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스튜디오 스탠다드에이(STANDARD.a)는 공장식 조립 가구가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15년 동안 꾸준히 수제 디자인 가구를 선보여 왔다. ‘가치를 굳건히 지켜내는 것이 표준’이라는 이들의 믿음은 갤러리, 카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복합문화공간 등 여러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스탠다드에이의 쇼룸에서 이들을 만났다.
서울 서교동에 자리한 스탠다드에이의 쇼룸에서 류윤하, 이학준, 안민규(왼쪽부터) 공동 대표가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15년 동안 묵묵히 핸드 크래프트 가구를 선보이며 브랜드의 단단한 이정표를 세워가고 있다.
국내의 디자인 퍼니처 산업은 2000년대에 들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이름이 알려진 몇몇 대형 브랜드와 서울 외곽의 소규모 가구 공장들을 통해 판매되는 가구들이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무렵 목공이 대중적인 취미로 부상하는 가운데 직접 디자인을 해서 가구를 제작하는 공방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더불어 디자인한 가구를 전시하는 쇼룸 형태 또는 국내외 유명 가구를 큐레이션하여 공간을 연출한 퍼니처 카페가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스탠다드에이는 그런 흐름 속에서 2011년 출발했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한 류윤하, 안민규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지만 목공을 취미로 시작하다가 외연을 넓힌 이학준 세 사람이 공동 대표로 스탠다드에이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첫 발을 내디뎠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철학으로 가구를 만든다. ‘독일, 스웨덴, 일본, 핀란드 같은 나라들은 누구나 금세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원목 가구 브랜드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우리가 대표가 될 순 없을까?’ 스탠다드에이의 이러한 포부와 도전은 점점 그 목표에 닿아가고 있다.
브랜드명 ‘스탠다드에이’에서 철학이 느껴진다.
소문자 ‘a’는 알파를 뜻하는데, 표준에 특별한 알파를 더하되 과하지 않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는 오브제 성향이 강한 제품보다는 공간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가구를 지향한다. 그래서 소재도 처음부터 원목으로 정했다. 더불어 브랜드 슬로건인 ‘Standard not Normal’에는 표준이 흔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치를 지켜야만 얻을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을 반영했다.
원목은 스탠다드에이의 정체성이다. 주로 어떤 목재로 가구를 만드는가?
기본적으로 오크, 체리, 월넛 세 가지를 쓰고 메이플을 추가로 활용한다. 목재를 10년 이상 다뤘지만, 아직도 어렵다. 나무의 산지가 바뀌면 가공하는 법도 달라진다. 보통 미국산 목재를 사용하는데, 미국은 지역마다 기후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목재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 재료를 다루기가 까다롭다. 그럼에도 원목 가구는 만져봤을 때 질감이 좋고 정서적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지점을 고객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코팅의 경우 가급적이면 오일이 스며들게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래커칠로 표면에 막을 씌우면 목재가 지닌 질감을 오롯이 느낄 수 없다.
가구를 만들 때 전통적인 미감도 고려하는가?
공간의 성격과 방향성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최근 작업한 H&B 스토어 올리브영 안국역점의 경우, 서울 북촌에 자리한다. 인근에 경복궁과 창덕궁이 있고, 바로 맞은편은 골동품 가게가 즐비한 인사동이다. 뒤로는 북촌한옥마을이 있다. 그래서 이곳은 지역성을 반영해 한옥을 모티프로 리뉴얼되었다. 우리는 퍼니처 아티스트 김현희 작가와 협업해 고가구에서 볼 수 있는 장석을 알루미늄 디테일로 표현하는 등 전통과 현대를 적절히 섞으려 시도했다. 새로운 느낌을 위해 전통 가구에는 잘 쓰이지 않았던 월넛도 사용했다.
그리고 2024년 말에는 ‘세븐스도어’를 운영하던 김대천 셰프가 비건 레스토랑 ‘비움’을 오픈할 예정이라며 우리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사찰 음식에 뿌리를 둔 채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어서 그는 한옥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어 했다. 한식 이미지를 가구에 녹여 달라는 의뢰를 받고, 기존 2번 의자를 기준으로 새 의자의 형태를 다듬었다. 그때 한옥 창살에 착안해 의자의 등 부분을 세로선으로 채웠다.
샘플을 제작해 실제로 사용해 본 후 제품을 출시한다고 들었다.
스탠다드에이 설립 초기, 판매한 제품에 문제가 생겨 다시 돌아온 경우가 있었다. 이후부터 우리는 일정 기간 샘플을 실제로 사용해 보면서, 문제가 생길 만한 요인들을 미리 해결하고 디자인을 수정해 최종 형태를 결정한다. 5번 의자는 지끈을 직조하는 서양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데, 뒤집어 보면 ‘ㄱ’자로 꺾인 못이 박혀 있다. 그 못에 끈을 걸면 언젠가는 빠지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서양 문화권에서는 사용자들이 못을 다시 박거나 고쳐서 사용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불량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정서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견고함을 보완하기 위해 수십 개의 못을 하나로 합친 판을 만들어 대체했다. 만약에 디자인과 기능 둘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면, 우리는 기능을 먼저 염두에 두고 형태를 찾는 편이다.
쇼룸 한쪽 벽면에 연출된 스탠다드에이의 대표적인 모듈형 원목 책장과 다양한 스툴 제품들. 짜맞춤 기법의 정교함과 오일 도장 마감으로 나무 본연의 결을 살린 디자인이 돋보인다.
스탠다드에이를 대표할 만한 가구는 무엇인가?
기준은 역시 판매량인 것 같다. 초창기에는 고객들이 다이닝 테이블 2번과 3번을 가장 많이 찾았다. 요즘에는 의자를 많이 구매한다. 7번 의자는 스탠다드에이의 현재 시그니처라 할 수 있다. ‘모수 서울’과 ‘품서울’ 등 유명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에서 이 의자를 가져간 후 입소문이 났다.
7번 의자는 우리가 기존에 만들었던 가구들에 비해 화려하다. 의도적으로 형태감이 도드라져 보이게 디자인했다. 이 의자를 만들고 나서 어디에 두면 가장 좋을까 상상했을 때 떠올랐던 공간은 레스토랑이었다. 통상 3시간가량 이어지는 긴 식사 시간 동안 자세를 편하게 바꾸려면 딱딱한 등받이보다 부드러운 등받이와 편한 팔걸이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편안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는데, 유명한 셰프들이 이 의자를 선택해서 놀랍기도 하고, 우리의 의도가 적중한 것 같아 뿌듯하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각자 선호하는 가구가 다르긴 한데, 대체로 6번 의자를 편안해한다.
스탠다드에이의 현재 시그니처인 7번 의자. 스탠다드에이의 의자 시리즈 중 화려한 축에 속하는 이 의자는 사용자를 배려한 우아한 곡선 라인이 특징이다.
스탠다드에이 제공
조민석 건축가의 매스스터디스와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첫 작업인 원남교당은 어떠했나?
매스스터디스가 원남교당 내부에 들어갈 벤치를 제작할 수 있는 목공팀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우리와 연이 닿았다. 그간 우리가 작업했던 공간들은 대부분 층고와 면적이 일정한 편이었는데, 원남교당은 스케일이 달랐다. 공간 자체가 둥글고, 층고도 높았다. 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열 번도 넘게 찾아가 공간이 비로소 익숙해진 후에 작업을 시작했다. 따뜻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가구 모서리들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구조를 적용했다.
유서 깊은 건축물인 주한 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의 리모델링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스탠다드에이가 정교하게 되살려낸 계단 난간. 도면이 없는 상태에서 사진에만 의존해 원작자의 건축적 유산을 고증해 냈다.
스탠다드에이 제공
건물 내부를 부수고 골조만 남긴 상태에서 안전 진단을 했는데, 콘크리트와 철근이 삭아서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복원이 불가능했기에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지을 것인가, 동일한 형태로 다시 지을 것인가라는 숙제가 있었다. 현대 건축의 거장 김중업(1922~1988) 건축가의 작업인 만큼 최대한 살릴 것은 살리고, 조금씩 새로운 터치를 넣기로 결정되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상징적이고도 중요한 계단의 난간 작업을 맡았다. 굉장히 까다로운 형태였는데, 설계도도 없고 사료는 빛바랜 사진 세 장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고사했는데, 우리가 안 하면 목재로 복원할 수 있는 팀이 없어 금속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참여했고, 도면도 없이 사진에 의지해 만드느라 굉장히 고생했지만, 고가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건물이 보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 외에도 피크닉 같은 복합문화공간, GS25, 우아한형제들 같은 기업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스탠다드에이만의 방법론이 있다면?
가장 어려운 점은 실무진과 결정권자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거나 명확히 소통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감사하게도, 디자인적으로는 실무자들이 우리 작업을 믿고 제안하는 경우가 많아 풀어나가기 수월한 편이다. 같은 업종이라도 공간에 따라 분위기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공간 전체를 디렉팅하는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의견을 귀담아듣는다. 정답이 따로 있진 않지만, 시간을 들여 깊게 고민하면 정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기능이나 제작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없는지 보완하는 쪽으로 접근한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의 대부분이 최소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헤리티지가 쌓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꾸준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 15년이다. 패널을 이용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가구는 만드는 쪽도 편하고, 쓰는 사람도 적당히 사용하고 버릴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함이 넘치는 시대에 직접 손으로 공들여 만드는 방식을 고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묵묵하게 우리만의 시간을 쌓아 나가고 싶다.
스탠다드에이는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 건축가와 협업하여 원남교당의 내부에 설치되는 가구 작업을 도맡았다. 건물 내부의 높은 층고와 원형 구조에 어울릴 수 있도록 가구 모서리들을 부드럽게 마감했다.
스탠다드에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