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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Love with Korea

2017 SPRING

생활

한국의 벗들 배리 웰시의 독특한 서울 탐험

중학교 영어교사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배리 웰시는 낯설고 쉽지 않았던 도시 서울을 영화와 책을 통해 깊이 사귀게 되었다. 그가 한 달에 한번 꼴로 유명 작가를 초청해 북 토크콘서트를 열면 객석 200석이 꽉 찬다.

‘토크콘서트’ 형식의 독서 모임인 서울북클럽을 이끌고 있는 동국대 통번역학과 조교수 배리 웰시 씨가 조정래 작가(사진 왼쪽) 초청 행사에서 청중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도 가장 번화하고 복잡한 지역인 명동 한가운데 자리한 서울글로벌문화체험센터(Seoul Global Cultural Center)에 외국인들이 속속 모여들어 1백50석 좌석이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찼다. 배리 웰시(Barry Welsh)가 주최한 북 클럽(Seoul Book and Culture Club) 행사 현장이다. 이날의 초대 작가는 <태백산맥> <한강> <정글만리>의 작가 조정래였다. 그의 대표작 <태백산맥>은 모두 10권으로 이루어진 대하소설로 지금까지 천만 권 이상이 팔려 한국 현대사에서의 좌우익 갈등을 그린 분단 문학의 상징으로, 한국 대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해가는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오래된 취미 활동 행사는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1부에서는 조정래 작가와 배리 웰시가 통역자를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장 역사소설가와의 대화답게 화제는 강대국의 횡포, 민족주의, 정치인들의 부도덕성으로 종횡무진 이어졌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객석의 집중력이 굉장했다. 2부는 객석과의 대화 시간이었다. 질문하려고 쳐드는 팔들이 송곳처럼 쭉쭉 뻗었다. 뉴욕에서 왔다는 젊은 여성이 질문 기회를 얻었다. 질문에 답하던 조정래 작가의 이야기가 영국의 200년 간 식민 통치행위에 대한 비난에 이른 순간 배리가 표정이 묘해지며 어색하게 웃는다.
북클럽 행사는 배리가 고향인 스코트랜드에서 가져온 싱글몰트 한 병을 작가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저는 영국인이지만 브리티시가 아니라 스코티시예요. <브레이브 하트>라는 영화 아시지요? 그 주인공이 <명량>의 이순신과 똑 같은 처지의 장군이었어요. 그래서 피침략자의 울분에 충분히 공감해요.”
배리 웰시의 북 클럽은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011년에 시작하여 한 달에 한번 정도 정기적으로 모이다 보니 청중들끼리도 낯이 익어 행사가 끝나고도 한동안 서로 안부를 묻느라 화기애애하다. 그가 2013년 시작한 영화클럽 (Seoul Film Society)의 영화상영회 청중들과도 많이 겹치는 듯하다.
“오늘 조정래 씨 초청은 정말 운이 좋아 이루어졌어요. 집전화도, 핸드폰도 안 쓰고 오직 팩스로만 외부와 연락하는 데다 행사 참가도 극히 제한하는 분이거든요.”
지난 10월 그가 한 신문에 “외국인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며, 한국인들을 형성하고 있는 역사적인 영향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조정래 작가의 작품이 더 많이 번역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조씨가 마침 이 글을 읽은 터라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게다가 강연료도 받지 않겠다고 하여 더욱 기뻤다. 입장료 5천 원은 통역비와 기타 잡비로 충당하기에도 늘 빠듯하기 때문이다. 이날 수입은 북 클럽과 달리 무료입장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영화상영회 비용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그는 동국대 통번역학과 조교수로 영어 말하기와 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북 클럽과 영화상영회는 오래된 취미 활동입니다. 모든 행사를 저 혼자 기획하고 집행하고 홍보합니다. 물론 아내가 돕긴 하지요. 서울시가 운영하는 이렇게 좋은 장소를 무료로 빌릴 수 있어서 큰 힘이 되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세계 금융위기가 맺어준 인연
영국 리버풀 대학에서 영문학을, 에딘버러 대학에서 영화학 석사를 한 배리 웰시는 영국 맨 섬(Isle of Man)의 한 투자회사에 근무하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직장 생활이 불안정해지자 한두 해쯤 아시아에서 영어를 가르쳐 돈을 모으고 여행을 다니다가 귀국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리를 알아보다가 한국이 아주 좋은 조건으로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비행기 요금과 주거비까지 제공해주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 지원해서 합격했고 2009년 8월에 처음 한국에 왔다.
“투자회사에서 하던 일은 업무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커서 여가도 없고 힘들었어요. 여기 학교에서는 4시 반 칼 퇴근에다 가르치는 일도 즐거웠어요. 게다가 교통 편리하고 한밤중에도 상점들이 문을 열고, 가까운 곳에 산이 많아 주말에 등산하기도 좋고…”
이미 18세에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해서 살던 터라 서른 살이 넘어서 시작한 타국 생활은 적응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낯선 도시와 제대로 사귀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서울글로벌문화체험센터 해치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 모인 청중들이 배리 웰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이 행사는 배리 웰시의 페이스북에 공지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스케일과 상상 초월의 모던함에 주눅이 들어서 한동안은 별로 나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학교 일이 끝나면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책 읽다 집에 들어가 자는 생활이 다였지요. 그러다가 살금살금 용기를 내어 서울을 탐험하기 시작했어요.”
중학교와의 계약이 끝나고 숙명여대 국제언어교육원 객원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2013년 1월에 한 교수의 소개로 이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던 노현의 씨를 만나 첫 눈에 반했다.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고 조용히 집안에 들어앉아 고양이와 노는 것을 즐기는 점이 자신과 똑같아서 처음부터 말 없이도 교감할 수 있었고 천생의 배필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의 부모가 딸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아 한동안 힘들었다.
“집은 어떻게 장만할 거고, 장래의 목표는 무엇이다, ‘따님을 주시면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다’, 뭐 그런 이야기로 믿음을 얻기는커녕 그저 당사자들끼리의 결정을 믿고 존중해달라는 식의 태도만 보여드렸으니 부모님이 조금 불안해하셨던 거지요. 지금은 저희 부모님과도 잘 지내세요.”
그의 아내는 지금은 디지털 파빌리온 정보통신기술(ICT) 전시관의 영어 도슨트를 하며 남편의 북클럽과 영화클럽 운영을 돕는다. 한글을 모르는 그가 혼자 모든 행사 공지를 영어로 하던 초창기와 달리 아내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로 알리기 시작하자 한국인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초대 작가와 청중 사이의 대화가 좀더 풍부하고 원활해졌다고 한다. 이들은 2015년에 결혼했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이 한국문학에 대해 이렇게 높은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지요. 저자 초청 토크 콘서트 형식이 작품 이해나 소통에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배리 웰시 씨의 한국인 아내 노현의 씨는 남편의 북클럽과 영화클럽 운영에 중요한 조력자이다.

초청했던 작가들
배리 웰시가 처음 읽은 한국문학 작품은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였다.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다. 소설의 하이퍼모던한 스타일에 매료되었고 주제에 공감했다. 그는 다른 한국 거주 외국인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친구 대여섯 명을 불러모아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에 띄는 소설들을 선택해 함께 토론을 벌였을 뿐이지 그 자리에 저자를 초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한국계 미국인 작가 크리스 리(연세대 교수)를 초청해 서울 글로벌 문화체험센터에서 처음으로 저자와의 소규모 토크콘서트를 마련했다. 그의 첫 단편소설집인 <떠도는 집(Drifting House)>이 토론 주제였는데. 2백 명이나 되는 손님이 찾아와 깜짝 놀랐다. 탈북 작가 신동혁이 두 번째 손님이었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이 한국문학에 대해 이렇게 높은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지요. 저자 초청 토크콘서트 형식이 작품 이해나 소통에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후 그의 토크콘서트 초청 작가 리스트는 화려하다. 자신이 처음 읽었던 작품의 저자 김영하 씨 초청에 성공하고 나니 다음 작가 섭외가 수월해졌다. 그는 “김영하 씨도 저희 북클럽에 왔었다고 하면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며 웃는다.이렇게 해서 고은, 공지영, 황석영, 한강, 황선미, 이창래, 신경숙 등이 다녀갔다. 이중 한강은 배리의 북클럽에 출연한 직후 맨부커상을 받아 특히 뿌듯했다고 한다. 황석영 씨는 엄청난 말솜씨로 관객들을 시종 웃겨주었으며, 고은 씨는 열정적으로 시를 낭송해 좌중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올해는 한강 씨를 다시 한번 초청할 생각이고요, 이문열 씨를 한번 모셨으면 합니다”
그는 감명 깊게 읽은 한국소설로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편혜영과 박민규 단편집, 한강의 <채식주의자>, 천명관의 <모던 패밀리>를 꼽았다. <삼포 가는 길>은 소설로도 가장 좋아하지만 영화로도 자신의 베스트 리스트 5에 드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한국문학과 한국영화에 빠져 살고 있지만아직은 문학작품은 번역에, 영화는 자막에 적잖이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정규수업까지 받으며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 중이다.
“아내와 서울에서 살며 앞으로 또 어떤 것을 탐험하게 될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존 레논이 말했듯이, 우리가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인생은 펼쳐지는 것(Life is what happens while you are busy making other plans) 아닐까요?”

김현숙 (Kim Hyun-sook, 金賢淑) 케이무비러브(K-MovieLov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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