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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2018 SPRING

생활

라이프스타일 낚시는 어떻게 대중 레저가 되었나

나이 든 아저씨들이나 즐기는 취미, 아내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편들의 주말 여가 활동으로 여겨졌던 낚시가 요즘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체험형 레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장비와 기술이 발전한 게 주요 원인인데, 여기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빈번하게 낚시가 다루어지면서 젊은 세대에도 낚시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됐을 무렵 아버지는 낚싯대를 올리는 법, 지렁이나 떡밥 같은 미끼를 끼는 요령 등을 상세히 가르쳐 주셨다.
“물고기가 입질을 시작하면 찌가 조금씩 움직인다. 그러다 찌가 물속으로 쑥 들어가거나 물 밖으로 올라와서 넘어지면 그때 낚싯대를 재빠르게 올리면 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야속한 물고기들은 입질조차 하지 않았다. 지루함에 잠시 한눈을 팔던 순간 갑자기 찌가 물속으로 확 들어갔다. 그 순간 혼이 나간 것 같았고, 심장이 요동쳤다. 허공에서 파닥거리는 물고기의 움직임이 손끝에 짜릿하게 느껴졌다. 손바닥만 한 참붕어였다. “음, 이제 너도 낚시의 맛에 빠져 버린 거다!”
아버지의 의도가 아들을 낚시의 매력에 빠뜨리는 거였다면 완벽한 성공이었다. 그 후로 나는 틈만 나면 호수로, 바다로 낚시를 하러 다녔으니까.

낚시의 유래
낚시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호숫가에서 흥미로운 모양의 돌조각들이 발굴됐는데, 그 모양이 현대의 낚싯바늘과 거의 유사했다. 이 땅의 사람들이 이미 4,500년 전부터 낚시로 수렵 활동을 했음을증명하는 유물이었다.
문헌상으로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낚시에 대한 오래된 기록들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는 신라 제4대 석탈해왕이 “낚시로 고기를 잡아 어머니를 공양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낚시에 대한 이야기는 주요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고려와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선비들의 보편적인 취미로 정착했음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려 말 학자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어기만조」(魚磯晩釣)를 비롯하여 조선 시대 문신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어부가」(漁父歌), 이 외에도 이황(李滉, 1501~1570), 이이(李珥, 1537~1584), 박인로(朴仁老, 1561~1642) 등 조선 시대의 학자들이 남긴 시와 시조 등 낚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다수에 이른다.
낚시는 그림의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조선 중기 화가 이명욱(李明郁, ?~?)의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와 조선 후기 화가인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의 「어옹도」(漁翁圖)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낚시와 관련된 이론서도 전해진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이 지은 『약천집』(藥泉集) ‘조설(釣說)’ 편에는 낚싯대와 바늘, 찌, 미끼 사용법은 물론 낚시 기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점점 대중화되는 낚시 문화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시장 조사 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가 매주 시행하는 ‘여행 형태 및 계획 조사’에 의하면, 2017년 10월 둘째 주 여행을 가서 하고 싶은 활동으로 낚시가 40%로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이어 등산이 31%, 해양 스포츠가 28%로 나타났다. 오랫동안 1위를 지켜 왔던 등산을 제치고 처음으로 낚시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해양수산부에 의하면 해마다 낚시 인구가 늘어 2016년에는 전체 낚시 인구가 700만 명을 넘었고, 바다낚시를 즐긴 사람도 343만 명에 이르렀다.
사실 낚시는 그동안 ‘아저씨’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남편이 낚시를 좋아하면 아내가 ‘주말 과부’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였다. 낚시터 풍경 하면 떠오르는 장면도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날리며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낚싯대를 쳐다보고 있는 중장년 남성들의 모습이었다. 그랬던 낚시 문화에 최근 큰 변화가 일고 있다. 20~30대 여성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대거 낚시터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 붐을 이루었던 캠핑 문화가 한층 진화한 것이 바로 낚시다.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 아래 대청도에서 만난 김정주(金正周), 이미진(李美眞) 씨 부부는 낚시에 푹 빠진 커플이다.
“원래 우리 부부는 캠핑을 좋아했는데, 제주도에서 우연히 배낚시에 동행하면서 고등어를 엄청 잡았어요. 낚시가 그처럼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날로 도구를 사서 주말마다 함께 다닙니다.”
김 씨는 “카본으로 만든 고급 릴낚시 세트는 물론 구명조끼에 의자까지 각종 장비를 구입하는 데 400만 원 가까이 썼다”고 했다. 이 정도 지출이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질 만도 한데 아내 이 씨의 반응이 의외였다.
“이전에 남편이 사회인 야구를 할 때는 주말마다 혼자 운동하러 가서 저 혼자 심심했는데, 낚시를 하면서부터는 둘이 같이 장비도 의논하고 주말 여행 계획도 짜면서 대화가 늘었어요.”
부부는 전날 저녁 7시부터 한숨도 자지 않고 20시간이 넘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느냐고 묻자, 남편 김씨가 우럭과 부시리, 점성어 등 물고기 10여 마리가 가득 담긴 어망을 들어 보였다.
“낚시라는 게 참 묘해요. 안 잡힐 때는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한 마리라도 잡히면 짜릿함이 말할 수가 없어요. 이 맛에 낚시를 합니다.”
대답하는 중간에도 찌가 움직이자, 그의 눈길이 재빨리 낚싯대로 옮겨 갔다.

젊은 층이 애용하는 인스타그램에서 ‘낚시하는 여자’를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1만 3,000여 개의 관련 사진이 주르륵 뜬다. 남성 중심의 기존 동호회 문화에서 여성 회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도 하다.

젊은 여성들도 낚시터로
최근에는 특히 여성 낚시 인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젊은 층이 애용하는 인스타그램에서 ‘낚시하는 여자’를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1만 3,000여 개의 관련 사진이 주르륵 뜬다. 남성 중심의 기존 동호회 문화에서 여성 회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도 하다. 미혼 여성이 낚시에 몰입하는 것은 시대가 변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매달 전국 바닷가를 돌며 출조 행사에 나서기도 한다. 물론 남편과 아이를 동반한 여성 회원들도 많다.
한 낚시 전문가는 “낚시 인구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등산 인구가 줄어든 영향도 있을 것”이라면서 “등산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취사도 못하는 등 제약이 많지만, 낚시는 그런 제약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따분하게 앉아만 있을 거라는 선입견과 달리 상당히 다이내믹한 레저”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자신이 낚은 물고기를 사진으로 찍어 SNS에 과시할 수 있는 점도 낚시가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매력으로 꼽았다.
낚시는 ‘나홀로 여행족’들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새로운 ‘힐링 취미’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결과만 중시하는 승패 문화와 경쟁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요가, 등산 같은 취미를 찾기 마련인데 낚시 역시 그런 힐링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TV 예능 프로그램들도 한몫
또한 낚시는 지난해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레저 활동이기도 했다. EBS는 「성난 물고기」라는 낚시 전문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기존의 인기 프로그램인 「정글의 법칙」이나 「삼시세끼」 등에서도 낚시가 중요한 에피소드로 등장했다. 여기에 오래 전부터 낚시 애호가로 소문난 탤런트 이덕화(李德華), 코미디언 이경규(李敬揆) 등을 내세운 프로그램 「도시어부」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세몰이를 하고 있다. 낚시라는 레저와 TV 연예가 만나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비단 미디어의 영향만이 낚시 전성 시대의 문을 연 것은 아니다. 젊은 층이 만지기 징그러워하는 지렁이 같은 생미끼 대신 실리콘이나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인조 미끼인 루어가 개발된 것도 낚시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루어 낚시로 잡을 수 있는 어종이 한정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루어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주꾸미, 광어, 우럭, 대방어, 농어 등 인기 어종 대부분을 낚을 수 있게 됐다.
입문자들이 늘어나면서 낚시터들은 시설 투자를 늘리고 맞춤형 강습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손님 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현대식 시설로 여성과 젊은 층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원하는 손님에겐 미끼를 바늘에 꿰어 물고기를 잡기까지 전 과정을 직원들이 일대일로 강습하기도 한다. 물론 유튜브 등 온라인에도 초보 낚시인들을 위한 강의 영상들이 가득하다.
이제 남은 숙제는 이러한 붐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낚시의 대중화를 넘어 관련 산업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최병일(Choi Byung-il 崔昺一) 한국경제신문 여행∙레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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