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는 현상으로 ‘흥’과 ‘한’이 자주 거론된다. 흥은 세상의 기운과 사람의 내면적 에너지가 만날 때 일어나는 삶의 기쁨과 유희의 충동이다. 한이 밑으로 가라앉는 부정적 흐름이라면 흥은 위로 솟는 긍정적 역동성이다.
흥의 발현 중 하나가 봄을 즐기는 꽃놀이다. 3월에 들어서면 성급한 이들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기웃거린다. 그러나 3월 하순은 되어야 남쪽에서 본격적인 꽃소식이 밀고 올라온다. 제주도와 부산과 진해에서 꽃망울이 터진다는 소식과 더불어 꽃놀이 열차와 시외버스가 증편되고, 들뜬 이들은 여행 계획을 짠다. 상춘객이 가장 선호하는 봄꽃은 벚꽃, 그다음으로 매화꽃, 산수유꽃이다.
봄꽃놀이 축제는 3월 중순 전라남도 광양의 매화마을에서 시작된다. 섬진강변을 따라 골짜기마다 눈부신 매화꽃이 하얀 꽃구름의 장관을 이루면 전국에서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든다. 그러나 역시 봄꽃놀이의 절정은 4월 초순의 진해 군항제다. 1960년대 초에 시작된 벚꽃 축제다. 일제 강점기 군항 진해에 일본인들이 많이 심은 벚나무들은 광복 후 일제의 상징이라 해서 뽑혀 버렸다. 그러나 한국 해군 사령부 안의 벚나무들은 남아서 자랐다. 이후,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제주도로 밝혀지면서 다시 벚나무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봄마다 진해의 시가지가 벚꽃 천지가 되고, 그곳을 가득 메운 상춘객들의 머리 위로 꽃비가 쏟아진다.
진해 못지않게 유명한 곳은 화개 십리 벚꽃길이다. 1930년대 신작로가 닦이면서 심은 벚나무 1200여 그루가 노목이 되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긴긴 섬진강을 따라 눈부신 벚꽃가지들이 맞닿아 터널을 이루니 꿈의 궁전인 양 황홀하다. 물론 그 터널 아래 길은 전국에서 밀려든 상춘객들의 자동차로 몸살을 앓는다. 어디 이곳뿐이랴.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도심도 봄에 홀리고 꽃에 취한다. 서울 여의도의 윤중로와 석촌호수, 구례, 경주 보문호수,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 등도 이름난 꽃놀이 명승지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9명이 봄철이면 꽃놀이에 나서고, 7명은 하루 이상 멀리까지 꽃구경을 다녀온다. 그중 적어도 한 사람은 꽃길 따라 바다를 건너 일본까지 간다. 한반도의 봄은 짧고 덧없다. 4월 중순에 벚꽃이 지기 시작하면 어느새 뜨거운 여름의 문턱이다. 짧은 봄의 흥겨움을 만끽한 행락객들이 떠난 자리에는 쓰레기 더미가 가득 쌓여 있다. 봄의 덧없음은 화사한 꽃과 흥겨운 축제가 남기는 ‘한’ 의 한 자락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