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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2018 SPRING

생활

연예토픽 「아이 캔 스피크」, 말해야 하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위안부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룬 영화가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김현석(Kim Hyun-seok 金賢錫) 감독의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가 개봉을 앞두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 영화는 누적 관객수 약 330만 명을 기록하며 비교적 좋은 흥행 성적을 냈고, 기자와 평론가들에게도 높은 평점을 받았다.

지난해 말 한국의 각종 영화상 시상에서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거의 모든 중요한 상을 나문희(Na Moon-hee 羅文姬)가 차지했다. 청룡영화상 여우 주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 주연상, 디렉터스컷어워즈 여자 연기자상,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여우 주연상, 국제앰네스티 특별상, 그리고 올해의 여성 영화인상까지 일일이 거론하기도 숨가쁘다. 영화 전문지 『씨네21』에서 기자와 평론가 26명이 선정한 ‘올해의 여자 배우’ 역시 그였다.
데뷔한 지 57년이 된 77세의 여배우에게 한국 영화계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보낸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주로 조연을 맡아 왔던 노배우에게 쏟아진 이 같은 찬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그의 탁월한 연기력뿐만 아니라 그가 출연한 영화「아이 캔 스피크」에 보내는 응원이기도 했다.

품앗이 전통을 현대에 맞게 재현하다
이 영화는 2007년 미국 연방하원에서 통과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 121) 표결을 앞두고,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Lee Yong-su 李容洙) 할머니가 공청회에서 증언하기까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증언 이후 미국 하원 본회의는 일본 정부에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인정과 사죄, 역사적 책임 이행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제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은 한국, 중국, 동남아를 비롯한 점령지에서 젊은 여성들을 강제 징용하거나 납치, 인신매매하는 등의 방식으로 데려가 성노예로 착취했다. 그 인원이 무려 2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피해자의 대다수는 어린 한국 여성들이었고, 현재 국내에는‘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된 할머니 가운데 32명만이 생존해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일본 정부의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 인정과 공식 사과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2014년 여성가족부가 주최하고 CJ문화재단이 주관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 당선작으로, 일본 팬들의 반발을 우려하는 젊은 스타 배우들의 거절로 인해 캐스팅과 제작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가 이용주(Lee Young-ju 李勇周) 감독의 영화 「건축학개론」 등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이제훈(Lee Je-hoon 李帝勳)이 2017년 초 합류를 결정하면서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문희는 이미 2년 전부터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있던 터였다. 그가 연기한 극중 나옥분 할머니는 20년간 8,000건의 민원을 구청에 제기한 ‘민원왕’이다. 동네 방범등 고장에서부터 상가 재개발 문제에 이르기까지 끼어들지 않는 일이 없다. 그래서 구청 직원들에게는 ‘도깨비 할머니’로 불린다. 동네 사람들도 이상한 노인네라며 수군댄다. 이제훈이 역할을 맡은 구청 신입 직원 박민재 주임이 옥분 할머니의 민원을 도맡게 되면서부터 세대를 넘나드는 둘 사이의 우정 이야기가 펼쳐진다. 옥분 할머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어를 가르쳐 달라면서 박 주임에게 매달리고, 이를 피하던 박 주임은 자신이 부양하는 동생의 끼니를 옥분 할머니에게 부탁하며 영어 교습을 시작한다.
한국에는 과거 농경시대부터 ‘품앗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여기서 ‘품’은 ‘어떤 일을 하는 데 들어가는 힘이나 수고’, 즉 노동력을 말한다. ‘앗이’는 ‘상대방에게 받을 것에 대비해 먼저 일해 주는 것’을 뜻한다. 한국인들은 품앗이를 통해 농사일에서부터 집안일, 아이를 돌보는 일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노동력을 이웃과 주고받으며 부족한 일손을 메워 왔다. 세계 각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 오는 이웃 간의 협력 시스템은 지역 공동체를 단단히 유지시켜 온 밑바탕이기도 하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 할머니와 박 주임의 협력은 이 같은 품앗이 전통을 현대에 맞게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늙은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한쪽은 밥을 지어 먹이고 다른 한쪽은 영어를 가르친다는 내용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한층 의미 있게 다가오는 설정이다.

알고 이해하면 미안해진다
두 주인공의 협력이 ‘품앗이’라면, 동네 시장 상인들 사이에 형성되는 공감대는 ‘두레’에 빗댈 수 있다. 두레란 품앗이를 하는 이웃들이 모여 이루는 좀 더 큰 단위의 지역 공동체를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이 같은 협력을 통해 많은 인원이 필요한 농사의 인력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시장 상인들은 이 영화의 세 번째 주인공이다. 시장에서 홀로 옷 수선집을 운영하는 옥분 할머니와 주변 여성 상인들의 자매애는 영화를 한층 풍성하게 한다.
이 대목에서 관객이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옥분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상영 시간의 절반 이상이 지난 뒤에야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영화는 옥분 할머니를 비롯한 구청 직원들과 시장 상인들의 소소한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주변 사람들은 동네의 모든 일에 간섭하고 나서는 옥분 할머니가 탐탁지 않다. 그러다 옥분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였고 영어를 공부하려는 목적도 이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박 주임은 물론 동네 모든 사람들 사이에 미안한 감정이 번진다. 사실을 알지 못해 생겼던 오해와 증오가 미안함으로 바뀌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보다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기는 오해는 얼마나 많은가. 그 속에서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섣불리 판단하는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인터넷 세상에서 오해로 인한 혐오는 얼마나 쉽게 번지는가….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라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난제를 오늘날의 보편적인 사회적 문제로 감싸 전달함으로써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작 말하기 어려운 건 여성으로서 식민 지배자의 성노예로 착취당한, 기억하기조차 고통스러운 참혹한 과거일 것이다. 옥분 할머니가 “네, 말하겠습니다.”(“Yes, I can speak.”)라고 말하기까지는 6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고통의 구원에 대한 영화적 해법
이 영화에서 여러 인물들이 느끼는 미안함은 고스란히 사과로 돌아온다. 박 주임과 시장 상인들, 말 못할 과거를 지닌 누이를 애써 잊고 살던 남동생, 그리고 수많은 미 의회 의원들이 옥분 할머니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이 사죄는 실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가해자들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극중 청문회 증언 장면에서 옥분 할머니는 일본 당국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피해자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미안하다, 이 말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I am sorry, is that so hard?”)
정작 말하기 어려운 건 여성으로서 식민 지배자의 성노예로 착취당한, 기억하기조차 고통스러운 참혹한 과거일 것이다. 옥분 할머니가 “네, 말하겠습니다.”(“Yes, I can speak.”)라고 말하기까지는 6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 명필름의 심재명(Shim Jae-myung 沈載明) 대표는 월간지 『GQ』에 기고한 글을 통해 “폭력과 아픔을 전시하는 영화적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고 행동하는 주체적 여성을 온전히 그렸다는 데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썼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핵심은 ‘제3자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하는’ 데 있다. 고통을 묻어두고 잊을 것이 아니라 공개하고 공감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얼마 전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여배우들의 잇따른 성폭력 고발에 따라 영화계에서 퇴출됐다. 중동의 차도르를 쓴 여인에서부터 할리우드의 스타 여배우에 이르기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침묵해야 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여성의 ‘강요당한 침묵’은 버젓한 문명 사회에서, 번듯해 보이는 직장에서, 우리 주변의 평온해 보이는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옥분 할머니처럼 침묵을 깨고, 몰랐던 자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이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침묵 속에 갇힌 고통을 구원하는 길이라고 「아이 캔 스피크」는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송형국(Song Hyeong-guk 宋亨國)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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