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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AUTUMN

분재로 세계를 감각하는 방법

바위틈이나 절벽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교묘히 가지를 틀고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며, 크기를 더 키우지 않는다. 분재는 바로 여기서 영감을 얻은 작업이다. 유상경 씨는 한국만의 조화로운 미감으로 분재를 만들어 키우고 판매하며, 분재를 가꾸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식물 마니아 유상경 씨가 운영하는 ‘서간’은 식물을 매입해 그대로 판매하는 일반적인 꽃집과 달리 화분과 이끼, 돌 등을 활용해 식물을 작품처럼 디자인한 뒤 판매하는 공간이다. 오전에는 화훼 농장에 가서 식물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식물을 돌보며 가꾸는 게 그의 주된 일상이다.

서울 서촌의 한적한 어느 골목,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디귿자 모양의 아담한 한옥이 펼쳐진다. 대부분 무릎 높이 아래로 자라는 작은 분재들이 점점이 늘어선 이곳, 서간은 유상경 씨가 운영하는 분재 가게이자 전시관이다. 마당의 자갈, 잡초, 한곳에 켜켜이 쌓아둔 기왓장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과 함께한 어린 시절

분재는 손바닥만 한 작은 화분에 나무나 풀, 이끼, 돌 등을 심고 배치하는 일 또는 그렇게 가꾼 화초나 나무를 말한다. 유상경 씨는 취미로 분재를 시작했는데 일이 커져 전시관으로 이어졌다. 그는 거의 매일 이곳에 상주하며 40여 개의 분재를 돌보는데, 하루 1~2시간이 꼬박 걸린다.

“어릴 때 전라남도 광양에 살았어요. 조경이 잘 된 동네였죠. 그래서 산이며 나무며 바다며 자연과 친숙하게 자랄 수 있었어요.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이사해서도 강의가 없는 시간이면 근처에 산을 타러 다니곤 했어요.”

말하자면 유상경 씨는 ‘덕후’다. 산에 오르거나 길을 걷다가도 눈에 들어오는 풀과 나무, 이끼 같은 사소한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마음에 드는 자연석을 수집하기도 했다. 독립해 혼자 살게 되면서는 본격적으로 집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심심할 때면 혼자 식물원이나 농장에 자주 다녔어요. 오래된 화분을 사 모으기도 했고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는 주말이면 종일 식물을 만졌어요. 나중에는 집에만 식물이 60~70종이 됐어요.”

집에 살아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몸가짐이 사뭇 달라지는 일이다. 점점 더 부지런해졌다. 가지도 직접 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두었다가 다시 서늘한 곳으로 옮겼다가, 분갈이를 여러 번 해주며 식물이 하루하루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보니 본격적으로 식물을 가꾸는 법을 배울 필요를 느꼈다.

“이 식물에 흙을 이걸 쓰는 게 맞는지, 가지를 이렇게 쳐도 되는 건지, 분갈이를 이렇게 자주 해줘도 되는 건지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알게 된 게 분재라는 장르예요.”

서울 서촌의 고즈넉한 골목길 끝에 자리한 서간은 느리게 움직이는 이 지역 특유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유상경 씨는 이곳에서 분재 원데이 클래스와 정규반 수업을 진행한다. 때로는 브랜드와 협업해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하고, 작가들의 작품 전시도 개최한다.

오해와 진실

분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스럽고 인위적인 취미로 오해받곤 한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우선 분재를 가꾸고 감상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파리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가지가 어떻게 뻗어져 나가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이 많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한번은 대학생 손님이 오셔서 분재 가격을 물어보더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다시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정말 시간과 돈이 넘쳐서 분재를 사려는 게 아니죠. 저는 오히려 분재를 통해 여유로운 시간을 사는 거라 생각해요.”

또한 분재 하면 많은 이들이 철사를 칭칭 감아 수형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혹은 식물이 비좁은 화분에 갇혀 원래 크기대로 자라지 못하고 간신히 생명을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유상경 씨는 서간에서 원데이 클래스도 운영하는데, 종종 분재에 대한 이러한 편견과 오해를 접한다. 그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화분에서 식물을 키운다는 것부터가 인공이에요. 그렇다면 화분에 옮겨 심은 식물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제한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에게는 적절한 관리가 필요해요. 가지치기를 적당히 해주고, 필요하다면 철사로 가지를 교정해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거죠. 나무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나무에 해를 입히지 않아요. 나무에 하는 모든 일이 애정에서 비롯되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나무가 못나 보이는 계절도 있다. 여름에는 덥고 습해 병충해가 잦기 때문에 이파리가 시들해지는 경우가 많다. 분재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서간에 방문한 6월 말에는 철쭉이 꽃을 피웠다가 떨구고 딱 한 송이가 남아 있던 참이었다.

“좋아하는 수종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보기에 예쁘면 다 좋아하는데, 못생겼으면 또 그런대로 좋아해요.”

식물의 줄기와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양새에 따라 분재는 여러 종류로 나뉜다. 전나무나 삼나무처럼 줄기가 위로 솟아나는 것을 직간, 해송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서 자라는 나무를 사간, 줄기가 아예 바닥으로 늘어지는 것을 현애라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형태는 나무줄기가 길고 가늘게 뻗어 끝부분에 이파리가 달려 있는 문인목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긴 모양을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문인목이더라고요. 옛날 조선 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나무라는 뜻이죠. 뜻을 알고 나니 더 좋아요. 깊은 내공을 갖고 있지만 으스대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그게 제가 추구하는 이상향에 가까워요.”

서간에서는 대부분 한국 자생식물을 이용해 분재를 만든다. 특히 그는 꼭지윤노리나 애기범부채처럼 정감 있는 이름을 가진 나무에 더 애착을 느낀다. 그는 이왕이면 우리 자생식물을 위주로 분재를 하고자 다짐했고, 옛 선비들이 그린 수묵담채화 등을 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미감을 꾸준히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투박한 미감

유상경 씨는 모든 식물이 제각각의 아름다운 실루엣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분재라는 방식을 통해 각 식물의 특징과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사진은 유상경 씨가 핀셋으로 잎을 다듬고 있는 모습.  

유상경 씨가 좋아하는 한국의 전통문화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수묵화이다. 여백이 많으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그려진, 화려하진 않지만 슴슴한 맛이 있는 그림이다.

“나무도 별 볼 일 없이 그려져 있고, 산도 크긴 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아요. 그 안에서 인간은 아주 작게 존재하죠. 인간이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 위안을 찾는 것 같아요. 서간에 와서도 사람들이 비슷한 순간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식물을 보다 보면 나의 존재마저 없어지는 느낌. 아주 작은 점이 된 기분을 느끼다 갔으면 해요.”

한국 분재의 특징도 이와 비슷하다.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고려(918~1392) 시대 중기의 문헌들에 분재에 대한 기록이 있어, 대략 13세기쯤 이미 분재를 즐기는 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분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좀 더 자연스러운 미감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상경 씨가 좋아하는 백자나 막사발에서 느낄 수 있는 투박한 미감에 가깝다.

“요즘 생각하는 한국의 멋은 한마디로 조화라고 생각해요. 하나하나가 존재감 없이 어우러지는 게 아니라,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있으면서 조화로울 때 더 아름답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나무는 꽃이 지고 나면 볼품없어지죠. 그렇다고 해서 나무를 안 보이는 곳에 들여놓지 않아요. 그 시기마저 수용하는 게 한국의 멋이라고 생각해요. 내년에 또 가장 예뻐질 때를 기다리는 거죠.”

서간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 1시부터 6시까지 열려 있다. 혹한기나 혹서기에는 예약제로 운영할 생각을 하고 있다. 모두 이곳에 있는 나무, 그리고 나무를 감상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서다.

“요즘은 나무의 뿌리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늘 보는 건 줄기부터 이파리까지 윗부분이지만, 분갈이할 때 보면 뿌리가 무성해요. 살아남기 위해서 무언가를 부여잡고 있는 흔적이죠. 경이로운 마음이 들어요.”

서간 내부에는 곳곳에 분재가 놓여 있다. 봄과 여름에는 화사한 꽃을 만끽하고, 가을에는 붉게 익은 열매를, 그리고 겨울에는 나목을 감상하는 등 분재와 함께하는 일상은 언제나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다. 

유상경 씨가 분재에 사용하는 식물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들이다. 우리 고유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재와 어울릴 만한 화분 수집은 물론 고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모으는 것도 그의 취미 생활이다. 사진은 스튜디오 한쪽에 놓여 있는 빈티지 지류함으로 그가 서울 일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찾아냈다.

김예린자유기고가
한정현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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