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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2017 WINTER

생활

연예토픽 넷플릭스는 과연 무엇을 바꾸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봉준호(Bong Joon-ho 奉俊昊) 감독의 영화 「옥자」의 개봉을 두고 벌어진 갈등은 변화하고 있는 영상 소비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영화관 개봉과 인터넷 스트리밍 개봉은 영화를 어디에서 보는가 하는 상영 방식의 문제를 넘어 영상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서서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 5월에 개봉된 「옥자」는 영화관 상영과 동시에 넷플릭스의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로 전 세계 방영을 시도한 한국 최초의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바로 이런 특수한 상영 방식 때문에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칸국제영화제에서는 이 작품을 과연 수상작 후보로 올려도 되는지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의문 속에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로 상영되는 영화에 대한 불편함이 내재해 있었다. 영화라면 모름지기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1988년작 「시네마천국」에서 주인공 토토가 느꼈던 아날로그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인터넷으로 상영되는 영화를 과연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한국에서 「옥자」가 개봉될 당시 국내 3대 멀티플렉스 체인이 일제히 상영 거부를 선언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이 영화는 한국 내 대부분의 영화관을 장악하고 있는 멀티플렉스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고, 일부 중소 영화관들을 찾아가거나 넷플릭스에 가입해 인터넷으로 관람해야 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영화의 남다른 상영 방식이 촉발시킨 ‘과거’와 ‘미래’의 부딪힘이다. 거대 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아날로그식 관람 방법을 최적화하여 영화를 보는 방식을 독점해 왔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 등장한 디지털 방식을 자신들의 사업적 기반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제작과 유통, 배포까지 모두 수직계열화하여 독과점을 공고히 하는 현 상황 속에서 디지털 방식의 관람이 다양성 차원에서는 훨씬 낫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넷플릭스가 바꾸어 놓은 것들
인터넷(net)’과 ‘영화(flicks)’의 합성어가 기업 이름인 넷플릭스는 1997년 DVD 배달업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온라인 기반의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됐다. 한국에서는 2016년부터 서비스가 시작되어 누구나 원하면 한 달에 최소 7.99달러 정도 내고 가입해 넷플릭스가 전송권을 보유한 영화, 드라마 등을 즐길 수 있다. 일정 금액을 내면 그 기간 동안 화제가 된 미국 드라마는 물론이고 할리우드 영화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넷플릭스가 가진 강력한 무기이다.
2017년 7월에 발표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위클리 글로벌」 25호에 의하면, 넷플릭스에 가입한 전 세계 회원 수는 무려 1억 4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이 회사는 디지털 방식의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뉴미디어 플랫폼처럼 보인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단지 유통을 위한 플랫폼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콘텐츠 제작사이기도 하다. 첫 행보는 2013년 방송된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였는데 1억 달러를 투자해 만들었다. 넷플릭스는 이 드라마로 크게 성공하여 콘텐츠 제작사로서 위상을 갖추게 됐다. 앞서 얘기한 영화 「옥자」에는 한국 영화사상 최대 제작비인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넷플릭스가 가져온 혁신은 단지 오프라인의 영상 콘텐츠 유통 방식을 온라인으로 바꿔 놓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디지털 유통 방식에서 파생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좀비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가입자에게 유사 장르의 콘텐츠들을 모아서 제시해 주는 식이다.
이것은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살펴보며 선택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큐레이션의 편의를 제공해 준다. 즉 과거에는 관람자가 각각의 콘텐츠를 찾으러 다녔다면, 이제는 그들의 취향을 파악해 적합한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얻어지는 데이터는 더 좋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밑자료가 된다. 이렇게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제작물은 보다 정교하게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함으로써 성공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콘텐츠 유통 방식이 가져올 변화들
사실 「옥자」의 넷플릭스 동시 방영은 이미 우리가 들어와 있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 소비 방식을 드러내는 일이다. 당장은 마찰을 동반하겠지만, 결국은 이 방식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우리의 미래가 디지털에서 갑자기 아날로그로 선회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방식은 지금의 논란과 무관하게 향후 대중문화 유통 방식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내려는 콘텐츠 제작사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해 주던 디즈니나 21세기 폭스 같은 회사가 근래에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경향의 일환이다. 결국 넷플릭스가 만들어 낸 새로운 영상 유통 방식은 점점 경쟁자들을 만들어 내면서 향후의 콘텐츠 유통 방식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적 선택은 항상 기존 시스템과 갈등을 빚는다. 그리고 그 갈등에서 사실상 혼란을 겪게 되는 건 다름 아닌 대중들이다. 혁신도 좋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대중에 대한 배려 또한 중요하다.
일찍이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디어가 바뀌면 그 외형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도 바뀐다는 뜻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결국 거기에 담기는 영화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현재는 동일한 콘텐츠를 영화관에 담을 것이냐 인터넷에 담을 것이냐를 둘러싼 갈등만 있을 뿐이지만, 미래에는 애초부터 영화관용 영화와 인터넷 상영용 영화가 기획을 달리해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영화관들도 체험형 테마파크 같은 형태로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영화를 왜 꼭 영화관에서 봐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에 새로운 기술력으로 답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몰아 보기’(binge watching)가 하나의 새로운 콘텐츠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높다. 바쁜 현대인들이 시간 맞춰 TV 드라마를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주말이나 휴가 기간에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상 콘텐츠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가입하면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 유통 방식은 몰아 보기에 최적화된 콘텐츠 개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 작가 중 한 사람인 김은희(Kim Eun-hee 金恩熙)의 신작 「킹덤」(Kingdom)을 제작하고 있다. 영화에 이어 드라마 시장에까지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데, 이는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온라인 유통망을 통해 전 세계에 얼마든지 소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작가를 비롯한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큰 기회이자 도전인 것이다.
요즘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래야 해외 기업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한국의 콘텐츠를 오롯이 한국의 플랫폼에 얹어 전 세계에 유통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덕현(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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