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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017 AUTUMN

문화 예술

인터뷰 내숭은 나의 힘, 세계 화단을 넘보다

거침없는 행보와 발칙한 도발로 알려진 화가 김현정(Kim Hyun-jung 金炫廷)은 신세대 아티스트다. 스물아홉 살 젊은 피는 ‘아트테이너’로서 대중을 즐겁게 하겠노라 외치며 미술 한류를 꿈꾼다.

「내숭: 달콤한 속삭임(feat.한도초과)」, 2016,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주, 120×176cm

서울의 강남 한복판 논현로에 있는 한 자그마한 건물에 ‘김현정 아트크리에이티브 센터’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화가들이 일반적으로 ‘작업실’이라 부르는 공간을 김현정은 이렇게 작명했다. 자신을 돕는 직원 10여 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포함해 두 개 층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미술계의 스타트업이랄까.
김현정은 자신의 한복 그림을 상표 등록했으며, ‘2015 대한민국 창조혁신대상’에서 예술 부문 상을 받았다. 올 들어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7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요즘은 강연 요청이 많아서 스케줄을 조정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전담 연구원이 있을 정도다.
인터뷰를 위해 자신의 「내숭」(Feign) 연작 그림에서 막 외출한 듯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가 말했다.
“한복이 제 트레이드마크가 됐어요. 양장을 하면 사람들이 못 알아볼 정도죠. 어언 한 30여 벌 되는데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서 다양하게 조합해 입어요. 그런데 입을수록 한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화려한 의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아함과 발칙함의 결합
‘내숭’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이라 정의되어 있다. 딱 맞아떨어지는 영어 단어가 없어 번역하는 데 고생했을 만큼 내숭은 꽤 ‘한국적인’ 단어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김현정은 ‘겉과 속이 다른’ 인간사의 단면에서 자신의 그림 주제를 포착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내숭녀’는 부조화의 화신이다. 한복을 입고 맥도널드 배달 오토바이를 몬다. 한복 치마를 걷어붙이고 털버덕 앉아 피자를 먹거나 라면을 후르륵거린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치마, 서걱거리는 재질감을 살린 콜라주 기법이 대담하다. 전통 예복인 당의와 현대 도시 생활의 접목은 파열음을 내면서도 엉뚱한 발랄함을 풍긴다. 게다가 아직 소녀티 물씬한 젊고 예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니 관객은 환호한다.
“한복이 주는 고상하고 비밀스런 이미지에서 착안했죠. 그런 한복을 입고서도 격식을 차리지 않는 일상적 모습을 그린다면 어떨까.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일종의 일탈을 내숭으로 표현한 것이죠.”
이런 전략이 통한 것일까. 대중과 호흡하는 미술을 하겠다는 그의 개인전에 관람객 수만 명이 몰린다. 영리한 화가는 SNS를 적극 활용해 11만 명이 넘는 팬을 확보하며 손님을 모은다.

경영학을 전공한 화가
김현정은 여덟 살 때부터 그림을 배웠다. 스스로 “어려서부터 미술만 해서 뭐든 잘 그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런 그도 정작 예술 전문 중학교로 진학할 때 고민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 보자고 했을 때 그를 망설이게 한 말이 있다. “예술가는 배고프다”는 한마디다. 그 말에 화가는 가난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보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전국 미술대학에서 공부하는 화가 지망생들이 모두 가난한 미래밖에 내다볼 게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김현정이 한복 차림으로 서울 논현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한복을 즐겨 입는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했다. 그러고는 미술 시장이 궁금해서 열심히 파헤쳐 봤다. 성공했다는 유명 화가들을 벤치마킹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아트 상품을 개발했다. 기업과 작가가 공생하는 아트마케팅을 위해 그가 협업하는 회사도 몇 개 된다. 배고프지 않은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그의 도전은 당당하다.
“저는 미술 작품의 상업화와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요. 정말 이 대목에서만큼은 내숭 떨고 싶지 않아요. 현재 한국 미술 시장의 한계와 젊은 작가들의 고충에 대해 많이 고민하죠. 미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방법을 연구하려고 관객과 꾸준히 이야기합니다. 아트 딜러도 해 봤어요. 저의 예술 경영 철학은 대중과 호흡하는 미술입니다. 누구나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미술의 대중화에 일조하고 싶어요.”

“저는 미술 작품의 상업화와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요. 정말 이 대목에서만큼은 내숭 떨고 싶지 않아요. 현재 한국 미술 시장의 한계와 젊은 작가들의 고충에 대해 많이 고민하죠. 미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방법을 연구하려고 관객과 꾸준히 이야기합니다.”

「내숭: 아차」, 2012,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주, 145×117cm

21세기 풍속화를 향하여
그는 한국화가 진부하고 고루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다. 한지에 수묵담채라는 한국화의 전통 기법을 고수하면서도 현대 미술에 맞는 요소를 찾으려 과감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신데렐라’ 같은 서구 동화의 줄거리를 빌려 내숭녀에 접합시키기도 했다. 「내숭」 연작을 사진 작업으로 연장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 걸작 속에 내숭녀를 배치시키는 시도도 망설이지 않았다.
“조선 풍속화를 완성시킨 단원 김홍도, 과감한 세속화로 시대를 앞서간 혜원 신윤복의 작품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합니다. 그분들이 풍속화에 불어넣은 진솔함과 해학, 화면 구성의 대담함과 용필 능력 등은 제게 큰 영감을 줍니다. 두 대가의 뒤를 좇아 21세기 풍속화를 창조하는 것이 제 꿈이죠.”
그는 셀프 빨래방의 내숭녀, 사우나의 내숭녀, 찜질방의 내숭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시대의 단면을 묘사할 수 있다면 의미 있을 것이라 했다.
“지금 저의 작품은 상당히 구상적입니다. 세필로 머리카락 한 올까지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이후에는 설치 미술과 영상 미디어로 확장해 보고 싶어요.‘내숭’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면 그림으로 접하는 것보다 그 실체를 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세계 미술계로 진출하려는 자신에게 하나의 전범을 보여준 이로 설치 미술가 서도호(Suh Do-ho 徐道濩)를 들었다. “서도호는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 작업에서 전통 옷감으로 한옥을 표현하며 한국적 아름다움을 재해석해 보편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저도 우리 수묵화와 한복, 한지가 주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세계 무대에 당당하게 내놓고 인정받고 싶어요.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村上隆)의 전략도 배울 점이 있죠. 무라카미 다카시는 외국 고급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서 미술이 자본주의 상업성과 공생하면서 우리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 수 있다는 걸 보여 줬어요. 제 꿈 중 하나가 음악처럼 미술을 일상 속에 젖어 들게 하는 것이라 그 자연스런 조화의 재능을 배우려 합니다.”

「내숭: 당신의 무지개는 어디에 있습니까? 」, 2016,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주, 178×127cm

자아, 시선, 그리고 통념
그는 아직 성장 가능성이 많은 화가다. 전시회 횟수보다 전시에서 뭘 보여 줄 것인가, 작품의 질을 우선시한다. 관람객을 몰고 다니는 화가라는 소문이 나면서 전시 제안이 심심찮게 오지만 함부로 응하지 않는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한번 엉덩이를 붙이면 계속 그리죠. 작품 한 점에 집중하면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그림만 그려요. 그러다가 정신없이 먹곤 하는데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폭식하는 내숭녀 그림이 제 자화상이죠. 어떤 그림이라도 제 감정이 동조할 수 있어야 완성합니다. 지난 몇 년 새 제가 작업한 그림이 300여 점을 넘어섰는데, 늘 새롭게 바라보고 창조하려 기를 씁니다. 제가 게을러져서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 누구보다 제 자신이 참지 못할 겁니다.”
김현정의 그림은 워낙 튀는 분위기라 아무 곳에나 걸 수 없다. 실내에 걸면 주변 인테리어를 잡아먹는 센 그림이다. 짐작보다 그림을 그렇게 많이 팔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얌전하고 예쁜 그림으로 양보할 생각은 없다.
“작품은 내 새끼인데 타협할 수는 없지요. 더구나 대부분이 제 자화상인데 저를 부정할 수도 없고요. 사람들이 제 그림 속 소재와 제목을 보고 유쾌하게 웃을 때 기분이 좋아요. 기존 관습에 도전하는 제 속내를 읽어 주셨구나 싶어서요.”
그는 미술 한류를 꿈꾼다. 한국화가 세계 미술 무대에서 평가받고 대접받는 날을 앞당기는 데 한몫하겠다는 야망이 있다.
“자아, 시선, 통념의 문제를 한 끈으로 이어 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야 출발선에 선 젊은 작가이니 초조해하지 않으렵니다. 뚝심으로 밀고 나가야죠. 한복을 걷어붙이고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정재숙(Chung Jae-suk, 鄭在淑) 중앙일보 문화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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