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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2019 AUTUMN

생활

라이프스타일 놀이로 즐기는 가상현실

최근 가상현실 테마파크가 도심 속의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물론 가족의 나들이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는데, 첨단 기술이 주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새로운 여가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VR스테이션’에서 방문객들이 마리오카트 게임을 가상현실로 즐기고 있다.

“앞에 놓인 장비를 착용해 주시고, 혹시 중간에 어지럽거나 힘드신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자 롤러코스터 탑승객 5명이 설레는 표정으로 HMD(head mounted display)를 머리에 썼다. 이윽고 의자가 상하좌우로 조금씩 들썩이더니 앞으로 숙여졌다 뒤로 젖혀지기를 반복했고, 한 30대 여성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좌우를 돌아봤다.

“자, 내려갑니다. 와우!”

안내원의 추임새는 탑승객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만세를 불러 달라는 말에는 한 아이가 양팔을 번쩍 위로 들기까지 했다. 정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1분 30초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롤러코스터가 멈추자, 좌우로 고개를 돌렸던 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인기의 비결
이는 국내 가상현실 플랫폼 회사 GPM이 운영하는 인천 송도의 가상현실 테마파크 ‘몬스터VR’에서 지난해 12월 보았던 장면이다. 주말을 맞아 유치원생들부터 초·중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은 롤러코스터뿐 아니라 봅슬레이, 래프팅, 번지점프, 열기구 같은 스포츠 레저를 비롯해 뱀파이어, 좀비, 공룡과 싸우는 공포 체험까지 다양하다. 2017년 여름 개장한 이 시설은 총 40여 종의 가상현실 놀이 기구를 구비하고 있는데, 한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여러 종류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비결 중 하나로 보였다.

가격 면에서도 기존 테마파크보다 저렴하다. 놀이 기구 하나만 이용하면 주말 기준으로 성인 1명당 9,000원을 내며, 3종이나 5종만 즐길 수 있는 이용권도 따로 있다. 더 많은 기구를 이용하고 싶다면 1인당 3만 2,000원의 자유이용권을 끊어 최장 3시간 동안 즐길 수 있으며, 이는 기존 오프라인 테마파크보다 2만 4,000원 저렴하다.

이날 가족을 데리고 나온 한 남성은 “추운 날 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며 “가상현실을 처음 접한 아이들이 무척 흥미로워했다”고 말했다. 가상현실 테마파크가 확산되는 이유에는 컴퓨터와 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데이트 장소로 최적화된 장소라는 점도 있지만, 가족 단위의 이용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상현실 테마파크는 도심 속에 위치하고 있어, 교외로 나가야 하는 기존의 놀이공원보다 접근성이 훨씬 좋다. 교통 체증 속 장거리 운전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한여름 더위나 한겨울 추위에도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 대형 쇼핑몰 인근에 자리 잡고 있어 쇼핑과 놀이를 한번에 즐길 수도 있다.

그런 여러 장점들 덕분에 이곳은 개장 4개월 만에 이용객 10만 명을 넘겼으며, 1년간 30만 명 이상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8년 8월 이곳을 취재한 한 게임 전문 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일일 누적 입장객이 평균 2,000명 이상이며 전체 방문객의 약 80%가 10~30대였다”고 한다.

가상현실 테마파크는 도심 속에 위치하고 있어,
교외로 나가야 하는 기존의 놀이공원보다 접근성이 훨씬 좋다.
교통 체증 속 장거리 운전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한여름 더위나 한겨울 추위에도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몬스터VR 테마파크’에서는 헌터스 게임이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이다. ⓒ 몬스터VR

강원도 홍천 비발디파크에 조성된 실감형 미디어 테마파크. 이곳에서는 산 전체에 영상을 투사하는 미디어 파사드, 홀로그램과 사물인터넷 기반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프로그램과 함께 다양한 VR 게임도 만날 수 있다. ⓒ CJ헬로

대중의 관심
‘가상현실’이란 단어는 과학계가 아닌 연극계에서 먼저 쓰였다. 1930년대 프랑스 극작가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는 에세이집 <연극과 그 이중>(Le Théâtre et Son Double)에서 관객이 극장에서 보는 것은 실제 배우가 아니라 ‘빛과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상현실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이후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이반 서덜랜드에 의해 1968년 HMD의 원형이 개발되었으며, 1989년에는 재론 래니어가 ‘컴퓨터로 재구성된 가상의 공간’이라는 현재의 가상현실 개념을 정립했다. 그러고 보면 가상현실은 21세기 과학의 총아라기보다는 20세기 문화의 유산으로 볼 수도 있다.

2017년 3월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열린‘VR 엑스포 2017’에는 4개국 53개 가상현실 관련 업체가 참여했으며, 3일간 참관객 약 1만 4,000명이 방문했다. 이 전시에는 비디오 게임 외에 여행, 훈련, 운동, 건강, 건축, 교육 분야 등에서 다양한 가상현실 응용 기술이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2018년 12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VR 엑스포 2018’에는 국내외 113개 업체들이 참여해 더욱 큰 규모로 진행됐다. 올해 10 월 2 일부터 4 일까지 열리는 ‘VR 엑스포 2019’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200 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VRAR산업협회는 2016년 1조 4,000억 원 규모였던 국내 가상현실 시장 규모가 2020년에는 5조 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가상현실 테마파크의 확산은 근래에 국내에서 새로운 여가 산업이 확산되어 온 하나의 패턴을 확인해 주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약 20년 전에는 PC방이 줄줄이 생겼고, 2000년대 초반에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등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방’이 성행한 것처럼 최근 몇 년 사이 가상현실 게임이 화제가 되자 가상현실 테마파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상현실 테마파크와 손잡고 영향력을 키우려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물꼬 터진 확산
우선 케이블방송 사업자인 CJ헬로는 대명리조트와 함께 가상현실 테마파크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8년 6월 대명리조트 내에 ‘헬로 VR어드벤처’를 개장했는데, 주로 가족 단위 방문객을 겨냥한 기구와 게임방을 갖췄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업계 최초로 가상현실 체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송도 몬스터VR을 개장한 바 있는 업체 GPM과 손잡고 2018년 8월 서울 광진구 자양동 지점 10층에 가상현실 테마파크를 열어 60개 이상의 콘텐츠를 내놓았다. 대학가 상권이므로 주말에도 친구나 연인 등 젊은 고객 비중이 높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의 한 IT 전문 기업은 2018년 11월 국내 최대 규모의 가상현실 테마파크 ‘VR스테이션’을 서울 강남역 인근에 오픈했다. 총 면적 3,960㎡ 규모에 4개 층으로 조성된 이 테마파크는 국내외 유명 가상현실 게임을 두루 선보이고 있다. 해외 유명 게임업체와 콘텐츠 독점 공급 계약도 체결했으며,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영화, 미디어아트, 웹툰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도 함께 소개하고, 특히 영화의 경우 최고급 사양의 헤드셋과 모션 체어를 제공한다.

가상현실 테마파크 전문 기업인 일루션월드는 올해 1월 서울 동대문 굿모닝시티 쇼핑몰에 국내 최대 수준인 약 6,600㎡ 규모로 ‘동대문 VR 일루션월드’를 개장했다. 이곳에는 일반적인 가상현실 놀이 콘텐츠 외에도 미래 세대를 위한 진로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상현실 테마파크의 경쟁이 가속화되자 약 30년 동안 테마파크 사업을 해 왔던 롯데월드 어드벤처도 확산 열기에 합류했다. 롯데월드는 “현재 가상현실 테마파크들이 주로 게임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데, 앞으로 테마파크에 어울리는 놀이 기구를 개발해 차별화시키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이처럼 가상현실 테마파크는 개인의 일상적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가상현실을 친숙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앞으로 꿈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상현실 놀이 기구들이 더 개발되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동환(Kim Dong-hwan 金東桓) 세계일보 기자(Reporter, The Segy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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