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Entertainment > 상세화면

2025 AUTUMN

K-팝의 최전선, 팝업 스토어

K-팝 신에서 팝업 스토어가 성행 중이다. 기존에는 앨범 발매를 홍보하기 위한 단순한 이벤트 성격이 짙었지만, 최근에는 유수의 브랜드들과 협업해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뮤지션의 세계관을 스토리텔링해 전달하는 등 콘텐츠가 창조적으로 진화하면서 팬덤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 aespa WEEK – #Whiplash_mood 〉는 에스파의 미니 5집 앨범 < Whiplash > 발매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팝업 스토어이다. 에스파의 세계관 및 앨범 콘셉트를 키네틱 아트로 재해석했으며, 공간 전체가 살아 숨 쉬는 듯한 공감각적 연출로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2024년 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 서울 성수동에서 열렸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제 팝업 스토어가 없는 K-팝은 허전하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었다. 불과 4~5년 사이 일어난 일이다. 단기 운영되는 임시 매장으로, 상업 브랜드와 좋은 상성을 보이며 빠르게 성장한 이 새로운 마케팅 방식은 K-팝과도 궁합이 꽤 좋았다. 새것이라면 뭐든 반가운 K-팝 업계 특유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자연스럽다. 자리를 잡아도 너무 잘 잡아 이제는 “잘 만든 팝업 스토어 하나가 웬만한 타이틀곡이나 뮤직비디오보다 낫다”는 소리가 팬들 사이에서 종종 들려올 정도다.

안정감과 소속감

어느새 K-팝의 필수 요소가 되어 버린 팝업 스토어는 지난 몇 년간 K-팝을 산업으로 보는 시각 아래 활발하게 호명되었다. 특히 지금까지 없던 효과적인 홍보 수단으로, K-팝 산업 속에서 비즈니스 확장이나 수익 구조 다각화를 가능케 해 가치를 인정받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가수와 팬이 직접 만날 수 없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팝업 스토어가 부쩍 성장한 점만 봐도 그렇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서는 안 되는 인류 초유의 사태 속에서, 팝업 스토어는 K-팝 팬덤이 ‘우리’로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K-팝 팝업 스토어와 일반 팝업 스토어의 차이가 생긴다. 후자가 팝업 대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그로 인해 형성된 잠재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전자는 이미 탄탄하게 구성된 팬덤과의 깊이 있는 교류를 핵심으로 한다. 예를 들어 신상품을 알리기 위한 팝업 스토어를 생각해 보자. 일반 팝업 스토어는 제품의 호감도와 인지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해당 제품의 판매량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K-팝 팝업 스토어는 새롭게 발매된 앨범을 통해 팬덤을 한자리에 모으고,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강한 소속감과 몰입감을 느끼게 하는 데 집중한다. 수익화는 대부분 현장 머천다이즈 판매로 이뤄진다.

2025년 3월 더현대서울에서 열린 < G-DRAGON Media Exhibition: Übermensch >는 지드래곤의 정규 3집 < 위버멘쉬(Übermensch) > 발매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미디어아트 전시다. VR, AI 기반의 음성 인터랙션, 홀로그램, 초대형 미디어 파사드 등 신기술을 기반으로 기획된 이 전시는 팬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제공했다. 또한 지드래곤의 오랜 상징인 데이지꽃 조형물을 곳곳에 설치해 일관된 디자인을 완성했다.
ⓒ 셔터스톡

요컨대 K-팝 팝업 스토어는 직접 만지고 경험하는 팬 행위의 가장 진보적인 형태이다. 지금껏 대표적인 K-팝 오프라인 콘텐츠로 군림해 온 콘서트와 팬 사인회 그 어떤 것도 가수가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가수, 즉 IP의 힘이 유난히 강한 K-팝 산업에서 직접적인 IP 노출 없이도 이 정도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팝업 스토어가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다. 그런 점에서 K-팝 팝업 스토어는 좋아하는 뮤지션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팬들이 자발적으로 벌이는 이벤트들과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

K-팝 팝업 스토어의 서막

그동안 K-팝이 강력한 IP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쳐온 만큼 팝업 스토어의 원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전시와 체험, 교류와 제품 판매가 모두 이루어지는 K-팝 팝업 스토어의 속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오프라인에서 가수 없이 색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공간’이라는 특성을 생각하면, 2015년 서울 이태원 드로잉 블라인드에서 열린 f(x)의 정규 4집 <4 Walls> 앨범 발매 기념 전시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K-팝과 전시회를 연결한다는 게 상당히 생소했는데, 앨범 발매 전 빔프로젝터를 통해 천장을 포함한 사방 벽면에 멤버들의 티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K-팝의 기본적 홍보 방식인 티저 프로모션과 전시 형태를 융합한 이 행사는, 지금은 한없이 체급을 불린 K-팝 팝업 스토어의 체험판이자 프로토타입이라 할 만하다.

흥미로운 건 당시 f(x)의 전반적 아트 디렉팅을 진행한 인물이 이후 그룹 뉴진스를 만든 민희진이라는 점이다. 뉴진스는 여러 면에서 2020년대 K-팝의 변화를 주도한 아이콘으로 불리는데, 그중 브랜드와 협업해 이를 효과적으로 풀어낸 팝업 스토어의 흥행도 빼놓을 수 없다. 2022년 8월,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뉴진스의 데뷔 기념 팝업 스토어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K-팝 팝업 스토어 전쟁의 서막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어마어마한 대기 줄을 비롯해 상투적인 K-팝 머천다이즈 형태에서 벗어난 패셔너블한 디자인과 구성으로 분야를 막론한 각계각층의 큰 관심을 모았다. 뉴진스는 이후에도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 애니메이션 <파워퍼프걸> 등 대중의 예상을 뛰어넘는 창조적인 협업으로 끝없이 뉴진스 붐을 이어 나갔다. 2023년 발매한 EP 발매 프로모션 관련 팝업 스토어에는 10만 명이 넘는 누적 관객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팝업’의 재정의

팝업 스토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K-팝 그룹을 보유한 크고 작은 기획사들 모두가 분주해졌다. 가수의 사진만 활용하거나 머천다이즈 판매에만 눈에 불을 켠 팝업 스토어는 설 자리가 없어진 지 오래다.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일례로 최근 SM엔터테인먼트와 산리오코리아가 협업한 ‘Where is KEY? with HELLO KITTY’가 눈에 띈다. 샤이니 키의 시그니처 캐릭터 복실이와 산리오 캐릭터 헬로키티가 등장해 동화 같은 스토리라인을 펼쳐낸 이 팝업 스토어는 2D와 3D라는 다른 차원의 두 콘텐츠가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뉴진스의 미니 2집 < Get Up > 발매 기념으로 열린 < 버니랜드 >는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와 디지털 IP 플랫폼 기업 IPX가 협업해 선보인 팝업 스토어다. 2023년 7월부터 8월 말까지 서울 낙원동, 홍대, 강남 등지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됐으며 뉴진스의 정체성을 담은 특색 있는 공간 연출과 체험형 콘텐츠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사진은 낙원동 악기 상가에 마련된 체험 공간.
아트포인트(Artpoint) 제공

그뿐만이 아니다. K-팝 팝업 스토어는 이제 공간도, 차원도 넘어선 곳으로 개념을 넓혀 나가고 있다. 세븐틴의 대표적인 오프라인 이벤트 ‘SEVENTEEN STREET’는 제한된 실내 공간을 넘어 한강 세빛섬이나 성수동, 압구정동 일대를 무대로 삼은, 천장 없는 거대한 팝업 스토어라 할 수 있다.

2025년 상반기 큰 화제 속에서 마무리된 플레이브의 2주년 기념 팝업 스토어 ‘Happy Plave Day’는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그룹의 특징을 십분 발휘했다. ‘직접’ 만날 수 없는 가수와 팬 사이의 한계는 팝업 스토어라는 물리적 공간과 데뷔 2주년이라는 기념일을 통해 흥미롭게 극복되었다. 멤버들의 필체가 담긴 축하 리플릿과 손 편지, 직접 그린 그림을 실물로 완성한 축하 케이크, 독자적 기술을 활용해 멤버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운영한 라이브 포토존 등 팬과 가수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정도로 꼼꼼하고 세심한 기획력이 돋보였다.

그렇다. K-팝 팝업 스토어의 핵심은 ‘함께’다.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시공간을 통해 가수와 팬, 팬과 가수, 팬과 팬 모두가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더 공고히 다진다.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 팀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과 커뮤니티의 현신 앞에서 ‘팝업’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가 재정의되고 있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