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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2017 SPRING

생활

라이프스타일 디지털단식


스마트폰이 시간 도둑임을 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그물망에서 놓여난 삶을 살아보자는 결심을 제대로 실행하기란 막상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디지털 단식’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고 이를 위한 캠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

런던행 비행기 탑승까지 30분 남았다. 로밍하지 않아 ‘벽돌’에 불과한 스마트폰으로 잘 지낼 수 있을까? 딱히 할 말 없는데도 나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단톡방에 유난히도 자주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거기에서도 카카오톡 되는 거지?”
보안 검색대 통과 전 걸려온 상사의 전화에 “아뇨!”라고 대뜸 답해버렸다. 와이파이가 되는 공간을 찾을 때마다 메시지를 유심히 챙기면 될 테지만, 멀리 떠나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몸만 떠났을 뿐 스마트폰에 묶여 지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디지털에 갇힌 삶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점심 먹으러 나갈 때마다 스마트폰을 사무실에 놓고 다녔다. 산 지 3년 가까이 되어 부쩍 무겁게 느껴지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채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점심시간, 아래로 처지는 건 위장 하나면 충분하니까. 그리고 “밥 먹을 때만이라도 앞사람 얼굴 좀 봅시다.”가 내 주장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갇혀 사니 점심시간만은 자유롭고 싶고, 직업이 기자이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비교적 그런 자유가 허락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긴 그마저도 원활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를테면 밥 먹고 돌아와 책상 위 스마트폰을 확인하면 부재중 전화가 수없이 찍혀 있을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1분 간격으로 찍힌 부재전화 다섯 통이 모두 “밥 먹을 사람 없으면 같이 밥이나 먹자”는 같은 부서 선배 호출이었던 적도 있다!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서른두 살 이 아무개 씨의 하루는 스마트폰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자는 사이 단톡방에 뜬 대화를 확인하고, 페이스북 켜서 업데이트된 글을 본다. ‘봐야 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회사 도착 후, PC를 켜면 모바일 메신저 PC 버전이 자동으로 뜬다. 업무를 위해 부서 단톡방 내용도 확인해야 하지만, 친구들 단톡방에서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업무 내내 이씨는 화면에 뜨는 대화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일 집중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오후 업무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퇴근 중에도 스마트폰을 놓을 줄 모른다. 버스, 지하철을 오르내리는 동안 손에서 스마트폰이 떠나지 않는다. 이어폰 꽂고 한 손에 스마트폰 든 사람이 지하철 승객 10명 중 8명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에 돌아와도 자기 전까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검색을 하거나 소셜 네트워크 에 참여한다. 이씨의 하루는 다음 날 기상시간에 맞춰 알람을 설정한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놓고 눈 감은 후에야 끝난다.
네 살 아들을 키우는 주부 서른여덟 살 최 아무개 씨의 경우를 살펴보자.
남편이 출근하고 오전 8시쯤 아침을 먹는다. 다행히 아들이 깨지 않아 여유롭지만, 아이가 눈 뜨는 순간 최씨의 오전 일과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최씨의 아들이 스마트폰을 찾기 시작한 건 엄마 탓일 수도 있다. 우는 아들을 달래려 스마트폰으로 인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뽀로로 영상을 보여줬더니, 울음을 뚝 그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후로 최씨는 아들 달래는 데 뽀로로에게 기대는 날이 더 많아졌다.
‘스마트폰 보모’ 역할은 대중교통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영상만 보여주면 아들은 입을 꾹 다문다. 아들 돌보기에 효과를 발휘한 스마트폰은 이제 최씨의 손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느 날, 최씨는 날벼락 같은 상황을 맞았다. 눈 비비는 아들을 안과에 데려갔더니 시력이 낮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밤낮 스마트폰 화면을 가까이 본 탓에 시력이 나빠진 것인데, 의사는 안경을 써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유치원도 안 들어갔는데 안경이라니. 최씨의 가슴은 그렇게 무너졌다.

디지털 단식을 돕는 애플리케이션들
미래창조과학부가 한국정보화진흥원과 공동으로 만 3~59세 스마트폰 및 인터넷 이용자 1만8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5년 스마트폰•인터넷 과의존도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여기서 ‘과의존’이란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해서 금단과 내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상생활 영위에 장애가 일어나는 상태”를 뜻한다. 정도에 따라 ‘고위험군’과 ‘잠재 위험군’으로 나누는데, 응답자 2.4%가 ‘고위험군’, 13.8%가 잠재 위험군으로 드러났다. 2011년 설문조사 때 고위험군이 1.2%, 잠재 위험군이 7.2%였던 것과 비교하면 4년 만에 두 수치 다 대략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전문가의 권고,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빠져 지내는 일상을 교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힘입어 ‘디지털 단식’ 또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이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고 청소년을 위한 디지털 단식 캠프가 기획되고 있으며, 스마트폰 중독을 스마트폰으로 고친다는 애플리케이션도 여러 개 등장했다.
스마트폰에서 SNS, 게임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지우는 식으로 소극적인 디지털 디톡스를 꾀하던 사람들이 그것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느낄 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단식 애플리케이션들은 대개 일정 시간 스마트폰을 쓸 수 없게 제한을 거는 형식이다. 잠금 설정을 완전히 풀려면 결심을 깨는 대가로 일정 금액을 결제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한 모바일 프로그램 제작사의 애플리케이션은 사용량 모니터링, 중독지수 계산, 예약 기능을 활용한 스마트폰 통제, 사전 사용량 계획을 통한 자녀 보호 등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한 가지 앱을 오래 쓸 때 경고음이 울리고, 특정 시간 스마트폰 알림 소리나 인터넷 기능을 차단해 오프라인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등이 눈길을 끈다.
다운로드 100만 건을 돌파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앱은 스마트폰 화면 켠 횟수를 알려준다고 했다. 이 외에 전체 스마트폰 사용시간뿐만 아니라 특정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시간 별도 파악이 가능하다고 했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의 관련 애플리케이션 아래 달린 사용자 후기를 보니 하루에 얼마나 긴 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지 깨닫게 될뿐더러 중독 패턴까지 파악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는 사용자가 여럿 있었다. 더 강력한 기능이 포함되었으면 좋겠다는 사용 후기도 더러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을 멀리 놓고 쳐다보지 않으면 될 일인데, 디지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현실이 매우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단식의 실패
디지털에서 해방된다는 게 꿈은 멋지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점심시간에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나를 한 선배가 따라 한 적 있다. 스마트폰에 매여 지내는 게 지겹지만 차마 인터넷이 안 되는 구형 전화기로 갈아타지는 못하고, 점심시간 짧게나마 디지털에서 해방되겠다고 외쳐댔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점심 시간 식당에 마주 앉은 그 선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발견됐다.
"뭐예요. 그렇게 결심이 짧아서 되겠어요?”
“점심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으레 인터넷 뉴스를 봤는데 그걸 안하니 어딘지 이상하고 허전하고.”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30대 황씨는 디지털 단식을 하겠다고 말했던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과감히 전화기를 구형으로 바꿨지만, 모바일 메신저와 인터넷을 쓰지 못해 답답하다며 결국 일주일 만에 스마트폰으로 돌아왔다.
황씨는 “처음에는 마음이 가벼웠다”며 “사흘 정도 지나니 나만 소외된 것 같은 기분이 든 데다가 출퇴근 내내 인터넷을 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단식을 한답시고 스마트폰을 안 쓰는 건 비추천”이라며 “하루에 몇 시간만 쓰는 식으로 자제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전문가의 권고,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빠져 지내는 일상을 교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힘입어 ‘디지털 단식’ 또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이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고 청소년을 위한 디지털 단식 캠프가 기획되고 있으며, 스마트폰 중독을 스마트폰으로 고친다는 애플리케이션도 여러 개 등장했다.

함께 모여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탁자 한쪽에 자신들의 스마트폰을 쌓아놓았다. 티 타임을 위한 짧은 디지털 단식이다.

짧았던 나의 디지털 단식 여행
런던에 머무는 나흘 동안 자유로웠다. 일하지 않으니 스마트폰을 꺼놔도 되고(와이파이가 되는 숙소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 부모님께 안부 문자 보낼 때만 사용했다), 시간 확인은 손목시계가 있으니 문제 없었다. 여행 겸 디지털 단식 계획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스마트폰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 같아 슬쩍 미소도 띠었다. 문제점이 드러난 것은 파리에서였다.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파리 맛집을 찾아 수첩에 적어놓았는데, 타지에서 홀로 돌아다니니 글자로 적힌 정보를 파악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실시간 정보가 꼭 필요한 상황이 닥치자 디지털 단식은 곧바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캡처해둔 지도가 생각나서 ‘벽돌’ 스마트폰을 오랜만에 켰다. 현지인들에게 저장된 지도를 열어 보여 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물었지만 대부분 구글맵이 켜진 줄 알고 화면을 확대하려고 했다.
“What…?”
“Sorry, this is just an image. I can't use the internet.”
같은 숙소에 묵던 한국인 관광객과 미슐랭 3스타 맛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각자 돌아다니다가 점심 때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겨우 식당을 찾았을 때 그분은 나를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식사를 막 마친 뒤 냅킨으로 입가를 닦던 참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왜 이렇게 길 찾기가 힘든 거예요?”
배고플 시간이 지나니 허기는 사라지고 다리만 아팠다. 짜증이 났다. 메뉴판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직원은 오후 2시가 지나 점심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양해를 구했다. 뭐?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6분. 6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미슐랭 3스타 맛집을 구경만 하고 나와 다른 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일행의 스마트폰에 의지했기에 그나마 괜찮은 식당을 헤매지 않고 금방 찾아갈 수 있었던 게 다행이랄까.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에…”기장의 착륙 안내 방송이 끝나기도 전, 스마트폰부터 켰다. 화면에 ‘LTE’ 안테나가 뜬 게 무척 반가웠다. 밀린 카카오톡 메시지가 상당했다.
‘이제야 살 거 같네!’
당분간 디지털 단식은 물 건너갔다.

김동환 (Kim Dong-hwan, 金東桓) 세계일보 디지털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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