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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UMMER

LIFE

두 한국 이야기 ‘대동강의 기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연구 모임

떠나 온 고향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 — 북한개발연구소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연구 활동이 '통일 예행 연습'이라고 믿는다. 북한 미시지역 경제 여건의 수집과 분석이 그 실제적인 방안이다.

“북한개발연구는 떠나온 고향에 드리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NK개발연구소.” 서울 중구 충무로의 4층짜리 덕성빌딩 맨 꼭대기에 자리한 북한개발연구소를 방문하면 이렇게 쓴 간판을 맨 먼저 마주한다. 김병욱 소장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백두산 천지 사진이 첫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 연구실에는 두만강을 끼고 중국과 접경한 탄광도시인 함경북도 무산군의 구글 지도가 걸려 있다. 탈북자의 애환을 그린 영화 <무산일기>의 실제 모델 전승철의 고향인 바로 그 무산이다.

북한학 박사 부부
북한개발연구소는 탈북 지식인들이 뜻을 모아 북한 중소도시 개발을 돕기 위해 설립한 학술연구단체다. 탈북자로서는 남한에서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병욱 소장이 주도해 만들어 2014년 12월 기획재정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됐다. 대부분의 탈북자 단체가 통일부에 등록돼 있는 것과 달리 북한개발연구소는 유일하게 기획재정부 소속이다. 연구단체여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탈북인 단체 가운데 평균 학력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2012년 말 탈북 지식인 10명이 하나원에 모였다. 탈북인의 남한 사회 정착 지원을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이곳에 모인 날, 이들은 북한 개발 전략을 연구해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남한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시키자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이듬해 탈북민 석-박사 학술동호회 모임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들의 꿈은 오달지다.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있었다면 ‘대동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데 NKDI가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초대 소장을 맡은 김병욱 박사(53)가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끈 KDI를 본떠 이름을 지은 데도 이처럼 큰 포부가 담겼다. 김 소장은 “그 동안 탈북자들은 북한 연구의 자료나 도구로 활용돼온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탈북 지식인들이 주체가 된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북한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진 우리가 머리를 맞대 NKDI를 북한 관련 최고 연구소로 키우겠다”고 웅지를 펼쳐 보인다.
이 연구소에는 김 소장의 부인도 참여하고 있다. 부인 김영희 박사는 현재 한국산업은행 통일사업부 북한경제팀장으로 일하면서 이 연구소의 일을 병행한다. 이 부부는 2002년 8월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했다. 당 간부가 아니면 출세가 불가능한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김 소장은 평양기계대학을 나온 엘리트였으나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데다 친척들이 중국에 있다는 이유로 1990년대 초 평양에서 추방돼 평안남도 남포, 함경북도 청진 등을 전전해야 했다. 김 소장은 “나 자신의 출세는 둘째 치고 아이들의 삶이 더 걱정돼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탈북 후 남한에 정착한 다음 함께 공부해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학 연구로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첫 탈북자 부부라는 기록을 세웠다.

‘185 프로젝트’
박사 5명, 박사과정 12명, 석사과정 3명, 해서 모두 20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이 연구소는 여성이 13명으로 더 많다. 대부분 40대인 연구원들은 별도 직업을 지녔다. 대안학교 교감, 기간제 교사, 회사원 등으로 근무하면서 주말에 모여 연구 활동을 점검하고 의견을 나눈다. 전공 분야도 경제학, 군사학, 교육학, 사회학, 정치학, 문화예술 분야 등으로 다양하다. 상근자는 김 소장을 포함해 3명이며, 일본인 1명이 대외협력이사로 참여해 도와주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이 연구소는 북한 185개 지역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데 방점을 찍어놓고 있다. 북한에는 대도시의 구(區)에 해당하는 구역급 지역이 38곳, 군(郡)급 지역이 147곳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평양시 22곳, 신의주시 5곳, 개성공업지구 3곳, 함경북도 19곳, 함경남도 22곳, 평안북도 23곳, 평안남도 15곳, 강원도 16곳, 황해북도 15곳, 황해남도 19곳, 자강도 15곳, 양강도 11곳이다. 연구소에서는 이 185곳의 ‘미시지역’을 해당 시-도별로 맡아 연구할 12개의 지역개발 연구팀 결성을 올해 안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한 지역 격차를 줄이는 것이 긴요합니다. 이를 위해 북한의 중소도시 개발을 위한 기초 지리 정보를 쌓아갈 생각입니다. 185곳에 달하는 군 단위 이상 모든 중소도시의 공간 지리 정보를 구축하는 ‘185 프로젝트’가 1차 과제입니다. 이는 통일 전후로 북한의 개발 전략을 짜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남한의 강원도 정선 탄광지대를 관광지로 만들었듯이 북한의 폐탄광 지역도 이런 식으로 개발할 수 있는 것이죠.” 김 소장은 필수 과제로 해당 지역 군 단위에 대한 기초자료조사를 꼽고 이같이 밝혔다. 지역 연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자료가 모두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소 연구원들에게 고향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에 따른 주제가 아닙니다. 우리로 인해 핍박 받는 휴전선 너머 동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남쪽나라에서의 삶의 전부를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김 소장은 이 말로 자신들의 취지를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연구 업적과 계획
이 연구소는 지난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국토연구원과 공동으로 네 차례 세미나를 열어 당면 과제에 관한 기초를 다졌다. ‘북한 중소도시 개발에 필요한 기초자료 축성,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 중소도시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 중소도시 개발, 어떻게 할 것인가?’, ‘떠나온 고향, 민생 인프라 개발의 길을 묻다’가 그 세미나의 제목들이다.
지금까지 7개 연구 성과물을 ‘내 고향 미래연구소 총서’로 출간하기도 했다. ‘제2의 평양, 화학공업 도시: 함흥시 투자이야기’(위영금 연구원•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박사과정), ‘한반도 물류 중심: 순천시(평안남도) 투자이야기’(홍성원 연구원•북한대학원대 박사과정), ‘동북아 철의 도시: 청진시 투자이야기’(김혁 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과정), ‘검은 보석의 땅: 은덕군 투자 이야기’(이혜란 연구원•성균관대 박사과정), ‘백두산 관광 활성화와 혜산시 개발’(엄현숙 연구원•북한대학원대 박사과정 수료), ‘온천 관광의 중심지 경성군 개발’(윤승비 연구원•경희대 박사과정), ‘개발 잠재력을 통해 본 해주시 비전’(곽명일 연구원•북한대학원대 박사과정 수료)이 그것이다.
정부 부처나 민간단체의 의뢰로 작년에 ‘북한 건설기술 조사 분석’, ‘공간정보에 기초한 무산지역 민생인프라 개발전략’, ‘북한 동향분석’, ‘공간정보에 기초한 원산시 선교거점 구축’ 같은 연구 과제를 수행했고 올해 연구 과제도 정해졌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의뢰한 ‘북한 시장화 현황과 전망’을 비롯해 ‘광복 후 천주교 본당의 지형변화’, ‘북한지역 선교거점 연구’가 그것들이다. 자체 연구과제로는 ‘공간정보에 따른 혜산시 기초자료 축성’을 설정했다.
2015년 말 현재 탈북자 출신 박사는 19명, 석사는 60명에 이른다. 김 소장은 이들이 북한 지역 연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 북한 인프라 구축과 관련된 연구의 구체성을 높이는 작업도 기획하고 있다. 여건이 호전되면 국제적인 북한 개발 프로그램도 적극 추진하고 싶어 한다.

“우리 연구소 연구원들에게 고향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에 따른 주제가 아닙니다. 우리로 인해 핍박 받는 휴전선 너머 동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남쪽나라에서의 삶의 전부를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극복해야 할 선입견들
이 연구소는 올 들어 몇 가지 난관에 부딪쳤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와 남한 자체의 잇단 대북 제재조치가 첫 번째다. 개성공단 폐쇄, 하산-라진 프로젝트 추진 보류를 비롯한 남북 협력 중단의 여파가 작지 않다. 북한 당국도 남북 간 모든 경제협력과 교류사업 합의가 무효라고 선언해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실정이다. 당장은 이러한 남북관계 냉각이 부정적인 영향을 낳을 수 있겠지만 이들은 결코 낙담하지는 않는다. 외려 이를 역량 축적의 기회로 삼겠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가 닫힐수록 연구소의 희소성이 큰 만큼’ 멀리 내다보고 연구 내공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연구소의 올 1/4분기 정기 세미나로 ‘핵개발 유엔 제재 이후의 북한을 묻다’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기도 했다.

남한 정책 당국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인식도 극복해야 할 대상의 하나다. 통일이 되면 도시 인프라를 비롯한 북한의 모든 것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것이다. 탈북 연구자들이 북한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살려 연구한다는 게 효용성이 있겠느냐는 편견도 그 가운데 하나다. 북한개발연구소가 실행하려는 연구자료 정도는 국가정보원에 다 있지 않겠느냐는 선입견도 마찬가지다. 거시정책을 연구하는 국토연구원과 차별화가 돼 있음에도 중복 연구를 하지 않느냐는 의구심도 산다.
이 같은 복합적인 시각 때문에 한국연구재단에 신청해 놓은 2억 원의 연구지원자금도 결정이 나지 않고 있다고 김 소장은 판단한다. 김 소장은 ‘185 프로젝트’를 중장기적으로 국가차원에서 지원해 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14년째 됐지만 여전히 적응이 어려운 점은 남한사람들의 ‘립 서비스’다.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검토해 보겠다” “언제 한번 보자” “밥 한번 먹자”는 흔한 인사가 진정으로 도와주려는 것인지 여전히 헷갈리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의 표현은 직설적인 반면 남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서다.
연구원들은 재정 형편이 어려운 실정이지만 각계의 도움이 있어 용기를 잃지 않는다. 양봉진 전 현대자원개발 사장은 연구소를 무료로 임대해 주고 있다. 서울시 중구청에서는 각종 공과금을 대납해 주고 있어 큰 힘이 된다. 김태식 씨에스아이엔테크 사장은 수천만 원의 연구기금을 지원했다. 김 소장은 “아직 빈손에 가깝지만 믿음을 갖고 고향 개발의 길을 열어나가자”고 연구원들을 독려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김 소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연구소를 나오며 떠오른 성경 구절이다.

김학순 (Kim Hak-soon, 金學淳) 언론인,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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