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장소의 강렬함에서 시작되었다. 건축가는 독도와 함께 국토의 동쪽 끝을 지키고 있는 고요한 섬 울릉도에서는 별과 달, 해의 움직임, 끝이 휘어져 내리는 수평선처럼 자연 현상이 더 뚜렷하게 다가옴을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우주와 지구의 자연 현상을 담는 천체 도구 같은 건물이었다. 김찬중의 화제작(Kim Chan-joong 金贊中)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이렇게 태어났다.
울릉도는 동해안 포항에서 뱃길로 217km 거리에 있다. 이 섬의 북서쪽 바닷가 절벽 위에 건축가 김찬중의 화제작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가 자연 경관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울릉도에 가기는 쉽지 않다. 서울에서 가자면 기차편과 배편을 합쳐 꼬박 7시간이 걸린다. 파도가 거세 배가 뜨지 않는 날도 많아, 1년 중 100일 정도는 배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울릉도의 빼어난 원시적 풍경은 사람들이 먼 길을 나서게 만든다. 긴 여정 끝에 섬에 다다르면, 선 굵은 바위산의 풍경에 압도되면서 시공간을 뛰어넘은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울릉도 북서쪽 바닷가 절벽에 솟은 높이 430미터의 추산(錐山)은 그런 풍경의 정점을 찍는 곳이다. 바다와 산, 일출과 일몰, 달과 별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져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곳 추산 아래, 바다로 꺾어 지르는 절벽 위에 코스모스 리조트가 있다. 건축가 김찬중이 설계해 2018년 문을 연 이 리조트는 6개의 날개가 회오리처럼 감긴 풀빌라 형식의 ‘코스모스(Villa Kosmos)’와 5개의 볼트형 구조가 나란히 물결 치고 있는 펜션 형식의 ‘테레(Villa Terre)’, 2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의 건축디자인 잡지 『월페이퍼』는 이 독특한 건축물을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 2019’(Wallpaper Design Award 2019) 베스트 뉴 호텔(Best New Hotel) 부문에 선정했다.
풀빌라 형태의 코스모스 동 내부에서는 6미터 높이의 통창을 통해 각기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통창의 아치형 곡면은 추산의 형태를 따라 디자인되었다.
6개의 풍경
김찬중은 자연과 동화되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천체의 움직임을 활용해 보자고 생각했고, 천문기상대 컴퓨터를 활용해 해와 달의 궤적을 파악했다. 그 궤적을 땅에 옮겨 놓고 보니 나선형 모양으로 수렴되었다. 여기에 추산, 하지 때 정확히 해가 떨어지는 바위, 항구와 숲의 풍경 등 주요한 6개의 방향을 거점으로 잡았다. 그렇게 6개의 풍경을 바라보는 날개가 하나의 원으로 수렴되면서 방향의 위계가 없는 원형 건물이 놓였고, 6개의 궤적이 이어진 형상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코스모스 동은 6개의 다른 풍경을 향하는 소용돌이다. 1층에는 공용의 응접실과 식당, 사우나가 있고, 중심의 원형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하나의 날개는 하나의 객실이 된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브를 돌며 서서히 창이 드러나다가 방 끝에서 커다란 수직창을 통해 전망이 펼쳐진다. 수직의 아치형 곡면은 추산의 형태를 고스란히 담는다.
건물을 오브제로 인식하게 하기 위해 건축가는 건물의 주요 기계 장치를 노출시키지 않고 벽과 일체화시켰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단일한 공간만을 경험하게 말이다. 조명이나 공조 시스템, 디퓨저와 같은 장치들은 설계 단계부터 건물에 매립된 형태로 디자인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목업(mockup)을 진행해야 했다. 내부 천장의 타공을 통해 환기가 이루어지고 조명이 들어오면서 마치 살아 숨쉬는 동물의 피부처럼 건축물은 유려한 공간만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지붕이자 벽인 12cm 두께의 얇고 부드러운 곡면은 코스모스의 존재감을 무척이나 가볍고 섬세하게 만든다. 콘크리트가 이렇게 얇게 조형될 수 있었던 소재였던가.
이 리조트가 이처럼 섬세한 조형미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초고강도 콘크리트(Ultra-High Performance Concrete, UHPC) 소재를 활용한 때문이다. UHPC는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현장 타설되어 구조체로 구축되었다. UHPC의 특징은 초고강도, 고밀도, 고내구성이다. 철근을 넣지 않고도 강섬유 보강을 통해 높은 강도를 확보할 수 있는 재료로 고강도라 아주 얇은 두께의 구조물도 만들 수 있다. 건축가는 주로 토목에서 시도되던 이 재료로 콘크리트의 새로운 텍토닉(Tektonik)을 시도하게 된다.
여섯 개의 날개가 회오리처럼 감긴 모양새의 코스모스 동은 지붕이자 벽면인 곡선의 두께가 불과 12cm이다. UHPC라는 특별한 소재가 얇고 섬세한 곡선 표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희열과 고난의 도전
‘새로운 소재’란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며, 건축물에 적용하기에 충분한 구조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재료를 쓰는 모든 과정이 도전이고 실험이라는 말이다. UHPC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비슷한 시기 설계한 하나은행 ‘PLACE 1’ 때문이었다. 서울 삼성동에 자리하고 있는 PLACE1이나 코스모스, 두 건축물 모두 출발은 ‘보다 얇고 섬세한 건축물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세상에 없는 방식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목업과 엔지니어링 협의를 거쳐야 했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인 PLACE 1은 여러 지점을 통합하는 랜드마크형 건물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건축가는 4시면 문을 닫는 은행 공간에 변화를 주기 위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개방형 슬로우 코어(층별 문화공간)’를 만들었다. 동시에 건물의 외부를 둘러싼 테라스 공간을 만들고, 그 외피에 안과 밖으로 입체적인 곡면을 지닌 패널로 감싸는 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1m, 안으로 50cm가 들어간 이 입체적인 형태의 패널은 4m x 4m의 꽤 거대한 크기다. 패널을 기존 건물에 달아매기 위해 보다 날렵하고 가벼운 재료를 찾던 설계팀은 UHPC를 발견하고 환희에 찼다고 한다. 희열은 잠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UHPC를 거푸집에 타설해 입체적 형태의 성형을 시도한 선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건축가가 거푸집의 제작, 탈형, 양중(erection) 등 패널의 형태를 만들어 달아매는 모든 과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건축가는 시공사를 비롯해 거푸집 제작팀, 구조설계사무소, UHPC 제작업체 등 모든 엔지니어링 팀과 함께 5번의 목업을 거친 후에야 UHPC 패널의 성형과 양중을 증명할 수 있었다. 6개월에 걸친 긴 시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울릉도 코스모스에서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를 구조체로 쓰기로 했다. 얇고 섬세한 조형미를 실현시킬 방법으로 UHPC가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이 UHPC 현장 타설에는 K-UHPC라는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어 낸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4만 5천여 장에 달하는 비정형 외장 패널을 제작해 낸 스틸라이프, 시공사인 코오롱글로벌(주)이 함께 했다. 건축가는 여러 차례의 목업을 통해 UHPC의 강도를 계산하고 거푸집의 압력을 측정하고 현장 타설을 검토하는 모든 과정을 이끌면서 이 디자인을 실현할 수 있는 거푸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엔지니어 팀과 조율해 나갔다.
관건은 고밀도인 데다가 물처럼 흘러내리는 UHPC의 특성상, 타설할 때 거푸집에 엄청나게 가해지는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가였다. 자칫하면 거푸집이 터져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3차원 비정형 형태의 건축물을 시공하려면, 거푸집은 한 번에 구축해야만 했다. 건축물의 구조체에는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UHPC를 말이다. 타설이 이루어지는 2박 3일 동안 모두들 피를 말리듯 숨을 죽였다고 한다. 이처럼 코스모스가 실현되는 과정은 그 자체가 특별한 미션이었다.
코스모스 리조트가 이처럼 섬세한 조형미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초고강도 콘크리트(Ultra-High Performance Concrete, UHPC)라는 소재를 활용한 때문이다. UHPC는 이곳 코스모스에서 세계 최초로 현장 타설되어 구조체로 구축되었다.
김찬중은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실험적인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끄는 건축사무소 ‘더 시스템 랩’(The System Lab)이 영국의 건축디자인 잡지 『월페이퍼』가 선정한 ‘Architects’ Directory 2016’에 포함되었다. © 김잔듸, design press
서울 삼성동에 있는 KEB 하나은행 플레이스원(PLACE 1)은 생김새 때문에 ‘문어 빨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천천히 회전하는 지름 2m의 원형 셀 178개가 건물의 입체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 김용관(Kim Yong-kwan 金用官)
콘크리트의 텍토닉
보이는 것은 미려한 조형이지만, 건축가 김찬중과 그가 이끌고 있는 더시스템랩의 도면에는 언제나 시공 계획 보고서(Fabrication and Construction Planning)가 함께 한다. 이 보고서는 건축의 제작을 고려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인 최적의 솔루션을 찾기 위한 것이다. 건축가는 미적인 탐닉이 아니라, 프로젝트에 적합한 구축 방식을 탐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 김찬중이 ‘산업적 공예성’이라고 표현하는 이 방식은 기술과 재료의 혁신을 통해 감성적 공감을 이끌어 낸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에이드리언 포티(Adrian Forty) 교수는 『Concrete and Culture: A Material History』라는 책에서 “콘크리트는 물성이 아니라 프로세스다(Concrete is not a material but a process)”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국제주의 양식을 가능하게 한 보편적인 재료가 콘크리트라면,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축되는 콘크리트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새로운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 나서는 김찬중은 건축물의 설계뿐만 아니라, 제작의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는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는 건축가일 것이다.
“UHPC는 우리가 인지해 왔던 콘크리트의 굳건하고 육중한 구축적 체계와는 감성적으로도 다르다. 소재와 구축적 관계의 적법함을 텍토닉이라고 한다면, 콘크리트의 텍토닉도 이제는 변할 때가 된 듯하다.”
재료를 발견하고 이를 시도하는 건축가의 시도는 언제나 새로운 감성의 장을 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