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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WINTER

토종 씨앗이 펼쳐내는 세계

토종 작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커지고 있다. 비영리단체 토종씨드림의 변현단 대표는 전라남도 곡성에 마련한 채종포에서 토종 씨앗을 증식해 전국에 보급하는 한편 토종 씨앗에 대한 농부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도 추진 중이다.

씨앗을 채취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작물을 볕에 말리고 있는 변현단 대표. 그녀는 점점 사라지는 토종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2008년 비영리 민간단체 ‘토종씨드림’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토종 씨앗 수집부터 증식, 연구, 보급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곡성 읍내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산속 농장. 이곳에는 변현단 대표가 현재 가꾸고 있는 토종 작물 2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그녀가 직접 지은 황토집 주변으로 씨앗 창고와 비닐하우스, 토종씨드림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주변에는 3,000평의 채종포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녀는 2008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은 토종 씨앗을 육종하고, 또 농가에 다시 나눠 싹을 틔우게 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현재 그녀가 대표로 있는 토종씨드림은 약 4,000종의 토종 씨앗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땅에서 시작된 자생종, 우리 땅에서 대를 이어 키운 재래종, 두 가지를 합쳐 토종이라 부른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작물은 대부분 작황을 위해 품종 개량을 거친 것들이다. 변 대표는 대가 끊겨가는 토종 씨앗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국을 샅샅이 훑는다. 먹을거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혹독한 세상살이에서 살아남는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는 충청북도 괴산에 갔어요. 요즘이야 구글 뷰로 보고 어디쯤 가면 좋을지 대충 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가 발품을 팔았죠.”

마을 초입부터 시작해 가장 깊숙한 안쪽까지 6개월간 이 잡듯이 뒤져 찾아낸 450여 종의 토종 씨앗이 시작이었다. 그 당시 재래 농법으로 농사를 짓던 할머니들이 대부분 80대의 고령이었음을 고려하면, 토종 씨앗의 마지막 세대를 찾아 그녀가 대를 이은 셈이다. 도시 빈민들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먹을 권리’를 보호하는 일로 변모했다.

자립을 위한 길

변 대표가 농사를 시작한 이유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하며 살아온 그녀는 자칭 ‘도시 빈민’이 되어갈 무렵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2004년경 경기도 시흥의 기초생활 수급 여성들과 연이 닿아 자활 공동체를 설립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목표는 여성 빈민들의 자립이었는데, 도시에서 생활하려면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하니 농사를 지어 내다 팔기로 했다.

“한번은 옥수수를 수확해서 그 씨앗을 심었는데, 아무것도 안 자라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문제점을 자각했어요.”

당시 심은 옥수수 씨앗은 종자 회사에서 파는 F1 종자로, 균일한 품질의 작물을 일시에 대량으로 수확할 수 있지만, 대신 재수확은 불가능하게끔 개량한 품종이었다. 한마디로 매년 종자를 새로 구매해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종자였다.

“옥수수 종자 하나를 심으면 한 대에 최소 3개가 열려요. 옥수수 1개가 120알이고요. 옥수수 20알에 2,000원씩 판다고 치면 옥수수를 파는 것보다 종자를 파는 게 훨씬 더 이윤이 나죠. 농부들이 전부 씨앗을 사서 재배하고, 다음 해에 씨앗을 받을 수 없으니 악순환이에요.”

농사짓는 데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가자, 그녀는 비료를 제한하고 기계를 쓰지 않는 생태 농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최소화하다 보니 잡초와 싸우는 것도 큰일이었죠. 어느 날, 밭에 한가득인 잡초를 보고 ‘저걸 언제 다 매냐, 그냥 확 먹어버릴까 보다’ 푸념했어요. 그런데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한마디 툭 던지시더라고요. 그거 먹는 거라고.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잡초가 아니라 닭의장풀이었고, 어린잎과 줄기를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걸 알았죠.”

토종 작물에 대한 변 대표의 관심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상황에서 시작됐다. 식물도감을 찾아 뒤지던 그녀는 약용 식물에 대한 설명서인 본초 도감에 이어, 조선 시대의 의학 서적인 『동의보감』과 중국의 한의학 서적 『황제내경』까지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상추 대신 토끼풀에 삼겹살을 싸 먹다가 생손앓이를 치유하고, 환삼덩굴로 샐러드를 해 먹다가 천연 수면제를 발견하게 됐다.

“결국 약식동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토종 작물을 길러 전파한다는 건, 옛 선조들의 지혜와 문화까지 잇는다는 얘기에요.”

점차 사라지는 토종 작물

마트에서 파는 농산물들은 어찌 보면 반만 진실이다. 예를 들어, 시래기와 무는 원래 하나의 작물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품종이 분화되었다. 순전히 시래기를 얻기 위해 심는 무는 무청만 거두고 무는 버린다. 반대로 무를 얻기 위한 종자는 심어서 무만 취하고 무청은 버린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과정은 더 많은 수확량을 확보하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한 결과다. 그 시작은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오른다.

“구한말에 일본 농림수산성에서 조사해 기록한 우리 벼 품종이 450종이었어요. 1930년도가 되면 100종도 채 남지 않게 돼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나는 작물을 일본 종자로 대체해 심도록 했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가 먹는 단호박도, 고구마도 모두 우리 자생종이 아니에요. 일본에서 들여온 거죠.”

사진은 전통 방식으로 건조 중인 밭찰벼. 대나무 거치대에 작물을 거꾸로 걸어놓고 말리면, 줄기에 함유돼 있던 수분과 영양분이 건조되는 동안 벼 이삭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밥을 지었을 때 더 향긋하고 맛이 좋다.

일본뿐 아니라 각국 열강이 우리나라 토종 종자를 가져가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콩이다. 지금은 외국의 대규모 종자 회사들이 품종을 개량해 GMO 콩이 다수가 되었지만, 변 대표의 농장에 심긴 토종 콩은 어림잡아 30여 종은 족히 된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 여파로 땅이 피폐해졌죠. 전후에 늘어난 인구를 지탱하기 위해 높은 수확량을 목적으로 품종을 개발했어요. 1970년대에 통일벼가 개발된 배경이 바로 그거예요.”

이즈음부터 상업농과 재래농은 명확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상업농은 종자 회사에서 씨앗을 사서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이윤을 꾀하고, 재래농은 전통적 방식으로 씨앗을 받아서 다품종 소량 생산을 지속한다. 식량난을 해결하고 상업농이 우선시되면서 토종 종자는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초기에 상업농을 하면서 토종 작물을 키우는 실험을 해봤어요. 요즘 배추는 속이 꽉 차서 김치 담글 때 속을 많이 넣기가 힘든데, 원래 배추는 그렇지 않아요. 좀 성근 대신에 안쪽까지 파랗고, 칼슘이 풍부하죠.”

고추도, 무도 요즘 우리가 흔히 먹는 것과 토종 작물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토지 대비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개량된 결과다.

살아남는 것과 아닌 것

변 대표가 밭을 둘러보며 소개해 주는 가운데 종종 냉이며 꾸지뽕 같은 것들을 따다가 건넸다. 그러면서 여러 그루의 나무를 심어도 어떤 건 날씨 때문에 번번이 죽는다며, 기후 변화로 인한 작태를 걱정했다.

“역사적으로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사태만 봐도 알잖아요. 같은 품종으로만 심다 보면 환경이 변할 때마다 농작물이 다 죽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를 심으면 그중 어떤 건 반드시 살아남아요. 토종 씨앗을 보존해 다양한 품종을 심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이라는 얘기죠.”

토종 씨앗은 오랫동안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뿌리내린 생물종으로 환경 변화에도 생존율이 높다. 변 대표가 지금까지 농가와 나눈 토종 씨앗은 자그마치 1만 종이 넘는다. 사진은 채종하기 전 건조 과정을 거치고 있는 두메부추.

오래전 토종씨드림 초창기에 씨앗 수집을 갔다가 있었던 일이다. 그녀는 강아지풀과 생김새는 비슷한데 뭔가 다른 풀을 발견했다. 동네 할머니에게 여쭤보니 ‘똘조’라고 했다. ‘똘’은 보통 야생 작물 이름 앞에 붙이는 말이니, 원예화되기 이전의 야생 조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한국에 벼가 450종이라면, 동남아 지역에서는 조가 450여 종으로 그 수를 견줄 만큼 다양하다. 그녀는 “조가 볏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물”이라면서 기후 변화에도 조는 살아남을 거라고 말한다.

변 대표는 언론사에 다니던 2001년, 인도의 생태운동가 반다나 시바를 인터뷰한 일을 터닝포인트로 간직하고 있다. 핵물리학자였지만, 토종 씨앗 운동가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우주 만물이 하나의 원소에서 시작한다면, 씨앗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생생하게 마음을 울렸다.

“토종 씨앗을 잇는 일에 모든 원리가 내재해 있어요. 제가 곡성으로 이사한 뒤 가장 먼저 공부한 게 물리학이에요. 그리고 지구과학, 생물학, 생리학, 병리학을 차례로 공부했죠. 농사를 지으려면 자연을 알아야 하니까요.”

젊은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세계를 누비며 문화 충격도 적잖이 받았다. 궁금한 것은 너무 많고, 궁금하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변 대표는 구절초, 맨드라미, 연잎 등 토종 작물들의 꽃과 잎, 씨앗들을 덖거나 말려서 따로 보관한다. 차로 우려내 마시기 위한 용도로,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그녀의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책에서 공부한 거랑 사회에 나와서 보는 세상이랑 너무 다른 거예요.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것들에 관해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변 대표는 토종 씨앗을 받는 족족 일단 땅에 심고 본다. 그녀는 유전자 조작 콩이라도 땅에 계속해 심으면 본래의 성질이 나온다고 믿는다.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7년에 걸쳐서 붉은 콩, 분홍 콩, 노란 콩, 검은콩, 흰콩까지 다 제 손으로 받았어요. 유전자라는 건 환경에 따라 그 성질이 나타나기도, 숨기도 해요. 결국은 다 하나의 씨앗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김예린자유기고가
한정현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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