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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UMMER

기획특집

사찰음식: 미망과 욕심을 버리는 길 기획특집 4 먹는 음식이 곧 ‘몸’이자 ‘인격’

서울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기슭에 자리 잡은 진관사는 한국 사찰음식의 진수가 전해 내려오는 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왕실의 불교 의례를 행했던 이 절의 주지 계호 스님이 그 맥을 잇고 있다.

주지 계호 스님(맨 오른쪽)을 비롯한 진관사 비구니 스님들이 가죽나물 부각을 만들기 위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가죽나물에 찹쌀풀을 골고루 펴 바르고 있다. 햇빛이 밝은 날 빠른 동작으로 끝내는 공동 작업이다.

지난 4월 19일, 진관사에 오르는 북한산 길목에는 들꽃들이 옅은 봄 향기를 수줍게 내뿜고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 진관사는 창건된 지 1000년도 넘은 고찰이다.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 시대에도 이곳은 임금이 자주 찾던 절이었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재위 1392∼1398)는 불교 의식의 하나인 수륙재를 거행하기 위해 진관사에 관할 기구를 설치했다. 수륙재는 죽어서 이승을 떠도는 영혼과 아귀를 달래기 위해 불법을 설파하고 음식을 베푸는 제의 인데, 태조는 이 행사를 통해 조선 건립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진관사 수륙재는 현재까지 옛 전통 그대로 계승되어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국전쟁 때 화재로 거의 소실됐던 진관사는 비구니들의 지도자로 존경받았던 진관(眞觀 1928~2016) 스님이 1963년부터 건물을 차례로 재건하여 비구니의 대표적 도량으로 이름을 얻었다. 진관 스님은 40년이 넘게 진관사 주지를 지내면서 수륙재 의례 음식의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화했던 인물이다. 그의 사찰음식 비법은 제자 계호 스님에게로 온전히 이어졌다.

찹쌀풀을 바른 가죽나물을 채반에 널어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장독대 위에서 말린다. 바짝 마를 때까지 중간에 한두 번 뒤집어 주고, 밤에는 따뜻한 온돌 방에서 계속 건조시킨다.

자연과 조응하는 재료
화사한 봄볕이 진관사 경내 사찰음식연구소 주방 창틀에 비출 때였다. 목탁 두드리는 소리에 이끌려 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것은 목탁 소리가 아니라 길이가 7~8m는 족히 돼 보이는 커다란 식탁에서 계호 스님이 무를 자르는 소리였다.

채 썬 홍고추와 가죽나물을 밀가루 물로 버무린 후 팬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부치면 특유의 향이 더 살아난다.

이른 봄 참죽나무에 올라오는 보랏빛 새순을 가죽나물이라 부른다. 사찰에서는 신선한 나물뿐 아니라 장아찌나 부각 등으로 만들어 오래 두고 먹기도 한다.

스님이 몇 분 동안 칼질을 하자 짧은 방망이처럼 생긴 무가 희한한 모양의 물건으로 변했다. 손잡이가 있는 스탬프처럼 바뀐 것이다. 스님은 그것을 ‘무 기름 손’이라 불렀다. 참기름을 듬뿍 묻힌 다음 프라이팬에 휘젓듯이 바르면 기름이 잘 스며드는데, 스님이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배운 방법이라고 했다. 속세 나이로 일흔을 앞둔 스님은 강원도 묵호(현 동해)가 고향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어머니가 맛난 된장찌개를 끓이고 메밀전병을 부칠 때면 곁에 앉아 한참을 지켜보곤 했다. 그렇게 눈썰미로 익힌 음식을 척척 해낼 때마다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스님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우연히 들은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의 법문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탄허 스님은 팔만대장경의 한글 번역 작업에 투신했던 인물로 동양 철학에 해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들이 말렸지만, 그는 뜻을 꺾지 않고 1968년 진관사로 출가했다. 그의 나이 겨우 18세 때다. 스승으로 모신 진관 스님은 그에게 수행자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을 비춰 주는 등불이었다.

사찰음식의 진수
“이제 햇빛이 나네요. 자, 나가 볼까요?”

계호 스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구소 안에 있던 불자 서너 명이 따라나섰다. 수백 개 독이 가지런한 장독대 앞에는 비닐을 깐 긴 식탁이 놓여 있었다. 마치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 등장하는 만찬 테이블 같았다. 식탁엔 지름이 2m 남짓 되는 소쿠리 몇 개가 있었고, 그 옆엔 찹쌀과 멥쌀을 섞어 끓인 풀도 준비돼 있었다. 앳된 스님들을 포함한 스님 10여 명이 가죽나물 부각을 만들기 위해 나타났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던 스님들이 계호 스님의 지시에 따라 가죽나물에 풀을 바르기 시작했다. 옅은 갈색을 띠는 가죽나물은 3~4월이 제철이다. 예전에는 한 트럭을 공짜로 준다고 해도 손사래 칠 정도로 먹는 이가 드물던 나물이었지만, 사찰 음식이 주목받기 시작하자 재조명되었다. 예부터 스님들이 즐겨 먹어 온 가죽나물은 봄에 부각으로 만들어 두면 겨울까지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절집 간식이자 밥 반찬이다. 부각은 찹쌀풀을 발라 말린 채소나 해초 등을 살짝 튀긴 음식으로 사찰 음식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햇빛이 쨍쨍한 날이 아니면 가죽나물 부각은 만들 수가 없다.

“쌀풀을 바르자마자 볕에 확 말려야 해요. 햇살이 뜨겁지 않으면 빨리 안 마르죠. 해가 진 뒤엔 따스한 온돌방에 넣어 계속 말려요. 가죽나물은 신선한 상태로 말려야 튀겼을 때 색이 변하지 않고 맛있습니다.”

봄철 구하기 쉬운 민들레 잎에 간장, 매실청, 죽염, 참기름, 깨소금 등 양념을 넣어 무치면 새콤달콤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입맛을 돋운다.

풀을 바르고 바짝 말린 가죽나물은 저온창고나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튀겨 부각을 만든다. 가죽나물 부각은 씹을 때마다 바삭바삭 소리가 나고, 질 좋은 버터를 바른 것처럼 맛이 은은하다. 단숨에 혀를 사로잡는 성마른 단맛은 없지만, 한번 손이 가면 멈출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부각을 먹다 보면 저절로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계호 스님은 “먹는 것은 생명이고, 화합이고, 공덕이고, 자비”라며 “자신이 먹는 음식이 곧 자신의 몸이자 인격”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가죽나물 부각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음식이다. 몇 년 전 스님을 찾은 미국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특히 좋아했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다.

가죽나물은 부각 이외에도 다양한 조리법으로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다. 그중 계호 스님의 가죽나물 전은 풍미가 일품이다. 소금물과 밀가루를 섞어 묽게 만든 반죽 물에 가죽나물을 담근 후 꺼내 자작자작 지지면 완성이다. 이때 ‘무 기름 손’이 일등공신 노릇을 한다. 스님은 틈틈이 ‘무 기름 손’으로 소량의 기름을 팬에 문질렀다. 넓적한 가죽나물 전에 기름이 자르르 스며들자 연구소 주방에 고소한 향이 퍼졌다.

계호 스님이 진관사에서 빚은 5년 묵은 된장을 사용해 된장 찌개를 끓이고 있다. 스님은 의례 음식의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화했던 스승 진관 스님(1928~2016)으로부터 사찰 음식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욕심을 버린 조리법
계호 스님이 이어서 만든 음식은 민들레 겉절이였다. 민들레는 흩어진 기를 모아주고 염증을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나물이다. 들판이나 길가에서도 잘 자라는 민들레는 생명력이 충만한 재료이다. 스님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민들레를 먹으면 우리도 힘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주로 먹는 부위는 잎이다. 스님은 간장과 매실청을 잎에 뿌렸다. 절에서 오랫동안 숙성한 양념들이다. 완성된 겉절이를 먹어 보니 기분 좋은 단맛이 났다. 그 단맛의 비밀은 배즙에 있었다. 스님은 음식을 만들 때 설탕 대신 배즙을, 식초 대신 매실청을 사용한다고 했다.

스님의 음식은 만드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맛이 깊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당시 전담 주방장이었던 샘 카스나 유명 요리사 에릭 리퍼트가 스님을 찾아 왔던 것도 그 맛의 비결이 궁금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3월엔 벨기에의 마틸드 왕비가 스님을 방문해 청소년의 정신 건강과 음식의 중요성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갔다고 한다. 스님에게 그들과의 만남에 관해 물었더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몸에 이로운 맛을 추구하는 이들은 관점이 비슷합니다. 자연적인 맛을 찾는 거죠. 샘 카스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데, 그도 건강한 맛을 좋아합디다.”라고 말했다. 스님의 말은 최근 미국, 유럽 등지에서 부는 채식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그 바람의 중심에 우리 사찰 음식이 서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찰의 나물 요리는 산에 나는 나물의 가짓수만큼이나 종류가 많고 다양하다. 음나무 가지에서 돋은 새순은 민들레만큼이나 봄철에 스님들이 즐겨 먹는 나물이다. 계호 스님이 꼽은 봄철 3대 나물이 두릅, 쑥과 함께 바로 이 음나무 새순이다. ‘개두릅’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물은 위가 안 좋은 이가 먹으면 소화에 도움이 되고, 입맛도 살려 준다. 철분과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무릎 관절에도 좋다고 한다.

아무리 식재료가 신선해도 양념이 부실하면 제맛이 안 난다. 그런데 계호 스님이 준비한 양념은 3~5년간 숙성한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까지 고작 3가지다. 조리법도 무척 간단하다. 개두릅을 다듬어 살짝 데친 후 3가지 양념을 넣어 무치면 끝이다. 스님은 “조리법이 간소해야 우리 삶의 방식도 간소해질 수 있다. 복잡하고 거창한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우리 삶도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또한 양념을 최대한 적게 넣는 것도 수행인데, 이는 더 맛있게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스님은 나물을 무칠 때 한 가지만 주의하라고 했다.

“조림이나 장아찌를 만들 때는 마지막에 참기름을 넣지만, 나물을 무칠 때는 참기름을 제일 먼저 뿌리세요.”

우리는 살면서 타인의 차가운 말에 상처 입고, 하려는 일이 좌절돼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소울 푸드를 찾는다.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음식을 먹으면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수행자인 계호 스님에게도 소울 푸드가 있을까? 스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 주었던 된장찌개가 이따금 생각난다고 말했다. 콩 발효 식품인 된장을 넣어 만드는 된장찌개는 스님뿐만 아니라 한국인 모두의 소울 푸드다.

양념을 최대한 적게 넣는 것도 수행인데, 이는 더 맛있게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륙재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불교 의식이다. 조선 시대 초기부터 왕실 주도로 운영되었던 진관사의 수륙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며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3년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스님의 소울 푸드
“말이 나온 김에 된장찌개 끓여 볼까요?”
스님의 말에 불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향긋한 민들레 겉절이와 개두릅 무침, 바삭바삭한 가죽나물 부각과 전까지 맛본 불자들은 스님의 연구소가 곧 극락이었다.
“된장찌개 맛 어때요? 사찰에서 5년 숙성한 된장으로 만들었어요.”
스님의 된장찌개는 여느 찌개처럼 짜지 않고 평양냉면처럼 슴슴하고 맛있었다. 계호 스님과 불자들의 대화는 마치 부처와 제자들의 대화 같았다.
“스님께서 정말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누군가가 물었다.
“승소가 맛있긴 하죠.”
스님의 얼굴에 어린 동자승의 해맑은 표정과 수줍은 소녀의 얼굴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스님을 미소 짓게 한다’는 뜻인 ‘승소(僧笑)’는 국수를 말한다.

박미향(Park Mee-hyang 朴美香) 한겨레신문 음식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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