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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SUMMER

문화 예술

아트 리뷰 움직이는 전통 한국 춤, 새로운 경계에 서다

국립무용단의 <회오리> 두 번째 국내 공연이 지난 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렸다. 초연에 견주어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정교해지고, 외국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무대의 완성도는 더 높아졌다. 전통 무용에 기반을 둔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소임에 머물던 시절을 생각하면 국립무용단의 도전과 실험은 기대 이상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국립무용단의 <회오리>는 한국무용계에 제목처럼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무대 한쪽에 자리잡은 음악집단 비빙은 이 작품이 추구한 전통의 해체와 재조합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몸체를 가볍게 감싼 간결한 디자인의 의상들은 움직임의 자율성을 극대화했다. 단아한 치마저고리, 비녀머리와 버선발이라는 한국 춤의 관습과는 거리가 먼, 하늘거리는 얇은 천으로 몸체를 휘감은 의상은 신체 움직임의 해방을 추동했다.

국립무용단의 두 번째 국내 공연작인 <회오리>는 그동안 추구해온 기존 안무 스타일과 완전히 차별화된 무대를 보여주었다. 태초의 몸짓을 추구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종횡무진 예측할 수 없는 형상을 그리면서 80분간 강렬하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파격을 이끌어낸 주역은 핀란드 출신 안무가 테로 사리넨(Tero Saarinen)이다. 일찍이 중국의 경극과 일본의 부토 등을 배우고 익혀 그의 창작 작업에 귀중한 자양분으로 삼아온 이 안무가는 이번 작업에서도 그 경험을 의미 있게 적용했다.

깊이를 더한 춤과 성공적인 협업
<회오리>의 안무 모티브는 태고(太古)이며.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은 제의성이다. 그러나 근원으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몸짓들에는 ‘지금 여기’라는 현대성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초반의 무대에는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이 교차한다. 물오른 몸짓으로 반전의 묘미를 한껏 구현하는 무용수들의 춤에서 깊은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몇몇 남성무용수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몸짓은 질박미가 더해져 독특한 미감을 안겨줬다. 군무의 움직임은 민첩하면서도 격정적이었으며, 원초적인 ‘날 것’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몸체를 가볍게 감싼 간결한 디자인의 의상들은 그리스 튜닉을 연상케 하면서 움직임의 자율성을 극대화했다. 단아한 치마저고리, 비녀머리와 버선발이라는 한국춤의 관습과는 거리가 먼, 하늘거리는 얇은 천으로 몸체를 휘감은 의상은 신체 움직임의 해방을 추동했다. 고전발레의 완고한 형식을 파기하고 모던댄스라는 혁신적 사조를 탄생시킨 이사도라 덩컨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음악은 장영규가 이끄는 비빙(Be-Being)이 맡았다. 천재성과 탁월한 감각으로 무용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이 연주집단의 발탁은 신의 한 수였다. 전통악기 해금, 피리, 가야금을 재해석해 연주하는 비빙의 구성원들은 신들린 듯 고요와 신명, 격정을 넘나들었고 소리꾼 이승희는 무대를 압도했다. 현대적이면서도 완고함의 전통이 깃들어 있어서 가벼운 듯 중후한 비빙의 음악은 제의적 분위기를 극대화하면서 이국적 감성까지 자극했다.
스웨덴 출신 무대미술가 미키 쿤투(Mikki Kunttu)의 무대디자인과 조명도 눈여겨볼 점이다. 무대 왼쪽 옆 막을 걷어내고 악단을 앉히는 파격을 선보였다. 다만, 이러한 배치로 무용수들의 등장과 퇴장이 자유롭지 못했고, 그로 인해 무대의 흐름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졌다. 조명은 제의성을 바탕에 깔면서 때론 몽환적이고 때론 환희에 차 있어서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높여주었다. 그가 왜 세계적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라 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윤성주 안무의 국립무용단 <묵향>이 2016년 6월 프랑스 리옹 레뉘드푸르비에르 페스티벌에서 공연되고 있다. 2013년 초연된 이 작품은 이어 앞서 2016년 2월 홍콩아트페스티벌에도 초청되었다.

두 갈래 실험
<회오리>의 초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수적인 전통을 고집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국립무용단은 2013년 새로운 실험에 도전했다. 기존의 무용극의 틀에서 벗어나 이른바 이미지댄스, 즉 추상 개념을 구현하여 새로운 공연미학을 창출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작업은 두 갈래로 시도되었다. 우선 한국 전통춤이 아닌 현대무용 전공자에게 안무를 맡겼다. 안무가 안성수의 <단(壇)>(2013)이 그 첫 결실이었다.
두 번째가 국립무용단 55년 역사에 처음으로 외국인 안무가를 투입하는 시도였고, 테로 사리넨이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세계무용사에 이름이 남을 현대무용가 카롤린 칼송이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고 알려지면서 호기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유럽에서 이미 독보적 안무가로 정평이 나 있던 그가 과연 한국 관객들에게 무엇을 선사할 것인가? 공연 전 무용계 안팎의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윤성주 안무의 국립무용단 <묵향>이 2016년 6월 프랑스 리옹 레뉘드푸르비에르 페스티벌에서 공연되고 있다. 2013년 초연된 이 작품은 이어 앞서 2016년 2월 홍콩아트페스티벌에도 초청되었다.

<회오리>의 초연은 성공적이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혼재되어 상호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다름과 낯섦이 교차하는 절묘한 무대미학으로 주목 받았었다.
이번 재공연은 초연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다. 우선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더 정교해졌다. 장르를 초월한 움직임은 내면화를 통해 밀착된 교감을 이끌어냈다. 김미애는 단연 돋보였다. 한국춤 고유의 몸짓에서부터 모던한 움직임까지 능숙하게 소화했다. 탁월한 기량과 근성으로 무대를 누빈 송지영, 황요천, 이석준 등은 차세대 주역을 예고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음악, 조명, 의상 등 국경을 초월한 아티스트들의 협업은 공연 횟수를 더할수록 공연미학적 가치를 드높이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견인했다.

의상디자이너 에리카 투루넨은 주름 잡힌 의상 속에 마이크를 숨겨 무용수의 움직임이 일으키는 바람 소리와 음악이 어우러지게 했다.

조명과 무대 디자인을 맡은 미키 쿤투는 무대 바닥을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 간결한 검정색 배경과 강렬한 대조를 꾀했다.

‘전통의 현대화’라는 가능성과 한계
새로운 시도들에 힘입어 국립무용단의 해외공연 기회가 늘고 있다. 2015년 <회오리>가 칸댄스페스티벌에 초청됐고, 2013년 초연되어 한국춤은 물론 전통한복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주목 받았던 윤성주 안무의 <묵향>은 2016년 홍콩아트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조세 몽탈보 안무의 <시간의 나이>는 2016년 3월 국립극장 초연 석 달 뒤 파리 샤요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과거 국립무용단의 해외공연이 주로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소임 수행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이런 해외공연들은 국제성을 인정받았다는 징표로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만큼 국립무용단의 키가 훌쩍 자라나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회오리>는 한마디로 저명한 해외 안무가의 힘을 빌어 ‘전통의 현대화’를 구현한 작품이다. 전통춤, 신무용, 창작춤의 경계를 자유롭게 뛰어넘어 한국춤의 흐름을 오로지 창작의 영감으로만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외국인 안무가였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 어떤 움직임도 자유자재로 허용한 결과 한국춤 고유의 몸짓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때로는 몸짓 그 자체만 남겨두었다고 느껴질 만큼.
창작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국립무용단의 도전과 실험은 이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통무용에 기반을 둔 이 무용단의 예술적 이념과 지향성이 어디까지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회오리>의 사례가 앞으로 의미 있는 잣대가 되길 기대한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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