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A(Society of Architecture)는 2010년 강예린, 이치훈 두 사람이 함께 설립한 건축가 그룹이다. 이들은 현대적인 삶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는 건축적 가능성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도시사회학, 역사, 미술 등 건축 이외의 분야와도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은 광학렌즈 형태로 만들어진 지름 25m의 공공미술 작품이다. 노천극장을 연상케 하는 중심 공간은 지면 아래 4m 깊이로 움푹하게 들어가 있으며 2,800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만리동은 서울역 바로 옆에 위치한 동네로, 보행자들은 서울역 고가도로를 단장해 조성한 공중 보행로 ‘서울로7017’부터 이곳까지 이동하며 시각적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
© 신경섭
SoA는 도시와 건축의 사회적 조건을 분석하며, 다양한 규모의 구축 환경을 탐구해 왔다. 비교적 초기 작업이었던 ‘지붕감각’ 또한 그러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현대카드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건축 전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서 선보였던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장소성을 고려하여, 주름지고 과장된 지붕을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했다.
SoA는 이 작품을 필두로 건축을 단순한 공간을 넘어 사회적, 감각적 경험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발전시켜 왔다. 협업, 감각, 관계, 지속 가능성, 허용 오차 등의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건축이 사회와 함께 변모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개인의 작가성을 내세우기보다는, 건축을 집단적인 노력의 결과물로 간주한다. 이러한 철학은 그들의 작업 방식과 결과물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지붕감각’은 전통 건축의 중요한 요소였던 지붕을 재해석한 작업이다. 갈대발을 활용해 대형 지붕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는 한편 발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을 통해 과거 한옥 지붕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각적 경험을 재현했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카드, 뉴욕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우승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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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감각
SoA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생산을 넘어, 감각 경험을 통해 사회적 연결을 엮어내는 데 주목한다. 이는 개인의 감각을 확장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소통을 촉진하는 건축의 잠재력을 탐색하게 한다. 앞서 말한 ‘지붕감각’과 ‘통의동 브릭웰’은 이러한 SoA의 건축 철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공동의 감각을 추구하는 건축적 실험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선 ‘지붕감각’은 개인의 감각적 경험이 어떻게 공동의 감각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촉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결합해 공간과 교감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 작품이 감각에 방점을 둔다면, ‘통의동 브릭웰’은 ‘공동’ 쪽에 더 가닿는다. 보통 ‘정원’과 ‘브릭’으로 설명되곤 하는 이 건물에는 사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통의동 브릭웰이 세워진 골목에는 1990년 돌풍에 쓰러져 죽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지역 주민들에게 쉼터 역할을 했던 천연기념물 백송이 있었다.
SoA는 이 건물이 “막다른 골목에서 역사성과 공간성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제안”이라며, “진정한 필로티로서 기능하는 것, 그리고 제2종 일반 주거 지역에서 건폐율 60%라는 제약을 극복하며 건축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려가 중요했다”고 말한다. 법규를 따르면서도 ‘해석’을 포함해야 했던 것이다. 건축을 통해 지역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SoA는 현대적 삶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는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건축가 그룹이다. 이들은 건축뿐만 아니라 공공예술, 리서치, 출판 등을 통해 건축적 고민을 풀어가고 있다. 202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초청되었다. 사진 왼쪽부터 강예린, 이치훈 건축가.
SoA 제공
수공예를 닮은 건축
‘통의동 브릭웰’은 천연기념물 백송이 있었던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터가 지니고 있는 역사성을 고려해 지어진 이 건물은 1층부터 4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개방적 원형 구조가 특징이다. 외장재로 사용된 벽돌이 독특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 신경섭
SoA는 건축에 수공예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재료의 물성을 탐구한다. 기존 건축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는 재료를 과감하게 도입하거나, 기존 재료를 사용할 때도 어떤 산업 재료가 아니라 크래프트맨십이 들어갈 만한 것에 대해 먼저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들의 건축은 실험 정신으로 빚어낸 결과물이다. ‘지붕감각’에서는 갈대를 재료로 선택했는데, 이를 위해 집요한 탐구와 실험을 거듭해야 했다.
“전형적이지 않은 재료를 찾아다니며 직접 다 만져봤다. 갈대 역시 구하기 쉽지 않았다. 순천 습지 개발 지역에 가서 구해와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수입해 오게 되었는데, 바람에 제대로 흔들리지 않아 결국 을지로에 가서 다시 찾아야 했다. 바람에 반응하는 재료와 방식을 찾는 데 정말 오래 걸렸다.”
통의동 브릭웰 프로젝트에서는 다채로운 질감과 색상의 벽돌을 혼합하여 다양한 각도로 쌓고, 이로써 독특한 패턴을 만들어냈다. 또한, 벽돌과 벽돌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여 빛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설계했다. 서울 학동사거리에 위치한 LG 플래그십 스토어 리뉴얼 프로젝트에서는 테라코타와 LED 조명을 결합하여 혁신적인 파사드를 구현했다. SoA의 이러한 시도는 재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건축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낯섦으로 무장한 그들의 건축은 우리에게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이들은 실험적인 태도가 건축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믿는다.
서울의 대표적 대학가 중 하나인 신촌은 1990년대 이후 상업 자본이 침투하면서 ‘자생적 청년 문화’라는 특유의 정체성을 잃게 되었다. ‘신촌 청년문화 전진기지’는 청년들의 창조적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곳으로, 주변 상업 시설들과 변별되는 특색 있는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특히 벽과 기둥, 지붕과 창문을 드러내는 대신 수공예적 파사드로 건물 전체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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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더로서의 건축가
한편,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하며 SoA가 쌓은 역량 중 하나는 ‘디자인 빌드’다. 재료를 직접 다루고 시공 과정을 이해하며, 디자인과 빌드 사이의 ‘허용 오차’를 줄여나갈 때 건축물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우리의 디자인이 결과적으로 구현되기 전까지 허용 오차를 붙잡고 가는 일이 건축"이라는 SoA의 말처럼, 그들은 디자인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SoA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공 가능성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숙련된 기술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시공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고, 새로운 기술과 공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특히 이들은 1:1 목업을 빌더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구이자 작업이라고 여긴다. 도면이나 3D 모델링으로는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재료의 질감, 색상, 빛의 투과도, 공간감 등을 실제로 경험하고 디자인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복잡한 형태나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 1:1 목업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디자인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고, 시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하여 해결하기 좋다. 숙련된 장인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협력하는 일도 허용 오차를 줄이는 데 중요한 과정이다.
예를 들어 국립중앙박물관 으뜸홀 리뉴얼 프로젝트에서도 18m 길이의 데스크에 반가사유상의 옷 주름 형태를 적용하기 위해 1:1 목업을 활용했다. 복잡한 형태의 데스크를 실제로 제작하기 전에 1:1 모형을 만들어 형태와 재료, 색상 등을 검토하고 디자인을 개선했다. 그런 다음 시공 과정에서의 정밀성을 위해 모듈로 나누어 제작하고, 각 모듈을 연결하는 디테일을 고안했다.
앞서 언급한 LG 플래그십 스토어 리뉴얼 프로젝트에서는 파사드를 디자인하면서 VSA 코리아와 협업하며 디자인적 의미는 물론, 시공의 효율성까지 고려했다. 파사드의 강관을 돌려가며 시공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디자인적 완성도와 시공 편의성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다.
SoA는 “현재 한국의 제도나 여건은 건축가가 현장에서 점점 배제되는 방향”이라며, 시공과 기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디테일이나 기술적인 노하우를 축적한 빌더로서의 건축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건축의 만듦새와 완성도를 높이려면, 결국 설계의 정확도가 높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SoA의 건축은 이처럼 디자인과 시공, 이상과 현실, 그리고 건축과 사회의 경계를 넘나들며 완성된다. 그들은 손으로 직접 재료를 만지고, 몸으로 시공 과정을 경험하며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얻는다. 또한, 숙련된 기술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열려 있는” 협업을 통한 그들의 건축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대구 미래농원’은 과거 아버지가 가꾸던 조경수 농원을 아들이 물려받아 새로운 공간으로 바꾼 프로젝트다. SoA는 20년 세월이 만들어 낸 숲과 정원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풍경이 될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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