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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WINTER

기획특집

부산 : 시와 열정의 항구 기획특집 3 자갈치 시장, 소음과 침묵의 대화

부산의 대표적 전통 시장인 자갈치 시장은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이 시장이 위치한 남포동은 주먹만 한 굵은 자갈들이 해안가에 깔려 있는 아름다운 어촌이었다. 어민들이 작은 고깃배로 잡은 해산물을 파는 노점상들이 해안 일대에 하나둘 생기면서 시장이 형성되었고, 1970년대 초반에 정식 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부산항 남쪽에 위치한 자갈치시장은 총 4,841㎡ 면적의 갈매기를 상징하는 건물로 건물 안팎에 700곳이 넘는 점포가 밀집해 있다. 1층에는 해산물 점포, 2층에는 식당이 있다. 자갈로 덮인 어촌 해안에서 오랫동안 난전을 이루던 상인들이 자금을 모아 1972년 정식 시장으로 개장했다.

얼마 전 2020 부산비엔날레 전시 감독으로 선임된 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이라는 도시 공간 자체를 전시장으로 꾸미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그 주인공으로 자갈치 시장을 꼽았다. "이 시장의 펄떡이는 에너지, 큰 선박과 기계들이 움직이는 항구, 좁고 경사진 골목들”과 “사람들이 생선을 손질하고 사고파는 모습이 ‘무대 뒤의 삶’을 보는 것처럼 흥미로웠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조직위원회는 그가 역동적인 삶의 현장에서 부산의 정체성을 찾아낸 데 높은 점수를 주었다. 또한 예술을 무대 밖으로 끌어내, 부산 사람들의 생활 공간과 함께하는 참여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를 통해 이 도시를 재발견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 점도 높이 평가했다. 덴마크 오르후스에서 온 예술 감독이 고작 몇 번의 부산 방문으로 인구 340만 명이 넘는 이곳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이들을 설득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읽어낸 것이다.

그가 어떻게 부산을 만났을지 상상해 본다. 이 도시가 그만을 위해 특별히 예지력을 주지는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는 평범한 여행자로 시작해 자신의 편견을 부단히 수정하며 부산에 대한 안목을 넓혀갔을 것이다. 이제 그가 지나갔음 직한 길을 따라가 보겠다.

수협 공판장에서 경매가 한창이다. 이곳에는 매일 새벽 5시면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수산물이 들어오고, 6시부터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된다.

시장으로 가는 길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힘을 빼기보다 우선 가까이에 있는 높은 곳에 올라 시내를 조감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그 도시의 지리와 문화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콥 파브리시우스도 아마 이 빤한 권고를 받아들여 용두산에 높이 118m로 지은 등대 모양의 부산타워에 올랐을 것이다. 그는 전망대 꼭대기에서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바다를 가로막고 서 있는 거대한 산 같은 영도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맑은 날엔 영도의 오른쪽 옆으로 일본 대마도가 보인다는 말에 솔깃해 먼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을 것이다. 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는 가파른 구릉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 길을 보며 자신이 살았던 마을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자신이 발밑으로 굽어본 크고 작은 배들이 쉼 없이 들락거리는 부둣가를 향해 용두산 비탈길을 수색하듯 걸어 내려갔을 것이다. 그가 우선 목표로 삼은 곳은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다는 자갈치 시장이 아니었을까?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는 아마 보통의 부산 사람들처럼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 시장에 갔을 것이다. 부산역에서 자갈치 시장역까지는 세 정거장이다. 사람들과 어깨를 스치고, 표정을 엿보고, 알아듣진 못해도 말소리를 듣는 것이 부산을 느끼는 진정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시장은 부산역에서 산책하듯 걸어도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그 길을 걸어본 것은 세 번째 방문 때일 수도 있다. 버스가 다니는 대로변 대신 한 블록 안쪽의 차이나타운 골목길을 지나 대청동으로 이어지는 고갯길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국 정취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평범하다 못해 누추하게 보이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이 오랫동안 끈질기게 이어온 부산 사람들의 지난한 삶의 풍경을 담고 있다는 생각에 길을 걷는 내내 그의 카메라는 분주했을 것이다.

어느 길을 택하든 시장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것은 도로의 표지판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냄새다. 비린내라는 이 독특한 냄새는 아직 퇴화하지 않은 인류 공통의 후각 언어를 일깨운다. 자갈치 시장이라고 하면 영도대교 아래 건어물 시장에서 충무동 새벽 시장까지 대로와 바다 사이에 늘어선 모든 상가와 노점을 지칭한다.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자갈치 시장 축제도 그 범위 안에서 벌어진다. 시저의 명언을 연상케 하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이 축제의 성격을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말해 준다. 상인들은 장을 보러 온 흥 많은 손님들을 위해 며칠간 춤과 노래는 물론이고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에서 먹거리 무료 시식까지 시끌벅적하고 아기자기한 행사들을 벌인다.

자갈치시장의 상인들은 보통 오전 8시에 가게를 열어 늦은 저녁까지 손님과 상대한다. 한국전쟁 전후 많은 여성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곳에 터전을 잡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자갈치 아지매’로 불리는 이들은 억척스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해운대 미포항에서 한 할머니가 하역을 마친 생선들을 크기와 종류별로 선별해 상자에 담고 있다.

이 여성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곧 어린 자식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거친 바닷바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하루 종일 부둣가에 쪼그리고 앉아 그날 떼어온 생선을 팔았다.
거친 억양으로, 흥정이라기보다는 때로는 사정하듯,
때로는 싸울 듯 언성을 높여가며 경쟁적으로 손님들을 붙들었다.

펄떡이는 에너지의 중심
이곳을 처음 찾은 관광객이라면 당연히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부산 사람들이 자랑하는 한국 최대의 수산물 시장을 몸소 느껴 보고 싶으리라. 그는 그 시작을 동쪽 끝에 있는 영도대교 옆 건어물 시장으로 삼았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눅진하게 배어 있는 건어물 상가를 돌며 자갈치 시장에서 풍기는 냄새의 진원지를 이곳으로 특정했으리라. 멸치, 오징어, 새우에 각종 생선포와 김, 미역, 조개 등 잘 마른 해산물들이 한가로우면서도 부지런한 상인들의 손끝에서 한 번 더 햇살과 바람에 몸을 말리는 건어물 상가 골목을 돌아 나오면 자갈치 공판장이다.

이곳은 하루 종일 활기차다. 해질 무렵 일반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고 귀가하면, 새벽녘까지 두 번 열리는 경매를 위해 연안에서 막 잡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들을 트럭에서 내리는 사람들로 더 분주해진다. 경매가 시작되면 언제나 물이 흥건한 바닥에 줄지어 늘어놓은 각종 생선들과 그보다 더 활기찬 상인들의 눈빛과 몸짓, 그리고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눈치껏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의 한 해 수탁고는 2,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협 공판장을 지나면 그 옆으로 큼직한 건물이 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의도를 짐작하려면 곳곳에 개방된 출구를 이용해 건물의 안을 통과해 바다 쪽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도심을 등지고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흰색 갈매기를 형상화한 이 건물의 전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 건물 내부로 들어간 사람이라면 예상 밖의 풍경에 놀랄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제페토 할아버지가 촛불을 켜고 지내던 고래 뱃속을 떠올릴 것이고, 어떤 이는 거대한 잠수함의 잘 구획된 실내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좁은 통로들의 양 옆에는 동일한 규모와 인테리어로 늘어선 점포가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그 수가 무려 7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더 진기한 것은 점포마다 있는 수족관 가득 살아 꿈틀대는 물고기와 어패류들이다. 이것들은 상인과 손님의 흥정이 끝나면 곧바로 손질에 들어가는데 바로 그 직전에 파닥거리는 물고기의 마지막 몸부림과 그 물고기를 다루는 상인들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 아마 파브리시우스가 보았다는 ‘펄떡이는 에너지’의 결정판일 것이다.

원한다면 2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방금 잡은 물고기로 차린 근사한 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는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손님과 대화를 나눌지도 모른다. 운 좋게 부산이 고향이면서 직장 때문에 타지에 살다 오랜 만에 부산으로 출장을 나온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로부터 꼼장어 구이와 조개 구이 같은 부산의 또 다른 해물 요리를 추천받았을 수 있다. 이들의 대화를 뚫고 들어선 호기심 많고 애향심이 넘치는 여주인으로부터 이곳이 100년 전 자갈밭 해안가에서 출발한 자갈치 시장의 원조이며, 노점상들이 50여 년 전 어렵사리 자금을 마련해 이룩한 시장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요약에 능한 통역은 “이곳에 없다면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말을 “프라이드가 강하다”는 표현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새 터전이 되다
시장 상인들의 긍지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그는 근처에 있는 부산근대역사관에 들어서서 느꼈으리라. 이곳은 개항과 함께 일제의 침략과 수탈로 형성된 부산의 근대사를 조명하고 있다.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된 나라의 국민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 시장이 일본의 거대한 식민 자본이 운영하는 대규모 어시장에서 좀 떨어진 몽돌 해안가에서, 작은 고깃배를 가진 지역 어민들이 연안에서 잡은 물고기를 엉성한 좌판에 늘어놓고 팔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점이다. 그들 중에는 물질을 하러 제주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적지 않았는데, 올 가을에야 비로소 제주 해녀들의 첫 기착지인 영도에 그들을 기리는 해녀상이 세워졌다.

이곳은 일제의 패전으로 해방이 되자 일본에서 건너온 동포들이 가세하면서 몸집을 불렸고, 한국전쟁 중에 피난민들이 생존을 위해 대거 모여들면서 전국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왜 그들은 이곳을 새 터전으로 삼았을까.

예부터 부산 인근 바다는 그물만 하나 쳐 놓아도 생계 걱정은 안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물고기가 많았다. 요즘은 어종이 많이 바뀌었지만, 대구와 청어가 회유하던 20세기의 겨울에는 이 일대가 각지에서 온 고기잡이 어선들로 크게 붐볐다. 자갈치 시장 육성사업단에서 펴낸 자료집 『싱싱 자갈치 생생한 이야기』(2011년)에 일제 강점 이전인 1903년과 1904년 사이에 영도에만 227가구 862명의 일본 어민들이 이주해 정착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어족 자원이 어지간히 풍부했던 모양이다. 이들은 앞선 기술과 장비를 이용해 남획한 수산물을 중국에 수출까지 했다.

다른 이유를 하나 더 들자. 근대 이전부터 한국에는 허가를 받지 않은, 곧 세금을 내지 않는 비공식 시장인 난전이 성행했는데 특히 어물 난전은 공급과 수요가 급증하고 거래 상품의 취급이 여러모로 손쉬워 규모와 세력이 컸다. 그 틈새를 타 전쟁이 끝나고 남북 분단으로 돌아갈 고향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자갈치 시장에 섞여들게 된 것이다.

아마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자갈치 시장에 유난히 장사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부산 사람들은 이들을 ‘자갈치 아지매’라 부른다. ‘아지매’는 ‘아주머니’의 부산 사투리다. 이 여성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곧 어린 자식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거친 바닷바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하루 종일 부둣가에 쪼그리고 앉아 그날 떼어온 생선을 팔았다. 거친 억양으로, 흥정이라기보다는 때로는 사정하듯, 때로는 싸울 듯 언성을 높여가며 경쟁적으로 손님들을 붙들었다. 그들이 보여 준 퍼포먼스는 부산 사람들의 식탁을 넘어 가장 부산다운 낯익은 정경으로 한국인들의 뇌리에 인상 깊이 남았다. 결국 시장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부산 아지매들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후부터 산업화까지 부산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명소로 자갈치 시장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파브리시우스가 ‘역동적인 삶의 현장’에서 찾았다는 부산의 정체성일 것이다.

“관계항 - 좁은 문” (Relatum – Narrow Gate). 이우환. 2015. 철판 220 × 320 × 3 ㎝. 자연석 100 × 100 × 100 ㎝. "관계항" 연작은 인공적 생산물인 철판에 자연물인 바위를 대비시킴으로써 산업 사회와 자연과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안락함과 속됨
부산은 귀족의 도시가 아니라 평민의 도시다. 부산은 개선문의 도시가 아니라 피난민의 도시다. 질서나 권위 같은 우월함을 지키기보다는 우선 먹고 살기 위해 모여든 보통 사람들의 다급한 욕망을 달래 주고 해결해야 하는 도시다. 완전함을 지키려고 애쓰기보다는 결핍된 뭔가를 끝없이 메워야 하는 도시에서 일과를 마치고 팔베개를 하고 두 다리를 뻗었을 때 밀려드는 감정은 평온함이나 안락함보다 더부룩함과 속됨과 부끄러움일 것이다. 적어도 그가 예술가라면 말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입구에는 부산에서 모은 폐목재로 얼기설기하게 출입구를 장식한 세계적인 설치미술 작가 카와마타 타다시(Tadashi Kawamata)의 작품이 있다. 이만해도 부산이라는 도시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그보다는 같은 미술관에 있는 이우환의 작품들을 주의 깊게 보기를 권한다. 그가 돌과 철판이라는 부산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사물에서 찾은 침묵과 고요는 어느 깊은 산중에서 얻은 선험적이고 정신주의적인 깨달음이 아니다. 나는 주저 없이 자갈치 시장의 한복판을 연상한다. 그는 이 높은 엔트로피의 도시가 뿜어 내는 분주함과 외침에 가까운 소음 속에서 ‘관계’와 ‘대화’를 말하고 있다. 고요하다. 아주 고요하다.

2020년에는 야곱 파브리시우스가 우리 안에서 어떤 부산을 찾아낼까. 그 길은 산책로일까, 비상구일까?

이창기(Lee Chang-guy 李昌起)시인, 문학평론가
안홍범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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