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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WINTER

생활

책+

마술적 리얼리즘 분위기의 현대 동화

<백의 그림자>

저자 황정은, 번역 정예원, 152쪽, 8.99파운드, 영국: 틸티드 엑시스 프레스 (2016)

이름 없는 숲속에서 은교라 불리는 여자가 알 수 없는 그림자를 따라 간다. 그림자는 점점 더 깊은 숲 안으로 그녀를 데려간다. 여우비가 내리고 세상은 기묘한 안개 속에 둘러싸여 있다. 친구 무재가 그녀를 불러 세우고 나서야 은교는 그림자가 자신의 것임을 알아챈다. 이렇게 시작하는 <백의 그림자>는 어둠과 빛, 길 잃기와 다시 찾기를 탐색하는 우화이다. 이 과정에서 은교와 무재의 깊어지는 관계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소설의 대부분은 전자 상가와 주인공의 이웃동네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현대 동화의 마술적 리얼리즘 분위기는 숲속의 첫 장면부터 어두운 섬에서의 마지막 장면까지 줄곧 유지된다. 동화적 장면들을 상징적으로 읽어내고 싶은 유혹이 없지 않고, 실제로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숲은 늘 신비롭고 미지의 세계를, 또한 우리의 무의식을 상징해왔다면 섬은 고립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 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 황정은 작가가 제안하듯이 -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어두운 이면을 의미하는 걸까?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여러 인물들이 그림자가 일어서면 그것을 좇아가지 말라고 은교에게 경고하는 걸까? 왜냐하면 그림자는 결코 좋은 곳으로 데려가지 않을 것이기에.
하지만 동화의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 속에 담긴 상징과 메시지가 종종 명백해 보이지만 이야기는 다양한 해석을 허락한다는 점 말이다. 그림자가 종종 우리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하기는 하지만 그림자의 존재를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소설에서 그림자가 그것이 속한 사람의 일부임은 확실하다. 단지 그림자가 자기의 자리에 있을 때만, 즉 어둠과 빛이 균형을 이룰 때만 우리는 온전하다. 또한 그림자가 일어서는 것은 원인이기보다는 증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상징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흔드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단어와 언어의 임의성이 그것이다. 어떤 단어를 자꾸 반복해 말하면 우리가 이미 정해놓은 의미에서 분리되기 시작하는 현상에 우리는 모두 익숙하다. 의미에서 떨어져 나와 단어는 무의미하게 된다. 은교와 무재가 ‘가마’와 ‘슬럼’ 같은 단어를 반복해 말하자 소리가 이상하고 낯설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상징은 오직 우리 자신이 부여하는 중요성과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 또한 가능하다. 언어라는 상징체계가 궁극적으로는 임의적인 것처럼 우리가 삶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들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어떤 식으로 우화 <백의 그림자>를 해석하든지 간에 소설은 반추를 의미 있게 만드는 생각이 깊은 작품이다.

꾸밈없는 어조와 직설적인 언어는 빠르게 읽어낼 수 있도록 하지만 작품에 나타나는 은유와 상징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해 소설에는 각자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남자와 여자의 단순하면서도 씁쓸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적인 관계가 있다. 그것은 스물아홉 개 인형을 품고 있는 마뜨료슈까처럼 공허할 뿐인가? 그것도 완두콩 사이즈밖에 안되어 발에 밟히고 마는 마지막 조각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그것은 드물게 켜진 가로등으로 간간히 불 밝혀진 어두운 도로 위를 걷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알지 못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일까? 곰곰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이 질문들에 대해 <백의 그림자>는 풍성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 건축의 최첨단을 들여다보다

<한국 건축의 최전선: 다큐멘텀 2014-2016>

김상호 편집, 244쪽, 146.24 달러, 서울: 아키라이프 (2016)

‘한국의 건축’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많은 독자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틀림없이 한국의 전통 건축일 것이다. 우아한 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처마와 궁궐이나 절 지붕의 복잡한 구조양식, 풍화되었지만 위용 있는 산성(山城), 그렇게 웅장하진 않지만 아름다운 전통 기와 가옥인 한옥 등등. 보물 같은 전통 건축들이 경외심과 감탄을 유발하는 건 마땅하지만 한국 건축이 거기에서 끝나는 건 아니다. 건축가들은 새로운 스타일과 접근을 추구할 때도 전통적인 요소를 빌려오면서 탐색과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한국 건축의 최전선: 다큐멘텀 2014-2016>은 이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책의 내용은 2014년 봄에 창간된 건축 잡지 <다큐멘텀>에서 가져왔다. 이 책은 영어권 독자에게 한국의 현대 건축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여기에 소개된 건물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 건축물이 아니라 최첨단 건물들이다. <다큐멘텀>은 이 최첨단 건물들을 단순히 기록하려하지 않고 건물의 건축 과정을 깊이 탐색한다. 특히 아이디어와 완성된 구조에 이르게 한 실행과정 간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러한 욕구는 이 편집본의 중심 내용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1930년대에 처음 세워진 건물을 개조해서 국제적인 전시장으로도 사용되는 배구훈련센터에 대한 세 편의 긴 에세이가 그것이다. 그 외 15편의 짧은 에세이는 최근에 지어진 다른 건물들의 건축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 편집본에는 ‘현황’(Status) 페이지가 간간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는 2013년 겨울호인 <다큐멘텀 0>부터 2015년 가을호까지 각호에 실린 작은 드로잉, 도해, 사진들을 모아놓았다.

각각의 기사에는 풍부한 사진과 도해가 함께 실려 있다. 사진은 특별히 언급할 만하다.
사진은 주제의 대상으로 삼은 건물의 예술성을 부각시키면서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전통적인 한국 건축의 요소를 내포한 건물부터 그런 의도를 완전히 배제한 건물까지 여기에 소개된 건축물은 디자인과 미학에 관심 있는 누구에게나 영감을 줄 것이다. 건축과 학생이나 일반 독자는 틀림없이 이 건물들의 탄생에 들어간 노력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건물은 단순히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실행과정 간의 복잡한 관계적 총체를 재현하기 때문이다.

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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