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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UMMER

스포츠 활성화 이끄는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과거, 국내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은 웃음과 재미를 주는 일반적 예능 프로그램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포츠 자체를 변화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 팬덤을 결집시키고, 그 저변을 확산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종목을 부활시키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왼쪽부터 MBC의 여자 배구 예능 프로그램 <신인감독 김연경>, 축구를 소재로 한 SBS의 <골 때리는 그녀들>, 은퇴한 야구 선수들과 아마추어 야구팀의 대결을 담은 JTBC의 <최강 야구> 포스터.
ⓒ MBC
ⓒ SBS
ⓒ JTBC

2025년 한국 예능 프로그램 중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신인감독 김연경>이다. 이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배구 스타 김연경이 은퇴 후 신인 감독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낳으며, 제62회 백상예술대상 방송 부문에서 예능 작품상을 받는 등 다수의 상을 거머쥐었다. 비록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어진 도전이었지만, 그녀는 사력을 다했다. 2부 리그가 없어 1부 팀에서 밀려나면 은퇴할 수밖에 없는 한국 여자 배구계의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밀려난 선수들로 ‘원더독스’라는 팀을 만들었다. 국내 프로 배구 여자부에는 현재 7개 팀이 운영되고 있는데, 김연경은 ‘언더’에서 ‘원더’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팀명에 담으며 원더독스가 제8 구단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팀워크가 생기지 않아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원더독스는 회가 거듭될수록 성장하며 진가를 발휘했다. 그리고 2024~2025 시즌, 프로 통합 준우승팀 레드스파크스와 우승팀 핑크스파이더스를 모두 꺾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서사가 있는 예능

이 프로그램은 스포츠 예능임에도 실제 여자 배구에 영향을 미쳤다. 은퇴했던 선수들 중 몇몇은 프로팀과 실업팀에 입단해 다시 현역으로 뛰게 됐고, 감소 추세이던 여자 배구의 팬들이 급증했다. 관중들을 초청해 치른 마지막 경기는 3일 만에 약 1만 명이 신청해 전석이 매진될 정도였다. 스포츠 예능이 스포츠 자체를 부활시키는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런 성공이 가능했던 건 스포츠 예능만이 구현할 수 있는 영상 연출과 스토리텔링 때문이었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선수들 개개인에게 마이크를 채움으로써 생생한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었다. 또한 예능적으로 편집된 경기는 마치 한 편의 스포츠 영화를 보는 듯한 드라마틱한 성장 서사를 그려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부각됐고, 스타가 탄생했으며, 이들의 팬덤이 형성됐다. 또한 세계 정상급 선수였던 김연경 감독의 절묘한 전략과 전술에 따라 변화무쌍한 결과가 나타나는 과정을 방송으로 지켜본 팬들은 비로소 여자 배구의 묘미를 알게 됐다. 그들은 자연스레 실제 프로 리그 경기장을 찾는 관객이 됐다.

<신인감독 김연경>처럼 스포츠 예능이 해당 종목을 부활시킨 사례는 이미 2019년에도 존재했다. 당시 KBS2가 방영했던 <씨름의 희열>은 한때 국민 스포츠로 불렸지만 그저 추억이 되고 만 씨름의 꺼져가는 불씨에 활활 불을 지폈다. 경량급인 태백(몸무게 80㎏)과 금강(몸무게 90㎏) 체급의 씨름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씨름에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같은 연출을 덧붙였다. 잘생긴 외모에 탄탄한 몸을 가진 젊은 선수들의 매력과 개성이 방송을 타면서 팬덤이 생겨났다. 또한 기존 씨름 중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이내믹한 영상 연출이 박진감을 더했다. 아쉽게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파이널 매치는 경기 당일 무관중으로 치러졌지만, 티켓은 순식간에 전석이 매진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스포츠 인구의 저변 확대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각 분야의 여성 연예인들이 축구팀을 결성해 리그를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훈련과 치열한 리그 운영이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며 큰 호응을 얻었다.
ⓒ SBS

이제 스포츠 예능은 더 이상 과거처럼 재미에만 집중하려 하지 않는다. 스포츠 종목 자체의 매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여러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들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과 은퇴한 선수들이 모여 실전 경기를 치르는 <최강야구>가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2022년 시작해 올해 초 138부작으로 종영된 이 프로그램은 특별한 연출 없이 야구 경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을 불러 모았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종목인 여자 축구 붐을 불러일으킨 SBS의 <골 때리는 그녀들>(2021)도 마찬가지다. 여러 팀이 맞붙어 싸우는 경기 과정에서 성장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이 프로그램과 함께 tvN의 <무쇠소녀단>은 여성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2024년 첫 번째 시즌에서는 배우와 가수로 구성된 등장인물 4인이 철인3종 대회에 도전하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졌고, 이듬해 두 번째 시즌에서는 복싱 챔피언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된 스포츠 예능은 실제 여성 스포츠 동호인들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었던 축구와 야구, 복싱 같은 스포츠에 일반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스포츠 예능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면서 대중적인 스포츠 종목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 한국의 스포츠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대항 이벤트가 벌어질 때만 각광을 받았다.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편중 현상도 뚜렷했다. 하지만 최근 대중들의 스포츠 취향은 훨씬 다양해졌다. 이 같은 현상에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들이 일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단순히 관람에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는 생활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아 한국에서도 붐이 일고 있는 러닝이 대표적이다. 저변이 넓어지면서 이제는 마라톤 같은 달리기 이벤트가 지자체의 홍보와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러닝 열풍을 반영한 프로그램도 방영됐다. 웹툰 작가인 기안84가 출연해 극한의 마라톤 도전기를 보여주는 <극한84>가 바로 그 프로그램이다. 기안84가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를 비롯해 북극에서 열리는 이색적이면서도 극한의 인내를 요구하는 마라톤에 참여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운동 욕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국민 건강 증진에도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중의 인식 전환

<극한 84>는 출연자들이 극한의 마라톤 환경에서 자신을 시험대에 올리고, 끝까지 도전해 내는 과정을 그린 예능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예능적 재미를 넘어,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진솔하고 묵직하게 담아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 MBC

스포츠 예능은 또한 스포츠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도 바꿔놓고 있다. 과거에 한국은 엘리트 체육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포츠 중계 역시 몇몇 인기 종목에만 한정돼 있었고, 승패와 기록에만 주목했다. 그러나 스포츠 예능은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과정’ 자체를 조명한다. 경기에서 지더라도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역경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장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바라본다. 팀 스포츠의 경우에는 선수들 간 관계도 중요한 서사의 포인트다.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통해 팀이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스포츠 예능은 밀착한 카메라를 통해 담아낸다.

스포츠 예능이 스포츠 자체에 영향력을 미치게 된 데는 갈수록 늘고 있는 팬덤 소비의 경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프로야구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건 젊은 여성 관중이 늘어난 것이 주요인이다. 여성 관객들은 스포츠 예능 같은 팬덤 콘텐츠의 등장과 더불어 급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모든 걸 쏟아 넣는 취향을 가진 팬덤이 스포츠 분야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팬덤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는 스포츠 예능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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