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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UTUMN

기획특집

BTS, 일곱 영아티스트의 오디세이 기획특집 2 음악적 메시지에 담긴 진정성

차트 순위, 산업적 영향력, 뉴미디어 시대의 음악 소비 형태, K-Pop의 세계화 — BTS를 얘기할 때 거론되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BTS의 성공과 음악사적 함의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음악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동시대의 수많은 K-Pop 아이돌 그룹들 중에서 BTS가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힙합이 중심이 된 진정성 있는 태도를 그들의 정체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배타적 관계에 놓여 있는 두 가지 요소인 ‘힙합’과 ‘아이돌’을 절충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BTS의 데뷔 연도인 2013년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서히 불기 시작한 힙합 바람이 K-Pop 전반에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던 시기다. 힙합의 이미지와 태도를 활용한 빅뱅, 힙합을 앞세운 아이돌 출신 뮤지션인 지드래곤과 박재범(Jay Park 朴宰范)의 성공은 중요한 성과였다. 이에 발맞추어 연예 오락 채널 Mnet에서 2012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의 열풍은 영원히 인디 음악으로 남아 있을 것만 같았던 힙합을 주류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힙합의 부상은 한국 대중음악의 첨단인 아이돌 음악에 새로운 상상력을 부여했다. 힙합을 품은 아이돌 혹은 아이돌의 옷을 입은 힙합 그룹이라는 포맷이 정교하게 고민되기 시작했고, 여러 그룹들이 그 같은 의도를 갖고 결성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BTS보다 성공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힙합의 본질을 껴안지는 못했다.

힙합의 본질을 관통하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방시혁(Bang Si-hyuk 房時爀)은 단지 랩을 할 줄 아는 것을 넘어 힙합을 정체성으로 삼은 아이돌 그룹을 원했고, 그룹의 주축 멤버인 RM과 SUGA는 다른 무엇보다도 래퍼이자 프로듀서로서 재능을 높게 평가받아 발탁될 수 있었다. 방시혁은 이들이 힙합을 단순한 ‘액세서리’로 여기지 않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개체가 되도록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아이돌 음악으로서는 예외적으로 거칠고, 솔직하며, 건강한 메시지를 표방하는 힙합 아이돌 그룹이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은 동시대 다른 힙합 아이돌과 다르게 ‘올드스쿨 힙합’이라 불리는 1980~90년대 힙합의 편곡과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이는 특히 ‘학교 3부작’이라 불리는 초반의 작품들에서 두드러진 특징이었지만, 올해 4월 발매된 의 ‘Intro: Persona’나 ‘Dionysus’에도 다시 활용되며 힙합이 그들 음악의 뿌리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올드스쿨 힙합에 대한 BTS의 관심은 1980~90년대 힙합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인 문학적 감수성과 사회 비판적인 태도가 담긴 가사가 그들의 음악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이렇게 최신 유행의 트랩 비트뿐만 아니라 올드스쿨 힙합까지 성공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던 데는 K-Pop 아이돌 음악계에서 그 누구보다도 힙합을 폭넓게 이해하고 있는 프로듀서들인 피독(Pdogg), 슈프림보이(Supreme Boi) 등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소속 뮤지션들의 역할이 주효했다.

일각의 의심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BTS는 꾸준히 힙합을 연구하며 진지한 태도를 견지했다. 힙합의 본질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진정성’과 ‘대표성’이 있다. 힙합은 래퍼가 하는 이야기가 진짜인지 그리고 래퍼가 자신의 출신을 정직하게 그대로 드러내는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때로는 엄격하게 검증하는 장르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BTS의 음악은 힙합의 본질에 닿아 있다.

BTS는 누군가를 흉내 내는 대신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금수저’와 거리가 먼 ‘언더독’으로서 자신들이 느끼는 고민과 분노를 표현했고, 지방 출신의 정체성을 ‘방언랩’이라는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유쾌하게 풀어냈다. 대중은 이런 진솔한 태도에 공감했고 지지를 보냈다. 힙합에 대한 이들의 진정성과 애정은 힙합 커뮤니티 및 아이돌 팬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래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음악적 경계를 넓혀 왔다는 점에서 분명히 입증된다. 랩을 맡고 있는 RM, SUGA, j-hope은 정규 앨범 이외에도 래퍼이자 프로듀서로서 각자의 믹스테이프를 내며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 앨범들은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래퍼로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그들의 진솔한 생각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청춘 2부작’의 두 번째 앨범이자 네 번째 미니 앨범인 <화양연화 pt.2>의 콘셉트 사진이다. ‘Je Ne Regrette Rien’(I Don’t Regret Anything) 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이 사진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청춘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연속적 서사
BTS 음악의 핵심적 매력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노랫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가사가 좋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BTS는 K-Pop 아이돌 신에서는 사실상 유일하게 서사가 커리어의 중심이 된 아티스트들이다. 물론 아이돌 음악에서 ‘콘셉트’와 ‘세계관’, 그리고 RPG 게임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는 전통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아 왔다. 하지만 BTS의 콘셉트와 세계관은 종종 허구적이며 추상적인 이야기에 머물렀던 아이돌 음악의 한계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평범하며 지극히 현실적인, 살아 있는 캐릭터를 구축해 작위적인 느낌을 배제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연속적인 서사가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는 콘셉트 앨범 형태의 연작들을 통해 구현되어 있다.

BTS 음악의 핵심적 매력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노랫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가사가 좋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BTS는 K-Pop 아이돌 신에서는 사실상 유일하게 서사가 커리어의 중심이 된 아티스트들이다.

<2 COOL 4 SKOOL >(2013), (2013), (2014)로 이루어진 ‘학교 3부작’은 말 그대로 학생의 시선에서 바라본 꿈과 행복, 좌절과 분노를 주제로 삼았다. 1990년대에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가 학교를 소재로 한 가사를 선보인 바 있었지만, BTS의 메시지는 보다 구체적이며 개인적이다. 그리고 커리어가 발전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맞이한다. ‘청춘 연작’이라 불리는 <화양연화 pt.1>(2015), <화양연화 pt.2>(2015) 시리즈와 정규 2집 앨범 (2016)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동시대를 사는 상처 받은 젊음의 아름다움과 고뇌, 그리고 성숙과 유혹이라는 다분히 문학적인 테마로 그 지경을 넓혔다. 이러한 테마는 영미권의 성장소설이나 일본의 소년 만화에서 주제 및 비주얼의 모티브를 가져왔는데 가사, 음악, 뮤직비디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되며 마침내 BTS의 독특한 세계관과 미학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일말의 가식이나 포장 없이 한없이 나약한 자아를 그대로 내보이는데, 이는 종종 완벽하고 빈틈없는 아이돌의 모습을 미덕으로 삼아온 K-Pop의 전통적 접근과는 상반되는 면모다.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BTS 멤버들의 성장은 상처 받은 청춘의 고민을 담은 (2017~2018)의 철학적 담론으로 한층 더 진화한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저작인 『사랑의 기술』에서 빌려온 ‘자기애’라는 테마는 전작들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넘어오는 문제의식을 풀어내면서, ‘사랑’이라는 개념을 관계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로 축소시키지 않고 이 시대의 청춘을 위한 치유의 메시지인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사랑의 유혹과 실연의 상처를 통해 자아와 마주하기 시작한 이들은 최근작 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같은 BTS의 이야기가 더욱 진실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메시지들이 모두 멤버 한 명 한 명의 평소 모습과 성격을 떠올리게 할 만큼 그들이 직접 써내려간 가사를 통해 긴밀하게 상호 연관지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류와 유행에 편승한 콘셉트가 급조되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인공적인 이미지들이 프로듀서를 통해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 각각의 인격이 그대로 캐릭터가 되고 이들의 성장과 생각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BTS 음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인 내러티브의 진정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데뷔 싱글 앨범 <2 COOL 4 SKOOL>의 재킷에 방탄소년단의 초기 모습이 담겨 있다.

올드스쿨 힙합을 바탕으로 한 첫 번째 미니 앨범 디자인은 굵직한 서체와 강렬한 레드 컬러로 강렬한 힙합 콘셉트를 부각시켰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미니 앨범인 <화양연화> 시리즈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멤버들의 의식의 변화를 따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주제로 한다.

리패키지 앨범 은 아름다운 청춘의 어울림과 그들의 내면을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로 구현한다.

서정성과 보편성
BTS의 독창적인 서사가 폭넓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궁극적 이유는 메시지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사운드 미학에서 찾을 수 있다. 앨범의 모든 곡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배치되어 있으며, 활용한 장르와 편곡의 디테일은 가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깊숙히 연결되어 있다. 지나치게 메시지만을 강조하거나 또는 사운드적인 유희에 집중하는 음악이 아니라 그 둘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트렌디한 동시에 복고적이며, 옛것과 새것, 서구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절묘한 균형을 만들며 독특한 서정성과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올드스쿨 힙합, EDM, 팝, 알앤비 그리고 심지어는 국악과 아프리칸 사운드를 다양하게 실험하지만, 각각의 장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자의식과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됨으로써 힘을 갖는다.

BTS 음악의 선율에는 슬픔과 애수가 깃들어 있고, 가장 신나는 리듬에서조차 일말의 애닲음을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독특한 음악성은 10~20대뿐 아니라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젖는 중년 팬들의 감수성까지 자극하며, 나아가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의 청중들에게 유사한 감동을 주고 있다.

김영대(Youngdae Kim 金榮大)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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