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In Love with Korea

2017 SUMMER

생활

한국의 벗들

e스포츠 캐스터로 사는 ‘대한미국’ 사람 울프 슈뢰더

울프 슈뢰더는 전세계 온라인 게임 애호가들이 관전하는 e스포츠 프로리그를 중계하고 해설하는 프로 캐스터다. 어릴 때 스타크래프트 게임 전략 정보를 나눠주는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살다가 대학 때 토너먼트 게임을 운영하고 중계를 한 인연으로 한국의 케이블 방송국에 스카우트되어 6년째 이 길을 걷고 있다.

통합 스타크래프트2 리그인 ‘SSL시리즈 2017’ 경기가 있던 4월 3일 밤, 불빛이 화려한 강남의 한복판 넥슨 아레나 스튜디오를 찾았다. 20명의 한국 선수들이 9주 동안 대결하는 풀 리그 중 한 경기로,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인데도 객석에는 벌써 관객들이 속속 입장하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 남녀들이고 외국인들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입장료는 3천 원. 네이버, 스포티지게임즈, eSports, 유튜브로 생중계와 VOD 서비스가 이루어지지만 이렇게 직접 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슈뢰더의 e스포츠 중계는 선수들의 개인사를 적절히 섞어가며 숨막히는 한판 승부를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점에서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e스포츠 열기에 반하다
e스포츠란 컴퓨터 및 네트워크, 기타 영상장비 등을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겨루는 게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전파를 통해 전달되는 중계의 관전, 그리고 이와 관계되는 커뮤니티 활동 등의 사이버 문화 전반 또한 e스포츠 활동에 포함되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e스포츠는 관중 문화가 대단히 발달해 있다. 경기가 서울 시청 앞 광장이나 해운대 바닷가의 특설무대에서 열릴 때는 모여든 수천 명 관중의 함성과 비탄이 행사장을 압도한다. e스포츠의 종주국이라 할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은 또 있다. 스타크래프트를 위시한 히트작들을 낸 미국의 대표적 글로벌 게임업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새로운 게임을 출시할 땐 반드시 한국에서 발표를 한다.
지난 3월 26일 강남 코엑스에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CEO 마이크 모하임은 올 여름 출시될 스타크래프트1 리마스터를 최초로 공개했다. 그는 한국이 새 상품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한 축임을 잘 알고 있다. 1998년 스타1을 탄생시킨 것은 블리자드이지만 온라인 게임을 스포츠로 진화시킨 것은 전적으로 한국인 유저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e스포츠 열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경기를 앞두고 넥슨 아레나 스튜디오의 분장실에서 만난 울프 슈뢰더는 누구보다도 이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입장료가 저렴한 피시방에서 무료로 할 수 있는 게임이었으니까요. 온게임넷이라는 회사(지금의 OGN)가 2000년에 온게임넷 스타리그(OSL)라는 토너먼트를 공식적으로 만들어서 2012년까지 운영했어요. 그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청률이 올랐고 KT, SKT 같은 빅 스폰서가 붙기 시작했어요. 이동통신업체들에 이어 웅진, 삼성, 하이트맥주까지 팀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온게임넷이 스타크래프트를 TV중계하자 MBC게임이라는 채널이 탄생합니다.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프로선수들의 게임이 게임 전문 케이블 채널로 중계되는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전 세계에 한국만큼 e스포츠가 인기를 끄는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자부심도 대단하고요. 그런 분위기가 지금까지 계속되는 거지요.”

그는 마치 그 시절의 시작부터 한국에 살았던 사람처럼 한국의 온라인 게임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 아울러 한국이 e스포츠를 선도하는 이유로, 유럽이나 미국 선수들에 비해 코치의 말에 순응하는 태도, 연습량, 합숙을 통한 팀워크도 들었다.

울프의 독보성은 적절한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평면적인 경기 전달에 그치지 않고 선수들의 개인사를 적절히 들려주어 한 판 승부를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평소 해외 선수들이나 해외 팬들 눈에 한국 선수들이 기계나 로봇처럼 여겨지는 사실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다.

게임에 빠진 애틀란타 소년
한때 스타크래프트는 자식이 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한국 부모들을 어지간히도 애태우게 만든 중독성 강한 오락의 대명사였다. 이 게임의 마법은 미국 애틀란타에 사는 한 소년의 운명에도 깊이 개입했다. 10살 때 이 게임을 접하고 흥미를 느꼈던 울프 슈뢰더는 학교 친구들 중 자기보다 한 수 위인 한국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배틀넷 멀티플레이(사용자 대전)를 즐길 뿐만 아니라 에디터를 이용해 직접 맵을 개발하는 수준이었다. 게임만 잘하는 게 아니라 수학도 잘했다. 이들과 친해지면서 울프는 스타크래프트의 세계로 푹 빠져 들어갔다. 그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갔다가 저녁때가 되면 친구 어머니가 차려주는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불고기, 신라면, 뿌셔뿌셔, 초코파이 맛을 그때 알았다.

앞면에 태극기를 부착한 모자를 쓴 슈뢰더가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프는 조지아 스테이트 유니버시티에 진학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오픈 울프 컵(Open Wolf Cup)’이라는 토너먼트를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아마추어 1인 방송을 시작했다. 밑천은 컴퓨터와 마이크 하나. 첫 토너먼트에 128명이 지원했다. 우승자에게는 개인 돈으로 마련한 상금 50달러도 줬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토너먼트에 중계자나 해설자로 봉사해주기도 했다. 130명 정도가 출전한 14개 토너먼트에 중계는 100여 번 정도 경험했다. 스타크래프트 1세대 아나운서라고나 할까.
그러던 대학 2학년 때, 한국의 한 방송사로부터 믿기지 않는 제안이 날아들었다.
“곰TV에서 한국으로 오라는 거예요. 스타크래프트2 중계를 할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라이브 토너먼트 중계 1인 방송을 하고 있는 제가 딱 적임자로 보였던 거지요. 그때까지 쭉 혼자 집에서만 했지 스튜디오에서 오프라인으로 중계해본 경험은 사실 한 번밖에 없었어요. 드디어 중계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예요. 바로 한국에서요!”

온라인 게임을 인간들의 이야기로
2011년,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에 온 울프는 곰TV 전속 캐스터로 1년간 계약을 했다. 1년 계약이 끝난 후에는 혼자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 줄곧 프리랜서로 일한다. 지금은 곰TV, 아프리카 TV, SpoTV에서 일주일에 대여섯 게임을 중계한다. 스타크래프트2, 히어로즈, 오버워치가 주종목이다. 전 세계 관객들을 위해 유튜브를 통해서 실시간 중계하며, 중계를 위한 해외 출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영어 중계 팬 중에는 한국인도 많다.
e스포츠 캐스터로서 울프의 독보성은 적절한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평면적인 경기 전달에 그치지 않고 선수들의 개인사를 적절히 들려주어 한판 승부를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평소 해외 선수들이나 해외 팬들 눈에 한국 선수들이 기계나 로봇처럼 여겨지는 사실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다. 게임 기술이 워낙 좋기 때문에 이미지가 그런 식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선수들은 “울프, 방송할 때 내 얘기 잘해줘”라고 부탁하곤 하지만 그는 한국 선수들과는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중계할 때 자칫 객관성을 잃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미디어나 주변 지인들을 통해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울프의 인지도가 올라가자 2016년 케스파(KeSPA)컵 대회 중계 때 주최 측에서는 한국인 캐스터 세 사람과 외국인 캐스터 두 사람을 묶어 5인 중계 방식을 시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때까지 외국인 캐스터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울프는 이때 유창한 한국말로 선수들과 즉석인터뷰를 하며 ‘김을부’라는 한국 이름을 얻을 만큼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로 울프는 한국어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적극적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서울에는 울프 같은 국제적인 명성의 캐스터들이 열 명 남짓 살고 있다. 울프는 선수들을 멀리하는 대신 그들과 아주 가깝게 지낸다. e스포츠에 관한 한, 한국에서 최고이면 세계에서 최고이다. 캐스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10명 중 그는 몬테크리스토(Christopher "MonteCristo" Mykles), 토린(Duncan "Thorin" Shields), 파파스미디(Christopher "PapaSmithy" Smith)를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인물로 꼽았다. 모두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의 해설가이자 캐스터이다.
그는 “제가 스토리텔링 면에서 나름 잘해온 편이라면 이들은 분석 스타일, 빠른 전개와 정보 전달 능력이 정말 놀라워요”라고 그들의 강점을 진지하게 짚었다.

통합 스타크래프트2 리그인 ‘SSL 시리즈 2017’ 경기가 진행 중인 넥슨 아레나 스튜디오에서 프리랜서 e스포츠 캐스터 울프 슈뢰더(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브렌던 발데스(Brendan Valdes)와 함께 외국인 중계석에서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한글과 한식으로 팬들과 소통하기
그는 자칭 ‘대한미국 사람’이다.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SNS에 올려 한국인 팔로워들의 식욕을 자극한다. 미국 출장 때 한국 음식을 싸간다는 포스팅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포크보다 젓가락이 편하다며 포크 두 개로 젓가락질하는 사진에도 그의 장난기에 화답하는 폭풍 댓글이 이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 때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가 인증 샷을 남겼다. 파면이 확정된 날에는 “축하해, 대한민국. 춥고 힘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미래 위해 밖에서 고생했기 때문에 오늘 이길 수 있었어”라며 “오늘 맛있는 것 먹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올렸다. 이를 본 한국인들은 “역시 대한미국사람, 우리 김울프”라며 ‘좋아요’를 수천 개 눌러준다. 고국인 미국을 다녀 오면서도 “한국집이 최고”라며 익살을 부린다.
“한국음식이 젤 맛있어요. 여기 살기 때문에 늘 먹을 수 있어요. 향이 강하고 뜨겁고 매워요. 첨에 여기 왔을 때 한국사람들이 말하길, 미국 가서 음식 먹으면 너무 밍밍하다고 하더니 제가 지금 그래요. 게다가 가격은 또 얼마나 착한지요? 미국 가보면 한국 양념치킨 값이 두세 배 더 비싸요. 소주 한 병에 10달러라니요?”
한국에 온 첫날 곰TV 직원들이 데리고 갔던 마포의 한 식당에서 먹은 숯불구이 돼지고기 맛을 그는 아직도 못 잊는다.
“닭갈비도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부대찌개예요. 사실 온갖 종류의 찌개가 다 맛있구요. 식사 끝 무렵 나오는 볶음밥도요.”
그의 한국 음식 사랑이 널리 알려지자 음식 관련 프로그램 출연 요청, 인터뷰 요청이 이어지지만 이 스물여덟 살 청년은 중심을 잡을 줄 안다. 거기 쓸 시간도 없을 뿐더러 자신은 어디까지나 e스포츠 캐스터라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산 지난 6년 동안 첫 직장인 곰TV 근처 목동에서 시작하여 조금 더 나은 집을 찾아 여섯 번 이사해 지금은 상수동에 산다. 이즈음은 “아침에 일어나서 블라인드를 열면 한강이 보이는 집”을 꿈꾸며, 그 꿈이 곧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일한다.

김현숙 케이무비러브 대표
안홍범 사진가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