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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isine

2017 SPRING

생활

식재료 이야기 돼지고기, 한국인은 삼겹살을 편애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돼지고기라면 삼겹살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뜨거운 철판 위에 즉석에서 구워 드라마틱한 고소함을 즐길 수 있는 삼겹살구이는 서민의 영양식으로 널리 사랑 받고 있다.

칼집을 낸 삼겹살이 석쇠 위에서 구워지고 있다. 숯불석쇠삽겹살은 팬에 구운 삼겹살보다 풍미가 좋고 기름기도 적다.

1992년 한국 정부는 ‘자연 공원법’ 제27조를 개정하여 국립공원, 도립공원 등에서의 취사와 야영을 금지했다. 이 법은 간단히 말해 자연 속에서 휴대용 가스버너에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온 나라의 숲과 계곡이 삼겹살구이의 기름으로 더럽혀지고, 가스버너에서 타오르는 불로 산불의 위험성이 높다는 걱정스런 여론 때문이었다. 많은 국민이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자연에서 삼겹살구이를 즐기기 시작했던 1980년대부터 10여 년이 지나 이윽고 나온 조치였다.

삼겹살의 고향
돼지는 식육의 관점에서 크게 일곱 부위로 나뉜다. 머리를 빼놓고, 목심, 갈비, 앞다리, 삼겹살, 등심, 안심, 뒷다리다. 그 중 삼겹살은 비계와 살코기가 겹을 이루고 있는 배 쪽의 기름진 부위를 말한다.
출처는 분명치 않으나 삼겹살은 20세기 초 개성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장사 잘하기로 유명한 개성 사람들이 어디서 배웠는지 성분이 다른 사료를 번갈아 먹여 배 부위를 비계층과 살코기층이 겹겹이 쌓이도록 ‘혁신’했다는 것이다.
한정식 식당인 용수산의 창업자인 1928년생 최상옥 할머니는 고향에서 본 개성 삼겹살을 이렇게 회고했다.“개성의 고깃간에서는 돼지고기 삼겹살을 삶아서 팔았다. 깨끗하고 맛있었다. 돼지고기 삶은 물을 얻어다가 끓여먹는 김치찌개도 별미였다.”
삼겹살에 대한 알려진 첫 기록은 1931년에 출판된 이화여대 가사과 교수 방신영의 요리책 <조선요리 제법>에 나온다. “세겹살”, “배에 있는 고기”, “삼층돼지고기”라고 한국어 질서에 맞도록, 또 귀엽게 표현했다.

돼지고기국밥과 일본 돈가스
개성 삼겹살이 맛있었다지만,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돼지고기보다 쇠고기를 더 좋아한다. 특히 수퇘지의 강한 비린내, 흔히 돼지고기를 금하는 한방의 복약 지침 등이 그런 현상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언제나 쇠고기에 견주어 훨씬 값이 싸므로 서민들의 고기는 역시 돼지고기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돼지고기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민들이 돼지고기를 더 싸게 사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960년대에 이르러 일본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며 고기의 수요가 급증하자 1973년부터 한국에서 돼지고기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주로 기름기 없는 살코기였다.
맛 평론가 황교익은 그 즈음부터 일본인들이 돈가스에 사로잡혀 돈가스용 등심과 안심을 수입하기에 이르렀다고 해석한다. 수출하고 남은 부위는 시중에 싸게 풀렸고, 서민들은 더 자주 돼지고기를 먹게 되었다. 황교익은 돼지고기 뼈와 내장, 고기를 고아 만드는 돼지고기국밥집이 전국적으로 늘어난 것도 그런 상황의 결과라고 추정한다. 더불어 양돈업이 흥하고, 햄, 소시지, 베이컨을 만드는 육가공업이 일어났다.

축산업계, 육가공업계에서는 삼겹살의 유행이 1980년대에 들어서서 불붙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은다. 남아돌게 된 싸고 맛있는 삼겹살과 휴대용 가스버너가 결합하여 삼겹살구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삼겹살의 진화
그러나 어쩌다 삼겹살만이 유독 구이로 유명해졌는지는 뚜렷이 알 길이 없다. 충청북도 청주의 딸네집과 만수집이라는 식당에서 처음으로 삼겹살을 연탄불에 구워서 팔면서 삼겹살구이의 맛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설이 그럴듯하다.
어쨌거나 축산업계, 육가공업계에서는 삼겹살의 유행이 1980년대에 들어서서 불붙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은다. 남아돌게 된 싸고 맛있는 삼겹살과 휴대용 가스버너가 결합하여 삼겹살구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직장인들의 회식자리에 빠질 수 없는 메뉴가 되었다.

삼겹살을 여러 향신채와 함께 삶아서 식힌 뒤 먹기 좋은 두께로 썰어 접시에 담아 내는 수육 요리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돼지고기 요리 방식일 뿐만 아니라 현대에 와서는 건강식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큰 접시에는 수육과 함께 무생채, 파김치, 가오리초무침, 생오이채와 배채(왼쪽부터)가 담겼고, 옆의 작은 종지들에는 새우젓, 쌈장, 저민마늘(위에서부터)이 담겼다.

세월과 함께 삼겹살도 진화해왔다. 두터운 무쇠 솥의 뚜껑을 뒤집어 고기를 굽는 솥뚜껑 삼겹살, 레드와인에 재어 숙성시켜 굽는 와인 삼겹살에 이어, 최근에는 냉동 삼겹살을 대패로 얇게 훑은 대패 삼겹살이 유행했다. 전통 돼지고기 요리 삼겹살 애호가들은 제주 흑돼지 오겹살을 최고의 돼지고기로 꼽는다. 지방함유량이 적은 흑돼지의 삼겹살부위를 껍데기째 절단한 흑돼지 오겹살은 실제로 가장 맛있고(식감이 쫀득하다), 가장 비싸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제주 흑돼지라면 모두 토종 돼지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삼국 시대부터 길러왔다는 귀가 쫑긋하게 서고 자그마한 제주 흑돼지는 2015년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되었다. 멸종 위기에 있다는 얘기다. 현재 제주 축산진흥원이 260마리의 이 유서 깊은 돼지들을 보호하고 있다. 당연히 먹어볼 길은 없다.
먹을 수 있는 제주 흑돼지는 따로 있다. 제주 축산진흥원에서 랜드레이스, 요크셔, 듀록을 교잡하여 만든 씨돼지가 번식시킨 식육용 잡종 돼지다. 실제로 맛도 좋지만, 마케팅 과정에서 제주도 토종 이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하여 최고의 돼지고기로 자리잡았다. 스토리텔링의 시대니까.
한국인들의 돼지고기 요리는 사실상 삼겹살구이라는 신식 구이를 빼놓고는 19세기까지의 요리 방법이 지루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삶아서 그냥 썰어먹는 수육, 삶아서 무거운 돌덩이로 눌러서 쫄깃쫄깃하게 만든 편육, 양념한 구이 등이 있고, 국밥용 국거리, 김치찌개용, 고추장찌개용으로 역할이 있는 정도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제주 사람들이 먹어온 돼지고기 요리는 육지와는 달리 참신하다. 제주의 산모들은 돼지족을 푹 삶아 미역을 넣고 끓인 특별한 미역국을 먹어왔다.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제주 바다에 흔한 해초인 모자반을 넣고 끓인 몸국도 육지에는 없는 음식이다.

둥포러우, 하몬, 라후테
세계를 통틀어 돼지고기 사랑이 가장 깊은 나라는 아마도 중국이다. 2015년 중국인은 세계 돼지고기의 52퍼센트를 먹어 치웠다고 한다.
중국인은 돼지고기를 ‘고기’라고 하고 쇠고기는 ‘쇠고기’라고 한다. 중국의 ‘고기’ 요리는 자그마치 15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송나라 문인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둥포러우(東坡肉)다. 삼겹살처럼 기름 많은 부위를 술과 간장으로 찐 것이다. 이 고기의 색깔이 붉어 훙사오러우(紅燒肉)라고도 하며 마오쩌둥이 즐겼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돼지고기는 아마도 스페인의 세르도 이베리코 데 베요타(Cerdo ibérico de bellota) 품종 고기일 것이다. 이베리코는 천연의 참나무 숲에서 자유롭게 방목되어 버섯, 도토리를 먹고 자라는데 그 고기 맛이 세계 최고라고 알려져 있다. 이베리코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3년을 말린 최상급 스페인 생햄인 ‘하몬 이베리코’는 혼수로 가져갈 만큼 귀히 대접받는다.
일본의 오키나와도 “돼지는 울음소리만 빼고 다 먹는다”고 할 만큼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지역이다. 쓴맛이 나는 여주와 돼지고기를 볶은 찬프루, 중국의 둥포러우(東坡肉)처럼 삼겹살 덩어리를 간장과 소주를 넣고 달콤하게 조린 라후테(羅火腿)가 오키나와 명물 돼지고기 요리다.

혀끝의 삼겹살 기억
한국에서는 삼겹살에 치중한 지속적인 수요 증가로 삼겹살이 다른 부위보다 자그마치 세 곱이나 비싸졌으며, 수급이 원활치 않아 해마다 칠레, 독일, 벨기에, 미국, 네덜란드, 스페인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삼겹살보다 지방이 적은 앞다리, 뒷다리, 안심 부위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지만, 한국인의 삼겹살 편애는 식을 줄 모른다.

설호정 (Soul Ho-joung, 薛湖靜) 식재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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