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Culture

글로벌 마켓을 향한 모색과 도약

Culture 2022 SUMMER 627

글로벌 마켓을 향한 모색과 도약 한국 뮤지컬은 2000년 즈음 영미권으로 진출한 이래 최근에는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 주고 있다. 창작 뮤지컬의 투어 공연을 비롯해 라이선스 공연, 합작, 투자 등 다양한 형태의 모색은 향후 한국 뮤지컬이 또 다른 한류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95년 초연한 는 명성황후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대형 창작 뮤지컬로, 뮤지컬 한류의 효시로 기록된 작품이다. 웅장한 무대 세트와 화려한 의상이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 에이콤 국내 뮤지컬 산업은 몇 차례의 경제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예상치 못한 외부적 요인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지속적으로 저변을 넓혀 가며 성숙기로 진입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까지 국내 공연 시장의 전체 규모는 약 4,000억 원 수준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됐으며, 그중 대부분의 매출이 뮤지컬과 콘서트 분야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뮤지컬 시장은 평균적으로 전체 공연 시장의 약 55~60% 수준으로 추정되며, 2021년에는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우리말로 제작된 이 공전의 흥행을 기록한 이후 뮤지컬 산업은 거의 매년 15~17% 내외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제한적인 내수 시장의 한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도약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해외 진출 뮤지컬 산업에서 해외 진출이 화두로 등장한 것은 2000년 전후이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공연 시장에서 라이선스 뮤지컬이 문화 산업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때와 맞물린다. 라이선스 뮤지컬을 통해 콘텐츠의 부가가치 재생산 혹은 극대화에 대한 필요성을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초창기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주로 영미권 시장을 향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그리고 에든버러로 상징되는 공연 페스티벌을 대상으로 왕성한 도전과 실험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었다. 국내 최초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창작 뮤지컬 와 넌버벌 퍼포먼스 뮤지컬 가 대표적이다. 특히 에이콤(ACOM)이 제작해 1995년 초연한 는 국내의 흥행을 바탕으로 1997년과 1998년 연이어 링컨센터 내 주립극장(New York State Theater)에서 막을 올렸다. 이후 2002년 런던 외곽의 해머스미스 아폴로(Hammersmith Apollo)에서는 영어 가사로 극을 전개하는 시도를 보여 줬다.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의 상품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해외 진출 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또한 해외 진출을 꿈꾸는 공연 예술계에도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이후 2010년대에는 아시아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는 변화가 일어났다. 전반기에는 일본과 중국으로 시장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단적으로 일본의 경우 2012년부터 3년 동안 40편의 뮤지컬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일본이 국내 뮤지컬 콘텐츠의 주요한 수출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2013년 한국 뮤지컬 전용관인 아뮤즈 뮤지컬 씨어터(Amuse Musical Theatre)가 도쿄에 개관하여 기획 공연이 증가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보인다. 2013년 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진출한 는 창작 뮤지컬의 공연권을 수출한 대표적 사례이다. ⓒ CJ ENM 의 한국 공연 장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고 소설로도 발간된 이 뮤지컬은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 CJ ENM 의 대만, 일본, 중국 공연 포스터(왼쪽부터). ⓒ CJ ENM 세 가지 유형 국내 공연 콘텐츠의 해외 진출은 창작 뮤지컬의 투어 공연,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의 투어 공연 그리고 창작 뮤지컬의 공연권 수출이나 현지 인력과 자본이 결합된 공동 제작 등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우선 창작 뮤지컬의 투어 공연은 제작진과 배우, 스태프 등이 일정 기간 해외 무대에 직접 찾아가 공연을 꾸미며, 주로 자막을 활용해 내용을 전달한다. 1994년 데뷔한 3인조 힙합 그룹 DJ DOC의 히트곡들을 바탕으로 가수의 꿈을 키워 가는 세 젊은이의 청춘을 그린 주크박스 뮤지컬 는 2012년 오사카와 2014년 도쿄 공연을 통해 일본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중국 투어 공연은 2001년 을 시작으로 해마다 작품 수가 늘어났다. 특히 신라의 두 고승 원효(元曉 617~686)와 의상(義湘 625~702)의 이야기를 무대로 불러낸 은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 초청 공연작으로 2013년에는 선전(Shenzhen 深圳), 하이난(Hainan 海南省), 광저우(Guangzhou 广州), 베이징(Beijing 北京) 4개 도시에서 큰 호응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투어를 마쳤다. 이 작품은 중국 공연을 위해 오리지널 공연에 없었던 캐릭터를 추가하고, 중국 전통 민요를 활용한 음악을 추가하는 등 현지 관객들을 고려한 버전을 선보였다. 프랑스 시인 랭보의 삶을 다룬 는 한중 합작을 통해 2018년 초연 당시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공연되었다. ⓒ 라이브(LIVE Corp.)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의 투어 공연은 우리말로 번안되고 재해석된 버전을 다시 수출하는 일종의 중계 무역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스타 마케팅과 결합하거나 한류의 새로운 시도와 결부되는 사례가 많다. 2000년대 초반 , , 등의 일본 투어 프로덕션이나 , 의 중국 투어 프로덕션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2013년 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진출한 는 창작 뮤지컬의 공연권을 수출한 경우에 속한다. 창작 뮤지컬 최초로 영화화되기도 한 이 작품은 중국 관객들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각색되었으며, 상당한 관객을 동원하면서 소극장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 작품을 필두로 , , 등 다수의 작품들이 중국에 진출했다. 와 를 일본과 중국 무대에 올린 콘텐츠 제작사 라이브(주)의 는 프랑스 시인 랭보의 삶을 다룬 뮤지컬인데, 한중 합작을 통해 2018년 초연 당시 이례적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공연되었다. 또한 이듬해에는 베이징 라이선스 재연이 한국보다 앞서 올라갔다. CJ ENM이 중국 문화부와 함께 설립한 공연 제작 기업 아주연창(亚洲联创)이 선보인 도 한중 합작에 속한다. 미각을 잃어버린 중국 황실 공주를 위해 전 세계의 요리사들이 모여 경연을 펼치는 내용이며, 중국 전통 요리를 화려한 율동과 현대적 음악으로 표현했다. 삶의 의미를 묻는 는 중국 23개 도시에서 공연, 중국에 진출한 국내 뮤지컬의 라이선스 공연 중 최다 지역 기록을 세웠다. ⓒ 라이브(LIVE Corp.) 장기적 안목 코로나19 펜데믹 직전인 2019년 한국 뮤지컬은 정치적 이슈와 국제 정세에 민감한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국 뮤지컬은 한류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OSMU의 활성화는 이미 검증된 한류 자원들의 무대화라는 당연한 순서로 그 영역을 넓혀갈 것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누가 어떤 작품으로 그 물꼬를 터트려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이다.

전성기를 맞은 K-멜로

Culture 2022 SUMMER 238

전성기를 맞은 K-멜로 최근 넷플릭스(Netflex)에서는 ‘K-멜로’전성시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한국 멜로드라마가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다. 멜로드라마에 MZ세대의 달라진 가치관이 잘 반영되어 있는 점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공감을 얻은 이유로 분석된다.   (2019), (2021), (2021), (2022) 등 근래에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열풍을 일으킨 작품들 대부분이 장르물이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가 대부분 장르물에 치우져 있다고 오인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 OTT 콘텐츠 순위를 집계하는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FlixPatrol)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한 넷플릭스 Top 10 작품은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tvN의 TV 드라마 (2021)였다. 뒤이어 연상호(Yeon Sang-ho, 延尚昊) 감독의 이 또 한번 열풍을 일으켰을 때는 궁을 배경으로 한 KBS의 멜로 사극 (2021)가 Top 10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런 흐름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이른바 ‘K-멜로’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생겨났다. 의 두 여자 주인공은 펜싱 라이벌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하며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 Studio Dragon 달라진 가치관 K-멜로는 갑자기 생겨난 장르가 아니다. 오래전 KBS의 20부작 TV 드라마 (2002)가 일본을 강타하며 한류의 물꼬를 트던 시절부터 싹을 틔웠다. 이후로 SBS의 (2013), tvN의 (2019) 같은 메가 히트작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20여 년간 공고한 팬덤을 확보했다. 남녀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과 감정선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덕분이다. 한국 드라마의 진짜 주력 장르는 멜로였던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플랫폼 OTT의 등장은 K-멜로가 아시아권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뻔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멜로물은 과거나 현재나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여러 가지 변화한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시청자의 가치관이나 감성이 예전과 달라졌고, 그러한 변화가 드라마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멜로드라마의 주된 시청자층인 MZ세대는 일과 휴식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원하고,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며, 다양한 사회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느끼는데, 이러한 경향이 K-멜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특징이었던 신데렐라 서사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현대판 왕자님이 등장해 힘든 삶을 씩씩하게 버텨 내고 있는 여성에게 신분 상승의 구두를 신겨 주는 스토리는 더 이상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대신에 동등한 위치에 있는 남녀가 취향이나 가치관, 삶의 방식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많아졌다. 예컨대 의 여자 주인공은 현실주의 성향이 강한 치과의사인데, 도시에서 살다가 작은 갯마을로 내려와 병원을 개업한다. 그러고는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으며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세속적인 욕망이 투영된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다. SBS가 지난해 방영해 인기를 모은 은 헤어졌던 남녀가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다시 만나 엮이는 스토리다. 이 드라마에서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감정이 부각될 뿐 현실적 상황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들이 성공이나 부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의 성공이나 경쟁보다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행복을 중요시한다. K-멜로가 투영해 내고 있는 가치관의 변화가 글로벌 대중들의 공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전 세계인들이 마주한 ‘시대의 변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은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현실 휴먼 로맨스 드라마이다. © SLL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현실주의 치과의사 여자 주인공과 만능 백수 남자 주인공의 사랑과 이웃의 따뜻한 정을 담은 © Studio Dragon 다양한 취미와 관계 한국의 청춘들은 과거 일 중심으로 살아왔던 기성 세대와 달리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한다. 명함 한 장이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던 시대를 지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취향을 통해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태로 변화한 것이다. (2020) 같은 드라마는 이런 MZ세대들의 달라진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평일 내내 열심히 환자를 돌보던 의사들은 주말이면 밴드 활동에 열정적이다. 이들은 의사로서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행복을 느낀다. 남녀 관계에 집중하던 멜로 드라마가 다양한 관계를 담기 시작한 점도 또 다른 특징이다. 과거 전형적 멜로 드라마는 남성 주인공을 가운데에 두고 펼쳐지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경쟁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지난 3월 종영한 JTBC의 은 아예 로맨스보다 세 여성이 보여 주는 워맨스에 집중했다. 시청자들이 멜로 드라마에서 사랑 이상의 스토리를 기대하게 되면서 휴먼 드라마처럼 풀어내는 새로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tvN의 (2022)에서는 여자 주인공인 나희도(Na Hee-do)와 고유림(Ko Yu-rim)이 펜싱 라이벌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따뜻한 정을 담았다. 한편 멜로드라마 속에서 일의 영역은 보통 배경으로 간단히 그려지기 일쑤였지만, 요즘에는 매우 디테일한 묘사로 현실감을 살리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한국인의 매운맛, 고추

Culture 2022 SUMMER 776

한국인의 매운맛, 고추 가지과 식물인 고추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향신료이며, 세계 인구의 1/4이 즐기고 있다. 한국 음식에서도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매우 중요한 식재료로, 많은 한국인들이 고추의 매운맛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 음식에서 매우 중요한 식재료인 고추는 한국인의 매운맛으로 간주될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고추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향신료이다. 원산지인 남아메리카에서 사람들이 고추를 먹은 것은 기원전 7000년, 재배는 기원전 3500년경으로 추산한다. 15세기 말 에 전파된 이후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빠르게 퍼졌으며, 한국에도 이때쯤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아시아에서 고추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거꾸로 유럽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매운맛의 척도 향신료로서 고추가 특이한 점은 매운맛의 척도라는 사실이다. 1912년 미국의 약사 윌버 스코빌(Wilbur Scoville)이 개발한 스코빌 지수는 고추가 얼마나 매운지 표시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제는 고추에 함유되어 있는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 함량을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스코빌 지수도 여전히 사용된다. 순수 캡사이신은 1600만 SHU(스코빌 열 단위, Scoville Heat Units)이다. SHU는 매운맛이 감지되지 않으려면 고추 추출물을 얼마나 희석해야 하는지 표시하는 단위로 높을수록 더 맵다. 고추속(屬) 채소 중에는 녹색 피망처럼 매운맛이 거의 없는 고추도 있지만, 흔히 절임으로 먹는 할라피뇨(2500~1만 SHU)부터는 중간 정도의 매운맛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하바네로(35만~58만 SHU)가 제법 매운 축에 들었지만, 부트졸로키아(85만 5천~150만 SHU)나 트리니다드 모루가 스콜피온(150~200만 SHU)처럼 매운맛이 더욱 강력해진 새 품종이 개발되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매운 고추를 먹는 사람들이 있으며, 심지어 누가 더 잘 먹을 수 있는가 경쟁하기도 한다. 그런데 고추 속 매운맛 성분은 새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새는 캡사이신의 매운맛을 감지할 수 있는 수용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추를 먹고 씨앗을 널리 퍼뜨려 주는 역할을 한다. 고추 속 캡사이신은 사람과 같은 포유동물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실제로 다람쥐 같은 설치류는 고추 맛을 보고 나면 기피한다.   고추장은 찹쌀에 고춧가루, 엿기름, 메줏가루 등을 섞어 발표시킨 한국의 전통 조미료이다. ©gettyimagesKOREA 즐거움 고추 먹기 대회까지 열릴 정도로 사람들이 매운맛을 즐기는 이유는 고추의 매운맛이 롤러코스터와 같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2021년 노벨 생리학·의학상(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2021) 공동 수상자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줄리어스(David Julius) 교수가 발견한 사실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TRPV1(transient receptor potential vanilloid 1)으로 이름 지어진 수용체가 캡사이신에서 뜨거운 온도를 감지한다. 쉽게 말해 고추의 매운맛은 열감을 자극하여 마치 화상을 입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공중을 한 바퀴 돌 때 땅에 떨어질 듯한 긴장감을 즐기는 사람과 매운 고추를 입안에 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느끼는 즐거움은 동일한 맥락인 셈이다. 차이점도 있긴 하다. 롤러코스터는 내리고 나면 아찔함이 사라지지만, 고추의 매운맛은 입안에 오래 남아 괴로울 수 있다. 고추 추출물이나 캡사이신을 파스나 크림에 넣으면 근육통이나 관절통 완화에 도움이 된다. 매운맛 자극으로 인한 통증이 반복되면 통증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되면서 거꾸로 통증을 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더운 지역일수록 매운 음식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고추, 마늘, 생강을 넣어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나면 인체는 뜨거운 방 안에 있을 때처럼 반응한다. 체온을 내리기 위해 땀이 나고 피부 혈류가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피부 체온이 내려가면서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인이 무더운 여름날 이열치열이라며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기후와 고추 소비의 관계가 꼭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인류가 매운맛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고추는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추운 나라에서는 재배가 어려워 생산과 소비가 적은 것일 수도 있다. 추운 겨울이라고 매운 음식을 안 먹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이 겨울에 즐기는 김장 김치도 매운 음식이지만, 발효가 진행되고 숙성되는 과정에서 차츰 부드럽게 순화된다. 김치 국물에 캡사이신이 희석되어 매운맛이 줄어들 수도 있고, 미생물 발효로 인해 캡사이신이 매운맛이 적은 화합물로 분해되었을 수도 있다. 2015년 건국대학교 김수기(Kim Soo-ki 金守基)교수 연구팀은 한국 전통 발효 식품인 고추 절임에서 캡사이신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고추장에 설탕을 넣어 매콤 달콤하게 만든 고추장 떡볶이는 오늘날 다양한 레시피로 개발되어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TongRo Images 다양한 활용법 원산지인 남아메리카에서 고추는 다양하고 복잡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멕시코에서는 종류별로 생것일 때와 말렸을 때 이름을 다르게 부를 정도로 다양한 고추를 쓴다. 고추를 햇볕에 말리면 고추 속의 화합물들이 서로 반응하여 새로운 향 물질을 만들어 낸다. 멕시코 요리에는 특정한 음식에 어떤 고추를 넣어야 하는가에 대해서까지 미리 정해진 규칙이 있다. 타말리, 엔칠라다, 살사에는 미라솔(mirasol) 고추를 햇볕에 말려 훈연향의 단맛을 도드라지게 한 과히요(guajillo)를 넣는다. 포블라노(poblano) 고추를 말린 앤초(ancho)는 물에 불려 갈거나 말린 것 그대로 몰레 소스에 넣는다. 고추를 요리에 넣으면 단지 매운맛만 증가하는 게 아니라 단맛, 훈연향, 과일향과 같은 복합적 풍미가 더해진다. 소스에 고추를 갈아 넣으면 펙틴으로 인해 부드러우며 걸쭉한 질감이 만들어진다. 고추의 매운맛은 오늘날 한국인의 맛으로 간주될 정도로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과거 모두가 고추를 반긴 것은 아니다. 1920~30년대 서구식 근대화를 지향했던 생활개선론자들은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진보되지 않은 증거라면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달랐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레시피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설탕과 고춧가루가 결합하게 됐다. 이를테면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떡볶이는 맵지 않은 음식이었다. 가래떡에 고기를 넣어 간장으로 양념하여 볶아 내는 방식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고추장에 설탕을 넣어 매콤 달콤하게 만든 떡볶이가 등장했다. 고추장 양념 떡볶이가 대세가 되면서 이전의 간장 떡볶이는 밀려났다. 지금도 인기가 높은 낙지볶음, 제육볶음 같은 음식도 비슷한 시기인 1950~60년대에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들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매운맛을 좋아하는 이유가 결국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단맛은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선호하게 되며 순수한 쾌락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매운맛은 자라면서 배워서 선호하게 되지만, 즐거움을 준다. 고추와 설탕의 매콤 달콤한 맛은 젊음의 생기가 넘치는 맛이다. 요즘에는 과하지 않게 매운맛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이 인기다. 로제 떡볶이가 좋은 예다. 캡사이신은 지방에 잘 녹는다. 그래서 물로는 매운맛을 온전히 씻어 낼 수 없다. 모차렐라 치즈, 크림과 같은 유제품 내의 풍부한 카제인 단백질은 지방과 잘 결합한다. 매운 음식을 먹고 나서 우유나 요거트를 먹으면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이유다. 로제 떡볶이 속 크림도 마찬가지로 캡사이신을 붙잡아 열감을 줄이면서도 매운맛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해외에서 치즈 닭갈비, 치즈 불닭 같은 K-푸드가 인기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친숙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김치는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으로 지역과 재료, 담그는 방법에 따라 다양하다. ©TongRo Images 대중적 사랑 고추를 유럽으로 가져온 콜럼버스는 이 채소가 후추와 관련 있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칠리 페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고추는 가지과 식물의 열매로 후추과 덩굴 식물의 열매인 후추와는 구별된다.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에서 비롯되지만, 후추의 매운맛은 피페린 때문이다.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더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가 당시 매우 희귀한 상품이었기 때문에이 향신료를 뿌려 매워질수록 고급 음식으로 생각했다. 17세기 들어 후추가 대량 수입되자 유럽의 상류층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맛을 지닌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후추를 넣은 음식으로 자신들과 하층민을 구별하고 싶어 했던 상류층의 욕망이 그들이 추구하는 맛 자체를 아예 바꿔 놓은 것이다. 고추는 그렇지 않다. 아열대 식물인 후추와 달리 고추는 온대 기후에서도 잘 자란다. 재배하기 쉽다는 것은 대중이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때 일각에서는 고추의 매운맛을 폄하하기도 했지만, 대중의 소비가 가능한 향신료였기에 한국인 대다수는 개의치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맛을 추구할 수 있었다. 고추는 말해 준다. 오늘의 한국 음식 문화를 만든 것은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대중이라는 것을.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바람

Culture 2022 SUMMER 616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바람 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사람이 선자장(扇子匠)이다. 김동식(Kim Dong-sik 金東植) 장인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4대째 가업을 이어 부채를 만들고 있다. 60년 넘게 전통 방식으로 작업을 해 오고 있는 그는 2015년 국가무형문화재 선자장으로 지정되었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없던 시절 부채는 여름을 나는 생활필수품이었다.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 외에도 신분을 드러내는 장식품으로, 혼례나 상례 같은 예식 때도 의례용으로 들고 다니는 휴대품이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둥근 부채보다 접부채, 그중에서도 합죽선(合竹扇)을 사랑했다. 바람 이는 소리와 함께 폼 나게 펴서 부쳤다가 순식간에 접어 도포 자락에 집어넣는 신공을 즐겼다. 부채에 그림을 그려 화첩 삼아 들고 다녔고, 등이 가려울 땐 효자손으로, 비상시엔 무기로도 요긴했다. 남녀가 은밀히 만날 때는 얼굴을 가리는 도구로 필수적이었다. 한국의 부채는 형태에 따라 둥근 모양의 부채[團扇]와 접고 펼 수 있는 접부채[接扇]로 나뉜다. 단선은 손잡이를 중심축으로 부챗살이 방사형으로 이어진다. 접선은 부챗살의 개수와 재료, 부채 바탕의 꾸밈, 부속품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 합죽선은 고려 시대부터 나전, 금속, 칠, 옥 공예 등과 접목돼 대표적인 국교품으로 발전해 왔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부챗살 수도 제한했다. 왕실 직계만이 50개를 넣을 수 있었고, 사대부는 40개, 그 아래 중인과 상민 계층은 그보다 살이 적은 부채를 사용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모(洪錫謀 1781~1857)가 펴낸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단오(음력 5월 5일)에 단오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면 왕은 이것을 재신과 시종들에게 나눠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나라에서는 선자청(扇子廳)이라는 기구를 두어 부채 만드는 일을 관리 감독하고, 전라감영(옛 전라도청)에서는 각 지역에서 제작된 부채를 모아 임금에게 올렸다. 지난한 공정 크고 작은 대나무 조각들이 빼곡히 들어찬 작업실에서 한창 일하던 김동식 장인이 얇게 깎은 대나무를 들어 보여 준다. “합죽선은 이렇게 얇게 깎아 낸 대나무 겉대를 두 개씩 맞붙여서 만든 부채입니다. 속대만 사용하는 중국, 일본의 접선과 달리 합죽선은 견고해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요. 우리 전통 부채만의 특징입니다.” 합죽선 하나를 만드는 데는 140~150번의 공정을 거친다고 한다. 우선 적합한 대나무를 찾아야 한다. 대나무는 첫해에 훌쩍 다 자라고 이후에는 속으로 여물기만 하는데 3년은 되어야 적당히 단단해진다. “새로 난 대나무가 보기에는 멋져 보이지만 짜개 보면 속이 물렁해서 쓸 수가 없어요. 3년 된 대나무가 가장 알맞습니다. 또 습기가 차면 좀이 슬기 때문에 건조한 12월과 1월에 일 년치 재료를 마련해야 합니다. 집 지을 때 겨울철에 벌목한 목재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죠.” 색깔이 깨끗한 대나무를 골라 부챗살 치수에 맞게 쪼갠 다음 겉대를 물에 담가 5일 정도 불린다. 그러면 초록빛이 돌던 겉대가 부챗살 특유의 누런색을 띠게 된다. 다음부터가 핵심이다. 대나무 겉대를 끓는 물에 담가 불려 가면서 0.3~0.4mm 두께로 속대 쪽을 얇게 깎아낸다. 이 단계까지 깎여 나간 대나무 양이 3분의 2 정도 된다. “합죽선 만드는 과정에서 이 작업이 제일 힘들어요. 빛이 투과할 만큼 얇게 깎아 내야 접고 펴는 게 부드럽고 탄력도 좋아 바람을 더 시원하게 몰고 옵니다. 겉대는 잘 썩지 않고 단단해서 관리만 잘하면 500년도 가죠.” 얇게 깎아 낸 대나무 겉대 2개를 풀로 맞붙인 다음 부채 형태를 잡아 일주일 정도 말린다. 이때 민어의 부레를 말려서 끓인 부레풀과 동물의 뼈와 힘줄, 가죽 등을 고아 만든 아교풀을 4:6 비율로 섞어서 사용한다. 그래야 떨어지지 않고 오래간다. 부채 골격이 만들어지면, 불에 달군 쇠붙이로 부챗살 아래쪽에 하나하나 문양을 새겨 넣는다. 주로 박쥐, 매화, 용 등의 그림을 넣어 예술성을 높인다. 그다음, 손잡이 부분에 사용할 재료를 깎고 다듬는데 주로 대추나무, 먹감나무, 박달나무 등을 사용해 그 위에 얇게 깎은 대나무 겉대를 붙이거나 나전과 함께 옻칠 또는 주칠로 화려하게 마무리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상아나 우족도 사용하고 거북이 등껍질을 붙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광을 낸 다음 부챗살에 고루 풀을 입히고 미리 재단해 놓은 한지를 붙인다. 마지막으로 황동, 백동, 은 등 금속으로 고리 장식을 만들어 손잡이를 고정시키면 비로소 한 개의 합죽선이 완성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러한 작업을 6개 부문으로 나눠 여러 사람들이 분업했다고 한다. 정교한 작업인 만큼 손이 많이 가고 수요도 많았던 시절 얘기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김동식(Kim Dong-sik 金東植) 선자장은 합죽선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나무를 얇게 깎아내는 작업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최장수 합죽선 명가 합죽 작업까지 마치면 부채 형태를 만들고 장식하는 이후의 공정은 별도의 공방에서 작업한다. 김 장인이 밥 먹는 시간 외에 하루 종일 기거하는 방이다. 한쪽 벽면에 가지런하게 정렬된 무쇠 칼들과 연장들, 세월을 가늠키 어려운 작업대에서 60년 넘는 내공이 단번에 느껴진다. “원래는 넓적하던 무쇠가 20년 갈아서 쓰다 보니 이렇게 회칼처럼 가늘어진 겁니다. 이 줄칼은 제 외할아버지가 만들어 쓰시다 제게 물려주셨죠.” 선반과 문틀 사이 벽에 걸린 빛바랜 흑백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조선 말 고종 황제에게 진상할 만큼 솜씨가 당대 최고였다고 합니다. 다행인지 저는 어린 나이에 배우기 시작해 기초부터 세부적인 모든 기술을 외할아버지 곁에서 보고 익혔죠.” 김 장인의 집안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 합죽선을 대물림해 만들고 있다. 1대 외증조할아버지에서 시작해, 흑백사진 속 외할아버지인 2대 라학천(羅鶴千), 3대 외삼촌 라태순(羅泰淳)을 거쳐 김 장인이 4대를 잇고 있다. 그가 합죽선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열네 살이던 1956년부터다. 8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외가에서 살다시피 하며 배웠다. 당시 외가가 있던 마을은 부채 장인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던 곳으로, 부채의 주재료인 대나무와 한지를 만드는 닥나무가 풍부했다고 한다. “부채가 생활필수품이었던 때라 착실히 배우면 먹고살 만했죠. 처음엔 허드렛일만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손재주가 있었는지 대나무를 힘 안 들이고 예쁘게 깎는 걸 어른들이 보시더니 그제야 제대로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제가 우직한 성격이라 배운 대로 곧잘 만들어 내니까 칭찬을 많이 해 주셨어요. 그 바람에 정말 열심히 배웠죠.” 단순한 기술자와 장인의 차이는 발심(發心)에 있는 것일까. ‘이왕 일을 시작했으니 멋진 작품을 만들자’고 다짐한 그는 외할아버지에게 배운 정교한 제작 방식을 그대로 재연하면서 자신만의 합죽선을 만들고 싶었다. 그의 부채는 손에 쥐면 부드럽게 감기고 펼쳤을 때 부챗살과 정확히 반원 대칭이 된다. 그의 합죽선이 특별히 우아하고 품격이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 한번은 보증 선 게 잘못되어 수중에 재료 살 돈은커녕 당장 먹고 살 돈도 없을 때였는데, 한 친구가 선뜻 돈을 빌려주며 그에게 했던 말을 평생 잊지 못한다. “너는 부채 만드는 재주를 타고 났으니 절대 놓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가슴에 박혀 이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2019년 이수자가 된 아들 김대성(Kim Dae-sung 金大成) 씨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으며 전통 부채의 명맥을 잇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김 장인은 지금도 합죽선 만드는 전 과정을 직접 손으로 해내고 있다. 명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왔으나 경제적 위기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부채를 만들어서 생활이 제대로 안 되니 젊은이들이 이 일을 하려고 하질 않아요. 그렇다고 제 대에서 이 전통이 끊어지게 할 수 없어서 다른 일을 하던 아들에게 넌지시 의향을 물었죠. 고맙게도 선뜻 해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2007년부터 5대째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아들 김대성(Kim Dae-sung 金大成)은 늦게 시작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자라서인지 빠르게 배워 나갔다. 장인은 대를 잇는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우리 고유의 기술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이라도 받고자 문화재 신청을 했다. 3년에 걸쳐 관련 기록들을 정리하고 만들기 공정을 체계화해서 마침내 2015년 국가무형문화재 ‘선자장 1호’로 지정받았다. 그가 부채 기능인으로서는 최초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음으로써 전통 부채의 명맥을 잇는 몇 안 되는 장인들에게도 동력이 되었다. 이어서 아들도 2019년 이수자가 되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작업실 한켠에서 줄곧 대나무를 깎고 있던 청년이 일을 마치고 인사한다. 김대성의 아들, 김 장인의 손주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손주가 만들어 보고 싶다며 다니고 있긴 한데, 제가 딱히 하라고도 하지 말라고도 못 하는 형편입니다.” 장인은 손주가 대견하면서도 자식들 외에 합죽선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없는 게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탈북민의 오늘을 기록하는 영화

Culture 2022 SUMMER 647

탈북민의 오늘을 기록하는 영화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윤재호(尹载皓, Yun Je-ho [프랑스 Jero Yun]) 감독은 전형성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조명하려고 한다. 그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동시에 작업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윤재호 감독은 그의 영화를 통해 경계에 선 사람들, 그중에서도 탈북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윤재호 감독은 2021년 한 해에만 극영화 와 다큐멘터리 두 편의 장편 영화를 개봉시켰다. 는 탈북민들을 위한 정착 지원 시설 하나원(Hanawon)을 이제 막 퇴소하고 체육관 청소로 돈을 벌게 된 여성 진아(Jin-a, 吉娜)의 이야기이다. 에는 지금은 북한 땅인 황해도 출신 가수이자 KBS TV의 장수 오디션 프로그램 의 MC 송해(Song Hae, 宋海)가 등장한다. 영화가 보여 주는 건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속내이다. 진아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한국에 정착하고자 복싱 스텝을 밟기 시작하고, 송해는 과거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초상을 솔직하게 꺼내 보인다. 탈북민의 삶 윤 감독은 경계에 선 사람들, 그중에서도 탈북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며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의 영화는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 담담하게 그 실체를 목격한다.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들도 이러한 그의 영화들을 주목했다. 우선 그는 헤어진 아들을 만날 희망을 품고 사는 조선족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2010)으로 2011년 제9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생계를 위해 중국으로 간 북한 여성의 삶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2016)로 제38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Moscow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베스트 다큐멘터리상(The Best Film of the Documentary)과 제12회 취리히 영화제(Zurich Film Festival) 국제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배우 이나영(Lee Na-young, 李奈映)이 주연한 윤재호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2017)와도 연결된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 작품은 조선족 대학생 젠첸(Zhenchen, 镇镇)이 바라보는 탈북민 어머니 이야기다. 이후에도 감독은 단편 (2016)로 제69회 칸 국제 영화제 감독주간(The Directors’ Fortnight), 로 제7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Berl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받아 세계 영화인들에게 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유학 생활 윤 감독이 영화로 대중과 소통을 시도한 건 프랑스 유학 시절이었다. 익숙한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20대 초반 친구와 함께 한국을 떠났다. 20여 년 전인데도 아직까지 출국 날짜를 기억한다. 2001년 9월 12일, 9·11 테러 다음 날이었다. 미국행 항공편이 모두 멈춘 공항에서 삼엄한 경비를 뚫고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세상의 혼란을 피부로 느낀 그가 향한 곳은 프랑스 북동부의 작은 마을 낭시다. 그곳에서 어학 연수와 여행을 병행하다 돌연 예술 학교 시험을 봤다. 한국에서 공부했던 미술 실력을 발휘해 실기 시험을 통과한 그는 계획에 없던 유학생이 되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재밌었어요.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예술 학교에서 그림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비디오 아트, 설치 작업 등을 배우면서 시야를 넓혔다.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의 교류도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윤 감독을 영화의 세계로 안내한 것도 DVD 100개가 든 박스를 통째로 빌려준 벨기에 친구였다. 상자 안에는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임마르 베리만, 오손 웰즈 등의 1950~1960년대 클래식 영화가 빼곡했다. 때리고 부수는 영화만 보던 20대 청년이 지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접하게 된 것이다. “100편을 보고 또 봤어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만큼 매력적이었어요.” 그는 무엇보다 영화는 혼자서 만들 수 없는 작업이라는 점에 반했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그는 함께 할 친구들을 모았고, 대화를 시작했다. 는 생계를 위해 중국으로 간 북한 여성의 삶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 CINESOPA 조선족 대학생 젠첸(Zhenchen)이 바라보는 탈북민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는 윤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다 © peppermint&company 는 탈북민들을 위한 정착 지원 시설에서 막 퇴소하고 체육관 청소로 돈을 벌게 된 진아(Jin-a)의 이야기이다. © INDIESTORY 오늘의 일상 2004년 친구들과 제작한 첫 영화는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한국 여성이 이방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야기였다. 그의 자전적인 질문들이 포함된 작품이었다. ‘나는 왜 여기에 살고 있을까? 왜 거기가 아닌 여기일까?’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던 물음을 영화에 담았다. 부산에서 낭시로 온 청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영화에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을 초대했다. 탈북민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윤 감독이 경계에 선 캐릭터를 창조할 때 가장 깊이 고민하는 건 그들의 시간이다. 거기에서 여기로 온 인물이 어떤 과거를 경험했는지 골몰하고,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지를 살핀다.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오늘은 결국 어제가 되죠.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내일의 내가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인물의 과거 이야기를 배제하는 편이고 미래에도 집착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저 오늘 그들이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지 보여 주고 싶어요. 오늘의 내가 바뀌면 내일의 나는 분명히 바뀌니까요. 그것이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예요.” 이 원칙은 그가 병행 중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 양쪽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는 를 찍는 3년간 마담 B의 출입국 경로에 동행했고, 첫 촬영 날에는 네 시간 넘게 송해와 인터뷰를 했다. 일상의 순간들을 관찰하며 얻는 사소한 느낌들을 영화에 담고자 한 것이다. ‘탈북민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한국에서 무엇을 느끼며 살까?’ 감독과 배우들은 묻고 또 물었다. 자신이 했던 경험을 엮어 보기도 하고, 실제로 북한을 떠나온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피하려고 한 건 미디어에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탈북민의 이미지였다. 영화 는 한국 최고령 연예인으로서의 송해가 아닌 무대 뒤에 숨겨진 그의 인생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룬다. 해답보다 질문 윤재호 감독은 관객에게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든다. 실제로 뚜렷한 결말을 내리기보다 인물 앞에 주어진 가능성을 비추며 막을 내리곤 한다. 에 등장하는 모자의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의 진아가 복싱 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관객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귀띔한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그렇게 경계 위에서 존엄해진다. “행복의 정의는 개인마다 다르잖아요. 영화 속 인물들에게 최대한 열려 있는 마지막을 주려고 해요. 그래야 관객도 탈북민이 한국에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지 않을까요?” 영화를 본 실제 탈북민들은 어떤 반응일까? 사실적인 묘사에 민망했다는 이도 있었고,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줘서 반갑다는 이도 있었다. 오래전 겪었던 시간을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본 이들의 의견은 각양각색이었다. 인권 단체의 활동가들, 분단 현실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각자의 배경 지식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봤다. 북한과 남한이라는 특정 국가의 이야기 안에서 보편적인 경험을 찾아내고 공감했다는 외국인 관객들도 있었다. “제가 만든 작품이 한 명에게라도 가치 있었으면 해요. 그 한 명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니까요.” 자신을 포함한 한 명 한 명의 영향력을 믿으며 영화를 만드는 중인 그에게 20년 가깝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전쟁이든, 분단이든,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면 분명 그곳에 사랑이 결핍돼 있는 것 같아요. 사랑을 추구하기에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바깥에서 이루고픈 꿈이 있는지 물었다. “아주 먼 미래가 될지도 모르지만 버스 한 대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해 평양과 함경북도를 거쳐 러시아를 횡단 후, 독일과 파리로 여행하고 싶어요. 그게 유일한 바람입니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윤재호 감독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로드 무비를 찍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영화도, 분단된 한국도, 열린 결말에 놓여 있기에 그 작품이 기대된다.

엔진은 웅웅거리고……

Culture 2022 SUMMER 630

엔진은 웅웅거리고……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거제도는 대한민국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임진왜란, 한국전쟁의 뼈아픈 흔적이 세월 속에 고스란히 새겨진 곳인 동시에 아름다운 바다 경치와 풍광을, 그리고 시대의 예술가들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 GEOJE CITY 지난봄 일기 예보에서 남쪽은 벌써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겨우내 얼어 있던 마음이 스스르 녹았다. 그리고 내 기억 속 거제도의 어느 해안 도로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때를 놓치면 묵직한 꽃 터널도 그 아래 어른거리는 꽃그늘도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짐을 꾸리고 해가 뜨기 전에 차에 올랐다. 네비게이션은 서울에서 거제도까지 약 네 시간 반이 걸린다고 안내했지만, 쉬엄쉬엄 가면 여섯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차에서 들을 만한 음악을 평소에 넉넉히 골라 놔 다행이었다. 는 플레이 리스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곡이다. 오래되었지만 아직 훌륭한 머슬카, 그랜 토리노를 운전하며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 보는 내용이다. 엔진은 웅웅거리고 아픈 기억은 떠올라(Engines hum and bitter dreams grow) 그랜 토리노에 붙들린 마음(Heart locked in a Gran Torino) 외로운 리듬으로 밤새 고동치네(It beats a lonely rhythm all night long) 이 노래는 동명의 영화에 삽입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중 하나로듣고 있으면 내 차도 그랜 토리노가 되어 나를 달래 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월트 코왈스키(Walt Kowalski)는 한국전쟁(1950~1953) 참전 용사다. 그는 매우 보수적이며 독불장군인 데다 참전 후 트라우마로 사람들에게 곁을 잘 내주지 않았다. 그도 거제도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거가대교가 완공되면서 부산~거제간 거리는 140㎞에서 60㎞로 단축되었으며, 이동 시간도 2시간 30분에서 30~40분대로 크게 줄어들었다. © gettyimagesKOREA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 거제도는 부산광역시와 통영시를 각각 동쪽과 서쪽에 두고 있는데 섬이긴 해도 오래전부터 배를 타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서쪽의 통영시 쪽으로는 1971년 준공된 거제대교와 1999년 개통한 신거제대교가 나란히 놓여 있다. 2010년에는 거가대교가 완공되어 부산 쪽으로도 육로가 열렸다. 통영과 연결된 두 연륙교 아래의 해협은 암초가 많고 수로가 좁아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하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무신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이곳으로 적선을 유인해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의 날개를 닮은 진법을 펼쳐 적군을 호쾌하게 섬멸해 버렸다.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이다. 그러나 아무리 호쾌한들 전쟁은 어디까지나 전쟁이 아닐지. 거제도에 새겨진 전쟁사를 거론하자면 한국전쟁 때 대규모 포로수용소를 설치하고 운영했던 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50년 9월, 유엔군은 남진하고 있던 북한군을 섬멸하기 위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이후 수많은 포로들이 생겨나자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거제도 고현‧수월 지구를 중심으로 총 1,200만㎡의 부지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1951년 2월 포로수용소 업무를 개시하여 북한군 15만 명, 중공군 2만 명, 의용군 3천 명의 포로를 수용했는데, 그중에는 300여 명의 여자 포로들도 있었다.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로 조성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전쟁 역사의 교육장이자 관광명소가 되었다. 영화 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최대 규모인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수용자로 댄스단을 구성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 NEW 이 포로수용소 유적을 기념하는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제네바 협약을 접하게 된다. 전쟁에서의 인도적 대우에 관한 기준을 합의한 국제 규약이다. 특히 1949년에 합의된 제4협약은 포로들의 인권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협약이 처음으로 적용된 때가 한국전쟁 시기다. 유적 공원 초입의 전시실에는 수용소가 포로들의 인권을 위해 애쓴 여러 사례들이 선전돼 있었다. 특히 수용소 내 배식은 전선의 병사들에게 지급되었던 사정보다 훨씬 나았다고 한다. 그러나 포로들이 아무리 배려 받았다고 한들 전쟁 중이었다는 건 명백하다. 그들은 고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모를 어떤 섬에 고립된 채 삼엄한 경계 속에서 강제 노역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이따금 대외 선전을 위해 평화롭고 즐거운 모습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소설가 최수철(Choi Su-chol, 崔秀哲)은 거제 수용소의 포로들이 스퀘어댄스를 췄다는 사진 자료를 접하고 연작 소설 『포로들의 춤』(2016)을 썼다. 연출가 김태형(Kim Tae-hyung, 金泰亨)은 같은 소재로 뮤지컬 (2015)를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영화감독 강형철(Kang Hyoung-chul, 姜炯哲)은 이 뮤지컬을 각색하여 (2018)를 찍었다. 전시에 붙잡혀 온 공산주의자들이 적국의 민속춤을 과연 자발적으로 연습해서 췄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유 보도 사진 작가 그룹 매그넘 소속의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이 1952년에 찍은 한 사진에서는 연병장을 돌며 춤을 추고 있는 포로들이 기이하게 커다란 가면을 쓰고 있다. 아마도 적의 춤을 배웠다는 것을 감추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아직 공산주의를 고수하며 고향으로 송환될 날만 벼르는 동료 포로들에게 린치를 당하거나, 당장의 위험은 없더라도 나중에 사진이 퍼지면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로들의 춤』과 와 에서 이런 해석을 엿볼 수 있다. 한때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던 이들에게 그 이상 무엇을 베풀어야 하며 어떻게 통제하고 교화하란 말이냐고 물을 수 있다. 매우 조심스러운 문제이고,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로서 달리 할 말은 없다. 그저 제발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나 그 비슷한 위협과 폭력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거제도에는 모래보다 흑진주를 닮은 몽돌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많다. 바닷물이 밀려왔다 몽돌 사이로 빠져나갈 때면 ‘자글자글’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는 한국 자연의 소리 100선에 선정됐다. © gettyimagesKOREA 이번엔 임진왜란의 수많은 해전 중 유일한 패배지, 칠천도로 향했다. 기념관 마당에 서서 물살을 바라보며 한숨을 몇 번쯤 내쉬었다.20분 정도 거리에는 옥포가 있다.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처음으로 왜군과 싸워 승리한 곳이다. 나의 ‘그랜 토리노’는 전쟁의 흔적을 따라 나를 이끌고 있었다.   두 개의 큰 섬으로 연접한 해금강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해금강 사자바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일 년 중 3월과 10월에만 볼 수 있는 비경이다. © gettyimagesKOREA 몽돌 해변 거제에는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이 많다. 남동쪽에 있는 학동 흑진주 몽돌 해변도 그중 하나로 연중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오랜 세월 갯바위가 파도에 부서져 돌덩어리가 되고, 돌덩어리들이 닳고 닳아 주먹 크기의 둥글둥글한 몽돌이 되었다. 바위가 몽돌이 되기까지 그 긴 시간을 생각하면 내 삶의 길이는 순간이나 다름없다. 전쟁도 그 순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정말 흑진주처럼 까맣고 반질반질한 몽돌들이 햇살을 튕겨 냈다. 해변을 가득 메운 몽돌은 파도가 칠 때마다 서로 부대끼며 아주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만큼 파도의 거친 힘을 흩어 버리고 있다는 뜻이다. 모래사장과 달리 몽돌은 바닷가 주민들을 보호해 주는 기능이 있다. 이 해변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성난 파도가 기승을 부리다 간 어느 날, 해안의 몽돌들이 모두 사라지고 모래만 남아 있었다. 주민들이 이 기이한 현상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데 다음 날 거짓말처럼 몽돌들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이 짤막한 이야기에서 이곳 사람들이 몽돌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관광객들이 기념 삼아 하나둘씩 챙겨가는 걸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흔적도 꽤 보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몽돌 해변마다 안내판에 적혀 있는 어느 사연이다. 지난 2018년 국립공원관리공단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 사무소로 소포 하나가 배달됐다. 그 안에는 몽돌 두 개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미국에서 놀러 왔던 한 소녀가 기념으로 몽돌을 가져갔다가 엄마의 설명을 듣고 크게 후회해 돌려준 것이었다. 과태료나 벌금을 물리겠다는 경고판보다는 진심이 담긴 소녀의 편지가 훨씬 더 설득력 있게 관광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까? 해변을 둘러보다가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해금강을 보기 위해서다.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섬인데, 1971년에 일찌감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호가 되었다. 정부가 지정한 129개의 명승 중 도서 및 해안 형은 딱 15개가 있는데 그중 2개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거제 지구에 몰려 있다. 이곳의 바다 경치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말해 주는 증거다.   서양화가 양달석(梁達錫, 1908~1984)은 동심이 깃듯 향토적인 그림을 많이 남겨 ‘소와 목동의 화가’라고도 불렸다. 한국 근대문학사의 거목인 청마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태어난 곳에 세워진 기념관으로, 청마의 문학과 삶의 자취에 대한 기록을 관람할 수 있다. 거제가 낳은 예술가들 해금강의 위용을 가슴에 새기듯 담고 항구로 돌아와서 다시 길을 잡았다. 국내1세대 서양 미술가 중 한 명인 양달석(Yang Dal-seok, 梁達錫, 1908~1984)과 한국 시단의 큰 기둥, 유치환(Yoo Chi-hwan, 柳致環, 1908~1967)을 만나러 가야 했다. 두 사람이야말로 죽어서 해금강의 우뚝 솟은 바위들 중 하나가 되어 있는 건 아닐까? 먼저 도착한 곳은 양달석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곳, 성내 마을이다. 그의 작품으로 벽화를 곳곳에 그려 놓아 그림책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목동과 소를 주제로 그린 작품이 많았다. 그림 속 아이들은 바지가 흘러내려 볼기가 훤히 드러나는데도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닌다. 물구나무를 서거나 허리를 숙여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다. 그 행동과 표정들이 무척 해학적이다. 소는 게으르게 풀을 뜯고 있고 산천초목은 푸르며 모든 것이 평화롭다. 화가가 그려 낸 세계는 어째서 저토록 서정적이고 아름다운가. 양달석은 아홉 살 때부터 큰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서 소와 친해졌다고 한다. 꼴을 먹이다 소를 잃고 돌아와 크게 야단맞은 날이 있었는데, 밤새 산을 뒤지며 찾아다니다 잃은 소를 발견했을 때는 소의 다리를 붙들고 오래 울기도 했단다. 그런 아픈 기억들이 아무런 걱정과 근심이 없는 세계를 꿈꾸는 화가를 만든 건 아닐까. 청마기념관은 피안을 꿈꾸던 또 한 명의 거제 출신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현실이 고될지언정 시 안에서는 의지를 일으켜 세웠던 유치환이다. 그의 대표작 「깃발」에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구절이 나온다. 바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문학 수업에서 역설법을 설명할 때 반드시 예로 든다. 그가 거제를 노래한 시 「거제도 둔덕골」이 기념관 마당의 시비에 새겨져 있었다. 시는 여러 행에 거쳐 고향 마을의 각박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다가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서는 “해 뜨면 밭 갈며 어질게 살다 죽겠다”라고 약속한다. 보통 사람의 여유와 포용력이 아니다. 푸른 말을 뜻하는 그의 호(號) ‘청마(靑馬)’가 이 섬의 산야를 누비는 상상을 해 본다. 엔진은 웅웅거리고……. 버릇처럼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 내게는 과연 몽돌 한 개만 한 여유와 포용력이 있을까? 나의 ‘그랜 토리노’가 엔진을 웅웅거려 대답해 줬다. 그런 질문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Realities’ que rompen el techo de cristal

Culture 2022 SPRING 215

‘Realities’ que rompen el techo de cristal Los programas de tele-realidad solo con mujeres ganan terreno. Una combinación de lazos fraternales y empatía, superpuesta a una narrativa de desafíos y envuelta en respeto mutuo, va logrando un lugar especial en el corazón de los espectadores. “Street Woman Fighter”, un programa de supervivencia de Mnet, televisión por cable, puso el foco sobre las bailarinas secundarias y captó gran atención incluso antes del estreno, en agosto de 2021 (foto de grupo). Holy Bang fue la ganadora. © Mnet Cuando las bailarinas salieron del anonimato y pasaron al frente del escenario como competidoras en el concurso “Street Woman Fighter”, de la noche a la mañana pasó a ser sensación en las redes sociales y webs de noticias. Estrenado en agosto de 2021, el programa fue número uno en la categoría de no drama durante sus dos meses de duración.   Monika (izda), líder de Prowdmon, Z-Sun, miembro de CocaNButter. El tráiler intentó acentuar la “pelea de gatas entre chicas alfa” con confrontaciones impactantes, pero las bailarinas se mantuvieron frías y respetuosas y reconocieron sus logros. © Mnet Bailarinas se enfrentan en un escenario, ante el presentador y tres jueces. Otras competidoras se sientan alrededor del escenario, animando y reaccionando. © Mnet La Chica era inicialmente un grupo de tres para coreografiar a un cantante, pero siguió como grupo ante los crecientes compromisos con otros cantantes. Compitieron en “Street Woman Fighter” como equipo de cinco, con dos bailarinas invitadas. ©Mnet nueva tendencia Para las audiencias “Street Woman Fighter” fue mediocre (en el mejor caso). La emisora Mnet nunca alcanzó más de un 3% con él, en marcado contraste con “Superstar K” de la misma cadena o con “Mr. Trot”, ambos programas de audición musical. El primero, de 2009 a 2016, fue la caza de talentos más popular de televisión en las primeras tres de sus ocho temporadas, y ayudó a promover carreras de cantantes. Mientras, en 2020, el último programa aprovechó el tirón del género trot coreano para convertirse en uno de los programas de mayor audiencia de la televisión por cable del país, basado en un programa anterior llamado “Miss Trot”. Lo que “Street Woman Fighter” compartía con otros programas de talentos previos fue un fandom febril. Al terminar la temporada el 26 de octubre, las bailarinas iban como invitadas a populares programas de entretenimiento o salían en las revistas de fin de año. Otro programa con el inusual enfoque de un elenco totalmente femenino es “Kick A Goal” de SBS, una mini-liga de fútbol de celebridades de mediana edad entrenadas por integrantes del equipo coreano del Mundial 2002. Tras su estreno en junio de 2021, lideró los miércoles por la noche durante seis semanas, con promedios de audiencia del 6 al 8%, notablemente mejores que otros shows de entretenimiento. Pero la reputación del programa se vio empañada cuando pillaron a los de producción manipulando imágenes para que las coincidencias “parecieran más cercanas” de lo que eran en realidad. Aún así, el programa jugó su papel de inyectar emoción al entretenimiento televisivo. Desde esta perspectiva, podríamos decir que el “síndrome” creado por “Street Woman Fighter” y las altas calificaciones de “Kick A Goal” anunciaron la llegada de programas de competencia centrados en mujeres. Desafiando clichés “Street Woman Fighter” y “Kick A Goal” tuvieron un impacto similar. En ambos formatos la ganadora se lo lleva todo y rompieron los estereotipos de los concursos femeninos, hasta 2021 repletos de clichés de género. Productores y directores enfocaban los programas hacia la rivalidad entre competidoras, enganchando al espectador por la personalidad, acaloradas discusiones y rumores, y no por la competencia en sí. Los típicos comentarios al respecto eran declaraciones condescendientes del tipo: “No pelea mal para ser mujer”. De hecho, “Street Woman Fighter” comenzó con ese mismo cliché. El eslogan promocional del primer episodio era “¡Verano de 2021, las mujeres vienen a golpearte con su baile!”. Los tráileres presagiaban feroces peleas de gatas. En la primera misión asignada al elenco, una concursante considerada inferior se vio obligada a usar la pegatina “Sin respeto” y a librar una batalla de baile, y un ídolo que se unió a la competencia era molestado una y otra vez por bailarinas experimentadas. Aquello parecía una manada de hienas buscando presa fácil. Pero las bailarinas compitieron en grupos y el espectáculo dio en el blanco en su “misión pedagógica”. Requería crear una coreografía y No:ze, la líder del grupo WayB, fue la ganadora. Eso llevó a las líderes de otros grupos a una incesante práctica y dura competencia para ser elegidas como bailarina principal de la coreografía de No:ze. Hubo disputas y malas palabras que, tal como estaba previsto, captaron la atención de los espectadores. Pero fuera de los ataques verbales, las bailarinas mostraron respeto, cuidado mutuo y compromiso con su oficio. Incluso la cantante excluida recibió afecto y respeto sin límites antes de ser eliminada. Al comentar la coreografía de No:ze, uno de las bailarinas dijo: “Podría cocinar algo con eso si pudiera memorizar los movimientos”. No quería decir que el baile fuera fácil, sino que confiaba en sí misma y en sus destrezas de baile. Aunque los productores intentaron aprovechar la edición para mostrar emotivas peleas de gatas entre las bailarinas, la sincera pasión de los grupos de baile se dejaba entrever y terminó conmoviendo a los espectadores. No había guion, pero la profesionalidad de las bailarinas cambió la narrativa hacia otro enfoque. El primer grupo en ser eliminado fue WayB. No:ze. La líder dejó el escenario con una sonrisa y dijo: “Espero que todas bailen siempre felices”, mostrando tranquilamente su amor por el baile. A partir de entonces no importó ganar o perder, sino demostrar profesionalidad sin remordimientos. Prowdmon, una fuerte contrincante, no pudo culminar la cuarta misión, pero a los espectadores no les importó su derrota. En un giro único para un programa de supervivencia, apenas importaba quien fuese el eventual ganador. Igual sucedió con “Kick A Goal”, que pasó a programa regular cuando el piloto logró un rating del 10%. Programas previos de celebridades que practicaban deporte, daban a la audiencia la oportunidad de burlarse de la falta de habilidades o de condición física de las estrellas. En cambio “Kick A Goal” desafió esas expectativas, como “Street Woman Fighter”. FC Fire Moth, equipo de celebridades de mediana edad que ganó en el piloto, repitió su hazaña en la temporada regular, pero de nuevo el resultado pasó a un segundo plano para los espectadores. El proceso era lo esencial. Ganar o perder no importaba, fue más una ocurrencia tardía. El campeonato fue una revancha contra los FC Giants, cuyas integrantes eran modelos, y naturalmente más altas que sus oponentes, por tanto la agilidad era un reto más. En el piloto contra FC Fire Moth, las modelos fueron irremediablemente superadas. Sin embargo, en la temporada regular lo hicieron suficientemente bien como para pasar a la eliminatoria y enfrentarse con FC Fire Moth. Y pese a perder nuevamente, la tenacidad de FC Giants conmovió profundamente a los espectadores. El esfuerzo de las jugadoras fue lo que captó la atención, no las disputas personales ni su capacidad atlética. Como sello subsidiario de YG Entertainment, YGX estaba tras los cantantes de YG o enseñando a los aprendices. Destacaron al ser las más jóvenes competidoras del programa. Con su imagen chispeante, se convirtieron en símbolo de mujeres Gen-Z. ©Mnet Solidaridad y empatía En el universo del entretenimiento de enfrentamientos físicos, los elencos exclusivamente femeninos marcan una decisiva tendencia frente a los masculinos, justo porque las mujeres desafían las gastadas fórmulas de programación al competir con tenacidad, sinceridad y respeto mutuo. La mejor línea que salió de “Street Woman Fighter” fue: “Mira, ahora va a ser una pelea entre eonnis”, refiriéndose a un espacio de mujeres fuertes y orgullosas, donde ningún hombre se atrevería a entrar. Entre los pioneros de estos programas centrados en mujeres se encuentran “Sporty Sisters” de Echannel, lanzado en 2020 y con segunda temporada en 2021, y “Video Star” de MBC every1, que se emitió desde julio de 2016 hasta octubre de 2021. En “Sporty Sisters”, atletas retiradas y en activo, como la golfista del Salón de la Fama de la LPGA, Pak Se-ri, probaban una actividad diferente, poniendo patas arriba la estereotipada imagen de esas mujeres. Por ejemplo, la nadadora Jung You-in impresionó con sus anchos hombros y su musculosa complexión. De forma similar, en “Kick A Goal” la comediante Kim Min-kyoung lució forma física y coordinación, eliminando a los defensores con su robusta complexión y con rápidos regates que sacaron a los espectadores de sus asientos. En un contexto donde las mujeres coreanas luchan contra clásicas expectativas y persistentes techos de cristal, resultó significativo. El programa de entrevistas “Video Star”, filial de “Radio Star” de MBC, hasta hace poco con un panel exclusivamente masculino, también fue un agente importante. Durante sus cinco años en antena, las presentadoras Park Na-rae y Kim Sook ganaron los MBC Entertainment Awards 2019 y los KBS Entertainment Awards 2020, respectivamente. Tras mucho tiempo ignoradas por sus homólogos masculinos, esperaron por años un lugar y obtuvieron reconocimiento. En las emisiones televisivas, las mujeres siempre ocuparon roles rígidos y fueron fácilmente marginadas. Pero las artistas femeninas, tanto profesionales como amateurs, han abierto nuevos caminos contra viento y marea. Y, por supuesto, las espectadoras empatizaron con ellas y las apoyan. Al haber librado batallas similares, estas mujeres comparten un sentido de solidaridad. Saben que aún queda mucho trabajo y se preparan para otra pelea, pues aún no han alcanzado el punto máximo: es un proceso en marcha y queda mucho por mostrar en 2022.

여성 예능 바람이 분다

Culture 2022 SPRING 1172

여성 예능 바람이 분다 남성 중심의 방송 환경과 낮은 시청률로 인해 부진하던 여성 예능이 최근 들어 한국의 TV 예능 편성에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여성들 간의 유대와 공감 속에 펼쳐지는 도전과 상호 존중의 서사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큰 여운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수들의 뒤에서 무대를 지켜왔던 무명의 댄서들을 조망한 케이블 TV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는 2021년 8월 방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사진 속 그룹은 격전 끝에 최종 우승을 차지한 홀리뱅이다. ©Mnet 2021년 한국 TV에서 가장 뜨거웠던 콘텐츠 가운데 Mnet의 (街頭女戰士, Street Woman Fighter) 가 있다. 흔히 가수 뒤의‘백댄서’로 호명되던 여성 댄스 크루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경연을 펼친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8월 24일 첫 방영부터 화제를 모았다. 방영 기간 동안 꾸준히 비드라마 화제성 1위를 기록했고, 10월 26일 종영 이후에는 주요 참가자들이 다른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에 게스트로 초청받는가 하면, 여러 패션잡지의 연말 결산에서도 일제히 다뤄졌다.   의 무대는 한 명의 MC와 세 명의 심사위원을 중심으로 대결을 앞둔 양 크루가 바라보는 사각형 구조다. 그 주위로 나머지 크루 멤버들이 자리 잡고 응원과 호응을 해준다. ©Mnet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왼쪽)와 코카N버터의 리더 리헤이. 예고편은 ‘쎈 여자들’의 다툼이고 아찔한 갈등의 연속이었으나 본방에서 보여준 출연자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름답게 인정하는 멋진 모습이었다. ©Mnet 라치카(La Chica)는 애초에 한 가수의 안무를 짜기 위해 모인 일시적 모임이었는데, 작업량이 많아지고 다른 가수들의 안무도 담당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팀이 됐다. 원래 세 명이 팀원이지만 스우파 출연을 위해 피넛(왼쪽에서 두번째)과 에이치원(맨 오른쪽)이 객원 맴버로 참석했다. ©Mnet 새로운 트렌드 2010년 Mnet의 (Superstar K) 시즌 2와 2020년 TV조선에서 방영한 (Mr. Trot, 明天是)이 그러했듯, 는 단순한 인기 프로그램을 너머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역대 시청률을 갱신했던 두 프로그램과 달리 의 시청률은 가장 높았을 때도 3%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프로그램은 불특정 다수 시청자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인터넷 커뮤니티, 뉴스 포털 등 TV 바깥에서 커다란 화제를 만들며 팬덤을 이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따져보려면 시청률이라는 지표에서 인상적인 기록을 남긴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코미디언, 패션 모델, 배우 등 여성 유명인들이 2002년 월드컵 대표 선수들을 감독으로 축구팀을 만들어 경쟁한 SBS (Kick A Goal, 踢球的她们)이다. 2021년 6월 이후 계속 방영 중인 이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6~8%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같은 해 신작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이다. 최근 조작 논란이 있긴 했지만, 침체에 빠져 있었던 지상파 예능의 희망 역할을 톡톡히 해준 것이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 만들어낸 신드롬과 의 안정적인 높은 시청률이 지난 해 한국 여성 예능의 부흥을 이끈 두 가지‘사건’이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클리셰에 맞서다 두 프로그램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형식을 갖췄으면서 동시에 여성 서바이벌 예능의 거의 모든 클리셰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TV 여성 서바이벌 예능에서 보여온 구도는 경쟁 자체보다는, 경쟁 과정에서 격화되는 감정싸움을 구경하거나 ‘여성 치고 잘하는’ 모습을 기특해하는 방식으로 소비되어 왔다. 는 다른 여성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그래왔듯, 강렬한 비주얼의 여성끼리 벌이는 ‘캣파이트’를 노골적으로 의도한 프로그램이다. ‘2021년 여름, 춤으로 패는 여자들이 온다!’는 방영 전 홍보 문구나 예고편도 여지없이 캣파이트를 연상시켰다. 또한 만만한 상대로 지목된 댄서가 옷에‘No Respect’ 스티커를 붙이고 배틀을 벌이는 첫 미션에서 연이어 아이돌 출신 댄서를 제압하는 모습은 마치 하이에나 무리가 손쉬운 먹잇감을 사냥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드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계급 미션’에서도 댄스 크루 웨이비의 리더 노제(No:ze, 盧智慧)가 만든 안무를 채택한 뒤 그 안무를 더 잘 소화해 메인 댄서가 되려는 다른 크루 리더들의 치열한 역공의 과정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프로그램 속에는 단순한 싸움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존감 높은 출연자들의 진짜 모습이 있었다. 아이돌 출신 댄서가 탈락하게 되는 마지막까지 모든 출연자들은 그에게 한없는 애정과 존중을 표시했다. 또한 노제가 만든 안무를 두고 한 출연자가 “저건 내가 좀 갖고 놀 수 있겠다. 외우기만 하면” 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그 춤이 쉽고 만만하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본인의 춤에 대한 강한 프라이드가 내비쳤다. 출연자들 간의 경쟁을 감정적 캣파이트로 묘사하려는 편집에도 불구하고 춤을 향한 그들의 진지한 태도는 감춰지지 않았고, 바로 이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탈락해야 했던 노제는 “항상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담담하게 춤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떠났다. 바로 이때부터 모든 참가자에게는 승패 보다는 프로로서 얼마나 후회 없이 전문성을 증명하고 가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프라우드먼이 3차 미션에서 떨어졌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그들의 패배가 아니었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종전의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10%의 높은 시청률을 올리자 정규 편성에 들어갔던 역시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이 모여 스포츠 경기를 벌이는 경우 종전에는 으레 출연자들의 부족한 실력과 실수가 주는 웃음에 초점을 맞췄던 것에 반해, 이 프로그램은 그러한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했다. 파일럿 방송에서 우승했던 중년 스타 팀 FC 불나방은 정규 방송에서도 다시 리그와 토너먼트를 거치며 우승했지만, 여기서도 역시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었다. 평균 키가 월등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파일럿 단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배했던 모델 팀이 정규프로에서 가까스로 4강전에 올라 FC 불나방과의 결승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끈질긴 시도로 득점에 성공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YG엔터테인먼트 산하의 댄스 레이블 YGX는 주로 YG 소속 가수의 공연이나 연습생 트레이너로 활동하다 에 합류했다. 참가 그룹 중 가장 어리고 톡톡 튀는 이미지로 Z세대 여성의 상징이 되었고, 실제로 주 고객층이 Z세대 여성들인 유명 패션 플랫폼의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Mnet 유대와 공감 남성 중심의 방송 환경에서 여성 예능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또 다른 방법, 즉 진정성에서 우러나오는 성실과 끈기, 그리고 상호 존중의 태도가 있었다. 의 최고 명대사로 꼽히는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는 감히 남자들은 끼어들 수 없는 강한 여성들의 도도한 세계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이러한 한국 여성 예능의 부상이 있기 까지는 2020년 방영이 시작된 E채널의 (Sporty Sisters, 愛玩的姐姐)나 2016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방영된 MBC everyone의 처럼 선구적 역할을 담당해온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2021년에 시즌 2로 이어진 에서는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박세리(Pak Se-ri, 朴世莉)를 비롯해 전‧현직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출연해 새로운 운동 종목이나 취미를 경험한다. 막강한 근육과 넓은 어깨로 화제가 됐던 수영선수 정유인(Jung You-in, 鄭唯仁)처럼 그 동안의 TV 속 젠더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 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에서 코미디언 김민경(Kim Min-Kyoung, 金敏璟)이 큰 체구로 수비수를 튕겨낼 정도의 저돌적인 드리블을 하는 통쾌한 장면도 서로 일맥상통한다. 최근까지 남성 진행자들만 있었던 MBC의 인기 토크쇼 의 마이너 버전 정도로 만들어졌던 (Video Star)의 존재도 중요하다. 이 쇼가 5년 동안 장수하는 동안 MC를 맡았던 박나래(Park Na-rae, 朴娜勑)와 김숙(Kim Sook, 金淑)은 각각 2019년 MBC 방송연예대상, 2020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남성에 비해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 방송인들이 진행자로서 자리를 지키고 성장해 최고의 예능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송에서 여성은 언제나 남성의 관점에서 그려졌고 주변부로 밀려나기 일수였다. 그런 속에서도 새롭게 자신들의 영역을 개발해온 여성 연예인들이 있고, 또한 그들과 일체감을 느끼며 응원하고 지지하는 여성 시청자들이 있어 왔다. 이들은 서로 비슷한 싸움을 해온 유대감을 공유하며 또 한 번의 전진을 위해 투쟁을 각오한다. 이들의 성취는 아직 결말이 아닌 과정이다. 2022년에도 그들은 새로 보여줄 것들이 많아 보인다.

겨울이 남긴 풍미, 시래기

Culture 2022 SPRING 2452

겨울이 남긴 풍미, 시래기 늦가을과 겨울의 추운 날씨를 버텨내고 단맛을 끌어올린 시래기를 봄에 먹으면 마치 계절이 주는 선물이 입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든다. 입문이 쉽지는 않지만 한번 맛을 알게 되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든 음식이다. 무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채소 중 하나로 김치 뿐만 아니라 나물, 국 조림 등 여러 음식의 재료로 사용된다. 부위에 따라 각기 다른 쓰임새를 가졌고, 계절에 따라서 다른 맛을 내기도 하여 매력적인 식재료다. 특히 겨울철 노지재배로 수확한 무의 푸른 무청을 떼어 내 엮은 뒤 겨우내 햇볕과 바람으로 말린 시래기는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촉감으로 봄철 식탁을 풍성하게 해준다. 시래기는 최소 3번 정도 얼고 녹기를 반복해야 맛있어진다. 건조과정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시래기의 식이섬유는 포만감을 더해주고 몸의 노폐물 배출을 돕는다. 지금은 별미로 여겨지는 음식이라도 그 출발은 때로 하잘것없어 보일 수 있다. 무청이나 배추의 겉잎을 햇볕과 바람에 말린 시래기가 그렇다. 한반도에서는 예로부터 늦가을이면 겨울에 먹을 김치를 담가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라있는 ‘김장문화’이다. 이때 배추와 무에 파, 마늘, 고추가루 등 여러 양념을 섞어 김치를 담그고 나면 무청과 배추 겉잎이 남는다. 이를 날 것 그대로 말리거나 또는 삶아서 말리면 시래기가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푸성귀를 다듬을 때 골라 놓은 겉대를 우거지, 무청이나 배추의 잎을 말린 것을 시래기로 정의하고 있다. 초라한 모양이 때로는‘잔뜩 찌푸린 얼굴 표정’에도 비유되는 우거지도 정성껏 말리면 좋은 식재료가 되는 것이다. 배추와 같은 채소의 겉잎은 자라는 동안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된다. 속잎에 비해 거칠고 손상되어 품질이 낮아 보이기 마련이다. 누렇게 시들거나 풀이 죽기도 한다. 그런데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이어가던 시절에는 그것 마저 버릴 수 없었다. 채소 꺼풀을 주워 모아 그늘에 말려두었다가 잘게 썰어 한 줌의 쌀이나 두부비지, 밀기울을 넣어 죽으로 끓여 먹었다. 그조차도 세 끼를 먹기에 모자랐다. 한 끼 또는 두 끼만 먹으면서 간신히 버티는 사람이 많았다. 춘궁기면 시래기죽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다는 농민들의 호소가 신문 기사로 실리곤 했다. 적응이 필요한 음식 시래기는 여러 번 먹어야 비로소 맛을 알게 되는 음식이다. 추운 겨울 시골집 마당에서 시래기를 삶는 냄새는 별로 향기롭지 않다. 뜨거운 김이 집안까지 데워 주는 느낌은 좋은데 냄새는 싫다. 배추나 무청을 삶으면 생겨나는 황화합물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삶는 과정에서 알싸한 매운맛이 줄어들고 부드럽고 순한 맛이 된다. 배추에는 감칠맛을 내는 유리 글루탐산이 많이 들어있다. 무청에는 뿌리인 무보다 더 많은 글루탐산이 들어있다. 황화합물과 글루탐산은 본래 육류에 많이 들어 있어서 고기 맛을 내는 성분이다. 배추와 무청을 말려 만든 시래기가 의외로 고기와 잘 어울리는 것은 이 풍미 물질 덕분이다. 고추장, 된장을 풀고 마늘을 넣어 시래기 찌개나 국을 끓여 먹으면 고기를 넣지 않아도 고기 맛이 난다. 멸치 육수를 더하면 풍미가 더 좋다. 음식 맛이 유명한 항구 도시 통영에서는 멸치 대신 장어 뼈로 국물을 낸 시래깃국이 전해 내려온다. 사실 처음부터 누구나 좋아할 맛은 아니다. 어린아이가 생소한 음식을 받아들여 좋아하게 되려면 최소 8회에서 15회까지 그 음식을 경험해봐야 한다. 시래깃국은 이런 설명에 딱 맞는 음식이다. 나 역시 맨 처음 시래깃국을 맛본 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음식이었다는 기억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부터 시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일단 좋아하게 되니 시래기로 만든 대부분의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들깨를 넣어 무친 시래기 무침, 된장과 갖은양념을 넣어 졸인 시래기 지짐, 사골 육수에 끓인 사골시래깃국까지 시래기가 들어간 요리면 구미가 당긴다. 정월 대보름은 음력 명절이다. 2022년 정월 대보름은 양력으로 2월 15일이다. 이날은 오곡밥에 묵나물을 많이 먹는다. 묵나물은 ‘묵은 나물’로 박, 오이, 버섯, 호박, 순무, 고사리, 취나물, 오이꼭지, 가지껍질 등을 말려서 겨우내 저장해둔 채소를 삶아서 무친 것을 말한다. 묵나물엔 시래기도 포함된다. 시래기는 자주 얼고 녹으며 완전히 말라야 하는 만큼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는 장소가 적합하다. 해발 300~500m 위치의 산간 지대로 일교차가 20도 이상 벌어지는 강원도 양구 해안분지, 일명 펀치볼에서 생산한 시래기가 유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펀치볼’은 한국전쟁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이 곳의 지형이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하여 한 미국인 종군 기자가 시용하며 알려진 이름이다. ©shutterstock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모(洪錫謨 1781~1857)는 자신의 책 (東國歲時記 1849)에서 정월 대보름에 묵나물을 먹으면 다가올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그의 설명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래기를 비롯한 묵나물의 영양학적 가치는 충분하다. 채소를 삶고 말리면 엽록소의 색이 초록색에서 황록색으로 다소 칙칙하게 변하지만, 엽록소 자체는 애초에 사람의 체내로 흡수되어 이용되는 영양성분이 아니다. 비타민B군, 비타민C와 같은 수용성 비타민은 일부 손실되지만 지용성 비타민과 미네랄은 대부분 그대로 남는다. 농촌진흥청 식품성분표에 따르면 데친 무시래기 100g에는 단백질 4g, 탄수화물 9.8g, 지방 0.3g, 식이섬유는 무려 10.3g이 들어있다. 시래기 두 접시만 먹어도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식이섬유 섭취량 25g의 절반 이상을 먹게 되는 셈이다. 그 효과가 여름까지 가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변비인 사람의 봄철 식탁에 시래기가 자주 놓이는 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오래 푹 삶은 다음 찬물에 담가 놓아 부드러워진 시래기는 다양한 요리에 쓰인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곱게 다져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기름에 볶은 시래기나물은 정월대보름 식탁에 빠지지 않는 별식이다. ©Getty Images Korea 추위가 남기고 간 선물 요즘 시래기는 예전 시래기와 다르다. 과거에는 무로 김치를 담그고 남은 무청을 알뜰살뜰 말려 시래기를 만들었다. 이제는 시래기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하여 따로 심는다. 시래기 전용 무 종자를 재배하여 얻는 시래기는 일반 무로 수확한 시래기보다 잎이 더 연하고 부드러운 특징이 있다. 식감이 부드러워 껍질을 벗기고 요리하는 게 번거로운 사람이 바로 조리해 먹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잎 수가 더 많고 잘 자라는 품종을 서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심어 무청이 충분히 자라면 잘라내어 시래기를 만들고 무를 남긴다. 파종하고 45일에서 60일 사이에 수확하여 작은 무는 노지에 그냥 버려두기도 한다. 2021년 11월 29일 의 기사 제목처럼 밭에 남겨진 무가 “시래기가 미워요”라고 외칠만하다. 기사에 따르면 시래기 전용 무는 맛이 약간 맵고 일반 무에 비해 물러서 김치를 담그기에 적당치 않다. 그래서 동치미를 담그거나 채 썰어 말린 후 볶아 차로 만들거나 또는 무장아찌를 담그는 데 활용된다고 한다. 시래기는 전국 어디서나 수확해 먹지만 강원도 양구가 산지로 가장 유명하다. 산간지역인 양구군의 해안분지는 ‘펀치볼’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 종군기자가 붙인 이름이다. 음료를 담는 둥근 그릇처럼 움푹 패인 침식 분지의 지형을 가리키는 영어단어가 지역의 이름으로 아직 남아있는 것은 이곳이 그만큼 격전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 막바지까지도 펀치볼 전투는 치열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구 펀치볼하면 시래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다. 양구라는 이름처럼 햇볕이 유난히 환한 이곳의 시래기는 맛이 좋기로 유명한데 추운 날씨가 무의 맛을 달고 순하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채소가 추위에도 얼지 않으려면 잎과 줄기, 뿌리 속의 수분은 줄고 당분과 단맛 유리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진다. 춥고 햇빛이 흐려지는 가을, 겨울에는 매운맛을 내는 풍미 물질이 더 적게 만들어진다. 겨울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그면 맛이 좋은 이유이다. 요즘이야 사시사철 시래기를 먹을 수 있지만, 시래기는 추울 때 먹어야 제맛이라고 느끼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향긋한 시래기는 알리오 올리오나 크림 파스타와도 어울린다. 시래기와 궁합이 잘 맞는 들기름 한 스푼을 넣으면 더 고소하게 즐길 수 있다. 작게 자른 시래기는 아삭하게 씹는 맛을 더해준다. ©blog.naver.com/catseyesung 부드러운 식감과 맛 일단 독특한 그 맛을 알고 나면 시래기와 안 어울리는 음식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물, 죽, 찌개, 된장국처럼 흔한 가정식 요리에 더해 밥에도 넣으면 훌륭한 별미가 된다. 시래기를 2~3cm 길이로 썰어 들기름에 무쳐 쌀 위에 얹어 밥을 지은 다음 파, 마늘,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양념장을 얹어 비벼 먹으면 구수한 향기가 입속에 가득 채워진다. 저탄고지나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유행하면서 곡물 중심의 식단이 마치 건강을 위협하는 악당인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하지만 농사를 짓고 곡물 위에 문명을 세운 인간이 이제 와서 곡물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건 부당하다. 지구상 여러 지역에서 밀, 쌀, 감자, 카사바 같은 복합 탄수화물 위주의 식품을 주식으로 하고 밋밋한 맛의 주식을 더 먹을 수 있도록 부식을 곁들이는 식문화는 농경 사회의 공통적 특징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다. 시래기밥을 한입 먹는 순간 탄성이 나온다. 마치 밥에 숨어있었다는 듯이 감칠맛과 풍미를 뽑아내는 시래기의 맛. 말랑한 밥알과 함께 아작아작 씹히는 시래기의 대비되는 식감이 혀끝에 전달해 주는 재미. 한 숟갈 넘길 때마다 긴 여운이 느껴진다. 밋밋한 맛이었던 밥이 시래기를 만나 은은한 풍미를 주는 음식으로 변모한다. 시래기밥으로 소박한 한 끼를 맛보면 곡물 음식에 대한 잘못된 공격을 당장 멈추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바닥에 무를 깔고 만든 시래기 고등어찜은 또 어떤가. 비슷한 풍미 성분을 공유하는 식재료를 함께 요리하면 잘 어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헤어졌던 시래기와 무가 다시 만나 이뤄내는 풍미 조합이라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 김치찜에 시래기를 더해서 시래기 김치찜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일반 김치찜보다 맛이 덜 자극적이다. 생으로 먹는 채소 샐러드와 달리 따뜻한 시래기는 많이 먹어도 속이 편안하다. 이렇게 맛 좋은 시래기를 한국인만 먹을 리 없다. 이탈리아 풀리아 사람들도 순무 줄기와 잎을 귀 모양의 파스타(orecchiette)에 넣어 오일에 볶아 먹는다. 무의 줄기와 잎을 잘 씻어서 생것 그대로 파르메산 치즈, 마늘, 올리브유, 잣과 함께 갈아 무청 페스토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익히지 않고 무청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톡 쏘는 맛이 있다. 견과류를 조금 더하면 맛이 약간 부드러워진다. 먹을 수 있는 한 식재료를 버리지 않고 아껴 쓴다는 건 예로부터 세계 공통의 법칙이었을 것이다. 과거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던 시래기가 이제는 모두가 즐기는 별미로 자리 잡으면서 원래보다 더 부드러운 식감과 맛으로 재탄생했다. 16세기 가난한 이탈리아 농민이 먹을 것이 없어서 만들어 먹은 옥수수죽 폴렌타(polenta)가 현대에 와서는 미식가가 즐기는 요리가 된 것과 유사하다. 이제 한층 부드럽고 맛있어진 시래기를 더욱 즐기면서도 이 독특한 식재료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들

Culture 2022 SPRING 2376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들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 중 하나로 인정받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지난 2021년 9월, 한국어 기원 단어 26개가 표제어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고려대학교 신지영 교수가 이번 등재 과정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경험과 의견을 들려준다. 2021년 9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한국어 기원 단어 26개가 표제어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1928년 초판 간행 이후 이번 업데이트 전까지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는 총 24개에 불과해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크게 높아진 결과로 해석된다. © 셔터스톡 2021년 5월 어느 날, 옥스퍼드대학의 조지은(Jieun Kiaer 趙知恩) 교수에게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거의 매주 스카이프로 연구 회의를 하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 그의 이메일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 담겨 있었다. 그는 4월 초,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았는데 함께할 의향이 없는지 내게 물었다. OED에 새로 등재될 한국어 기원 단어를 검토하고 자문하는 일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함께하고 싶다고 답장을 보냈다. 조지은 교수는 내 답장을 받고 OED의 월드 잉글리시 담당 편집자인 다니카 살라자르 박사(Dr. Danica Salazar)에게 이메일을 보내 필자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것을 권고했다. 살라자르 박사는 이어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는 메일을 내게 보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신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두 개의 PDF 파일 자문을 수락한 후 질문이 담긴 두 개의 PDF 파일을 전달받았다. 살라자르 박사가 작성한 첫 번째 파일은 2021년 9월 업데이트에 때 포함될 한국어 기원 단어가 두 개의 표로 정리되어 있는 2쪽 분량의 문서였다. 두 개의 표 중 하나에는 새로 등재될 표제어의 목록과 의문 사항이, 다른 하나에는 이미 등재되어 있는 표제어 중에서 수정이 필요한 표제어의 목록과 이에 대한 질문이 내용이 담겨 있었다. 두 번째 파일은 어원 담당자 카트린 디어(Katrin Their)가 보낸 6쪽 분량의 문서였다. 옥스퍼드 사전은 학술 사전의 성격이 강해서 표제어에 대한 어원 정보부터 방대한 예문은 물론 다양한 언어학적 정보를 다층적으로 담고 있다. 따라서 해당 언어를 알지 못하고 영어로 된 문서만을 기초로 외국어 기원 단어의 어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어원은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전문가의 자문이 꼭 필요한 영역이다. 어원 담당자의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확인하고자 하는 바도 명료했다.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판단한 내용이 맞는지 틀렸는지, 틀렸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틀렸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어원을 알기 어려운 경우와 그와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들을 조밀하게 물었다. 한국어를 모르면서 어떻게 이렇게 추론해 낼 수 있었을까 놀라웠다. 엉뚱하게 추론한 경우도 있었는데, 자문위원으로서 보완해 줄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 이 파일들을 열어보고 가장 놀랍고 반가웠던 것은 등재 예정 표제어의 규모였다. 무려 26개나 되는 표제어가 새로 등재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사전에 한꺼번에 이처럼 많은 한국어 기원 단어가 올라가게 된 것은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려 60만 개가 넘는 표제어 가운데 겨우 26개로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142년에 걸친 이 사전의 간행 역사에서 한국어 기원 단어가 이제까지 언제 얼마나 등재되었는지 돌아본다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aegyo, n. and adj. A. n. Cuteness or charm, esp. of a sort considered characteristic of Korean popular culture. Also: behaviour regarded as cute, charming, or adorable. Cf. KAWAII n. B. adj. Characterized by ‘aegyo’, cute, charming, adorable. banchan, n. In Korean cookery: a small side dish of vegetables, etc., served along with rice as part of a typical Korean meal. bulgogi, n. In Korean cookery: a dish of thin slices of beef or pork which are marinated then grilled or stir-fried. chimaek, n. In South Korea and Korean-style restaurants: fried chicken served with beer. Popularized outside South Korea by the Korean television drama My Love from the Star (2014). daebak, n., int., and adj. A. n. Something lucrative or desirable, esp. when acquired or found by chance; a windfall, a jackpot. B. int. Expressing enthusiastic approval: ‘fantastic!’, ‘amazing!’ C. adj. As a general term of approval: excellent, fantastic, great fighting, int. Esp. in Korea and Korean contexts: expressing encouragement, incitement, or support: ‘Go on!’ ‘Go for it!’ hallyu, n. The increase in international interest in South Korea and its popular culture, esp. as represented by the global success of South Korean music, film, television, fashion, and food. Also: South Korean popular culture and entertainment itself. Frequently as a modifier, as inhallyu craze, hallyu fan, hallyu star, etc. Cf. K-, comb. form Forming nouns relating to South Korea and its (popular) culture, as K-beauty, K-culture, K-food, K-style, etc.Recorded earliest in K-POP n. See also K-DRAMA n. K-drama, n. A television series in the Korean language and produced in South Korea. Also: such series collectively. kimbap, n. A Korean dish consisting of cooked rice and other ingredients wrapped in a sheet of seaweed and cut into bite-sized slices. Konglish, n. and adj. A. n. A mixture of Korean and English, esp. an informal hybrid language spoken by Koreans, incorporating elements of Korean and English.In early use frequently depreciative. B. adj. Combining elements of Korean and English; of, relating to, or expressed in Konglish.In early use frequently depreciative. Korean wave, n. The rise of international interest in South Korea and its popular culture which took place in the late 20th and 21st centuries, esp. as represented by the global success of Korean music, film, television, fashion, and food ;= HALLYU n.; Cf. K- comb. form. manhwa, n. A Korean genre of cartoons and comic books, often influenced by Japanese manga. Also: a cartoon or comic book in this genre. Cf. MANGA n.2Occasionally also applied to animated film. mukbang, n. A video, esp. one that is livestreamed, that features a person eating a large quantity of food and talking to the audience. Also: such videos collectively or as a phenomenon. noona, n. In Korean-speaking contexts: a boy’s or man’s elder sister. Also as a respectful form of address or term of endearment, and in extended use with reference to an older female friend. oppa, n. 1.In Korean-speaking contexts: a girl’s or woman’s elder brother. Also as a respectful form of address or term of endearment, and in extended use with reference to an older male friend or boyfriend. 2.An attractive South Korean man, esp. a famous or popular actor or singer. samgyeopsal, n. A Korean dish of thinly sliced pork belly, usually served raw to be cooked by the diner on a tabletop grill. skinship, n. Esp. in Japanese and Korean contexts: touching or close physical contact between parent and child or (esp. in later use) between lovers or friends, used to express affection or strengthen an emotional bond. trot, n. A genre of Korean popular music characterized by repetitive rhythms and emotional lyrics, combining a traditional Korean singing style with influences from Japanese, European, and American popular music. Also (and in earliest use) as a modifier,as in trot music, trot song, etc.This genre of music originated in the early 1900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unni, n. In Korean-speaking contexts: a girl’s or woman’s elder sister. Also as a respectful form of address or term of endearment, and in extended use with reference to an older female friend or an admired actress or singer. 그야말로 대박! 옥스퍼드 사전의 첫 번째 완결본이 나온 시기는 본격적으로 사전을 만들기 시작하고 49년이 지난 뒤였다. 1928년 간행된 12권 분량의 초판에는 약 41만 4천 8백 개의 표제어와 182만 개 이상의 보기 인용문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사전에는 한국어 관련 표제어는 하나도 없었다. 한국과 관련 지을 수 있는 표제어가 이 사전에 처음 등재된 것은 초판의 추가본이 출간된 1933년이었다. ‘Korean’과 ‘Koreanize’가 그것이다. 이후의 추가본에도 몇 개의 단어가 더 등재되었다. 1976년에는 ‘gisaeng(궁중이나 지방 관청에 소속되어 노래와 춤 등 연희를 담당하던 여성)’, ‘Hangul(한국의 고유 문자)’, ‘kimchi(배추에 여러 가지 양념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 ‘Kono(한국의 보드 게임)’, ‘myon(면: 행정구역 단위)’, ‘makkoli(전통주의 한 종류)’ 등 6개가, 1982년에는 ‘sijo(전통 성악 형식 또는 3행으로 이루어진 정형시)’, ‘taekwondo(전통 무술의 한 가지)’, ‘won(화폐 단위)’, ‘yangban(전통 사회의 지배 계층)’, ‘ri(행정구역 단위)’, ‘onmun(한글을 낮춰 부른 이름)’, ‘ondol(전통 가옥의 바닥 난방 시설)’ 등 7개가 올랐다. 그 결과 1989년에 간행된 2판에는 총 15개의 한국어 기원 단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한국어 기원 단어가 다시 등재된 것은 21년이 지난 2003년이었다. 이때 포함된 단어는 ‘hapkido(근대 무술)’였다.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2011년에는 ‘bibimbap(밥에 여러 가지 채소, 고기를 섞어 비벼 먹는 음식), 2015년에는 ‘soju(증류주의 일종)’와 ‘webtoon(플랫폼 매체에 연재되는 만화)’, 2016년에는 ‘doenjang(된장)’, ‘gochujang(고추장)’, ‘K-pop’, 2017년에는 ‘chaebol(재벌)’, 그리고 2019년에는 북한의 통치 이념인‘Juche(주체)’가 올라갔다. 이처럼 2021년 9월 업데이트 이전까지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 기원 단어는 모두 24개에 불과했다. 그러니 한꺼번에 26개나 올라가게 된 것은 살라자르 박사의 표현대로 “Daebak(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이번에 새로 등재된 표제어 가운데 ‘daebak’이 포함되어 있다. ‘뜻밖에 얻은횡재’또는 ‘대단히 멋진 일’ 같은 의미를 지닌 이 말이 그만큼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hallyu’ 및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Korean wave’가 동시에 채택되었고, ‘K-drama’, ‘mukbang’, ‘oppa’ 같은 단어들의 등재도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음을 확실히 보여 준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이제까지 한국식 영어로 비하되었던 ‘fighting’이나 ‘skinship’ 같은 단어들이 ‘Konglish’와 함께 등재되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질문 옥스퍼드 측에서 자문을 얻고자 하는 내용은 다양했다. 새로 등재될 단어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이미 등재되어 있는 단어 중에서 수정이 필요한 12개 단어에 대한 자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1976년 추가본에 등재된 ‘gisaeng’의 음절 경계(syllable boundary) 정보를 요청하거나 ‘kimchi’의 어원을 물었다. 가장 많은 질문은 단어의 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반찬’의 ‘반’과 ‘김밥’의 ‘밥’이 서로 관계가 있는 말인지에 대한 질문처럼 단어가 어떤 의미 조각으로 나누어지는지, 또한 각 의미 조각의 어종(origin)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또한 등재 예정 단어에 대한 자신의 분석 내용이 맞는지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일부 단어의 경우는 한국어에서의 용법을 묻기도 했고, 남북한의 차이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또한‘오빠’가 남자 친구를 의미하는 것처럼 ‘누나’도 여자 친구를 의미하는가와 같은 재미있는 질문도 있었다. 자문 과정에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정보도 있었다. ‘PC방’ 관련 질문 중 그곳에서 음식을 파는지 궁금해했다. PC방에서 컵라면 정도 파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컵라면을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내심 고민하면서 검색을 해 보았다. 그 결과 요즘 PC방에서는 ‘피시토랑(PC+restaurant)’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을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검색한 이미지를 갈무리한 후 주석을 달아 보내 주었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블로그 글에서부터 논문까지 다양한 자료를 두루 참고했다. 자문위원으로서 질문을 받지 않았다면 그냥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는 조지은 교수와 조율하여 최종 답변을 만들었다. 그리고 담당자에게 우리의 답을 전달했다. 몇 가지 추가 질문이 오간 후에 자문은 마무리되었다.   dongchimi, n. In Korean cuisine: a type of kimchi made with radish and typically also containing napa cabbage, spring onions, green chilli, and pear, traditionally eaten during winter. Cf. KIMCHI n.     galbi, n. In Korean cookery: a dish of beef short ribs, usually marinated in soy sauce, garlic, and sugar, and sometimes cooked on a grill at the table.     hanbok, n. A traditional Korean costume consisting of a long-sleeved jacket or blouse and a long, high-waisted skirt for women or loose-fitting trousers for men, typically worn on formal or ceremonial occasions. © MBC     japchae, n. A Korean dish consisting of cellophane noodles made from sweet potato starch, stir-fried with vegetables and other ingredients, and typically seasoned with soy sauce and sesame oil. Cf. cellophane noodle n.     PC bang, n. In South Korea: an establishment with multiple computer terminals providing access to the internet for a fee, usually for gaming.     tang soo do, n. A Korean martial art using the hands and feet to deliver and block blows, similar to karate. © 국제당수도연맹   표제어의 조건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그간 한국어 기원 단어가 옥스퍼드 사전에 별로 없었을까? 그런데 왜 이번에 기존의 단어 수보다 더 많은 단어들이 한꺼번에 올라가게 되었을까? 사전에 올릴 단어는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 이렇게 많은 단어가 올라간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럼 앞으로는 어떨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번에 등재된 단어들은 한류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 준다. K-pop팬들이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를 부르는 호칭어로 사용하면서 알려지게 된 ‘오빠, 언니, 누나’와 팬들이 아이돌에게 요구하는 ‘애교’는 다국적 팬들 사이에서 공통어가 되었고 이 말들이 범위를 넓혀 사용되다가 사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한국 드라마와 먹방 콘텐츠, 그리고 한국 대중 가요가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되면서 ‘K-드라마’와 ‘먹방’, ‘트로트’가 영어에 편입되었고, 2015년에 등재된 ‘웹툰’과는 별도로 ‘만화’도 올라가게 되었다. 또한 비속어로 치부되어 국내에서는 사전에도 오르지 못한 ‘먹방’과 ‘치맥’이 옥스퍼드 사전에 먼저 오르는 신기한 일도 목격하게 되었다. 한류가 일기 전, 60만 개의 표제어를 가진 옥스퍼드 사전에 단지 24개의 표제어만이 한국과 관련된 단어였다는 사실은 영어권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미약했고, 영어 문헌에 한국어 기원 단어가 그다지 등장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과소 대표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등재어가 되려면 편집자의 눈에 자주 띄어야 하고, 문헌에서 일정 기간 이상 꾸준히 확인되어야 하며, 그 단어가 기대되는 맥락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사실 26개 표제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 단어들이 등재된 것은 그 이전 최소 15~20년 이상 꾸준히 사용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이번 등재 단어들이 관찰되기 시작하였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의 경우와 같이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는 한국 문화 콘텐츠는 세계인의 귀에 곧바로 한국어를 들려주고 있다. 그렇게 한국어는 더욱 널리 퍼져 나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필자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다.

사유의 시공간에 이르는 여정

Culture 2022 SPRING 2375

사유의 시공간에 이르는 여정   © 지안 입구는 좁고 통로는 어둡다. 어둠 속에서 스며 나오는 빛은 좀처럼 조도를 높이지 않는다. 시간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왼쪽 벽에서 희뿌연 빛이 기척을 보낸다. 광대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누워 있다. 거대한 돌, 혹은 얼음이 아주 느린 속도로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물이 되고, 물은 더욱 느리게 수증기로 피어올라 온 세상이 되었다가 다시 돌로 굳어진다. 장 쥘리엥 푸스(Jean-Julien Pous)의 비디오 작품이 환기시키는 완만한 우주적 순환의 ‘세례’를 거쳐 우리는 마침내 ‘사유의 방’에 들어선다. 오감이 깨어난다. 전신의 모공이 조금씩 열리고 내면의 공간이 무한대로 넓어진다. 깨어남과 고요함이 하나가 되는 시간, 부지불식간에 바닥이 조금씩 높아지며 저 어둠과 밝음이 만나는 타원형 지평에 신비스러운 두 존재가 떠오른다. 그들 사이의 가까우면서도 먼 공간 속으로 사유의 여정이 시작된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두 반가사유상이 교환하는 신비의 미소가 거기 있다. 남산을 등지고 한강을 앞에 눕힌 용산 공원 숲속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이 건축가 최욱(Choi Wook 崔旭)과 브랜드 스토리 전문팀에 의뢰하여 야심차게 기획하여 2021년 11월 일반에 개방한 공간이 바로 이 방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우선 머리에 떠올리는 상징이 라면 이제 서울의 국립박물관을 찾는 이들은 ‘사유의 방’과 그 안에서 만나는 두 구의 금동반가사유상을 가장 먼저 연상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여인의 초상화(77 × 53 ㎝)는 16세기 초의 그림이지만, 둘 다 높이 1m가 채 되지 않는 국보 78호, 83호 금동 조각상은 그보다 1000년 가까이 앞선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신라 불교 미술의 절정이다. 이 걸작들은 이름이 함축한 두 가지 특징을 지녔다. 첫째, 서거나 앉거나 누워 있는 다른 불상들과 달리 둥근 의자에 걸터앉아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 위에 얹고, 앉음과 일어섬 사이의 독특한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오른쪽 손을 들어서 검지와 중지의 끝을 가볍게 턱에 댄 자세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 준다. 로댕의 보다 1300년 전부터 이 미륵보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불상도 오랜 세월이 지나 미술관에 들어오면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진정한 사유는 나를 버리는 것인 동시에 나를 찾는 길이다. 이 두 반가상은 그 버림과 찾음의 사이의 미세한 진동을 신비로운 미소로 비추며 넓고 깊은 사유의 시공간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주, 세상의 끝과 시작

Culture 2022 SPRING 2406

영주, 세상의 끝과 시작 두 개의 큰 강의 발원지이자, 두 국가의 시작과 끝을 기억하는 땅 영주에는 헤어지는 시간을 늦추는 굽고 낮은 다리와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뜬 바위가 있다. 천혜의 자연 속에 숨겨진 깊은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보물 같은 공간이 말을 걸어온다. 경상북도 영주 무섬마을은 태백산에서 흘러내려온 두 개의 맑은 시내가 합쳐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다. 1979년 현대식 다리가 놓이기 전 이 긴 외나무다리가 물길이 동네를 휘감아 돌아 섬이 되어버린 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어쩌면 옛날 영주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사는 곳이 세상의 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주시는 한반도의 동남쪽을 차지하고 있는 경상북도의 가장 위쪽에 있다. 강원도와 맞닿아 있는 북동쪽으로는 태백산이, 서쪽 경계선을 길게 공유하고 있는 충청북도 쪽으로는 소백산이 우뚝 솟아 있다. 영주 사람들은 북쪽을 가로막은 저 높은 산들의 건너편이 궁금했을 것이다. 저 남쪽 바닷가에서부터 세계의 넓이가 궁금한 타지 사람들도 끊임없이 모여들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서로의 상상과 경험을 나누었으리라. 남쪽에서부터 영주로 모여든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을 물길을 생각해봤다. 남한에서 가장 긴 낙동강이다. 나는 영주에 반드시 그 발원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정보를 찾아봤다. 짐작대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1454)에 “낙동강의 근원은 태백산 황지, 문경 초점, 순흥 소백산이며, 그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기사에서 ‘순흥’이 바로 영주 일대의 옛 이름이다. 그뿐 아니라 놀라운 정보를 하나 더 얻었다. 영주에는 낙동강뿐 아니라 한강의 여러 작은 발원지들 가운데 하나도 있었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흐르는 강이라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뜻밖의 정보였다. 한반도 남쪽의 중요한 두 강이 모두 이 곳에서 흘러나왔으니 영주는 세상의 시작이기도 한 셈이었다.오후 늦게 서울을 벗어나 두 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저 멀리 죽령터널 입구가 보였다. 죽령터널은 소백산 아래를 뚫어 충북과 경북을 이은 4,600미터짜리 긴 관문이다. 터널 저쪽이 바로 영주라는 걸 알고 있어 다른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게 실감났다. 17세기 중엽 비옥한 토지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조성된 무섬마을에는 현재 40여 호의 고가옥이 남아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로 반남 박씨와 예안 김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외나무다리가 굽은 이유 나는 영주 남쪽의 무섬마을로 향했다. 강물이 크게 굽어지는 안쪽, 마치 강줄기를 밀어내며 혹처럼 툭 불거진 육지에 오래된 마을이 있었다. 이런 지형에 형성된 마을을 물돌이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앞과 양옆은 물길이 감싼 채 휘돌고 뒤로는 산이 막고 있어 그야말로 섬이나 다름없다. 완벽히 고립된 곳에 마을이 형성된 이유는 이런 지형이 거주민들에게 좋은 기운을 준다는 풍수학적 믿음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자급하며 살 수 있을 만큼 넓고 기름진 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이 마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건 강을 가로질러 놓인 외나무다리다. 강은 여름 장마철만 아니면 두 발로 건너다닐 수 있을 만큼 얕은데, 그렇다고 옷을 적실 수는 없으니 간단하게나마 다리를 놓은 것이다. 모래톱과 얕은 물에서 고작 1미터나 떠 있을까? 외나무다리의 폭은 남자 어른 손으로 두 뼘이 될까 말까 했다. 희한하게도 다리는 강을 직선으로 가로지르지 않고 커다란 S자 형태로 늘어져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알 길이 없었으나 보기에는 무척 아름다웠다. 사진에 담아두고 오래 추억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 남녀노소에게 인기이고, 드라마나 방송에도 소개되어 끊임없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호젓하게 즐길 생각으로 일찍 도착했다. 나처럼 서둘러 움직이는 사람이 없진 않았다. 외나무다리 위에 앞뒤로 서서 느릿느릿 건너는 한 커플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카메라 앵글에서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다리를 굽이지게 설치한 이유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장마 때문에 물살이 거세지면 쉽게 무너진다고 했다. 지금이야 북쪽으로 멀지 않은 위치에 차량이 다닐 수 있을 만큼 큰 다리가 놓여 있으나 그것이 없던 시절에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한번 물살에 휩쓸려버리면 다시 설치하기가 무척 번거로울 게 뻔하고 불어난 강의 물살을 이겨내도록 단단하게 놓을 기술도 없었을 것이다. 필요에 따라 자주 다시 놓지 않으려면 재료도 아낄 겸 직선으로 놓는 게 아무래도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고택과 정자로 가득한 무섬마을의 가옥 중 16동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잘 보존돼있다.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옛 선비 고을의 고요한 정취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혹시나 그저 미관상의 이유 때문이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리를 건너봤다. 한 가닥 외나무다리에는 곳곳에 다리의 폭만큼 짤막하게 옆으로 덧대 놓아 두 가닥이 되는 곳이 있었다. ‘비껴다리’라고 불리는 구조물이었다. 어쩌다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잠시 비켜서서 양보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놓은 것이었다. 사려 깊고 합리적인 사고에 감탄하는 한편으로는 바로 그 점 때문에 S자로 길게 구부려 놓은 비효율적 형상이 더욱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잘 보존된 전통 가옥들이 한눈에 가득 담겼다. 19세기 말까지도 120여 가구에 500여 명이 살았을 만큼 큰 마을이었다. 마을을 대표하는 몇몇 기와집들의 크기와 모양만 봐도 그저 잠시 사람들이 거주했던 섬이 아니라 하나의 이상적인 소도시쯤으로 봐야 할 것 같았다. 이곳에서 수많은 학자와 선비가 배출되었고 독립유공자만도 다섯 명이라니 처음 터를 잡은 사람의 안목과 뜻이 새삼 가슴 깊이 다가왔다. 돌담과 흙길을 따라 걷다가 무섬마을 자료 전시관에 들어섰다. 마당에 한 시인을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조지훈(Cho Chi-hun 趙芝薰 1920~1968). 학창시절 교과서를 펼치고 그의 시 「승무(僧舞 The Nun's Dance)」를 소리 내어 읊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섬은 그의 처가였고 그가 이곳에서 남긴 시 「별리(別離)」가 커다란 바위에 아내이자 서예가인 김난희(金蘭姬 1922~)의 필치로 깊게 새겨져 기념되고 있었다. 남편이 집을 나서 어디론가 떠나는 상황을 새색시의 눈으로 그린 시였다. 아내는 남편의 뒷모습을 마루의 큰 기둥 뒤에서 몰래 지켜보며 눈물로 옷고름을 적신다. 아마 이 여인의 남편도 외나무다리로 강을 건넜으리라.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문득 외나무다리의 S자 모양이 이해되는 듯했다. 가족을 남겨두고 마을을 나서던 무수한 사람들은 쉽게 발길을 뗄 수 없었다. 돌아올 기약 없이 떠나 가야만 하는 마음이 무거워 차마 강을 훌쩍 건너버리지 못했고, 한 번쯤은 돌아보고 싶어도 남아서 그 모습을 볼 이의 가슴이 더 미어질 것을 염려해 눈물을 삼키며 걸었다. 보내는 이도 기둥 뒤에 몸을 숨겨 떠나는 이의 마음에 짐이 되지 않으려 애썼다. 그나마 길게 굽이져 놓인 다리가 강을 건너는 시간을 늦춰주니 서로 위안으로 삼았다. 나는 시 속의 남편이 한 걸음 한 걸음 아껴 디디며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의 머리 위로 흰 구름이 무심히 피었다 지고, 아득히 멀리서 떠내려온 작은 잎사귀는 발 아래 잠시 머물지도 않고 스쳐 흘러가버린다. 열린 왕조와 닫힌 왕조 시내로 돌아와 영주의 중심가를 돌아봤다. 도심 인근에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고향집이 있었다. 정도전은 조선왕조 창업의 기틀을 설계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한 국가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 큰 강들의 발원지를 품은 영주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의 고향집은 세 명의 판서를 배출했다 해서 ‘삼판서 고택’이라고 불렸다. 비록 원래 있던 자리에서 수해를 당해 무너진 것을 옮겨다 복원해놓았다 해도 한 국가의 통치 이념을 성립하고 대를 이어 고위 관리를 배출해 낸 가문의 위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바위벽의 마애여래삼존불상은 통일신라시대 조각 양식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불상으로 평가된다. 발견 당시 불상 세 구의 양 눈이 모두 정으로 쪼아 파져 있었지만, 큼직한 코나 꾹 다문 입, 둥글고 살찐 얼굴에 힘찬 기상이 배어 있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 영주 근대문화거리를 둘러보다가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 숭은전에 이르렀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 재위 927~935)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그가 고려에 항복하러 개성으로 가던 길에 이곳에 머물렀던 인연이 이어진 것이라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방금 하나의 왕조를 열었던 혁명적 사상가를 만나고 온 길이었고 이제는 천 년을 이어 오다 멸망한 자신의 나라를 새로운 왕조에 바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임금을 만나는 중이었다. 국운이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백성들의 목숨을 지키고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단이었다고 한다. 영주는 경순왕의 그런 애민정신을 기리며 그를 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숭은전 앞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용이 이 자리에 떨구었을 눈물을 생각하는 중에 겨울 해는 또 빠르게 기울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인데도 부석사에 오르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부석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통도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긴 오르막길과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들을 감상하던 중에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차올랐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앞뒤에서 걷고 있는 관광객들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다. 공중에 떠다니며 도적떼를 물리치고 내려앉았다는 바위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잠시의 불편쯤이야 전설이 깃든 신비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치를 수 있는 대가인 셈이었다. 그 전설적 바위 곁에 부석사가 지어지던 676년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제압하고 삼국을 통일할 만큼 강성하던 때다. 불교가 국교로 그만큼 큰 지원을 받던 시기였기에 부석사의 규모나 위상은 특별했다. 그런 나라가 약 250년 뒤에는 남의 손에 넘어갔다. 복잡한 생각에 잠겨 드디어 108개의 계단을 모두 지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 앞에 섰을 때, 내 머릿속에서 왕조의 흥망성쇠 따위는 어느새 하얗게 지워지고 없었다. 무량수전을 마주하고 왼쪽에 바로 그 뜬 돌, ‘부석’이 있었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 1751)에는 바위 아래로 밧줄을 밀어넣고 훑어도 걸리는 데가 없다고 적혀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부석사 뒤편의 화강암 일부가 판상절리에 의해 떨어져 나와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다가 잔돌들 위에 얹혀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눈에는 어른 스무 명쯤 둘러앉을 수 있을 크기의 테이블 같았다. 속세의 잣대로 절의 창건설화를 재고 있자니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 부석과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경계심 없이 느리고 게으른 걸음걸이에서 일종의 핀잔이 읽혔다. 고양이가 나타났던 방향의 반대편으로 사라지고서야 나는 무심결에 도서관 책벌레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하던데 내게 깨우침을 준 고양이에게서 혹시 부처를 만난 건 아닐까. 부석사 범종루에 오르면 앞으로 펼쳐진 절의 전경과 그 너머 소백산맥이 구비구비 절경을 이룬다. 부석사는 676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에 창건된 이래 이제까지 법등이 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의 대표적 불교 사찰이다. 2018년 다른 여섯 개 사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범종루는 안양루와 함께 부석사에 있는 2개의 오래 된 누각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범종루는 사찰 마당 가장자리에 자리하지만, 이곳의 범종루는 경내 중심축에 당당히 위치하고 있다. 사물이 배치되어 하루 두 번 이들을 두드리며 중생의 평안을 비는 예식의 장소이기도 하다. 순환을 포용하는 공간 오후에는 강원도 방향으로 난 고개, 마구령을 넘어 남대리의 산간마을을 다녀왔고 다시 부석사 아래로 돌아와 소수서원을 둘러봤다. 남대리는 조선의 6대 왕 단종(端宗 재위 1452~1455)이 삼촌인 세조(世祖 재위 1455~1468)의 손에 폐위되어 유배길에 올랐을 때 머물렀던 곳이며, 바로 거기에 한강의 영남 발원지가 있다. 소수서원은 학자를 양성하던 조선시대 최고의 지방 사립 교육기관인데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아홉 곳 중 하나다. 최초로 임금이 그 이름을 내려준 서원이며 한반도에 처음 성리학을 전파한 안향(安珦 1243~1306)을 비롯해 많은 유학의 거목들을 모시고 있다. 소수서원 주위의 둘레길은 자연과 어우러진 오래 된 서원의 경관을 풍취를 즐기기에 좋은 산책코스다. 수령이 300년에서 많게는 1000년에 이르는 소나무를 포함해 적송 수백 그루가 자라고 있다. 1542년 설립된 소수서원은 한국 최초의 서원으로 2019년 다른 여덟 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용한 산사 성혈사에는 아름다운 건물 나한전이 있다. 단청을 입히지 않아 단아하면서도 더욱 그윽한 품위를 느끼게 하는 나한전의 세 칸 연꽃과 연잎, 두루미, 개구리, 물고기 등 상징적 문양이 정교한 솜씨로 새겨져 있다. 영주의 곳곳을 다녀 볼수록 그 독특한 면모가 감탄스러웠다. 한 국가의 설계자가 난 곳이면서 사라진 왕조의 마지막 임금을 기리고 있는가 하면, 서원을 통해 수많은 학자와 정치가를 배출한 곳인데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어린 왕의 여린 발자국이 남은 곳이기도 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순환을 반복해서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영주가 자랑하는 인물인 송상도(宋相燾 1871~1946) 선생을 통해 발원과 회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호를 붙여 엮은 저서 『기려수필』(騎驢隨筆 1955)에는 식민지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 항일투쟁을 했던 한국인들의 이모저모가 아주 자세히 기록돼 있다. 선생은 봄에 영주를 떠났다가 겨울이면 한껏 초췌해진 몰골로 돌아왔다고 한다. 식민지 주민으로 점령국에 맞서는 일에 대해 캐고 다니는 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그는 이곳저곳에서 들은 얘기들을 깨알 같은 글씨로 종이에 기록하고 그 종이를 새끼처럼 꼬아 봇짐의 멜빵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검문을 당하더라도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1910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애국지사들의 유가족을 만났고 사건 당시의 신문기사와 같은 객관적 자료를 조금씩 수집했다. 송상도 선생의 사례에 이르러 나는 뜻을 품고 바깥 세계로 나갈 때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무섬마을에 가족을 남겨두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의 단단한 각오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포용과 포섭이었다. 세상 모든 것의 발원지인 동시에 그 어떤 것도 회귀할 수 있는 피안의 공간이고자 하는 것이 영주에 깃들어 있는 정신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나는 서울로 돌아올 채비를 할 때까지도 평생을 바쳐 나라를 다시 일으킬 불씨를 모으던 어느 선비의 행로를 생각했다.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의 여정을 그대로 따르지는 못할지언정 고속도로를 타고 휑하니 돌아가는 건 어딘가 송구했다. 나는 옛 죽령 고갯길로 방향을 잡았다. 가파르고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 도로를 운전하는 동안 이 험한 고개를 두 발로 넘어 영주를 떠나던 선비의 단단하고도 거대한 기개(氣槪)를 느껴보고 싶었다. 고갯마루에 올랐을 때, 나는 지금 서울로 돌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영주에서 나서는 것인가 자문했다. 영주에서의 경험을 자랑할 것 같고 여러 번 다시 올 것이므로 출발로 여기기로 했다.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