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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UMMER

이야기를 건네는 패션을 꿈꾸다

이승주(Sung Ju Beth Lee) 디자이너가 2017년 론칭한 다시곰(Darcygom)은 한국 전통을 모티브로 삼은 패션 브랜드이다. 브랜드명에는 ‘다시 한번 더’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모던 한복과 업사이클링을 통해 새로운 패션 아이템을 제시하고 있다. 디자인이 소비자와 소통하는 매개체라 생각하는 이승주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승주 디자이너는 선염 직물인 색동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이를 대중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승주 디자이너가 이끄는 다시곰은 전통을 현재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구현하는 브랜드이다. 옛날 선비들이 착용했던 정자관의 형태를 본뜬 가방, 한복 저고리의 동정 깃 디자인을 활용한 점프슈트, 색동을 전면에 내세운 스니커즈 등 전통적 요소에 재치와 개성을 뒤섞으며 특색 있는 디자인을 선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업사이클링 디자인도 병행한다. 브랜드명 다시곰은 부사 ‘다시금’의 옛말인데, 이 작명에는 그녀가 추구하는 패션의 가치가 담겨 있다. 기존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그녀는 미국, 캐나다, 독일, 탄자니아 등지로 옮겨다니며 해외에서 오래 살았다. 그 세월을 합치면 17년이다. 패션 문외한이었던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어느 날 불쑥 한복과 침구 등으로 유명한 서울 광장시장에 찾아가 옷 짓는 법을 배웠다. 그러고는 2017년 브랜드를 론칭하고 패션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후에는 오뚜기, 카스 등 국내 기업들과 다양한 협업을 펼쳤고, 디자인 영역도 계속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과도 협업해 뮤지엄 스토어에 제품을 입점시키기도 했다.

패션 디자인과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나?

내가 해외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 탄자니아였다. 당시에 건강이 나빠져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당장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미래를 그려보다가 새로운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해외를 돌아다니는 동안 각 나라의 전통 원단이나 옷을 사 모았더라. 베트남에서는 아오자이를, 일본에서는 유카타를 사왔는데 막상 내게는 한복 한 벌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광장시장을 찾아갔고, 재봉하시는 분에게 대뜸 옷 만드는 걸 배울 수 있냐고 물어봤다. 이상한 사람 취급도 받았지만 선뜻 알려주겠다는 분이 있어 재봉을 배웠고, 서울디자인재단과 서울시 산하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다가 브랜드까지 만들었다. 정말 우연이었다.

어릴 적, 한복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나?

어린 시절을 북미에서 보냈다. 4~5살 때쯤 한복을 처음 입어봤는데 빨간색, 주황색에 장미가 그려진 옷이었다. 지금봤더라면 촌스럽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린 내 눈에는 정말 예뻐 보였고 공주 옷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더 자라면 사이즈가 안 맞을 텐데 계속 입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타향살이를 하면 고국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남동생은 한식에 빠졌는데, 나는 옷으로 발현된 게 아닐까 싶다.

다양한 굵기와 색채의 색동을 조합해 선보인 프로젝트. 2021년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레드 핫 몽드(Red Hot Monde Magazine)』에 소개되었다.
© 오승준(OH Seungjune)

색동은 다시곰의 시그너처다. 소비자들이 색동에 매료되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잊히는 것과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착이 있다. 광장시장에서 색동 원단을 구하다가 우리나라에서 색동을 만드는 곳이 이제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요가 적으니 공급도 없어진 것이다. 색동은 한국의 문화유산인데 사장될 위기에 처한 것이 안타까웠고, 그래서 색동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여러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었다. 브랜드 이름처럼 ‘무언가를 다시’ 부흥시키는 경험이었다. 색동의 쨍한 색감에 매력을 느낀다는 이들도 있었고, 원단 자체가 주는 노스탤지어를 좋아하는 이들도 많았다.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는 어떻게 같이 작업하게 됐나?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한류와 연계한 한복 프로젝트 공모전이 열렸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돌 같은 유명인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과 달리 나는 평소 좋아하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를 중심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내 제안이 채택되었고,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 협업해 ‘애매모호한 다시곰밀림(Ambiguous Jungle)’이라는 타이틀로 2021년 SS 컬렉션을 준비할 수 있었다.

식품 제조 기업 오뚜기와 협업한 프로젝트로, 오뚜기가 제공한 현수막으로 의상을 제작했다.
© 오승준(OH Seungjune)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로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지 않으면 고통스럽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정말 많지 않은가. 나는 스토리텔링을 중시하고,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작업을 시작한다. 디자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실용성이다. 나는 “이 옷을 입고 지금 당장 지하철에 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지금 내가 안에 받쳐 입은 상의는 네크라인을 한복 저고리처럼 디자인하고, 발열 원단을 써서 만든 기능성 옷이다. 전통적인 모티프와 스타일, 기능성을 접목하는 것이 다시곰 스타일이다.

패션 잡화에 특색 있는 이름을 붙인 것도 재미 때문인가?

가방을 만들어서 ‘놀부백’이나 ‘갓백(Gat Bag)’ 등의 이름을 붙였다. 놀부는 전래 동화 『흥부와 놀부』에 나오는 심술궂은 형인데, 동화책을 보면 정자관을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정자관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평상시에 착용하던 모자로,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가방을 제작했다. 그런데 이 가방 명칭을 ‘정자관백’이라고 지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뾰족한 형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놀부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아서 그렇게 지었다. 갓백은 갓 모양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그대로 이름을 붙였다. 2음절이라 부르기도 쉽고, 영어 단어 ‘god’도 연상되니 재미있었다.

소금을 담는 포대는 튼튼하지만 물류비로 인해 한 번 쓰고 전량 폐기된다. 이승주 디자이너는 국내 대표적 천일염 생산지인 신안군 비금도에서 버려지는 소금 포대들을 업사이클링해 의상을 제작했다.
© JUNG Ji Hoon

전통 복식의 실루엣을 현대인의 체형에 맞게 디자인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한복의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는 자연스럽게 잡히는 주름이다. 그 주름이 체형을 보완해주고 움직임을 편안하게 한다. 그래서 평면 재단이 답이다. 입체 재단으로는 구현이 어렵다.

업사이클링 디자인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디자인을 먼저 잡고 그다음에 어울리는 소재를 찾는다. 하지만 업사이클링은 주어진 원단을 가지고 시작한다. 즉 디자인 프로세스가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일단 기상천외한 원단을 찾는다. 어릴 적에 패션 디자이너 경쟁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런웨이>를 즐겨 봤다. 말도 안 되는 미션이 주어졌는데도 출연자들이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꼈다. 나도 그렇게 챌린지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할 때가 있다. 언젠가는 친구 차가 폐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동차 시트 원단을 떼어내 옷을 만든 적이 있다. 폐현수막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이 나온다. 기업들이 행사에서 사용한 현수막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기업과 연계를 맺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더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해외 박물관들과는 어떤 협업 과정을 거쳤나?

오뚜기와의 협업을 눈여겨본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의 제안으로 뮤지엄 스토어에 몇 가지 제품을 입점하게 됐다. 이후에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내 작업을 흥미롭게 여긴 것 같다.

동대문에 위치한 서울패션허브 봉제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승주 디자이너. 그녀는 전통의 재해석과 업사이클링을 통해 지속가능한 패션을 꿈꾼다.

‘한국적’인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델몬트 오렌지 주스 병을 알 것이다. 옛날에는 주스를 다 마시고 나서 그 병에 보리차를 담아 사용하는 집들이 많았다. 그 병에 보리차를 보관하면 한동안은 보리차 뒷맛에서 희미하게 오렌지 향이 느껴진다. 그게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스라하게 남아 있는 것. 오늘 하루를 사는 데 크게 필요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이 한국적인 것이 아닐까?

박의령(Park Ui-ryung) 자유기고가
허동욱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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