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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SPRING

문학 산책

사진 에세이 추억 속에 불을 밝힌 시골 간이역

최근 서울에서 안동을 잇는 고속열차가 개통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제 안동 북쪽에 인접해 있는 내 고향 영주까지 1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60여 년 전인 1955년 초 어느 추운 겨울날, 열세 살 가난한 산골 소년이었던 나는 영주역에서 생애 최초로 혼자 기차를 탔다. 아침에 탄 완행열차는 낯선 이름의 많은 역들을 다 통과하고 나서 날이 어두워져 갈 무렵에야 종착역인 서울에 도착했다.

이제 그 머나먼 길을 한 시간 반 남짓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니 얼마나 큰 변화이며 발전인가! 그러나 이 새로운 교통 수단의 편리와 안락과 속도에 대한 놀라움과 고마움의 한편에는 지난 긴 세월의 밑바닥에 침전된 삶의 느리고 정다운 풍경들이 그리움과 함께 가라앉아 있다.

소년의 첫 기차 여행은 두렵고 신기하고 가슴 설렜다. 옆자리에 앉은 어른이 무얼 하러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중학교 입학 시험을 치려고 서울 간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객차 안에는 좌석과 복도에 승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객실 안이 캄캄해졌다가 곧 다시 환해졌다. 기관차가 내뿜는 검은 연기와 그을음이 열린 차창으로 들어왔다.

© 안홍범

작은 시골 역에서 기차가 멈춘다. 내게 삶은 계란을 나누어 주던 앞자리 아주머니는 침을 흘리며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보따리를 챙긴다. 객차에서 내린 아주머니와 함께 교복 입은 어린 학생의 뒷모습이 저 멀리 사라져 가는 간이역…. 코스모스 같은 일년생 꽃들이 덧없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화단…. 이런 시골 역들의 풍경은 내 기차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되었다.

이제 쾌속의 KTX 열차는 그 작은 역들을 모른 채 무심히 지나쳐 갈 뿐이다. 아니 많은 시골 역들이 오래전 그 기능을 잃고 폐역으로 철거되었다. 또는 용도 폐기된 작은 간이역 역사를 카페, 간이 음식점, 작은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사람들의 추억 속으로 소환하고 관광 상품으로 되살리기도 한다.

한밤에 선잠이 깨면 나는 간혹 어린 소년이었던 나를 그 외딴 간이역의 어둠 속에 앉혀 본다. 그리고 흘러간 내 생애의 간이역 대합실들에 흐린 불을 켜 놓고 곽재구(郭在九) 시인이 노래한 <사평역(沙平驛)에서>를 그려 본다.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김화영(Kim Hwa-young 金華榮) 문학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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