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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SPRING

기획 특집

결혼: 한국의 결혼 방식 기획 특집 5 결혼, 사랑과 행복이라는 낡은 팻말이 박힌 정원

신문학과 자유연애는 20세기 초 역사의 격랑 속에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담론의 중요한 저변을 이루었다. 그리고 근대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수많은 소설들이 사회 관습에 기대거나 맞서는 인간 군상들의 연애와 결혼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 왔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은 2000년, 그 해에 한국인들은 분단 이래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소식에 들떠 평양 순안공항의 비행기 트랩 앞에서 남과 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서로 포옹을 하는 장면을 감격에 겨워 보고 또 보았다. 통일이라는 벅찬 담론과 뜨거운 희망은 모든 것을 빨아들여 한국 문단은 출판 시장에서조차 헐렁한 대중소설에 자리를 내주고 한쪽으로 비켜나 있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 해 5월에 출간된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소설책도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 그러다 2002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고, 2006년에는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한층 더 불온하고 모순된 제목의 소설이 문학상을 받고 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이를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보는 기사와 비평들이 쏟아졌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어떤 이는 불륜을 “일탈과 결혼의 새로운 코드”로 여기는가 하면, 어떤 평자는 “불륜문학은 쓰레기”라며 거칠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독자들은 “조건 좋은” 의사와 결혼하고도 시간강사인 옛 애인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여주인공의 “갈수록 아무런 죄책감도 느껴지지가 않아. 남들보다 약간 바쁘게 사는 거 같은 느낌뿐이야.”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충격적인 발언과 “내가 별을 따 달래, 달을 따 달래. 그냥 남편 하나 더 갖겠다는 것뿐인데.”(<아내가 결혼했다>)라는 당돌한 소망에 경악하면서도 그 역설에 열광했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영화 포스터는 “자신 있어?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란 냉소적인 카피로, 현대판 예언자로 등극한 자크 아탈리가 2040년으로 퇴출 시한을 못 박은 일부일처제의 위선을 앞당겨 까발렸다. 많은 독자들과 관객들이 빤한 일상의 허구성을 비틀어 마치 전쟁터의 상황일지처럼 읽히게 하는 속도감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좀 더 아카데믹하게 이들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의미를 찾는다면, 성장소설이나 자전소설 같은 전통적인 소설 양식의 맥락을 좌우하는 결혼이란 통과의례를 새로운 장르적 탐색 대상으로 온전히 분리해냈다는 점이다. 한국의 근대문학을 이광수(李光洙1892-1950)로부터 치면 결혼이란 제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의심해야 할 문학적 담론의 영역으로 확장하기까지1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져온 새로운 관계 속에서 한국의 독자들은 피부 같이 여겼던 제도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통쾌함과 자유로움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유교적 혼례의 전통
한국인의 정신문화는 관혼상제라 불리는 사례(四禮)로 가시화된다. 유교적 통치 질서가 자리 잡은 600년 전에 확립된 이 사례는 단순한 의례 이상의 것으로 사회생활의 기본 질서를 넘어 일종의 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예법의 본으로 삼은 것이 〈주자가례(朱子家禮)〉이다. 이 성리학적 예법의 토대 위에 조선은 기존의 풍속과 현실성을 따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라는 왕실의 예법을 만들었으며, 이를 조선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담았다.

국가의 예법은 사회의 다른 계층에서도 상위 규범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음에도 유독 혼례만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두 집안의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까닭이다. 특히 신랑이 처가로 가서 예식을 올리고 신부를 맞아오는 친영(親迎, 종종 화보에 소개되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결혼 모습이 바로 친영이다)은 경제적인 부담이 뒤따라 상당 기간 옛 풍속을 따랐다. 아마 평민들에게는 자유롭게 결혼 상대를 고르고, 신랑이 자식을 낳아 성장할 때까지 처가에 머물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고구려 시대의 결혼 방식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정해준 혼처를 거부하고, 스스로 온달(溫達)과 만나 결혼한 6세기 고구려 평강공주(平岡公主)의 이야기나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로 알려진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금오신화(金鰲新話)>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 등장하는 이생과 최씨 여인의 경우를 보듯 귀족 집안에서도 죽음을 불사한 남녀의 사랑을 막을 도리는 없었던 듯하다.

따라서 까다로운 유교적 방식의 혼례가 조선시대의 평민들에게 생활화되기까지는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상업이 활성화되어 부를 축적하게 되는 18세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막상 주머니가 두둑해지자 평민들 스스로 귀족과의 차등을 거부하고 더 엄격한 <주자가례>의 의례를 따르려 했다는 점이다.
결혼을 의논하는 의혼(議婚)의 절차에서 보듯 조선시대 사람들은 결혼이란 개인들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가문과 지역의 풍속이 만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동등한 세력을 전제로 두 가문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다 보니 신중하고 경건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기간이 길고 절차도 세심하다 못해 복잡하기까지 했다. 자연히 폐습도 적지 않았다. 우선 양가의 자존심과 경쟁 심리에서 비롯된 허례허식이 늘었다. 18세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혼수를 마련하는 데 많은 재물이 들기 때문에 딸을 낳으면 집안을 망칠 징조라 하고, 어린 딸이 죽으면 돈을 벌었다고 위로하는데, 이는 인륜과 도덕의 타락이다.”(<사소절(士小節)>)라고 혼례의 타락을 개탄하였다. 의혼 과정에서 당사자보다는 양가 부모의 의사결정이 더 중시되는 경향도 많은 폐단을 낳았다. 앞서 한국 근대 문학의 시작점으로 언급한 소설가 이광수는 당사자의 의사가 도외시된 중매 결혼의 피해자로서 의혼의 폐해를 지적하고 소설을 통해 “연애”라는 말을 대중화했다.

근대 문학 속의 결혼
이광수는 “혼인론(婚姻論)”이라는 논설에서 배우자를 부모의 뜻대로 결정하는 당시의 사회 풍조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네 딸을 내 며느리로 다오.’ ‘오냐 네 아들을 내 사위로 삼으마. 하하.’ 하고 웃고 약주나 한 잔 같이 나누면 이에 혼인이 성립되어 딸과 아들의 일생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무릇 혼인은 성년이 된 남녀의 자의로 할 계약 행위이다.”
생면부지인 여자와의 불행한 중매결혼을 경험한 이광수는 사랑에 기반을 둔 혼인과 여성의 독립 의식과 남녀의 평등을 부르짖었다. 특히 한국 근대문학 최초의 장편소설인 <무정(無情)>(1917)에서 자신의 정절을 죽음으로 지키려는 주인공 박영채의 자각을 통해 전통적인 윤리 의식과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했다.
자유연애를 주장하는 1920년대 신여성들의 개방적인 성의식과 이를 뒷받침할 주체성의 부족이라는 내부 모순을 다루었던 작가로는 김동인(金東仁1900-1951)이 있다. 그는 <약한 자의 슬픔>(1919)에서 ‘강엘리자벳’이라는 부모를 여의고 의지할 데 없는 젊은 신여성이 K남작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와 불륜을 맺고 시련을 겪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 두려움과 불안으로 사랑과 행복이라는 낡은 팻말이 박힌 정원을 들여다보며 서성이고 있다. 그 정원에 살기 위해 다양한 가족의 형태들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걸 보면 결혼이 이 정원을 건강하게 만드는 유일한 백신은 아닌 듯하다.

산업화 시대 중산층 결혼의 겉과 속
한국 문학에서 적어도 사랑의 이론을 들먹이며 새로운 결혼의 풍속도를 그릴 수 있었던 시기는 빠른 경제 성장과 남다른 교육열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1970년대부터다. 박완서(朴婉緖1931-2011)의 <휘청거리는 오후(1976)>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재산 증식의 경쟁에서 성공한 이른바 ‘교양 없는 중산층’을 만들어낸 1970년대에 한 성공한 소기업체 사장인 주인공의 세 딸이 저마다의 가치관으로 선택한 결혼을 통해 어떻게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만나 일그러지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부모처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삶을 살지 않겠다며 사랑하는 사람보다 돈 많은 50대의 ‘더러운 부자’를 선택했으나 옛 애인과의 불륜으로 결국 파멸을 자초한 초희,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이뤘지만 자신의 미래가 “여관방과 흡사한 찌들고가난한 세계”임을 깨닫고 시어머니의 요강이나 비우면서 “사랑을 주문처럼” 외우고 살아가는 우희, 두 언니를 연민과 경멸의 눈길로 지켜보며 우여곡절 끝에 영리하게 돈과 사랑을 모두 갖춘 남자를 만나 이민을 떠난 말희, 이 세 딸들의 ‘사랑과 야망’은 지금껏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전형이 되고 있다.
박완서가 결혼 이야기를 통해 당시 세태를 통속적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면 오정희(吳貞姬1947-)가 <옛 우물>(1994)에서 그리는 결혼 생활은 보다 더 근원적이고 사유적이다. 평범한 중년 부인인 ‘나’는 언제부턴가 “자잘한 생활의 문제, 음식과 성”을 나누는 일 말고는 “지난밤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간다. 어느 날 마음속에 그리던 ‘그’라는 옛 애인을 만난 ‘나’는 “어디로든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뒤엉키고 싶다”는 갈망과 함께 “각자 떠나온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갈 배가 다가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헤어진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죽음을 알게 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빨래를 개키고 낮에 절여둔 배추를 버무려 김치를” 담그고 “아들의 도시락 반찬을 만들고 남편과 티브이를 보며 농담을 나누는” 일 뿐이다. 다시 어제의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생명과 죽음의 비의를 담은 옛 우물과 어느 샌가 사라진 추억이 깃든 옛집을 떠올리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사라진 많은 존재들”인 “지상의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일상의 늪에서 연명을 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통곡한다.

더 새로운 결혼 이야기를 기다리며
결혼만큼 인간관계에서의 무지와 서투름, 구질구질함과 딱함에 대해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제도도 없다. 결혼은 집요하게 집안과 개인, 나와 너, 이성과 감정, 남자와 여자를 대립시킨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 두려움과 불안으로 사랑과 행복이라는 낡은 팻말이 박힌 정원을 들여다보며 서성이고 있다. 그 정원에 살기 위해 다양한 가족의 형태들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걸 보면 결혼이 이 정원을 건강하게 만드는 유일한 백신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적어도 고립이 답일 수 없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나아가 인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를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으며, 끊임없이 경쟁하도록 채근하는 이 막강한 자본주의와도 맞설 수 있다.

이창기 (李昌起, Lee Chang-guy)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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