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표출하기 힘든 태도와 철학을 대리 만족하려는 마니아들의 심리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떠그클럽은 더 정제된 브랜드로 거듭나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힙한 뮤지션들이 이들의 옷을 입고 브랜드를 언급하면서, 떠그클럽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스트리트 브랜드로 정착했다. MCM, 젠틀몬스터 같은 브랜드와 협업하며 더 큰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떠그클럽의 2024 SS 컬렉션 ‘하이브리드 카우보이(Hybrid Cowboy) 중 일부. 영상 매체로만 접한 카우보이 문화를 상상력을 더해 재해석했다. 떠그클럽은 자신들의 감성을 거침없이 그려내며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는 브랜드로 통한다. ⓒ 떠그클럽 팬덤의 형성 돌고 도는 유행의 쳇바퀴 안에는 ‘국민 티셔츠’라는 영역이 항상 존재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데이지꽃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옷을 입은 젊은 여성들을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혹시 어디서 옷을 나눠주는 것이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장악력이 대단하다. 이 데이지꽃은 마르디 메크르디(Mardi Mercredi)의 시그니처 심볼이다. 프랑스어로 화요일, 수요일을 뜻하는 이름처럼 프렌치 캐주얼을 표방하는 브랜드이며, 패션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던 디자이너들이 의기투합해 2018년 만들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어 버린 플라워 그래픽은 원래 한 시즌을 위한 디자인이었는데, 론칭한 지 1년 만에 대유행하게 되자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봐도 부담 없는 꽃무늬가 신의 한 수였지만, 플랫폼의 힘 또한 한몫했다. 이 브랜드는 10대부터 30대까지 이용하는 대표적인 온라인 패션 스토어 무신사(MUSINSA)와 29CM에 입점하며 세를 확장했다. 온라인을 이용하는 대다수 타깃에 맞춰 가격대를 설정하고, 기억하기 쉬운 로고로 대중성을 획득한 것이 마르디 메크르디의 성공 요인이다. 온라인 파워에 힘입어 낸 한남동(漢南洞) 플래그십 스토어 앞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마르디 메크르디의 플라워 그래픽은 지금 K-패션을 상징하는 로고라 할 수 있다. 과거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통상적인 과정을 밟으며 차근차근 브랜드를 성장시켰다면, 최근 신진 브랜드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정신을 담아내며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현재 K-패션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꽃을 만들어 피우다

Arts & Culture 2024 SPRING

꽃을 만들어 피우다 궁중채화(Royal Silk Flower, 宮中綵花)는 궁중 연희나 의례 목적에 맞게 비단이나 모시 등으로 제작한 꽃을 말한다. 명맥이 끊어진 조선(1392~1910) 왕실의 채화를 되살린 황수로(Hwang Suro, 黃水路) 장인은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황 장인의 아들 최성우(Choi Sung-woo, 崔盛宇)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궁중채화 제작과 연구에 힘쓰고 있다. 궁중채화는 염색, 다듬이질, 마름질, 인두질 등 숱한 손놀림을 거쳐야 비로소 꽃 한 송이가 완성된다. 궁중채화 이수자 최성우는 정교한 수작업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꽃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 한정현(Han Jung-hyun, 韓鼎鉉) 통의동(通義洞) 길은 경복궁 서문(西門)인 영추문(迎秋門)을 마주 보고 있다. 이곳을 걷다 보면 현대식 건물 사이로 2층짜리 낡은 건물이 눈에 띈다. 옛날 형식 그대로인 간판에는 ‘보안여관’이라는 상호가 적혀 있다. 1936년 생긴 이 숙박업소는 2004년까지 운영되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이후에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통의동 주변 일대는 도시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낡은 건물이 부수어지고 새것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보안여관도 사라질 운명에 처했지만, 이곳을 인수한 최성우 대표는 더 이상 사람이 머물 수 없는 공간을 문화예술이 숨 쉬는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도심 한복판에서 옛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남은 건물의 울림은 의외로 컸다. 보안여관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새로운 가치를 보여 주었고,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최 대표가 오늘날 통의동을 비롯한 서촌 일대의 부흥을 견인한 문화 기획자로 인정받는 이유다. 궁중채화의 복원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이수자인 최 대표의 작업실은 보안여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신관 4층에 자리한다. 그의 어머니는 전승이 끊어지다시피 했던 궁중채화를 되살려 낸 황수로 장인이다. 한 개인의 집념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칫 사라질 뻔했던 문화유산을 되살려 냈다. 2013년 궁중채화가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채택될 때 황 장인이 첫 번째 기능보유자가 된 이유다. 채화는 비단이나 모시 등으로 만든 꽃을 말하며, 궁중에서 왕실 연회나 주요 행사에 사용되던 것을 궁중채화라 한다. 궁궐에서는 항아리에 꽂아 어좌를 장식하는 준화(樽花), 연회 참석자들의 머리에 꽂는 잠화(簪花), 잔칫상에 올리는 상화(床花) 등으로 구분하여 사용했다. 조선 시대 각종 행사를 정리해 기록한 의궤(儀軌)에 보면, 왕의 어좌 좌우로 홍벽도화준(紅碧桃花樽) 한 쌍과 꽃으로 꾸민 무대인 지당판(池塘板) 등이 그려져 있고, 연회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왕이 하사한 홍도화(紅桃花)를 머리에 꽂고 있다. 문헌에는 꽃의 종류와 크기, 만드는 과정, 개수, 비용 등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정조(재위 1776~1799)는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8일 동안 성대한 잔치를 열었는데, 이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는 채화 1만 1,919송이가 사용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채화가 유물로 전하는 것은 없지만, 황 장인은 이러한 문헌들을 교과서 삼아 복원에 성공할 수 있었다. 채화는 염색과 조립, 설치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우선 꽃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비단을 홍화(紅花), 치자(梔子) 등 자연에서 채취한 염료로 염색하여 풀을 먹인다. 그런 다음 홍두깨로 두드려 윤기와 탄력을 더한다. 그러고 나서 꽃잎을 마름질한 다음 불에 달군 인두에 밀랍을 묻혀, 꽃이 피어 있는 모양새대로 하나씩 다려서 형태를 만든다. 여기에 송홧가루를 묻힌 꽃술을 끼워 고정한다. 준비한 가지에 완성한 꽃들을 잎, 꽃봉오리와 함께 설치하면 끝이다. 채화는 염색부터 마무리까지 손으로만 작업하기 때문에 한 종류의 꽃이라 하더라도 똑같은 빛깔과 형태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시중에서 판매하는,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 내 만든 조화(造花)와 다른 점이다. 홍벽도화준(紅碧桃花樽)은 궁중 의례 시 정전(正殿)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용도로 쓰였는데, 붉은색과 흰색의 복숭아꽃을 어좌 좌우에 각각 하나씩 배치했다. 높이가 3m에 이르러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준다. 한국궁중꽃박물관 제공 황수로 장인이 1829년 창경궁에서 열렸던 잔치에 쓰인 지당판(池塘板)을 재현한 작품이다. 지당판은 궁중 무용이 펼쳐지는 무대를 꾸몄던 도구로, 받침대 위로 좌우에 연꽃을 놓고 그 주변에 모란 화병 7개를 배치했다. 한국궁중꽃박물관 제공   어머니의 제자가 되다 최 대표는 1960년 황수로 장인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외가인 부산 초량동(草梁洞) 적산가옥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그의 외조부는 국내 최초로 코르덴이라는 직물을 생산한 태창(泰昌)기업 창업자 황래성(Hwang Rae-sung, 黃來性) 회장이고, 아버지는 도쿄대 출신의 농학자로 외조부의 뒤를 이어 회장을 지낸 최위경(Choi Wee-kyung, 崔胃卿)이다. "어머니가 무남독녀라 저는 거의 외조부모님 손에서 자라다시피 했어요. 깐깐하기로 소문난 제 어머니도 꼼짝하지 못할 만큼 엄했던 외할아버지였지만, 제겐 자상한 분이셨죠. 제가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문화 경영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 초, 그는 연극과 마당극 등을 통해 현실 참여 활동을 하며 대학 생활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다가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 제1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 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문화부 연구 단원으로 뽑혀 2년간 연수 기회를 가졌다. "13개국에서 한 명씩 뽑아 유럽 최고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죠.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박물관 수장고와 시스템들을 원하는 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여러 축제들을 비롯해 문화 기관들을 방문하고 연구해 볼 기회도 가졌습니다. 이때 전통적 가치를 동시대인의 삶에 융합하는 문화 경영에 눈을 뜨게 됐죠.” 1993년 그는 7년 반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집안 사정으로 가업을 떠맡게 됐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지 10여 년 만에 그는 보안여관으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고, 이 무렵 눈에 들어온 것이 궁중채화였다. "2007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한국공예대전에 어머니를 도와 처음으로 화준(花樽, 꽃항아리)을 출품했을 때였어요.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겠다고 저희 쪽으로 일제히 몰려드는 거예요. 꽃은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인류 공통의 언어였던 거죠.” 궁중채화에 대한 열렬한 반응은 2013년 밀라노 한국공예대전에서도 이어졌다.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서 채화가 익숙하긴 했지만, 그에게 계승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머니에게 채화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이수자가 되어도 수요가 거의 없으니, 결국에는 모두 떠나곤 했죠. 그래서 제가 전수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왜 내가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2014년 < 아름다운 궁중채화전(Beautiful Royal Silk Flower)>을 준비하면서 그제야 채화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됐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렸던 이 전시는 순조(재위 1800~1834)의 40세 생일과 등극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29년 창경궁에서 열렸던 당시의 잔치를 재현해 화제가 됐다. 이후 그는 염색부터 시작해 황 장인에게 본격적으로 전수를 받았고, 2019년 이수자로 인정받았다. 황 장인이 사재를 털어 경상남도 양산(梁山)시에 건립 중이던 한국궁중꽃박물관이 같은 해 완공돼 문을 열었다. 그는 이듬해 궁중채화의 교육과 발전을 위해 ‘궁중채화서울랩’을 열었고, 현재 어머니의 뒤를 이어 한국궁중꽃박물관장을 겸하고 있다. "궁중꽃박물관이 변하지 않아야 할 전통적 가치를 보존한다면, 궁중채화서울랩은 현대적 확장을 모색하고 실험하기 위한 연구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중채화서울랩(Royal Silk Flower Seoul Lab)에서 채화 제작을 가르치고 있는 최성우 이수자. 그는 궁중채화의 전통적 가치가 동시대에 공명(共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확장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궁중채화서울랩을 창설했다. ⓒ 한정현 현대적 조형물 최 대표는 2023년 9월부터 11월까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된 < 공예 다이얼로그 > 전시에서 전통적인 홍벽도화준과 함께 채화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도 보여 주었다. "궁중채화의 조형적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자연이 선사하는 아날로그의 극치라고 생각합니다. 채화의 전통적 가치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기법, 수단, 방법이 활용돼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언어로 표현된 창조적 조형물이 궁중채화의 전통성과 함께 구현되어야 하죠." 채화가 우리 시대에 어떻게 쓰일 것인가의 문제는 이수자이자 문화 기획자로서 그가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2023년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된 < 공예 다이얼로그 > 전시 모습. 최 이수자와 궁중채화서울랩 작가들이 함께 제작했으며, 궁중채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한국궁중꽃박물관 제공 이기숙(Lee Gi-sook, 李基淑) 작가

인플루언서가 된 한국의 캐릭터들

Arts & Culture 2024 SPRING

인플루언서가 된 한국의 캐릭터들 국내 캐릭터 콘텐츠 산업은 캐릭터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다양한 형식을 활용하는 전략을 통해 지식재산권 산업의 핵심으로 부상 중이다. 기존에는 아이들과 키덜트에 한정되었던 캐릭터 소비문화가 전 세대로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산 캐릭터들의 인기가 국내를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2022년 5월,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타임빌라스(Time Villas)에서 15m 크기의 초대형 벨리곰을 구경하고 있는 방문객들. 벨리곰은 롯데홈쇼핑이 2018년 제작한 캐릭터로,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캐릭터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 벨리곰 휴대전화 메신저의 이모티콘 서비스는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할 정도로 일상화되었다. 또한 집 앞 편의점에서 캐릭터 인형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요즘은 캐릭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캐릭터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가리키는 용어에 불과했다 캐릭터 시장의 발전 캐릭터 개념이 확장된 시기는 국내 팬시 용품 산업이 발달하면서 캐릭터 시장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1980~90년대이다. 특히 만화가 김수정(Kim Soo-jung, 金水正)의 (1983~1993)는 만화 잡지 『보물섬(Bomulseom)』에 10년간 연재되었는데, 독특한 캐릭터들과 감칠맛 나는 대사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완구, 문구를 비롯해 의류, 전자 제품, 바닥재 등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되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은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던 시기로, 당시 등장했던 인터넷 기반의 플래시 애니메이션들은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들을 대거 선보이면서 캐릭터 향유층을 넓히는 데 한몫했다. 그중 김재인(Kim Jae-in, 金在仁) 작가의 주인공인 마시마로(Mashimaro)는 ‘엽기 토끼’로 불리며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미국과 일본에 진출했다. 같은 시기, 캐릭터 디자인 기업 부즈클럽(VOOZCLUB)이 제작한 뿌까(Pucca)는 유럽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었다. 마시마로와 뿌까는 그동안 해외 캐릭터들 위주로 소비되었던 국내 시장에서 국산 캐릭터의 점유율을 높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한편 2010년대에 들어 스마트폰 도입은 캐릭터 산업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KakaoTalk)은 자체 개발한 이모티콘 캐릭터 카카오 프렌즈(Kakao Friends)를 2012년부터 서비스했는데, 큰 인기에 힘입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조사한 캐릭터 선호도 조사에서 2017년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소통의 도구였던 카카오 프렌즈는 사용자들이 캐릭터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존 캐릭터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지니며, 국내 캐릭터 산업에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팬덤 형성 현재 한국의 캐릭터 콘텐츠는 소비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기업에서 자체 캐릭터를 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1월 서울 성수동(聖水洞)에 자리한 플래그십 스토어 ‘GS25 도어 투 성수(DOOR to seongsu)’ 앞은 팝업 스토어 기간 동안 무무씨(MOOMOOSSI)를 보러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무씨가 그려진 입간판 앞에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늘어섰다. 무무씨는 편의점 브랜드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이 티베트 여우를 의인화해 2022년 론칭한 캐릭터로, 인스타그램에서 2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확보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GS리테일은 무무씨 굿즈의 1년 누적 판매량이 100만 개가 넘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고 밝혔다. 2018년 롯데홈쇼핑이 사내 벤처를 통해 제작한 캐릭터 벨리곰(Bellygom)은 기업에서 만든 자체 캐릭터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캐릭터는 유튜브에서 몰래카메라 콘텐츠를 통해 인지도를 확보하며 팬덤을 모았으며, 2022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한민국콘텐츠대상에서 캐릭터 부문 대통령상을 받았다. 최근 벨리곰의 인기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롯데홈쇼핑은 벨리곰 IP의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무무씨와 벨리곰은 이제 캐릭터가 전면에서 소비자를 모으고 팬덤을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공공 영역에서도 캐릭터를 활용한 소통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다. 지자체가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캐릭터를 활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으로 당시에는 마스코트 이상의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경기도 고양특례시가 시 홍보를 위해 2011년 개발한 ‘고양고양이’가 성공하면서 캐릭터를 통한 지역 발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경기도 용인특례시의 대표 캐릭터 ‘조아용’이 주목받고 있다. 2016년 첫선을 보인 이 캐릭터는 유튜브와 이모티콘 등 콘텐츠를 다변화하고, 신규 디자인을 꾸준히 개발한 점이 인기 유지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에버랜드와 협력하여 제작한 상품은 출시 2주 만에 4천 개가 넘게 팔려 공공 기관의 캐릭터도 상품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GS리테일이 2022년 론칭한 무무씨는 인스타그램에서 2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확보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50종에 달하는 관련 굿즈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 GS리테일 서브 캐릭터의 등장 서브 캐릭터가 주목받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잔망 루피(Zanmang Loopy)가 대표적이다. 이 캐릭터는 유아용 TV 애니메이션 의 등장인물 중 하나다. 2003년 EBS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이 작품은 주인공 뽀로로를 ‘아이들의 대통령’이라고 부를 정도로 흥행했다. 뽀로로 캐릭터 상품도 불티나게 팔려 국산 캐릭터가 수입 캐릭터 점유율을 처음으로 앞지르게 되었고, 이로써 한국 캐릭터 산업의 역사를 바꾼 주역으로 평가되었다. 한편 원작에서 뽀로로의 친구로 등장하는 비버 캐릭터 루피(Loopy)가 인터넷 밈을 통해 화제가 되고, 2020년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도 출시되었다. 원작의 뽀로로가 유아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데 반해 잔망 루피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이 캐릭터는 젊은 세대에게 각광받는다. ‘잔망(孱妄)’은 행동이 얄밉고 맹랑하다는 뜻이지만, 속시원하게 할 말을 하는 야무지고 귀여운 캐릭터로 인식되면서 젊은 층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캐릭터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불가리의 앰버서더로 활동하거나 『보그 코리아』 화보 모델이 되는 등 캐릭터 컬레버래이션의 범위를 크게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잔망 루피의 인기가 중국에까지 확산되는 중이다. 2023년 5월 중국 SNS 플랫폼인 샤오훙수(Xiaohongshu, 小紅書)에 개설된 공식 계정은 7개월 만에 팔로워 수가 440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 20~30대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잔망 루피는 2003년 EBS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TV 애니메이션 의 등장인물 중 하나다. 인터넷 밈을 통해 화제가 되면서 인기 캐릭터로 부상했고, 국내외 유명 브랜드들의 앰버서더나 모델로 다양하게 활동 중이다. 2023년에는 생수 브랜드 제주삼다수와 컬래버레이션하여 친환경 메시지를 전했다. ⓒ I/O/E/SKB 다양한 플랫폼 캐릭터 산업은 이제 단순한 굿즈 판매를 넘어선다. 캐릭터가 팬덤을 형성하는가 하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로 활동한다. 이는 캐릭터 향유층의 세대 변화가 주요한 원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와 게임을 통해 캐릭터 소비가 익숙했던 세대가 어른이 되면서 캐릭터 산업의 주요 소비층이 된 것이다. 아이들이나 일부 키덜트의 문화로 여겼던 캐릭터 소비가 어른들의 문화로 확장되었다는 뜻이다. 더불어 각자의 취향과 취미를 존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젊은 세대의 성향은 캐릭터 콘텐츠가 다른 영역으로 확장될 때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토대가 된다. 캐릭터의 세계관을 확장하며 시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예전에는 캐릭터 콘텐츠 소비가 TV 같은 전통적 매체에서 주로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구축한 채널을 비롯해 유튜브, 틱톡, SNS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각적으로 유통된다. 이에 따라 콘텐츠 표현과 제작 방식이 더욱 자유로워졌고, 젊은 세대의 감성을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기존에는 캐릭터로 어떤 파생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지만, 이제는 캐릭터를 통해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국내 캐릭터 IP 시장은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16조 2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일본과 미국 중심이었던 캐릭터 콘텐츠의 패러다임이 한국으로 이동하면서 K-캐릭터도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몰랑이(Molang)는 일러스트레이터 윤혜지(Yoon Hye-ji, 尹憓智)가 2010년 온라인을 통해 발표한 캐릭터로, 프랑스 애니메이션 제작사 밀리마주(Millimages)가 2015년부터 TV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으며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큰 인기에 힘입어 여러 브랜드들과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연남동에 자리한 갤러리 몰랑(Gallery Molang)의 내부. ⓒ 하얀오리(Hayanori)

새로운 K-코미디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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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K-코미디의 흐름 최근 한국의 코미디, 이른바 K-코미디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탈피해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로 주 무대가 바뀌면서 형식도 내용도 변화했다. < 피식대학(Psick University) > 은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피식대학의 인기 콘텐츠인 피식쇼에 가수 전소미가 게스트로 출연한 모습이다. 국내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다니엘 시저, 미국 아티스트 미스치프 등 국내외 명사들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지난해 2023 백상예술대상에서 유튜브 채널로서는 최초로 TV 부분 예능 작품상을 받았다. ⓒ 메타코미디 “제 생각에는 코미디와 예술은 정말 많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시대가 변하게 되면 새로운 예술가들이 탄생하기 마련이죠. 이를테면 후기 인상주의처럼요. 우리는 유튜브의 반 고흐, 폴 고갱 그리고 폴 세잔입니다.” 유튜브 채널 < 피식대학 > 에 2021년 11월 업로드 된 콘텐츠 ‘더 토크’에서 “코미디는 뭐라고 생각하느냐”라는 MC의 질문에 개그맨 이용주가 답한 말이다. 그는 함께 < 피식대학 > 을 이끄는 김민수, 정재형 그리고 자신을 각각 ‘유튜브의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이라 칭했다. < 피식대학 > 이 던지는 출사표 인터뷰 형식의 ‘더 토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코미디다. 유튜브라는 글로벌 플랫폼에 걸맞게 글로벌 토크쇼를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 여성이 MC를 맡아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물론 중간중간 콩글리시와 한국어가 사용되지만, 이들의 태도는 마치 미국의 유명 토크쇼에 출연한 것처럼 자신만만하다. 과도한 자신감으로 시작부터 자신들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최고의 코미디 그룹’이라고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건 코미디면서 동시에 이들의 새로운 출사표처럼 여겨진다. 달라진 시대에 달라진 예술가가 나오듯, 자신들 역시 새로운 코미디를 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 다소 황당해 보이는 토크쇼는 ‘더 피식 쇼(The PISIC SHOW)’라는 이름으로 < 피식대학 > 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채널 구독자 수 293만 명(2024년 3월 기준)에 달하는 < 피식대학 > 은 한때 주말 저녁만 되면 온 가족을 TV 앞으로 모이게 했던 공개 코미디의 시대가 저물면서 급부상했다. KBS < 개그콘서트 > , SBS < 웃찾사 > , MBC < 개그야 > 까지 한동안 스타 개그맨들이 탄생했던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한 때 공개 코미디의 전성시대를 구가했지만,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프로그램이 하나둘 폐지됐다. 급기야 지난 2020년 6월, 끝까지 버텨왔던 < 개그콘서트 > 마저 폐지되면서 공개 코미디 시대가 끝을 맺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3년 11월 < 개그콘서트 > 가 부활했지만 그 힘이 예전 같지는 않다. 그저 KBS라는 공영방송으로서 코미디의 명맥을 잇는다는 명분에 머무는 정도다. 공개 코미디의 시대가 저무는 사이, 여기서 빠져나온 개그맨들은 유튜브에 둥지를 틀고 새 길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개 코미디가 갖는 ‘서바이벌 구조’ 때문에 역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던 개그맨들이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꾸리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이후 유튜브에 적응된 코미디 콘텐츠들이 생겨나 인기를 끌면서 점점 채널 자체가 브랜드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한사랑산악회’나 ‘05학번이즈백’, ‘B대면데이트’ 같은 히트 코너를 만든 < 피식대학 > 이나 ‘장기연애’ 같은 하이퍼 리얼리즘의 성격을 가진 스케치 코미디를 만든 < 숏박스 > 가 대표적이다. 피식대학 콘텐츠 ‘05학번 이즈 백’에서 파생된 ‘05학번 이즈 히어’는 2005년 캠퍼스를 주름잡던 이들이 중년이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0년대 한국의 30대가 당면한 사회상과 신도시 기혼 부부의 일상을 섬세하게 모사하여 시청자들의 공감과 인기를 얻었다. ⓒ 메타코미디 산악회에 소속되어 있는 중년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그린 피식대학의 ‘한사랑 산악회’는 주변에 정말 있을 법한 아저씨들의 모습을 다양한 캐릭터와 디테일을 살려 보는 재미를 더했다. ⓒ 메타코미디 달라진 미디어 플랫폼, 달라진 코미디 형식 달라진 미디어 플랫폼은 그 위에 얹어지는 코미디에도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공개 코미디는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치는 콩트 코미디에 머물러 있었다면, 유튜브 같은 새로운 미디어에서의 코미디는 배경부터 일상으로 옮겨졌다. 초창기에는 일상에서 펼쳐지는 몰래카메라가 인기를 끌더니 이후에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하이퍼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스케치 코미디가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중이다. 또 개그맨 곽범, 이창호가 이끄는 < 빵송국 > 에서는 보정카메라를 이용해 탄과 제이호라는 2인조 보이 그룹 매드몬스터를 만들었다. 부캐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이 만들어지면서 이른바 ‘세계관 코미디’라는 장르가 생겨났다. 세계관이 갖는 과몰입은 그 가상 설정이 마치 진짜인 듯 몰입해 주는 팬들에 의해 실제 현실에서의 커머셜로 이어지기도 했다. 매드몬스터를 캐릭터로 한 굿즈 상품 같은 것들이 이벤트로 판매되기도 했던 것. 이처럼 레거시 미디어에 머물러 무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코미디들은 유튜브라는 열린 세계를 만나 그 소재나 형식 또한 다양해졌다. < 피식대학 > 의 ‘피식쇼’ 같은 코너는 유튜브라는 글로벌 플랫폼 덕분에 가능한 인기 토크쇼가 되었다. BTS RM에서부터 박재범, 손석구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은 물론이고 글로벌 스타나 명사들도 출연할 정도로 인기다. 그래서 영화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의 배우 크리스 프랫이나 영화감독 제임스 프랜시스 건 주니어에게 세계 최고의 쇼에 출연한 기분을 묻고, 소설 「개미」의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개미투자자의 미래를 묻는 식의 토크 코미디의 세계가 열렸다. 또 각각의 채널을 운영하면서도 이미 개그맨 선후배들로 연결된 이들의 관계는 다양한 협업을 통한 세계관의 또 다른 결합을 가능하게 했다. 일종의 유튜브를 플랫폼으로 하는 코미디 유니버스가 열린 것이다. 이후 유튜브에서 이미 확고한 브랜드를 갖고 있는 채널들이 모여 하나의 코미디 레이블인 메타 코미디가 설립되기도 했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하는 코미디 레이블이 의미 있는 건, 그간 개인 채널로 산재해 있던 유튜브 코미디를 하나로 연합함으로써 실질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하게 됐다는 점과 이로써 레거시 미디어의 코미디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코미디를 선언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매드몬스터’는 빵송국의 구독자 수를 폭발적으로 높인 대표 콘텐츠다. 스마트폰 카메라 앱의 뷰티 필터 효과를 이용해 2인조 보이 그룹을 컨셉으로 활동했다. ⓒ 메타코미디 K-코미디, 글로벌 반향 가능할까 우리가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배우였던 찰스 스펜서 채플린 주니어의 연기나 영국의 대표 시트콤 중 하나인 < 미스터 빈 > 을 보며 웃고 즐겼던 것처럼 코미디에 그 시대나 국가, 언어의 장벽이 있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이들 코미디가 언어보다 보다는 원초적인 몸의 언어를 활용하고 있는 특징을 보면 언어적, 문화적 장벽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웃음에는 그 문화권만이 갖는 독특한 정서 같은 것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오히려 이러한 정서적 장벽들을 허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피식쇼가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로 활동하는 월터 홍을 만났을 때, 그는 이 쇼에서 어설픈 영어를 하는 개그맨들을 콕 짚어 “영어가 구리다”고 말하면서 언어유희를 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용주가 ‘소개’라는 단어를 ‘Cow Dog’라고 표현하자, 월터 홍도 맞장구를 치며 ‘Cow Crab’이라고 하는 과정에서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 장벽을 웃음이라는 코드로 승화시키기 때문이다. 웃음의 기원 중에는 낯선 이들이 야생에서 만났을 때 서로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즉 웃음에서 서로 다른 문화나 정서, 언어 같은 건 애초 넘지 못할 장벽이 아니라 넘어서야 하는 장벽으로서 존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 피식대학 > 같은 자칭 ‘세계에서 제일가는 최고의 코미디 그룹’이 앞으로 이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어떤 행보를 그려갈 것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K-코미디가 글로벌을 향해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웃음을 매개로 그간 장벽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허물어가는 길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정덕현(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 평론가

짭짤하고 구수한 바다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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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짤하고 구수한 바다의 맛 미역과 간장, 참기름을 메인 식재료로 끓이는 미역국은 싱싱한 미역이 주는 식감과 구수하면서도 감칠맛이 있는 국물이 만나 바다의 풍미를 자아낸다. 미역국은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태생부터 한국요리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생일을 맞은 사람이나 출산한 산모의 상차림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미역국은 한국인의 출생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음식이다. 한국에서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짭짤하다는 말은 대부분 맛깔스러운 감칠맛을 설명할 때 쓴다. 짠맛의 정도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을 잘 맞췄을 때 한국 음식은 감칠맛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절한 짠맛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한 한국의 국물 요리 중 하나가 바로 미역국이다. 친근하고 특별한 음식 한국인에게 미역국은 친근하고 다정한 음식이다. 메인 식사로, 때로는 술안주나 다이어트식으로도 즐겨 먹는 대중 음식이기도 하지만, 미역국이 친근하고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에서는 산모가 출산하면 식사로 미역국을 챙겼다. 왜 하필 미역국이었을까? 미역은 단백질과 당질, 섬유질, 칼슘, 비타민 A, 칼륨, 셀레늄 등을 비롯해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미역의 철분과 요오드 성분은 몸속 혈액의 원활한 흐름을 돕고 높은 철분 함유량으로 빈혈 예방에 탁월하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산모가 출산하면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통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한국 사람들을 생일이 되면 태어난 날을 기념하며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생일날 온 가족이 모여 미역국을 나누어 먹으며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한국의 풍습이기도 하다. 반대로 미역국 먹기를 꺼리는 날도 있다. 시험을 보는 날과 면접을 보는 날이다. 시험이나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뜻으로 쓰이는‘미역국 먹다’라는 말이 국어사전에도 있을 정도로, 이 두 날에 미역국을 먹으면 미끈거리는 미역국 때문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조리법 미역국의 레시피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재료는 마른미역과 소고기, 조선간장, 참기름, 그리고 소금 정도만 있으면 된다. 마른미역은 물에 넣고 충분히 불린 다음 물기를 짜고 4~5cm의 길이로 자른다. 소고기는 메인 재료라기보다 고소한 풍미를 살려주는 토핑 개념으로, 가로세로 1~2cm 크기로 작게 자른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른 후 준비한 소고기와 미역을 넣어 겉면이 익을 때까지 볶는다. 이때 미역과 소고기에서 나오는 감칠맛이 고소한 참기름과 어우러지면서 맛깔스러운 향을 뿜어낸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여기에 물을 추가로 넣은 다음 조선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30분 이상 끓여주면 완성이다. 물은 생수를 넣어도 되지만 더욱 진한 맛을 내려면 멸치로 우려낸 육수나 쌀뜨물, 또는 사골국물(소뼈를 장시간 우려 만든 국물로 묵직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을 넣으면 된다. 미역국에 다진 마늘을 조금 넣으면 풍미가 더 살아나는데 미역과 소고기 본연의 맛에 집중하고 싶다면 생략해도 좋다. 미역국의 가장 기본 형태는 미역과 소고기를 재료로 만든 것이며, 지역 환경이나 특산물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오래 끓일수록 깊어지는 맛 미역 특유의 오독오독하면서도 미끌미끌한 식감과 짭짤한 국물, 고소한 소고기와 만나면 그 감칠맛이 배가된다. 미역은 해초의 일종인데 바닷속에 살면서 바다 향을 가득 품고 있기 때문에 그냥 먹으면 바다의 짠맛과 비릿한 맛이 강하게 난다. 그러나 깨끗하게 씻은 후 물에 불리는 과정을 통해 짠맛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가 은은한 바다의 맛과 향만 남는다. 미역을 소고기와 함께 참기름에 볶고 또 물에 끓이는 동안 각 재료의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미역국은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감칠맛이 더욱 살아난다. 끓인 후 바로 먹을 때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먹을 때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뜨끈한 미역국에 달게 지은 흰 쌀밥을 말아 맛있게 담가 푹 익힌 김치를 올려 먹으면 그 자체로 한 끼 보약이 된다. 뜨겁고 묵직한 감칠맛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면서 또 가장 익숙한 맛이다. 미역국처럼 미역이 메인 재료가 되는 국물 요리는 한국에만 있는 전통음식이다. 다른 나라에선 구경조차 어렵다. 간혹 일본에서 미소된장국에 미역을 넣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매우 소량인 데다 어디까지나 된장이 메인이지, 미역이 주인공인 메뉴는 아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미역국은 외국에선 다소 생소한 음식으로 통한다. 서울 종로구에서 한식 레스토랑 두레유를 운영 중인 토니 유 셰프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해외 각국의 유학생들 모두 미역국을 보곤 “이 시커멓고 미끄덩거리는 이상한 물체는 무엇이냐?”라며 질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 맛을 본 후로는 “앙코르 미역국”을 요청했다. 그들에게 미역국은 생소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성 있는 맛있는 미역 스튜였던 것이다. 산모 미역이라 불리는 미역은 바다에서 갓 채취해 해풍과 햇볕으로 말린 것을 말하며, 억세지 않고 진한 국물을 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지역별로 특색 있는 미역국 한국의 국물 요리는 그 종류가 무엇이 됐든 대체로 지역마다, 가정마다 먹는 형태나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이는 지역별 특산물이 다르고 집마다 즐겨 먹는 재료 또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역국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미역과 소고기를 넣는 것이지만 소고기 대신 바지락이나 동죽, 홍합과 같은 조개류를 넣기도 하고 가자미나 꽁치, 갈치 등의 생선 종류를 넣기도 한다. 그야말로 육해공을 어우르는 국물 요리인 셈이다. 꽁치 요리를 즐기는 울릉도에서는 소고기 대신 꽁치를 넣은 꽁치 미역국을 먹는다. 이때 꽁치는 살만 발라내 녹말가루, 달걀물 등의 재료와 함께 반죽한 후 작은 볼 형태로 만들어 국물에 넣는 것이 특징이다. 꽁치는 다른 생선에 비해 지방이 많지 않고 고소해 미역국에 넣었을 때도 전혀 비리지 않고 오히려 담백한 매력이 있다. 경상도의 일부 지역에선 새알 미역국을 먹는다. 새알은 찹쌀가루를 동그랗게 말아 반죽한 것으로 쫀득거리는 새알의 식감과 미역의 오독오독한 식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자아낸다. 제주도 지역으로 가면 성게알을 넣고 끓인 성게알 미역국이 있다. 자연산 성게알은 한국에서 매우 귀한 재료로 통하는데, 마치 푸딩을 먹는 것처럼 크리미하면서 특유의 신선하고 짭짤한 바다의 향이 가득해 제주도의 성게알 미역국은 일반 미역국과 다르게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밖에 북어(생선 명태를 말린 것)를 넣은 북어 미역국,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넣은 닭고기 미역국, 갈치를 넣은 갈치 미역국, 새우를 넣은 새우 미역국 등 한국에서 먹는 미역국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변주 미역국의 종류가 다양하고 한국인이 오랫동안 즐겨 먹은 것에 비해 한국에 미역국 전문식당이 많지 않은 건 아이러니하다. 아무래도 미역국은 가정에서 쉽게 끓여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해 외식 아이템으로서는 비교적 인기가 없었던 이유가 크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는 미역국 맛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일반적인 소고기 미역국 대신 특별한 재료를 넣은 미역국을 선보인다. 그중 가자미 생선을 통째로 넣어 압도적인 비주얼을 살린 가자미 미역국, 고급 재료인 전복을 넣은 전복 미역국, 소고기 중에서도 매우 귀하고 비싼 부위로 통하는 차돌박이를 가득 담아낸 차돌박이 미역국 등이 인기다. 미역국에 들어가는 물도 일반 생수 대신 다양한 조개류와 육류를 넣고 오랜 시간 끓인 육수를 사용해 맛이 훨씬 풍부하고 진하다. 평범한 미역국이지만 색다른 재료와 특별한 육수를 조합하니, 또 하나의 새로운 요리로 탄생한 것이다. 혹시나 한국에 방문하게 된다면 반드시 미역국을 맛보길 바란다. 시커멓고 미끄덩한 미역의 모양새가 낯설게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뜨거운 미역국에 갓 지은 찰진 밥을 말아 한 그릇 든든하게 비우고 나면 이만큼 귀한 음식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작가

살기 좋은 마을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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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마을의 비결 경상북도 예천(醴泉)은 산악 오지인 동시에 낙동강이 휘돌아나가는 물의 고장이다. 또 조선시대 사회의 난리를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여 곳의 피난처를 꼽은 ‘십승지지(十勝之地)’ 마을도 있다. 자연환경에서 비롯되는 풍요로움과 공동체 결속을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예천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 한국관광공사 예천의 지리적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가볼 곳이 있다. 회룡포(回龍浦) 전망대이다. 장안사(長安寺)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언덕길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강인 낙동강(洛東江)의 지류, 내성천(乃城川)을 조망할 수 있다. 동쪽에서 흘러온 물길이 180도 휘어지더니 다시 180도를 돌아 나가는데, 유장하게 흘러가는 그 모습이 마치 비상하는 용의 몸짓을 닮았다. 회룡포라는 이름을 얻은 까닭이다. 강들이 만나는 물류망의 핵심   회룡포에서 직선거리로 2킬로미터 남짓한 곳에 삼강주막(三江酒幕)이 있다. 세 개의 물길, 즉 회룡포를 지나 흘러온 내성천과 북서쪽에서 내려온 금천(錦川), 그리고 동쪽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주막이다. 지금이야 고속도로와 철도, 항공로가 주요한 물류 루트지만, 지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물류는 주로 물길로 이어졌다. 수레나 등짐보다 평평한 나룻배나 뗏목을 이용하면 그 어떤 교통수단보다 많고 무거운 물량을 상대적으로 쉽게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룻배나 뗏목이 못 갈 정도로 얕다면 그때부터는 완만한 하천 주변 길을 이용하면 되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역사가 깊은 도시들의 이름은 ‘주(州)’ 자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巛 또는 川)과 그 사이의 하중도(河中島)를 본뜬 상형자로서, 이후에는 마을을 거쳐 도시를 상징하는 어휘로 확장되었다. 여러 나라들이 그러했듯 한반도 역시 옛 도시들은 거의 모두 하천을 끼고 탄생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예천도 마찬가지였다. 삼강주막이 그 상징이다. 지난 1900년까지만 하더라도 나룻배들이 하루에 서른 번 넘게 왕래했던 발 디딜 틈 없이 바쁜 물류의 중심이자 휴게소, 그리고 식당과 숙소였다. 다만 1934년 대홍수로 근방의 건물들이 모두 사라졌고, 지금은 삼강주막과 그 옆에 있는 수령 500여 년의 회나무 한 그루만이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다행히 그 시절 나그네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을 배추전과 막걸리를 옛 삼강주막 바로 옆에 새로 지은 주막에서 맛볼 수 있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삼강주막. 과거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사람들과 보부상, 사공에게 식사를 해주거나 숙식을 제공하던 건물이다. ⓒ 예천군 예천의 대표 축제로 자리잡은 삼강주막 나루터 축제에서 전통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 ⓒ 예천군   살기 좋은 마을 한국인의 전통적 이상향을 담아 살기 좋은 곳으로 꼽은 십승지지(十勝之地)는 대개 골 깊은 내륙 오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옥토가 펼쳐져 있고 물류망도 잘 갖춰져 있어 예부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경상북도 예천에도 십승지지 중 한 마을이 있다. 삼강주막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금당실(金塘室)마을이 십승지지 중 한 곳이다. 마을 안팎에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을 만큼 이미 오래전부터 거주지로서 주목을 받아온 금당실마을은 현재 수십 채의 고풍스러운 한옥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한옥들은 약 7킬로미터에 달하는 돌담길로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유유히 마을을 걷다 보면 이내 왜 이곳이 십승지지 중 한 곳으로 일컬어지는지 알 수 있다. 북쪽은 높은 소백산맥(小白山脈)으로 막혀 있고, 마을 주변에는 논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또한 물류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주요 도시 간의 이동로에서는 빗겨나 있어 군사상의 중요성은 작아 보이는 위치다. 순탄하고 풍요롭게 살아가기에 더없이 훌륭한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마을 북서쪽 끝에 있는 송림(松林)에서는 안전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도 엿볼 수 있다. 이 송림에는 900여 그루의 소나무가 800미터에 걸쳐 자라고 있다. 마을 앞을 흘러가는 금당천(金塘川)이 종종 범람하자, 주민들이 수해(水害) 방지를 위해 힘을 합쳐 조림한 숲이다. 수령이 100~200년에 달하는 것으로 보아 그 오랜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풍광도 뛰어나고 역사성도 있어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그리고 요즈음 같은 봄에는 송림도 송림이지만, 송림 근처 용문사(龍門寺)까지 7킬로미터 남짓한 구간을 수놓는 벚꽃길도 일품이다. 금당실마을에 들를 예정이라면 시간을 충분히 잡아야 하는 이유다. 한옥에서 숙박하며 송림 산책을 하고, 이어 벚꽃길도 걸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주민들이 이 마을에서 그저 안빈낙도(安貧樂道)에 안주하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송림의 경우에서처럼 범람과 같은 자연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아가 십승지지 특유의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문화도 발전시켜 왔다. 그 예를 살펴보기 위해 벚꽃길 중간쯤에 있는 초간정(草澗亭)으로 가보자. 조선시대 전통가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금당실마을.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고택 각종 문화재가 산재해 있으며, 미로 같이 이어진 돌담길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송림도 마을의 볼거리다. ⓒ 예천군 풍요를 바탕으로 꽃피운 문화 초간정은 16세기 조선의 문신 초간 권문해(草澗 權文海 1534~ 1591)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심신 수양을 위해 세운 정자이다. 계곡 한쪽의 수직 암반 위에 지어 올렸는데, 그 모습이 원래부터 그곳에 있던 것처럼 모나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일교차가 큰 봄에 물안개까지 피어오르면 신비로움이 배가 되는데, 이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사는 십승지지를 넘어 마치 신선이 노니는 상상 속 이상향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초간정이 겉모습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곳은 권문해가 한반도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일컬어지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편찬한 서재이기도 하다. 이 사전은 고대부터 15세기까지 한반도의 역사와 지리, 인물, 동식물, 설화 등을 총망라한 것으로, 모두 20권(卷) 20책(冊)으로 이뤄져 있다. 옛 책을 헤아릴 때 쓰는 단위 중 ‘권’은 내용 분류에 따른 장(章, chapter)의 개념이고, ‘책’은 오늘날 쓰는 낱개 수량을 뜻한다. 즉 『대동운부군옥』은 20가지의 주제를 20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말이다. 권문해의 아들 권별(權虌 1589~1671)이 『대동운부군옥』에서 벼슬을 지낸 이들의 이야기만을 선별해 만든 인물사전식 문헌설화집인 『해동잡록(海東雜錄)』을 저술한 곳도 초간정이었다. 19세기 중반에는 배상현(裴象鉉 1814~1884)이 형법과 논밭과 관련한 여러 제도와 지리 등을 정리한 『동국십지(東國十志)』를, 박주종(朴周鍾 1813~1887)은 조선의 전통문화를 14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정리한 『동국통지(東國通志)』 등을 잇달아 편찬했다. 그런 면에서 예천은 백과사전의 보고(寶庫)와도 같다. 예천의 사대부들은 풍요로움을 향유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지식과 노하우를 타인, 나아가 후세대에 전수하기 위해 애썼고, 실제 이루어냈다. 인공적으로 만든 원림과 조화를 이루며 조선시대 정자 문화를 잘 보여주는 초간정(草澗亭)의 모습. ⓒ 예천군 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지혜 공동체의 안녕과 결속을 위한 절묘한 지혜들도 놀랍다. 예천에는 무려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나무가 두 그루나 있다. 퍼진 가지의 너비가 동서 23미터, 남북 30미터에 달하는 ‘석송령(石松靈)’이라는 거대한 소나무와 그에 준하는 ‘황목근(黃木根)’이라는 팽나무다. 수령 600년이 넘는 석송령이 한국 최초의 재산을 소유한 나무가 된 연유는 이렇다.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겐 자식이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1927년 본인의 토지 6,600㎡를 이 소나무에 상속 등기한 뒤, ‘영험한 소나무’라는 뜻에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자식이 없어도 그렇지, 토지를 일가친척이나 친한 이웃 등에게 상속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비밀의 실마리는 나무가 소유한 토지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가 꼬박꼬박 임대료를 내고 있으며, 그 임대료로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이수목은 특정 개인에게 상속함으로써 마을에 분란의 소지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웃들이 나무와 토지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는 공공의 번영을 위해 쓰이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뜻이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주민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석송령을 보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행여 아래로 쳐진 석송령의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돌로 가지를 받치고, 겨울이면 가지에 눈이 무겁게 쌓이기 전에 쓸어낸다. 벼락이라도 맞을까 봐 피뢰침도 설치해 두었다. 그동안 석송령의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친 학생이 수십 명에 달하기 때문이며, 지금도 혜택을 받는 청소년들이 있어서이다. 석송령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황목근도 비슷한 경우다. 매년 5월이면 나무 전체에서 노란 꽃을 피워 황목근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팽나무는 보유 토지의 면적이 석송령의 두 배가 넘는 13,620㎡나 된다. 다만 특정 개인에 의한 상속의 결과는 아니다. 마을의 공동재산이던 토지를 1939년 황목근 앞으로 이전등기(移轉登記)하면서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당연히 황목근 소유의 토지에서도 임대료가 발생하는데, 마을의 중학생들에게 매년 30만 원 정도씩 장학금으로 전달된다고 한다. 사실 황목근이 있는 금원(琴原) 마을에서는 이미 100여 년 전부터 각 가정마다 밥을 짓기 전에 쌀을 한 수저씩 떠 모아 공동 재산을 형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1903년의 ‘금원계안(琴原契案) 회의록’과 1925년의 ‘저축구조계안(貯蓄救助契案) 임원록’ 등이 그것이다. 마을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누구에게라도 어려운 일이 닥칠 때를 대비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나무인 석송령. 나무의 키에 비해 가지의 길이가 무려 세 배에 달하는 기이한 모습이다. 옆으로 길게 뻗은 가지를 지탱하기 위해 돌기둥을 받쳐두었다. ⓒ 권기봉(權奇鳯) 진정한 십승지지의 요건 공동체의 결속과 평화를 위해 서로를 배려하는 지혜는 예천의 남쪽에서 절정에 달한다. 거기에 ‘말무덤(言塚)’이라는 것이 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언덕 같아 보이지만, 인공적으로 바위와 흙을 돋워 마치 거대한 무덤처럼 만든 구조물이다. 오랜 옛날 주민들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이 그치지 않자, 말(言)을 묻어 버리자며 무덤(塚)을 만든 것이다. 본디 모든 싸움의 씨앗은 말이기 때문이다. 고즈넉하면서도 들이 넓고 물류망이 잘 갖춰져 있어 예부터 십승지지로 이름 높았던 금당실마을과 예천의 곳곳…. 그러나 십승지지는 자연과 지리적 요건이 갖춰졌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공감,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관심과 배려가 있을 때라야 비로소 십승지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경북 예천을 여행하다 보면 비록 정답은 아닐지언정 그와 관련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마을 주민들 간 싸움이 잦자 싸움의 시작이 되는 말(言)을 묻자는 것에서 시작된 말(言)무덤. 이곳에는 무덤과 함께 말조심을 표현하는 각종 문구가 돌에 새겨져 있다. ⓒ 신중식(申中植) ⓒ KOREA TOURISM ORGANIZATION ⓒ KOREA TOURISM ORGANIZATION ⓒ KOREA TOURISM ORGANIZATION ⓒ YecheonCountry 권기봉(KWON Ki-bong 權奇鳯) 작가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작가

애환과 낭만의 음식, 빈대떡

Arts & Culture 2023 WINTER

애환과 낭만의 음식, 빈대떡 녹두 가루에 물과 각종 채소, 고기를 넣고 걸쭉하게 만든 반죽을 뜨겁게 예열한 프라이팬에 올려 노릇노릇하게 부쳐 먹는 빈대떡은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독보적인 한국의 전통 음식이다. 밀가루를 사용하는 부침개와 달리 녹두를 사용하는 빈대떡은 한국의 대표적인‘겉바속촉’ 요리다. 한국에서 음식 맛을 설명하는 단어 중 ‘겉바속촉’이라는 표현이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문장을 줄인 말로, 주로 뜨겁고 바삭한 식감의 튀김이나 부침개 종류의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러한 ‘겉바속촉’의 맛을 지닌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빈대떡이다. 바삭한 맛이 일품 빈대떡은 큰 의미에서는 ‘부침개’ 또는 ‘전’으로 불리는 한국식 부침 요리의 한 종류이다. 부침개는 바닥이 평평하고 넓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각종 채소나 육류, 생선 등의 재료에 밀가루나 달걀물을 입혀 기름에 부쳐내는 음식으로 한국의 명절이나 잔칫날에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요리다. 빈대떡이 일반 부침개와 다른 점은 밀가루 대신 맷돌에 간 녹두를 이용해 부쳐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다. 갈은 녹두에 나물, 고기 등을 넣고 반죽한 후 기름을 넉넉히 두른 묵직한 팬에다 두툼하게 반죽을 편 다음 튀기듯 부쳐낸다. 센 불에서 익힌 빈대떡은 부침개보다 겉면이 좀 더 바삭바삭하고 힘이 있는 편인데, 이는 녹두의 질감이 밀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일반 부침개가 가늘고 부드러운 식감에 가깝다면, 빈대떡은 묵직하고 단단한 식감이 특징이다. 기름에 튀겨지듯 부쳐낸 빈대떡을 한입 베어 물면 입에 착 감기는 고소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녹두가 지닌 특유의 풋내는 다른 재료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감칠맛이 배가 된다. 빈대떡에 들어가는 재료는 고사리나 숙주, 대파, 김치, 고추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같은 빈대떡이라고 해도 집마다 재료의 사정은 달랐다. 재료가 풍족한 집은 각종 나물과 김치에 간 돼지고기까지 넣고 부쳐 먹었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녹두 반죽만 기름에 부쳐 먹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빈대떡만큼 값싼 재료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빈대떡의 유래 300도가 넘는 뜨거운 불판에 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간 녹두 반죽을 튀기듯 부쳐내어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높이 쌓을 때 제기(祭器) 밑받침용으로 이 빈대떡을 작게 만들어 썼는데, 그 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요리가 되면서 크기도 먹음직스럽게 크게 바뀌고 이름도 ‘빈자(貧者)’ 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밖에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의 ‘빈대(賓對)’를 넣어 빈대떡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어느 집의 적선이오” 하면서 던져주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빈대떡을 즐겨 먹었던 곳이 북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의 빈대떡의 역사도 함께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많은 공공기관과 가정집들이 무너졌는데 폐허가 된 집과 상가에서 실향민들은 터를 잡고 국밥이나 부침개, 막걸리 등을 팔기 시작했다. 당시 빈대떡은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많은 이들의 설움과 배고픔을 달래주는 애환의 음식이자, 값싼 가격에 배를 불렸던 서민의 음식이었다. 만인이 사랑하는 음식 서울 중구 을지로나 광장시장에는 40~50년은 거뜬히 넘긴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빈대떡을 제대로 요리하려면 ‘라드’라고 부르는 돼지기름을 사용해야 한다. 식용유나 참기름(참깨를 짜서 만든 한국식 오일)을 사용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소한 감칠맛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300도가 넘는 뜨거운 불판에 돼지기름을 넉넉히 두른 후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가 들어간 녹두 반죽을 튀기듯 부쳐내면 흔히 말하는 ‘겉바속촉’ 식감에 고소한 돼지기름이 속속들이 베어들어 제대로 된 빈대떡의 맛이 구현된다. 서울 중구 을지로나 광장시장에는 40~50년은 거뜬히 넘긴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3대째 운영 중인 박가네 빈대떡은 빈대떡을 전통 방식으로 두툼하게 부쳐내는 곳으로 빈대떡에 편육(삶은 육류를 틀에 넣고 누른 다음 차게 식혀 얇게 썰어 먹는 음식)과 어리굴젓(생굴로 담근 젓갈)을 올려 먹는 ‘삼합’ 요리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빈대떡에 쫄깃한 편육과 매콤한 어리굴젓이 제법 잘 어울린다. 박가네 빈대떡 외에도 광장시장을 비롯한 서울 각지에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빈대떡집들이 꽤 있다. 대부분 묵직하고 넓적한 불판에 종일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빈대떡과 부침개를 부치고 있는 모습을 통 창문으로 볼 수 있도록 개방형 주방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나가는 이들은 빈대떡의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오게 되고, 빈대떡을 열심히 부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다양하게 즐기는 맛 빈대떡은 다양한 토핑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 여러 가지 메뉴로 변신이 가능하다. 또 속까지 완전히 익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육류나 채소, 해산물 등 어떠한 재료를 넣어도 잘 어우러진다. 40년이 넘도록 프랜차이즈 사업을 탄탄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는 빈대떡 브랜드 JBD 종로빈대떡은 김치 빈대떡과 낙지 빈대떡, 굴 빈대떡, 해물 빈대떡 등 다양한 종류의 빈대떡 메뉴를 선보인다. 고소한 녹두의 맛이 기본으로 받쳐주니 어떠한 토핑을 올려도 매력적인 맛으로 융화된다. 특히 굴을 잔뜩 올린 후 바삭하게 부쳐낸 굴 빈대떡은 특유의 굴 향과 고소한 녹두의 맛이 잘 어우러져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메뉴다. 빈대떡은 막걸리와도 궁합이 좋아 한때 막걸리와 빈대떡을 메인으로 내세운 브랜드들이 시장에 대거 생겨났다. 현대적인 인테리어, 세련된 플레이팅의 빈대떡 한 상 차림을 구현하거나 옛 감성을 살린 복고풍 매장까지 콘셉트도 매우 다양하다. 최근에는 다양하게 변주된 빈대떡 메뉴에 전국각지에서 생산되는 수십 가지의 전통주를 페어링하여 선보이는 한식주점도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식으로도 인기 빈대떡은 한국전쟁 이후 대중화되기 시작한 길거리 음식, 추억과 애환이 묻어있는 서민 음식이라는 인상 때문에 그러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등에 업고 현재까지도 ‘국민 안주’, ‘국민 간식’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여기에 ‘건강식’ 키워드까지 더해 현재는 웰빙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빈대떡의 주재료인 녹두가 해독과 해열 기능뿐 아니라 피부질환이나 신장 기능 강화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녹두 빈대떡을 레토르트나 HMR 상품으로 출시하는 곳도 늘고 있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프라이팬에 냉동 상태의 빈대떡을 별도의 해동 과정 없이 그대로 올려 굽기만 하면 되므로 가정에서도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합리적이고 식당에서 먹는 것만큼 맛의 완성도도 높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Arts & Culture 2023 WINTER

250이 만든 뽕의 새로운 세계 250은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지만 모두가 외면하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 뽕짝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 그의 확고한 음악 세계가 담긴 앨범 (2022)은 한국 대중음악계를 넘어 세계가 집중했으며, 지금도 그 영역을 계속해서 넓히고 있다. 가수이자 DJ, 작곡가, 그리고 프로듀서인 250은 2023년 한국 대중음악에서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이다. 한국인의 고유 정서인‘뽕’이라는 장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여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매콤한 국물과 꼬불꼬불한 뜨거운 면을 호호 불어먹는 매력이 있는 라면. 당신이 한국의 라면을 끓이는 데 처음 도전했다고 생각해 보자. 적정량의 물을 끓이고, 건더기스프와 면을 넣고…. 그런데 아뿔싸, 라면 맛의 핵심인 빨간 분말스프 가루를 넣는다는 걸 완전히 잊었다. 그것을 한국식 라면이라 부를 수 있을까? 라면에서 가장 중요한 분말스프를 빼놓고는 라면의 맛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 250이다. 이견이 없는 올해의 음악인 그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맵고 뜨거운 인물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250은 지난해 발표한 정규 1집< 뽕 > 으로 한국의 그래미상으로 불리는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등 네 개 부문을 석권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둘째, 그는 데뷔 1년 만에 한국 음악계를 뒤집어 놓은 신인 케이팝 그룹 ‘뉴진스’의 여러 곡에 참여한 프로듀서다. 250은 한국에서 구시대적이라고 폄훼하는 음악 장르인 ‘뽕짝’을 베이스로 일렉트로닉 음악이나 힙합 요소를 더하여 완전히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250은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 감독의 영화< 이창(Rear Window 裏窓) > (1954)을 보았는지를 기자에게 물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영화< 이창 > 에서부터였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는 수년 동안 뽕짝의 본질을 탐구하고 저의 음악과 접목해 보려고 했지만, 그 답을 찾는 것이 순탄치 않았어요. 답을 찾던 중 영화< 이창 > 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창 > (2018년 싱글 앨범)이란 곡을 쓰게 되었죠. 어떤 투명한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뽕’과 ‘비(非)뽕’이 서로 마주 보는 느낌이랄까요.” 뽕과 비(非)뽕, 과거와 현재, 세련됨과 촌스러움 따위가 멀리서 대면하는…. 그 형이상학적인 ‘창’은 250의 음악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뽕’은 오묘한 단어입니다. 여러 면에서 한국인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죠. 트로트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뽕짝’은 사실 북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 ‘쿵짝’에서 비롯되었어요. 영어로 하면 ‘Boom Clap’ 같은 거죠. 하지만 ‘쿵짝’은 다른 장르에서도 통용될 수 있으니, 뭔가 더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쿵’이라는 말을 ‘뽕’으로 바꾼 겁니다. 자기비하적 측면이죠. ‘뽕’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도 있어요. 1986년 상영된 성인 영화< 뽕(Mulberry) > 이요. 당시 크게 흥행하여 다양한 후속작이 나오기도 했죠. 그리고 한국에서 마약을 뜻하는 은어이기도 하고요. 우스꽝스럽거나 낯간지럽거나 어둡거나….이렇게 다층적이면서 복합적인 상징과 느낌들이 ‘뽕’, 이 단 한 음절에 축약된 겁니다.” 애수와 낭만, 즐거움이 담긴 음인 뽕짝은 한국에서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문화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애초에 ‘뽕’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로 담고 있으며,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은 단어인 것처럼 말이다. 250은 음지에서 저평가받고 있는 뽕짝을 대중음악 세계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새로운 음악의 성취를 거둔 셈이다. 250이 탐구한 음악 세계 250은 한서대학교에서 영상 음악 제작을 전공했다. 20대부터 한국 공중파 TV 드라마의 음악을 만들었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전자음악 성지(聖地)인 클럽 케잌샵(cakeshop)에서 DJ로도 활약했다. 그때부터 “유별난 음악을 트는 이가 등장했다”라는 입소문이 클러버들 사이에 돌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의뢰를 받아 NCT127, BoA, f(x) 같은 메이저 케이팝 가수의 원곡에 대한 정식 리믹스 음원을 발표했다. 또 힙합 팬들이 열광하는 래퍼 이센스의< Everywhere > 와< 비행 >등을 프로듀스 했다. 그러다 그가 2018년부터 저예산 다큐멘터리 시리즈< 뽕을 찾아서 > 를 내놓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음악업계에서는 “비트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코미디도 제법이다”라는 식의 가벼운 반응들이 다수였다. 2018년 싱글< 이창 > , 2021년 싱글< Bang Bus > 가 조용히 회자되더니 마침내 2022년 3월, 정규 1집 앨범< 뽕 > 이 발매되자마자 음악 팬과 평단은 그의 독창적인 음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250은 미국 뉴욕의 할렘에 힙합이 흐르거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파벨라 펑크(favela funk) 장르가 울려 퍼지듯 뽕짝은 마치 한국이란 문화권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부연했다. 청각적으로도 ‘게토(ghetto 특정 민족이 사회의 주류 민족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화’한 요소들이야말로 힙합 프로듀서이자 클럽 DJ 출신인 250이 뜻밖에 발견한 뽕짝의 매력이다. “대단한 연주자 또는 50인조 오케스트라가 오래전에 녹음해 둔 샘플을 후대에 조악한 장비로 구현해 낸 힙합곡들…. 거기서 풍기는 특유의 멋이란 게 있잖아요. 뽕짝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뽕짝을 탐구하면서 느낀 또 한 가지는 뽕짝이 한국의 식문화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뜨거워야 잘 먹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김치찌개나 전골처럼 맵고 뜨거워야 ‘잘 먹었다’라고 느끼는 것처럼요. 저 역시 얼마 전에 벨기에에 일주일 정도 다녀왔는데, 귀국하자마자 매니저와 김치찌개를 먹으러 기사식당에 갔어요. 한국인에게는 어정쩡한 것보다는 화끈한 것이 통하는 것처럼 ‘뽕짝’도 그런 점이 있어 통하는 것 같아요. 저는 뽕짝이 확실하게 슬픈 곡조, 그리고 확실하게 신나는 그 무언가가 투박하게 결합된 매력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250이 ‘뽕’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경부터다. 케잌샵 DJ 시절, 동료들과 단합대회를 다녀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뽕짝 음악이 담긴 리믹스 테이프를 샀다. 서울로 돌아가 이 음악을 리믹스 해보자며 장난처럼 의기투합한 게 시작이었다. 그 장난 같은 시작이 250을 장난이 아닌 뽕짝의 경지까지 끌고 온 셈이다.   익숙한 뽕짝의 맛 250이 만든 익숙한데 낯설고 촌스럽지만 신묘하며 힙하기 이를 데 없는 ‘뽕’의 세계에 가장 열성적인 관객은 10~20대의 젊은 세대다. 뽕짝이 한국인의 일상 가까이 녹아 있던 20세기와는 오히려 가장 거리가 먼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고 예쁘게 깎여 있는 시대에 살고 있죠. 그래서 도심의 반듯한 계단보다는 서울 변두리에 오래전 지어진 건물의 울퉁불퉁한 계단에 열광하며 필름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최근 빌보드 차트에서도 컨트리 장르가 득세하고 있죠. 한국 음원 차트에 트로트가 최근 몇 년 사이 인기를 끈 것과 비슷한 현상일 수 있죠.” 250이 요즘 음악 말고 빠져 있는 것도 일종의 ‘구닥다리’다. 1970~1980년대 상영된 홍콩 영화인< 소권괴초(笑拳怪招, The Fearless Hyena) > (1979년)를 비롯한 성룡(成龍 Jackie Chan)의 초기작에 나오는 비논리적 액션 장면들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언젠가는 영화음악에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 (2018)처럼 사람들이 소리에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영화,< 인셉션(Inception) > (2010)처럼 스케일이 큰 영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가 참여한 작품처럼 선율로 승부하는 영화 등 모두 욕심이 나네요.” 마침 그의 저예산 다큐< 뽕을 찾아서 > 는 2023년 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큰 스크린에서 공식 상영됐다. “제게 특별한 롤모델이란 없습니다만, 그저 음악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Quincy Jones)나 작곡가이자 뮤지션인 류이치 사카모토(さかもとりゅういち Ryuichi Sakamoto, 1952~2023) 같은 분들처럼 이런 음악, 저런 작업 등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50의 다음 프로젝트는 한국 성인영화 시리즈물의 속편 제목처럼< 뽕 2 > 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벌써 계획하고 있는 차기작의 제목은< 아메리카 > 이다. “ < 뽕 > 으로 한국 음악을 제대로 해봤으니까 이제 미국 음악을 해봐야죠. 제가 학창 시절에 동경했던 미국, 그리고 즐겨 듣던 미국 음악에 대한 환상을 담은 앨범이 될 수도 있겠어요.” 7년여간 탐구한 뽕에 대한 정의는 250의 안에서도 계속 변해왔다. 지금, 이 시점에 그가 내리는 뽕의 정의는 이렇다. “뽕짝이란 마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라면스프의 맛 같은 걸지도 모르죠. 김치찌개를 끓이다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싶으면 라면스프를 조금 넣잖아요. 그럼 ‘아는 맛’ 나오잖아요. 라면스프가 고급스러운 레시피도 아니고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익숙한 맛이고 입에 감기는 어떤 만족스러운 맛이라는 점은 확실하죠.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한국인이 공통으로 찾는 마지막 한 조각이랄까요.” 250이라는 이름은 그의 본명인 이호영과 비슷하게 불리길 바라며 ‘이오영’이라 썼는데, 모두가 ‘이오공’이라 부르면서 250이 되었다. ⓒ 세종문화회관 그는 첫 앨범< 뽕 > 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특히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과 최우수 일렉트로로닉 노래 부분 수상은 ‘뽕’이 일렉트로니카 뮤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전한다. ⓒ 비스츠앤드네이티브스 임희윤 (Lim Hee-yun, 林熙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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