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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SPRING

기획 특집

결혼: 한국의 결혼 방식 기획 특집 6 국제결혼: 나의 이야기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려면 누구든지 서로에게 맞춰가야 한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점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경험을 보자면 예상밖에 쉽게 풀리는 일도 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정착한 지 20년여년간 필자는 한국사회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의 엄청난 변화를 목격했다.

최근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 한 국제부부의 행복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국제결혼이 더 힘든 적응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부부가 된 남녀가 겪어야 하는 적응의 문제는 실제로 국적보다는 개인간의 차이가 더 큰 노력을 요한다.

1996년 3월, 내가 한국에 온 지 이제 6개월. 나는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밖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앉아 서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언어교환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계를 보니 약속한 시간에서 10분이 지났다. 바로 그 때, 한번도 본 적 없는 한 여학생이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앉아서는 영어로 “늦어서 미안해요”라고 머뭇거리며 말한다. 그녀는 학교일로 바빠진 내 언어교환 친구로부터 대신 언어교환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기분이 좀 언짢았지만 일단은 한번 해 보기로 한다. 몇 번 만나서 공부를 하다가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언어교환을 그만두면 되겠거니 생각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 언어교환 친구는 내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꽤 열심이다. 나는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 등록할 때까지 그녀와 함께 공부를 계속했고, 또 한국어학당에서 공부를 시작한 후에도 그녀는 계속 공부를 도와주었다. 우리는 언어를 함께 공부하는 관계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처음 만난 1996년 3월로부터 정확히 1년 뒤에 결혼했다. 언어교환 친구에서 인생의 동반자로 그로부터 20년 남짓 흐른 지금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국제결혼 생활에서 부딪쳤던 어려움에 대해 자주 묻는다. 아마도 사람들은 국제결혼이 ‘보통’ 결혼보다 더 어려울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문화적으로 서로 적응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하는 일을 미국에서는 저렇게 하는 것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문화적 적응은 외국에서 생활하려면 어느 곳에서든지 중요한 것이지만 그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한다면 더욱 더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늘 어려움이나 장애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살아오면서 뜻밖에 즐거운 경험도 하게 됐다.

일례로, 한국에서 사위는 전통적으로 처가집에서 상당히 환영을 받으며 장모는 언제나 사위를 잘 대해 주려고 한다. 한국 표현을 빌리자면 사위는 ‘백년손님’인 것이다. 한편 한국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어려운 관계다. 미국에서는 상황이 좀 다른데, 거의 그 반대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모와 사위는 서로 잘 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한국의 경우만큼 어렵지 않다. 결과적으로 나와 아내는 두 나라의 가장 좋은 점만 누리게 되어 나의 아내는 나의 어머니와 잘 지내고, 나의 장모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게 있어서 장모 그 이상의 존재였다.
솔직히 우리가 서로 적응해야 했던 부분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었다. 즉, 어느 부부든지 성공적으로 결혼 생활을 하려면 서로 맞춰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우리 역시 그와 똑같은 적응을 해야 했던 것이다. 우선 다른 인간과 삶을 공유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얼핏 직관에 반대되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어떤 면에서 국제결혼 부부이기 때문에 쉬웠던 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 아내도 우리의 결혼 생활이 어려울 거라 처음부터 기대했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완전히 다른 두 문화에서,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왔으니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문화적 적응보다는 개인적인 적응
사실 결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다. 같은 나라, 같은 문화권에서 온 부부일지라도 그들 역시 서로 다른 배경에서 왔고 다른 가정에서 자랐으며 서로 다른 인생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어느 문화에서 왔든 남자와 여자가 매우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 여자는 한국 남자보다도 미국 여자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종 ‘국내’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마주하게 될 어려움에 대해 인식하고 결혼을 하는지 궁금하다. 나와 내 아내는 심각한 적응 문제를 마주할 준비를 하며 결혼했고, 그 덕분에 처음부터 많은 어려운 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답답하게 하거나 당황스럽게 하거나 상처를 주면 그저 ‘문화적 차이’인가 보다 생각하면서 넘어갈 수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날카로웠던 모서리가 둥글어지면서 서로 원만하게 지내는 법을 배우게 됐다.
이게 국제결혼한 사람으로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인데, 사실 이것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나는 한국 여성과 결혼한 미국 남성이지만 결혼 이주자는 아니다. 즉 결혼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저 한국에 살고 있을 때 내 아내를 만났을 뿐이다. 또한 우리는 아이가 없다는 점에서 다른 부부들과 사정이 다르다. 아마도 그 영향에 대해 다루려면 별도의 글을 써야할 정도이겠지만 아무튼 그 점에서 우리는 일반적인 경우와 꽤 다르다고 하겠다.
2015년 ‘다문화결혼’에 대한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제결혼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한국 남성과 중국 혹은 베트남 여성의 결혼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국제결혼이라고 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는 동남아시아의 여성과 결혼하는 농촌 총각일 것이다. 사실상 2016년의 통계에서도 지난 5년간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남성의 결혼 중 22.7%가 국제결혼이었다. (이는 2007년 40%에서 감소한 것이다.) 한국인이 국제결혼을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을 보통 떠올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 농어촌이 마주친 신붓감 부족 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어느 정도 상황을 개선한다고도 볼 수 있는 반면, 좋지 않은 소식도 자주 들린다. 일례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신부가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망갔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에 정부는 결혼중개업자의 불법적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꾸준히 취하고 있다.

결혼 이주자와 다문화주의
한국 정부는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다. 제1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08-2012)에서 정부는 결혼 이주자를 위한 별도의 조항을 마련하여 그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재정적인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치의 필요성을 서술한 바 있다. 또한 결혼 이주자가 대면하는 차별과 인권 유린을 인식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웰컴 북(Welcome Book)>을 8개국어로 발행하고 결혼이주 여성에게 주요 한국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김장 축제와 같은 행사나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결혼 이주자나 다른 국제부부를 위한 제도적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국제결혼에 대한 보통 한국사람들의 인식일 것이다. 사기 결혼 등 국제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보도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외국인과의 교제나 국제결혼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개선된 것 같다. 예전에는 외국인 남성이 한국 여성과 손을 잡고 걸어가기만 해도 눈총을 받는 일은 예사이고 종종 욕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국제 커플을 더 잘 받아들인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수용도가 개선되었기 때문이지만 이뿐만은 아니다. 외국인이라도 그저 지나가는 방문객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수용도는 높아지는 반면 국제결혼 건수는 감소하고 있다. 전체 혼인 건수가 줄고 있기도 하지만 국제결혼 감소율이 더 가파르다. 2011년부터 국제결혼 중개업체에 대한 감독과 결혼이민비자 심사기준이 강화되면서 전체 혼인건수 대비 국제결혼의 비율은 2010년 10.8%에서 2015년 7.4%로 크게 감소했다. 중국인 배우자와의 혼인이 특히 크게 감소한 반면 미국을 비롯한 OECD국가 출신의 배우자와의 혼인은 증가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러한 전반적 감소 추세가 계속되리라기보다는 국제결혼의 형태가 변화하는 게 아닌가 침작된다.

한국에서 국제결혼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미래가 어떻든 다문다문화주의의 전반적인 발전의 한 축이 될 것이다. 국제결혼에 대한 수용이 확대될수록 자연히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나 민족적으로 한국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
한국에서 국제결혼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미래가 어떻든 다문화주의의 전반적인 발전의 한 축이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국제결혼에 대한 수용이 확대될수록 자연히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나 민족적으로 한국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더 잘 받아들여질 것이다. 나아가 국제결혼으로 말미암아 한국과 "한국인이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재정의하게 될 것이다. 국가로서 한국은 매우 강한 민족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은 물론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것이지만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에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한국이 국가로서의 위상을 잃고 국민이 일본제국의 신민이 될 위기에 처하자 일종의 방어기제로서 강한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은 그들이 가진 여권이 아닌 민족성으로 정체성을 규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재미교포는 ‘한국인’으로 여기는 반면 한국인으로 귀화한 서양인은 계속 ‘외국인’으로 여긴다.

최근 국제결혼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는 점차 한국인 특유의 단일민족국가 개념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국제결혼과 다문화가정 시대의 도래로 이러한 정체성의 인식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다문화주의는 또한 일반적으로 다민족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 인구 구성이 문화적으로 민족적으로 점점 다양화됨에 따라 혈통에 대한 개념 혹은 한국이 단일민족국가라는 개념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며 이미 재고되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핵심을 형성하기 위해서 한국을 그들의 집이라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세계의 뉴스를 대충 훑어만 보아도 다문화주의가 서양에서 공격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에게 유익한 공통가치를 채택하여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그러나 다문화주의는 실패한 실험이며 서양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겼던 가치가 무너질 위험에 처했고 외부세력에 대해 방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으로 서양 다문화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는 없지만 한국 역시 다문화주의의 길로 계속 간다면 똑같은 수많은 도전에 처하게 될 것이다. 과연 한국은 그 과정에서 일어날 문제를 피해 갈 수 있을까? 국제결혼의 위상 즉,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등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좋은 지표가 된다고 본다. 내 경험에 의거하여 판단하자면 좋아 보이지만 앞으로 개선될 여지는 아직도 많다.

나수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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