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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를 느낄 수 있는 아홉 가지 맛

Features 2025 AUTUMN

목포를 느낄 수 있는 아홉 가지 맛 더없이 맛깔난 음식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기쁨과 활력을 준다. 목포는 맛의 진수를 보여주는 음식이 넘쳐나는 도시다. 오래전부터 풍부한 해산물을 이용한 향토 음식이 발달했다. 그래서 목포에 방문한 여행자들은 이름난 관광 명소보다 맛집을 먼저 찾는다. 목포야말로 미식 힐링 여행지로 손에 꼽을 만한 지역이다. ‘삼합’은 세 가지가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홍어 삼합은 잘 삭힌 홍어에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먹는 음식이다. 김치는 오랫동안 숙성된 잘 익은 묵은지일수록 더 좋다. 입안에 넣고 씹으면 홍어의 톡 쏘는 맛과 냄새 때문에 정신이 바짝 든다. 홍어 삼합에는 흔히 시원한 막걸리를 곁들여 마신다. © 이민희 전라남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목포는 ‘미식의 고장’으로 통한다. 지척인 서해와 남해에선 철마다 신선한 생선이 잡히고, 인근에 자리한 너른 평야에선 찰진 곡식이 익는다. 미식가로 자처하는 사람 중에서 목포 맛 여행을 안 한 이는 없다. 목포야말로 한식의 본향이다. 목포 앞바다에서 잡히는 신선한 민어나 갯장어, 톡 쏘는 맛이 일품인 갓김치 등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목포 음식은 한둘이 아니다. 2019년 목포시는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아홉 가지 진미를 소개하면서 목포가 ‘맛의 도시’임을 선포했다. 홍어 삼합, 민어회, 세발낙지, 꽃게무침, 병어회, 준치 무침, 갈치조림, 우럭간국, 아귀탕이 그것들이다. 사실 목포에는 품격 높고 역사가 오래된 ‘맛’이 많아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이런 고민에 해결책을 제시한 게 목포에서 꼭 맛봐야 할 아홉 가지 맛, 이른바 ‘목포 9미(九味)’다.  보통은 어떤 고장에서 꼭 한번은 경험해 봐야 하는 먹거리를 다섯 가지 정도로 꼽는다. 그런데 목포는 9미를 꼽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넘쳐난다.  시큼하고 톡 쏘는 맛 목포를 대표하는 먹거리는 누가 뭐라 해도 홍어 삼합이 으뜸이다. 시큼한 냄새와 톡 쏘는 맛 때문에 한때는 외면당했지만, 지금은 고급스러운 별미로 인기 있다. 삭힌 홍어와 김치, 돼지고기 수육을 함께 먹는 음식이다. 홍어는 목포를 넘어 전라도 음식의 핵심이자 지역의 정체성을 한껏 드러낸 식재료다. 가오릿과에 속하는 홍어는 서해 연평도나 대청도 등에서도 잡히지만, 목포 인근 섬인 흑산도에서 어획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1년에 새끼를 최대 두 마리까지만 낳기 때문에 흑산도 홍어가 더 귀하다. 금어기가 끝나는 11월부터 잡기 시작하며 이듬해 3월까지 가장 맛이 좋다.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에 서식하는 민어는 여름철 대표적 보양식이며, 주로 찜이나 회로 먹는 고급 생선이다. 민어회는 식감이 쫄깃하며 은은한 단맛이 돈다. 생선 살만 먹는 다른 지역과 달리 목포에서는 껍질과 부레, 지느러미까지 먹기 때문에 민어 철이 되면 제대로 된 민어회를 즐기기 위해 목포를 찾은 미식가들이 많다. © 목포시 아귀찜은 아귀를 콩나물, 미나리, 미더덕 등의 재료와 함께 갖은양념을 하고 고춧가루와 녹말풀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음식이다. 예전에는 못 생기고 볼품없는 생선이라 하여 아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아귀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지금은 값이 비싼 생선이 되었다. © 목포시 최상품으로 치는 흑산도 홍어 대부분은 목포 어판장에서 경매로 전국에 팔려나간다. 육지 사람들은 홍어를 당연히 삭혀 먹어야 하는 줄로 알지만, 흑산도 주민들은 삭히지 않은 홍어회를 즐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홍어를 삭혀서 먹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남해 일대에는 왜구가 자주 출몰해 피해가 컸다. 왕은 주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섬을 비우는 공도 정책을 펴 대응했다. 이에 따라 흑산도 주민들이 육지인 나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이때 배에 홍어를 실었다. 나주에 도착해서 보니, 볏짚에 차곡차곡 쌓아 넣은 홍어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며 상한 것처럼 보였다. 주민들은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먹었는데, 그 맛이 오히려 좋고 탈도 나지 않았다. 홍어가 볏짚 안에서 자연 발효되어 건강식이 된 것이다. 다른 유래는 흑산도 주민들의 경제 활동에 기인한다. 주민들은 홍어를 나주 영산포에 가져가 곡식과 물물교환했다. 도착 시간이 늦어지면 상하기 일쑤였지만, 역시나 버리기 아까워 그냥 먹었다. 오히려 맛이 좋고 소화도 잘돼 나주 시장에 팔았는데, 찾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두 사연 모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시큼한 냄새와 톡 쏘는 맛은 어지간한 미식가가 아니고서는 익숙해지기 쉽지 않다. 홍어는 썩지 않는다. 체액에 많은 요소 성분 때문이다. 홍어는 죽으면 요소가 암모니아와 트라이메틸아민으로 분해된다. 이 두 가지 성분이 홍어를 숙성시키며 특유의 맛과 향을 발생시킨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전라도 지역민들만 즐긴 음식이 홍어였다. 전국권 진미로 인정받게 된 게 고작 10여 년 전이다. 한국의 미식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색다른 맛을 찾는 이가 늘고, 건강식으로 홍어의 가치가 알려지면서부터다. 요즘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영국인 조슈아 대릴 캐럿이 운영하는, 구독자 수 6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영국 남자’에도 자주 등장하는 음식이다. 홍어 맛집으로 목포에선 ‘덕인집’이 역사가 오래됐다. 이 집에는 홍어 간으로 끓이는 홍어애탕도 있다. 된장을 푼 홍어애탕은 그야말로 극강의 건강식이다. 홍어와 라면을 접목한 음식을 파는 ‘목포라면 홍어라면’도 SNS를 중심으로 유명해졌다. 갈치조림은 토막 친 갈치를 양념하여 조린 반찬으로, 식당뿐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도 자주 조리해 먹는 음식이다. 기름에 지져낸 갈치구이도 비리지 않고 담백해 누구나 좋아한다. 갈치 중에서도 9월 말부터 목포 앞바다에서 잡히는 먹갈치는 산란을 앞두고 있어 유난히 달고 맛이 좋다. © 한국관광공사 다채로운 해산물 요리 목포 앞바다에 있는 섬 암태도 등이 주산지인 민어는 여름 보양식의 대명사다. 더위로 지친 몸에 영양을 보충해 준다. 민어는 조선 시대 왕의 밥상에 올랐던 귀한 생선이다. 목포엔 ‘민어의 거리’가 있는데, 이곳에는 영란횟집을 비롯해 민어 전문점들이 몰려 있다. 낙지도 목포의 별미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홍어와 함께 잊히지 않는 맛으로 꼽는다. 돌 틈이나 갯벌에 서식하는 낙지는 양식이 어렵다. 수명이 고작 1년인 낙지는 작은 게, 새우류, 조개류 등 먹이가 풍부한 서해 갯벌에서 사람이 직접 채취한다. 영양소가 풍부한 낙지는 조리법에 따라 음식 종류도 많다. 낙지탕탕이는 산낙지를 도마 위에 놓고 칼로 탕탕 치면서 잘게 다져 육회, 달걀노른자와 비벼 먹는 음식이다. 낙지 초무침은 각종 채소와 잘게 자른 낙지를 시큼한 식초 양념에 무쳐 먹는다. 연포탕은 목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파는 식당이 많지만, 제대로 된 연포탕을 맛보려면 역시 목포라야 한다. 각종 채소로 우린 국물에 낙지를 통째로 넣어 끓여 먹는다. 과음한 뒤 속을 달래기 위해 먹는 해장 음식으로 연포탕만 한 게 없다. 여러 고문헌에는 기를 채워주는 음식이라고 기록돼 있다. 목포시 남교동에 있는 ‘가락지 죽집’은 7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오래된 가게다. 부모님에게 가게를 물려받아 60년 동안 음식을 만들어 온 배옥님 할머니는 손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 가게에서는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죽과 칼국수 등을 파는데, 특히 국산 팥으로 쑨 담백한 팥죽과 쑥떡에 하얀 팥고물을 입힌 쑥굴레가 인기 있다. 괜찮아마을 제공 꽃게살을 발라내 양념으로 버무린 다음 밥에 비벼 먹는 게살 비빔밥도 매우 인기다. 이 음식이 대표 메뉴인 장터식당은 늘 문전성시다. 손맛이 좋기로 소문난 목포 사람들은 병어나 준치, 갈치 같은 생선을 조림이나 튀김 등 다채롭게 조리해 선보인다. 보통 회로 즐겨 먹는 우럭은 목포에서는 그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우럭간국의 재료가 된다. 반건조한 우럭을 푹 끓인 우럭간국 또한 연포탕과 함께 해장에 으뜸이다. 목포만의 특별한 메뉴 한편, 짜장면은 삶은 면에 각종 소스를 부어 먹는 음식으로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지만, 한국의 짜장면은 맛의 결이 다르다. 우리식 춘장과 잘게 저민 돼지고기, 양파, 애호박 등을 함께 볶다가 전분을 넣고 뒤척거려 완성한다. 맛이나 조리법이 평준화된 음식이지만, 지역에 따라 달걀 부침개를 얹어 주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돼지고기 대신 쇠고기를 쓰는 곳도 있다. 목포에는 일반적인 레시피와 구별되는 독특한 짜장면이 있다. 70년 넘게 3대가 지켜온 노포 ‘중화루’의 특별한 메뉴다. 이곳에서 개발한 ‘중깐’이라는 이름의 짜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1970~80년대 이 지역 손님들은 탕수육 등 요리를 먹고 후식으로 기스면이나 짜장면을 주문했다. 이미 요리로 배를 채운 손님들은 후식을 많이 남겼다. 그게 아까웠던 2대 주인은 면의 굵기를 가늘게 줄이고, 채소나 고기도 잘게 다져 함께 비빈 후식용 음식을 만들었다. 죽처럼 씹기도 전에 후루룩 넘어가는 중깐은 단박에 손님들을 사로잡았다. 그저 후식이었던 이 음식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면서 오히려 보통 짜장면보다 찾는 이가 많아졌다. 2000년대 중반엔 차림표에 당당히 메뉴로 이름을 올렸고, 2022년엔 상표 등록도 했다. 중깐은 오직 목포 중화루에서만 맛볼 수 있다. 7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또 다른 노포 ‘쑥꿀레’에선 쑥이 재료인 작은 크기의 떡을 판다. 흰색 팥앙금을 버무린 떡인데, 여기에 조청 등을 부어 먹는 디저트다. 목포를 상징하는 대표적 토산품 중 하나가 세발낙지이다. 일반 낙지보다 다리가 가늘고 크기가 작지만, 맛은 더 뛰어나다. 사진은 낙지탕탕이로, 산낙지를 잘게 썰어 육회와 함께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 한국관광공사 K-팝과 으로 대변되는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한식도 덩달아 인기다. 그중 김밥이 인기 급상승 중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에도 주인공들이 김밥 한 줄을 통째로 먹는 장면이 나온다. 김밥의 재료인 김의 주산지가 목포를 포함한 전라도 지역이다. 말리기 전의 물김이 재료인 전통 음식이 이 지역에 있다. 물김을 넣어 끓인 탕이다. 낙지나 생선 등과 물김을 함께 넣어 끓이면 바다의 향과 맛이 그윽하다.

넓고 깊은 예술적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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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깊은 예술적 스펙트럼 목포는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의 고향이자 활동 무대였다. 문학, 무용, 미술, 국악, 대중음악 등 문화예술 전 장르에 걸쳐 목포가 배출해 낸 인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목포의 문화예술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곧 한국의 문화예술사를 들여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김우진은 해박한 식견과 선구적 실험 정신으로 근대기 한국 연극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인물이다. 유달산 조각공원 아랫동네에는 목포에서 활동했던 극작가 김우진을 기념하는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사진은 그중 김우진을 테마로 지어진 ‘반딧불작은도서관’ 외부 전경. © 이민희 “목포 길거리에서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 네 명 중 한 명은 예술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목포는 예술적 소양이 넓고 깊은 지역이다. 대부분의 가정집은 물론 서민들이 애용하는 다방이나 식당, 술집, 숙박업소 등에도 서양화, 한국화, 서예 같은 작품들이 벽에 걸려 있다. 전문적 기량을 갖춘 국악인들만 부를 수 있는 고난도의 판소리와 남도민요, 육자배기도 목포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해낸다. 또한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오면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인구 약 21만 명의 작은 도시 목포는 한국에서 인구 대비 예술가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과거 전라남도의 행정 중심지였던 광주를 제치고 근현대 남도 문예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내재한 예술적 자양분을 토대로 서구 문물을 재빠르게 흡수한 결과였다. 서구 사조의 유입 김대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2015) 포스터. 오늘날 목포를 상징하는 인물이 된 대중가수 이난영의 대표곡을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는 이난영과 작곡가인 남편 김해송에서 시작해 이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음악 여정을 담았다. 인디라인 제공 ‘산다이’는 서남해 연안의 도서 지역에서 전승되는 고유한 풍속이다. 청춘 남녀나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는 역동적인 놀이판이다. 흥과 멋이 어우러진 이 길거리 문화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섬사람들이 육지로 떠나 인구가 줄면서 요즘은 보기 드문 광경이 되었다. 산다이는 고려와 조선 시대,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열렸던 전통 연희 ‘산대희’에서 유래한 용어로 알려졌다. ‘산대’는 연희를 위해 세운 노천 무대를 가리킨다. 목포 인근에는 천여 개의 섬들이 산재하고 있다. 목포 사람들도 당연히 산다이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근대화 시기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의 문화가 유입되어 지역의 전통문화와 섞이면서 예술 창작에 큰 자극제가 되었다. 당시 목포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또한 근대기 목포에는 예술 창작과 소비를 위한 새로운 세력도 형성되었다. 여러 학교가 생겨나면서 근대식 교육을 받은 이들과 지식인 계층이 문화예술 활동의 주도층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 남장로회가 파견한 선교사들의 영향력도 컸다. 1895년 한국에 파견된 유진 벨 선교사는 1903년 정명학교(현 정명여자중학교)와 영흥서당(현 영흥고등학교)을 설립해 근대식 교육의 단초를 마련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음악, 미술, 연극 등 서양식 문화 교육을 시켰다. 한편 항구 도시의 특성상 운송업, 무역업, 조선업, 물류업 등이 발달하면서 상업 자본이 형성되고 신흥 상인들이 주류 사회에 진입하게 됐는데, 이들은 신문, 잡지, 음악, 연극, 문학, 영화 등 문화예술 소비에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부유층 자녀들이 일본이나 유럽 유학을 통해 모더니즘 문화를 접했던 것도 당시 목포의 문화예술이 풍성해질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다. 이쯤에서 언급할 수 있는 인물이 극작가 김우진(1897~1926)이다. 일본에 유학해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김우진은 유학 시절 연극 연구 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졸업 후 목포로 돌아와서는 약 50편의 시와 5편의 희곡, 20여 편의 평론을 발표했다. 서구 근대 사상에 매료된 그는 전통적 인습을 부정하고 급진적 개혁을 꿈꿨는데,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난파」와 「산돼지」에도 그러한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이 두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표현주의 희곡으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신파극이 주류를 이루었던 당시 연극계에 내민 매우 전위적인 도전장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최고 인기 가수였던 윤심덕(1897~1926)과의 스캔들로도 유명하다. 목포 출생인 가수 이난영은 1934년 OK레코드사를 통해 가요계에 데뷔했으며, 이듬해 그녀의 대표작인 로 크게 인기를 얻으며 일약 ‘국민 가수’ 반열에 올랐다. 사진은 이난영의 히트곡들을 모아 LKL레코드가 1960년대에 발매한 LP 음반이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구 신문물은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난영(1916~1965)은 한국인들의 ‘국민가요’라 할 수 있는 로 유명한 가수다. 이난영은 1935년 발표한 이 곡으로 크게 인기를 얻으며 가요계의 샛별로 등장했다. 이듬해에는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더 꽃피웠다. 이들 부부는 서양 대중음악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스윙 재즈와 블루스풍이 혼합된 (1939)은 이난영을 한국 재즈사와 관련해 재평가하게 만든 명곡이다. 호남 화단의 구심점 프랑스 파리에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다면 목포에는 오거리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은 목포역, 조선인 마을, 일본인 마을, 목포항 등으로 연결되는 다섯 갈래 길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현대와 와서는 아틀리에, 화랑, 극장 등 문화 시설이 밀집해 있어 1950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사회, 문화, 경제의 거점으로서 목포의 중흥기를 이끌었다.또한 1950년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서울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예술인이 목포로 피난해 왔고, 이에 따라 당시 한국의 주류 문화예술도 목포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예술인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보다 4년 앞선 1958년에 목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먼저 창립했다. . 허건. 1960년대 초반. 종이에 먹, 색. 101 × 285 ㎝. 허건은 수묵담채의 전통 산수화 기법으로 향토적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화가이다. 이 작품은 허건의 완숙한 화풍을 잘 보여주는 역작 중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특히 이곳에 있던 다방을 중심으로 문인, 화가, 사진작가, 음악인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교류하며 문화의 꽃을 피웠다. 따라서 오거리에 출입한다는 것은 주류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거리 다방은 한국 화단을 이끈 화가들을 양산해 냈다. 대표적으로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는 허건을 들 수 있다. 동양화의 한 갈래인 남종화는 흔히 문인 사대부화라고 부르는데, 학문과 교양을 갖춘 문인 화가들의 내면세계가 투영된 관념적 양식의 산수화다. 허건은 조선 후기의 출중한 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던 허련(1809~1892)의 손자이다. 그는 화가 집안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나타냈다. 청소년기 목포에 정착한 허건은 오거리 다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평생 목포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또한 오거리 다방은 유학파 서양 화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일찍부터 근대 미술이 뿌리내렸다. 한마디로 목포 오거리는 호남 화단의 구심점이었다. 한편, 오거리 다방은 지방 언론과 문학지 등이 활발히 발간되면서 문필 활동과 문예 비평의 공간으로도 활용되어 한국 문단의 발전에도 큰 흔적을 남긴 장소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극작가 김우진을 비롯해 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차범석, 문학평론가 김현 등 한국 문학사의 굵직한 이름들이 목포 오거리에 각인돼 있다. 사진은 차범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극단이 2024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중 한 장면. 1960년대 말 격변하는 농촌의 현실을 묘사한 작품이다. 목포 출생인 차범석은 한국 연극의 대중화에 앞장선 사실주의 극작가다. 국립극단 제공 K-컬처의 원류 그런가 하면 목포는 공연예술 문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목포 지역의 국악적 자양분은 1962년 목포국악협회가 발족하면서 체계적으로 전수되었고, 판소리의 대가들이 목포에 머물며 국악 교육과 보급에 앞장섰다. 무용은 단연 이매방(1926~2015)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호남 춤의 명무’라 불리는 이매방은 1987년 승무, 1990년 살풀이춤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가지 종목의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로 기록된 인물이다. 승무는 불교 의식에서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춤이다. 하얀 수건을 들고 살풀이 가락에 맞춰 춤사위를 펼쳐내는 살풀이춤은 무당이 굿판에서 추었던 즉흥적인 춤에서 유래했다. 이매방은 승무와 살풀이춤 모두에서 ‘이매방류’라는 독자적인 유파를 형성할 정도로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줬다. 동춘서커스 단원들이 접시돌리기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1925년 창단한 동춘서커스단은 1927년 목포에서 첫 공연을 시작했으며, 1960~1970년대에 최대 호황을 누렸다. 현재는 경기도 안산시의 지원으로 대부도에서 서커스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동춘서커스 제공 1925년 목포에서 창단된 동춘서커스도 빠질 수 없는 목포의 자산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커스단이었던 이곳은 1960~70년대 국내 서커스 공연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현재는 경기도 안산에 자리를 잡고 국내 유일한 곡예 공연단으로서 서커스 문화를 계승 중이다. 이렇듯 목포는 한국의 전통과 문화예술이 응축된 압축파일 같은 곳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K-팝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를 이끄는 주요한 인물들 중 상당수가 목포 출신이다.

공동체의 힘으로 되살려낸 원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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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힘으로 되살려낸 원도심 오래된 도시들이 그렇듯 목포 역시 1990년대 신도시 개발로 원도심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지역 청년들과 주민들의 노력에 힘입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국 지자체에서 도시 활성화 우수 사례를 견학하기 위해 방문하는 모범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괜찮아마을’에서 대여해 준 멜빵 바지를 단체로 입은 여행자들이 고하도 내 동굴 포토존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괜찮아마을은 목포에 정착한 외지 청년들이 설립한 기업으로 다양한 로컬 여행 프로그램과 커뮤니티를 제공한다. 괜찮아마을 제공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 대부분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있다. 바로 원도심 쇠락이다. ‘확장’과 ‘개발’의 가치를 앞세운 도시 발전 정책이 신도시 건설에만 집중하는 사이 원도심은 활기를 잃기 마련이다. 목포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포 원도심은 1990년대 이후, 지역 성장을 주도했던 연근해 어업이 위축되고 조선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원도심 인구가 신도시로 급격히 유출되면서 빈집들이 점차 늘어났다. 하지만 최근 목포 원도심이 도시 재생에 성공하면서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주목받게 되었다. 목포시는 2010년대 중반, 정부의 지원 정책으로 원도심 도시 재생 사업의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관광거점도시가 되면서부터는 도시 재생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목포시는 주요 관광지를 정비하는 한편 인프라 확장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관광객 수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관광 형태도 당일치기 여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랬던 목포시에 변화가 일어났다. 원도심 부활을 이끈 건 ‘괜찮아마을’과 ‘꿈바다협동조합’, ‘건맥 1897 협동조합’ 같은 지역 공동체였다. 실험적 공동체 ‘비팡이네’는 목포의 시목인 비파나무로 다양한 디자인 소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이다. 로컬 콘텐츠를 통해 목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오픈했다. 괜찮아마을 제공 항동시장 인근에 자리한 ‘피시테리안’은 목포의 맛을 새롭게 해석한 특산물 레스토랑으로, 육류 대신 목포 근해에서 잡은 생선을 활용해 샤퀴테리 기법으로 가공한 요리를 선보인다. 괜찮아마을 제공 ‘청년 마을’은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돕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2018년부터 진행해 온 사업이다. 단순한 청년 창업 지원이 아니라, 청년들을 중심으로 점차 공동화되는 지방 도시를 되살리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이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전국에 50개가 넘는 ‘청년 마을’이 생겨났다. 이 사업의 모티프가 된 것이 ‘괜찮아마을’이다. 2017년, 목포에 정착한 외지 청년 두 명은 원도심에 실험적 공동체 ‘괜찮아마을’을 출범시켰다. 처음에는 빈집들을 활용해 60명의 청년 여행자들이 6주 동안 머물며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같은 체류형 여행 프로그램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원도심 내 식당이나 숙소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여행자들이 즐길 만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해 판매한다. 또한 지은 지 수십 년 된 여관 건물을 개조해 여행자들이 머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이 서로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기도 한다. 체류형 여행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계속 목포에 남기를 원하거나 아예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부터는 이들의 정착과 창업을 지원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재미있고 특색 있는 공간들이 늘면서 원도심의 매력이 배가되고 있다. 골목 전체가 마을 호텔 2020년 발족한 ‘꿈바다 협동조합’은 원도심에서 게스트하우스, 식당, 카페, 갤러리 등을 운영하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이자 마을 기업이다. 원도심 도시 재생을 위해 국내외의 다양한 사례를 연구하던 주민들은 골목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운영하는 마을 사업에 착수했다. 일반적인 호텔은 수직의 건물에 층마다 로비, 객실, 식당, 갤러리 등을 갖추고 있다. 반면에 이들이 구상한 마을 호텔은 개별 서비스 공간을 수평적으로 구성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목포 원도심이 오래된 문화유산을 지닌 정취 있는 곳이기에 가능했던 발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마을 호텔 이름은 ‘꿈꾸는 바다꼴목’이다. 현재 마을 호텔에는 게스트하우스 10곳, 식당과 카페가 6곳, 갤러리 한 곳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마을 호텔의 수익은 지역과 주민들이 성장하는 토대로 쓰인다. 쇠락하던 원도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이 마을 호텔은 관광객들이 특색 있는 숙소와 음식 등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와 환경을 제공한다. ‘에스타시옹1913’은 목포의 매력에 반한 외지인들이 정착해 운영하는 레스토랑 겸 게스트하우스다.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목포 구도심이 한눈에 보인다. 꿈바다협동조합 제공 마을호텔 중 하나인 ‘묵고가’는 1930년에 지어진 가옥을 리모델링하여 독채형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경동성당과 목포 근대역사관 바로 옆에 자리한다. 꿈바다협동조합 제공 지금은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출발이 마냥 순조롭지는 않았다. 목포의 원도심 도시 재생 구역에서 운영되는 게스트하우스는 관광진흥법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의 투숙만 허용돼 내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합이 출범하고 곧바로 터진 코로나19 팬데믹도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 다행히 2021년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에 선정되면서 온오프라인 플랫폼 구축 등 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내국인도 숙박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목포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지금 꿈바다 협동조합의 목표다. 작지만 알찬 로컬 축제 목포항 인근의 만호동에는 건어물 거리가 형성돼 있다. 1958년, 이 거리를 중심으로 전국 최초로 건해산물 조합이 만들어졌고, 덕분에 이곳은 1980년대까지 번성했다. 그러나 어업이 위축되고 항구가 쇠락하면서 상인들이 떠나자, 상점이 크게 줄면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거리가 됐다. 이에 남아 있는 상인들이 건어물 거리를 되살리기 위해 나섰다. 2019년 가을, 상인들이 의기투합해 맥주 축제를 열었던 것이다. 예상외로 축제가 성공을 거두자, 상인들은 이 성공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아예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건맥 1897 협동조합’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건맥’은 건어물과 맥주를 합친 말이다. 건맥1897협동조합이 2019년부터 매해 진행하고 있는 ‘1897건맥축제’는 여행자들이 목포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축제로 자리매김 되었다. 건맥1897협동조합 제공 사진은 괜찮아마을이 2024년 외달도에서 진행한 여행 프로그램. 목포에서 서쪽으로 6㎞ 떨어진 외달도는 청정해역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괜찮아마을 제공 이 맥주 축제는 조합원들과 지역 주민들이 협력해 이끌었다. 매회 300명 정도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자리 잡았으며, 규모가 크진 않지만 지금은 목포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됐다. 그 바탕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축제의 방식을 고민해 온 조합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축제 공연 무대는 유명 가수 대신 아마추어 예술인들이 재능 기부로 채웠다. 2022년부턴 건물을 매입해 조합원들이 자체적으로 맥주 펍을 운영하고 있으며, 건물 2∼3층은 숙박 공간으로 만들어 영업을 확장했다. 초창기 이 맥주 펍의 안주 메뉴는 오징어와 쥐포 등 건어물이 전부였지만, 손님이 많아지자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지역 특화형 안주도 개발했다. 건새우를 갈아 만든 양념을 치킨에 뿌린 ‘새우 통닭’이나 해산물을 듬뿍 섞은 ‘바다 피자’ 등은 관광객들에게 꽤 인기를 끌고 있다. 건맥1897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건맥펍은 낮에는 마을 주민들의 공공 공간으로, 밤에는 마을 펍으로 사용된다. 이곳에서는 목포 근해에서 나오는 최고급 건어물을 저렴하게 제공한다. 건맥1897협동조합 제공 목포 원도심의 도시 재생은 지역 발전과 공동체 유지라는 공동의 목적 아래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그 중심에서 원도심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주체는 다름 아닌 지역 주민들이다. 목포시는 우수한 지자체를 선정하는 ‘대한민국 도시대상’에서 2025년에도 수상함으로써 6년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활력 있는 자족 도시로서 목포의 행보가 다시 힘을 얻은 셈이다.

낭만적인 항구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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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항구 도시 목포는 여행자들을 낭만에 빠지게 하는 아름다운 도시다. 빼어난 자연 경관과 항구 도시의 매력을 가득 품은 목포는 국내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다. 유서 깊은 도시답게 역사성과 가치를 지닌 유산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강릉, 안동, 전주와 함께 2020년 대한민국 4대 관광 거점 도시로 선정됐다. 한반도 서남단에 위치한 목포항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등 훌륭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국 및 동남아 지역 진출을 위한 거점 항만으로서 서남권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무안반도 남단에 자리 잡은 목포는 서쪽에 유달산이 있고, 남쪽은 영산강 하구에 면해 있다. 주변에 십여 개의 섬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목포 여행의 시작점은 시내에 있는 해상 케이블카 북항 승강장이다. 높이 155m 상공에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케이블카는 목포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움직이는 전망대다. 지도를 보듯 직접 눈으로 목포의 윤곽을 더듬는 여정은 이 도시를 알아가는 첫 단계로 적절한 선택이다. 북항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목포의 상징 유달산을 지나 유서 깊은 섬 고하도에 이르는 총길이 3.23km의 코스를 왕복으로 40분간 오간다. 케이블카의 종착지 고하도는 한국사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1545~1598) 장군이 머물렀던 반달 형태의 작은 섬이다. 그는 1597년 진도 앞바다에서 빈약한 병력으로 왜군을 격파하며 큰 전과를 올렸다. 이른바 명량해전이다. 이후에 그는 100여 일간 고하도에 머물며 군사를 정비했다. 이처럼 고하도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수군의 사령부 역할을 했고, 오늘날에는 목포항의 관문이면서 자연 방파제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고하도를 둘러보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1.8km의 데크길을 따라 걸어도 좋고, 섬을 가로질러 울창한 솔숲을 산책해도 좋다. 이곳의 산림은 수령 500년 이상인 소나무들로 이루어졌다. 목포 최고의 전망대 케이블카를 타고 향할 다음 목적지는 목포의 중심인 유달산이다. 해발 228m로 그리 높지 않은 이 산은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어 가볍게 오르기에 좋다. 그마저도 케이블카가 정상 근처에서 정차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다. 유달산 정상부 곳곳에는 여러 전망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이름난 곳이 유선각이다. 목포 개항 35주년을 기념해 1932년 건립된 이곳은 전통 건축 양식의 누각이다.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하산로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목포 앞바다뿐 아니라 영암, 신안, 무안 등 인근 지역의 섬들이 펼쳐진 먼바다까지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한낮에는 하늘과 바다가 가장 푸르른 목포를, 석양 녘에는 오렌지 빛깔로 물든 목포를, 일몰 후에는 반짝이는 조명들로 은하수처럼 빛나는 목포를 볼 수 있다. 하루 중 언제 오더라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고하도 전망대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13척의 판옥선(널빤지로 지붕을 덮은 전투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 올린 건물이다. 고하도의 아름다운 해상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 목포시 유달산 노적봉에서 서쪽으로 1.8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사진 촬영 명소이자 낭만적 분위기로 유명한 목포 스카이워크가 있다. 해변에 설치된 길이 120m, 높이 15m의 철제 구조물로 산책로 겸 전망대로 기능한다. 보행로 바닥의 3분의 2를 강화 유리로 제작해 바닥 아래 백사장과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스릴과 청량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목포대교와 고하도를 아우르는 바다 경관이 장관인데, 특히 해가 진 후 색색의 조명에 물든 스카이워크와 목포대교, 해상 케이블카 주탑이 근사한 야경을 연출한다. 목포대교는 2012년 완공 이후 이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지만, 자동차 전용도로이기 때문에 스카이워크에서만 전체 형태를 감상할 수 있다. 목포대교 주탑에서 뻗은 두 기의 피라미드형 케이블은 목포시의 상징 새인 학을 형상화한 것이다. 1962년 개장한 대반동 유달해수욕장은 목포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백사장이다. 최근 스카이워크에서 목포대교와 밤바다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야경 명소로 유명해졌다. 고풍스러운 정취 유달산 자락에 있는 서산동 일대는 거미줄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길 사이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중에서도 시화 골목은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 한국관광공사 스카이워크에서 목포항 방향으로 남쪽 해안가를 따라 1km쯤 가면 곳곳에서 ‘시화 골목’이라 쓰여 있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시화 골목은 시화를 그린 담장이 이어진 서산동의 골목길을 가리킨다. 서산동은 목포에서 가장 ‘목포다운 정취를 지닌’ 항구 마을로 통한다. 낮은 비탈 위에 촘촘하게 자리 잡은 단층의 주택들에는 어부와 항구 노동자로 일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마을 경관과 주민들의 평온한 일상은 수십 년간 변치 않았다. 시화 골목은 2015년부터 목포의 시인과 화가,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이로써 평범했던 항구 마을의 골목이 다채로운 그림과 감성적인 시들로 생기를 얻었다. 주민들이 손수 가꾸는 화분,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들이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시화 골목 초입에는 ‘연희네 슈퍼’가 있다. 1980년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주제로 한 영화 <1987>의 촬영지로, 영화가 흥행한 이후 서산동의 명소가 됐다. 연희네 슈퍼의 인기와 더불어 과거의 향수를 간직한 서산동은 국내 대표적인 레트로 감성 여행지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한편, 서산동에서 10분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에 목포항이 있다. 수많은 무역선과 여객선들이 뱃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부지런히 오간다. 목포항의 여객선들은 율도, 달리도, 외달도 등 연안의 섬들을 비롯해 먼바다의 신안군 소속 섬들, 그리고 멀리 제주도까지 폭넓게 운항한다. 최근에는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로 50분 정도 걸리는 외달도로 향하는 여행객들이 늘었다. 외달도는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 풍광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작은 섬마을이다. 고즈넉한 휴식을 즐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외달도의 한옥 숙소에서 하룻밤 쉬어가길 추천한다. 외달도에는 바닷물을 끌어와 만든 큰 규모의 해수 풀장도 있어 여름이면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다. 목포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인 삼학도는 배를 타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한때는 간척 사업으로 매립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시민들의 바람에 따라 원형에 가깝게 복원된 후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공원 안에서 카약, 수상 자전거 등 다양한 수상 레저 체험을 할 수 있다. 목포 연안을 둘러보는 유람선이 삼학도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역동적인 밤 풍경 여러 가지 전설이 어려 있는 갓바위는 독특한 형태로 인해 목포의 8대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영산강 변을 따라 해상 보행교가 설치되어 있어 바다 위에서도 갓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삼학도에서 동쪽으로 5km 떨어진 해안에는 유달산과 더불어 목포를 대표하는 자연유산이 있다. 바로 갓바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갓바위는 두 사람이 나란히 삿갓을 쓰고 서 있는 형태다. 삿갓은 대오리나 갈대를 엮어서 만드는 전통 쓰개를 말한다. 이 바위에는 병든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했던 효심 깊은 청년의 이야기와 함께 스님들이 이곳에 앉아 잠시 쉬다가 쓰고 있던 삿갓을 놓고 간 것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특이한 형태로 눈길을 끄는 갓바위는 약 8천만 년 전 풍화와 해식 작용으로 형성된 희귀한 지질 자원이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나가야 정면을 볼 수 있었지만, 2008년 해상 보행교가 설치되어 감상이 쉬워졌다. 보행교는 바다 위에 뜬 구조라서 밀물 때는 1m가량 올라가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짝 흔들림이 느껴져 묘미가 있다. 야간에는 이곳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평화광장에 인파가 많이 몰린다. 겨울철을 제외한 4월부터 11월까지 매일 밤 8시에 ‘춤추는 바다 분수’ 쇼가 열리기 때문이다. 춤추는 바다 분수는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물줄기에 영상과 레이저가 어우러진 화려한 공연이다. 광장에서 바라보는 역동적인 밤바다는 목포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갓바위 일대는 목포 문화예술의 중심 지역이며, 전시 공간이 밀집해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해양박물관이자 수중 발굴 조사 전문 기관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도 이곳에 있다.

근대 문화의 1번지

Features 2025 AUTUMN

근대 문화의 1번지 서남해안의 관문인 목포는 예로부터 바다와 영산강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과거에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1897년 개항 이후 근대기에는 국내 4대 항구이자 6대 도시에 들어갈 만큼 크게 번성했다. 이런 연유로 목포는 ‘근대 문화의 요람’이라 불린다. 1900년 건립된 구 일본영사관은 도서관, 문화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다가 2014년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개관하여 사용되고 있다. 유달산 기슭에 위치하며, 붉은 벽돌을 이용한 2층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 이민희 목포는 한국의 4대강 중 하나인 영산강의 입구이자 출구에 해당하는 위치에 형성된 항구 도시이다. 강을 통해 내륙과 연결되고, 바다를 통해 목포 주변의 수많은 섬과도 연결이 가능한 지리적 이점이 있다. 그러한 장점을 살려 조선(1392~1910) 시대인 1439년부터 바다를 지키는 군사 기지가 공식적으로 설치되어 있었던 지역이다. 1897년에는 국내에서 네 번째로 국제 무역이 가능한 항구로 지정되면서 근대 상업 도시로 발전했다. 전라도 지역에서 국제 무역항이 지정된 것은 목포가 처음이었다. 곡창 지대인 전라도에서 생산되는 쌀 등의 특산물을 수출하기 좋다는 점과 무역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국제 항구로 지정됨과 동시에 외국인들의 거주가 가능해지면서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전라도에서 근대 문화가 가장 빨리 전파되는 지역이 되었다. 해안로 교차로 상가 주택은 근대기 목포에서 가장 번화했던 중심가에 세워진 2층 규모의 목조 건물이다. 대지 형태에 맞춰 다각형으로 지어졌으며, 벽체의 아치형 창문과 옥탑 장식 등 외관이 독특하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근대 문물의 보급 개항 후 목포 해안가에는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옛 군사 시설이었던 목포진 주변의 해안을 매립한 후 그 주변에 도로망과 건축을 조성하는 방식이었다. 이곳에 일본인·중국인·러시아인·영국인 등이 거주하였는데, 그중 일본인들의 숫자가 가장 많았다. 1900년에 일본인들은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위치에 대규모의 일본영사관을 건설했다. 이 건물은 현재도 보존되어 있으며, 목포근대역사관 본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무렵 한국인들도 새롭게 발전하는 이 항구 도시로 많이 이주해 왔다. 주로 유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마을을 형성했다. 이렇게 목포는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공간과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구분되어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근대 교통망의 발달은 목포의 도시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1913년에 목포역이 설치되고, 이듬해에는 대전과 목포를 연결하는 호남선이 개통하면서 이곳은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근대식 기선의 보급으로 목포항과 주변의 많은 섬들을 연결하는 해상 교통도 발달하게 되었다. 선박을 통한 목포항과 다도해 지역과의 긴밀한 연결은 이 지역의 도시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를 통해 섬 지역과 교류가 활발해졌고, 섬에서 목포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렇게 해서 목포는 전라남도에서 근대 문물이 가장 빠르게 보급되고,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는 거점 도시가 되었다. 1897년 이후 목포에 형성된 근대 문화 가운데 전라남도에서 최초이거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례들이 많다. 학교, 병원, 교회, 성당, 극장, 우체국, 경찰서, 법원, 소방서 등 근대 공공시설들이 이곳에 먼저 설치되고,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런가 하면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동도 목포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목포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선교 거점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양인들이 운영하는 교육과 의료 시설이 설치되었다. 양동 지역에 교회를 세운 미국인 선교사들은 1903년부터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였다. 이는 전라남도 최초의 여성을 위한 교육 기관이었다. 또한 선교사들은 진료소를 설치하여 서양식 의료를 보급하였다. 천주교는 산정동에 성당을 설치하고, 목포 주변과 섬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살아 있는 박물관 항구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목포에는 수많은 근대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흔적들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부르고 있다. 국가유산청에서는 2018년도에 목포의 옛 개항장 일대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등록 명칭은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이다. 이 일대에는 영사관, 은행, 학교, 백화점, 정원, 교회, 성당 등 다양한 근대 건축물이 바둑판 형태의 도로망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근대 건축이 지닌 역사적 의미가 강조되면서, 이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서 영화나 드라마가 촬영되기도 하고,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역사 축제가 펼쳐지기도 한다. 항구 지역 외에 한국인들이 주로 살았던 유달산 자락에도 근대문화유산이 많다. 오늘날 목원동이라는 부르는 지역이다. 목원동은 목포역과 유달산 아래 지역을 총칭하는 행정 명칭이다. 이 일대에는 1924년 한국인들이 스스로 성금을 모아 만들었던 최초의 시민 회관인 목포 청년회관이 보존되어 있으며, 미국인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이 힘을 모아 1911년에 완공한 양동교회 건물도 남아 있다. 목포는 걸어 다니면서 근대문화유산을 탐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그래서 목포를 살아있는 근대사 박물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목포는 ‘예술의 고향’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목포를 ‘예향’이라 부르는 이유는 실제 목포가 배출한 유명 예술인들이 많고, 예술 활동을 즐기는 시민들의 문화 소양이 높기 때문이다. 개항 이후 목포에 근대 문화가 빠르게 전파된 것이 목포가 예술의 도시로 명성을 얻게 된 하나의 배경이다. 근대 문물이나 서구의 문화예술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면서 이 지역 사람들은 다른 도시보다 먼저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또한 일본으로 연결되는 국제 해로가 발달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이를 기반으로 유학파 예술인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지금도 목포에는 시청에서 운영하는 시립예술단체가 6개나 있다. 그만큼 예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도시이다. 목포문학관, 대중음악의 전당, 목포문예역사관, 노적봉 예술공원 미술관 등이 조성되어 있다. 1897년 설립된 산정동 성당은 천주교 광주대교구 최초의 성당으로,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세 성직자의 순교 기념비가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전라남도 지역의 천주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해양 관광 시대의 거점 조선내화 구 목포공장의 내부 시설물.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트러스가 건물 구조를 잘 드러내고 있다. © 조선내화 목포는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이자 한국인 중에서 최초로 노벨상 수상자가 된 김대중을 배출한 도시이다. 태어난 고향은 신안군 하의도지만, 목포는 정치인 김대중을 길러낸 제2의 고향이다. 그는 목포에서 초등학교부터 상업고등학교까지 다녔다. 1963년과 1967년에는 목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1998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남북 관계 개선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목포 삼학도에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어 연중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최근 목포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신 해양 관광 시대의 거점으로서 목포가 주목받고 있고, 항구 도시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19년 유달산과 고하도를 잇는 해상 케이블카가 개통된 것도 관광객들이 증가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외지에서 목포로 이주해 오는 사례도 늘고 있으며, 청년들의 다채로운 활동도 그 어느 때보다 눈에 띄게 많아졌다. 목포는 한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도시이지만, 다도해를 품은 서남권의 중심 도시이다. 이 도시는 현재 항구의 멋과 맛, 근대문화유산과 예술을 토대로 재도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 어디보다 특별한 미식 여행지

Features 2025 SUMMER

그 어디보다 특별한 미식 여행지 삼면이 바다인 한국은 유난히 섬이 많다. 그중 음식이 가장 돋보이는 섬은 단연 울릉도다. 넘쳐나는 해산물, 토종 한우, 육지에서 맛보기 힘든 각종 나물들까지 군침 도는 먹거리가 여행객을 기다린다. 울릉도는 특별한 미식 여행지이다. 울릉도 마른오징어는 열풍이나 기계 건조로 말리는 다른 지역과 달리 자연 해풍 건조 방식을 고수해 맛과 향이 더 좋다. 오징어 귀에 구멍을 뚫어 긴 막대로 꿰어 말리는 것도 울릉도만의 건조 방식이다. 섬은 고립과 단절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섬 음식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고유성을 지키며 발달해 올 수 있었다. 특히 울릉도가 그렇다. 울릉도에서 가장 먼저 맛볼 만한 음식은 비빔밥이다. 한식을 대표하는 비빔밥은 각종 나물과 계란프라이, 고추장 양념 등을 밥에 비벼 먹는 음식이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가 조리법을 SNS에 올릴 정도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되었다. 그러니 울릉도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울릉도의 비빔밥은 다르다. 주재료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색다른 비빔밥 갯바위에 붙어사는 바다 생물 따개비가 주인공인 따개비밥은 울릉도를 대표하는 비빔밥이다. 전복보다 크기가 작은 따개비를 따끈한 밥 위에 수북하게 올리고 참기름, 깨소금 등을 넣어 먹으면 바다 향을 흠씬 느낄 수 있다. 울릉도의 여러 항구 인근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판다. 그만큼 울릉도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인 것이다. 따개비는 칼국수나 죽 등으로도 만들어 먹는다. 따개비 비빔밥은 울릉도의 향토 음식 중 하나다. 해녀나 어부들이 해안가 바위에 붙어 있는 따개비를 직접 채취해 일일이 손질하기 때문에 조리 과정이 번거롭지만, 쫄깃하고 오독오독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바다 향 가득한 비빔밥이 또 있다. 홍합밥은 울릉도에서 채취한 자연산 홍합이 재료다. 양식 홍합과 달리 자연산 홍합은 ‘섭’이라 부른다. 쫄깃쫄깃한 홍합엔 바다 특유의 달곰한 짠맛이 배어 있다. 씹을수록 상큼한 단맛이 입안에 퍼진다. 황홀한 별미다.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만 비빔밥의 재료가 되는 건 아니다. 울릉도만의 매력이 가득한 산채 정식이 있다. 산나물로 차려낸 정식의 메인은 비빔밥이다. 각종 산나물을 밥과 비벼 먹는다. 울릉도에서 산나물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은 나리분지다. 섬에서 유일한 평야 지대인 이곳은 성인봉을 비롯해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나리분지에 가면 마을이 형성돼 있고, 식당도 있다. 이들 식당은 나리분지에서 자란 다양한 산나물로 비빔밥을 낸다. 명이나물, 부지깽이, 취나물, 고비, 삼나물(눈개승마), 더덕, 두릅 등 그야말로 산나물의 향연이 펼쳐진다. 나물은 한국인만 먹어온 식재료다. 예부터 한국인들은 들과 산에서 채취하거나 키운 나물을 볶고, 삶고, 무쳐 반찬으로 만들었다. 국으로 끓여서도 먹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선 나물도 계절마다 맛이 다르다. 햇볕에 잘 말린 나물을 겨울철 물에 불려 조리해 먹으면 봄에 먹는 나물과는 다른 풍미가 느껴진다. 한국인들은 그 맛을 즐기면서 계절을 보낸다. 기실 한식의 정수는 나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나물이 외국에선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요즘,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한식을 내세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들이 나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구하기 쉽고 가격이 싸서 먹었던 나물이 지금은 최고 건강 음식으로 등극했다. 고기 맛이 나는 나물이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맛과 채소에 버금갈 만큼 영양소가 풍부한 게 나물의 특징이다. 나물, 울릉도의 진짜 맛 울릉도에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나물들이 자란다. 대표적인 게 명이나물이다. 이 나물의 정식 명칭은 울릉산마늘이다. 이름엔 유래가 있다. 옛날 울릉도로 이주한 이들이 눈 쌓인 겨울 먹을거리가 부족해 눈을 헤치고 다녔다고 한다. 이때 발견한 것이 바로 명이나물이다. 이 나물로 배를 채우며 하루하루 연명한 울릉도 사람들은 “명(命)이 길어지게 한다”란 의미에서 ‘명이나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쌈이나 장아찌로 조리해 먹는다. 울릉도 사람들이나 즐겨 먹은 명이나물이 건강에 좋다는 정보가 널리 알려지면서 육지에서도 인기 식품이 됐다. 자생하는 명이를 캐는 데 머물지 않고 키워서 소득원으로 삼는 농부들이 늘었다. 특히 명이나물 장아찌는 새콤달콤해 기름진 삼겹살 구이와 찰떡궁합이다. 섬말나리는 명이나물 버금가는 ‘유명 나물’이다. 심지어 국제적인 명성도 얻었다.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섬말나리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식물이다. 국제슬로푸드협회가 지정하는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2013년 울릉도 칡소와 함께 등재됐다. ‘맛의 방주’는 한 지역에서 예부터 소비되어 왔으나 소멸 위기에 처한 가치 있는 식재료를 보존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다. 울릉도 사람들은 섬말나리를 재료로 한 전통 음식을 복원하고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더덕은 한국이 원산지다. 전국적으로 재배되는 더덕은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열량이 낮아 건강식으로 인기다. 더덕을 손질해 납작하게 두드린 다음 매콤달콤한 양념을 발라 굽는 더덕구이가 가장 인기다. 조리하지 않은 생더덕을 양념에 무쳐 먹는 더덕무침은 아삭하면서 향긋하다. 더덕장아찌, 더덕밥 등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 울릉도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더덕 음식이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판매하는 더덕주스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질 좋은 울릉도 더덕을 갈아 만들어 맛과 건강을 다 잡은 음식이다. 이 외에 부지깽이와 삼나물(눈개승마)도 울릉도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식재료들이다. 울릉도 특산식물인 부지깽이나물은 맛과 향이 좋아 식재료로 애용되는 산나물이다. 비타민을 비롯해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40헥타르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울릉도 밭농사 중 소득액 규모가 가장 크다. © 울릉군 미각의 확장 도동항 인근에는 칡소 전문 식당들이 있다. 차림표에는 약소 구이, 약소 양념불고기 등이 적혀 있다. 약소는 토종 한우 종자인 울릉도 칡소를 말한다. 황갈색 몸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게 특징이다. ‘약소’는 울릉도에서 자라는 각종 산나물과 깨끗한 물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약과 다를 바 없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칡소의 장점을 살피기 전에 한우 얘기부터 해보자. 기원전 2000년부터 한반도에서 사육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한우는 외래종과 섞이지 않은 토종 품종이다. 과거 농경문화 시대에는 밭을 가는 일꾼 역할을 했던 가축이다. 이런 이유로 집마다 재산 1호가 한우였다. 누런색인 황소, 칡소, 몸 전체가 검은색인 흑우 등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멸종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수십 년 전부터 정부와 지자체들이 한우 종자 복원 사업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2006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우리 민족의 문화 중 대표성을 지닌 100가지 상징을 선정하면서 한우도 포함시켰다. 그만큼 한우는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풍미를 제공하는 한우는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요리사들조차 탐내는 식재료다. 양질의 단백질과 미네랄 등 영양소도 풍부하다. 어업 전진 기지인 저동항은 예로부터 오징어잡이 어선들로 유명하다.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은 울릉도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다. 울릉도 특산물을 얘기할 때 오징어도 빼놓을 수 없다. 예부터 울릉도 여행객이 선물용으로 잔뜩 사가는 게 바로 마른오징어였다. 청정한 해풍과 따스한 섬 햇볕에 잘 말려진 오징어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난다. 도톰한 살도 식미를 돋운다. 밤새 잡은 오징어를 바로 손질해 팔기 때문에 신선도가 높다. 오징어를 재료로 하는 음식도 다양하다. 우선 오징어 내장과 갖은 채소를 함께 끓여낸 보양식인 오징어 내장탕이 있다. 신선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음식이다. 여름에는 오징어를 얇게 썰어 찬물에 넣고 밥과 함께 비벼 먹는 오징어 물회가 아주 인기다. 또 오징어불고기, 오징어순대도 있다. 섬이 만들어 낸 음식은 육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질수록 입맛에 맞게 다듬어진다. 하지만 고유성은 훼손되지 않고, 여행자들의 미각만 넓힌다. 섬 음식의 힘이다. 독도새우를 비롯해 울릉도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 코스모스 울릉도에서는 전담 셰프가 울릉도만의 특별한 식재료를 테마로 한 파인 다이닝을 선보인다. © 코스모스 울릉도

삶을 위한 또 다른 선택

Features 2025 SUMMER

삶을 위한 또 다른 선택 복잡하고 치열한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대안적 삶을 위해 농촌이나 어촌으로 이주하고 있다.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겠다는 게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울릉도에 정착한 지 7년이 넘은 임효은(Lim Hyo-eun) 씨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서울 직장인이었던 임효은 씨에게 울릉도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2018년 울릉도 여행을 통해 이곳의 풍경과 사람들에게 매료된 그녀는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속도대로 살고 있다. © 스튜디오 켄 울릉공작소(Ulleung Gongzakso)는 울릉도 북동쪽 천부항 근처에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다.이곳에서는 임효은 씨가 직접 디자인해 만든 컵, 에코백, 마그넷, 키링 같은 물건들을 판다. 모두 울릉도의 지역성이 드러나는 관광 상품들이다. 그녀가 울릉도에 정착하기 전까지 이곳에는 그 흔한 기념엽서 하나 없었다. 이제는 그녀의 손에서 디자인 상품들이 개발된다. 그녀가 2024년 출간한 책 『마음이 울릉울릉』과 SNS 채널을 보고 울릉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2018년, 일에 치여 지쳐갈 무렵 울릉도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그녀에게 울릉도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한다고 하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한 달살이 프로그램 참여자들 대부분이 2주만 머무르거나 예정대로 한 달 후 떠났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섬 생활은 낯설었고, 내륙보다 물가도 비싼 편이라 경제적 부담도 컸다. 하지만 임효은 씨는 복잡한 도시 대신 한갓진 섬 울릉도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선택했다. 울릉도가 그녀에게 새롭게 살아볼 용기를 준 것이다. 이제 그녀는 디자이너이자 사진작가, 에세이스트, 인플루언서로서 부지런히 울릉도를 알리고 있다. 울릉도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이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멀고 낯선 섬에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본다면, 그 자체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누군가가 울릉도에서 살라고 강제로 등 떠밀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울릉도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울릉도에 온 지 7년이 지났지만, 처음 왔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첫날부터 입도가 쉽지 않았다. 선박 출항이 지연되고, 가는 동안 배도 많이 흔들려서 무척 고생했다. 멀미할까 봐 밤을 꼬박 새우고 배에 올랐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몽사몽 중에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다녔는데, 첫날 저녁 마주친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울릉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해안도로 길이는 약 45㎞다. 마라톤 풀코스와 비슷하다. 하지만 작은 섬 안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지형들이 숨어 있다. 마치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는 외국 같은 느낌이다. 그야말로 신비의 섬이다. 울릉도는 연교차가 적고 눈이 많이 내리는 독특한 기후와 화산 지형인 탓에 지리 과목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어릴 때부터 지리 과목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살아보니 어떠했나? 아름답고 험준한 곳이다. 울릉도는 1880년대 공식적으로 ‘사람이 살아도 되는 섬’이 되었다. 그때 내륙에서 이주한 50여 명이 험준한 산을 개척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처음 이곳에 정착한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메마른 땅을 힘겹게 일구며 고된 노동을 이어가면서도 이 섬이 유독 아름답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같은 풍경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계절은 다르게 찾아오고, 해 질 녘 하늘의 색도 매일 다르다. 그렇게 하루하루 관찰하다 보니 시간이 이만큼 지났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울릉도는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다.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바게트를 만들었다. 원래 빵을 좋아하지도 않고, 만드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울릉도에 빵이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아쉬웠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맛이 좋아서 앞으로 종종 만들어 보려고 한다. 또 지난해부터는 마당에 가지, 고추, 상추 같은 채소를 키워서 먹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마음도 편해졌다. 도시에 살 때는 변화가 두려웠다. 사람이 하던 일이 인공지능, 디지털 기술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섬에 정착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변화가 두렵지 않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로지 내 힘으로 산다는 것은 어렵지만 행복한 일이다. 기념품 가게 울릉공작소는 어떻게 열게 됐나? 울릉도 정착 후 처음에는 지역 영화제인 ‘우리나라가장동쪽영화제’의 기획, 디자인, 운영을 맡았다. 울릉도에는 영화관이 없어서 영화를 보려면 배를 타고 다른 도시로 나가야 한다. 그런 점이 아쉬워서 2019년부터 영화제를 열고 있다. 그리고 울릉도 2주살이 프로그램과 게스트 하우스도 운영했다. 울릉도를 알리기 위해 SNS 채널을 개설해 웹툰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2023년 울릉공작소를 열었다. 울릉도에 여행 왔을 때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사고 싶었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었다. 관광지에는 으레 기념엽서를 판매하기 마련인데, 울릉도에만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어 나리분지, 송곳봉, 공암(코끼리바위) 등 울릉도를 대표하는 명소들을 캐릭터화하기 시작했고, 이를 활용해 디자인 상품군도 점차 확대했다. 임효은 씨는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울릉도의 명소들을 캐릭터화하거나 울릉도 특산품을 소재로 기념품을 제작해 판매한다. 울릉도 곳곳을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만든 기념엽서도 반응이 좋다. © 임효은 현재는 병뚜껑을 재활용해 만든 리사이클링 키링 등 친환경 제품과 컵, 에코백 등 생활용품 등을 주로 판매한다. 울릉공작소가 있는 천부리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 아니다. 그런데도 책이나 SNS 채널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사인을 요청하는 방문객들도 있었다. 울릉도를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할 일도 많아진다. 경상북도, 울릉군과 협업해 관광 콘텐츠도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나리마을 홍보 영상과 관광 포스터, 울릉군 관광 SNS 콘텐츠 등을 제작했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 일하기도 하나? 울릉도는 대표적인 인구 소멸 지역이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나도 2023년까지 울릉군 청년 정책 참여단의 일원으로, 울릉도에서 살며 겪는 어려움과 해결책에 대해 정기적으로 토의했다. 이와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통해 울릉도를 알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2024년 출간한 에세이. 직장을 그만두고 울릉도에 정착하기까지 겪은 다사다난한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담았다. © 임효은 그리고 나처럼 울릉도로 이주한 이웃 청년들과도 서로 도우며 지내고 있다. 청년들은 프리다이빙 가게, 숙박업소, 카페 등을 직접 운영하며 이곳을 더욱 활기차게 만든다. 최근 울릉도 일 년살이를 시작한 사람도 있다. 지난해 울릉공작소에 찾아와 “울릉도에 꼭 살고 싶다”며 이것저것 묻던 손님인데, 정말로 이웃이 되었다. 울릉도 청년으로서 가장 풀고 싶은 과제는 무엇인가? 의료와 주거 문제가 가장 절실하다. 울릉도는 전국 평균 대비 주택 보급률이 낮다. 도서 지역 특성상 건축비가 많이 들고, 건물을 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거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정착을 포기한 청년들도 종종 봤다. 저렴하고 깨끗한 주택이 공급된다면, 인구 유입도 늘어날 것 같다. 가족 단위 이주민과 주민을 위해 의료 인력도 더 많이 제공되어야 한다. 울릉도 방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사는 말이 있다. “목적지가 없는 기차를 탄 것처럼 살아라.” 지금 타고 있는 기차에서 잠깐 내려도 괜찮다. 우리 인생은 거기서 다시 흘러간다. 조금 느린 기차를 타봐도 좋다. 울릉도에 머무르는 것도 좋다. 이러한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 인생이 더욱더 근사해질 것이다.

울릉도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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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 울릉도는 오랫동안 중장년층의 단체 패키지 관광지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특별한 여행지로 떠오르며,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반도 내륙과 달리 이국적인 정취를 선사하며 해외여행 못지않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취향을 겨냥한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아진 것도 한몫했다. 울릉도 여행 하면 흔히 트레킹을 떠올리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울릉도는 프리다이빙의 성지로 꼽힌다. 아직 숨겨진 다이빙 포인트가 많아 다이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아틀란티스(Atlantis) 프리다이빙 울릉도에 가기 위해서는 동해안에 위치한 강릉, 묵호, 포항, 후포 네 지역의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야 한다. 쾌속선을 타면 약 3시간, 일반 여객선으로는 6시간 남짓 걸린다. 그런데 울릉도가 워낙 기상 변화가 심한 섬이다 보니, 날씨가 악화되면 운행 날짜가 조정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현재 사동항 일대에 건설 중인 울릉공항이 2028년 개항하면 접근성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울릉도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살면서 반드시 한 번은 가봐야 하는 매력적인 섬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최근 울릉도를 여행하는 방식에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단체 패키지 관광 상품이 주를 이루었고, 주로 중장년층 여행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섬 전체를 빠르게 훑어보는 여행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신의 일정에 따라 개별적으로 자유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 증가하는 추세다. 울릉도 자유 여행이 처음인 사람들은 대중교통 수단이 다소 제한적인 현지 상황을 고려해 보통 렌터카를 이용한다. 2012년 54대에 불과했던 울릉도 렌터카 수는 2024년 429대까지 늘었다. 예약을 해두면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편리하게 섬을 돌아볼 수 있다. 울릉도 해안 일주도로는 총 길이 약 46km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완주할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도로 곳곳에서 울릉도의 소문난 절경을 마주할 수 있다. 좀 더 활동적인 여행을 선호하는 이들은 전동 스쿠터를 선택한다. 스쿠터를 이용하면 바람을 몸으로 직접 느끼며 이동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언제든지 원하는 장소에 멈춰 서서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만한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스쿠터는 도동항 근처에서 대여 가능하다. 지형이 험준한 울릉도에서 모노레일은 효용성 높은 교통수단이다. 고지대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내리며 숲과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울릉군청 야외 스포츠의 성지 최근 젊은 층이 울릉도를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해외에서나 가능한 줄만 알았던 프리다이빙을 경험해 볼 수 있기때문이다. 아예 프리다이빙 투어 상품이 따로 있을 정도다. 울릉도가 다이버들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수중 지형이 웅장하고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야가 깨끗하게 펼쳐진다. 평균적으로 20~30m, 계절에 따라서는 40~50m까지 시야가 확보돼 다양한 종류의 어류들이 군무를 이루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다이빙 포인트로는 북쪽 해안에 있는 삼선암과 공암, 남쪽 해안 통구미항 근처의 가재굴, 그리고 서북쪽 모서리에 위치한 대풍감 절벽 밑이 유명하다. 걸어서 울릉도의 자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백패킹이나 트레킹 역시 인기 있는 여행 방식이다. 울릉군에서는 2013년 구암마을의 초등학교 분교를 리모델링해 캠핑장으로 운영 중이다. 이곳은 바다와 산을 두루 경험할 수 있고 비수기에는 4만 원, 성수기에는 5만 원으로 가격이 저렴해 인기가 높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학포야영장도 있다. 야영장에서 바라보는 바다 경관이 빼어나 예약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울릉도에는 해안산책로도 잘 조성돼 있어 기암절벽과 천연 동굴, 동해를 감상하며 가벼운 하이킹을 즐길 수도 있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코오롱스포츠나 고아웃 같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하이킹, 클라이밍, 트레일러닝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참가자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겨울철에는 백컨트리 스키나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다. 패키지 단체 관광에서 개인별 자유 여행으로 울릉도 여행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전동 스쿠터를 이용해 섬을 일주하는 젊은 여행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최고급 휴양 시설 울릉도에서 근래 들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코스모스 울릉도’이다. 제조 기업 코오롱글로텍이 2017년 오픈한 이 리조트는 세계적인 건축가 김찬중이 설계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미를 인정받아 2018년 월페이퍼가 ‘Best Hotel of Year’로 선정했으며, 2019년에는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도 수상한 바 있다. 세계적 건축가 김찬중이 설계한 코스모스 울릉도는 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꼭 한 번은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다. 특히 야간 레이저 쇼가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코스모스 울릉도 코스모스 울릉도는 크게 독채 ‘빌라 코스모스’, 호텔형 객실 ‘빌라 떼레’, 풀빌라형 객실 ‘빌라 쏘메’로 이루어져 있다. 빌라 코스모스는 오직 한 팀만을 위해 전담 버틀러와 셰프가 함께하는 맞춤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 특별한 경험의 이용 금액은 4인 2박 3일 기준으로 약 3,600만 원이다. 빌라 떼레는 온돌방과 침대방 등 8개 객실이 준비돼 있으며 투숙 비용은 비수기 약 40~50만 원, 성수기 약 50~70만 원이다. 빌라 쏘메는 크기에 따른 세 가지 타입의 객실 10개로 구성돼 있는데 객실가는 2인 1박 기준으로 평균 200만 원 선이다. 젊은 층은 이 중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덜한 빌라 떼레를 주로 이용한다. 리조트 방문의 즐거움을 더하는 공간으로 카페 울라(ULLA)를 빼놓을 수 없다. 코스모스 울릉도 정원 내에 자리한 이 카페는 고릴라 캐릭터 ‘울라’를 테마로 운영된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관광 빅데이터 사이트 한국관광데이터랩 선정 울릉도 맛집 1위를 수년째 유지 중이다. 울라 캐릭터 모양의 큐브 얼음 위로 우유를 부어 마시는 ‘울라 큐브라떼’, 울릉도 호박과 명이나물을 활용한 빙수, 오징어 먹물이 들어간 소금빵이 시그니처 메뉴다. 특히 높이 7m짜리 울라 캐릭터 조형물과 ‘코스모스 링’은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들이라면 누구나 인증샷을 남길 정도로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밤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기다린다. ‘코스모스 라이팅쇼’는 야간 관광 자원이 부족한 울릉도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기 위해 코스모스 울릉도 운영팀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1~2월 휴장 기간을 제외한 매일 저녁 네 곡의 음악에 맞춰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일몰 시각에 따라 변경되므로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소문난 핫플레이스 코스모스 울릉도의 크리에이티브 플래닝실에서 근무하는 조현재(Cho Hyun-jai) 씨는 울릉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정보통이다. 그는 울릉도의 매력에 깊이 빠져 라는 노래와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제작했다. 그가 울릉도 여행자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는 장소는 ‘울라 웰컴하우스’다. 이곳은 한국관광공사, 울릉군, 코오롱글로텍이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민관 합작 여행자센터이다. ‘보다, 먹다, 놀다’라는 콘셉트를 기반으로 울릉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 맛봐야 할 것, 즐겨야 할 것들을 추천하는 ‘여행 큐레이션 카드’를 제공해 방문객들이 자신만의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 여행자센터의 틀을 깨고, 요즘 젊은 세대가 열광할 만한 트렌디한 콘텐츠와 독창적인 상품을 선보이며 젊은 감각의 울릉도 관광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조현재 씨가 추천하는 또 다른 핫플레이스로는 기념품 가게 독도문방구와 소울(SO:ULL)이 있다. 우선 독도문방구는 2015년 문을 연 울릉도 최초의 기념품 가게다. 이름처럼 초등학교 앞 작은 문방구 정도의 규모지만, 여행자들의 눈과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소울은 최근에 생겼지만, 울릉도에 정착한 외지 디자이너가 직접 작업한 감성적인 상품을 구경할 수 있어 입소문이 났다. 울릉브루어리는 울릉도를 대표하는 양조장이다. 이곳에서는 미네랄 함량이 풍부한 추산 용출수를 사용해 프리미엄 수제 맥주를 만든다. © 울릉브루어리 또 있다. 커피전문점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저동커피는 울릉도에만 있다. 투박한 궁서체 간판 디자인이 옛정취를 선사하는 이곳은 오징어 먹물 아이스크림과 호박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에도 등장해 더 화제가 된 곳이다. 그런가 하면 요즘 지역 고유의 수제맥주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울릉도에서도 그렇다. 지난해 3월 오픈한 수제맥주 양조장 울릉브루어리는 이 지역 출신의 브루마스터가 수제맥주를 빚고 있다. 울릉도에서 나는 물로 만들어져 다른 지역 수제맥주보다 더 맑고 깨끗한 맛이 난다는 평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진화의 현장

Features 2025 SUMMER

세계적으로 드문 진화의 현장 울릉도는 다양한 식물이 살아가는 자연의 보고다. 오랜 기간 섬의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수십 종의 고유종을 비롯해 한반도 내륙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들도 자생한다. 울릉도의 독특한 식물 생태계는 그 자체로 곧 섬의 역사이기도 하다. 섬나무딸기는 울릉도 산지에서 흔하게 자라는 식물이다. 한반도 내륙의 산딸기보다 꽃과 잎이 대형인 것이 특징이다. 지면에 소개된 세밀화들은 한국식물화가협회 소속 회원들의 작품이다. 2007년 창립한 한국식물화가협회는 정기전, 공모전, 해외 교류전 및 출판 활동 등을 통해 보타니컬 아트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 김예숙(Ye Sook Kim) 울릉도는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식생을 자랑한다. 현재 울릉도에는 약 500종의 관속식물(물과 양분을 전달하는 관다발을 가진 식물)이 존재하며, 그중 50여 종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이다. 울릉도의 특산식물은 약 250만 년 전 섬이 형성된 이래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쳤다. 어떤 식물들은 한반도 내륙에 있는 종(種)과 유사하지만, 몇 가지 다른 형질을 나타내며 아직 종 분화 단계에 놓여 있다. 육지의 조상종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들도 많다.  이는 울릉도의 지형적, 지질학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울릉도는 신생대에 형성된 대양도(大洋島)이다. 대륙의 일부였다가 대륙판 이동이나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에서 떨어져 나간 섬이 아니라, 바닷속 화산 활동으로 불쑥 솟아올랐다는 얘기다. 울릉도는 한 번도 육지와 연결된 적이 없는 섬이었다. 울릉도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내륙 지역과도 약 140㎞나 떨어져 있다. 이 말은 지금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오랜 세월 고립된 상황에서 독자적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한반도의 식물 분포 구역을 대체로 북부, 중부, 남부, 제주도, 울릉도로 분류한다. 같은 화산섬이지만 울릉도는 제주도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생존을 위한 투쟁 화산 폭발로 생성된 뜨겁고 척박한 땅 위에서 처음에는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토양도 없거니와 물과 양분도 부족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들이 떠오른다. 현재 울릉도에서 자라는 특산식물의 씨앗은 어디서 왔을까? 울릉도에 자리 잡은 개척종들은 하나의 계통일까, 아니면 두 개 이상의 계통이 종 분화에 관여했을까? 그리고 개체군 내에서 종 분화의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보자. 울릉도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선모시대는 1997년 신종으로 발표된 식물이다. 개체 수가 많지 않아 보호가 필요하다. © 전병화(Jeon Byeong Hwa) 섬노루귀는 한반도 내륙에 분포하는 노루귀보다 잎이 3배 이상 크고 씨방 및 열매에 털이 없는 특징이 있다. © 정진안(Jin Ahn Joung) 처음에는 주로 이끼류, 지의류 같은 생물들이 바위 위에 정착했을 것이다. 이들이 바위를 분해하고 유기물을 축적하면 토양이 조금씩 만들어진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가까운 대륙에서 씨앗들이 바람이나 해류를 통해 흘러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또 새들도 씨앗의 운반책이 되었을 것이다. 대륙에서 건너온 선구종들은 매우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 분명하다. 처음 울릉도에 도달한 식물들은 씨앗이나 포자가 작고 가벼우며 생존력이 강했을 것이다. 대부분 바위 지형인 데다가 건조한 대기와 고온, 강풍 등으로 주변 환경이 열악했으니 생존을 위해 뿌리가 잘 발달했을 것이다. 또한 짝이 없어도 번식 가능한 자가 수분 능력이나 무성 생식 등으로 자손을 널리 퍼뜨릴 수 있도록 적응력을 키웠을 것이다. 생존에 성공한 작은 수의 개체들은 정착지 주변 공간으로 확장해 개체군을 형성했을 터이고, 어떤 한 종이 개척에 성공하면 다른 종들이 연이어 들어와 또 정착을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이렇게 초본류가 자라기 시작하고, 죽은 식물체가 쌓이는 과정이 반복되면 토양이 두터워지고 비옥해진다. 그리고 섬 전체가 초기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후에는 작은 나무들과 함께 곤충, 조류, 소형 포유류가 살기 시작하면서 먹이 사슬이 형성되고 생태계가 조금 복잡해진다. 그렇게 해서 점점 숲이 커진다. 울릉도는 오랜 세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생태계가 안정화되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런데 극소수의 개체들이 정착에 성공하더라도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의 특성상 개체군의 유전자 다양성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한정된 지역 안에서 생존한 개체군들은 긴 지질학적 시간이 지나면서 돌연변이, 유전적 부동(浮動), 자연선택 등을 통해 새로운 형질들을 얻게 되고, 처음의 선구종들과는 형태학적으로 매우 다른 새로운 종으로 분화되었다. 추산쑥부쟁이는 울릉도 추산리 해안가에서 발견되어 2005년 신종으로 발표되었으며, 이름도 지명에서 유래했다. 자연 교잡종이라는 특징이 있다. © 신항숙(Shin Hangsuk) 너도밤나무는 경사가 가파른 울릉도 산지에서 잘 자라고, 산림 생태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나무이다.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는 수종이다. © 김홍주(Hongju Kim) 울릉도만의 독특한 양상 식물분포학적으로 울릉도는 매우 특이한 곳이다. 우선 울릉도에는 동백나무(Common camellia)나 후박나무(Thunberg’s bay-tree) 같은 난대성 상록활엽수와 만병초(Short-fruit rosebay) 같은 한대성 식물이 함께 자란다. 이러한 공존이 가능한 이유는 울릉도가 해양성 기후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위도상에 있는 강릉이나 포천 등 다른 내륙 지방과 달리 울릉도는 난류의 영향을 받아 온난다습한 기후를 보인다. 그리고 울릉도에는 한반도 내륙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식물들이 대규모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태하마을의 너도밤나무(Engler’s beech) 군락지가 있다. 낙엽활엽수인 너도밤나무는 일본 열도에서도 생육한다. 그러나 울릉도의 너도밤나무는 잎이 타원형이고,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으며, 꽃차례가 다소 짧은 편이라 일본산 너도밤나무와 다르다. 또한 수피가 회색빛으로 약간 갈라지는 것도 차이가 난다. 태하마을에는 너도밤나무와 함께 울릉솔송나무(Ulleungdo hemlock)와 섬잣나무(Ulleungdo white pine) 군락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우산마가목은 성인봉 정상부 주변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수종이다. 2014년 신종으로 발표되었다. © 권수현(Su Hyun Kwon) 또한 울릉도에는 환경에 맞게 진화된 고유종이 많다. 울릉도 생태계를 살펴보면, 많은 식물들이 육지의 것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생김새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물의 진화에는 방향성이 있다. 왜성화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형화로 진행되기도 한다. 울릉도는 후자의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울릉도 전 지역에서 자라는 섬나무딸기(Ulleungdo raspberry)는 내륙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산딸기(Korean raspberry)가 조상이다. 생김새는 둘이 비슷하지만, 섬나무딸기가 키가 더 크고 잎과 꽃도 대형이다. 크기 외에 다른 점이 더 있다. 울릉도에는 사슴이나 산토끼 같은 초식성 포유동물이 없기 때문에 섬나무딸기가 외부 위험에 방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육지의 산딸기와 달리 섬나무딸기는 줄기에 가시가 없다. 섬나무딸기는 최소 두 번의 독립적인 진화 과정을 거친 것으로 밝혀졌다. 섬노루귀(Ulleungdo liverleaf)도 그렇다. 내륙에 분포하는 노루귀(Asian liverleaf)가 소형에 낙엽성인 것과 달리 섬에서 지리적 격리를 통해 진화한 섬노루귀는 잎이 노루귀보다 3배가량 크고 상록성이다. 한편 추산쑥부쟁이(Chusan aster)는 유전자 교류를 통해 잡종화 현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진화의 또 다른 현주소를 보여주는 식물이다. 추산쑥부쟁이는 울릉도 해안가에서 섬쑥부쟁이(Ulleungdo aster), 해국(Seashore spatulate aster)과 함께 섞여서 자란다. 꽃 크기, 잎 모양, 총포 모양 등이 섬쑥부쟁이와 해국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어 두 종들의 자연 교잡종으로 추정된다. 추산쑥부쟁이는 2005년 추산마을에서 처음 발견되어 신종으로 발표되었다. 가을에 흰 꽃이 피는 울릉국화는 개체 수가 많지 않아 천연기념물로 보호된다. 나리분지에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 김정아(Kim jung a) 생물 다양성의 지표 식물 분류학자들은 새로운 종으로 추정되는 식물을 발견했을 때 기존의 문헌과 표본을 대조해서 뚜렷한 형태학적 차이점이 있으면 신종으로 발표한다. 울릉도 식물에 대한 연구는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대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Takenoshin Nakai)에 의해 처음으로 진행됐다. 앞서 언급한 너도밤나무 등 목본류와 섬나무딸기, 섬노루귀 등 초본류는 100여 년 전 당시 나카이 다케노신에 의해 학계에 신종으로 보고되었다. 그런 연유로 울릉도 특산식물임에도 불구하고 학명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가 신종으로 발표한 식물들은 이 외에도 수십 종이 더 있다. 말오줌나무는 울릉도 산지 및 해안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해풍에 견디는 힘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김홍주(Hongju Kim)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됐는데, 이 시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대체로 식물의 분류학적 측면에서 연구가 수행됐다. 이후에는 생태학적 측면의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1990년도에 시작한 휴먼 게놈 프로젝트의 눈부신 기술 발전 덕분에 유전자 분석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식물 분류학 분야에도 접목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울릉도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에 대한 연구도 보다 심화되고 있다. 섬기린초는 5월에서 10월까지 노란 꽃이 모여서 핀다. 울릉도 암석지를 비롯해 독도에서도 볼 수 있다. © 권수현(Su Hyun Kwon) 예컨대 1922년 나카이에 의해 발견된 섬초롱꽃(Korean bellflower)은 울릉도 전역에서 자라고 있는 특산식물이다. 섬초롱꽃의 조상종은 대륙의 초롱꽃(Spotted bellflower)이다. 몇 년 전 섬초롱꽃이 독도에서도 발견되었다. 이후 국립생물자원관이 독도산 섬초롱꽃의 엽록체 유전자형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독도에 서식하는 섬초롱꽃이 울릉도 섬초롱꽃의 기원에 징검다리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처럼 울릉도의 특산식물들은 하나의 종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방식이 아닌, 원래의 종이 새로운 종으로 바뀌는 진화 과정을 대부분 보인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드문 독특한 사례이다. 울릉도에 사는 특산식물 중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적색목록종(red lists)에는 섬개야광나무(Ulleungdo cotoneaster), 섬시호(Ulleungdo hare’s ear) 등을 비롯해 많은 수가 등재되어 있다. 이처럼 울릉도 특산식물은 단지 한 지역이나 국가의 자원을 넘어,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서도 의미가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생지 보호와 관리, 종 보전 및 증식, 위협 요인 해소 등 다양한 방면에서 협력이 필요하다.

동해의 수려한 화산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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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수려한 화산섬 울릉도는 경상북도 동쪽 해상에 있는 화산섬이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투명한 바다가 어우러져 한반도 내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2012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섬 내 23곳이 지질 명소로 보호되고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지역이기도 하다. 해발 약 450m인 송곳산은 울릉도 중앙에 자리한 성인봉 줄기의 최북단부에 있다. 바다에 인접해 있어 해상에서 더욱 웅장하게 보이며, 전문 산악인들에게 명소로 알려져 있다. 해심이 깊은 동해상에 위치한 울릉도는 신생대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용암이 분출돼 형성된 섬이다. 우리나라 가장 동쪽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의미가 큰 섬이다. 독도를 비롯해 죽도, 관음도 등 크고 작은 수십 개의 부속 섬을 거느리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하며 섬 가운데 솟아 있는 해발 986.5m의 성인봉을 기준으로 울릉읍, 서면, 북면으로 나뉘어 있다. 이 섬의 인구는 현재 9천 명이 약간 넘는다. 1970년대까지는 약 3만 명 정도 살고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 약 1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후에도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2021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늘고 있다. 뭍으로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거나 울릉도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관음도는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야생 식물의 천국이라 불린다. 2012년 보행교가 설치되어 울릉도 부속 섬 중 유일하게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고대의 흔적 울릉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첫 고고학적 조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서 이뤄졌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1957년과 1963년 두 차례 유적 발굴에 나섰는데, 상당수 고분이 이미 도굴되고 파괴된 상태였다. 당시 발견된 고분은 모두 87기로, 대부분 통일신라(676~935) 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의 경사지에 위치한 이 고분들은 시신을 넣은 석곽 위에 흙을 덮지 않고 돌을 쌓아 올린 적석총 형태이다. 정면에는 입구가 뚫려 있다. 이는 섬의 지형과 재료를 최대한 이용한 것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울릉도만의 고유한 묘제 양식이다. 그로부터 30여 년 만에 울릉도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다시 이루어졌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1997년부터 이듬해까지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해 울릉도 내 산재한 고분군과 유물들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단은 고인돌로 추정되는 3기의 유적을 새롭게 발견했으며, 토기 파편과 마제 석기도 발굴했다. 울릉도의 대표적 관문인 도동항은 포항과 묵호에서 출발한 여행자들이 도착하는 곳이다. 주요 관공서와 학교들이 밀집해 있어 섬 내에서 가장 번화하다. © 한국관광공사 이 발견은 울릉도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다. 우리나라에서 울릉도에 대한 기록은 12세기에 간행된 『삼국사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역사서에는 6세기 초 신라(B.C 57~A.D 935)가 울릉도에 있던 우산국이라는 나라를 정벌하였으며, 해마다 우산국이 신라에 토산물을 바치기로 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를 통해 우산국이 신라 문화권으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울릉도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을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된 6세기 초반으로 보았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박물관 조사팀은 출토된 유물들을 검증한 결과 울릉도의 역사가 6세기 이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재는 이후 조사에서 관련 유물이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 등 시기를 확신하기 어렵고,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조심스럽게 유보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내용이 허구가 아니라면 6세기 이전 울릉도 원주민들의 흔적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15세기에 편찬된 역사서 『고려사』에 의하면 우산국은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여진의 침략을 받아 패망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고려의 관리들이 울릉도에 수시로 파견되었기 때문이다. 1018년 11월 8일 자 기록에는 여진의 침략으로 울릉도 백성들이 농사일을 못 하게 되자 나라에서 농기구를 하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고려 중기 이후 조정에서 백성들을 육지로 이주시키자는 논의가 있었고, 실제 이주를 시도한 기록을 근거로 우산국 패망 이후 울릉도가 상당히 황폐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야 지대인 나리분지에는 옛날 사람들의 주거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집들이 남아 있다. 사진은 1940년대 건립된 너와집으로, 지붕을 너와(얇은 나뭇조각)로 이은 일자형 건축물이다. 이주 정책 조선 태종(재위 1400~1418년) 때도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탓에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고 섬을 비우는 정책을 폈다. 대신 2~3년에 한 번씩 섬의 현황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지방군 지휘관을 파견했다. 거친 동해를 건너야 하는 울릉도행 뱃길은 녹록하지 않았다. 1613년, 삼척 지역의 지휘관 김연성은 군사 180여 명을 이끌고 울릉도 뱃길에 올랐으나 거친 풍랑을 만나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군사들과 함께 익사했다. 1694년에는 이준명이라는 관리에게 울릉도 순찰이 맡겨졌으나, 배를 타기가 두려워 임무를 회피했다는 기록이 있다. 1760년에는 비슷한 이유로 자신을 차라리 파직해 달라는 문서를 조정에 올린 이도 있었다. 울릉도 남쪽의 통구미마을은 깊고 좁은 골짜기 사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서쪽 절벽은 향나무 자생지로, 향나무 원종이 자라고 있어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던 중 1882년 고종(재위 1863~1907)은 울릉도를 계속 비워 둬선 안 된다는 생각에 이규원을 현지로 보내 섬의 상황을 낱낱이 보고하도록 했다. 그 시기 이규원은 지금으로 치자면 군 사단장급 장성에 해당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10여 일 동안 울릉도 전역과 해안을 검찰한 뒤 보고서와 지도를 작성해 올렸다. 당시 그가 남긴 보고서가 『울릉도 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다. 이규원은 고종에게 하직 인사를 한 뒤 출발해 울릉도를 조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2개월의 여정을 일기에 담았다. 울릉도 체류 당시의 기록엔 매일의 날씨와 지형, 식생, 만난 사람들, 느낀 점 등을 상세히 적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종이 그해 12월 ‘울릉도 개척령’을 내렸고, 이듬해 16가구 54명을 섬으로 이주시키며 울릉도 재개척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규원은 울릉도에 머무는 동안 총 129명을 만났다. 이 가운데 전라도 출신이 103명으로 전체의 80% 수준이었다. 당시 섬에서 접촉한 전라도 사람들은 거문도를 비롯해 여러 지역 출신이었는데 이들은 울릉도에서 주로 배를 만들거나 미역, 전복 같은 해산물을 채취했다. 이들에게 울릉도행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집을 짓고 배를 만들기 위해선 목재가 필수였으나, 전라도에선 벌목이 금지돼 있었고 거문도 일대는 큰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이었다. 결국 그들은 울창한 숲과 해산물이 풍부한 울릉도를 찾게 됐고, 대대로 육지와 섬을 오가는 항해를 이어왔던 것이다. 특히 거문도 어민들에게 울릉도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거문도 뱃노래 중 < 술비소리 >는 밧줄을 꼬면서 부르는 노동요인데, 가사에 그들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 울릉도로 나는 간다 / (중략) 울릉도를 가서 보면 / 좋은 나무 탐진 미역 / 구석구석 가득 찼네.” 재개척 이후 섬으로 이주한 이들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자연에 순응하며 울릉도만의 독특한 문화를 일궈왔다. 섬사람들은 굶주림을 이기기 위해 옥수수와 감자를 주식으로 삼고 산나물로 끼니를 이으며, 울릉도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를 만들었다. 1910년쯤부터는 이곳의 대표 특산물인 오징어를 잡기 시작했다. 오징어잡이와 함께 조선 산업도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해 왔다. 약 150m 높이의 대풍감 절벽 위에 세워진 향목(Hyangmok) 전망대에서는 울릉도 서쪽 바다가 장대하게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다. 대풍감 왼쪽 절벽은 언론에서 우리나라 10대 비경 중 하나로 꼽은 곳이다. © 한국관광공사 바다를 고즈넉하게 감싸 안고 있는 천부항은 과거에 목재를 운반하던 항구였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8월이면 오징어 축제가 열린다. 해안 절경 이규원이 일기에 기록한 ‘장작지포’는 사동의 옛 이름이다. 장작지포는 ‘자갈밭이 길게 펼쳐진 포구’란 의미다. 지금 여행자들이 울릉도에 가려면 포항, 묵호, 후포, 강릉에서 여객선을 타고 출발해야 하는데 사동은 그중 포항과 후포에서 도착한 배가 정박하는 곳이다. 북면 현포마을의 이름은 당시에 ‘흑작지’였다. 검은 자갈로 이뤄진 해변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울릉도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이름을 붙인 정감 어린 지명이 많다. 울릉도 동쪽 절벽 아래 위치한 와달리도 마찬가지다. 경사가 심한 지역이라 돌이 ‘와달와달’ 굴러 내린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서면 구암마을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학포항 방면으로 가다 보면 수층교가 나온다. 복잡한 경사면 때문에 구불구불 만들어진 도로인데, 옛날엔 물이 층층이 흐른다고 해서 ‘물칭칭’으로 불렸다. 도동항에서 저동항 촛대바위까지는 행남해안산책로가 연결되어 있다. 울릉도 지질 명소 중 하나인 이곳에서는 해안 침식으로 만들어진 동굴과 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CNN이 한국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관광지로 선정한 바 있다. 한편 울릉도는 바닷속 화산 분출로 이뤄진 섬인 만큼 기암절벽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절경이 도처에 이어진다. 어딜 가더라도 허투루 지나칠 풍경이 없다. 그래도 해안 경관의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북면이다. 현포항에서 천부항을 지나 섬목까지 이어지는 북면 해안은 울릉도에서 가장 웅장하고 다채롭다. 수천 개 돌판을 쌓아놓은 듯한 노인봉과 하늘을 찌를 듯 뾰족이 솟은 송곳봉, 코끼리 모양의 공암, 세 선녀의 전설을 간직한 삼선암, 두 개의 해식동굴이 뚫려 있는 관음도 등 울릉도를 대표하는 해안 절경이 대부분 이곳에 있다. 바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빛깔을 가졌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천부항 인근 언덕에 서면 송곳봉과 공암이 바다와 함께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서북쪽 끝 태하리와 현포리를 잇는 고갯마루에서, 130㎞나 떨어진 한반도 동쪽 산줄기가 손에 잡힐 듯 성큼 다가오기도 한다. 130여 년 전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 출발점이었던 경상북도 울진에서 강원도 삼척 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다. 울릉도에서 육지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10일 정도에 불과하다. 주로 겨울철이나 태풍이 지나간 직후 해가 질 무렵 육안으로 볼 수 있다. 공암은 추산수력발전소 앞 해변에서 북쪽으로 약 1.5㎞ 정도 떨어진 바다에 있다. 10m 높이의 해식 터널은 소형 선박이 왕래할 수 있으며, 스킨스쿠버들에게 최고의 포인트로 인기가 높다.

고색창연한 도시의 젊은 감성

Features 2025 SPRING

고색창연한 도시의 젊은 감성 경주가 그저 고풍스럽기만 한 도시는 아니다. 감성적인 카페와 소품 가게, 야경 명소 등을 비롯해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놀거리도 가득해 젊은 세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 경주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힙한’ 도시로 변신 중이다. 황리단길은 경주의 고풍스러운 정취와 트렌디한 감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장소로, 경주 여행 코스의 메카로 불린다.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해 주말이면 젊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국관광공사 경주 구도심 남쪽에 위치한 황남동은 무덤이 지천이다. 이곳은 경주역사유적지구 중 신라 왕과 왕비, 귀족들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 대릉원지구에 속한다. 주변에는 계림과 월성 같은 유적지를 비롯해 한옥마을이 인접해 있다. 그런 까닭에 황남동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각종 건축 행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오랫동안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이런 황남동이 지금은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경주시가 올해 2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설 명절 기간 경주의 주요 관광지를 방문한 관광객은 약 54만 명이다. 여러 관광지 중 가장 방문율이 높은 곳은 약 35만 명이 찾은 황리단길이었다. 불국사 9만 7,621명, 대릉원 5만 3,881명, 첨성대 2만 6,953명, 봉황대 1만 1,422명 등과 비교해 볼 때 황리단길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월성 지구는 신라의 역대 왕들이 거주하던 궁궐이 있었던 자리이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터만 남아 있다. 봄이면 유채꽃이 만발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높다. ⓒ경주시, 사진 박수용 최신 트렌드의 집합소 황리단길은 경주의 최신 트렌드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황리단길은 공식 명칭이 아니다. 내남사거리부터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 700미터 남짓 이어지는 이 길의 정식 명칭은 ‘포석로’이다. 포석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황리단길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황리단길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중후반 무렵이다. 상권 활성화를 위한 상인들의 부단한 노력과 경주시의 지원에 힘입어 개성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섰는데, 기존에 있던 1960~70년대의 낡은 건물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경관이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서울 이태원의 소문난 명소 ‘경리단길’을 빗대 황리단길이라는 별칭이 생겨났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과거와 현대의 절묘한 하이브리드다.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만 놓고 보면 전주 한옥마을과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천천히 걷다 보면 맛이 다르다. 경주만의 DNA가 느껴진다. 황리단길의 상점 거리는 500번 버스가 지나는 도로가 중심이다. 대릉원 담벼락을 돌아 제과점과 기념품숍이 보이기 시작하면 딱 거기가 시작점이다. 한옥 호텔 황남관까지 이르는 길에는 주전부리를 파는 가게, 개성 있는 카페와 빵집, 기념품이나 신기한 물건을 파는 잡화점, 사진관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메인 도로 옆으로는 군데군데 좁은 골목이 가지처럼 뻗어 있다. 골목 안에는 술집과 레스토랑, 사주 카페, 한옥 게스트하우스, 서점 등이 빼곡하게 포진해 있다. 혈관처럼 고불고불 뻗은 샛길을 탐험하는 맛이 끝내준다. 마치 일본 규슈의 유후인 마을이나 동유럽 옛 도시의 플라자마켓 거리를 빼닮았다. 황리단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즐기는 방식도 다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그냥 마시는 법이 없다. 인증샷이 필수라서 사진 먼저 찍는다. 마시고 먹는 건 그다음이다. 톡톡 튀면서 앙증맞은 가게를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황리단길 투어를 한층 재미있게 해주는 요소는 주전부리다. 경주의 트렌디한 간식거리가 이곳에 다 모여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십원빵이다. 불국사 다보탑이 그려진 십 원짜리 동전을 재현한 빵으로,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 경주의 문화유산을 모티프로 한 도굴빵도 인기다. 이 외에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이색적인 디저트가 많다. 작지만 강력한 페스티벌 황리단길에서는 무려 15만 명이 모이는 축제 ‘황금 카니발’도 벌어진다. 이 행사는 2022년 ‘황남동 카니발’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어 2024년 황리단길 인근 지역까지 장소를 확장하면서 명칭을 바꾸었다. ‘우리 동네 작은 페스티벌’을 표방하는 이 축제는 지역 내 노포들이 주요 무대이다. 카페, 식당, 게스트하우스, 미용실, 주차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소규모 공간에서 진행하다 보니 코앞에서 뮤지션들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 황금카니발은 황남동 일대에서 진행되는 소규모 음악 페스티벌로 국내 최고의 인디 밴드들과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친다. 2024년 3회를 맞이한 이 행사는 도심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황금카니발 무대는 작지만 출연하는 뮤지션들은 국내 정상급 밴드들이다. 지난해에는 김창완밴드, 잠비나이, 추다혜차지스 등이 멋진 공연을 펼쳤다. 고즈넉한 한옥 북카페를 록음악으로 물들인 크라잉넛과 갤럭시익스프레스의 무대도 방문객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황금 카니발은 공연뿐 아니라 대중음악사를 주제로 한 토크쇼, 플리마켓, 전국 유명 브루어리의 수제 맥주 시음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곁들여졌다. 고도(古都)로만 알려진 경주에서 ‘현재 시제’를 만날 수 있어 흥미로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황금 카니발은 동시대 음악이 지역의 역사와 만나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스릴 만점의 놀이기구 경주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경주월드도 있다. 이곳의 연간 방문객은 110만 명으로,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와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에 이어 국내 3대 테마파크로 꼽힌다. 경주월드는 보문관광단지에 있다. 1970~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이곳에서 젊은 시절 오리배를 타고 놀며 데이트를 즐겼다. 지금의 20~30대 연인들은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특히 경주월드의 대표적 어트랙션인 드라켄은 압권이다. 63미터에 달하는 이 기구는 고층 빌딩 21층에 해당되는 높이에서 수직 하강한다. 높이로는 국내 놀이기구 중 원톱이다. 드라켄을 타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올 정도로 인기 있다. 최고 순간 시속은 117km/h, 경사각은 90도에 달한다. 운행 시간 2분 동안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전 세계 롤러코스터의 랭킹을 집계하는 데이터베이스닷컴이 조사한 2022년 랭킹에는 세계 11위에 올라 있다. 보문관광단지에 위치한 경주월드는 1985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개장한 놀이공원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드라켄이다. 63m 높이에서 90도로 수직 하강한다. ⓒ경주월드 파에톤도 무시무시하다. 온라인 패널 서비스 패널나우가 2023년 10월 3일부터 10월 8일까지 전국 3만 2,2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에서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 톱10’ 조사 결과 5위에 올랐다.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 롯데월드의 자이로스윙과 어깨를 견준다.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들이 더 있다. 360도로 회전하다가 거꾸로 매달리는 크라크도 그중 하나다. 최소한 40분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타야 하는 명물이다. 급격한 각도 변화와 무중력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토네이도도 있다. 비교적 최근에 설치된 스콜&하티는 아시아 최초의 싱글 레일 롤러코스터이다. 타고 있으면 숨이 멎는 느낌이다. 보문관광단지에서 자동차로 약 15분 거리에는 야경 명소가 있다. 신라 시대 천문대인 첨성대, 그리고 동궁과 월지이다. 야경을 즐기며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이들로 언제나 북적거리는 곳들이다.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들 경주엑스포대공원은 최근 들어 유명해진 핫플레이스다. 1988년 국제박람회를 계기로 조성된 이곳은 현재 전시·체험·공연 등 다양한 경험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젊은 세대가 이곳에 열광하는 이유는 공원의 상징인 경주타워의 독특한 외관 때문이다. 82미터의 아찔한 높이를 자랑하는 타워는 중심부가 뻥 뚫려 있는 파격적인 설계를 보여준다. 타워의 중심부는 7세기 건립되었던 황룡사 구층 목탑의 실루엣을 음각으로 디자인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주타워를 “탑을 품은 건물”로 부른다. 이 아이디어를 낸 이는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다. 사라져 버린 황룡사 구층 목탑을 현대식 건물에서 되살리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담겼다. 꼭대기 층인 전망대에서는 보문호를 중심으로 자리한 보문관광단지, 경주월드 등 주변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념관도 놓칠 수 없다. 현무암을 이어 붙이듯 쌓아 올린 독특한 외관은 주상절리의 형상이다.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황금빛 격자와 3개의 언덕 형상은 각각 신라 금관과 고분을 상징한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의 백미는 솔거미술관이다. BTS 리더 RM이 방문해 화제가 됐던 곳으로, 아미들의 성지 중 하나다. 현대적인 수묵화로 널리 알려진 박대성 화백의 작품 830여 점이 이곳에 소장돼 있다. 한편 따뜻한 봄날에는 자전거 공원 펌프트랙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젊은이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곳은 통상적인 자전거 공원이 아니다. 면적 7,800㎡ 규모로 전국 최대이며, 난이도별로 코스가 갖춰져 있다. 다양한 형태의 요철을 통과하면서 기술 연마와 더불어 스릴을 즐길 수 있다. 최고의 매력은 무료라는 점이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은 1998년 국제박람회 행사장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미술관, 박물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경주엑스포대공원 내에 자리한 경주타워는 신라 시대 목조 건축물인 황룡사 구층 목탑을 형상화한 건물이다. ⓒ경주시, 사진 유영님

왕실 제사상에서 길거리 음식까지

Features 2025 SPRING

왕실 제사상에서 길거리 음식까지 한 나라의 음식 문화는 수도를 중심으로 꽃핀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만들어 냈다. 이런 동력은 근현대에도 이어져 경주만의 풍요로운 먹거리 문화를 창출했다. 경주 여행에서 미식이 필수인 이유이다. 하우스오브초이는 경주의 명문가 최부자댁의 후손이 설립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한식 파인 다이닝 ‘요석궁1779’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문의 내림 음식을 재해석한 정갈하고 품격 있는 한식을 선보인다. ⓒ 하우스오브초이 대릉원지구에 있는 신라 왕족 무덤 중 하나인 서봉총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때는 1920년대이다. 일제강점기였던 이 시기에는 유물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봉총의 학술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6년부터 이듬해까지 2년간 이 무덤의 재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로 2020년 < 서봉총 재발굴의 성과: 영원불멸의 성찬 >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500년 전 신라 왕족의 제사 음식이었다. 서봉총에서 돌고래 뼈와 복어 뼈, 성게, 민어 등이 발견되면서 제사 음식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제사 음식을 담았던 사각형 합(盒)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아하고 세련된 모양새였다. 교촌마을은 신라 최초의 국립대학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 최부자 고택을 비롯해 조선 시대의 전통 한옥이 많이 남아 있어 고즈적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 한국관광공사 양반가 내림 음식 정성을 다해 차리는 제사상에 귀한 식재료가 올라갔다면, 평상시 왕실 밥상은 쌀과 나물, 고기나 생선 등으로 구성된 균형 잡힌 소박한 식단이었다. 왕실 밥상인데도 지천으로 흔한 나물이 빠지지 않은 데엔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불교의 영향이 컸다. 스님들의 일상식인 사찰 음식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용도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수행식이다. 육식을 금한 사찰 음식의 주재료는 나물이었다. 그러한 영향으로 지금도 경주의 여러 한식당들은 나물 위주로 맵고 짜지 않은 담백한 음식을 내놓는다. 조선 시대 지배 계급인 양반가의 음식도 경주의 식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양반가 음식은 같은 식재료를 사용해도 지역별로 조리법이 달랐다. 예컨대 닭고기 요리라도 전라도 양반가와 경상도 양반가의 맛이 달랐다. 가풍이 맛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양반가 음식은 종가를 중심으로 후대로 이어졌다. 교동법주는 최부자댁에서 대대로 빚어 온 전통 술이다. 토종 찹쌀과 누룩으로 만드는 이 술은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곡주 특유의 향기가 난다. 맛은 단맛과 약간의 신맛이 난다. ⓒ 국가유산청 경주를 대표하는 최고 양반가는 이른바 ‘경주 최부자댁’으로 불리는 가문이다. 조선 시대부터 12대에 걸쳐 부를 축적한 이 집안은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을 하며 자금도 지원했다. 12대 후손 최준(1884~1970)은 가문의 모든 재산을 대학 설립에 바쳤다. 그래서 경주 최부잣집에는 항상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칭송이 따라다닌다. 후손 최재량 씨는 2024년 집안 음식을 정리한 책 『경주 최부자 종가 충의당의 음식』을 며느리인 이영주 씨와 함께 펴냈다. 충의당은 이 가문의 출발점이 된 조선 시대 무신 최진립(1568~1636)이 거주했던 가옥의 이름이다. 책에는 이 댁 제사 음식부터 내림 음식까지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제사상에는 가로세로 길이까지 정확하게 재서 정갈하게 조리한 문어, 조기, 쇠고기 등의 요리가 올랐다. 나물 요리도 재료가 콩나물,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 등 다양했다. 한식의 기본인 장도 정월 장, 보리쌀 된장, 찹쌀고추장 등 여러 가지였다. 계절의 변화에 조응해 만든 음식은 더없이 근사한 건강식이었다. 봄 내림 음식엔 고사리 보리밥, 가자미 미역국, 쑥버무리, 완두콩죽 등이 있다. 여름엔 보리 열무김치, 청각 홍합 냉국, 오리 백숙 등이 있다. 가을엔 녹두전과 버섯전골 등이, 겨울엔 갈치식해와 생대구탕 등이 내림 음식이다. 하나같이 품격 넘치는 음식들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식의 진수가 이 댁 밥상에 있다. 음식의 품격 경주 교동엔 한정식 레스토랑 ‘요석궁 1779’가 있다. 한정식은 한식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내는 정식을 말한다. 한국의 전통 밥상이다. ‘요석궁’은 신라 시대 사람인 요석공주가 살던 궁터에 최준의 첫째 동생인 최윤이 분가하여 지은 집 이름이다. 지금 그 후손들이 최씨 가문의 내림 음식을 기본으로 한 한식을 이 레스토랑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한국 전통 가옥에서 맛보는 한정식이다. 운치가 미식의 반일 정도로 근사하고 격조가 높다. 그런가 하면 경주를 대표하는 술도 경주 최부자댁과 관련 있다. 명주로 알려진 교동법주는 최씨 가문의 3대손인 최국선이 조선 숙종 때 낙향해 처음 빚은 술이다. 그는 궁중음식을 관장하는 기관 사옹원의 관리였다. 당시 이 집 마당 우물물이 쓰였다는데, 물의 온도가 사계절 변함없이 같고 맛이 좋았다고 한다. 주재료는 토종 찹쌀이다. 교동법주는 최씨 가문의 가양주다. 가양주란 집에서 만든 술을 말하는데, 양반가는 집마다 술을 빚었다. 그 맛도 다 달랐다. 집마다 레시피가 달랐다는 소리다. 소중한 자산이었던 레시피는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교동법주는 300년 넘는 역사와 뛰어난 맛 등을 인정받아 1986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나라의 크고 작은 행사에 만찬주로 자주 오르는 술이다. 현재 이 가문의 일원인 최경 씨가 교동법주 기능보유자로 맥을 잇고 있다. 교동법주 체험 행사나 시음회마다 내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몰린다. 경주에는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전통 조리법대로 만들어 내놓는 한정식 가게가 많다. 보통 입맛을 돋우는 전채 요리를 시작으로 활어회, 갈비찜, 보리굴비 구이 등의 요리에 각종 밑반찬이 딸려 나온다. ⓒ 경주시 다채로운 길거리 음식 경주에 고급 한식당만 있는 건 아니다. 경주 별미 중에는 회국수가 있다. 말 그대로 국수에 회가 들어간 음식이다. 다른 말로 놋전국수라고 한다. 고급 식기인 놋그릇이 많이 생산되던 동네의 주민들이 먹던 음식이다. 회국수는 경주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다. 삶은 소면에 채 썬 채소와 김 가루, 참가자미 회를 올린 후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 국수다. 사진 가운데가 회국수이다. ⓒ Ya Happy Project 경주를 대표하는 국수엔 밀면도 있다. 서울에 평양냉면이 있다면 경주엔 밀면이 있다. 평양냉면이 메밀가루로 면을 만든다면, 밀면은 그보다 저렴한 밀가루로 제면한다. 밀가루가 재료라면 일반 국수와 뭐가 다른지 의문을 표할 이들도 많겠지만, 면만 다를 뿐 맛이 평양냉면집과 비슷하다. 평양냉면에서 면만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명성이 높은 곳은 1998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밀면 전문점 ‘현대밀면’이다. 한국판 미쉐린 가이드로 불리는 식당 평가서 ‘블루리본 서베이’에 10년 연속 맛집으로 선정됐다. 쫄면 명가도 빼놓을 수가 없다. 분식점 대표 메뉴인 쫄면은 탱탱한 면과 달고 매운 양념이 버무려져 혀를 달구는 음식이다. 몇 젓가락만 집어먹어도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다. 요리 방송에도 소개된 바 있는 ‘경주명동쫄면’이 유명하다. 한편 어느 지역이나 그렇듯 경주에도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특히 황오동 해장국 골목에 역사가 오래된 해장국 노포들이 줄지어 있다. 이 거리에서 대표 식당은 ‘팔우정해장국’이다. 실내는 소박하고 음식은 푸짐한 정겨운 식당이다. 채소에 밥과 고기 등을 싸먹는 쌈밥은 한식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음식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 오랫동안 즐겨온 독특한 먹거리다. 경주에도 맛깔난 쌈밥 전문점이 있다. 그중 ‘별채반교동쌈밥’은 경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음식을 만든다. 10가지가 넘는 반찬이 나온다. 전국적인 유명세로 여행객이 많이 몰린다. ‘이풍녀 구로쌈밥’도 가볼 만하다. 생선구이, 잡채 등 15가지가 넘는 반찬과 다양한 종류의 쌈 채소가 나온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황리단길로 불리는 황남동과 인근 골목엔 향긋한 음료와 달콤한 디저트 등을 파는 세련된 공간이 많다. 이곳에는 경주를 찾은 여행객들 대부분이 구입하는 황남빵이 있다. 1939년 황남동에서 만들기 시작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빵의 겉을 만들고, 삶아서 으깬 팥으로 속을 채우는데 달지 않고 담백하다. 이른 아침 찌자마자 판매하는 따끈한 빵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 별미다. 경주의 기념품 같은 빵이다. 경주 향토 음식의 대명사가 된 황남빵은 여행자들이 반드시 사가는 간식거리이다. 1939년 황남동의 한 빵집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1994년 경주의 향토 전통 음식으로 지정되었다. ⓒ 황남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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