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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s of Two Koreas

2016 AUTUMN

생활

두 한국 이야기 경계인으로 경계인을 바라보는 조선족 작가 금희

금희(錦姬• Geum Hee)는 중국 내 조선족 문단에서 한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소설가이다. 지난해 말 탈북자들의 실상을 다룬 작품들을 포함한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서울에서 출간하면서 한국 문단에 등장했다.

한국 디아스포라 문학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젊은 소설가의 작품 산실은 상상보다 옹색해 보인다. 작가 금희(본명 김금희)는 중국 길림(吉林)성 장춘(長春)시 장춘역 부근 중국동포(조선족) 집거구역의 오래된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 고1 아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중국 장춘시에 거주하는 조선족 소설가 금희 씨가 문학 선배로 믿고 따르는 동북사범대학 한국어과 김영자 교수와 그 대학 교정을 산책하고 있다.

탈북자를 다룬 단편
금희 작가는 단편 ‘옥화’를 <창작과비평> 2014년 봄호에 발표하면서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 알려졌다. 이 작품은 이어 아시아출판사의 ‘K 픽션’ 시리즈의 하나로 한•영 대역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 일하는 중국 동포나 탈북자는 이제 한국 소설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소재이지만, 탈북 여성이 남한에 정착하기 이전의 이야기를 다뤄 기존의 서사와 차별화된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동포 작가의 목소리는 그 자체가 신선한 매력이어서 독자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 소설집은 올해 제10회 백신애문학상을 받았다.
‘옥화’는 북한을 탈출한 여성이 인신매매로 중국 오지의 불구 남자에게 팔려가 고된 노동 끝에 갓난아이까지 버리고 한국으로 건너가는 과정을 지켜본 체험적 이야기다. 같은 소설집에 실린 중편 ‘노마드’에도 한국에 와서 일하는 중국동포 남성과 탈북 여성의 얘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금희 씨는 자신이 탈북자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작가로 비치는 게 부담스럽고 마뜩찮다. 탈북자가 나오는 것은 많은 작품 가운데 이 두 편에 불과한 데다, 그가 궁극적으로 천착하려는 것은 사회적 약자보다는 심리적 약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탈북자 문제는 금기에 가까운 주제이다. 중국이 탈북자들의 1차 경유지여서 중국 동포 작가들에게 친근한 소재일 법하나 탈북자 소재 소설은 한국어(조선어)로 쓰더라도 사실상 발표하기 어렵다.
‘옥화’는 애당초 연변 조선어 문학잡지 <도라지>의 요청으로 쓴 소설이었다.
“청탁했던 잡지사에서 읽어보고 나서는 갑자기 민감한 소재라며 못 싣겠다고 하더군요. 정치적 내용이나 이데올로기가 담긴 얘기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안타까운 생각에 한국에서라면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하기도 해 <창작과비평>에 무턱대고 투고했지요.”
한국 문단 진출은 금희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우선 문학 분위기가 중국보다 자유롭습니다. 중국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보다 훨씬 다양하고, 투명하게 쓰고 싶은 것을 다 쓸 수 있거든요.”

한국인 이주민 4세대
증조부 때 중국으로 건너갔으니 이주민 4세대인 금희 작가는 2000년대 초반 2년여 동안 한국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다. 연길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잠시 교사로 일하다가 한국으로 왔다. 중국 동포들의 한국행이 한창 유행할 무렵이었다. 충남 청양, 대전, 대구 등지에서 중국어 강사, 모텔 청소, 식당 서빙 등의 일을 했다. 광적인 한일 월드컵축구 응원과 노무현•이회창의 대통령선거 대결이 인상적인 일로 강하게 남았다고 한다.
“같은 핏줄, 같은 민족이지만 살아온 배경이 많이 다르고, 기억도 한참 다르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써도 나는 조선족 작가구나, 한국 작가가 될 수 없구나 생각했어요.”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계인의 고민은 자연스레 작품 속에 짙게 배어 나온다. 중국 소수민족으로 체감하는 정체성 갈등, 조선족 사회의 탈북자 문제, 한국 사회로의 노동이주 체험 등이 소설에서 핍진하게 그려진다. 표제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에서 주인공은 처음으로 장만해 이사 들어갈 아파트 실내를 구체적인 개념도 없이 막연히 ‘조선식’으로 꾸미겠다고 벼르는데, 이는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이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을 찾겠다는 주인공의 뿌리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다. ‘노마드’에서는 한국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며 한국 사람은 중국동포에게, 중국동포는 탈북자에게 불신을 갖는 차별의 악순환을 목도하는 조선족 박철이의 이야기가 처연하게 다가온다. “한 종족이되 이제는 도무지 한 무리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없는 야생 이리와 셰퍼드처럼, 같은 액체지만 한 용기에 부어놓아도 도무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이라는 표현이 강렬하다.
2013년 중국에서 출간된 첫 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료녕민족출판사)>는 조선족 농촌공동체의 해체와 상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가족 제도의 모순, 물질주의로 인한 도덕과 윤리의 타락 등 중국의 개혁개방과 자본주의 도입 과정에서 요동치는 이야기들로 꾸려졌다. 조선족 농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금희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정치•경제적 격변기를 체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금희의 첫 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아래 책)는 2013년 중국 료녕민족출판사에서 발간했고 2015년 한국 창비에서 발간한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올해 제34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한국어로 소설 쓰기
<슈뢰딩거의 상자>의 문법과 띄어쓰기 같은 것들은 한국에서 출간된 <세상에 없는 나의 집>과 확연히 다르다. 정치경제적으로 북한과 더 가까운 중국에서 북한 말에 가까운 조선족 언어로 교육을 받고 작품 활동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한국 독자를 의식하고 썼지만 그가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은 당연히 힘들었다. 어떤 것은 일부러 조선족이 쓰는 표현을 그대로 썼다. 그런 점이 외려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표현들도 이야기 맥락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어서 이해를 방해하기는커녕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는 한국 작품을 많이 읽고 한국식 표현도 많이 배우고 싶으나 한계가 많다고 고백한다. “서사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 문학에서 배울 수 있지만 한국어 문장은 한국에서밖에 배울 수 없잖아요. 한국어로 글을 쓰는 만큼 세련되지는 못해도 한국 독자가 읽기에 거부감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좋은 한국어 문장을 많이 접하기 어렵지요. 인터넷을 뒤져서 정말 보고 싶은 작가의 작품을 대표적으로 뽑아서 볼 뿐이죠.”

체험의 힘, 서사의 힘
금희의 소설이 다루는 ‘디아스포라의 체험’은 최근 한국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국내의 평론가들과 독자들이 그에 주목하는 것은 체험을 정교화함으로써 실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겨우 3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22살의 이른 나이에 결혼해 아내와 엄마, 며느리로서 동년배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굴곡이 심한 삶을 체험했다. 그 녹록치 않은 인생 경험에서 길어 올린 웅숭깊은 생각이 어우러져 작품마다 깊은 맛이 난다. 작가 스스로도 그 점에 동의한다.
“아마 아이를 일찍 낳지 않았다면 등단을 빨리 할 수 있었겠지만 글의 깊이는 지금보다 떨어질 것 같습니다.”
금희는 문학평론가들로부터 현실을 뚫고 나가는 박력 있는 서사와 섬세한 심리묘사가 탁월하다고 평가 받는다. 작가는 소설에서 서사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했다.
“서사는 소설을 끌어가는 힘이죠. 한국 소설은 중국과 달리 서사를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서정성, 분위기를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중국은 서사가 없으면 소설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저는 어릴 때부터 서사가 뛰어난 <삼국연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금희는 생각이 차오르면 먼저 손으로 써 내려가고 나중에 컴퓨터로 옮긴다. 가족이 함께 사는 원룸 아파트의 한쪽 공간이 작품의 산실이다.

조선족 문단의 현실
2007년 단편소설 ‘개불’로 <연변문학>에서 주관하는 윤동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초기에 “어떤 소설을 쓸 것인가”가 아니라 “소설을 계속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중국 문단도, 한국 문단도 아닌 쇠락해가는 작은 ‘조선족 문단’에서 활동하면서 미래를 기약하기 힘들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중국 작가들은 원고료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참 창작해야 할 세대들이 생활고에 시달려서 문단을 떠나니까 공백이 생기고, 악순환이 이어지는 실정입니다. 자연히 중국 안에서 갖고 있던 조선족 문학의 명성도 많이 떨어진 상태죠. 몇 개 안 남은 문학잡지들도 운영이 너무 어렵습니다.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써 달라고 매달리는 상황이에요.”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소설 쓰기밖에 없다는 심경으로 쓰고 또 쓴다. “다양한 직업을 가져봤지만, 재미도 없고, 보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마흔, 또는 쉰이 되었을 때도 조선족 문학이란 게 남아 있을지 걱정이에요. 제 세대가 조선족 작가로 한국어 소설을 쓰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족 200만 명 가운데 조선족 문단에 속한 작가는 어림잡아 100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 사회에서 조선족 사회는 문학적으로도 특수한 소수집단이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조선족을 제외한 다른 소수민족들은 모두 중국어로 소설을 쓴다. 티베트, 위구르, 몽골족 같은 경우 자기 문자와 언어가 있고 인구도 조선족보다 훨씬 많아도 모어(母語)로 창작하는 작가들이 이제 거의 없다.
금희는 중국 문단에도 벽을 느꼈다고 한다. “줄곧 조선족 학교를 다녔으니 중국 작가들보다 중국어 구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 소설이 중국 문단에 알려지려면 번역을 거쳐야 가능합니다.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요.”

“조선족이라는 것도, 한국말을 한다는 것도 결국 제 껍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벗기고 나면 결국 금희라는 한 사람의 영혼만 남겠지요. 그래서 모든 걸 초월하는 보편적 정서를 다룬 소설을 써 보고 싶어요.”

그가 작가가 된 데는 어린 시절의 독서량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평생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집에 책이 많아 동네도서관 역할을 했다. 500여 호에 이를 만큼 주위에서는 가장 큰 조선족 시골동네에서 책장에 전래동화가 가득한 집은 ‘금희네’뿐이었다. 금희는 친구들과 뛰어놀 초등학교 시절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소설읽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꼽았다.
그의 작품에 여러 번 등장하는 장춘시 계림로(桂林路)는 한국인 가게가 많기로 유명한 거리로, 서울의 홍대앞처럼 젊은이들에게, 특히 밤에 인기가 높다. 이 거리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이어진 작가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소재로 글을 써 여러 나라 독자들과 공감하는 꿈”으로 맺어졌다.
“조선족이라는 것도, 한국말을 한다는 것도 결국 제 껍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벗기고 나면 결국 금희라는 한 사람의 영혼만 남겠지요. 그래서 모든 걸 초월하는 보편적 정서를 다룬 소설을 써 보고 싶어요. 그게 참된 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죠.”

김학순 (Kim Hak-soon, 金學淳) 언론인,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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