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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AUTUMN

기획특집

한국의 주방: 화덕부터 가상현실까지 기획특집 5 미래의 부엌을 미리 엿보다

미래의 부엌은 첨단 기술의 확산에 힘입어 편리성이 극대화될 것이다. 조리 시간과 노동력이 크게 줄어들고, 최소의 비용과 에너지로 보다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가족이 함께 소통하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되리라는 점이다.

미래의 주방에서는 가스레인지와 조리대, 식탁의 기능이 하나로 합쳐진 스마트 테이블이 보편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싱크대, 그리고 식탁을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을 봐 온 게 40년 전부터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부엌에 식기세척기와 인덕션이 추가되었을 뿐 요리 시간이 딱히 줄어든 것 같지도 않다. 변화가 있다면 어머니의 몸놀림은 과거보다 느려지고, 아내는 조금 빨라졌다는 정도겠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미래의 부엌은 여전히 지금과 같은 모습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중국 고전에 나오는 선현들의 명언을 모아서 만든 책 『명심보감』에는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지나간 일을 살펴보라”는 구절이 나온다. 미래의 부엌이 어떤 모습일지 예상해 볼 수 있는 단서는 이미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냉장고를 비롯한 주방 기기들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되어 무수한 데이터를 만들어 낼 것이고, 인공지능도 탑재되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편의성을 극대화할 세 가지 기술
미래의 부엌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스마트홈 플랫폼 등 현재 주목받고 있는 최신 IT 기술을 기반으로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최근 음성만으로 집 안의 가전기기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가전기기들이 인터넷에 연결돼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물인터넷이다. 그간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은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정도에 불과했지만 향후 10년간 보다 많은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될 전망이다. 냉장고는 물론이고 심지어 창문이나 거울 등 예상치 못한 사물까지 인터넷에 연결되는 놀라운 세상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다.
사물인터넷의 핵심은 단지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그 ‘상태’가 아니라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이 무수한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냉장고가 인터넷에 연결되면 매월 사용하는 전력량을 비롯해 냉장고 속 식재료들의 종류와 상태에 대한 정보가 데이터로 저장된다. 그 데이터들은 이메일, 블로그, 페이스북으로 전송되어 필요한 서비스에서 호출되고 이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음성이나 텍스트로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리면 마치 비서처럼 지시를 이해하고 해당 작업을 수행하도록 해 준다.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이러한 서비스는 기존에 키보드와 마우스로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말만 하면 원하는 정보와 서비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간단한 명령을 수행하는 정도지만, 앞으로는 부엌에 있는 가전기기는 물론 조리 도구까지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다.
스마트홈 플랫폼은 이렇게 집 안에 있는 거의 모든 기기들이 인공지능과 연결되어 동작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마트홈 플랫폼을 구현하는 주요 기술이 이미 상용화된 만큼 곧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피자나 치즈 등을 손쉽게 만들어 줄 3D 프린터도 이미 개발된 상태가 아닌가.

부엌 인테리어가 달라지다
1926년 현대식 부엌의 원형인 ‘프랑크푸르트 주방’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부엌은 싱크대와 조리 공간, 음식물 저장 공간과 조리 도구 보관함 등으로 구성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거의 한 세기를 이어온 이 같은 구조는 이제 커다란 변화를 겪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음식을 만드는 조리대와 가스레인지, 식탁 등이 제각각이었지만 향후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테이블로 통합될 것이다. 대신 로봇과 3D 프린터 같은 새로운 하드웨어가 주방 한쪽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스웨덴의 가구 업체 이케아와 미국의 디자인 회사 IDEO가 함께 제시한 2025년의 부엌 모습을 보면 정말 그럴듯하다. 카메라와 코일, 디스플레이가 내장된 조리 테이블에 식재료를 올려 두면 조리 테이블이 스스로 재료를 인식한다.

그리고 레시피에 따라 각각의 재료를 어떻게 손질하고 얼마의 양을 사용해야 할지 알려 준다. 테이블 위에 표시된 정보에 따라 요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근사한 음식이 만들어진다. 지금처럼 식탁 위에 요리책을 펼쳐 놓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부엌 인테리어에서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비단 조리 테이블뿐만이 아니다. 부엌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냉장고가 지금보다 작아지고, 그 대신 선반의 기능이 확대될 것이다. 온라인 쇼핑이 더욱 편리해져 식재료들이 원하는 시간에 신속하게 드론으로 배달되면 더 이상 냉장고에 장기간 보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선반에는 음식물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온도 조절 기능 센서가 부착되어 냉장고의 역할을 일정 정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사실 냉장고 한쪽 구석이나 야채칸에 방치되어 썩어 버리는 음식물이 상당하다. 선반에 음식물을 보관하면 어떤 재료가 있는지 한눈에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분쇄기를 통해 즉시 처리되고, 요리와 식기 세척에 사용한 물은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분리 배출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한편 인공 태양광이 부착된 홈팜(home farm)이 설치되면 자주 먹는 채소는 굳이 구매할 필요 없이 직접 길러 먹을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상추나 고추 등 쉽게 재배할 수 있는 채소를 길러 먹는 사람들이 많지만, 홈팜은 효율성을 더 높여 준다. 이로써 부엌이 베란다 역할까지 도맡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부엌 인테리어와 구조가 달라지면 그곳에서 하게 되는 경험도 바뀌게 된다.

거의 한 세기를 이어온 부엌의 구조는 이제 커다란 변화를 겪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음식을 만드는 조리대와 가스레인지, 식탁 등이 제각각이었지만 향후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테이블로 통합될 것이다. 대신 로봇과 3D 프린터 같은 새로운 하드웨어가 주방 한쪽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첨단 기술로 인해 부엌이 다목적 공간으로 변신하면, 가족이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장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즐거움 누리는 다목적 공간으로 변신
기본적으로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고 먹는 공간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부엌의 개념이 새롭게 정의될 게 분명하다. 다양한 기술 혁신 덕분에 조리 시간은 최대한 줄어들고, 가족들이 식사를 하면서 소통하고 즐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가상현실 디바이스도 부엌의 변신에 한몫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경 형태의 디바이스를 쓰면 부엌 어디에든 커다란 가상 디스플레이가 나타나고, 이를 통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음식 재료 목록과 수납 가구에 들어 있는 그릇 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애지중지하던 그릇이 깨졌을 때 도무지 브랜드가 기억나지 않아 같은 제품을 살 수 없었던 일 따위는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또 전자레인지와 식기세척기의 동작 상태나 그릇에 담긴 음식의 칼로리양 등의 정보도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통해 언제든지 확인 가능하다.
앞서 얘기했던 스마트 테이블은 조리를 하지 않을 때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자 컴퓨터로도 기능할 것이다. 만약 식사를 하다가 가족 여행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치자. 요즘 같으면 식사를 끝낸 후 컴퓨터가 있는 아이들 방으로 가서 정보를 찾거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겠지만, 미래에는 테이블의 디스플레이를 작동시켜 앉은 자리에서 바로 검색이 가능하다. 또한 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수도 있다.
한국의 전통적 가족 형태는 대가족제도였지만, 근세 이후 점차 핵가족제도로 변화했고, 그나마 지금은 가족끼리 서로 얼굴을 보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미래의 부엌이 즐거움을 누리는 다목적 공간으로 변신한다면 소원해진 가족 관계가 회복되고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을까. 기술 발전이 가져다줄 미래의 부엌은 더 이상 어머니와 아내의 전유물이 아니다. 온 가족이 함께 소통하고 즐기는 모두의 공간이다.

김지현(Kim Jee-hyun, 金知賢) IT 테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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