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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 Culture

애니메이션, 웹툰 미디어 믹스의 또 다른 해법

Arts & Culture 2023 AUTUMN

애니메이션, 웹툰 미디어 믹스의 또 다른 해법 드라마나 영화로 미디어 믹스되던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원작의 매력을 살리는 유효한 전략이면서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도 용이한 방식이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웹툰들이 애니메이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웹툰 원작의 애니메이션 포스터들. 위부터 < 외모지상주의 > (2022), < 기기괴괴: 성형수 > (2020), <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Dokkaebi Hill) > (2021~2022), <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My Daughter is a Zombie) > (2022). ⓒ 넷플릭스(Netflix) ⓒ 에스에스애니먼트(SS Animent Inc.), 스튜디오 애니멀(Studio Animal), SBA ⓒ 김용회(Kim Yong-hoe, 金龍會), 쏘울크리에이티브(Soul Creative), CJ ENM, KTH, SBA ⓒ EBS, 두루픽스(Durufix) 최근 인기 웹툰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 미디어 믹스의 장르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있다. 우선 2020년, SIU 작가의 < 신의 탑(Tower of God, 神之塔) > 과 박용제(Yongje Park, 朴溶濟) 작가의 < 갓 오브 하이스쿨(The God of High School, 高校之神) > 이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풍자한 오성대(Sungdae Oh, 吳城垈) 작가의 웹툰 < 기기괴괴(Tales of the Unusual, 奇奇怪怪) > 가 < 기기괴괴: 성형수(Beauty Water, 奇奇怪怪: 整容液) > 라는 제목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2022년에는 넷플릭스가 박태준(Taejun Pak, 朴泰俊) 작가의 대표작 < 외모지상주의(Lookism, 看臉時代) > 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스트리밍했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의 애니메이션화가 거론되고 있으며, 특히 추공(Chugong) 작가의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웹툰 < 나 혼자만 레벨업(Solo Leveling, 我独自升级) > 의 경우엔 해외 팬들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다. 그동안 시장 검증을 마친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사례들은 많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어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효율적인 미디어 믹스 출판된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사례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4천 장의 종이에 그려 넣은 윈저 매케이(Winsor McCay)의 < 잠의 나라의 리틀 네모(Little Nemo in Slumberland) > (1911) 이래로 만화의 애니메이션화는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 특히 일본에서 1990년대에 3차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작위원회(製作委員會)’라 불리는 특유의 미디어 믹스 체계가 있었다. 잡지에 연재된 만화는 단행본 발간, 애니메이션 제작, 관련 상품 제작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팬덤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이렇게 출판된 만화를 TV 시리즈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자주 연계해 온 덕분에 만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의 시청자가 될 수 있었다. 반대로어린이 채널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하고 나중에 원작 만화를 접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향유해 온 소비자층은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구조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미지와 대사가 2차원 평면에 그려진 웹툰은 시각만으로 독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웹툰은 가상 세계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정지된 이미지가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화 스타일을 비롯해 의성어, 의태어, 효과선 같은 만화적 표현으로 장면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이렇듯 웹툰에서 구현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는 없어 보인다. 웹툰에서 그려진 가상 세계를 영상화하려면 드라마나 영화처럼 실사 영상으로 찍는 방법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SF나 판타지 세계관의 스토리텔링을 드라마나 영화 같은 실사 영상으로 만들려면, 거대한 세트장에서 촬영을 하고 특수 효과 과정도 거쳐야 한다. 제작 공정도 복잡하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 이에 반해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제작 공정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효율적이며, 원작 그대로의 매력을 십분 살릴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특히 3D 애니메이션보다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 원작의 매력을 살리는 데 유효한 전략이다. 게다가 웹툰 독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행위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판타지 재현에 적합 2011년 4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네이버웹툰(NAVER WEBTOON)에 장기 연재된 박용제 작가의 < 갓 오브 하이스쿨 > 6화 장면. 네이버웹툰의 대표 히트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2020년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한국과 일본에서 방영되었다. 우승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격투기 대회에 저마다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참가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 네이버웹툰, 박용제 근래 웹툰계에 나타나는 장르적 특성 중 하나가 판타지다. 주인공이 적대자들을 물리치며 최강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약속된 서스펜스를 보장하는 게임형 판타지나 로맨스 판타지는 실사 영상으로 미디어 믹스하는 것보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편이 원작을 제대로 구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주인공이 게임과 같은 가상의 판타지 세계로 이동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스토리텔링은 실재하지 않는 ‘가상’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웹툰 < 신의 탑 > 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처럼 의지하던 소녀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이 소녀를 찾기 위해 신의 탑에 오르는 여정을 그린다. 2010년 네이버웹툰(NAVER WEBTOON)에 연재되기 시작돼 지금까지도 매주 업데이트 중인 이 작품이 만약 실사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면 여러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일단 실사 영화로 웹툰의 판타지 세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디지털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 완성도 높은 특수 효과를 앞세운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지만, 여전히 감당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제작 기간과 막대한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손으로 그린 이미지는 과장과 생략을 통해 독자들이 이입할 여지를 주는 데 비해 실제 배우들이 등장해 연기하는 장면은 그렇게 되기 어렵다. 독자들이 저마다 상상하는 상(像)과 일치하지 않을 때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즉 실사 영상으로 웹툰의 세계와 캐릭터 구현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설득이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러한 난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적지 않은 비용과 기간이 소요되지만, 원작이 가진 판타지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무기이다.   잠재 독자층 포섭 웹툰 산업은 웹툰의 영상화와 관련 상품 판매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산업화 체계를 점차 갖춰 가는 중이다. IP(Intellectual Property)의 다각화를 통해 업계에서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확고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존 팬덤을 유지하는 한편 새로운 향유층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장기 연재되는 웹툰의 장대한 스토리텔링은 여러 회차의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때 기존 웹툰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한편 애니메이션 채널의 주요 타깃층이 어린이라는 점에서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는 잠재적 웹툰 독자를 미리 포섭해 두는 포석이 될 수 있다. 아직 세로 스크롤, 스마트폰으로 읽는 형식의 웹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웹툰에도 호기심을 느끼도록 애니메이션을 먼저 향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잠재 독자층뿐 아니라 출판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향유해 온 기존 출판 만화 독자들에게도 웹툰의 애니메이션화 전략은 유효하다. IP를 어떤 장르로 제작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콘텐츠 향유자들의 날로 다양해지는 취향과 원작 구현의 적합성을 고려했을 때 애니메이션화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김용회 작가의 <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Dokkaebi Hill) > 는 2013년 8월 카카오웹툰(Kakao Webtoon)에 첫 화를 공개한 후 현재까지 연재 중인 판타지 웹툰이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부모를 찾기 위해 주인공이 친구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쏘울크리에이티브와 CJ ENM이 TV 시리즈로 제작했고, 어린이∙청소년 대상 방송 채널인 투니버스(Tooniverse)에서 2021년 7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매주 방영되었다. ⓒ 김용회, 쏘울크리에이티브(Soul Creative), CJ ENM, KTH, SBA < 지구의 주인은 고양이다 > 는 2020년 3월 카카오페이지(Kakao Page)에 첫 연재를 시작해 이듬해 완결된 HON 작가의 웹툰으로, 지구 정복을 꿈꾸는 고양이와 주변 동물들의 일상을 담았다. 현재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며, 2024년 상반기 방영 예정이다. ⓒ Cats are Masters of The World Animation Partners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이윤창(Lee Yun-chang, 昌) 작가의 <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My Daughter is a Zombie, 僵尸奶爸) > 은 좀비가 된 딸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좌충우돌 이야기다. 진중한 주제 의식과 유머 코드를 통해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두루픽스와 EBS 방송이 TV 애니메이션으로 공동 제작하여 2022년 EBS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다.ⓒ EBS, 두루픽스(Durufix) 홍난지(Hong Nan-ji, 洪蘭智)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목판에 새긴 글자의 힘

Arts & Culture 2023 AUTUMN

목판에 새긴 글자의 힘 목판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각자(刻字)는 목판 인쇄와 현판 제작의 핵심 기술로 서체의 특성과 글 내용을 온전히 이해한 뒤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각자장의 기량은 각질의 흔적, 글자체의 균형도 등으로 평가된다. 김각한(Kim Gak-han, 金珏漢) 장인은 오랜 기간 작품 활동과 전승 활동을 펼친 노고를 인정받아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가 되었다. 각자장 김각한(Kim Gak-han, 金珏漢) 씨가 각자 작업 중인 모습. 그는 책판용으로 조직이 치밀하면서 적당히 단단한 산벚나무를 애용한다. 각자는 목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일을 말한다. 목판 인쇄물은 물론이고 건축물에 내거는 현판(懸板)도 각자를 통해 제작됐으니 역사가 오랜 기술이다. 각자의 기능을 가진 장인을 각자장이라고 한다. 2013년 각자장 보유자로 인정된 김각한은 방화로 소실됐던 숭례문(崇禮門) 현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의 목판본, 한국전쟁 때 불타 버린 『훈민정음 언해본(諺解本)』 등 굵직한 우리 문화재의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목공에서 각자로 단단한 목판에 글씨를 정교하게 새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 그가 사용하는 도구는 망치, 칼, 끌 등 30여 가지에 이른다. 장인의 출발은 목공예였다. 그는 1957년 경상북도 김천(金泉)에서 농사짓는 부모의 5남 1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겨우 마쳤다. 6학년 때 부친이 사망하면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김천 시내 목공소에 다니며 소목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촌구석에 널린 게 나무였으니까요. 덕분에 일찌감치 나무를 다룰 줄 알았죠.” 학업에 대한 미련이 많았던 그는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면서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군 제대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종로 탑골공원 근처 목공예학원에 다녔다. 그러던 중 1983년 동덕(同德)미술관에서 열린 오옥진(吳玉鎭)의 전시회는 그의 인생을 단번에 바꿔 놓았다. “그때 전통 각자를 처음 봤어요. 옛 서울의 지도 < 수선전도(首善全圖) > 를 복원한 것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죠. 곧바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선생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습니다.”그의 스승은 1996년 각자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첫 번째 보유자가 된 인물이었다. 김각한은 2005년 전승교육사가 되었고, 이후 문화재 복원과 전승 활동을 인정받아 8년 후 스승의 뒤를 이어 2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스승과의 만남이 목공에 머물 뻔했던 장인을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면, 서예가 박충식(朴忠植)은 그를 진정한 장인의 길로 이끌었다. “각자를 배운 지 2년쯤 되니까 한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걸 절감하게 되더군요. 문자를 다루는 공예인 만큼 글과 글자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죠.” 그는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우기로 하고 아예 선생의 서실이 있던 방배동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 마련한 작은 공간이 지금의 공방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배움에 대한 갈증은 1992년 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과 입학으로 이어졌다. 늦게 빠진 공부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었다. 일하며 공부하느라 6년 만에 졸업했지만 글공부는 지금도 놓지 않고 있다. 치목에서 인출까지 각자의 핵심은 새기는 일이지만, 그 시작과 끝은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적합한 나무를 구해 오랜 시간 건조시키며 삭이는 치목(治木) 과정이 중요하다. “현판은 용도에 따라 돌배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씁니다. 하지만 책판용으로는 조직이 치밀하면서 적당히 단단한 산벚나무가 가장 적합하죠. 『팔만대장경』 목판의 수종을 분석해 보니 70% 이상이 산벚나무였습니다. 그러나 나무의 종류보다는 나무를 충분히 숙성시키는 작업이 더 중요합니다. 7~8년 이상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뭇결이 잘 삭아야 변형되지 않고 오래 보전할 수 있거든요.” 각자할 원고나 도안이 준비되면 나무를 적합한 크기로 잘라 대패질해서 다듬은 다음 풀칠을 하고 원고나 도안 종이를 붙인다. 인쇄를 목적으로 하는 목판은 좌우를 바꿔서 붙인다. 그런 다음 종이 두께의 절반가량을 손으로 비벼서 벗겨 내고 사포로 문질러 도안을 목판에 밀착시킨다. 그러고 나서 기름칠을 해 도안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데, 이를 배자(排字)라고 한다. “배자에 사용하는 기름은 어떤 종류든 상관없지만 볶지 않고 생으로 착즙한 것을 써야 합니다. 볶은 기름은 굳어 버려서 글자를 새길 수가 없거든요.” 각자는 글자나 문양의 특징을 고려해 작업에 적합한 칼과 끌, 망치 등을 사용한다. 목판본처럼 좌우를 바꿔서 새기는 것을 반서각(反書刻), 공공건물이나 사찰 등의 현판과 같이 보이는 그대로 새기는 것을 정서각(正書刻)이라고 한다. 각자 작업이 끝나면 목판본의 경우 양옆에 손잡이와 통풍 기능을 겸하는 마구리를 만들어 끼운다. 그리고 각자한 나무판에 알맞은 농도의 먹물을 고르게 칠한 다음 인출할 종이를 덮고 밀대로 문질러 찍어 낸다. 현판의 경우 각자 후 채색해 완성한다. 서체에 대한 이해 김 장인이 책판을 인출(印出)한 뒤 각자가 잘되었는지 점검하고 있다. 각자장은 대량 인출이 필요한 서적을 만들기 위해 책판에 글자와 그림을 새기는 기술을 지닌 장인이다. 각자의 기법은 크게 음각(陰刻)과 양각(陽刻)으로 구분한다. 음각은 글자 자체를 파내는 기법으로 문자를 바탕면보다 깊게 파낸다. 양각은 글자 주변을 깎아내 입체적으로 돌출시키는 기법이다. “각자의 기본은 음각인데 사실 그게 가장 어렵습니다. 그저 획을 따라서 새기면 무슨 글자인지 읽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서체를 보면 어떤 부분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어디는 힘을 뺐는데, 그런 디테일을 각자로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획에 힘이 들어간 곳은 더 깊고 넓게 파야 글자가 살죠. 완성했을 때 누구의 서체인지 알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한마디로 서체의 특징을 잘 알고 글의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많은 작품들에 둘러싸인 그에게도 전승에 대한 고민은 적지 않다. “이 일만으로 생활이 어렵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배우려고 하질 않아요. 대부분 취미로 배우는 은퇴자들이죠.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마음을 비우게 됩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작품만 생각하려고요.” 아직 대표작이 나오지 않았다며 겸손해하는 장인은 우리 각자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낙관했다. 이기숙(Lee Gi-sook, 李基淑)자유기고가

더 이상 다음 소희가 없길

Arts & Culture 2023 AUTUMN

더 이상 다음 소희가 없길 < 다음 소희(NEXT SOHEE, 下一个素熙) > (2023)는 지난해 열린 제75회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국제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이는 한국 영화로서는 최초이기도 하다. 사회에 가려진 청소년 노동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영화는 국적과 세대를 초월한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이다. 영화 < 다음 소희 > 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여고생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주목받았다. 영화는 제목처럼 주인공 소희가 끝이 아님을, 어딘가에 있을 소희의 다음에 주목해 주길 바라고 있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제75회 칸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 다음 소희 >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자, 현지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며 7분여간 기립박수를 쳤다. 상영관 밖을 나오며 한국인 취재진이 극장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관객들은 카메라를 향해 기꺼이 박수를 전했다. 어떤 이들은 “최고”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상영 후 극장 안에서의 기립박수는 영화제 관례상 흔한 일이기도 하지만, 극장 밖에서까지 반응은 꽤 드문 일이다. 세계의 공감을 얻다 당시 경쟁 부분에 초청된 한국 영화 <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分手的決心) > (2022)이나 < 브로커(Broker 掮客) > (2022) 상영회와 비교해도 한층 뜨거운 반응이었다. 프랑스 언론인 에마뉘엘(Emmanuel) 씨는 “정말 가슴 아파요. 매우 매우 좋은 작품이에요”라며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벨기에에서 온 엘리(Elly) 씨는 “유럽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한국인과 다르게 느낄까요? 그렇지 않아요.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당신과 같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이런 영화로 인해 우리는 서로 연결됩니다”라고 했다.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다 자살에 이른 한국 학생의 특수한 비극이 현대인의 보편적 공감대를 얻어낸 순간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현장실습을 통해 콜센터에서 일하게 된 소희. 그녀는 고객을 위해 ‘친절함’을 만들고, 자신의 ‘수치심’을 감내하며, 마지막에는 높은 실적을 위해 그 어떤 상황에도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사무직 여직원이 되었다며 기뻐하던 것도 잠시,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해맑은 소녀는 그곳에서 점점 피폐해져 간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한국의 고등학교 중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계 고교와 취업 위주의 교육을 하는 직업계 고교가 있다. 현장실습은 직업계 고교 학생이 기업에서 인턴십과 비슷한 형태로 일하면 해당 업체에서 채용에 가산점을 주거나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학교 입장에선 학생들을 기업에 많이 보내 취업률을 높여야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고 예산도 확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 학생 중 일부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산업재해를 당하거나 심한 경우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2017년 1월, 직업계 고교 3학년 A양이 전주의 한 저수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대기업 하청 콜센터에서 인터넷 가입을 해지하려는 고객을 ‘방어’하는 부서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온갖 항의와 욕설에 응대하며 밤늦도록 야근하기 일쑤였지만 정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급여는 계약했던 것보다 적었다. “더 이상 못 견디겠어.”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남긴 A양은 차디찬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영화 < 다음 소희 > 의 소재가 된 실화다. 정주리(Jung July, 鄭朱莉) 감독은 한 방송사의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를 접한 뒤 이후에도 비슷한 사망 사건이 되풀이되는 걸 지켜보며 영화화를 결심했다. 이 영화의 한국 개봉 이후 사회적 파급력이 적지 않았다. 결국 올해 3월, ‘다음 소희 방지법’으로 불리기도 하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현장실습생도 근로기준법상 강제 근로 금지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 등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 경찰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파헤치며 어른들이 어떻게 한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 또 외면했는지를 마주한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 다음 소희 > 는 내용상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가 앞서 소개한 실화를 다큐멘터리의 화법으로 그렸다면, 2부는 그때 소희(So-hee 素熙) 곁에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지켜주는 이가 있었다면 하는 희망 사항을 담았다. 1부는 단순히 회사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대결 구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21세기 현대 사회가 실제로 그렇듯,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하고 해결은 한결 더 어렵다. 극 중 중간 관리자인 팀장은 상담원들에게 실적을 강요하지만, 비인간적인 상황에 내몰리긴 마찬가지다. 주인공 소희가 실적을 올리면서 회사의 목표 기준이 올라가자, 동료들 사이에 반목이 싹튼다. 가난한 친구보다 더 가난한 소희는 누가 더 한심한 신세인지를 두고 넋두리를 늘어놓다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이처럼< 다음 소희 > 는 약자의 잘못이 아닌데도 약자들끼리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경쟁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고든다. 장애인을 위한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사회에서 이동권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과 이로 인해 출근이 늦어진 비장애인 노동자가 반목하게 되는 것처럼. 최저 시급이 충분하지 못한 사회에서 대출 이자에 시달리는 편의점 점주와 삼시 세끼도 제대로 못 챙기는 아르바이트생이 최저임금을 놓고 등 돌리게 되는 일처럼. 구조조정을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와 고용이 승계된 노동자 사이에 연대가 깨지는 일처럼…. 잘못은 저 위쪽에서 비롯됐는데 아래쪽에 있는 이들이 더 아래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갈등하게 되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넓게 담고 있다. 그에 비하면 2부는 좀 더 대결 구도의 형태를 띤다. 그래야 했다. 소희의 자살을 수사하는 형사 오유진(Oh Yoo-jin 吳宥真)은 사태의 실체에 접근하면서 점차 외로운 투쟁의 길에 접어든다. 적절한 조치가 제때 이뤄졌다면 이 젊은이의 죽음을 막을 기회가 몇 번은 있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 이상 ‘소희 다음’의 비극을 만들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유진이 잘못한 자들을 찾아 따져 물을 때마다 돌아온 답은 ‘실적 못 올리면 우리도 죽는다’는 취지의 말들이다. 소희가 일한 회사, 그 회사에 하청을 준 회사, 그 회사가 대기업이라며 좋다고 알선해 준 학교, 그 학교를 감독하는 교육청….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어느 한 개 기관이나 개인의 잘못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잘못된 일들은 종종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통찰을 영화의 플롯으로 구현한 것이다. 콜센터와 학교, 교육청과 경찰서를 오가며 홀로 조사를 이어가던 유진은 소희의 죽음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속이 후련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 트윈파트너스플러스 이 때문에 유진은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결연함과, 커다란 시스템에 맞서는 개인의 무력감을 동시에 보여줘야 했다. 유진 역을 맡은 배우 배두나(Bae Doo-na 裴斗娜)가 초췌한 얼굴로 소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연기는 이 지점에서 설득력을 더한다. 칸영화제 현장에서 만난 정주리 감독은 “촬영 전 두나 씨에게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것 같은 얼굴을 화면에 보여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는데, 다음날 정말로 그런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그 얼굴을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라고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취업에 짓밟힌 꿈 필자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이 영화를 보며 가장 가슴 아파한 대목이 있다. 첫 번째는 “소희가 춤추는 거 아셨어요? 춤추는 걸 좋아했대요. 엄청나게 잘했대요”라고 유진이 소희의 부모에게 건넨 말이다. 이를 들은 부모는 목 놓아 통곡한다. 또 한 차례는 유진이 소희의 휴대전화 속 동영상을 보는 마지막 장면이다. 소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휴대전화 안에 있는 모든 메시지며 앱을 삭제하고도 남겨둔 단 하나의 영상이었다. 거기엔 혼자 열심히 춤추며 끝내 웃음 짓는 소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번엔 유진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영화가 두 차례에 걸쳐 소희의 춤을 안타깝게 보여주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진정한 꿈을 알고 있는지 따져 묻는 것이다. 비극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음 세대의 장기, 특기, 소질, 자질, 취향, 취미, 개성, 특성, 적성, 재능을 알아봐 주고 있는가? 영화의 질문은 이어진다. 고등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꿈을 접고 취업률 높은 학과만 지망해야 하는 사회라면? 청년들이 각자 희망을 저버린 채 안정된 직장에 지원하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처럼 불안한 곳이라면? 인문계 전공 자체를 미안해해야 하고 자연계 우등생 모두가 의대 진학만을 바라보는 세상이라면? 그다음에는 또 다른 형태의 소희가 나오지 않을까? 당신은 미래 세대가 꿈을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나? 칸영화제에서 만난 선진국 관객들이 < 다음 소희 > 를 보고 울먹인 까닭은, 각자의 사회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송형국 (Song Hyeong-guk, 宋亨國)영화평론가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반전이 있는 맛, 게장

Arts & Culture 2023 AUTUMN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반전이 있는 맛, 게장 겉은 단단한데 속은 뭉개지듯 부드럽다 못해 입안에서 녹아내릴 정도로 연하다. 첫맛은 짭짤하거나 또는 매콤하다가 이내 달착지근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한 입 깨물자마자 실하게 여문 보드라운 살과 내장이 톡 터지며 쏟아지는데, 과연 이 매력적이고 독보적인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한국의 전통음식인 게장을 소개한다. 간장 게장은 양파, 마늘 등의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양념간장에 싱싱한 게를 담가 숙성시킨 음식이다. 간장의 맛이 깊게 밴 탱글탱글한 게 살과 부드러운 내장의 맛이 매력적이다. ‘게장’에서 ‘장’은 한 자로 ‘장 장(醬)’ 자를 쓴다. 여기서 장은 콩을 주원료로 발효시켜 만든 모든 양념장을 뜻하는 말로 간장과 고추장, 된장이 대표적이다. 콩으로 메주를 쑤어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키는데 간장은 발효시킨 소금물을 체에 걸러 끓인 후 만든 것이다. 한국의 장 문화에서 비롯된 게장 게장의 종류 중 간장게장은 간장에 게를 푹 담가 시간을 넉넉히 두고 숙성시킨 후 꺼내서 먹는 것으로, 오랜 숙성 시간과 작업 과정을 거쳐 완성도 높은 맛을 내는 한국의 발효 문화와 많이 닮아있다. 양념게장이라고 부르는 매콤한 버전의 게장 역시 고추장과 간장을 기본으로 사용해 맛을 낸다. 그래서 게장이라는 음식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장 문화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장에 싱싱한 게를 넣고 절이는 간장게장이나, 고추장과 간장, 그 외에 단맛과 감칠맛을 내는 재료를 넣고 버무린 양념게장은 한국인의 DNA에 각인 된 ‘발효 장’ 문화가 한식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간장과 싱싱한 게가 생명 과거 간장게장은 살아 있는 게로 만들었으나, 최근에는 제철에 어획하여 급랭한 게를 이용해 만든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게장은 크게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으로 나뉜다. 간장게장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간장에 게가 전부 잠길 만큼 푹 담근 상태에서 며칠간 냉장실에서 숙성시킨 후 먹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싱싱한 게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맛있는 간장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간장게장용 간장은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보다 가정에서 메주를 띄워 직접 만든 간장으로 담그는 게 훨씬 맛있다. 간장은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감칠맛은 강해지고 염도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 묵힌 간장을 한국에서는 ‘씨간장’이라고 부른다. 이 씨간장에 양파와 대파, 사과, 마늘, 고추 등을 함께 넣고 한 차례 끓인 후 식혀 여기에 살아있는 신선한 게를 넣고 냉장실에서 숙성시킨다. 게장을 전통으로 담그는 집에서는 장독대에 씨간장과 게를 넣고 묵힌다. 이때 소고기 몇 조각을 함께 넣는데 살아있는 게들이 며칠 만에 이 소고기를 다 먹어 치운다고 한다. 소고기의 영양분을 섭취한 게살은 일반 게보다 훨씬 단맛이 돌고 탱글탱글한 식감이 일품이다. 최근엔 좀 더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단맛을 내기 위해 간장을 끓일 때 설탕이나 물엿, 요리용 술 등을 넣기도 한다. 이렇게 끓여낸 간장 양념을 식힌 뒤 게를 넣고 냉장실에서 숙성시키면 끝이다. 숙성 기간은 평균 2~3일 정도, 그러나 오래 숙성할수록 간장양념이 게의 속까지 잘 배어들기 때문에 그 이상을 숙성시키는 경우도 많다. 간장게장을 먹는 법 간장게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난 게딱지 밥이다. 게의 등껍질에 남아 있는 간장과 내장에 흰 밥을 넣어 비벼 먹는 것으로, 인기가 많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단단한 껍질을 뚫고 속살까지 적절하게 잘 절여진 게장을 먹을 땐 우선 등껍질을 분리한다. 그리고 몸통을 양쪽으로 잡아 가위로 절반을 가른다. 게 몸통 한쪽을 두 손으로 잡고 쭉 짜내면 간장 양념이 고루 밴 게의 생살과 연한 주황빛을 띠는 내장이 물밀듯이 쏟아지는데 갓 지은 뜨끈한 쌀밥 위에 올려 한 입 떠먹으면 그 자체로 극락의 맛이다. 그 어떤 산해진미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감칠맛이 뛰어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간장게장을 제대로 즐기는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맨 처음 분리해 놓았던 게의 등껍질에는 게의 내장과 간장 양념이 남아있는데, 게장의 진짜 별미는 이 껍질에 붙은 고소하고 크림 같은 내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등껍질에 밥을 넣어 비벼 먹는다. 이것을 두고 ‘게딱지 밥’이라고 부른다. 등껍질에 붙은 고소한 내장과 게살에 참기름(볶은 참깨를 압착해 뽑아낸 한국식 오일로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김, 밥을 넣고 비빈 게장 비빔밥도 인기 메뉴다. 일부 게장 전문식당에선 여기에 날치알을 넣어 톡톡 터지는 식감을 살리기도 한다. 간장게장은 맛있게 숙성된 간장 양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보드라운 게의 생살과 고소하고 신선한 내장 맛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싱싱한 제철 꽃게를 사용한다. 특히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꽃게가 많이 잡히는데, 알이 꽉 찬 제철 암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은 가히 최고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무침 요리에서 시작된 양념게장 매콤달콤한 양념으로 간장게장만큼이나 인기 있는 양념게장은 일부 지역에서 먹던 무침요리에서 유래됐다. 간장게장처럼 숙성하지 않고 바로바로 무쳐 먹는 요리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원래 게장 하면 바로 간장게장이 떠오를 만큼 간장게장은 대표적인 게장 요리에 속했다. 그러나 간장게장과는 전혀 다른 맛과 매력을 지닌 빨간 양념의 게장 요리가 나오면서 이와 분리하기 위해 기존 게장의 명칭을 간장게장으로, 그리고 빨간 양념의 매콤한 게장을 양념게장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양념게장은 게장의 원조 격인 간장게장보다 역사가 짧은 편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선 예부터 회나 황태를 고춧가루나 고추장 양념에 매콤하게 무쳐 먹었는데, 회나 황태 대신 꽃게를 무쳐서 먹기 시작한 것이 바로 양념게장의 출발이다. 당시엔 양념게장이 아닌 ‘게 무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매콤한 양념에 회를 무치면 회 무침, 황태를 무치면 황태 무침이 되듯이 게를 무쳤기 때문에 말 그대로 게 무침이 된 것이다. 사실 양념게장은 간장게장과 다른 점이 많다. 간장게장이 간장에 게를 숙성시켜 먹는 음식이라면 양념게장은 매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려서 바로 먹는 음식이다. 게의 생살이나 내장 맛을 즐기기보단 특유의 달착지근하면서 은은하게 매운맛이 도는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 맛으로 먹는다. 양념 재료는 집마다 차이가 있는데 보통은 고춧가루와 고추장, 간장, 설탕, 마늘, 파, 양파, 물엿 등을 넣어 만든다. 게무침의 형태였던 초창기 때보다 현재는 양념의 농도가 짙어지고 질감이 좀 더 끈적해진 것이 특징이다. 양념게장용 게는 주로 크기가 작은 게를 사용하며 등껍질과 아가미, 배딱지 전부를 제거한 후 몸통을 절반 또는 1/4 크기로 작게 자른 뒤 양념에 버무린다. 달달하면서도 매운 양념장을 입힌 이 양념게장 역시 중독성 있는 맛으로 간장게장만큼이나 인기가 높다.   한국의 다양한 게장 전문점 게장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니아층도 탄탄한 음식이라, 한국엔 게장 전문점이 매우 많다. 간장게장 한 마리에 4만 원이 훌쩍 넘는 고급 식당부터 1인 기준 1~2만 원대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는 무한리필 식당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엔 간장게장 식당이 줄지어 있는 ‘게장 골목’도 형성돼 있다. 그중 어느 집이 가장 먼저 게장을 팔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원조집 논란은 늘 있었지만, 중요한 건 게장 골목에 있는 식당 전부 항상 만석일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는 것이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게장 식당으로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진미(眞味)식당이 있다. 이곳은 꽃게 제철인 6월과 12월에 꽃게를 대량으로 공수하여 영하 35도에서 급랭해 살아있는 게만큼이나 신선한 선도를 유지하여 게장을 담근다. 간장게장 정식을 주문하면 간장게장과 함께 포슬포슬한 달걀찜, 꽃게 찌개(게와 김치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음식으로 ‘게국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리굴젓(굴을 고춧가루와 소금 등에 절여 만든 젓갈), 가시파래(김과 유사한 모양이지만, 가시파래 특유의 식감과 향이 있다) 등 한 상 푸짐하게 차려진다. 가시파래에 밥과 어리굴젓 그리고 달착지근하고 보드라운 게살을 올려 싸 먹으면 아주 맛있다. 이 식당은 ‘미쉐린 서울 2023’에 등재되기도 했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가을 정취 가득한 서산에서 찾는 한국, 한국인

Arts & Culture 2023 AUTUMN

가을 정취 가득한 서산에서 찾는 한국, 한국인 지난 2021년 9월 유튜브 Imagine Your Korea 채널에 올라온 ‘Feel the Rhythm of Korea-Seosan’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영상 제목은 ‘머드 맥스(Mud Max)’였는데, 조지 밀러(George Miller) 감독의 2015년 작인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 > 를 패러디해 만든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사막을 달리는 트럭이 등장하나, 머드 맥스 영상에서는 경운기들이 갯벌을 질주하는 식이었다. 이 영상은 바다에 면해 있는 충남 서산(瑞山)의 풍경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서산으로 분노 대신 기대감을 머금고, 지금 달려보자. ⓒ 서산시 서산을 포함한 주변 지역은 ‘내포(內浦)’라고 불릴 정도로 크고 작은 갯고랑들이 내륙 깊숙한 곳까지 발달해 있다. 그만큼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差)가 크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산 북쪽의 가로림만(加露林灣)은 평균 조차가 4.7미터나 되고, 최대 조차는 무려 8미터 안팎에 달한다. 서산 남쪽 천수만(淺水灣)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최대의 조수간만 차가 내어준 보물 웅도(熊島)는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육지와 연결되기도 하고 섬이 되기도 한다. 웅도와 육지를 잇는 것은 유두교이다. 하루에 두 번 바닷물에 잠기는 신비로운 모습에 인기 여행지가 되었다. 해당 다리는 갯벌생태계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2025년 철거될 예정이다. 세계 수위권에 속할 정도로 큰 조수간만의 차는 다양한 수산자원을 제공해 주는 풍요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그중에서도 2016년 한국 최초의 ‘해양생물보호구역’이자 25번째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2019년 92.04제곱킬로미터 규모로 확대되었을 만큼,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깨끗한 바다가 바로 가로림만이다. 머드 맥스 영상에서 주민들이 경운기를 타고 내달리는 곳 역시 간조로 드러난 가로림만의 오지리(吾池里) 갯벌이다. 밀물 때는 전어(錢魚)와 우럭을 비롯한 다양한 생선들을 잡을 수 있다. 썰물 때면 끝없이 펼쳐진 갯벌에서 한국에서 생산되는 감태(甘苔)의 대부분이 여기서 채취되고, 바지락과 새조개를 포함한 다양한 저서성(底棲性) 해산물이 잡힌다. 요즈음 같은 가을에는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 에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낙지(絡蹄)가 제철이다. 2014년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식탁에 낙지죽이 오른 적이 있는데, 교황이 두 차례나 리필을 요청했을 정도로 호평받으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어민들이 낙지 잡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오지리 갯벌 남쪽에 위치한 중왕리(中旺里)에 가면 된다. 그들은 낙지가 개펄에 만들어 놓은 숨구멍을 찾은 뒤, 작은 삽처럼 생긴 가래를 이용해 최대 1미터까지 파 내려가 잡아 올린다. 원한다면 직접 낙지 잡이 체험도 해볼 수 있다. 낙지 제철인 가을에는 가로림만 곳곳에서 낙지잡기 체험이 가능하다. 특히 오지리와 중왕리 사이에 위치한 웅도(熊島)에서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이 600여 미터 거리에 있는 육지와 단절되었다가 다시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다 갈라짐’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밀물과 썰물은 하루에 두 번씩 있으니 바다 갈라짐 역시 하루에 두 번씩 볼 수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유독 큰, 그래서 생물종이 더욱 다양하고 양도 넉넉한 가로림만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다. 다만 오는 2025년쯤이면 연륙교가 들어설 예정이라 이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채 2년도 남지 않았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면 서둘러야 한다.   풍요로움이 초래한 아픔,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노력 서산과 맞닿은 가로림만은 주민들에게 다양한 수산자원을 제공한다. 한편 바다로부터 얻은 풍요로움은 바다 밖으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불러왔다. 출몰하는 해적의 노략질로 인해 오랜 기간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서산은 동쪽의 산군(山群)과 바다 사이에 들판도 넓게 발달해 있기에 거기서 얻는 소출도 적지 않았던 탓이다. 선조들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것은 조선 초인 1416년이었다. 천수만 북쪽의 도비산(島飛山)에서 군사훈련 겸 사냥대회를 하던 조선 3대왕 태종(재위 1401~1418)이 도비산 동쪽에 위치한 해미(海美) 지역이 서해안에 출몰하던 해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결단은 곧 실행으로 이어졌다. 1417년에 축성 공사를 시작해 4년 만에 완공했다. 그러고는 한반도 중부지역을 관장하는 육군 최고지휘기관인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度使營)을 해미로 옮겨와 육상 외에 해상 방어까지 맡도록 했다. 서산이 한반도의 주요한 식재료 공급지로서만이 아니라 명실공히 공동체의 안녕을 지켜내기 위한 최전선임과 동시에 최후의 보루 역할까지 짊어지게 된 것이다. 해미읍성(海美邑城)은 현재 남아 있는 읍성 가운데 가장 보존된 곳으로,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 있다. 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현재 해미 한복판에서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는 약 1.8킬로미터 길이의 해미읍성(海美邑城) 이 그 증거다. 높이 5미터 안팎의 성벽이 빈틈 없이 둘러쳐져 있고 ‘치(雉)’ 도 2개나 되어, 당시의 삼엄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치는 ‘꿩’을 뜻하는 한자인데, 꿩은 무언가 위험한 상황을 감지하면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대가리만 살짝 내놓고 동태를 살피곤 한다. 즉 ‘치’는 성벽 중간중간에 톱니처럼 바깥으로 툭 튀어나오도록 지은 구조물이다. 접근하는 적을 일찍 관측할 수 있도록 하고, 행여 전투가 벌어지면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정면뿐만 아니라 양 측면에서도, 즉 3면에서 공격해 격퇴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해미읍성 안으로 들어가면 수령이 300년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나무를 중심으로 지방 관아인 동헌(東軒)과 출장을 온 관료들이 숙박하던 객사(客舍), 죄인들을 가두어 두었던 옥사(獄舍) 등도 재건되어 있다. 동헌을 왼쪽으로 끼고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가면 정상에 청허정(淸虛亭)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지금의 정자는 2011년에 재건한 것이기는 하나 해미읍성 일대를 한눈에 조망하기에 제격이며, 주변의 소나무 숲은 산책하기에 일품이다. 전북 고창읍성(高敞邑城) 및 전남 낙안읍성(樂安邑城)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온 읍성(邑城)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해미읍성이 제 역할을 했기에 내륙지방은 오래도록 안녕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협력과 상생의 역사가 갖는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오는 10월 7일부터 사흘 동안 ‘제20회 서산해미읍성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중단된 이후 4년 만의 축제다. 긴 역사만큼이나 더욱 다채로운 행사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두 사찰과 한 개의 마애불에 녹아있는 염원 충남 서산은 문화유산 면에서도 두터운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이다. 자연과 조화로움도 인상적이다. 대표적인 곳으로 개심사(開心寺)와 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 그리고 간월암(看月庵)이 있다. 보물 143호로 등재된 개심사(開心寺) 대웅전(大雄殿). 개심사에 가면 건축예술이 돋보이는 대웅전 외에 심검당(尋劍堂)도 둘러볼 것을 권한다. 심검당은 여러 절을 떠돌며 수행하던 행각승이 머물던 별채로, 자연이 깃든 아름다움을 뽐낸다. 먼저 상왕산(象王山)과 일락산(日樂山) 사이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개심사는 백제 말기인 서기 654년에 창건된 이래 1,4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써오고 있는 사찰이다. 오랜 역사와 미학적인 가치로 말미암아 충남 4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도 일컬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개심사는 사찰로 향하는 여정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사찰 주차장에 닿기 직전 지나는 신창(新昌) 저수지는 일대의 농지에 물을 대기 위한 시설인데, 가을 아침 그곳을 지날 때면 상서로운 안개가 신비감을 더해준다. 잠시 차에서 내려 산책을 권한다. 이후 주차장에서 일주문(一柱門)을 지나면 사찰까지 500미터 남짓한 숲길이 이어진다. 그 끝에서 만나는 첫 풍광은 직사각형 연못 위에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 걸쳐놓은 외나무다리다. 그 옆으로 거울 연못이라는 뜻의 ‘경지(鏡池)’라고 새겨놓은 표석이 있다. 스스로의 마음을 물에 비추어 돌아보고 성찰하라는 의미로, ‘마음을 열고 온갖 번뇌를 씻는 사찰’이라는 뜻을 가진 개심사의 이름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개심사는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돋보이는 사찰이다. 2004년 복장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280년에 보수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불(木佛)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佛坐像), 1484년에 고쳐 지은 이래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웅전(大雄殿) 등 곳곳에 단아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끄는 것은 승려들의 거처인 심검당(尋劍堂)이다. 옆에 연결돼 있는 부엌 부분만 후에 덧대어졌을 뿐 대웅전과 비슷한 시기에 고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이 유독 이목을 끄는 까닭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 휘어진 통나무를 최소한만 다듬어 세운 기둥 때문이다. 단청도 칠하지 않아 미세하게 벌어진 나무 틈새들에서는 역사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사찰 안팎의 가을 단풍과 함께 어우러져 천년고찰의 중후함과 함께 소박하면서도 아늑한 운치를 더한다. 백제 말기의 화강석 불상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 긴 세월 수풀에 파묻혀 있다가 1958년 발견되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변하는 미소가 돋보인다. 개심사의 반대편 산자락에 거대한 암반을 캔버스 삼아 조각돼 있는 서산마애삼존불 역시도 꾸밈 없이 소박해 보이기는 매한가지다. 심지어 범접할 수 있는 저 너머의 누군가가 아니라 내 주변의 장난끼 많은 친구와 같은 익살스러운 느낌마저 풍긴다. 시간이 지남에 따른 분위기 변화도 예사롭지 않다. 벽면 부조이기는 하나 양감(量感)이 풍성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보니 시간 흐름에 따라 태양빛이 드리우는 각도가 달라져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더욱이 1,500년 가까이 베일에 싸여 있다 1959년에야 세상에 알려져 국보로 지정된 문화유산이기에 특별함은 배가 된다. 서산마애삼존불이 괜히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게 아닌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서산에 간다면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 있다. 머드 맥스 영상에도 등장하는 간월암이다. 천수만 위에 떠 있는 서산의 최남단 섬 간월도(看月島)에 있는 유일무이한 암자(庵子)이다. 이곳 역시 웅도처럼 하루에 두 번 바다 갈라짐이 나타날 때면 약 30미터 폭의 길이 드러나기에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웅도와 차이라면 밀물에 길이 잠긴다 해도 나룻배가 있어 들고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밀물에 잠겼을 때의 모습이 마치 연꽃 같다 해서 연화대(蓮花臺)라고도 불리는데, 실제로는 밀물 때든 썰물 때든 할 것 없이 한 폭의 그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 질 녘에 간월암에 간다면 그 그윽함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간척의 역사가 곧 한국의 역사 주전골 입구에 있는 용소폭포는 높이는 약 10m, 소의 깊이 약 7m로 아담한 규모다. 옛날 옛날 이 소에서 살던 천년 묶은 암수 이무기 2마리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 하다가 수놈만 승천하고 암놈은 미처 준비가 안 되어 이곳에서 굳어져 바위와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개심사를 비롯한 서산마애삼존불과 간월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이 질박한 역사 유산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감정은 옛사람들의 평화와 안녕을 바라는 깊은 염원이다. 바다가 많은 것을 제공해 주긴 했으나 해난사고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전근대 시대에는 해적의 노략질 탓에 공동체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옛 서산 사람들, 나아가 한국인들은 그와 같은 도전적 상황에 주눅 들지 않고 생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한국전쟁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되었음에도 다시 일어섰으며, 독재 시대를 물리치고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해 왔다. 그런 면에서 간월암 바로 동쪽에 있는 ‘서산 A지구 방조제(防潮堤)’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끝내 그 방조제를 쌓는 데 성공함으로써 착공 15년 3개월 만에 완공한 ‘서산 AB지구 간척지(干拓地)’는 좁게는 서산, 넓게는 한국과 한국인의 면면을 상징하는 바로미터와 같은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워낙 큰 바다답게 공사가 시작된 1980년 당시에는 간척지 조성을 위한 방조제를 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승용차 크기의 돌을 퍼부어도 초당 8미터가 넘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가기 일쑤였다. 공사는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공사를 맡고 있던 정주영(鄭周永 1915~2001) 현대건설(現代建設) 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고철로 이용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들여온 23만 톤급 대형 유조선이 있었는데, 그것을 끝내 메우지 못하고 있던 마지막 물막이 공사 구간에 바짝 붙여 가라앉히라는 지시였다. 모두가 긴가민가하는 사이에 유조선을 가라앉히는 데 성공했고, 유속이 잦아든 틈을 타 공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길이가 7.7킬로미터에 달하는 방조제가 완공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당시 한국의 전체 농경지 면적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1만 헥타르가 넘는 농경지였다. 단일 농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서, 50만 명의 사람들이 1년 안팎을 먹을 수 있는 양의 쌀을 재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청정한 바다와 영양 풍부한 갯벌이 선사해 준 충분한 양식, 그리고 공동체의 평화를 지켜내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확대하기 위한 노력으로 대표되는 충남 서산. 그러고 보면 서산 여행은 단지 서산의 과거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한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주민들이 수산자원을 활용하는 한편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보호를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 점을, 해미읍성이나 불교 관련 문화유산으로부터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행복도 중시하는 문화를, 그리고 서산AB지구 간척지에서는 그런 역사가 낳은 한국인의 정신까지 말이다. 가을 정취 넘치는 서산은 과거를 통해 한국의 오늘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여행지다.     권기봉(KWON Ki-bong 權奇鳯)작가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사진작가

창극으로 확장된 여성 서사

Arts & Culture 2023 SUMMER

창극으로 확장된 여성 서사 국립창극단이 여성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 동명의 웹툰 를 올해 첫 레퍼토리로 무대에 올렸다. 원작의 인기와 여성 국극이라는 소재에 대한 관심으로 개막 전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기대를 넘어서는 감동으로 창극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립창극단의 2023년 첫 레퍼토리인 는 195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여성국극이 소재이다. 사진은 당시 여성국극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연출한 장면이다. ⓒ 국립극장 국립창극단이 올해 3월 무대에 올린 는 여러모로 이례적인 작품이었다. 개막 두 달을 앞두고 캐스팅이 발표되기도 전에 전 좌석이 조기 매진되었고, 이에 따라 3회 더 연장된 공연마저 모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이 이토록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우선 빼어난 원작에 기인한다. 이 창극은 서이레(Suh Iireh)가 글을 쓰고 나몬(Namon)이 그림을 그린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최고의 여성 국극 배우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소녀의 성장기를 그렸다. 이 웹툰은 2019년, 연재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콘텐츠상’도 받았다. 그만큼 작품성이 보장되었다는 얘기다. 또한 그동안 웹툰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사례는 많았지만 창극화는 처음이라는 화제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창극이 주목받은 데는 무엇보다 소리꾼이자 공연예술가로서 상당한 팬덤을 갖고 있는 이자람이 작창(作唱)을 맡고, 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연출가 남인우가 협업했다는 점이 주효했지 않았을까. 여기에 그리스 비극, 중국 경극 등 다양한 장르를 지속적으로 창극화해 왔던 국립창극단이 1960년대 이후 명맥이 끊긴 여성 국극을 부활시켰다는 점도 각별하게 다가온다. 짧았던 전성기 서이레 글, 나몬 그림의 웹툰은 2019년 4월부터 2022년 5월까지 3년 남짓 네이버웹툰(NAVER WEBTOON)에 인기리에 연재되었으며, 여성 서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국립극장 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창극과 여성 국극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창극은 판소리를 기반으로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 한국 고유의 음악극이다. 소리꾼들이 각자 배역을 맡아 연기한다는 점에서 일인다역(一人多役)의 판소리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창극의 한 장르로 195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여성 국극은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았다는 특징이 있으며, 창극보다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였고, 음악도 훨씬 대중적이었다. 당시에 여성 국극에서 남장을 한 여성 배우들의 폭발적 인기는 흥행과 직결되었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여성 팬들의 선물 공세는 물론이고, 배우들에게 혈서를 보내거나 납치를 시도하고, 심지어 가상 결혼식을 요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성 국극이 창극의 한 갈래로 자리 잡은 것은 1948년 박녹주(朴綠珠)와 김소희(金素姬) 등 당대 최고의 명창 30여 명이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면서였다. 남성 중심의 기존 국악계에 반발해 여성들이 반기를 들고 자신들만의 무대를 만들어 보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여성 국극은 창립 공연 를 기점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주류 국악계에서 여성 국극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저속한 오락으로 폄하되었고, 아류로 격하되었다. 이후 여성 국극은 1960년대 TV와 영화가 보급되면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고, 전통을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마련된 국가 제도에서도 배제되어 짧은 전성기가 막을 내렸다. 극중극 형식 여성 국극은 근현대사를 살아낸 여성들의 굴곡진 삶 자체였으며, 동시에 혼신의 힘을 다해 이뤄낸 성취였다. 남성에 의해 늘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던 여성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목소리와 이름, 그리고 정당한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빛나는 여정의 결과물이었다. 결국 는 가까운 과거에 존재했던 의미 깊은 역사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창극 의 또 다른 볼거리는 극중극 형식이다. 1950년대 실제로 인기가 많았던 , 등의 여성국극 작품들이 마치 액자소설처럼 삽입된다. 사진은 주인공 윤정년이 의 방자 역할을 첫 배역으로 따낸 후 열연하는 모습이다. ⓒ 국립극장 이 창극은 2시간 남짓한 시간에 빠른 호흡으로 웹툰 137화 분량의 방대한 서사를 압축해 전달한다. 따라서 생략된 부분도 있지만 원작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은둔한 명창의 딸인 주인공 정년이는 서울에 올라와 가장 규모가 큰 매란(梅蘭)국극단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사랑과 우정, 험난한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와 의연함으로 점철된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승자만을 다루는 일반적 영웅담과는 사뭇 다르다. 등장인물들은 경쟁자를 밟고 올라서지도 않고, 최고가 되기 위해 누군가를 음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했고, 여성 국극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작품 속 여성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세상과 어떻게 대결해야 했는지, 이를 위해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주인공 윤정년이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을 만나 여성국극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웅변하는 장면이다. ⓒ 국립극장 창극 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백미는 극중극 장치다. , 등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대표적인 여성 국극 공연들이 작품 속에 삽입되어 관객들은 의 관객이면서 동시에 매란국극단의 관객이 된다. 이로써 이 작품은 지금은 사라진 역사의 한 장면을 되살리는 동시에 관객들을 역사 속으로 초대한다. 여기에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배우들의 수준 높은 소리와 연기가 감동을 더한다. 수준 높은 작창 이 작품에서 서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음악이다. 판소리 소리꾼들은 오랜 기간 학습한 한국 전통 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데, 이를 작창이라고 한다. 소리를 만든다는 뜻이다. 오늘날 판소리로 만나는 모든 새로운 이야기는 작창을 필요로 하며, 작창의 깊이는 곧 작품의 수준을 결정한다.작창은 판소리라는 긴 역사를 탐구하고 해체하여 다시 쌓아 올리는 작업이다. 여기에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에 목소리를 불어 넣는다. 음악감독 이자람은 심원한 판소리의 유산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면서 가사의 내용을 극적으로 전달하고 말맛의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그는 판소리를 전통의 틀에 가두지 않고 동시대의 장르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명맥이 끊겼던 여성 국극은 2000년대 들어 페미니즘과 문화 운동 세례를 받은 여성 아티스트들에 의해 다양한 퍼포먼스로 재생돼 왔다. 그러다가 웹툰의 인기에 힘입어 창극화된 것이다. 남성 위주의 질서에 반발해 태동한 여성 국극이 시간의 강을 건너 강렬한 여성 서사를 앞세우며 당당하게 무대에 올랐다. 성혜인(Seong Hye-in, 成惠仁) 음악평론가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국물 요리 순두부찌개

Arts & Culture 2023 SUMMER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국물 요리 순두부찌개 순두부 특유의 담백하고 보드라운 질감은 다른 식재료에선 쉽게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다. 한국인들은 이것을 건강식으로도 먹고, 맵고 얼큰하게 끓여 해장음식으로 즐기기도 한다.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맛있게 즐기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순두부찌개의 매력은 어떤 부재료를 넣어도 각각의 맛과 개성을 잘 살린다는 것이다. 바지락 순두부, 짬뽕 순두부, 김치 순두부 등 부재료에 따라 이름과 맛이 달라진다. 순두부찌개는 김치찌개, 된장찌개와 함께 한국의 대표 찌개 요리다. 고춧가루로 얼큰한 맛을 낸 국물에 순두부를 풀고 달걀을 깨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이때 달걀은 각자 기호에 따라 빼기도 하고, 달걀 대신 해산물을 넣어 시원한 풍미를 살리기도 한다. 순두부 자체는 거의 ‘무맛’에 가까울 정도로 순하고 담백하다. 질감이 보드랍고 연해서 입 안에 넣었을 때 씹을 것도 없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데, 얼핏 푸딩의 질감과도 비슷하다. 백옥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순두부를 얼큰한 국물에 넣고 팔팔 끓여냈으니 담백하고 매운, 정반대의 두 맛이 한데 어우러져 매력적인 국물 요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지역별로 먹는 방식이 다른 순두부찌개 같은 순두부찌개라도 지역별로 끓이는 방식이나 먹는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서울은 얼큰한 국물에 순두부와 달걀, 바지락 등을 넣고 끓여 먹는다면 매운 음식을 즐기는 경상도 지역 사람들은 기름에 대파와 고춧가루를 넣고 달달 볶아 매운 고추기름을 먼저 낸 후 여기에 육수와 순두부를 넣고 끓이는 방식이다. 고추기름 때문에 국물이 훨씬 맵고 강렬하다. 특히 예부터 얼큰한 해장국 문화가 발달한 대구 지역은 고추기름을 베이스로 다양한 국물 요리를 만들어 먹는 방식이 보편화됐는데, 이들에게 순두부찌개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젓갈을 즐겨 먹는 전라도 지역은 새우젓으로 맛을 낸다. 이곳의 순두부찌개는 애호박과 새우젓으로 짭짤한 감칠맛을 살린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충청도는 짜글이 문화가 발달했다. ‘짜글이’는 볶음요리와 찌개의 중간쯤 되는 음식으로 국물을 졸이듯이 걸쭉하게 끓여 밥 위에 올려 먹는 요리다. 순두부찌개 역시 짜글이 형태로 국물 양을 적게 넣어 졸이듯이 끓인 후 밥 위에 올려 먹거나 비벼 먹는다. 다양한 조화로 해외에서도 인기 순두부는 질감과 맛이 튀거나 자극적이지 않기에 다른 부재료와 균형을 잘 이룬다는 것이 강점이다. 순두부찌개에 해산물을 넣으면 해물 순두부찌개, 소고기를 넣으면 소고기 순두부찌개, 바지락을 넣으면 바지락 순두부찌개, 굴을 넣으면 굴 순두부찌개가 된다. 담백하면서 매력적인 순두부가 탄탄한 기본기가 돼주니, 여기에 어떠한 부재료를 넣어도 각각의 맛과 개성을 잘 살린 스페셜 찌개가 되는 것이다. 순두부찌개는 한국 고유의 음식을 넘어 해외 각국에서 즐겨 먹는 음식으로도 부상 중이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대표적인 한식 브랜드가 바로 북창동순두부가 아닌가! 2005년 『뉴욕타임스』에선 한국의 순두부찌개를 ‘매운 육수에 비단처럼 부드러운 순두부, 그리고 파와 소고기, 아삭아삭한 김치를 곁들인 순두부찌개는 가장 이상적인 겨울 음식’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 미국, 캐나다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자완무시(부드러운 일본식 달걀찜)와 식감이 비슷해 인기가 좋다. 대표 건강식 식감이 매우 부드러운 순두부는 맛도 순해 소화가 잘된다. 배부르게 먹어도 부담이 없는 데다 단백질이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다. 순두부는 우리가 흔히 아는 두부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콩물을 끓이다가 간수(소금으로 내린 물)를 넣고 휘휘 저으면 어느 순간 콩의 단백질이 몽글몽글하게 응고되며 덩어리째 엉기고 뭉쳐지기 시작하는데 그 단계에서 웃물과 함께 떠낸 것이 순두부다. 여기서 떠내지 않고 응고제를 넣어 단단하게 굳히면 두부가 된다. 별다른 재료 없이 오직 콩과 간수만으로 만들기 때문에 맛있는 순두부를 완성하는 절대적인 조건은 품질 좋은 콩과 간수다. 순두부의 핵심 재료인 콩은 한국에서 ‘밭의 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콩에 함유돼있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의 일종인 이소플라본은 고혈압,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고 항암에도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순두부의 단백질은 필수아미노산을 풍부하게 갖고 있어 소화가 잘되고, 배부르게 먹어도 거부감이 없다.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없다.   맑은 순두부의 본고장, 초당마을 주로 빨간 양념을 한 순두부찌개가 많지만, 강원도 강릉 초당마을에서는 별다른 양념 없이 순두부 자체를 담백하게 즐기기도 한다. 다양하게 조리한 순두부찌개가 있지만, 양념 없이 순두부 자체를 담백하게 즐기는 이들도 있다. 뜨끈하게 데운 순두부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으며 맛을 음미하면 순두부 본연의 고소함이 은은하게 돈다. 맑은 순두부를 판매하는 식당들은 매장에서 순두부를 직접 만드는 경우가 많다. 맑은 순두부의 본고장은 강원도 강릉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강릉 안에서도 ‘초당마을’은 특히 순두부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비옥한 강원도 땅에서 자란 콩과 인근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춰 순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더욱 고소하고 콩의 질감도 살아있다. 일반 순두부 제품보다 결이 좀 더 투박하고 거친 듯하지만, 한국인들은 강릉 스타일의 순두부가 제대로 만들어진 진짜 순두부라며 선호한다. 강릉 초당마을이 순두부 본고장으로 이름을 알린 데는 16세기 조선시대 중기 문장가이자 관료였던 허엽(Heo Yeop 許曄, 1517~1580)이 강릉에서 부사(지방 관아에서 실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종의 지방장관직)로 있을 당시 관청 앞마당에 있던 샘물의 맛을 보곤 물맛이 좋다고 여겨 샘물과 동해 바닷물로 두부를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한다. ‘초당두부’, ‘초당마을’이라는 이름 역시 허엽의 호인 ‘초당(草堂)’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강릉 초당마을에 가면 순두부의 본고장답게 강릉식 정통 순두부를 맛볼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이 초당 순두부가 하나의 고유 브랜드가 되어 현재는 순두부를 이용한 순두부 아이스크림이나 순두부 젤라토 등을 팔기도 한다.   이색 순두부 맛집 한국엔 이 순두부를 활용한 다양한 이색 메뉴를 판매하는 식당들이 많다. 강원도 강릉의 ‘동화가든’은 매운 짬뽕에 순두부를 넣어 ‘원조짬뽕순두부’라는 대표 메뉴를 판매한다. 짬뽕은 중국요리 중 하나인데, 동화가든은 짬뽕을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얼큰한 국물에 순두부를 추가해 완전한 한국식 짬뽕으로 구현했다. 여기에 푸짐한 해산물 토핑은 덤이다. 이 집은 전국 맛집으로도 유명해 매일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강릉 순두부 장칼국수’는 식당은 상호에서도 알 수 있듯 순두부가 들어간 칼국수를 주력 판매하는 곳이다. 이곳의 순두부 장칼국수는 한국의 전통 발효장인 된장과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얼큰한 국물에 납작하게 썬 칼국수와 순두부, 애호박, 표고버섯 등을 넣고 끓인 메뉴다. 뱃속까지 뜨끈해지는 칼칼하고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처음엔 칼국수면을 먼저 건져 먹고 난 후 국물에 소복하게 담겨있는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장국물과 함께 떠먹는 것이 이 집의 룰이다. 서울에도 순두부찌개를 다채롭게 내는 식당들이 많다. ‘오팔식당’은 돼지고기를 잘게 간 민찌와 순두부를 넣고 끓인 민찌 순두부찌개를 선보인다. 서울 ‘거복이식당’은 돼지고기 BBQ 전문점인데, 사이드 메뉴로 판매하는 돼지고기 순두부찌개가 특히 별미다. 이 집의 돼지고기순두부찌개는 한국식 전골 스타일로 3~4인용 큼직한 전골용 냄비에 돼지고기와 순두부를 가득 담아 즉석에서 보글보글 끓여가며 먹는 요리다. 순두부 자체는 굉장히 단조롭고 정적인 음식이지만, 이것이 찌개가 됐을 땐 뜨겁고, 맵고, 또 화끈해진다. 생동감이 살아난다. 정적이지만 강인한 맛. 화려하진 않지만, 본질에 충실한 맛. 순두부찌개는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맛일지도 모른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 월간외식경영 편집장

케이팝 4세대 그룹에 대하여

Arts & Culture 2023 SUMMER

케이팝 4세대 그룹에 대하여 한국이 만드는 문화 콘텐츠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 중심엔 케이팝이 있다. 지금은 주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을 우리는 4세대 케이팝 그룹이라 말한다. 이들은 기존 세대와 무엇이 다르며, 이들이 만들어가는 케이팝 문화는 무엇이 다를까. 에이티즈(ATEEZ)는 ‘10대들의 모든 것(A to Z(A Teenager Z))’이라는 의미를 담은 8인조 그룹이다. ⓒ KQ 엔터테인먼트 세대론은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호사가(好事家)에게 인기 좋은 재료이다. 이전과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발견되면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세대’라는 간판을 거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새롭게 받아들이며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케이팝도 마찬가지다. 세대를 나누는 정확한 기준이나 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전과 다른 특징, 그러니까 그룹 구성 형태나 활동 지역, 콘셉트 등 이전과 다른 뚜렷한 특징이 보이는 그룹이 대거 나타났을 때 이들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대로 구분 지었다. 케이팝 그룹 1세대부터 4세대까지 1세대 케이팝 그룹 중 하나이자 국내 최초의 아이돌은 1996년 데뷔한 SM 엔터테인먼트의 H.O.T.이다. 이후 1997년 6인조 그룹 젝스키스가 데뷔하면서 H.O.T.와 경쟁 구도를 만들며 활동했고, 여자 아이돌 그룹으로는 1997년 S.E.S.가, 1998년 핑클이 데뷔해 경쟁 구도를 이어갔다. 이후 2세대로 넘어가기 전 신화, god, 쥬얼리, 보아 등 실험적 특징을 지닌 1.5세대라 아이돌 그룹이 나왔고, 이 시기에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끌면서 ‘한류’ 개념과 일부 일본 언론에서 ‘케이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케이팝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과거 신비주의를 고수하던 케이팝 1세대 그룹과는 달리 케이팝 2세대 그룹은 친밀한 이미지를 추구하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을 통해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동했다. 대표적인 그룹이 빅뱅,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이다. 이들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월드 투어를 통해 국내외 대형 팬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국내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뒤 해외에서 활동하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케이팝 3세대 그룹의 특징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국내외 동시 성장을 꾀했다는 것이다. 또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전부터 탄탄한 팬덤을 확보하기도 했다. 또한 케이팝의 질적 향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이를 이끌어낸 주역은 엑소, 방탄소년단, 위너, 레드벨벳, 마마무 등이다.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뉴진스가 지난 1월 발매한 앨범 < omg > 의 단체 사진이다. ⓒ 어도어 지난 4월 발매한 아이브의 앨범 < I’ve IVE > . 아이브는 2021년 데뷔부터 자기애를 기반으로 노래하며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3세대 케이팝 그룹의 출현 이후 케이팝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대륙과 국가 등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까지도 구분 짓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그룹마다 독특한 개성과 세계관을 펼치며 본격 케이팝 4세대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아무튼 뭔가 다르다며 “달라달라”를 외치던 있지(ITZY)가, 어느 날 머리에서 자란 뿔을 부적 삼아 이전 세대와 선을 긋던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X TOGETHER)가, 밀레니엄 어딘가쯤의 향수를 사정없이 자극하며 등장한 뉴진스(NewJeans)가 모두 케이팝 4세대 대표 그룹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으로 10~20대와 정서를 공유하며 탄탄한 팬덤을 구축했다. ⓒ 빅히트 뮤직 케이팝 4세대 그룹의 중요 키워드 케이팝 4세대를 이끌어가는 그룹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해외 활동이다. 방탄소년단 이전까지 그룹의 해외 활동은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2001년 자신의 데뷔곡인 < ID;Peace B > 를 일본어로 번안해 일본에서 데뷔한 보아(BoA)처럼 선배들이 공들여 다져 놓은 일본 시장 정도를 제외하면 케이팝 가수에게 해외 시장은 여전히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었다. 싸이(PSY)가 < 강남스타일(Gangnam Style) > 로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을지라도, 여전히 도전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한령 등으로 장단 맞추기 바쁜 중국 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방탄소년단 이후는 달랐다. 아이돌 그룹과 케이팝, 나아가 한국 대중문화에 주목하는 시선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로 2020년을 전후해 데뷔한 4세대 그룹은 기획과 마케팅에 있어 ‘해외’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키워드였다. 다양한 국가의 언어 구사가 가능한 멤버를 그룹에 포함하는 건 기본이고, 음악에서 퍼포먼스까지 콘텐츠 전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활동을 꼭 한국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도 옅어졌으며, 나아가 그룹 구성원 가운데 한국인이 없어도 케이팝은 케이팝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도 늘어났다. 유명 아이돌 그룹이 새 앨범과 관련한 프로모션을 해외 방송을 통해 시작하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고, 데뷔 100일 만에 북미 투어를 개최하며 탄탄한 해외 팬덤을 구축한 뒤 본격적인 국내 공략에 나서며 유의미한 성과를 낸 그룹 에이티즈(ATEEZ) 같은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뚜렷한 개성 4세대 그룹의 또 다른 특징은 일명 젠지(Gen Z)라고 불리는 세대와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그룹의 등장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경우 데뷔 당시, 현재 세대 전반에 어린 은은한 우울을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스토리텔링으로 주목 받았다. 이들의 곡은 <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CROWN 昨天頭髮中長得角) > , <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5點53分的天空下發現的你和我) > , <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Run Away 在九又四分之三站臺等你) > 처럼 제목부터 알쏭달쏭하다.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수수께끼 같은 언어와 감성에 초점을 맞추며 독보적인 면모로 10~20대 팬을 중심으로 점차 몸집을 불려 나갔다. 뚜렷한 개성을 가진 그룹의 출현과 동시에 이전 세대와 달리 여성 그룹의 강세가 돋보이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먼저 아이브는 2021년 12월 데뷔 이후 내내 ‘나’에만 집중했다. 나를 사랑하다 못해 나와 사랑에 빠져버린 나르시시즘을 노래하는 이들의 외침은 화려하고 쿨한 그룹의 색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이 훌륭한 조화는 아이브 싱글 앨범 < Eleven(2021) > , < Love Dive(2022) > , < After Like(2022) >3연속 히트와 2022년 최고의 신인그룹이라는 타이틀, 여기에 케이팝 4세대 그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룹이라는 영광의 왕관을 차례로 씌웠다. 그룹명 있지(ITZY)는 ‘너희가 원하는 거 전부 있지? 있지!’라는 뜻이다. 2019년 당시 데뷔곡 로 데뷔 9일 만에 걸그룹 음악방송 최단 기간 1위 달성을 하며 화제가 되었다. ⓒ JYP 엔터테인먼트 르세라핌은 음악을 관통하는 주체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그룹이다. 2022년 데뷔 초 나의 욕망과 시련에 관해 이야기 한 이들은 지난 5월 우리에 대한 이야기로 메시지를 확장하면서 데뷔 이후 줄곧 이어온 주제를 이어가면서도 한층 확장된 메시지로 존재감을 이어갔다. 뉴진스는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포부처럼 데뷔와 동시에 레트로 감성이 돋보이는 콘셉트와 곡, 안무, 실력 등이 화제가 됐다. 데뷔곡 에 이어 도 빌보드 차트에 입성한 것에 이어 10대의 풋풋하고 순수한 콘셉트에 대중이 열광했으며 그 인기는 업계까지 이어져 국내외 광고계를 석권할 정도였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케이팝 에스파(aespa)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아티스트 멤버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가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 가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 SM 엔터테인먼트 흥미로운 건 케이팝 4세대 그룹 초기 주요 키워드로 언급되던 메타버스를 비롯한 가상 공간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수그러들었단 점이다. 해당 논의의 꼭짓점에 놓여 있던 그룹 에스파(aespa) 역시 아바타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세계관보다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핵심과도 같은 SMP(SM Performance)를 원형 그대로 재연하는 계승자로서의 가치를 더 높게 인정받는 모양새다. 가상이 아니면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팬데믹 기간, 케이팝이 깊이 깨달은 건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이어줄 수 있는 기술 활용의 중요성이었다. 이는 해당 시기 가장 흥한 케이팝 비즈니스가 가수와 팬 사이를 감정적으로 더 깊게 이어주는 각종 팬 플랫폼이었다는 점만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4세대 케이팝의 윤곽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갈 새 시대 케이팝의 지형도도 이제 막 그려지기 시작했다. 김윤하(Kim Yoon-ha 金侖河)대중음악평론가

한적하면서도 역동적인 휴양지

Arts & Culture 2023 SUMMER

한적하면서도 역동적인 휴양지 강원도 양양은 그 자체로 종합선물 세트와 같은 고장이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고갯길이 있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걸을 수 있는 트레일이 있다. 역경을 딛고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문화유산 낙산사(洛山寺)가 있으며, 한국 최고의 서핑 성지로도 꼽히는 곳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고개를 넘을 땐 늑장을 부릴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뛰어난 풍광이 여행자를 붙잡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비밀스러운 길을 올라가다 보면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길을 다소 돌아가더라도 강원도(江原道)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고갯길을 놓치지 말라고 추천하는 이유이다. 아름다운 고갯길과 배려의 건축 설악산은 한국인이 사랑하고 즐겨 찾는 산이다. 설악산의 한계령 이남 오색지구를 남설악이라고 하는데, 주전골은 남설악에서 가장 수려한 계곡으로, 하이킹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골이 깊어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수 있으며, 주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고갯길의 이름은 ‘오색령(五色嶺)’이라고도 부르는 ‘한계령(寒溪嶺)’이다. 한계령은 ‘차디찬 계곡을 끼고 있는 고개’를 뜻한다. 실제로 해발고도가 1,000미터가 넘어 근처의 대관령(大關嶺)이나 미시령(彌矢嶺), 진부령(陳富嶺) 중 가장 높은 고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實學者)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그가 1751년 저술한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 추지령(楸地嶺)과 철령(鐵嶺), 연수령(延壽嶺), 백봉령(白鳳嶺), 대관령, 그리고 한계령을 강원도의 이름난 여섯 고개로 꼽았는데, 그중에서도 한계령을 최고라 칭했다. 고갯길 정상에 다다르면 지난 1980년대 초에 들어선 한계령휴게소를 만날 수 있다. 녹음에 둘러싸인 설악산(雪嶽山) 국립공원을 감상하려는 이들의 시선을 가리지 않으려는 듯 처마 선을 유난히 낮게, 그리고 테라스를 길게 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어디에서나 기암괴석 너머 푸르른 동해를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건물은 한계령의 정취를 방해하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지붕 높이를 낮췄고, 주변 산세와 어울리게 높낮이를 조절했다. 이런 세심한 고민을 바탕으로 건물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수근(金壽根 1931~1986)과 그의 후배인 류춘수(柳春秀)다. 한계령휴게소가 그러하듯 김수근의 건축은 배려의 미학이 특출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갑자기 세찬 비바람이 불면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처마 밑이나 내부로 들어와 쉴 수 있도록 1층을 최대한 열린 형태로 설계했으며, 아예 골목길 형태로 만들어 쉬엄쉬엄 지나다닐 수도 있도록 했다. 내부 기둥에 붙어있는 1983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본상’ 수상 동판은 그런 배려심 넘치는 설계에 대한 헌사일 것이다. 동시에 자연을 대하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계곡 하이킹과 온천욕의 조화 주전골 입구에 있는 용소폭포는 높이는 약 10m, 소의 깊이 약 7m로 아담한 규모다. 옛날 옛날 이 소에서 살던 천년 묶은 암수 이무기 2마리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 하다가 수놈만 승천하고 암놈은 미처 준비가 안 되어 이곳에서 굳어져 바위와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굽이굽이 내려가다 보면 곧 오색약수(五色樂水) 입구 쯤 자리한 약수터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이곳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바로 ‘오색약수’와 ‘주전골(鑄錢谷) 하이킹’이다. 서기 1500년경 한 승려에 의해 발견된 오색약수는 하루 용출량이 1,500리터에 달하는데, 그 역사성과 고유성을 인정받아 2011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다섯 가지 색깔의 약수를 뜻하는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주전골 위쪽에 있던 오색석사(五色石寺)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사찰 주변에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 특이한 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약수의 이름이 오색약수, 지명은 오색리, 한계령의 또 다른 명칭인 오색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설의 영역일 따름이다. 또 다른 유래도 있다. 얼핏 보면 투명한 약수지만, 입에 대어 보면 산화된 철의 맛이 난다. 실제로 철(鐵) 성분이 유독 많다 보니 오래 두면 산화반응을 일으켜 투명색에서 회색을 거쳐 다갈색에 이어 황토색으로, 최종적으로는 붉은색으로 변한다. 즉 다섯 가지 색을 모두 지녀 오색약수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이다. 오색약수는 주전골 하이킹을 하기에 최적의 출발점이다. 오색석사 터에 새로 지어진 성국사(城國寺)와 선녀탕(仙女湯)을 지나 용소폭포(龍沼瀑布)에 이르는 약 3.5킬로미터 거리의 트레일은 당일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왕복 2시간에서 3시간 정도가 걸린다. 걷다 지치면 울창한 녹음 사이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발을 담가봐도 좋다. 시원함을 넘어 차갑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특히 오색약수에서 성국사까지 이어지는 약 700미터는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되어 있어 노약자나 교통약자도 큰 어려움 없이 주전골, 나아가 설악산 국립공원의 정수를 모아둔 것 같은 장쾌하며 압도적인 경치 속으로 녹아들 수 있다. 주전골 근처 오색그린야드호텔에서는 오색약수를 이용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톡 쏘는듯한 탄산 온천에는 탄산과 칼슘, 철 등 인체에 유용한 성분이 풍부해 신경통, 피로 회복, 위장 장애 등에 효과가 있다. ⓒ 오색그린야드호텔 하이킹을 마치고 오색약수로 돌아온 뒤에는 온천욕으로 몸을 풀며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도 추천한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낸 오색그린야드호텔에서는 오색약수를 이용한 온천욕이나 한국 특유의 문화인 찜질방도 체험할 수 있다. 온천 후 출출해진 배는 오색약수와 호텔 사이에 있는 20여 곳에 이르는 식당에서 채울 수 있다. 이곳에서는 도시에서 맛보기 힘든 다양한 산채(山菜) 음식과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며 말린 황태(黃太)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여기에 강원도에서 옥수수 알갱이나 더덕 뿌리를 넣어 만든 막걸리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이다.   낙산사(洛山寺) 홍련암(紅蓮庵)은 동해에서 떠오른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 중 하다나. 바닷가 석굴 위에 지어져 암자 법당 아래로 바닷물이 쉴새 없이 출렁이며 드나든다.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海水觀音空中舍利塔)에서 시민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낙산사는 빼어난 절경으로도 유명하지만, ‘기도 성지’, ‘관음 성지’라고 불릴 만큼 소원을 빌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바다 낙산사는 서기 671년에 지어진 이래 무려 1,3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사찰이다. 애초에는 3층으로 지어졌다가 1467년에 7층으로 높여 세운 칠층석탑을 비롯한 여러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홍련암(紅蓮庵)은 문화유산과 자연이 어떻게 앙상블을 이루며 장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사찰을 세운 의상대사가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친견했다는 낙산사의 창건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로서, 푸르른 동해와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절묘한 배치가 인상적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난 2005년 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산불 탓에 낙산사 건물 중 20여 채가 불에 탔다는 점이다. 의상(義湘)기념관에 전시된‘녹아내린 동종(銅鐘)’이 당시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창건 이래 여러 차례 파괴와 소실, 그리고 재건을 거듭해온 생명력에서 유추할 수 있듯 2005년의 경험은 슬픔으로만 기억되고 있지는 않다. 녹아내린 동종 맞은편에 전시된 첼로와 바이올린이 그 증거들이다. 당시 불타고 남은 건물의 대들보를 이용해 만든 것들인데, 고난에 굴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서피비치는 하조대해수욕장 북쪽에 조성한 국내 최초 서핑 전용 해변이다. 이국적인 풍광과 함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구성되어 있으며, 비치 파티, 캠핑 등도 즐길 수 있다. 서피비치에서는 ‘서프 스쿨’을 운영한다. 초보자부터 중상급자까지 수준별 맞춤 강습이 가능하다. 또 서프 요가, 롱보드, 스노쿨링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낙산사가 정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라면, 죽도해수욕장과 인구해수욕장 주변에 즐비한 서핑 숍들은 양양의 동적인 활력을 보여준다. 파도의 규모와 빈도가 적당하고 바닷물이 유난히 맑아 한국 서핑 숍의 약 70퍼센트가 양양에 몰려 있을 정도이다. 하조대해수욕장에는 2015년에 한국 최초의 서핑 전용 해변인 1킬로미터 길이의 서피 비치(surfyy beach)도 생겼다. 7월 말 8월 초의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에는 그야말로 ‘물 반 서퍼 반’으로 채워지는 곳이다. 초심자들도 어렵지 않게 강습을 받을 수 있어 며칠 묵으며 배우는 여행자들도 적지 않다. 그러는 사이 주전골 같은 산과 계곡이 그립다면 해수욕장 사이에 자리 잡은 죽도정(竹島亭), 또는 하조대(河趙臺) 일대를 산책해보기를 추천한다. 죽도정은 죽도해수욕장(竹島海水浴場)과 인구해수욕장(仁邱海水浴場) 사이에 돌출된 죽도산 위에 있는 정자이다. 주변 암반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전망대에의 조망이 일품이다. 책 한 권 가지고 올라가 그늘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으면 이보다 훌륭한 독서실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조대는 한국 정부가 지정한 명승(名勝) 가운데 하나다. 정자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거대한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사 소나무가 아니다. TV에서 공영 방송이 시작되거나 끝날 때 한국 국가인 애국가가 1절부터 4절까지 흘러나오는데, 2절 도입부에 등장한다. 이에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모르는 이가 없는 소나무가 되었다. 물론 유명세가 전부는 아니어서, 그 자체로 독특한 미감(美感)을 뽐낸다. 어떤 면에서는 산과 계곡, 바다, 그리고 문화유산을 아우르는 여행지로서의 양양 그 자체를 대표한다는 느낌도 들게 한다.     권기봉(KWON Ki-bong 權奇鳯)작가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사진작가

재미로 이루어 낸 새로움의 세계

Arts & Culture 2023 SUMMER

재미로 이루어 낸 새로움의 세계 무형문화재 이수자 허성자(Hur Sung-ja, 許性子) 씨는 완초(莞草) 공예에 과감하게 현대적 디자인을 적용한다. 기존 완초 공예의 제한된 용도와 형태에서 벗어난 그의 오브제들은 전통 공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완초 공예의 기본 형태인 원형 화방석(花方席)이다. 완초 공예는 논이나 습지에서 자라는 한해살이풀인 왕골을 재료로 돗자리, 방석, 합 등을 만드는 작업이며 고드랫돌을 사용하거나 손으로 직접 엮는 두 가지 방법을 활용한다. 과거 농경 생활을 하던 한국인들은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짚이나 풀로 생활 공예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중 완초라고도 불리는 왕골 공예는 일손을 놓은 겨울철 농가의 좋은 부업거리이기도 했다. 왕골로 만든 자리는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뿐더러 형형색색 무늬가 아름다워 인테리어 소품 역할도 했기 때문에 수요가 적지 않았다. 한국의 왕골 공예 문화는 그 역사가 깊다. 고려 시대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1145)에 보면, 이미 삼국 시대에 왕실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을 만드는 전담 기구가 있었고, 신분에 따라서는 왕골로 자리를 엮어 수레에 휘장을 쳤다는 기록도 있다. 왕골 공예의 진수를 보여 주는 화문석(花紋席)은 일찍이 고려 인삼과 함께 중요한 교역품이기도 했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1123)에 화문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에 이미 화문석 짜는 기술이 매우 정교하고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 초기 지리서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에는 지금의 강화군(江華郡)이 속해 있던 지역에서 왕실에 특산품으로 왕골속(왕골의 겉껍질을 벗겨 낸 속살)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 이미 이 지역이 왕골 재배에 적합한 날씨와 풍토로 완초 공예의 명산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때 강화군 교동(喬桐) 지역은 집집이 왕골을 짠다고 했을 만큼 완초 공예가 왕성했지만, 1980년대 이후 저렴한 수입산 공예품에 밀려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위기를 맞았다. 현재는 몇몇 장인들에 의해 전통 공예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기교와 집중의 극치 서른이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완초 공예의 길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허성자 장인은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현대적 감각의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완초 공예의 공정은 크게 재료 준비와 제작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재료인 왕골은 7~8월에 수확했다가 주로 겨울철에 물에 적셔서 말리는 정련 작업을 거친다. 이렇게 물에 적셔 말리기를 반복해야 껍질이 부드러우면서도 질겨지고, 왕골 특유의 푸른 기가 빠져 전체적으로 미백색을 띠게 된다. 정련 작업 후 문양이나 패턴에 사용될 왕골은 따로 염색한다. 끓인 물에 색깔별로 염료를 풀어 왕골을 넣고 푹 익힌 다음 건조시키면 된다. 이렇게 준비한 왕골을 굵기별로 분류해 보관해 두고 사용한다. 재료 손질을 마치면 제작에 들어가는데, 왕골을 짜는 기술에는 기구를 이용하는 방법과 손으로 엮는 방법이 있다. 화문석과 같은 자리는 보통 기구를 이용한다. 고드랫돌에 맨 실을 자리틀에 걸고 왕골을 한 가닥씩 올려 실을 교차해 가며 짠다. 방석, 바구니, 각종 합(盒)처럼 크기가 작은 기물은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손으로만 엮기 때문에 숙련된 장인의 솜씨와 감각이 필요하다. 먼저 왕골을 가늘게 쪼갠 후 두 개를 교차해 시계 방향으로 길게 꼬아서 날줄을 만들고, 다양한 굵기의 씨줄을 준비해 본격적으로 문양을 만들어 가며 제작에 들어간다. 합이나 바구니같이 높이가 있는 입체 형태의 기물은 기본형인 원형 화방석(花方席) 제작 공정에 운두(옆면)를 올리는 공정을 더한다. 엮는 방식은 동일하지만, 적절한 곡선을 주며 운두를 올리는 데는 정교한 기술과 숙달된 솜씨가 요구된다. 전체적으로는 왕골 굵기에 따라 짜임이 고르도록 당기는 힘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같이 기교와 집중의 극치를 보여 주는 왕골 공예 장인을 완초장(莞草匠)이라고 한다. 재미에서 재능으로 허성자 씨는 강화도에서 나고 자랐다. 태어나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그에게 왕골은 가장 흔한 놀잇감이자 생활의 일부였다. 여느 강화 사람들처럼 그의 집도 화문석을 짜는 게 일상이었고, 그 또한 어머니 어깨너머로 간단한 기법 정도는 깨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살던 허 씨가 완초 공예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5년, 그의 나이 서른이 훌쩍 넘은 뒤였다. “집 근처에 화문석문화관이 개관하면서 직원으로 일하게 됐어요. 완초 공예는 화문석, 화방석만 있는 줄 알았다가 생활 전반에 다양하게 사용된다는 걸 그때 알게 됐죠. 문화관에서 완초장 체험 수업을 들으며 장인들께 체계적으로 배우다 보니 이 일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퇴근해서도 애들이 잠자리에 들면 완초부터 손에 잡았으니까요.” 관심사와 일이 일치하다 보니 그는 빠르게 성장했다. 2009년 서울 한벽원(寒碧園)미술관에서 열린 을 비롯해 크고 작은 공예전에 꾸준히 출품도 했다. 그가 자타 공인 완초 공예인으로 들어선 계기는 2011년 ‘강화군 공예품 경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다. 같은 해 ‘인천광역시 공예품 대전’에서는 대상을, ‘대한민국 공예품 대전’에서는 중소기업청장상을 받았다. “제가 상복이 있나 봐요. 재미가 있어 만들면서도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아 보고 싶어서 출품했던 건데…. 뭐든 상을 받으면 힘이 나고 열심히 하게 되잖아요.” 재미에 빠져 몰두한 결과 그는 쟁쟁한 장인들을 제치고 인정받으며 성과를 올렸다. 이듬해 그는 국가무형문화재 완초장 전수장학생이 됐고, 2017년에는 이수자로 선정됐다. 이수자가 되면서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완초 공예에만 집중하게 됐다. “제가 이수자들 중에 가장 젊어요. 오랜 세월 이 일을 해 오신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저는 뭔가 새로운 걸 해 보고 싶었어요. 전통 공예라고 해서 전통 문양만 넣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분야의 전시회나 책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구했죠.” 한정된 용도와 표현 방식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직선과 사선, 격자 패턴을 넣어 완초 공예에 현대적 감각을 입혔다. 이른바 ‘허성자표’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작업실 벽장의 절반을 채운 각종 디자인 관련 서적들이 그간의 과정을 짐작하게 한다. 공예와 예술 사이 완성된 합의 안쪽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허 장인이 나무 방망이로 두드리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허 장인은 조규형, 최정유 두 명의 디자이너로 이루어진 스튜디오 워드(Studio Word)와 함께 1년여 동안 협업을 지속했으며, 그 결과 기본 형태에서 벗어난 다양한 오브제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스튜디오 워드 제공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지원 사업 중에 전승 공예품 인증제라는 게 있어요. 2020년, 이 프로젝트에 출품한 제 화방석을 보고 심사위원이자 문화유산 보존 단체인 재단법인 예올의 자문위원이기도 한 조규형(Cho Kyu-hyung, 趙奎衡), 최정유(Choi Jung-you, 崔定有) 디자이너께서 협업을 제안하셨어요. 1년여 협업을 거치면서 왕골로만 작업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가능해졌고, 제 작업에도 큰 변환점이 됐죠.” 나무로 만든 모형[木型]을 활용하게 되면서 기본 형태에서 벗어나 원뿔형, 삼각형, 팔각형 등의 다양한 오브제가 탄생했다. 모양과 기능을 확장하면서 완초 공예의 쓰임에 대한 갈증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 전통 기술을 구현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그의 작업은 곧 세간의 인정을 받았고, 2021년에는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됐다. 디자이너들과 협업하여 내연을 확장했다면, 지난해에는 밀라노디자인위크 한국공예전을 통해서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 밀라노 한국공예전 10주년을 맞이해 이탈리아 디자이너들과 한국 장인들의 협업으로 진행된 특별 전시에서 그는 브랜드 디자이너 프란체스코 파신(Francesco Faccin)과 함께 한국의 전통 갓을 모티브로 한 오브제를 비롯해 왕골의 짜임 기술을 접목한 의자, 조명 등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그의 말마따나 경륜에 비해 비약적인 성취를 얻은 것이다. “사실 장인이라는 호칭은 사양하고 싶어요. 그 정도로 경륜이 쌓인 것도 아니고, 장인이라면 뭔가 힘들게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할 것 같잖아요. 저는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말 재미있어서 해 오고 있거든요.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을 재미없으면 절대 못 하죠. 그래서 장인보다는 작가로 불렸으면 해요.” 허 장인이 한국 전통 갓을 모티브로 디자이너 프란체스코 파신(Francesco Faccin)과 협업한 작품으로 2022년 밀라노디자인위크 한국공예전에서 전시되었다. 이기숙(Lee Gi-sook, 李基淑)자유기고가

영원한 금빛 꿈을 새기다

Arts & Culture 2023 SPRING

영원한 금빛 꿈을 새기다 한옥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가회동(嘉會洞) 일대 골목에는 전통 공방들이 들어서 있다. ‘금박의 잔치’라는 뜻을 지닌 금박연(KumBakYeon, 金箔宴)도 이곳에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기능 보유자 김기호(Kim Gi-ho, 金基昊) 씨가 운영하는 공방이다. 그는 5대째 금박 공예를 계승하고 있는 국내 유일한 장인이다. 김기호 장인이 한복 치맛단에 금박을 올린 후 여분의 금박을 제거하는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금박 공예는 과정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매우 섬세한 손놀림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김기호 장인의 공방은 금박 공예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작은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궁중 예복을 비롯해 댕기, 족두리, 복주머니 등에서는 화려한 전통 복식을 엿볼 수 있고 넥타이나 보석함, 브로치 등에서는 현대적 쓰임새를 확인할 수 있다.“예로부터 금은 색이 변하지 않고 귀했기 때문에 최고의 권위를 나타냈어요. 조선(1392~1910) 왕실에서도 제한적으로 사용했죠. 아무나 금박 무늬가 찍힌 옷을 입을 수는 없었어요.” 그가 벽에 걸린 녹원삼(錄圓衫)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옷은 순조(純祖, 재위 1800-1834)의 셋째 딸 덕온(德溫)공주가 혼례 때 입었던 것을 그가 직접 재현한 것이다. 그의 말처럼 금박은 위엄을 나타내고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왕실 복식에만 사용되었으며, 왕실 내에서도 지위에 따라 용‧봉황‧꽃 등 무늬에 차등을 두어 사용했다. 그러나 조선 시대 후기로 갈수록 이러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민가에서도 결혼, 회갑, 돌잔치 등 일생에 한 번뿐인 특별한 날에는 금박을 새긴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기술과 창의 김 장인이 판재에 도안을 그려 넣은 후 양각으로 깎아내고 있다. 그는 5년 이상 잘 건조된 돌배나무를 문양판으로 사용하는데, 목질이 단단하면서도 무늬가 잘 새겨지기 때문이다. 금박은 금 조각을 망치로 두드려 종이처럼 얇게 만든 재료를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금박을 제조하는 장인을 금박장, 금박으로 문양을 꾸미는 장인을 도다익장(都多益匠)이나 부금장(付金匠)으로 부르며 세분화해 구별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금박을 기계로 만들고부터 이 기술은 점차 명맥이 끊겼고, 대중들이 ‘금박’과 ‘금박 문양’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현재는 금박으로 옷감에 무늬를 장식하는 기술을 가진 이를 금박장이라 부른다. 금박 장식은 얼핏 보면 매우 단순한 과정을 거친다. 문양을 새긴 목판에 접착제를 바르고, 그것을 옷감 위에 눌러 찍은 다음 풀이 묻은 부위에 금박지를 올리면 된다. 하지만 과정 하나하나가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선 문양을 새길 판재는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5년 이상 건조한 나무를 사용한다. 김 장인은 목질이 단단하면서도 무늬가 잘 새겨지는 돌배나무를 쓴다. 끓는 물에 콩기름을 넣고 판재를 2분여간 담갔다가 꺼낸 후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말린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문양판이 틀어지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음에는 대패와 사포로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다. 이제 문양을 새길 차례다. 도안을 판재에 그려 넣고, 도구를 이용해 양각으로 깎아낸다. 풀을 발랐을 때 깎인 틈새로 들어간 풀을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비스듬히 경사를 주며 깎는 게 요령이다. 금박을 붙이는 데는 어교(魚膠)를 사용한다. 말린 민어 부레를 물에 오랜 시간 끓여서 만든 어교는 접착력이 매우 뛰어나 예부터 왕실의 예복이나 공예품 외에 고급 음식에도 사용한 천연 접착제이다. 붓에 풀을 묻혀 문양판에 고루 바르는데, 이때 풀의 농도가 관건이다. 풀칠이 너무 강하면 금박이 들러붙어 문양이 뭉개지고, 약하면 금박이 제대로 붙지 않아 문양이 찍히지 않기 때문이다. 풀칠이 끝나면 작업대 위에 직물을 펴고 원하는 위치에 문양판을 도장 찍듯이 꾹꾹 누른다. 그리고 풀이 묻은 부분에 금박을 올리는 동시에 마른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려 붙인다. 이때 풀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빠르고 정확하게 붙여야 하고, 충분히 건조한 다음 문양 바깥에 묻은 금박을 떼어내 다듬으면 완성이다. 금박을 입히는 것이 기술의 영역이라면 문양을 디자인하고 조화롭게 배치하는 것은 창조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좌우 대칭을 중시합니다. 비례와 균형이 정확해야 아름답다고 느끼는 거죠. 반면에 우리는 비대칭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저는 이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작업 중 문양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다. 어떤 도안을 어느 위치에 넣을지, 여백 처리는 어떻게 할지 설계를 하듯 미리 짜야 한다. “문양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저는 문양도 동시대와 소통하며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같은 문양이라도 어떻게 표현하고 담아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죠.” 과거에서 온 첨단 공학 김 장인은 5대째 금박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가업은 철종(哲宗 재위 1849-1863) 때 왕실에 옷감을 납품하던 고조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는 금박을 중국에서 주문해 사용하는 일이 잦았는데, 제때 도착하지 않아 애를 태우는 일이 많아지자 그의 고조할아버지가 직접 금박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금박 제조 기술은 그의 할아버지까지는 이어졌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구전으로만 전한다.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 이어 할아버지도 궁궐에서 일을 하셨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영친왕비(英親王妃)와 고종황제의 고명딸 덕혜옹주(德惠翁主)의 옷에도 금박을 만들어 장식하셨다고 들었어요.” 그가 다섯 살 때인 1973년, 금박장이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면서 그의 할아버지가 첫 번째 금박장이 되었다. 하지만 지병이 있었던 할아버지가 몇 개월 후 세상을 뜨자 보유자 사망으로 인해 금박장 종목이 폐지되고 말았다. “당시에 아버지가 회사에 다니며 전수 중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금박 일에 전념하셨죠. 저도 회사에 다니다가 아버지 건강이 나빠진 것을 계기로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투신했고요. 이것도 내림인가 봐요.” 그의 아버지 김덕환(Kim Deok-hwan, 金德煥)은 금박장이 해제된 지 33년 만인 2006년에 부활한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의 첫 번째 보유자로 지정되었고, 아버지가 작고하기 직전인 2018년에는 그가 뒤를 이어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에서 4년여간 로봇을 설계한 공학도였다. 사명감이 컸다고 해도 퇴사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조직 생활이 내게 맞지 않다고 느낄 때라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회사 일은 다른 유능한 인재가 대신할 수 있지만, 가업은 제가 잇지 않으면 끊어지니까요. 미래 사업으로도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고요. 본격적으로 일을 해 보니 로봇 설계하는 일이나 1mm의 만분의 1 두께인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금박과 씨름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금박 한 겹이 약 0.1㎛입니다. 금박 만드는 기술도 일종의 하이테크인데, 그 옛날 이미 고도의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죠.” 퇴사하고 그는 제일 먼저 홈페이지부터 만들었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지 얼마 안 된 1997년 당시로선 무척 앞서간 행보였다. 온라인 판매까지 염두에 두고 해외에도 알릴 생각을 했지만, 하필이면 그해 외환 위기가 터졌다. “3개월간 수입이 한 푼도 없었어요. 다행히 오랜 고객들이 외국 나간 자식들이나 손주들을 위해 꾸준히 주문을 해 주어 버틸 수 있었죠. 지금은 각종 금박 작업 의뢰 외에 저희 공방 브랜드로 문화 상품을 만들어 판매도 합니다.” 장인 가족 문양은 심미적인 기능 외에도 상징성을 지닌다. 장수를 의미하는 목숨 ‘수(壽)’나 행복한 삶을 바라는 ‘복(福)’자 같은 문자 문양을 비롯해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석류나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 등은 흔히 사용되는 길상 문양이다. 가업이 가내수공업인 경우 대체로 가족이 기술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인 작업 특성상 혼자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라는 또 다른 장인들이 곁에 계셨기 때문에 가업을 이어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내도 제 분신이라고 할 만큼 줄곧 함께해 오고 있습니다.” 그의 동갑내기 아내 박수영(Park Soo-young, 朴秀英)은 2009년 이수자로 지정됐고,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아들도 일을 돕고 있다. 박 이수자는 2022년 재단법인 예올(YÉOL)의 ‘올해의 장인’에 선정돼 예올과 샤넬의 프로젝트 전시에 작품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예올은 한국의 공예 장인들과 젊은 공예 작가들을 후원하는 활동을 벌이는 단체다. “전통적 아름다움이 현대적 감각과 조화를 이루면서 금박 작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금박은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명예, 부, 사랑 같은 소망들을 담아 금박을 입히죠.” 요즘 그가 작업에 더 몰두하는 것도 박물관 건립이라는 궁극의 꿈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기숙(Lee Gi-sook 李基淑) 자유기고가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가

봄의 맛과 향, 도다리쑥국

Arts & Culture 2023 SPRING

봄의 맛과 향, 도다리쑥국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단단한 땅을 가장 먼저 뚫고 나오는 것은 잡초도 꽃도 아닌 어린 쑥이다. 이 쑥만큼이나 봄에 귀하게 먹는 도다리 역시 봄의 전령사다. 봄철 도다리는 살이 가득 차오른 데다 부드럽고 고소하다. 이 둘이 만나 한국의 향토 음식이 되었으니, 바로 ‘도다리쑥국’이다. 도다리쑥국은 경상남도 통영의 향토 음식이다. 매년 이른 봄이면 통영 앞바다 식당가에서는 너도나도 ‘도다리쑥국 팝니다’라는 간판을 내걸기 시작한다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요소는 많다. 때가 되면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며, 무성한 초록의 날을 지나 단풍이 들고, 찬바람과 함께 앙상한 가지만 남는 계절의 풍경이 그렇다. 또 하나는 혀끝으로 계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계절에 나는 제철 재료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맛보는 것만큼 직관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정통 한식 요리전문가인 故 김태원 조리장은 살아생전 “새 계절이 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아는 방법은 그달에 가장 비싼 제철 생선을 사 먹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봄철 식재료, 도다리와 쑥 쑥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위장과 간장,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예로부터 복통 치료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 5월까지 수확한 쑥을 최고로 친다. 그 이후엔 질겨지고 쓴맛이 강해져 식재료로 쓰기엔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 중 하나는 바로 경상남도 통영의 도다리쑥국이다. 바다의 도다리와 땅에서 자란 쑥 전부 대표적인 봄 제철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나는 동안 살을 찌운 도다리는 날이 풀리면 산란을 위해 남쪽 지역으로 서식지를 옮기는데 봄철 통영 앞바다에서 도다리가 많이 잡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봄철 도다리는 회로도 먹고 조림, 국, 탕 등 다양한 한식 요리로도 활용된다. 특히 어린 도다리를 뼈째로 썰어 날것으로 먹는 ‘도다리 세꼬시’는 오도독한 식감이 뛰어나 별미 중 별미다. 쑥은 약간 쓴맛과 함께 향긋한 향이 나는 식물로,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 5월까지 수확한 어린 쑥의 식감과 맛이 가장 뛰어나다. 그 이후엔 질겨지고 쓴맛이 강해져 음식으로 먹기엔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도다리쑥국을 메뉴로 내는 많은 식당이 매년 초봄에 캐낸 햇쑥을 구하느라 바쁘다. 같은 쑥이라도 분지나 산지보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것이 더욱 맛과 향이 좋고 해풍 덕에 미네랄도 풍부하다고 해서 바닷가 지역의 쑥을 구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쑥은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날씨나 토양, 어떠한 환경적 변수에도 끄떡없이 땅을 뚫고 줄기와 잎을 피우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전 신화에선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100일간 참고 먹었던 재료’로 나오기도 하고 실제로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은 쑥을 식용뿐 아니라 약으로 쓰기도 했다. 남해 지역의 귀한 제철 음식 강도다리 돌가자미, 문치가자미 등 여러 생선을 통칭한다. 이중 통영에서 잡히는 가자미는 문치가자미로, 12월부터 1월까지가 금어기다. 통영에서 도다리쑥국을 2월부터 내놓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봄마다 도다리가 풍년이니 남해 지역 뱃사람들이 가장 먼저 먹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고, 남해 바닷가 지역 내의 여러 가정집에서 봄철 햇쑥으로 국을 끓여 먹으면서 도다리쑥국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지에서 나는 생선이나 육류, 또는 제철 채소나 나물을 넣고 국을 끓여 먹는 문화는 한국 어느 지역이나 있었으니 누가 먼저 먹었느냐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건 도다리쑥국이 남해 지역 고유의 제철 음식이라는 것이다. 도다리쑥국은 다른 종류의 한국식 탕이나 찌개 음식과 달리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아 국물 색이 맑은 것이 특징이다. 핵심은 쑥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는 것이기에 매운맛을 내는 재료 대신 된장과 국물용 간장만 소량 넣어 구수한 맛을 낸다. 여기에 미리 손질한 도다리와 깨끗하게 씻어낸 쑥과 무, 대파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완성이다. 신선한 도다리와 제철 쑥만 있으면 그 자체로도 맛을 내기에 이것 이상의 재료나 양념은 필요하지 않다. 봄의 맛과 향 한국의 전국 바닷가에 흔한 물고기와 땅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잘 자라는 쑥으로 만든 음식이 뭐가 대단할까 싶지만, 도다리쑥국을 맛본 이들은 도다리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과 쑥의 향긋함에 금세 매료되고 만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은 쑥의 쌉싸래한 맛과 향을 일컬어‘독특한 국물 맛’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독특한 맛에 익숙해지면 금세 도다리쑥국의 매력에 빠진다. 그래서 미식가들은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도다리가 아닌 쑥이라고 이야기한다. 도다리쑥국의 맛에서 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쑥의 향이 된장 국물과 만나 감칠맛이 살아나고 여기에 담백한 도다리의 식감까지 더해지면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계절별 제철 재료로 음식을 내는 식당에선 이르면 2월 중순부터 도다리쑥국을 팔기 시작한다. 특히 항구와 가까운 경남 통영 지역의 시장 안엔 도다리쑥국을 봄철 대표 요리로 내놓는 식당들이 줄을 잇는다. 그중 ‘희정식당’은 대표적인 도다리쑥국 맛집으로 갓 잡은 도다리와 햇쑥으로 맑게 끓인 맛이 상당히 좋다. 함께 나오는 제철 반찬도 별미다. 이 둘의 맛 조합이 좋아 사람들은 ‘밥도둑’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너무 맛있어서 밥이 끝도 없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도다리쑥국으로 유명한 곳은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충무집’이다. 이 곳은 주인장의 부친이 1964년 경남 통영에서 ‘희락장’이라는 상호로 문을 열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시절 가장 자신 있게 내세웠던 음식이 바로 도다리쑥국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충무집의 봄철 대표 메뉴인 도다리쑥국은 5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단골손님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도다리쑥국과 세트로 구성된 멍게비빔밥 역시 대표 메뉴다. 흰 밥 위에 잘게 썬 멍게와 무순, 김 가루, 참기름을 올린 향긋한 멍게비빔밥은 구수한 도다리쑥국과 함께 먹었을 때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만물은 생동하다가도 때가 되면 지고, 또다시 피어날 날을 기다리며 오랜 기다림과 인고의 시간을 갖는다. 지금, 이 좋은 봄날에 만나는 도다리쑥국이 그렇다. 지금 아니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봄의 기운이 만연하는 동안 봄의 맛과 향을 마음껏 즐기길 바란다. 황해원(Hwang Hae-won 黃海嫄)월간외식경영 편집장 이민희(Lee Min-hee 李民熙)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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