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구 셰프는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을 가졌다. 해외에서 셰프로 경력을 쌓은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14년 밍글스를 열었다. 한국과 서양의 식문화를 한데 어우른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면서 그는 한식의 세계로 한층 더 빠져들었다. 정관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장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그는 장을 “테루아르를 가장 충실히 담아낸 재료”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4년 『장: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빚어낸 미식의 세계』를 출간했고, 이 책은 그해 뉴욕타임스 최고의 요리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장은 발효 대두를 기반으로 한 양념으로, 간장, 된장, 고추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한식을 즐겨 먹는 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장은 강 셰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재료”이다.
책의 앞부분은 이 비밀 재료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다. 강 셰프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천 년에 걸친 장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각 가정에서 장 담그던 문화가 쇠퇴한 과정, 최근 전통 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현상을 소개한다. 그다음으로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세히 알려준다. 집에서 장을 직접 담그는 방법이 아니라, 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단순한 재료들이 자연, 시간, 사람의 손길과 정성을 통해 신비롭게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한 끼 식사로 어울리는 요리에 대한 유용한 팁도 담겨 있고, 마지막으로 한식 입문자를 위한 필수 식재료 목록도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은 한식 애호가라면 익히 알 만한 재료들이지만, 고추장 파우더는 나에게 뜻밖의 수확이었다. 새로운 팝콘 시즈닝으로 시도해 볼 만할 것 같다.
물론 책의 핵심은 다양한 장을 활용한 레시피들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주제로 각각 한 챕터씩 정리되어 있으며, 챕터 마지막마다 해당 장을 만드는 장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테루아르뿐 아니라 사람들과도 만나게 해준다. 레시피의 대부분은 밍글스의 메뉴가 아닌, 강 셰프가 가족과 지인을 위해 집에서 직접 만드는 요리들이다. 덕분에 훨씬 친근하고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장아찌, 해물파전, 강된장 비빔밥 외에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양념 치킨 등 한식 애호가라면 누구나 아는 레시피도 있다. 하지만 나를 신세계로 인도한 것은 장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 레시피들이었다. 라구 소스에 간장을, 파스타 크림 소스에 된장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상상도 못 했던 조합들도 있었다. 그래놀라에 간장을, 초콜릿 무스에 고추장을, 크렘 브륄레에 된장을 쓴다니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퓨전 요리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기술이나 자극적인 재료의 조합이 아니라, 사람들의 식문화가 아무리 달라도 맛에는 국경이 없다는 깨달음,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