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인은 2010년부터 건축사사무소 ‘삶것’을 운영하며, 뚜렷한 개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건축가이다. 건축은 물론 광고 캠페인, 상징 조형물 등 다양한 작업을 병행한다. 삶것을 ‘건축에 기반을 둔 디자인 회사’로 소개하는 그는 건축가가 삶의 다기한 문제를 풀어가는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건축이 '예술'이 아니라 '실용'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최적의 명료한 해법을 찾기 위해 영역을 넘나들곤 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2017년 선정작 ‘원심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설치된 이 작품은 바람과 원심력을 이용해 그늘을 만드는 가벼운 건축을 실험한 프로젝트로, 양수인의 이름을 건축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 신경섭
<리빙라이트>에서 최근의 <컬처랜드 오피스>까지 건축가 양수인이 설계한 지난 15년의 작업을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규모의 변화다. ‘이것저것’ 할 때의 ‘것’과 ‘삶’을 합친 사무소 이름 ‘삶것’의 모토처럼 그는 상징 조형물(이것)부터 대형 오피스(저것)까지 우리 삶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물들을 디자인해 왔다. 겉으로 보면 서로 무관해 보이는 작은 작업과 큰 작업 사이에는 일관된 전략이 흐른다. 주어진 조건을 그저 수용하기보다 비틀어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다. 이러한 전략가적 면모는 한국의 아틀리에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유독 두드러진다.
양수인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2010년 서울로 돌아왔다. 그가 머물렀던 뉴욕과 달리 서울은 여전히 지을 것이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은 도시였다. 그가 안정된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돌아온 이유 역시 이 도시의 다이너미즘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한국 사회가 경제적 성장을 넘어 문화적으로 성숙해지는 흐름 속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괴짜 예술가에 가까운 1인 건축가에서 출발해, 직원 20여 명을 이끄는 중형 설계사무소의 대표로 성장하는 동안 개인, 기업, 공공을 넘나들며 다양한 고객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작업의 스펙트럼 역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마치 하와이의 서퍼가 파도를 자유자재로 타듯 그는 도시의 리듬과 속도를 즐기며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하와이에 몇 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다.
가벼운 건축
삶것 건축사사무소를 이끄는 양수인은 건축가를 ‘문제 해결자’라고 정의한다. 그는 고정된 스타일에 얽매지 않고, 장소와 조건을 읽고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설계를 통해 건축과 도시, 일상의 관계를 새롭게 제안해 왔다.
ⓒ 이민희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당선작 <원심림>은 양수인을 대중에 각인시킨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이전에도 <리빙라이트>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아르코미술관·소마미술관이 공동 주최하여 청계천에 설치한 <있잖아요>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러나 경복궁 옆에 새로 생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넓은 앞마당에 세워진 이 작업은 훨씬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작업에는 양수인이 주요한 디자인 방법론으로 제시해온 ‘가벼운 건축’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집약되어 있다. <원심림>은 무거운 구조 대신 가벼운 장치로 그늘을 만드는 실험이다. 일반적으로 지붕은 구조체와 기초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바람과 회전력, 즉 원심력을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그늘을 만든다. 패브릭을 매단 장치는 모터와 플라스틱 날개를 통해 회전하며 위로 올라간다. 이들이 모여 하나의 지붕과 같은 상태를 형성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일종의 관람 환경으로 적극 고려되었다. 초록색 구름이나 버섯을 연상시키는 휴식 장치는 엄격한 그리드 체계 위에 세워진 미술관 건축에 경쾌한 감각을 더했다.
공격적인 리노베이션
문화 관련 기업 컬쳐랜드의 서울 대치동 사옥이다. 주변 건물과 채광, 조망 조건을 면밀히 분석해 공간을 배치하고, 유리 루버와 테라스, 옥상 정원을 통해 업무 공간과 외부 환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 신경섭
가벼운 건축에 이어 양수인이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또 다른 영역은 리노베이션이다. 그는 이를 단순히 기존 건물을 보존하는 행위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리노베이션이 놓인 경제적 조건과 현실에 주목한다. 그는 기후 위기와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신축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노베이션은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사회경제적 해법이 된다. 더불어 한국에서 건물은 디지털 네트워크와 즉흥적인 현장 중심 제작 방식 사이에서 완성된다. 양수인은 제작 측면에서 이 긴장 상태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리노베이션은 설계와 시공을 오가며 보다 적극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수인은 기존 건물에 깊이 개입하는 리노베이션을, 의학 용어를 빌려 ‘침습 수술’이라 부른다.
이러한 태도가 잘 드러나는 작업이 인천 <코스모40>이다. 폐수 처리 공장이었던 건물을 문화 시설로 전환한 이곳에서 그는 기존 건물의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법규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 해법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새 건물을 기존 건물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공장 내부를 관통하는 고리 형태의 구조를 삽입하고, 이를 로비와 동선으로 활용했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독립된 증축으로 인정받으면서, 새 건물만 법규를 충족시켰다. 기존 공장은 손대지 않은 채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흔적과 새로운 개입이 공존하는 재생 건축이 완성되었다.
문제 해결의 디자인
인천의 옛 화학 공장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코스모 40. 기존 산업 시설의 골조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증축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재생 건축의 모델을 제시했다.
ⓒ 신경섭
“주어진 상황에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명료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 양수인이 말하는 이 전략은 특히 오피스 건물 설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비싼 대지 위에서 의뢰인의 경제성과 공간의 효율성, 그리고 건축가의 창의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약과 규제가 많은 작업이지만,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에서 더 큰 흥미를 느낀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이 의뢰하는 빌딩 설계는 그의 성향과 잘 맞는다.
<컬처랜드 사옥>은 이러한 접근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무실, 문화 시설, 임대 상가가 결합된 복합 건물로 대지 조건에 따라 형태와 배치가 결정되었다. 남쪽에는 인접 건물이 붙어 있기 때문에 코어와 주차를 그쪽에 집중시켰다. 대신 업무 공간은 동·서·북 세 방향으로 열어 채광과 환기를 확보했다. 저층에는 동서로 길게 뻗은 공연장이 들어서고, 상층에는 일부를 들어 올린 스카이 오피스를 배치해 전망을 넓게 확보했다. 건물 곳곳에는 테라스와 옥상 정원을 두어 사용자들이 언제든 외부 환경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외관에는 유리 루버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는 서향의 강한 빛을 차단하면서도 낮과 밤의 인상을 다르게 만든다. 이 건물은 주변 조건을 읽고, 빛과 전망, 공간을 하나의 논리로 풀어낸 결과다. 마치 방정식을 풀듯 도출된 해법이다.
말로 설계하는 건축가
코스모 40 내부 모습이다. 유리와 철골로 만든 신축동을 기존 건물의 왼편에 끼워 넣었다.
ⓒ 신경섭
최근 양수인의 관심은 AI다. 다만 그는 이를 유행이 아닌 철저히 ‘도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2025년 8월 삶것이 주최한 <말(로)하는 건축가> 세미나에서 그는 AI를 활용해 실제 설계 공모안을 제작한 실험을 공개했다. 동료 건축가들의 큰 관심을 끈 이 실험의 핵심은 설계 행위의 인터페이스가 마우스에서 언어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하나의 고정된 프로그램이 아니다. 대신 상황과 필요에 따라 빠르게 생성되고 수정되며, 때로는 폐기되는 임시적 소프트웨어로 작동한다. 이는 기존의 자동화 설계 방식과는 다르다. 정해진 틀 안에서 반복적으로 최적화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낸다. 건축가는 이를 지시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양수인은 이 실험을 통해 AI가 건축가를 대체하는 존재라기보다 건축가의 언어적 사고를 실행 가능한 도구로 변환하는 매개체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육군사관학교 내 위치하는 원불교 화랑대 교당은 원불교 신자 및 장병들의 신앙 생활을 위해 지어진 시설이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은 이 건물의 핵심으로, 영적인 전이와 몰입감을 극대화하도록 유리 입면으로 디자인되었다.
ⓒ 신경섭
속도와 태도
일반적으로 건축물은 설계와 시공 과정을 거쳐 완성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오설록 티하우스는 공장에서 제작한 건축 부재를 현장으로 운반해 조립함으로써 100일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완공될 수 있었다. 건축의 주요 공정이 현장이 아닌, 공장에서 이루어졌던 프로젝트이다.
ⓒ 최용준
1975년생인 양수인은 한국 사회가 긴 개발기를 거쳐 국제 사회의 동시대로 진입하던 1990년대에 이십 대를 지나왔다. 그는 이른바 ‘X세대’라 불리는, 한국의 문화적 풍요를 처음 체감한 세대에 속한다. 이후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선진국’의 환경을 경험했고, 콤플렉스 없는 태도로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모토는 단순하다. 조직의 규모를 키우고, 삶과 일의 균형을 유지하며, 즐겁게 창작하는 것. 그는 누구보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지만, 그렇게 확보된 시간은 또 다른 흥미로운 활동으로 확장된다. 2024년에는 자신이 설계하고 공동 투자한 ‘틸라’ 사옥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후 『볼것』이라는 책자를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과 포럼 등을 열고 있다. 그의 에너지는 건축 내부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문화로 확장된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과 태도는 서울이라는 초고도 도시의 작동 방식을 능동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된다. 양수인의 건축은 특정한 스타일이나 고정된 개념이라기보다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식에 가깝다. 느리고 무거운 건축의 속성에 비해 그가 제안하는 가볍고 빠른 건축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의 현실적인 해법처럼 보인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환경은 그가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는 감각과 근육을 만들어준 최적의 테스트베드였을지도 모른다. 기존 건축의 전제를 의심하던 문제아는 이제 문제 해결사의 위치에 선 중견 건축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